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토록 우울하고 절망적인
삶을 나는 왜 살아내야 하는가!
혼돈과 좌절의 시대를 이겨내기 위한 생존의 철학은 과연
무엇인가!
춘추전국시대. 맹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시대였고 고염무의 표현을
따르자면 "망국의 시대가 아니라 망천하의 시대였다"고 할 만큼 천하가 절망감에 시달리던 때였다고 한다. 기존의 가치 체계와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고 노골적인 폭력에 대한 숭상, 완력에 대한 집착으로 힘과 권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였으니 그야 말로 난세의 시대라 할 만하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 않다. '헬조선', '우울증', '자살'과 같은 절망을 가리키는 수사들이 도처에 넘쳐나고 시선을 넓히면 중동에서는 끊이지
않는 내전으로 인해 연일 사망자와 난민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세월이 흐르고 흘러 21세기에 이르렀건만 춘추전국시대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인간이란 참으로 놀라운 존재여서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길이 없을 만큼 춘추전국시대가 절망으로 가득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이들이 있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지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접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공자와 묵자, 장자와 한비자 같은 인류 역사상 가장 다채롭고 풍부한 사상과 철학가들이
꽃피어난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백가쟁명이라는 글자 그대로 엄청난 숫자의 사상가들이 등장해 그야 말로 유래 없는 '생각'의 폭발이
일어났고,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사상의 원초적인 형태들이 바로 이 시기에 등장했던 것이다. 대체 이들을 이끈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삶이 고통스럽고 답답하여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길이 없을 때, 누구나 삶의 근원적인 곳에까지
질문이 이르게 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이토록 우울하고 절망적인 삶을 나는 왜 살아내야만 하는가? 또 살아야만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들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였기에 '절망을 이기는 철학'의 탄생 또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존의 조건>은 짐승의 시대와 다름없던 시대를 용기 있게 돌파해나간 제자백가의 생존철학을 탐미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절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해답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사상 최악의 절망적인 난세를 헤쳐나간 이들의 용기와
자긍심이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을 믿을 수 없을 때_ 유가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을 지날 때, 한 여인이 무덤 앞에서 울고 있자 그 연유를 알아보게 했다. 여인의 사연은
이러했다. 시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아들과 함께 산 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가족이 차례로 호랑이에게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공자의
제자 자로는 문득 호랑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진작 도망을 가는 게 옳지 않았느냐고 반문을 하였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여기엔 가혹하고
악독한 정부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여 이에 공자가 탄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움을 시사 하는 내용이다.
공자는 난세가 살기 어려운 것은 인간이 인간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믿음과 신뢰가 무너진 사회 시스템
속에서는 분쟁과 갈등, 모순이 폭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가치와 신념이 모두 무너진 시대에서 과연 무엇으로 하여금 이를 회복할
수 있을까? 이에 공자는 세상을 등지고서는 시대가 당면한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고 비록 실망스럽고 한심해 보일지라도 바로 지금 이곳,
인간들 속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인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첫
번째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는 곧 모성애와 효를 근간으로 한다.
사랑받아야만 사랑하는 법도 배울 수 있다. 가족 안에서 사랑을 배운다면 이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 인류 공동체에 대해서도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비유하자면 호수에 떨어진 물방울이 동심원을
그리면서 퍼져 나가는 것과 같다. 인간에 대한 사랑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가족 안에서의 사랑하는 마음만은 반드시 지켜주고 싶은 것이 공자의
본뜻이었다. / 54p
또한 강조한 것이 있으니, 바로 공자가 평생을 지켜야 할 삶의 원칙으로 삼은 ‘서(恕)’이다. 현대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서는 '공감'이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상황에 대해서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맹자가 말하는 '측은지심'이라는 인간의
본능과 맥을 같이 한다. 공자는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생존의 진정한 조건은 백성의 신뢰라고 보았다. 신뢰가 무너지면 어떤 나라도 버틸 수 없다.
