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숍 보이즈
다케요시 유스케 지음, 최윤영 옮김 / 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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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지만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사람 냄새가 나는 펫숍 이야기!

인간과 반려동물의 공생을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담아낸 소설!

 

 

 

   며칠 전에 충격적인 기사 하나를 보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반려동물을 관리하고 판매하는 펫숍에서 무려 79마리의 개가 몰살한 사건이 발각된 것이다. 발견 당시에 살아있던 개들마저 추가로 죽어 그 수가 100마리에 이른다하니 경악할 만한 일이다. 깜찍하고 귀여운 강아지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펫숍 그 이면에 이런 잔인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공연히 선의와 반려동물을 향한 따뜻한 애정으로 펫숍을 운영하고 있는 관리자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시선이 모아질까 우려되는 마음도 없지 않다. 한편으로는 반려동물을 사고파는 행위 자체가 그리 썩 달가운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는 것을 보면 결국 펫숍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이 사그라 들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다.

 

 

 

   이러한 시점에서 펫숍을 배경으로 한 소설책 한 권이 출간되어 이목을 끈다. 일본의 아바라키 대형 홈센터 내에 자리한 유명 펫숍의 직원과 이곳을 드나드는 손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사건을 다룬 소설, <펫숍 보이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반려동물 사이에 벌어지는 각종 의문의 사건들을 코지 미스터리 형식을 통해 유쾌하게 풀어나감과 동시에 펫숍을 향한 세간의 인식을 직시하여 이를 따뜻하게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을 덮을 때쯤에는 보송보송한 강아지의 털을 쓰다듬을 때 주고받을 수 있는 서로의 다정함과 온기 같은 것이 마음속에 머무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곳은 펫숍, 한시도 조용할 틈 없는 우리의 직장으로 초대합니다

 

 

   대형 홈센터 내에 자리한 유어셀프 가미조 지점은 포유류와 열대어, 곤충에서 파충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을 취급하고 있는 펫숍이다. 매장의 모든 일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가시와기 주임과 사무직 정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여직원 마키타, 카운터에서 손님과 친근감 있는 대화를 곧잘 나누는 아카이, 긴 금발 머리에 수의사를 목표로 하다 중퇴한 엄청난 동물 애호가이자 동물박사인 아르바이트생 고타, 평범한 대학생으로 고타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가쿠토가 이곳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홈센터에서 근무하는 엄마가 일이 끝나기 전까지 학교 수업이 끝나면 매일같이 이곳을 찾아와 반려동물과 교감하기를 좋아하는 꼬마 유리, 직원들에게 늘 잔소리를 하는 깐깐한 영감이지만 말장난하기를 좋아하고 특유의 연륜으로 매장 사정을 누구보다도 훤히 꿰뚫고 있는 호프만 씨, 반려동물들의 건강을 체크하는 따뜻한 심성의 수의사 세가와 아야메 선생님, 항상 고양이 통조림을 사가는 브라운 씨 등 저마다 사연을 지닌 채 이곳 펫숍을 드나드는 주요 단골손님들이 등장한다.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꼬마 유리와 이름이 똑같은 잉꼬유리가 "유리, 주거"하고 섬뜩한 말을 내뱉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가쿠토는 이 일로 인해 크게 상심을 한 꼬마 유리를 겨우 달래기는 했지만, 고타와 가쿠토는 누가 잉꼬유리에게 그토록 험악한 말을 가르쳐 유리에게 상처를 주려 한 것인지 그 진상을 조사하기로 한다. 때마침 유리의 엄마가 가쿠토에게 최근에 자신이 스토킹을 당하고 있으며 메일을 통해 자신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받기까지 했다는 말을 듣고는 같은 시기에 일어난 이 두 가지 사건이 전혀 무관해보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더욱이 동물에게 이토록 잔인한 말을 가르쳐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이를 용서할 수 없다. 이렇듯 소설은 사건을 해결하고 상처받은 유리에게 다시 웃음을 주고픈 펫숍 직원들의 노력을 그려나감으로써 독자들에게 사건을 추리하는 재미는 물론, 동물과 인간의 교감 속에서 저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한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새는 마치 마음이 서로 통한 것처럼 보였다.

펫숍에서 일하며 정말로 큰 보람을 느낄 때는 바로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인연이 탄생하는 순간. / 66p

 

 

 



 

 

 

   한편 바빠진 펫숍에 두 달간 회계 담당 직원으로 파견 나온 시카다 마코가 등장하는데, 그녀는 펫숍 직원들에게 냉랭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일관한다. 알고 보니 그녀는 펫숍을 아주 싫어한다고. 가시와기와 고타, 가쿠토는 펫숍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마저 거부감을 느끼는 그녀에게 자신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반려동물들을 대하며 어떠한 사명감을 가지고 펫숍을 운영하고 고객을 응대하는지 알려주려 애쓴다. 이후에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 속에서도 펫숍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펫숍이란 무엇이며, 세상의 비난과 편견 속에서 펫숍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의의를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노력은 계속 이어진다. 무엇보다 인간과 동물은 공생할 수밖에 없는 관계임을 전하고자 하는 저자의 메시지가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시카다 씨, 우리는 세가와 선생님처럼 동물의 목숨을 구할 수는 없어. 하지만 똑같이 프로 정신을 지니고 일해. 개체를 입양 보낼 때마다 부디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강하게 염원한다고. 그런 과정에서 손님에게 시달려도 좋으니까 기를 때 주의할 점에 대해 집요하게 전달해. 말하고 보니 우리와 펫숍의 동물들을 공생 관계네." / 115p

