대학일기 1
자까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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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현실적일 수 없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빵빵 터지는 리얼 캠퍼스 라이프 웹툰!

 

 

 

 

   친척 오빠가 다니는 대학교에 합격하여 사전답사도 할 겸 밥도 얻어먹을 겸 캠퍼스를 홀로 찾아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사실 대학 생활에 대한 이렇다 할 로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캠퍼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여긴 신세계다!'라는 느낌이 팍 들었더라죠. 묵직한 전공 서적을, 그것도 원서로 된 알 수 없는 제목의 책들을 저마다 한 쪽 손에 들고 다니는 언니와 오빠들을 보며 이들이야말로 수능 따위에 찌들지 않은 진정한 지성인의 모습이다라고 느꼈어요. 같은 과 점퍼를 입고 지나가는 무리를 보며 학교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에 살짝 전율이 일기도 했고요. 원하는 강좌를 선택해 자율적으로 일정을 짤 수 있고, 교정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다니며 캠퍼스 커플이란 것도 해볼 수 있고, 대학 축제 때는 연예인까지 온다는 말에 대학 생활은 역시 멋진 거구나… 뭐 이런 착각 같은 것을 제대로 했더랍니다. 실상은 학기 내내 밤샘 리포트 작성과 조별 발표, 아르바이트를 뛰느라 꽃 같은 대학 생활 따윈 없었습니다.

 

 

 

   새내기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들은 여기에 없단다라고 말하게 되는 때도 오더란 말이지요. 하지만 졸업을 하고 사회로 진출해 마침내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또 이때만큼 재미있었던 시절은 다시없을 것이란 걸 부쩍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날이 좋아서, 혹은 날이 너무 좋지 않아서 수업이란 걸 가끔 빼먹는 호사도 누려보고, 밤 늦게까지 부어라 마셔라 해도 튼튼한 간 덕분에 다음 날에 또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부어라 마셔라 할 수 있는 젊음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비록 꿈에 그리던 로망 넘치는 캠퍼스 따윈 없지만 그 시절, 가장 되돌아가고 싶은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웹툰 한 편이 있어 평소 찾아가며 재미있게 읽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까 님의 <대학일기>!

 

 

 

 

 

 

페이지 마다 빵빵 터지는 리얼 캠퍼스 일기

 

 

   네이버 웹툰으로 이미 <대학일기>를 접한 분들이라면 자까 님의 분신인 듯한 하얗고 동글동글한 캐릭터에 일단 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특히 이 순둥순둥, 몽글몽글한 귀여움이 현실 그림체로 돌변할 때마다 어찌나 깔깔거리고 웃게 되는지 그야말로 반전 매력이 쩐달까요. 작품을 보며 혼자서 큭큭 대고 웃는 제 모습을 행여 누가 보지 않을까 눈으로 흘깃 둘러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이 작품을 미처 알지 못했던 분들이라 하더라도 각종 SNS에 돌아다니는 짤을 통해 접하신 분들이 상당히 있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대학 생활을 이토록 현실적으로 재미있게 그려낸 작품이 또 있을까 싶어요.

 

 

 

 

 

 

   이렇듯 네이버에서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 <대학일기>가 두 권 분량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1화에서 100화까지 연재된 작품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낸 것인데, 휴대폰 화면을 넘겨가며 읽던 것을 지면으로 만나니 새로운 기분이 들었어요. 웹툰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4컷 만화 부록까지 수록되어 있으니 소장하는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고요.

 

 

 

   대학생의 일상을 담은 내용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이 시기에 흔히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혹은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을 말 그대로 일기처럼 다루고 있어 20대란 시기를 통과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내용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저도 겪었고 또 누군가가 겪고 있을 그런 일들 말이에요. 음… 10대가 읽는다면 20대의 현실을 미리 깨달을 수 있는 팩트 폭격이 될 수 있을까요? 뭔가… 사악한 웃음을 짓게 되는 30대입니다. 하하.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들은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새어나오는 웃음이 민망해지지 않을 만한 장소에서 읽으셔야 한다는 것을 당부 드립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재미있는 컷을 찍어 주변 지인에게 사진 전송을 하는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 감히 자부도 해봅니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명탐정 코난>이 계속 어린 코난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자까 님도 쭉 대학생인 채로 <대학일기>를 그려주심이… 죄송합니다.

