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머무는 밤
현동경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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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해 가는 일상과 비워 가는 여행, 그 모든 순간의 기록!

사사로운 것에 흔들리고 무너지며 기꺼이 동요당할 수 있는 삶을 꿈꾸는 감성에세이!

 

 

 

   1년 전에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내내 물리적, 정신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한 노인이 우연히 알게 된 아내의 과거 행적을 쫓아 여행을 떠나는 내용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노인에게 있어 여행의 목적은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아내의 과거 찾는 데 있었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깨달아가는 즐거움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사사롭지만 정해진 일상의 규칙에서 벗어나 이제껏 해보지 못했던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여행'이었다. 그가 자신이 용기를 내어 집밖으로 발을 내딛지 않았다면, 여행을 하는 내내 만나게 되는 갖가지 사건과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마냥 두려워만 하고 있었더라면 감히 '미래'라는 것을 꿈꿀 수 있었을까. 여행이란 그런 것 같다. 반드시 물리적으로 어떤 먼 곳을 떠나는 게 아니라 일상을 떠받치고 미래로 나아가는 하는 어떤 자유의지를 얻어가는 과정 그 모두가 우리에겐 여행인 듯하다.

 

 

 

   <기억이 머무는 밤>의 저자 역시 살아온 틀을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낯선 것을 비롯한 두려움은 모두 여행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새로운 회사와 학교에 면접을 보러 가는 그 길의 두려움은 내 미래에 대한 여행인 것이고, 겪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삶의 성숙을 이끈다. 어쩌면 여행은 익숙하지 않은 또 다른 현실로 나아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나와 앞으로의 나를 견주게 하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수천 킬로미터가 넘는 이국의 풍경과 자유, 낭만과 고행으로 점철된 여느 여행에세이와 조금은 다른 글을 써내려간다.

 

 

 

 

 

 

 

현실. 그러고 보면 여행지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어딘가에서 '현실'에서 벗어난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는 듯했다. 먹고 싶은 거 먹고 쉬고 싶은 만큼 쉬는 것. 살아 숨 쉬는 내가 값을 주고 행하는 모든 것이 어찌 비현실이 될 수 있는지. 혹시 그 누군가 이 모든 걸 비현실로 정의 내렸기 때문에 현실과의 이해관계에서 숱한 장애물이 생겨나고 결국 잊어 가야만 살아가기 편하게끔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런지. / 221p 

 

 

 

   어쩐지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름의 저자, 현동경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미련이 강한 사람이라 스스로를 소개한다. 이를 테면 만년필과 종이의 마찰음, 길거리 공중전화나 LP판에 마음이 이끌린다. 그러나 누구나 그러하듯 저자 역시 어느 가을날 건조하게 말라 부스러져 버린 낙엽 같은 세상에서 오늘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공허한 하루가 지나쳐가는구나 하는 일기가 그만 쓰여질 날을 꿈꾼다. 빗물 자국과 여러 얼룩이 뒤섞인 신발의 먼지를 일일이 털어 내는 일보다 어깨를 누르는 일상의 무게를 덜어내는 게 우선일 만큼 고단한 현실의 청춘들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여행을 통해 그것을 덜어내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세상이 수놓은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써내려가며 위로를 얻는다.

 

 

 

한참을 사막의 능선에 앉아 모래를 휘날리다 바지 한 번 훌훌 털고 일어나며 그래도 지금이 썩 나쁘진 않다고 위로한 이유는 나는 사막처럼 외로울 자신이 없다는 안일한 이유였다. 수많은 이들이 그곳에 내려 두고 갔을 셀 수 없는 근심들을 덮어 줄 만큼 나는 넓지 않아서, 이 좁은 마음에 안타까움을 담고 너를 담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조금은 더디게 지워지는 기억들에 아파하면서, 저기 아지랑이는 저 땅은 슬픔을 지우는 것만큼 행복도 함께 지울 거라는 질투 어린 위로를 하며, 놀이터 그네에 앉아 발밑에 모래를 모아 괜스레 이리저리 흩트려 본다. 이 모래는 그리 쉽게 자국들을 지우지 않을 거라 믿으면서. / 90p

 

 

 

 

 

 

 

   그녀의 글은 화려함에 가려져 그 빛을 숨길지언정 끝내 잃지 않고, 아련할지라도 연약하지 않은 '대낮의 낮달' 같은 은은함을 품고 있다. 덕분에 '나'와 '내 사람들' 또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의 향수와 감정 그 내밀한 속살 속에서 여행을 추억하는 <기억이 머무는 밤>은 좀 특별하다. 발칸의 작은 나라 마케도니아 오흐리드 사람들의 여유 있는 미소와 따스한 눈인사, 바라나시에서 만난 한 꼬마의 순수한 마음을 섣불리 돈으로 보답하려 했다 부끄러워진 기억 같은 것들. 특히 할머니와의 나고야 여행은 이 책의 그 어느 장면보다도 인상적이다.