 

 

"펫숍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을 위한 곳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믿고 싶습니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반려동물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마다 않겠다는 인간이라는 동물을요. 펫숍은 친구 같은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며 행복을 느끼는, 그런 인간이라는 동물을 돕기 위한 장소입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동물들이 정말로 행복하다고 느끼기를, 끊임없이 기원하는 곳입니다." / 394p 

 

 

 



 

 

 

   이처럼 <펫숍 보이즈>는 코지 미스터리 형식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쫓아감으로써 읽는 재미를, 인간과 동물의 공생 관계를 이해하고 편견을 풀어가며 따뜻한 감동을 전한다. 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만을 전전하며 생활하는 '프리터', 이렇다 할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취준생들, 갖가지 오해로 인해 등을 돌려버린 연인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고민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청춘의 뜨거운 성장을 응원한다.

 

 

 

단지 세상을 살다보면 지나가는 비처럼 갑작스럽게 악의가 덮치는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럴 땐 그 누구도 비옷이나 우산을 갖고 있지 않아서, 악의가 사라지고 나서도 흠뻑 젖은 몸은 녹초가 되어 까딱 잘못하면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그게 꽤 오래가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고타에게는 시로타로가 우산이었을지도 몰랐다. 돌아오면 함께 놀자고 희망을 주고 웃는 얼굴을 가르쳐주었으니까. / 303p

 

 

"혼자서 끙끙 앓지 말게나. 실패를 감추는 것은 큰 잘못이지만 아직 만회할 수 있을 걸세. 도망치는 건 어떤 동물이라도 할 수 있지만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은……"

호프만 씨는 구멍이라도 뚫을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인간뿐이잖나." / 370p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재고해볼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이 있지만, 마침 우리 가까이에 있는 펫숍 문화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소설이어서 남다르게 읽힌 듯하다. 거창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우리의 이웃 같은 이 청년들의 따뜻한 성장 스토리만으로도 지친 일상에 작은 위로 하나 얻은 기분이다. 이제 곧 따스한 봄날이 찾아오려나, 이 소설로 인해 한층 봄이 가까이 다가온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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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조건 - 절망을 이기는 철학 - 제자백가
이주희 지음, EBS MEDIA / Mid(엠아이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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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우울하고 절망적인 삶을 나는 왜 살아내야 하는가!

혼돈과 좌절의 시대를 이겨내기 위한 생존의 철학은 과연 무엇인가!

 

 

 

 

   춘추전국시대. 맹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시대였고 고염무의 표현을 따르자면 "망국의 시대가 아니라 망천하의 시대였다"고 할 만큼 천하가 절망감에 시달리던 때였다고 한다. 기존의 가치 체계와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고 노골적인 폭력에 대한 숭상, 완력에 대한 집착으로 힘과 권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였으니 그야 말로 난세의 시대라 할 만하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 않다. '헬조선', '우울증', '자살'과 같은 절망을 가리키는 수사들이 도처에 넘쳐나고 시선을 넓히면 중동에서는 끊이지 않는 내전으로 인해 연일 사망자와 난민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세월이 흐르고 흘러 21세기에 이르렀건만 춘추전국시대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인간이란 참으로 놀라운 존재여서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길이 없을 만큼 춘추전국시대가 절망으로 가득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이들이 있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지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접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공자와 묵자, 장자와 한비자 같은 인류 역사상 가장 다채롭고 풍부한 사상과 철학가들이 꽃피어난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백가쟁명이라는 글자 그대로 엄청난 숫자의 사상가들이 등장해 그야 말로 유래 없는 '생각'의 폭발이 일어났고,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사상의 원초적인 형태들이 바로 이 시기에 등장했던 것이다. 대체 이들을 이끈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삶이 고통스럽고 답답하여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길이 없을 때, 누구나 삶의 근원적인 곳에까지 질문이 이르게 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이토록 우울하고 절망적인 삶을 나는 왜 살아내야만 하는가? 또 살아야만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들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였기에 '절망을 이기는 철학'의 탄생 또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존의 조건>은 짐승의 시대와 다름없던 시대를 용기 있게 돌파해나간 제자백가의 생존철학을 탐미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절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해답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사상 최악의 절망적인 난세를 헤쳐나간 이들의 용기와 자긍심이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을 믿을 수 없을 때_ 유가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을 지날 때, 한 여인이 무덤 앞에서 울고 있자 그 연유를 알아보게 했다. 여인의 사연은 이러했다. 시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아들과 함께 산 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가족이 차례로 호랑이에게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공자의 제자 자로는 문득 호랑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진작 도망을 가는 게 옳지 않았느냐고 반문을 하였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여기엔 가혹하고 악독한 정부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여 이에 공자가 탄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움을 시사 하는 내용이다.