 

 

 

(평소에 쓰던 서평글과는 다르게 써봤습니다. 이렇게 써 보는 것도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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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조커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5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이규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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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기업 테러를 두고 펼쳐지는 두뇌 싸움!

일본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인간 심리의 밑바닥을 파헤치는 압도적인 소설!

 

 

 

 

   조커(Joker).

   트럼프 카드 게임에서 사용되는 조커는 일종의 와일드 카드다. 게임 내에서 조커는 다양한 역할을 한다. 때로는 최고위인 비장의 카드가, 때로는 유해한 카드가 되기도 하는 이 양면의 성격 때문에 우리는 조커 패를 손에 쥐게 되는 순간 마음이 동요되는 것을 느낀다. 내 손에 들린 이 조커 패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이에 따라 판이 달라질 수도 있다. 만약 우리의 인생이 이와 같은 게임이라면, 기묘한 반전 혹은 나와 누군가의 인생을 쥐고 흔들 수 있을 만한 이 특수한 카드가 손에 들어오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1조 엔대 대기업의 운명을 쥐고 흔들기 위해 뭉친 '레이디 조커'

 

 

   <레이디 조커 1>은 세 권의 분량에 이르는 시리즈 중 그 첫 번째 책이다. 사상 초유의 대기업 테러를 다룬 이 소설은 일본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인간 심리의 밑바닥을 파헤치는 작가의 치밀하고도 집요한 시선이 압도적인 필력으로 완성된 사회 범죄 미스터리다. 정경 유착 및 소외계층의 차별 등 일본 굴지의 대기업 히노데 맥주와 사회의 각종 부조리한 일면들로부터 희생당한 이들이 한 데 모여 기업 테러를 감행하고,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는 고다 형사의 활약이 예상되는 소설이다.

 

 

 

   일명, 레이디 조커. 이들의 요구 조건은 현금 20억, 인질은 350만 킬로리터의 맥주다. 1조 엔대 대기업을 테러하기 위해 뭉친 다섯 남자는 스스로를 레이디 조커라 부르지만, 정재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이 어마어마한 계획을 실행하기에는 다소 평범해 보인다. 약국을 운영하며 경마장을 찾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모노이, 장애인 딸을 키우는 트럭 운전수 누노카와, 이십 대 중반으로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일명 요짱, 재일조선인으로 신용금고에서 근무하는 고 가쓰미, 경시청의 현역 형사로 있는 한다까지. 성격도, 하는 일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뜻하지 않은 사고나 불운을 덧입고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살아가는 일본의 수많은 가장 혹은 청년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수많은 영화와 다수의 작품에서 보이는 기업 테러 공모자들은 하나같이 특수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엘리트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떠올려보면, 이들의 계획은 무모해보일 정도다. 어째서 이들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이 위험천만한 테러를 감행하게 된 것일까.

 

 

 

   소설의 시작은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히노데 맥주 주식회사 가나가와 공장으로 장문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이를 작성한 오카무라 세이지는 히노데로부터 퇴사를 권고 받은 마흔 명의 직원들 가운데 하나다. 그가 쓴 편지에는 가난한 소작민으로 태어나 입양이 된 후 히노데 맥주에 입사하기까지 오카무라 그 자신의 개인사와 당시 회사 동료였던 노구치 등 피차별 부락민들이 벌인 노동 쟁의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빈궁을 면치 못했던 소시민들의 모습과 신분제도 하에 천민 부락민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들은 일본의 암울한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의 부조리는 현대 사회로 접어들고 후세에까지 이어져 마침내 한 청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불의의 사고를 낳고 만다. 오카무라 세이지의 동생인 모노이는 자신의 손자가 히노데 맥주 회사로부터 아버지가 부락 출신이라는 이유로 시험에 떨어진 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깊은 회의에 빠져든다. 결국 경마장에서의 인연을 계기로 알게 된 네 남자와 합심하여 히노데 맥주와 모순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향해 묵직한 한 방을 내던지기로 결심한다.

 

 

 

"누노카와가 일전에 자기 딸을 두고 조커를 뽑은 격이라더군.