 

 

 

   어릴 적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한국으로 건너온 할머니는 그 뒤로 아들 둘에 딸 넷을 낳아 평생 자식들을 키우는 데 힘을 쓴 것도 모자라 엄마와 아빠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도록 손녀에게까지 지극정성을 다하셨다. '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내 자신이 우선이었던 이기적인 나는 빳빳하던 여권에 하나둘 스탬프가 늘어 가는 동안에도 그녀가 그리는 고향, 일본에 함께 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던 저자는 마침내 70년 만에 할머니가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도록 나고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할머니는 자신이 살던 곳이 '상고'인지 '산고'인지 기억조차 흐릿했지만, 막상 고향에 도착하자 70년 만인 것이 무색할 만큼 너무나 익숙한 걸음으로 앞장 서 걸으며 지난날을 떠올린다. 이제는 편히 눈 감을 수 있겠다며 손녀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할머니의 음성과 그녀의 시간 안에 함께 했다는 것에 감사해하는 저자의 글이 코끝을 찡하게 한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70년 전 할머니의 기억과 70년 후 현재의 구글 맵에 의존해 여행을 시작했다. 마치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랄까. 할머니의 고향은 나고야 안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주택단지에 불과해 정보랄 것이 하나도 없어 가는 내내 긴장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런 마음을 알아챈 건지 혹은 나랑은 다른 뜻으로 그녀 역시 마음을 졸이고 있던 건지 그녀는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순간 마음이 아려 왔다. 이유는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그리고 할머니도 모두 알 수 있으리라 믿는다. / 34p

 

 

그래서인지 처음엔 세상을 보겠다고, 그 후엔 여유를 찾는다고 떠났던 여행이 이제는 왜인지 그냥, 하고 머뭇거리다 결국엔 '사람이 좋아서였나' 하고 되뇌게 된다. 지나온 날을 돌이켜 보면 숨 막히던 풍경도 놀랍도록 거대한 건물도 화려한 불빛도 모든 게 익숙해 더 이상 설레지 않을 때 다시금 떠나게 해 준 것도 사람이었고, 우습게도 나를 긴장케 하고 두려움을 안겨 준 것 또한 사람이었으나, 그러한 나를 흐르는 시간 속에 편안히 녹여낸 것 역시 끝내 사람이었기에, 이제는 어디선가 만날 그들에 대한 기대로 하여금 계속해서 떠나는 것 같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 131p

 

 

 

 

 

 

 

   여행에세이를 읽다보면 누군가는 사표 한 장 던져놓고 무작정 배낭 하나 짊어진 채 여행길에 올랐다고 하고, 역마살이 끼었다는 한탄을 늘어놓으며 월급을 모으는 족족 여행을 떠났다는 이도 있다. 이 모든 글에는 갑갑한 현실을 뒤로 하고 당신도 떠나보시라, 하고 권하는 무언의 부추김이 존재한다. 하지만 강요와 권유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대리만족 삼아 읽어보고자 했던 것이 때로는 발목을 붙드는 현실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용기를 내어보지 못하는 내 자신의 유약함만 더욱 마음에 남는 경우가 있다.

 

 

 

   고맙게도 <기억이 머무는 밤>은 그런 부분을 경계하려는 저자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질 만큼 가만가만 자신의 생각들을 덤덤하게 풀어놓는 데 그친다. 그녀는 그저 이 넓은 세상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순간순간 포착하고 그것을 글자로 기록하고 싶을 뿐이었던 것 같다. 이것이 여행에세이라 말하지만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에 대한 세상의 수많은 단편들을 담은 이 책이 조금은 특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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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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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죽은 뒤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던 남자에게 찾아온 놀라운 삶의 변화!

과거가 아닌 앞으로 나아가는 삶에 대한 희망을 주는 가슴 따뜻한 소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아내 혹은 남편이 곁을 떠나 홀로 남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잠깐의 이별도 아쉽기 마련인데, 하물며 사랑하는 배우자가 세상을 떠난다면 그 거대한 상실감을 무슨 수로 메울 수 있을지 차마 짐작하기도 어렵다.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흔히 하는 위로의 말로,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 하듯 바쁜 일상과 삶의 변화에 기대어 조금이나마 잊을 수는 있겠지만 예순아홉 살이 된 은퇴한 열쇠수리공이자 미래라는 꿈을 꾸기엔 너무나 나이가 들어버린 노인으로서는 그저 아내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깃든 공간 속에 자신을 가두어두는 일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을 듯하다.

 

 

 

   딸 루시와 아들 댄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미리엄의 웃음소리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아서 페퍼는 아내가 죽은 지 1년 째 되는 날, 그녀의 유품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한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고 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식상한 위로를 건네던 딸 루시와 이제는 새 가정을 꾸리고 고향인 영국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해 살고 있는 아들 댄이 더 이상 집 안을 박물관으로 만들지 말고 다 내다버리라고 퉁명스럽게 말한 것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아서는 아내와의 추억이 묻어난 유품을 정리하던 도중 벼룩시장에서 산 부츠 한쪽에서 하트 모양의 상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화려한 금팔찌가, 엄밀히 말하자면 코끼리, 꽃, 책, 팔레트, 호랑이, 골무, 하트, 그리고 반지까지 여덟 개의 참이 달려있는 장신구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여덟 개의 참, 그 의미를 찾아 아내의 과거를 추적하다

 

 

   초록빛의 에메랄드 보석이 박혀 있는 코끼리 참이 유독 인상적이었던 아서는 꼬리 부분에 새겨진 "아야, 0091 832 221 897"이란 글자를 발견한다. 그는 아야가 ‘동아시아나 인도의 보모 또는 가정부’를 일컫는 말이며, 인도의 국가번호가 0091이란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된다. 그는 누구에게든 충동적으로 전화를 거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참에 얽힌 호기심에 이끌려 적혀진 번호를 누르고 만다. 이날의 전화 통화는 그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과거 아내의 행적을 추적하는 신호탄이 된다. 이후 호랑이, 책, 꽃, 골무, 팔레트, 하트 참의 순서에 따라 그는 아내가 떠난 뒤로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집을 떠나 영국 배스, 런던, 프랑스, 인도 등에 이르는 뜻밖의 여행을 하기에 이른다.