 

 

 

   공자는 난세가 살기 어려운 것은 인간이 인간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믿음과 신뢰가 무너진 사회 시스템 속에서는 분쟁과 갈등, 모순이 폭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가치와 신념이 모두 무너진 시대에서 과연 무엇으로 하여금 이를 회복할 수 있을까? 이에 공자는 세상을 등지고서는 시대가 당면한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고 비록 실망스럽고 한심해 보일지라도 바로 지금 이곳, 인간들 속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인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첫 번째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는 곧 모성애와 효를 근간으로 한다.

 

 

 

사랑받아야만 사랑하는 법도 배울 수 있다. 가족 안에서 사랑을 배운다면 이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 인류 공동체에 대해서도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비유하자면 호수에 떨어진 물방울이 동심원을 그리면서 퍼져 나가는 것과 같다. 인간에 대한 사랑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가족 안에서의 사랑하는 마음만은 반드시 지켜주고 싶은 것이 공자의 본뜻이었다. / 54p

 

 

 

   또한 강조한 것이 있으니, 바로 공자가 평생을 지켜야 할 삶의 원칙으로 삼은 ‘서(恕)’이다. 현대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서는 '공감'이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상황에 대해서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맹자가 말하는 '측은지심'이라는 인간의 본능과 맥을 같이 한다. 공자는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생존의 진정한 조건은 백성의 신뢰라고 보았다. 신뢰가 무너지면 어떤 나라도 버틸 수 없다. 신뢰란 상대방이 나를 염려하고 있다는 믿음이며, 이는 오직 공감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여겼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도 상대방의 관점에서 상황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기에 공자와 맹자의 사상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어떻게 하면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공자와 맹자가 일러준 조언들도 생각해보면 '자기 자신을 믿어도 되는가?'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가족에 대한 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타인에게 차마 잔인해지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생생하게 경험함으로써 인간이 가진 가능성을 믿도록 한 것이다. / 102p

 

 

 

 

 

 

정의 없는 세상에 분노할 때_ 묵가

 

 

  공자나 맹자, 장자 등에 비하면 묵자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책에서 묵자를 설명하는 대목에 따르면, 그는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독특한 사상가'라고 한다. 때문에 여러 생존 철학 중 묵자의 사상을 설명하는 제 2장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에 남는다. 그도 그럴 것이 묵가가 대부분이 하층 계급인 민중 속에서 일어난 유파인 만큼 묵자는 민중의 편에 선, 스스로가 민중인 자의 철학을 실현한 까닭이다. 그들은 농민이나 사회 최하층에 위치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여 민중의 삶을 우선적으로 살펴야 함을 강력하게 호소했다. 시국이 어지럽고 백성들이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침략 전쟁, 불의한 전쟁 때문이라는 사실에 동시대의 그 어떤 사상가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전쟁을 반대하고 절실히 평화를 추구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겸애'를 강조하며, 사랑은 단지 감정이나 생각에 그쳐서는 안 되고 반드시 행동을 통해 상대방에게 이익을 주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말 배고픈 사람에게 빨리 뛰어가서 도와주는 것이 참된 사랑이지, 말로만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측은하게 여긴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특히 모든 사랑은 평등하며 세상의 이익을 자신의 본분으로 삼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묵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든 많든 공익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의지를 가져야 하고 또한 모두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 효과가 미비해 이 세상의 어려운 판국을 더 낫게 만들 정도는 안 될지라도 할 수 있는 한 온 힘을 다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묵자가 말하는 '겸상애' 혹은 줄여서 '겸애'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을 뜻한다. 굉장히 광범위하고 넓은 사랑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Universal Love'라고 번역한다. 문자 그대로 세상의 모든 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든 미래의 사람이든 과거의 사람이든 상관없이, 가족이든 남이든 차별 없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일괄적이며 차별 없는 사랑이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이다. / 148p

 

 

'나는 내 할 일만 잘하면 돼! 내가 어떻게 이 사회를 돌볼 수 있겠어? 이 세상은 원래 이렇게 어지러운걸,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 소용없다고.' 이게 바로 무마자가 말한 것처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을 테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그런데 묵자는 다르다. 비록 내가 뭔가를 했을 때 그 효과가 물을 들고 왔으나 불을 끄는 데에는 못 미치는 것처럼, 이 세상의 어려운 판국을 더 낫게 만들 정도는 안 될지라도 할 수 있는 한 온 힘을 다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 173p

 

 

 

불안을 견딜 수 없을 때_ 도가

 

 

   장자는 난세의 시대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버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사상가이다. 물질을 위해서 삶을 희생시키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돈과 명예, 올바른 신념에 대한 집착 그 어떠한 외부적 가치도 나의 삶 그 자체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장자는 공자와 맹자와 같은 어떤 숭고한 이상 같은 것을 비판한다. 오직 '자신의 기준에 따라 살아라'고 말한다. 남이 부여한 기준은 그것이 고상한 도덕이나 윤리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그저 각각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기준일 뿐이라고 말이다. 무리지어서도 남에게 기대지 않고, 홀로 서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진짜 지식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 그의 사상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존 철학이라 여겨지는 대목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쉴 틈 없이 뛰어다니는 근본적인 이유는 쓸모없어질까 봐 겁을 먹기 때문이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장자는 세속적인 가치에 집착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만약 속세의 고난과 핍박, 타인의 질투 공격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그냥 그 상황을 빠져나오면 된다. 그 속에서 무서워하고 또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면 사실 불행을 심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 차라리 완전히 빠져나오는 것이 더 낫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고 걷지 않으면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 218p