그때 문득 생각했어.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을 조커라고 한다면,

우리야말로 조커라고." / 258p

 

 

 

다들 겁에 질린 개처럼 미친 듯이 짖어대며 물어뜯기 바쁩니다. 허구한 날 일하고 먹고 자는 것밖에 모르는 생활 속에서 굶주린 기억이 골수에 사무치니 천해질 수밖에요. 냉정하게 생각하질 못하니 천할 수밖에. 그렇게 보면 이 나라 전체가 천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도망치면 부모 형제가 따돌림을 당하고 굶어죽을 테니 결국 전장에 나가기는 했지만, 천하다 천하다 해도 가난한 놈이 가난한 나라를 침략하는 것만큼 천한 게 없어요. 그걸 잘 아는 내가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이유로 살육을 저질렀으니, 인간이란 참으로 가련한 존재가 아닙니까. / 26p

 

 

이 나라의 역사를 만들어온 차별이라는 긴 터널의 출구에서, 여전히 일부 남은 장벽을 방패 삼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령 장벽이 철거된다면 그들 중 대부분은 또 터널 밖에 만연한 무지와 무관심을 규탄하며 새로이 장벽을 쌓고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사수하려 들지 않을까? 평등이니 차별이니 하는 것도 이렇게 서로를 보완하며 일부 사람들에게 존재이유를 제공하는 장치에 불과하지 않을까? 뒤집어서 보자면 그런 평등이나 차별과 무관했던 스물두 살의 아들은 그들이 말하는 세계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 63p

 

 

 

 

 

 

   소설은 히노데 맥주 회사를 노리는 범인 집단 '레이디 조커' 외에도 히노데 맥주 회사를 이끌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영진들, 히노데 맥주 회사의 사장인 시로야마 쿄스케가 납치됨으로써 범인 집단이 노리는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하는 고다 형사 외 경시청 형사들, 누구보다도 발 빠르게 사건의 추이를 쫓아나가는 기자진들의 시점을 교차 반복한다. 이로 인해 수많은 정치인과 교류하며 뒤로는 시중은행과 증권사의 금융 자본, 관청, 지하 금융이 한 데 얽혀 부패한 냄새를 풍기는 기업의 생리와 엄격한 상하 관계 속에서 불거지는 경찰 내부 조직의 알력들, 누구보다 먼저 사건을 쫓아가 보도해야 한다는 신문 기자들의 직업 생태계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인 모순과 이해관계들을 진중한 시선으로 읽어내고 다양한 인물의 시점을 치밀하게 교차시키면서 탄탄한 플롯을 완성시킨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게 되는 대목이다.

 

 

 

시로야마 역시 시대가 달라지리라고 예감은 했다. 활황기는 언젠가 천장을 칠 테고, 부동산과 주식은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다. 대량 소비를 즐기는 부자들의 시대가 끝나고 이어서 도래할 시대는 한마디로 '소시민적 결벽'이리라는 것이 시로야마의 예감이었다. 절약, 소형화, 간소화, 개인주의 같은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을 서민의 심정은 물질적 풍요를 포기하고 정신적 충실을 지향하며 사회에 '결벽'을 요구할 것이다. 결벽의 시대에는 정계와 은행, 기업의 체질도 그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기업이 이윤 추구에 앞서 사회적 의무와 윤리를 요구받을 시대는 생각보다 머지 않았다. / 98p

 

 

 

 

 

 

   1권의 초중반부까지는 사건의 발단을 풀어내는 과정으로 인해 속도감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으나 시로야마 사장이 납치된 이후부터는 쫓기듯 빠른 호흡으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만큼 흡인력 작품이라 무려 세 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마저도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뒤늦게야 안 사실이지만 이토록 남성적인 성격의 소설을 쓴 작가가 사실은 여자라는 것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놀라워하지 않을까.

 

 

 

   웬만하면 다음 편의 예고글을 미리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소설은 앞으로의 일을 예측할 수 없어 나도 모르게 그만 읽고 말았다. 그런데 더 모르겠다. 레이디 조커는 과연 이 어마어마한 계획을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고다 형사는 사건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인지, 앞으로 펼쳐질 2권과 3권의 내용이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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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례 시간 - 수업이 모두 끝난 오후, 삶을 위한 진짜 수업
김권섭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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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국어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격려와 응원의 시간!

일상과 고전 속에 담긴 삶의 지혜를 들려주는 선생님의 진짜 수업! 