 

 

 

드 쇼펑이라는 작자에 대해 아서가 느끼는 감정이 불안과 질투라고 해도, 그 감정으로 인해 그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의 몸에는 충격요법이 필요했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안락한 감옥을 뒤흔들 무언가가 필요했다. 미리엄과의 추억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 그 집에 살고 있는 아서에게는 뭔가 다른 게 필요했다.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서 프레더리카가 촉촉하게 잘 있는지 보고 옷가지를 더 챙겨야지. 그다음엔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 126p

 

 

"만약 당신이 어떤 여자를 만났는데, 당신을 만나기 전에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귀었고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했는데 그 얘기를 당신한테 하지 않았다면, 그게 문제가 될까요?"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했다. "아뇨. 그건 그 여자 사정인 거죠. 그러니까 제 말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요. 현재에 충실하고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현재에 만족한다면 왜 뒤를 돌아보겠어요?" / 163p

 

 

 

 

 

 

 

   여행을 하면 할수록 아서는 그가 알지 못했던 아내 미리엄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하며 꽤나 멋진 삶을 살기도 했던 그녀가 별 볼일 없는 열쇠수리공일 뿐인 자신에게로 와 과연 행복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수시로 고개를 든다. 아이들을 키운 뒤로 그들은 함께 새로운 곳들을 가보고 새로운 경험들을 했어야 했다고, 늘 정확하게 계획된 삶을 살았던 그의 고집스러운 생활 방식이 그녀의 숨통을 조인 것은 아닌지 후회와 자괴감이 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과거를 쫓는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는 와중에 그는 서서히 깨닫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아내가 죽은 뒤 제자리에 머물러만 있던 그가 조금씩 궁리를 하고 결정을 내리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자신이 스스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고 더 속 깊은 사람이었고, 자신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발견이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실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배우고 있어요." 그가 시인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변하고 성장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다른 사람들도 날 만나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을 수도 있겠지요. 기분이 묘합디다." / 172p

 

 

그 사람들과 사건들이 아서의 내면에서 불러일으킨 것은 갈망이었다. 욕정이나 그리움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는 돕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호랑이가 그를 공격했을 때 살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오렌지색 짐승이 그를 내려다볼 때, 그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생각했다. / 226p

 

 

 

   참의 역사, 아내의 과거를 추적하는 동안 아서가 발견한 것은 결국 그 자신에 관한 것들이었다. 참은 아내의 과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소원했던 딸과 아들과의 유대를 복원하고, 벽을 세우고 있었던 이웃과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에게 한 발짝씩 다가가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아내 미리엄은 지금 비록 곁에 없지만 그녀를 추억하고 함께 사랑했던 이들이 그의 곁에 있는 한 흘려보내기보다 채워가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여행을 하면서 미리엄이 알았던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내가 하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이 날 기억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구나. 미리엄은 더 이상 여기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아직 살아 있어." / 272p

 

 

 

 

 

 

 

   <아서 페퍼>는 <오베라는 남자>와 <브릿마리 여기 있다>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과 유사한 경향이 있지만 깐깐하고 모난 구석이 있는 노년의 캐릭터가 아닌,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고 평범하지만 연륜과 지혜를 지닌 캐릭터가 주인공이란 한다는 점에서 보다 공감이 가는 작품이다. 때문에 늘 과거에 집착하고 후회의 말들을 곧잘 하곤 하는 나의 조부모님에게 아서의 이야기가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당신 삶은 과거에 멈춘 것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때가 나에게도 오기를 바래보게 된다. 무엇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내 사람과의 삶을 더욱 사랑하고 충만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리라. 아서가 그러했듯, '왜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땐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미련으로 삶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삶의 순간순간과 그것을 함께 한 사람들에 감사해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해준 <아서 페퍼>는 이 차가운 겨울날, 그 어느 책보다 내게 완벽하고 따뜻한 독서가 되어 주었다. 꽤 오랫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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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1 - 김종광 장편소설
김종광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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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없던 새로운 역사소설의 지평을 열다

11차 조선통신사의 행적을 정교하고도 유쾌하게 그려낸 역사소설!

 

 

   몇 달 전에 읽은 대마도 여행가이드북에서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조선통신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으로 대마도인들이 더는 조선과 무역을 할 수 없어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중에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조선과 다시 관계를 맺어 조선통신사를 초청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고, 그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그 집안의 위패를 모신 흔적을 모셔두었다는 만송원을 비롯하여 마지막 조선통신사가 머물렀던 객사 국분사,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에 있는 조선통신사 비와 통신사행렬도 등 다수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는 까닭이다. 대마도가 지정학적으로 대한민국과 일본을 이어온 섬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처럼 국사책에서 단 몇 줄의 설명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조선통신사의 자취가 그곳에 오롯이 남겨져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고작 아는 것이라곤 '조선과 일본 양국의 문화적 교류의 상징' 정도뿐이라 역사 속 생생한 현장의 감동을 크게 느낄 수 없어 퍽 아쉬웠다. 그런데 때마침 <조선통신사>라는 이름의 역사소설이 출간되어 지난 독서에서 덮어두었던 아쉬움을 만회할 기회가 생겼다. 왕후장상이 나오는 것도 아니요, 영웅호걸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지만 어쩐지 이 책은 한 번쯤 꼭 읽어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양국의 뿌리 깊은 역사를 좀 더 사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고,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졌던 조선 오백 인의 '진짜' 이야기가 무엇일까 과연 궁금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5백 사내, 3백 일, 1만 리의 일본견문록