 

 

장자는 모든 것이 이쪽과 저쪽, 옳음과 그름, 그리고 진실과 거짓으로 나뉜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찬반 양쪽으로 나뉠 때도 있지만 대개 완전한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자가 이야기하는 제물은 모든 여러 가지 다른 가능성을 고르게 한다는 뜻이다. 그 어떤 것도 궁극적인 진실을 대변하지 않는다. 스펙트럼의 어딘가에 진실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233p

 

 

 

 

 

 

간교한 기득권에 맞설 때_ 법가

 

 

   법가의 사상은 묵가의 사상만큼이나 재미있다. 법가의 대표 사상가인 한비자의 특징은 현실주의다. 그는 인간의 욕망을 긍정한다. 욕망은 개선해서 바꿔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욕망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비자의 현실주의는 현실을 회피하거나 현실에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가장 적극적으로 맞서서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것을 주장한다. 우리들은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과거에 어떻게 했는지부터 찾아본다. 과거의, 그것도 남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한비자는 이를 경계하는 것이다.

 

 

 

   장자는 도구적인 인간으로 소모되지 않기 위해 물욕과 명예욕을 버리라고 가르친 반면, 한비자는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적절히 통제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물질적 욕망과 명예욕을 활용하라고 주장한 점이 흥미롭다. 욕망의 대상을 주거나 빼앗는 것, 바로 상과 벌을 통해서다. 이때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명백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강조하는 '법'이다.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명백하며, 가혹할 정도의 엄격함을 지닌 법을 통해 사람들이 이를 무겁게 여김으로써 누구나 형벌을 받지 않게끔 노력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법 혹은 시스템만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반드시 기득권 세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기득권 세력을 없애거나 물갈이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된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군주에게 답이 있다고 보았다. 썩은 사과도 상한 부위를 잘만 도려내면 먹을 수 있듯 신하를 잘 다루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찾아낸다면 신하들이 기득권 세력으로 변해 개혁을 좌초시키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왕의 기술, 만장일치를 경계해야 할 것, 반드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의견을 묻고 그 의견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는데, 오늘날 사회 시스템을 움직이게 하는 모든 공직자들이 이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목인 듯하다.

 

 

한비자는 법이란 결국 태양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여긴 셈이다. 태양이 하늘에서 빛나는 것처럼 명명백백해야 하고, 태양처럼 뜨거워서 감히 어길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엄격해야 하며, 태양이 모든 사물을 비추듯이 어떤 경우에도 예외를 두지 않는 공평함을 지켜야 하고, 태양이 매일 아침 어김없이 떠오르듯이 변함없이 법을 지키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는 신뢰를 주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 297p 

 

 

 

 

 

 

   내게 있어 철학은 어렵다. 토론 시간의 연속이었던 철학과 수업에서 나는 학기 내내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철학에 대해 알고 싶다는 호기심은 충만했지만 아마도 그때의 나는 철학을 그저 '학문'으로만 접근했던 것 같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이 거창한 사전적 정의는 현실 감각과 멀게만 느껴질 뿐이었고, 복잡한 철학사조와 철학가들의 사상을 암기하듯 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던 까닭이다.

 

 

 

   <생존의 조건>의 저자 역시 책의 서문에 밝히기를, 철학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손사래를 칠 것이라고 말한다. 팍팍한 삶을 그저 온전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이들에게 철학이란 그저 허울뿐인 이상이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관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살면서 "내가 왜 사나?" 혹은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하는 질문조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지 되묻는다. 그 정도의 질문이 무슨 대단한 철학적 질문이 될 수 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삶이 고통스럽고 답답하고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길이 없을 때에야 말로 우리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헬조선'이라는 수식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에서 살고 있는 만큼 이러한 질문과 해답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당면한 시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 여겨진다. 생각보다 잘 읽히고, 철학에 대해 어렵게 느꼈던 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만큼 끝으로 이러한 책이 많이 출간되고 또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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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간질간질
강병융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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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에 눈이 생긴 한 아이가 세상에 전하는 용기의 메시지!

'틀림'과 '다름'의 차이, '온전한 나'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려낸 성장소설!

 

 

 

   꼬물꼬물, 손가락 속에서 벌레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불쾌한 느낌이 살갗을 간질인다. 손가락 속의 벌레가 자꾸 늘어나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는 것만 같은 그 견딜 수 없는 간지러움이 하필이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이를 괴롭힌다. 고교 야구 결승전 경기 9회 말 투아웃 만루 상황. 결정적인 송구 한 방이 승패의 향방을 결정짓는 절대 절명의 상황에 찾아온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처음에는 극도의 피로감과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착란 현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극한의 상황에 치닫게 되면 우리의 뇌와 몸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손끝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착란쯤이야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참아야 했다. 삶에서 인내해야 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는 운동을 하다 보면 몸소 알게 된다. 내 손끝에서 벌레가 기어다는 것 같아요, 따위의 말로 경기를 멈출 수도 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는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손가락에 눈이 생겼을 때는 어떤 병원에 가야 할까?"