신뢰란 상대방이 나를 염려하고 있다는 믿음이며, 이는 오직 공감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여겼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도 상대방의
관점에서 상황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기에 공자와 맹자의 사상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어떻게 하면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공자와 맹자가
일러준 조언들도 생각해보면 '자기 자신을 믿어도 되는가?'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가족에 대한 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타인에게 차마 잔인해지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생생하게 경험함으로써 인간이 가진 가능성을 믿도록 한 것이다. / 102p
정의 없는 세상에 분노할 때_ 묵가
공자나 맹자, 장자 등에 비하면 묵자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책에서 묵자를 설명하는 대목에 따르면,
그는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독특한 사상가'라고 한다. 때문에 여러 생존 철학 중 묵자의 사상을 설명하는 제 2장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에
남는다. 그도 그럴 것이 묵가가 대부분이 하층 계급인 민중 속에서 일어난 유파인 만큼 묵자는 민중의 편에 선, 스스로가 민중인 자의 철학을
실현한 까닭이다. 그들은 농민이나 사회 최하층에 위치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여 민중의 삶을 우선적으로 살펴야 함을 강력하게 호소했다. 시국이
어지럽고 백성들이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침략 전쟁, 불의한 전쟁 때문이라는 사실에 동시대의 그 어떤 사상가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전쟁을 반대하고 절실히 평화를 추구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겸애'를 강조하며, 사랑은 단지 감정이나 생각에 그쳐서는 안 되고 반드시 행동을 통해
상대방에게 이익을 주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말 배고픈 사람에게 빨리 뛰어가서 도와주는 것이 참된 사랑이지, 말로만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측은하게 여긴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특히 모든 사랑은 평등하며 세상의 이익을 자신의 본분으로 삼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묵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든 많든 공익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의지를 가져야 하고 또한 모두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 효과가 미비해 이 세상의 어려운 판국을 더 낫게 만들 정도는 안 될지라도 할 수 있는 한 온 힘을 다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묵자가 말하는 '겸상애' 혹은 줄여서 '겸애'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을 뜻한다.
굉장히 광범위하고 넓은 사랑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Universal Love'라고 번역한다. 문자 그대로 세상의 모든 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든 미래의 사람이든 과거의 사람이든 상관없이, 가족이든 남이든 차별 없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일괄적이며 차별 없는 사랑이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이다. / 148p
'나는 내 할 일만 잘하면 돼! 내가 어떻게 이 사회를 돌볼 수 있겠어? 이 세상은
원래 이렇게 어지러운걸,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 소용없다고.' 이게 바로 무마자가 말한 것처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을 테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그런데 묵자는 다르다. 비록 내가 뭔가를 했을 때 그 효과가 물을 들고 왔으나 불을 끄는 데에는 못 미치는
것처럼, 이 세상의 어려운 판국을 더 낫게 만들 정도는 안 될지라도 할 수 있는 한 온 힘을 다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 173p
불안을 견딜 수 없을 때_ 도가
장자는 난세의 시대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버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사상가이다. 물질을
위해서 삶을 희생시키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돈과 명예, 올바른 신념에 대한 집착 그 어떠한 외부적 가치도 나의 삶 그 자체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장자는 공자와 맹자와 같은 어떤 숭고한 이상 같은 것을 비판한다. 오직 '자신의 기준에 따라 살아라'고 말한다. 남이 부여한 기준은
그것이 고상한 도덕이나 윤리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그저 각각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기준일 뿐이라고 말이다. 무리지어서도 남에게
기대지 않고, 홀로 서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진짜 지식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 그의 사상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존
철학이라 여겨지는 대목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쉴 틈 없이 뛰어다니는 근본적인 이유는 쓸모없어질까 봐 겁을 먹기
때문이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장자는 세속적인 가치에 집착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만약 속세의 고난과 핍박, 타인의 질투 공격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그냥 그 상황을 빠져나오면 된다. 그 속에서 무서워하고 또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면 사실 불행을 심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 차라리 완전히 빠져나오는 것이 더 낫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고 걷지 않으면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 218p
장자는 모든 것이 이쪽과 저쪽, 옳음과 그름, 그리고 진실과 거짓으로 나뉜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찬반 양쪽으로 나뉠 때도 있지만 대개 완전한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자가
이야기하는 제물은 모든 여러 가지 다른 가능성을 고르게 한다는 뜻이다. 그 어떤 것도 궁극적인 진실을 대변하지 않는다. 스펙트럼의 어딘가에
진실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233p
간교한 기득권에 맞설 때_
법가
법가의 사상은 묵가의 사상만큼이나 재미있다. 법가의 대표 사상가인 한비자의 특징은 현실주의다. 그는 인간의 욕망을
긍정한다. 욕망은 개선해서 바꿔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욕망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비자의 현실주의는 현실을 회피하거나 현실에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가장 적극적으로 맞서서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것을 주장한다. 우리들은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과거에 어떻게 했는지부터 찾아본다. 과거의, 그것도 남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한비자는 이를
경계하는 것이다.