 

 

   <조선통신사>는 조일전쟁(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1763년에서 1764년까지 일본으로 파견된 제11차 계미사행단의 이야기를 그린 역사소설이다. 강호까지 다녀온 마지막 사행단으로 500여 명에 이르는 조선의 사내들이 332일, 1만 리라는 긴 여정을 다녀온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저자가 무려 4년 만에 소설로 구현해낸 집념의 작품이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무척 '사실적'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데 있는 듯하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주인공의 대활약상을 그린 것도 아니고, 조선통신사라는 비교적 상징적인 이미지와 그 의의를 과대포장하지도 않을 뿐더러 우리 역사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대서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여 명에 이르는 조선 사내들과 이들을 강호로 안내하는 대마도인을 비롯한 여러 등장인물들을 마치 옆에서 면밀하게 관찰한 듯 생동감 있게 구현해냈음은 물론, 조선통신사의 여정을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재현해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재능 있어 뵈는데 뭘, 꼭 써야 한다. 살해일왕 어쩌고 그건 접어두고 먼저 얘기한 거 말이다. 동고동락한 거. 네 진심이 절반만 발휘되어도 읽을 만하지 않겠느냐?……. 원래 좋은 이야기는 많은 이에게 읽히지 않는 법이란다. 나라와 주군께 충성하고 어버이께 효도하자, 삼강하고 오륜하자, 좋은 놈 잘되고 나쁜 놈 망한다, 사랑은 숭고하다, 이런 도덕 염불로 도배된 이야기나 팔리지. 진짜 이야기는 알아먹는 사람이나 알아먹는 것인지라 안 팔리는 게 당연하다. 자기계발, 처세술 책보다 안 팔리는 게 진짜 이야기야. 대중이 못 알아먹거든. 하지만 진짜 이야기도 필요한 법이란다. 너에게 희망을 건다." / <조선통신사> 1 중에서 60p

 

 

 

   소설은 총 책임자인 조엄을 비롯하여 부사, 종사관, 제술관, 군관, 서기, 역관, 의원, 화원, 소동, 악공, 격군 등 이들이 통신사 일행으로 차출되는 과정에서부터 돌아와 가족을 만나기까지 그 여정의 흐름을 차곡차곡 밟아나간다. 굉장히 많은 인물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분산되거나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유려하게 흘러간다. 그 중 도입부에 통신사로 파견될 아랫사람 수백 인을 차출하는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족히 만 명은 넘는 인파들이 모인 가운데 시험과제가 제시되는데 첫 번째가 부산진지성 남문까지 선착순으로 뛰어 삼백 등까지 통과하기, 벼 한 섬을 지고 오백 보 이상 떨어뜨리지 않고 걷기, 노질하기 등이었다. 통신사로 가는데 이런 시험이 왜 필요하냐며 구시렁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사행단에 참가하면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줄 알았던 이들에게 기대할 것 없을 거라며 면박을 주는 소리도 들리고, 더러는 40년 가까이 용상에 올라 물러날 줄 모르는 영조와 그가 내린 금주령에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까지, 온갖 기대와 한탄이 뒤섞여 들려온다.

 

 

 

   조선의 강렬함을 주지시킬 것이며, 왜국의 사정을 속속들이 살펴봐야 할 이 중대한 사행단의 의미야 더 말해 무엇할까마는 대체 누구를 위한 행차라 할 것인지, 이 수백여 명이 먹고 잘 곳을 마련해야 하는 각 지역에서는 이들에게 지공할 것들을 마련하느라 하루에 백여 금의 비용이 들 지경이니 각종 폐단도 만만치 않다. 신분 차별로 인해 아랫사람들이 비루한 대접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고, 모호한 신분 처지들 사이에서는 서로를 깔보기도 하며, 각 고을의 여기저기서 온 사내들이 무려 오백 여명이 있는 곳이다 보니 감정싸움이 왕왕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 번씩 가무와 놀이판, 이야기판과 같은 흥겨운 광경이나 단합이 이뤄지기도 하니 조선의 풍속과 저마다의 목소리를 매우 사실감 있고 유쾌하게 담아내는 저자의 놀라운 입담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구경은 잘한다. 도대체 이름도 모르겠는 그 진귀한 것들을 얼마나 실컷 봤는지 지금 내 눈이 내 눈이 아니다. 그게 다 어디서 오는 거냐? 불쌍한 팔도 백성들한테 빼앗은 거 아니냐? 다 그만두고 호피, 호랑이 껍데기 말이다, 그것만 열 장은 봤다. 죽여주더라. 호랑이 한 마리 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인민이 개고생을 해야 하냐?