 

 

   <손가락이 간질간질>의 주인공 유아이는 고교 야구 결승전의 마지막 마운드를 책임져야만 하는 팀 내 에이스 투수다. 팀에서 가장 믿을 만한 투수이자, 결승전 마운드에 마지막으로 나서 승리를 만끽할 자격이 충분한 선수이자, 강력한 최우수 선수 후보다. 이 대회에서 가장 많이 던진 투수였고 승리를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기에 모든 피로와 중압감을 견뎌야만 했던 아이는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 '간질간질'한 느낌 하나로 인해 모든 것을 망칠 위기에 놓이고 만다. 그렇게 쫓기듯 힘겹게 아이의 가운데손가락 끝을 떠난 공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각도를 그리며 극적으로 홈플레이트 코앞에서 하강하여 아이의 학교가 우승을 차지한다. 최우수 선수상과 최우수 감독상에 '위기의 순간에 초강심장만이 던질 수 있는 과감한 폭포수 커브'라는 표현으로 아이를 치켜세우는 신문기사까지 쏟아진다.

 

 

 

정말이지 우승만 하면 세상이 싹 바뀔 줄 알았어요.

정말이지 최우수 선수만 되면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 28p

 

 

 

   목표하던 것을 이루고 나면 세상이 달라질 것만 같았던 희열도 잠시, 유니폼을 입지 않으면 자신을 알아보는 이 없는 교무실과 야구공이 날아다니지 않는 연습 없는 경기장의 어색함만이 다시 일상을 채울 뿐이다. 이럴 땐 늘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지닌 백이를 보고 싶지만 어쩐지 자신을 피하기만 하는 듯하고, 아버지와 다름없는 '브라더'와 그의 아내인 '시스터'의 사이도 예전 같지 않다. 아이는 여전히 간질거리는 손가락과 그 안에 생긴 콩알을 만지작거리며 모든 것을 잊고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이 깊은 피로감을 내려놓고 싶다고 생각한다.

 

 

 

머지않아 고통에 무뎌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물론 더한 고통이 찾아온다는 것도 알았죠. 고통이 갱신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그러다 보면 선수 생명이 짧아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어요. …(중략)…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슬프지도, 걱정이 되지도 않았어요. 어깨도, 사람도, 사랑도 하늘에서 정해준 수명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어버렸어요. 그게 고통을 넘기는 가장 편한 방법이니까요. 그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사는 방법이니까요. / 51p

 

 

 

 

 

 

   그러던 다음날의 아침, 아이는 갑자기 강한 어지럼증과 함께 얻으면 안 될 무언가를 얻은 것 같은 위화감이 몸을 감싸는 것을 느낀다. 분명 두 눈을 꼭 감았는데, 무언가가 보인다. 가운뎃손가락 끝에 눈이 생긴 것이다. 콩알만 한 눈이 생긴 것이다. 아이는 이 사실을 누구한테 말해야 할지, 어느 병원으로 가야할지조차 알 수 없어 혼란에 빠진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던 아이는 우연히 뒷산에 올라가다 늘 훈련 때문에 보지 못했던 봄 풍경을 세 번째 눈이 생겨서야 비로소 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두 눈을 감고 손가락에 달린 눈으로 하늘을 보는 일이 꽤나 멋진 일이라는 것 또한 깨닫는다. 마치 본체는 하나지만 모니터가 두 개인 컴퓨터를 이용하듯 세상을 더 넓고 많이, 깊게 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차츰 아이는 세 번째 손가락을 세상 밖으로 공개해나가기 시작한다. 병원에서조차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기이한 일에 각종 매스컴과 세간의 관심이 아이에게로 집중된다.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듯 연일 화제의 중심에 올라 일약 스타가 된다. 이렇듯 <손가락이 간질간질>은 어느 날 갑자기 손가락에 눈이 생겨버린 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음으로써 환상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삶을 산다거나 혹은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방식의 이야기를 그려나가지 않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설은 아이에게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게 하기보다 남들과 조금 다른 신체적 특징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WILL도, 묵묵히 아이를 지지해주었던 브라더와 시스터도, 아이가 돌아올 자리를 변함없이 지켜준 감독님도, 세 번째 손가락 때문이 아니라 아이의 인성과 진솔함을 더욱 특별하게 여겨준 방송국 사람들도 모두 하나같이 아이의 용기를 응원해준다. 오히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통해 '온전한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기도 한다.

 

 

 

 

 

 

   책을 읽다보면 이 소설이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란 작품을 오마주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갑자기 전염병처럼 눈이 멀게 되는 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을 잃었을 때에야 느끼게 되는 중요한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반대로 <손가락이 간질간질>에서는 세 번째 눈을 얻은 자의 모습을 그려나가지만 이 역시 '가짐'과 '잃음'의 차이가 무엇인지 깨닫게 함은 물론 남들과 다른 특이점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BE의 말을 듣고 난 뒤 콜맨은 미소를 띤 채 설명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연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랑 앞에서, 때로는 변기보다 더 심한 것으로도 변하지 않느냐며 되물었다. 그 과정은 힘겹고, 그 힘겨움이 삶에서 휴식의 순간을 앗아간다고도 덧붙였다. / 89p  

 

 

 

   <손가락이 간질간질>은 크게 성장소설의 유형을 따라가고 있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작품인 듯하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나름의 반전과 그로 하여금 성 정체성과 사랑, 이해에 대한 폭넓은 주제까지 생각해볼 수 있으니, 이 소설이 양산해내는 풍성한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의외의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또한 감출 수 없다.