 

 

 

   수업을 모두 파하고 담임선생님의 종례 시간만을 앞두고 있을 때면 교실은 늘 들썩들썩한다. 그 시간이 다가오면 아이들의 마음은 미묘하게 술렁인다. 이때의 마음을 아는 선생님은 우스갯소리로 "공부해. 다른 길로 새지 말고." 하고 단속하며 간단히 끝내기도 하고, 어떤 선생님은 훈화 말씀을 장황하게 늘어놓아 애꿎은 시간을 축 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조례 혹은 종례 시간에는 대부분 그날의 전달 사항이나 아이들을 단속하는 정도에 그치는 말씀이 다인지라 지금껏 이 시간을 특별하게 여겨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서울 중앙여자고등학교의 현직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며 <종례 시간>의 저자 김권섭 선생님은 이러한 조례와 종례 시간을 누구보다 특별하게 여긴 듯하다. 그는 이 시간을 통해 교사와 학생이 서로 존중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익힐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 특히 종례는 학생들이 더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교사의 정성을 담아 마련한 '언어의 잔칫상'이라 표현한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밥상머리 교육'시간이자, 서너 시간의 수업과 갖가지 잡무로 지친 심신을 일으켜 학생들 마음에 다가가는 때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담임선생님과 마음을 나누고 눈빛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진정한 시간은 이때뿐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우리는 그 의미를 곧잘 잊곤 했던 것 같다.

 

 

 

   이렇듯 <종례 시간>은 각종 동서양 고전과 사회 문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교훈들을 아이들에게 전해준 현식 교사의 따뜻한 가르침이 수록된 책이다. 배움은 교과서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려는 선생님만의 '진짜 수업'을 글로 모은 것이다.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에만 매달려 있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교훈은 때로 지루할 것만 같지만 과거의 인물을 통해 오늘을 살 지혜를 얻고, 다양한 고전과 문학 작품 속에서 성찰의 시간을 전하려는 선생님의 수고로움을 통해 아이들은 다정한 격려와 의지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따뜻한 당부의 말씀

 

 

   책에는 일상의 사소한 소품과 현상들, 행위 등을 통찰함으로써 제자들에게 삶의 교훈과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들을 전한 글들이 다수 눈에 띈다. '손과 장갑' 편에서는 손이 있어야 장갑을 사듯이 내가 있어야 내게 맞는 삶을 꿈꿀 수 있음을 전하고, '코골이' 편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단점을 갖고 살아가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따라 삶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음을 일러준다. '압정' 편에서는 압정이 손으로 누르는 넓은 부분과 벽에 고착되는 못으로 이뤄진 단순한 기능을 가졌지만 어느 한 부분이 없으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듯 학생들이 못에 해당하는 부분만 중요하게 여기고 넓은 부분은 무시하는, 이른바 자기가 관심 있는 영역은 최고라고 중시하지만 다른 분야는 얕보는 갇힌 사고를 염려한다. 이처럼 소소한 일상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저자의 생생한 교훈은 언젠가 나의 아이에게도 들려줄 만한 좋은 예인 것 같아 자주 들춰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학생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장점은 귀울림과 같아서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그것만이 우리의 장점이라고 말이에요. 성적이 뒤처졌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진 학생이 있다면 자기 장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친구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엄마나 아빠도 알아주지 않는 장점이 많을 거예요. 자기가 그렇게 장점이 많은 사람임을 확인한다면 성적이 다소 나쁘다고 해서 자기를 업신여길 이유가 없다는 걸 인식하게 될 거예요. 여러분은 누구나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 20p

 

 

청(聽)만으로 듣기가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듣기는 상대방을 존경할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완전한 듣기는 말하는 사람이 나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왔으며 그래서 그의 말이 내게 꼭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듣는 행위입니다. 이를 가리켜 경청(敬聽)이라고 합니다. 경청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는다는 뜻입니다. (…) 자신을 바꾸고 싶은가요? 단점을 고치고 싶은가요? 경청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 34p

 

 

 

 

 

 

   국어 선생님답게 우리말이나 한자의 뜻을 풀이해 옛사람들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는 글들 또한 인상 깊다. '다시 살아보기'편에서는 적을 소(少)와 눈 목(目)이 합해진 글자, 살필 성(省)을 살펴본다. 이 글자는 눈을 작게 뜬 모습을 그린 것인데, 우리가 흔히 멀리 바라볼 때는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 보려면 눈을 작게 뜨듯 성(省)은 자기와 아주 가까이 있는 대상을 바라보는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는 바로 자기이며, 반성이라는 것은 타인을 향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향하고 있음을 상기하고 항상 지나간 시간을 낭비하여 쓰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기를 권한다.