…… 나도 알아. 주는 것만큼 받아온다고. 지들 딴에는 교린을 빙자한 무역이라는 건데, 문제는 지들끼리 나눠 먹는 거잖아. 팔도 백성은 그만두고, 봉물 싸고 나르고 쌔 빠지게 고생한 우리 격군, 아니, 격군 생병신들한테 떨어지는 게 있느냐고? 뭐, 쪼금 주기는 준다던데 받기 전에는 받은 게 아니고. / <조선통신사> 1 중에서 65p

 

 

 

 

 

 

   대마도를 거쳐 강호로 들어가기까지의 여정 또한 참 만만치 않았음을 실감할 수 있다. 통신사가 꾸려지면 배를 타고 왜국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사정으로 인해 조선 사공과 왜 사공이 일치되어야 배를 띄울 수 있음은 물론 각종 관행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한 고장에서 여러 며칠, 수십 일을 지체하는 일도 허다했던 것이다. 문득 박물관이나 국사책에서 본 조선통신사 행렬도가 낯설게 느껴진다. 조선통신사 하면 자칫 조선인들로만 이루어진 행렬인 줄 알기 쉽지만 이들을 인도하는 강호인 천여 명, 배행하는 대마인 2천여 명, 통신사 수천 명, 호행하는 고장인 2천여 명 등 무려 만 명에 달하는 장대한 행렬이고 보니 어찌 온갖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장엄하고 엄숙한 풍경 뒤에 이토록 지난한 여정이 숨어 있었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통신사의 표면 목적은, 임금의 국서-별 거 아니고, 관백 직위 이어받는 것을 축하한다는 몇 문장-를 새 관백에게 전하는 '전명'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외교사절이 오가는 것은 겉으로는 간단명료해 보여도, 속은 시시콜콜 복잡하다. 뭐, 저런 사소한 문제 가지고 저토록 사생결단 우기고 버티고 티격태격한단 말인가. 단순한 목적 안에 오사리잡놈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 <조선통신사> 2 중에서 108p

 

 

어쩌면 다른 까닭은 다 빚 좋은 개살구고, 조선과 일본은 오로지 '초량왜관'을 유지하기 위한 보증수표로 통신사를 보내고 받았는지도 모른다. 통신사가 오가던 시절에 일본은 막대한 은 생산국이었다. 일본의 은이 교토에 모인다. 교토에서 대마도를 거쳐 초량왜관으로 들어간다. 은은 조선 서울로 옮겨졌다가, 중국 가는 연행사 편에 베이징으로 이동한다. 중국 베이징은 비단의 집결지였다. 조선 사신은 비단을 매입하여 귀국한다. 이 비단이 한양을 거쳐 초량왜관으로 들어간다. 대마도를 거쳐 교토로 들어간다. 일본의 최대 산업이 비단 방직이었다. 초량왜관은 중국·조선·일본을 잇는 비단길의 거점이기도 했고, 일본·조선·중국을 잇는 은길의 거점이기도 했다. 조선·일본 간 인삼길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 300p

 

 

 

   제11차 계미사행단의 면면을 살펴보면 사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간혹 총 책임자인 조엄이나 한학 암물통사 이언진, 부사 서기 원중거의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다. 이 소설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토록 낯설고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 인물들을 매우 입체감 있게 재현하면서, 동시에 커다란 역사 뒤에 숨겨진 이면의 역사들을 끄집어내 역사란 결코 한 단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왕후장상이 나오지 않아도, 영웅호걸이 나오지 않아도 이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다.

 

 

 

후대인들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잘 알고 우러러보지만, 원중거의 『승사록』과 『화국지』는 잘 모르고 알아도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 학자의 눈에는 분명 수준 차이라는 게 확연하겠지만, 박지원의 책은 조선보다 앞선다는 선입견이 강했던 중국에 대한 기록이고, 원중거의 책은 오랑캐 금수의 나라로 여겼던 일본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무시당한 바도 크지 않을까?

강호에 머무는 통신사는, 사사건건 무식하고 해괴한 오랑캐놈들이라 깔보려고 애썼다. 한데 어떤지 오랑캐놈들의 격물과 문화가 더 발전되고 볼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을 주체할 수 없었다. / 138p

 

 

 

 

 

 

   책의 말미에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이 적혀 있어 무척 반갑다. 덕분에 <조선통신사>역시 역사소설이라는 장르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또 다른 기록물처럼 여겨진다. 부산에 가면 '조선통신사역사관'도 있다고 하니 언젠가 아이와 손잡고 가봐야겠다. 오랜만에 읽는 역사소설인데 정말 흠뻑 빠져서 읽었다.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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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월급쟁이 부자들 - 투자의 고수들이 말해 주지 않는 큰 부의 법칙
성선화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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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억 월급쟁이 부자들이 된 그들은 누구인가!

대체투자 시장에서 부의 신화를 이룩한 이들이 전하는 투자 성공 법칙!

 

 

   가계대출이 사상 최대로 늘어났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꼬박꼬박 벌어들이는 월급만으로는 내 집 마련과 늘어난 소비생활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시대가 되고 말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주변의 많은 30대 친구들 중 가계대출이 없는 집을 찾는 게 오히려 어려울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끼는 것만으로는 방도가 없고, 월급을 조금이나마 불릴 수 있는 재테크에 눈을 돌리게 되는데 과열된 열기에 비해 냉혹하기 만한 투자 시장을 일반인이 덤벼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월급만으로 100억대를 버는 부자들이 있다는 말이 솔깃하게 다가온다. 바로 <100억 월급쟁이 부자들>이란 제목의 책이다. 대기업 임원급이 아니고서야 어디 100억이라는 말이 월급쟁이에게 가당키나 한 금액인가 싶어 의아하면서도 호기심이 가득 일었다. 책은 이데일리에서 사회부, 건설부동산부, 금융부, 증권시장부를 거쳐 현재는 투자은행(IB) 시장을 취재 중인 경제 전문 기자가 100억대를 벌어들이는 투자의 고수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대체투자 시장의 속성과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의 경제경영서이다.