 

 

 

   그나저나 팔꿈치가 유독 간지러운 오늘, '헉, 내 몸에도?'하는 생각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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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살이의 기술 - 일잘과 일못을 가르는 한 끗 차이
로스 맥커먼 지음, 김현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시작이 두려운 초보 직장인들을 위한 직장살이의 꿀팁들!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유쾌 상쾌 통쾌한 자기계발서!

 

 

 

   첫 직장,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는 그 첫날의 기억을 떠올리자면 여전히 부들부들 떨린다. 나의 어떤 모습이 이 회사에 어울릴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혹은 어떤 모습을 기대하는 것인지, 내가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지, 첫 날부터 실수를 하지는 않을 런지. 더군다나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를 하고 앉아 낯선 업무를 부여받고 어색함과 얼떨떨함을 애써 감추어만 할 내 모습을 상상하면 측은해질 지경이다. 다른 사람들에게선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나만 긴장하는 것 같고, 나만 외딴 섬에 둥둥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럴 때를 생각해서 미리 자기계발서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보려고도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지레 주눅이 들 때도 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이 보여주는 용기와 과감함이 왜 내게는 없는 걸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다 좋다는 자기계발서가 왜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한 두 번 한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삶의 작은 디테일에 주목하라

 

 

   <직장살이의 기술>의 저자 로스 맥커먼은 에디터이자 칼럼니스트다. 그는 작은 기내 잡지 편집장으로 일하던 중 자신이 만든 잡지를 보고 호감을 가진 채용담당자에 의해 세계적인 잡지 「에스콰이어」에서 일하게 되었고, 낯선 대도시로 날아와 새로운 유형의 직장에 적응해야 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그는 뉴욕에 처음 갔을 때 자신이 동료들과 너무 다르다고 느낄 만큼 이 직책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뿐더러, 메이저 잡지사에서 일하는 법은커녕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법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뉴욕에서 일하며 몇 달이 흐른 뒤, 제아무리 유명하고 중요한 인물조차도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위 성공의 법칙이라는 것들은 대부분은 별 효력이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고 한다.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단지 재능이나 태도에 있지 않고, 그저 겉으로 보이는 면에서 더 나았던 뿐이라고 말이다. 이들은 그저 아주 사소한 '디테일'의 중요성을 인지했을 뿐이고, 이를 실천했을 뿐이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순간들을 잘 활용한다면 스스로 편안함을 느끼고 남들 눈에도 편안하게 보일 수 있으며 자신이 그 자리에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의 작은 '디테일의 힘'을 믿는 만큼 책에는 어떤 거대한 원칙이나 허황된 성공 법칙 따위를 설명하지 않는다. 아주 사소하지만 굉장히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스킬들을 유머러스하고 담백하게 그러나 매우 진정성 있게 소개한다. 책은 총 5장으로 '첫 출근의 기술', '대화의 기술', '사무실 밖 업무의 기술', '생존의 기술', '협업의 기술'로 구성되어 있다. 말 그대로 업무의 각을 세우는 직장살이의 기술을 전하고 있지만, 사실은 삶을 살아가는 모든 부분에 있어서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로 꾸려져 있다.

 

 

 

 

 

 

   첫 장인 '첫 출근의 기술'에서는 면접 제의 전화를 받는 법, 면접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최고의 면접을 만드는 법, 인사 채용 담당자인 리크루터와 대화하는 법, 면접 자리에 등장하는 법, 트위터와 같이 SNS를 활용하는 법(반전인 것은 그냥 그런 건 없단다), 직장에서의 첫날을 보내는 법, 환영회에서 처신하는 법, 신입 때 실수에 대처하는 법들을 소개한다. 재미있게도 이 책이 자신에게 필요한지, 신입으로서의 역량을 점검할 수 있는 지표들을 통해 체크하는 항목도 있는데 하다보면 실소를 터뜨리게 되기도 하니 한 번쯤 꼭 해보시길 바란다. 체크를 해 나가다보면 '나는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중이고, 도전을 받고 있구나' 하고 직장으로부터 받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나도 모르게 털털 넘기는 노하우를 습득하게 될 테니 말이다.

 

 

 

면접 전문가들이 거의 언급하지 않는 한 원칙이 있다. 바로 '기만하지 말 것'이다. 절대로 없는 것을 있는 척해서는 안 된다. / 42p

 

 

아무리 당혹스러울지라도 따라야 할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바로 그 공간은 당신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30초에서 1분의 시간 동안 그 공간을 지배하는 자는 당신이다. 그곳이 설사 그들의 방이고 당신의 연봉이 당신이 곧 악수할 자의 연봉의 백 분의 일이라 할지라도 그곳을 지배하는 자는 당신이어야 한다. 나아가 그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지을 뿐만 아니라 그 공간의 모든 것의 책임을 져야 한다. / 51p

 

 

식사 자리에서는 굳이 거짓이 필요 없다. 나의 새 동료들은 나와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은 내가 진정한 인간이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었다. 긴장하고 위축되는 것까진 좋다. 그러나 진정성을 놓아서는 안 된다. 무언가에 관심이 있는 척하는 것으로는 흥미진진한 대화 상대가 될 수 없다. 만약 베르너 헤어조크라는 사람을 모르면 그냥 인정하면 된다. 무지로 잃은 점수는 용기로 얻은 점수로 보상되는 법.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된다. 정말 모르니까, 그리고 배우고 싶으니까. / 73p