 

 

 

   옛 선조들이 날마다 하는 일을 통해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단정히 붙들 것을 조언하기도 한다. 바로 비녀 꽂기다. 계집 여(女)에 아이에게 젖을 먹인다는 의미를 더한 것이 어미 모(母)인데, 이 글자에 비녀 꽂은 모습을 보탠 것이 늘 매(每)다. 이 글자는 비녀 꽂기가 늘 하는 행위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남성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팔을 벌리고 선 남성을 나타내는 큰 대(大)에 비녀를 꽂은 모습을 그린 글자가 지아비 부(夫)로, 여성이든 남성이든 비녀를 꽂은 뒤에야 비로소 방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제나를 의미하는 글자(每)에 마음 심(心)을 보탠 것이 회(悔)인데, 이 글자는 비녀로 머리를 묶듯이 마음을 붙들어 매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담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크게 뉘우칠 일이 생기기 때문에 이 글자(悔)를 뉘우칠 회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듯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면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 한다. 날마다 비녀를 꽂아 머리를 단정하게 하듯이 마음에 비녀를 꽂아야 한다는 옛 선조들의 가르침은 꼭 새겨둘 일인 듯하다.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남성 중심 사회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남성을 여성보다 우선시하는 사고가 확산되었습니다. 'man'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일차적으로 '남성'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의미로 '사람들, 인류'라는 뜻풀이가 나옵니다. 남성만으로 인류 전체를 대신하는 게 온당할까요? 어느 국어학자는 다른 사람에게 빌붙어 살다는 뜻을 가진 '며늘'에 사람을 나타내는 '이'가 결합하여 '며느리'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 자칫하면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또한 편협하고 치우친 기준을 진리라고 믿기 쉽습니다. 비유하자면 자기는 맑은 하늘을 보았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시야를 가리는 먹구름을 본 것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 66p

 

 

 

"현대인들은 자기가 자기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믿지 않는 것 같아요." - 르카르 / 176p

 

 

 

   <탈무드>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고 한다.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은 망가진 도자기를 손가락으로 두드려 시험해보지 않는다. 그러나 좋은 도자기를 만들었을 경우 손가락으로 두드려 시험해본다 이 때문에 하느님은 올바른 사람을 시험한다'는 말이다. 하느님은 합당한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또 시험을 하려 든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해야 할 일이 차츰 많아지고, 그것이 점점 버거워지면서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인가 하고 괴로워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외부에 탓을 돌리거나 술이나 다른 무언가에 의지함으로써 잊으려하기보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시험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앞으로 사회에 나가 온갖 시험에 맞서게 될 제자들에게 사람은 시련을 넘어서 능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함으로써 자기 완성에 이른다는 선생님의 이러한 말씀이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삶은 자신에게 덮쳐 오는 고통이나 충격을 극복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 충격과 고통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큰 인물로 성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는 시련을 넘어서면서 능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함으로써 자기 완성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만이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해집니다. / 214p

 

 

 

 

 

 

   <종례 시간>은 그 근본이 제자들에게 전하는 선생님의 당부이자 격려의 메시지이기는 하나, 사회의 큰 어른 중 한 명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좋은 말씀이 되는 책이라 생각된다. 고단한 하루를 내려놓고 싶을 때 이 책의 어느 페이지도 상관없으니 한 번씩 들춰서 자신의 상처를 쓰다듬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특히 공부에 지치고 진로에 고민하고 있을 자녀들이 있는 부모라면 이 책을 꼭 선물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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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오늘의 나로 충분합니다
백두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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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모든 서튼 어른들을 위한 공감 에세이!

어느새 어른이 된 우리의 버거운 일상을 위로하는 소소한 이야기들! 

 

 

 

   어느새, 벌써, 내 나이가 서른 중반이다. '고단하다', '팍팍하다'로 채우는 서른의 수식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을 만큼 내 마음 같이 흘러가지 않는 세상살이에 늘 어지럼증을 느낀다. 돈을 벌고,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면 뭔가 그럴 듯한 미래를 꾸려나가는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저 오늘 하루는 누군가가 내뱉은 한 마디에 상처받지 않기를, 일상이 뒤틀리는 변화가 아닌 예측 가능한 안정과 평안으로 채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러다보니 언제부턴가 하루하루를 바삐 움직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지고,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고 그래서 움츠러드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늘 문턱에서 주저하는 나, 완벽해 보이는 타인의 삶 앞에서 항상 작아 보이는 나, 계속 이렇게 지내도 괜찮은 걸까.