 

 

 

   여기서 말하는 월급쟁이란 엄밀히 말하자면 대체투자 시장 속에서 성공 신화를 이룬 투자전문가 및 자산운용사들이다. 즉,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우리네 보편적인 월급쟁이와는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박봉에 허덕이며 재테크를 하지 않아도, 대박을 노리며 사업을 하지 않아도, 무엇보다 자기 일에만 목숨을 걸어도, 재테크로는 꿈도 못 꾸는 수백억대 자산가가 될 수 있다'며 이 신시장의 열린 비전을 소개하고 있는 만큼 대체투자, 특히 자산운용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흥미로운 책이 될 듯하다.

 

 

 

투자의 꽃, 대체투자에 대하여

 

 

그는 자산운용사를 투자의 뷔페로 비유했다. 특정 분야만이 아닌 부동산, 항공기와 같은 특별 자산, 발전소와 같은 인프라, 인수금융 등 각 분야에 맞는 금융구조를 활용해 다양한 상품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 194p

 

 

 

   100억 원대에 이르는 성과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이 믿기 어려운 시장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주식, 채권처럼 전통적인 투자가 아닌 사모펀드를 통해 프라이빗하게 투자하는 '대체투자' 시장이다. 대체투자의 대상은 사모펀드, 헤지펀드, 부동산, 벤처기업, 원자재, 선박 등 다양하다. 한국에서는 사모펀드라 하면 인식이 썩 좋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론스타 사건이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론스타라는 외국계 사모펀드가 유동성 위기에 처한 외환은행을 헐값에 산 뒤 비싸게 팔면서 국내 금융의 자존심 외환은행을 뺏긴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기업사냥꾼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져 현재까지도 사모펀드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채권보다 수익률이 높고 주식보다 덜 위험하다는 장점과 함께, 2008년 이후 전통적인 투자 대상인 주식과 채권값이 급락하고 2015년 기준 금리가 1%대로 하락하면서 상대적으로 금융시장의 영향을 덜 받고 수익성이 높은 대체투자로 눈길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때문에 이 시장을 이끌어가는 각종 투자은행 및 자산운용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바로 이들이 100억대의 성과보수를 받는 이른바, 책에서 지적하는 월급쟁이 부자들인 것이다.

 

 

 

   저자는 이 시장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반드시 명망가의 자제도 아니었고, 금수저도 아니었고, 다이아몬드 수저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물론 배경이 좋은 인재들이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될 확률은 높지만, 대체적으로 그들은 '대체투자에 특화된 DNA'를 지닌 인재들이라고 설명한다. 1장에서는 이런 대체투자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인재 유형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이는 '관계 중심형 인재', '신뢰와 도덕적 의무를 바탕으로 한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는 인재', '지속 가능한 열정과 자신만의 관점을 지닌 인재'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신뢰죠.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상력이 가장 중요해요…(중략)...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죠. 항상 마음속으로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어요. 딜을 맡아서 하다가 중간에 어렵다고 포기하고 또 다른 딜을 하고 이런 식이면 안 되는 거죠. 남한테 피해를 주는 거니까요. 책임감을 가지고 신뢰를 쌓는 일이 핵심입니다." / 207p 

 

"처음부터 1조 펀드 IMM PE의 송인준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라고 어려운 시절이 왜 없었겠습니까. 이름도 없던 시절엔 기관투자자 한 번 만나려고 몇 시간씩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펀딩 유치하려고 찾아오는 신생 사모펀드가 한둘이 아닐 테죠. 가뜩이나 바쁜 사람들이 만나 주겠습니까? 무조건 만나 줄 때까지 찾아가는 거죠. 어렵게 만나게 되면 최선을 다해 진정성 있게 대하고, 또 그렇게 믿고 맡겨 준 돈은 열심히 투자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1조 원 펀딩도 가능하게 된 것 같습니다." / 73p

 

 

 

   이를 단순하고 쉽게 설명한 정장근 대표의 말이 재미있다. 그는 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5가지 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끼'다. 이 시장에서 통하기 위한 끼는 '이 딜이 될 것 같다'라는 감각이다. 논리적인 분석만큼이나 잘될 것 같은 촉도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인 까닭이다. 다음으로 필요한 꼴은 '깡'이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갈림길이 수차례 반복되는 와중에 부딪쳐야 하는 이해관계자들의 십자포화를 다 받아낼 맷집, 즉 깡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자질은 '꼴'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좋은 인상을 지녀야 하며 상대방의 호감을 끌어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네 번째는 '끈'이다. 도움을 받기 위해 작정을 하고 만든 인맥보다 평소 좋은 인상으로 알고 지내던 인맥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마지막은 '꾼'이다. 최소 투자금이 몇 십억 원, 몇 백억 원인 이 시장에서 아마추어적 태도로 인한 손실은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에게 큰 손실을 끼치므로 프로답게 자신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자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100억 월급쟁이 부자들의 성공 신화

 

 

   2장에서는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성공비결을 소개한다. 사모펀드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알려진 송인준 IMM PE 대표를 비롯하여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조갑주 이지스자산운용 대표,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부사장, 이승훈 한국교직원공제회 해외 대체투자 팀장, 강영구 이지스자산운용 해외부문 대표, 이연재 LB자산운용 부장, 김소연 노무라이화자산운용 대표, 곽동걸 스틱인베스트먼트 대표, 유니슨캐피탈의 신선화 파트너의 성공 신화를 읽을 수 있다. 전 직원의 성과를 최대한 공평하게 나누려는 인센티브 시스템 도입과 개성 있고 창의적이며 자율적인 분위기의 기업 문화, 무엇보다 돈을 버는 데 목표를 둘 것이 아니라 시장을 선도해나가다 보면 돈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 마인드 등 이들의 담대하고도 남다른 노력은 분명 배울 점이 많다.