 

 

 

   두 번째 장인 '대화의 기술'에서는 회사에서 웃는 법, 미팅에서 말하는 법,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현명한 말들, 고급 식당에서 의미 있는 점심 식사를 하는 법, 가벼운 대화를 하는 법 등을 소개한다. 특히, 바이어나 클라이언트와의 식사 자리에서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일 이야기나 계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 두 번째 장을 참고하면 좋겠다. 그의 조언을 짤막하게 남겨보자면 '헛소리-헛소리-본론-헛소리-계산서 주세요!' 순으로 대화를 이끈다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을 테니 참고해보자. 이어 세 번째 장인 '사무실 밖 업무의 기술'에서는 악수하는 법, 업무 관련 파티를 시작하는 법, 업무 관련 파티에서 빠져나오는 법, 건배사 하는 법, '중요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과 같이 '뭘 이런 것까지' 하고 생각할 수 있을 법하지만 사실은 꽤나 현실적으로 필요한 팁들이 소개되어 있으니 실천해보면 좋을 듯하다.

 

 

 

중요한 인물과 최선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비법은 그 어느 누구와 대화하는 법과 다를 게 없다. 그들이 하루 종일 하는 일, 그러나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일을 생각해내면 된다. 그러면 알차고 풍요로운 대답이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그것에 대해 생각해 봤을 것이기 때문이다…(중략)…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그들이 실질적으로 하는 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들의 직업이 아닌 그들이 진짜로 하는 일 말이다. / 155p

 

 

 

   네 번째 장에서는 '생존의 기술'을 소개한다. 여기에서는 지각에 대처하는 법, 시간을 잘 지키는 법, 자신감 있어 보이는 법, 직장에서 옷 잘 입는 법 등 직장에서 유연하고 자신감 있게 대처할 수 있는 각종 노하우들을 수록해놓았다. 그 중 '스프레차투라'라는 개념을 소개한 부분이 인상에 남아 소개하고자 한다. 스프레차투라라는 개념은 16세기 이탈리아 궁중의 대신이었던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가 르네상스 시대 궁중 예법 지침서인 「쿠르티에」에 처음 소개했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가식은 피한다… 모든 기교를 숨기고, 모든 말과 행위가 별 노력 없이 그리고 별 생각 없이 행해진 것처럼 보이도록 모든 면에서 어느 정도의 스프레차투라(무심, 태연함)를 연마한다." 스프레차투라는 엉뚱한 생각, 혼란, 결함을 허용하고 나아가 장려한다. 또한 편안함, 개성, 모순, 구김을 지지한다. 저자는 이 개념을 직장살이의 기술에도 적용한다. 어떤 문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느낄 때 이 말을 떠올리고 완벽이라는 족쇄에서 당신을 해방시켜줄 것이라 응원한다.

 

 

 

이는 스타일에만 국한되는 사고방식이 아니다. 일도 마찬가지다. 일과 사회생활이 완벽해야 하는 건 아니다. 솔직히 불가능한 일 아닌가. 그래서도 안 된다. 일에도 구김이 있어야 한다. 닳은 흔적이 보이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모험을 하고 있다는 걸 엿볼 수 있어야 마땅하다. 닳고 마모된 흔적이 보이고, 약간은 헝클어져 있어야 정상이다…(중략)…스프레차투라는 자신감의 표시이자 우리를 안내하는 철학이며, 정말 죽여주는 주문이다. / 200p

 

 

 

   마지막 다섯 번째 장에서는 '협업의 기술'을 소개한다. 여기서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을 중점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보다 직장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마인드를 점검 혹은 정리해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진정성 있는 태도로 일관할 것,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에서부터 자신의 삶이 변화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자기 회의에 빠질 때마다 자신감이 없는 모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항상 의문을 품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는 이 시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조언 또한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는 '자기 회의'라는 감정을 단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의문을 품어야 더 가질 수 있다. 당신은 문제와 함께 의문까지 갖춘 것이므로. 당신에게는 더 많은 연료가 있고, 더 열심히 일할 이유가 있으며, 입증해야 할 것도 더 많다. 더 가진 것이다. / 257p    

 

 

 

 

 

 

   <직장살이의 기술>은 그저 그런 혹은 실천하기 어려운 목록들로 가득한 자기계발서와 달리 유쾌하게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잘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쿨한 팁들이 많아서 유독 기억에 남는다. 이제 막 새로운 직장에 발을 내딛으려는 지인이 곁에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혹은 직장살이에 어려움을 느껴 매일 술로 달래거나 오늘도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것만 같아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은 그 자리에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는 이 책으로 위안을 얻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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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색기계 - 신이 검을 하사한 자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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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인간사의 기묘한 운명을 비현실적인 세계관과

결합시킨 새로운 판타지 미스터리!