 

 

 

정답이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청춘들을 위해

 

 

   <그러니까 오늘의 나로 충분합니다>는 정답 없는 현실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서툰 어른들을 위로하는 그림에세이다. 그녀의 책에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다가 어느새 어른이 되고만 우리들의 이야기,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어려운 사랑에 관한 이야기, 잘 나가는 남자 연예인에게 푹 빠져 내 안에서 소녀의 순수한 열정과 어른의 냉철한 이성이 충돌하는 경험들, 이제는 엄마의 삶과 어른의 삶을 조금씩 이해해가는 과정들이 소박하게 담겨있다. 때로는 피식피식 웃음도 나고, 때로는 내 이야기 같아서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하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수식을 배제한 일상처럼 섬세하고 사려 깊은 그녀의 그림으로 한층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다양한 인문학 강의들을 듣고 있으면 그 순간에는 나의 고민들이 더 이상 고민이 아니고,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책을 덮고 강의가 끝나면 시궁창 같은 사회와 현실은 여전하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일까, '내 상황이 더러운 시궁창 똥물 같은데, 여기서 어떻게 마음을 먹으라는 거야!'라는 이 두 줄의 글에 덜컥 마음이 사로잡힌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뭐든 잘 할 수 있고,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4살이 된 나의 아들에게 '조금만 더 크면 너도 할 수 있어.', '엄마처럼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거야' 라는 말을 곧잘 하곤 하는데, 정작 어른이 되어서도 할 수 없는 것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지 막막할 때가 있다. 아이에게 '어른이라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건 어쩐지 비겁한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때 나는 연애소설 쓰는 것을 좋아했다. 누군가와의 우연한 만남이 운명이 되고, 온갖 방해와 위기를 겪은 뒤에 맺어진 결실 즉, 결혼에 이르면 그게 해피엔딩인 줄로만 알았던 순수했던 시절. 결혼만 하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모두 완벽해지는 줄로만 알았는데 오히려 결혼한 후가 더 어렵기만 하다. 말하지 않아도 척하고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한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당신이란 남자의 여자로만 바라봐줬음 하는데, 오늘도 온몸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음에도 이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흑… 흑….

 

 

 

 

 

 

   심장이 점점 돌로 변해가는 것 같다. 아이를 낳고 온통 아이에게만 매달려 살고 있는 나는 언제부턴가 설렘이라는 감정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프로듀스 101 시즌 2'를 보게 되면서 갑자기 덕통사고를 당한 저자처럼 나 역시 이 에너지가 넘치는 소년들에게 푹 빠져버렸다. 차마 남편 앞에서 대놓고 좋아할 수가 없어 몰래 동영상을 찾아보고 앨범이 나오면 무한반복으로 음악을 찾아 들었다. H.O.T가 내 소녀 시절의 전부였던 그 때 만큼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바라는 것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달까. 그래서 '부끄러워하지 말기! 후회 말고 오늘을 충실히! 충실히 덕질하기!' 라고 외치던 저자의 글에 '그래, 또 언제 이렇게 뭔가에 흠뻑 빠져보겠어. 아낌없이 좋아하련다!' 하고 다짐해본다. 남편은 눈을 흘기겠지만.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모든 대화의 주제가 육아로 통한다. 또 아이 이야기냐고 할 법 하지만 어쩔 수 있는가. 현재 내 삶은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친구들과 만나 육아의 고충을 털어놓다보면 '다 그래. 우리 애는 안 그런 줄 알어.' 하고 서로를 위로하지만 돌아서면 또 이내 '나 정말 엄마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한다. 나도 엄마는 처음인데, 잘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내가 던진 모난 말 한 마디에 내가 더 놀라 상처를 받고 아이를 끌어안고 만다. 엄마도 나를 키우며 숱한 불안과 맞섰겠지. 그럼에도 한결같이 화 한번 내지 않고 늘 괜찮다고 말해준 엄마는 내 앞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본인 스스로 얼마나 마음을 다독였을지 이젠 짐작이 된다.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의 삶이 유독 눈에 밟히는 요즘이다.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매슈 아널드는 이런 말을 담겼다고 한다. “모든 미완성을 괴롭게 여기지 마라. 미완성에서 완성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이 일부러 인간에게 수많은 미완성을 내려주신 것이다.”라고. 덕분에 삶의 소소한 에피소드 속에서 완벽한 어른은 없다고, 싫은 건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저자의 말들 역시 조금은 위안이 된다. 한 발짝이라도 더 내디뎌보려고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그러니까 오늘의 나로 충분하다’는 이 말이 의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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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교토
주아현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달, 살아보는 여행을 택한 여행자의 소소한 일기!