 

 

 

사실 이 딜은 재밌는 해프닝도 많습니다. 2차 입찰까지 해서 가장 높은 가격을 써냈고 우선협상 대상자에 선정됐지만 현지 운용사인 BNP파리바는 '한국투자증권이 과연 펀딩을 클로징 할 수 있을까'라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당장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날아갔죠. 그들은 안심시키기 위해 그동안 투자한 트랙레코드를 설명하고 증권사 이름에 들어간 '한국'이란 단어가 함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 161p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3장에서 주로 다뤄지는데,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대체투자 시장에 대한 정보들이다. 이를 테면 K뷰티의 성공 신화를 선보이고 있는 화장품 회사들 중 카버코리아의 AHC가 베인케피탈의 매각을 기점으로 중국 시장에서 급성장한 사례, 블루홀의 신작 배틀그라운드의 성공, 전지현이라는 배우를 광고모델로 발탁하며 이후 인지도가 급상승한 BHC치킨과 아웃백 토마호크스테이크에서 살펴본 성공 일화, 할리스커피, 야놀자 등을 통해 한국대체투자 시장과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스토리를 읽을 수 있다. 혹시 대체투자 시장에 관심이 있어나 자산운용가를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마지막 4장에서 모호하거나 어려운 용어와 개념들을 다시 정리하고 있으니 이에 도움을 받아보면 좋을 듯하다.

 

 

 

 

 

 

   이렇듯 <100억 월급쟁이 부자들>은 최근 경제용어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대체투자시장에 대한 장벽을 허물 수 있는 계기가 된 책이었다. 여전히 어려운 것은 사실이고, 그들만의 리그이자 일반인들이 선뜻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시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경제 시장의 흐름과 새로운 활력을 모색할 새로운 시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볼 수 있는 독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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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 잡는 아이 밥상 - <유아식판식> 봉봉날다의 밥 잘 먹는 아이 만드는 특급 노하우!
김주연 지음 / 비타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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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잘 안 먹는 우리 아이 편식하지 않고 잘 먹는 아이로 거듭나는 비법!

가족의 밥 먹는 풍경을 달라지게 만들어줄 공감 육아 요리서!

 

 

   나는 오늘도 3살 된 아들에게 "요리 못 하는 엄마라서 미안하다!"를 속으로 외치고 있는 초보 엄마다. 부끄럽게도 결혼 전에 된장찌개 한번 제대로 끓여보지 못한 채로 시집을 왔지만, 타박하지 않고 해주는 것 먹고 알아서 밖에서 해결하고 와주는 신랑 덕분에 부족한 요리 실력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이유식에 들어갈 시기가 되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이마저 대충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인 까닭이었다. 그때부터 여러 책을 뒤적이고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아가며 손수 육수를 내고 매번 다른 재료들을 넣어서 정성껏 만들어 먹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요리 실력도 미약하게나마 느는 듯했다.

 

 

 

   문제는 유아식에 들어가면서 시작되었는데, 이유식 때 워낙 다양한 재료를 접해본 까닭에 특별히 거부감 없이 잘 먹던 아이가 두 돌 무렵부터 이맛살을 찌푸리며 반찬을 뱉어내거나 적당히 먹었다 싶으면 일부를 남긴 채로 식탁 의자에서 내려오려 떼를 쓰는 것이었다. 더욱 억울한 것은 어린이집에서는 밥을 두 그릇 이상 먹고 김치에 깍두기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잘 먹는다는 점이었다. 결국 내가 해준 반찬이 맛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괜한 자괴감에 그때부터 내가 잘 하지 못하거나 하기 어려운 반찬들은 반찬가게에서 사오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재료들 위주의 식단을 챙기기 시작했다. 집에서 못 먹어 본 반찬들은 어린이집에서나 외식할 때 먹이면 되겠지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때문에 아이가 밥상을 거부하는 일은 사라졌지만 나는 계속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 걸까 한편으로 걱정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뭔가 변화를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네이버 커뮤니티 맘스홀릭베이비에서 '봉봉날다 엄마일기'를 연재하며 엄마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저자의 <편식 잡는 아이 밥상>이란 책이 눈에 띄었다. 대한민국의 엄마들이라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한 대표 육아 커뮤니티에서 연재를 한 데다 다수의 육아서를 출간한 경험까지 있으니 우리 아이의 편식 잡는 습관을 들이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매일 같이 끝이 보이지 않을 밥상 전쟁을 치르고 있을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들의 사정을 공감하듯, 위로하듯 편식이 심했던 아이와의 사정을 진솔하게 써나감과 동시에 편식하지 않는 아이로 거듭나게 하는 노하우를 전수한다.