장자는 도구적인 인간으로 소모되지 않기 위해 물욕과 명예욕을 버리라고 가르친 반면, 한비자는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적절히 통제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물질적 욕망과 명예욕을 활용하라고 주장한 점이 흥미롭다. 욕망의 대상을 주거나 빼앗는
것, 바로 상과 벌을 통해서다. 이때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명백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강조하는
'법'이다.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명백하며, 가혹할 정도의 엄격함을 지닌 법을 통해 사람들이 이를 무겁게 여김으로써 누구나 형벌을 받지 않게끔
노력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법 혹은 시스템만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반드시 기득권 세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기득권 세력을 없애거나 물갈이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된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군주에게 답이 있다고 보았다. 썩은 사과도 상한
부위를 잘만 도려내면 먹을 수 있듯 신하를 잘 다루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찾아낸다면 신하들이 기득권 세력으로 변해 개혁을 좌초시키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왕의 기술, 만장일치를 경계해야 할 것, 반드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의견을 묻고
그 의견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는데, 오늘날 사회 시스템을 움직이게 하는 모든 공직자들이 이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목인
듯하다.
한비자는 법이란 결국 태양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여긴 셈이다. 태양이 하늘에서
빛나는 것처럼 명명백백해야 하고, 태양처럼 뜨거워서 감히 어길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엄격해야 하며, 태양이 모든 사물을 비추듯이 어떤
경우에도 예외를 두지 않는 공평함을 지켜야 하고, 태양이 매일 아침 어김없이 떠오르듯이 변함없이 법을 지키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는 신뢰를 주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 297p
내게 있어 철학은 어렵다. 토론 시간의 연속이었던 철학과 수업에서 나는 학기 내내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철학에 대해 알고 싶다는 호기심은 충만했지만 아마도 그때의 나는 철학을 그저 '학문'으로만 접근했던 것 같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이 거창한 사전적 정의는 현실 감각과 멀게만 느껴질 뿐이었고, 복잡한 철학사조와
철학가들의 사상을 암기하듯 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던 까닭이다.
<생존의 조건>의 저자 역시 책의 서문에 밝히기를, 철학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손사래를 칠 것이라고 말한다. 팍팍한 삶을 그저 온전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이들에게 철학이란 그저 허울뿐인 이상이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관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살면서 "내가 왜 사나?" 혹은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하는 질문조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지
되묻는다. 그 정도의 질문이 무슨 대단한 철학적 질문이 될 수 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삶이 고통스럽고 답답하고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길이 없을 때에야 말로 우리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헬조선'이라는 수식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에서
살고 있는 만큼 이러한 질문과 해답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당면한 시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 여겨진다. 생각보다 잘 읽히고, 철학에 대해
어렵게 느꼈던 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만큼 끝으로 이러한 책이 많이 출간되고 또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