삶의 잔잔한 잔상이 머물러 있는 교토의 골목에서 일상 같은 여행을 꿈꾸다! 

 

 

 

   느리게 걷고,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어도 괜찮고, 일주일 전에 들렀던 식당을 다시 한번 불쑥 찾아가볼 수 있는 여행이란 건 참 특별한 일인 것 같다. 비록 누구나 다 아는 관광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광경에 숨 막힐 것 같은 이채로운 체험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잠깐의 여행자가 아닌 '살아보는' 여행을 택한 <하루하루 교토>의 저자 주아현은 부러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일상 같은 여행이 하고 싶어 교토를 찾았다.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중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를 가졌다고 믿는다'는 대사처럼, 한가로운 일상이 묻어난 골목에서, 병아리처럼 줄을 지어 걸어가던 귀여운 유치원생들과 따뜻한 미소로 아이들을 보듬던 선생님에게서, 남편이 커피를 내리고 아내가 케이크와 타르트를 굽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교토의 언어들을, 그 소소함을 사랑했다.

 

 

 

 

 

 

사소해서 더욱 아름다운, 느리지만 행복한 여행

 

 

   <하루하루 교토>는 저자가 한 달 동안 교토에 머무르면서 기록한 소소한 일기와 사진들을 담은 여행에세이다. 교토는 일본의 옛 수도이자 예스러운 분위기와 현대의 모습이 조화롭게 공존하여 가장 '일본스러운' 분위기를 담고 있는 도시라 알려진 바로 그곳이다. 저자는 처음 오사카 여행 차 교토를 방문했을 때, 버스를 타고 기요미즈데라로 향하는 동안 스쳐 지나가며 보았던 동네의 풍경 때문에 다시 꼭 이곳을 찾으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해 질 녘 가와라마치 거리를 걸으며 바라보았던 가모가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한 달간 교토에서 살아보기'를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거나 하루하루를 완벽하게 채워나가지도 않는다. 미리 세워놓은 위시리스트라는 것도 대단히 특별할 게 없다. 기껏해야 '마음에 드는 카페나 장소는 미련이 없을 만큼 몇 번이나 가기, 빈티지 숍에서 예쁜 원피스를 사서 하루 종일 입고 다니기, 자전거 바구니에 오니기리를 담고 산책하다가 아무 데서나 털썩 앉아 먹기, <시간을 달리는 소녀> 속 마코토가 된 듯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전철 타고 아무 곳이나 가서 즉흥 여행하기' 등이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런데 얼마 뒤에 다시 곰곰이 떠올려보니 3박 4일, 4박 5일 일정으로 여행할 때는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이란 생각에, 오히려 이 소소한 것들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게으름을 피워도 되는 여행, 어울리는 노래 몇 곡을 듣다가 느긋하게 나갈 준비를 해도 되는 여행, 오늘은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어느 식당에 들어갔는데 동네 사람들만 아는 맛집이었다면 그 우연함이 예상 외의 기쁨이 되어 오히려 더 기억에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여행 그리고 낯선 땅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 게다가 교토라는 조미료가 뿌려져 완성된 이 모든 리스트는 내게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 쉬어 가는 여행에서 내게는 나름의 할 일이기도 했고, 매일 밤마다 오늘 이룬 것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마치 학교 다닐 적 스터디 플래너에 적어둔 오늘의 공부를 끝냈을 때 뿌듯해하며 체크하던 어린 날의 나처럼. / 114p

 

 

 

 

 

 

삶의 잔잔한 잔상이 주는 여운, 교토의 골목

 

 