 

 

 

   1700년대, 일본의 에도시대. 에도를 중심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집권한 이래로 무사계급의 최고지위에 있는 쇼군이 막강한 권력을 장악한 시대다. 철저한 주종관계와 더불어 무사계급의 80%가 농민과 공상을 지배하였으니 칼과 무력 앞에서 자행되는 수많은 난립들이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도 허다하였을 것이다. 마치 우리의 홍길동이나 임꺽정과 같은 민중의 영웅들이 에도시대에도 두어 명쯤 있었을 것이라 하여도 이상할 것이 없고, 신으로부터 얻은 묘한 능력을 지닌 자가 어디 깊은 산속에 산다더라 같은 소문들이 나돌아 다니는 것 또한 크게 이상할 것이 없는 세상이지 않았을까. 이를 테면 잠들기 전의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할머니의 상상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기묘한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금색기계>는 바로 이러한 기묘한 환상문학의 원형을 지닌 판타지소설이다. 제6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이력이 조금은 의아할 만큼 기존의 일본 추리소설의 계보와는 사뭇 다른 전개와 구성을 지녔기에 새로운 판타지 미스터리 형식의 작품이라 소개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제목 또한 참 기이하다. '금색기계'라니. 동력을 써서 움직이는 장치로써 설명되는 그 ‘기계’라는 단어의 뜻이 맞는 것인지 한자를 읽으면서도 묘한 어색함을 감출 수 없다. 더군다나 '신이 검을 하사한 자'라는 부제가 지닌 무협 혹은 시대적인 느낌과도 어울리지 않아서 작가가 이 책 속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인간이 아닌 자,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자

 

 

   만지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놀라운 힘을 지닌 소녀 하루카. 그녀는 의사인 아버지 신도를 따라 아파서 더 이상 손 쓸 방도가 없는 환자들에게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뿐, 평소에는 아버지의 지엄한 명령으로 능력을 봉인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영감에게서 "언젠가 금색님을 뵈러 가보아라" 라는 말과 함께 온몸이 황금으로 이루어져 있는 신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지만 자신의 능력이 아버지를 위해 쓰이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길 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인 신도가 친아버지가 아니라 떼죽음을 당한 유민들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자신을 거두어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또한 가메라는 한 사내로부터 추행당할 뻔한 위기에 처하면서 아버지와의 약속을 어기고 자신의 능력을 써버린 것에 대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점차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한 그녀는 결국 살던 곳을 떠나 금색님을 찾아가기에 이른다.

 

 

 

뭔지 잘 모르겠다.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중략) 머리 부분, 투구는 장식 없이 둥글고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눈 부분에는 투명한 유리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그 외의 입이나 목 같은 부분은 전부 금으로 빈틈없이 덮여 있었다.

(중략) 너무나도 기이했다.

신.

이것은 진짜 신이다. / 63p

 

 

 

   과거 1547년, 마을에서 떨어진 벽지에 하늘 사람들의 자손으로 이루어진 유젠가가 세를 형성해 살고 있었다. 이들은 하늘에게 하사받은 무기, 방어구, 폭약, 지혜를 하늘 사람들이 다시 올 때까지 지켜야 할 의무를 지닌 특수한 가문이었다. 당주인 미카게를 중심으로 호쿠슈라고 불리는 남녀 수십 명이 이곳에서 기거하며 각종 집안일과 베 짜기 등을 하고 유사시에는 군사로 동원되기도 했다. 그 중 달에서 온 인간이 아닌 존재가 하나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금색님' 즉 쓰마베였다. 그녀는 현세의 섭리와는 동떨어진 하늘의 비술로 만들어진 천기였기에 성별을 자유자재로 바꾸고, 뛰어난 무력을 지닌 특수한 능력으로 유젠가 일족을 따르고 지켜야 하는 임무를 지녔다. 그러던 어느 날,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천기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당주인 미카게는 하늘의 무기를 인간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가문의 종막을 선언하지만 그의 딸 지요가 이를 거부하고 스스로 새 당주가 되어 쓰마베를 데리고 떠난다. 이후 오랜 여행 끝에 여러 동료들을 만나 조직을 만들고 산 속 깊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가 귀어전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렇듯 <금색기계>는 금색님이 무려 150년 이상 지요의 후손들을 섬기며 귀어전에 머무르게 된 사연, 손만 닿으면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하루카가 금색님을 만나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기까지, 그 복잡하고도 장대한 여정을 명쾌하게 그려나간다. 200년이라는 긴 시간의 흐름을 통과하기 위해 작가는 주요 등장인물 각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얽히고설킨 인간사와 내적 묘사들을 허투루 흘리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응집해 견고하게 풀어나가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과거로 갔다가 현재로 돌아왔다 다시 더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는 이 구성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가도 어느 사이에 '아, 이게 이 이야기로 통하는 거였어?' 하고 무릎을 치게 하는 힘이 있달까.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그간 의문으로 남아 있던 미스터리들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이 소설이 판타지 문학상이 아니라 추리작가협회상을 받은 이유를 짐작케 한다.

 

 

 

 

 

 

   사실 많은 소설에서 '신'이라는 존재를 끌어들이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시대성과 어울리지 않게 기계로 형상화된 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것이 때로는 소설을 읽으면서 위화감을 들게 하고 더러 풋, 하고 웃음도 나오게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고, 어쩌면 환상의 그 이면에 존재하는 선악, 복수, 이해와 용서와 같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사에 더욱 초점을 맞추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독특하고 엉뚱하지만 그럼에도 재미있는 장르 소설 한 편을 만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한동안 생각할 것이 많은 주제의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기분 전환 삼아 이런 장르 소설로 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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