   실제로 <하루하루 교토>에는 우연함이 가져다주는 여행의 행복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유독 날씨가 더웠던 날, 그녀는 빙수를 먹으러 나섰다가 조금 더 걸어보자는 마음으로 버스 타기를 포기하고 낯선 길로 접어들었다가 그림 같은 풍경에 사로잡힌다. 푸른 하늘과 잘 어울리는 초록색 나뭇잎들, 그리고 분홍색 벚꽃, 보석을 물에 풀어 놓은 듯 반짝거리며 흐르는 강물. 그곳은 기야마치, 버스를 타고 이동했으면 절대 보지 못했을 아름다운 거리다.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 같은 곳으로 외국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카페 '앤 셜리'의 방문도 의외의 행운이었다. 휴무일이 잦고, 따로 휴무일을 확인할 수 있는 매체마저도 없는 곳이라 혹시나 이곳을 찾아갔을 때 문이 열려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행운아라고. 그녀는 그곳에서 잠시 어느 만화 속으로 들어간 기분을 만끽하며 주인분이 직접 우려 주신 밀크티 한 잔으로 특별한 손님이 되는 기분을 느낀다.

 

 

 

   <하루하루 교토> 속에는 '앤 셜리'처럼 그녀의 애정이 듬뿍 담긴 공간들이 자주 등장한다. 노조미라는 이름을 가진 바리스타의 사랑스러운 라테 아트를 즐길 수 있는 '퍼센트 아라비카', 남편과 아내가 함께 운영하는 카페여서 그런지 더욱 포근하게 느껴지는 '와이프 앤 허즈번드', 교토에 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든 물어봐도 좋다는 할아버지의 'Ask me!', 교토에 온 기분을 실감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브랑슈' 등이 그러하다. 그녀의 사진 속에 담긴 식당과 카페의 풍경들은 오직 교토 만의, 교토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어 시선을 끈다. 어쩌면 이것이 유독 그녀의 에세이에 식당이나 카페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아닐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소중한 기억을 선물하는 공간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그곳을 찾게 되는 법이니까.

 

 

 

교토에 있는 가게들은 맛이나 인테리어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있는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가게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카페는 교토에 자리하고 있음을 카페 그 자체가 알려준다고 해야 할까. 교토에 있는 공간들은 참으로 교토와 잘 어울린다. 그 공간 속에서 느꼈던 감정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단순히 머문다거나 먹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소중한 기억을 선물해준다. / 48p

 

 

 

   매일의 여행이 늘 즐거울 수만은 없을 것이다. 홀로 하는 여행에서 때때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찾아와 그늘지게 만드는 나날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도 그녀를 위로한 것은 '공간'이었다.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위치하여 자주 찾았던 카페 '키토네'다. 오늘도 여전히 조용하고 평화로운 그곳에서 그녀는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생각을 정리했다. 아이스커피 한 잔과 치즈케이크 한 조각, 그리고 패니욜로의 기타 소리와 가게 안에 울리는 작은 소음들이 점차 그녀에게 따뜻하고 편안한 기운을 선물해주었다. 누군가의 말로도, 여행 자체가 주는 행복도,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던 그녀에게 이 좋은 공간이 주는 힘은 그렇게 큰 것이었다. 그렇게 다정한 공간이 주는 위로에 기대어 보고, 다시 평안을 얻어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얻는 것이 또한 여행의 힘이기도 하니 말이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에게 한 번 더 귀를 기울여주고 손길을 뻗어 다시금 생명력을 불어주는 마법 같은 곳. 유행하는 것, 세련된 것만 따라가기 급급한 요즘의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키토네나 교토 대부분의 카페들은 세월이 느껴지는 오래된 옛것, 촌스럽지만 아날로그하고 투박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지켜내고 있었다. 이들이 만든 소중한 공간에서 따뜻한 기억과 많은 영감, 좋은 기운까지 얻어 가자니 커피 한 잔 값만 지불한 게 미안할 정도였다. 나는 이 공간에 머물 때마다, 나중에 나이가 좀 들면 키토네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몇 번이나 생각하곤 했다. / 139p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던 날, 헤이안 신궁 앞에 있는 츠타야 서점을 찾아 책을 읽으며 보낸 그녀의 시간이 유독 인상에 남는다. 시간이 금인 여행객이 타지에서 하루를 서점에 몽땅 서버린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살아보는' 여행이었기에 가능한 일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루하루 교토>를 읽으며 낯선 곳에서 마치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처럼 일상을 누리는 여행을 나도 한번쯤은 해보고 싶어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들려오는 강가를 사랑한다, 동네를 걷다가 잠시 앉아서 쉬고 있으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작은 놀이터를 사랑한다'는 그녀의 고백처럼, 비록 대단한 것이 없을지라도 마음의 평안과 여유로움을 주는 그런 바로 그런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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