 

 

 

부모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도 바뀌지 않는다

 

 

   우리 아이가 편식을 하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지독하게도 먹지 않으려 하는 아이에게 안 해본 것 없이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고 굶겨도 보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입이 짧고 먹는 것에 욕심이 없는 아이에겐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잘 먹지 않는 모습이 자신과 남편을 꼭 닮아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밥 안 먹고 편식하는 여자와 밥 안 먹고 군것질하는 남자가 만나 아이를 낳았으니 아이 역시 밥을 거부하고 심한 편식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부모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일단 부부가 함께 식습관을 바꾸고, 아이에게 좋은 음식을 해주려고 노력하기보다 안 좋은 음식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일을 우선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내 아이를 자세히 관찰하여 먹지 않는 방법과 이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주변의 말들이나 잠깐 편하고 싶은 마음에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소신을 지키는 단호함으로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에게 좋은 음식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안 좋은 음식들을 하나씩 제거해주는 게 우선이다. 어릴 때부터 건강하지 못한 음식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그 노출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바로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잠깐 편하고 싶은 마음에 부모 스스로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그 후에 감당해야 하는 결과는 생각 이상으로 크고 힘들지도 모른다. / 25p

 

 

 

   아이가 편식을 하는 원인으로 저자는 아이의 기질에 따른 다양한 유형을 언급한다. 섬세하고 예민하여 까다로운 기질을 가진 아이, 강압적인 식사 분위기가 힘겨운 아이, 모유나 우유의 의존도가 높은 아이, 심리적 혹은 건강상의 문제를 겪고 있는 아이 등 여러 유형에 따라 대처하는 법도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 중 까다로운 기질을 가진 아이에게는 반드시 억지로 먹이지 않을 것을 권한다. 아이가 싫어하는 음식을 아이 입에 억지로 넣는 순간 아이의 섬세한 감각 기관이 들고 일어나 강하게 거부하려 들 것이고 이것이 오랫동안 아이의 기억에 남아 아예 음식을 멀리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건 먹고, 먹기 싫은 건 먹지 않을 기본 권리가 내 아이에게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강압적인 분위기가 힘겨운 아이의 경우에는 우리 집 식사 분위기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잘 먹는 것보다, 편식하지 않는 것보다, 즐거운 식사가 기본이며 '집밥'에 대한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이 아이의 식습관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억지로 먹이는 일이다. 오감이 발달하고 섬세한 아이일수록 억지로 입안에 들어온 음식에 대한 불쾌감이 오래 남으며, 심할 경우 그 음식과 영영 이별하는 사태까지 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억지로 입안에 들어온 음식에 대한 단 한 번의 경험으로 그 음식만 보면 괴로운 감정을 떠올리며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모든 감각이 그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단단히 기억한다. / 34p

 

 

'일단 먹고 뱉기'는 아이가 맛의 즐거움을 서서히 알아가는 좋은 계기가 되어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즐거움을 알고, 그 음식을 또 먹고 싶어 하기도 했다. 물론 뱉거나 빼놓았던 음식을 영영 포기한 건 아니었다. 일단 음식을 골라내고 나면 아이가 먹기 힘들어 하는 음식이 뭔지, 어떤 조리법을 싫어하는지를 자세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 음식은 아이가 좋아하는 형태로 바꿔서 조리해 재도전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안 먹던 음식을 제법 잘 먹게 되기도 하는 기적이 따라와 주었다.

아이에게 스스로 싫은 음식을 골라내거나 뱉어낼 수 있는 자유를 줘보자. 그다음 엄마는 골라놓은 그 음식을 더욱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된다. / 53p

 

 

 

   책에는 편식을 잡기 위한 9가지 방법이 수록되어 있는데 외식과 간식 줄이기, 냉장고 정리하기, 매일 다른 재료로 색다른 요리에 도전해보기, 유아식판식 하기, 안 먹는 재료, 하루 한 번 구경시켜주기, 오감놀이&요리놀이 하기, 부부간의 대화와 합의를 통해 우리 집 식문화 함께 개선하기, 직접 채소를 키워보기, 놀면서 즐겁게 밥 먹는 법을 순차적으로 설명한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마트에 가서 아이가 직접 자신이 먹을 예쁜 식판을 고르게 하고, 그날 요리할 재료를 아이와 함께 골라보는 방법이었다. 또 아이가 직접 식재료를 다듬어보고 오감놀이 등 친숙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함으로써 그것이 음식이 되어 자신의 밥상 위로 올라오는 과정을 참여할 수 있게 해보라는 저자의 조언은 꼭 실천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책을 읽은 후, 나는 아들이 어린이집을 하원 하는 길에 함께 마트에 들러 애호박을 직접 고르게 하고, 계산도 한 뒤 집에 돌아와서는 유아용 앞치마를 매고 케이크 자를 때 쓰는 칼을 이용해 잘라보게 해보았다. 아들은 신이 나서 끝까지 본인이 직접 자르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섰고 책의 뒷편에 수록된 '편식 잡는 아이 반찬 레시피' 중 새우젓호박볶음을 함께 만들어보았다. 불 앞은 위험해서 멀찍이 떨어져있게 했는데 그 사이 어린이집에서 사용한 식판을 자신이 설거지하겠다고 나서는 기특한 모습을 보였을 뿐더러, 그날 밥상에 올려준 새우젓호박볶음을 다 먹었다. 평소에는 흐물거리는 호박의 느낌이 싫어서 뱉어내곤 했는데, 이날은 맛있다고 이야기하며 즐겁게 먹어주었다. 이 사소한 경험 하나가 아이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식판 한 칸은 무조건 '도전의 칸'으로 정했다. 아이가 절대로 먹지 않는 반찬을 올리는 칸이다. 산나물, 마늘종, 미나리무침, 연근조림, 우엉 등 아이의 거부가 심한 반찬들을 올렸다. 처음에 아이는 그쪽에는 젓가락도 대지 않았다. "나 이거 안 먹는데 왜 줬어?"라고 따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너그럽게 말했다. "어, 식판 칸이 남아서 준거야. 먹기 싫으면 그냥 구경만 해도 돼." 아이는 정말 구경만 하고 끝냈다. 나도 괜찮았다. 어차피 구경하라고 올린 반찬이니까…(중략)… '싫어하는 음식 매일 구경하기'를 바녹하다 보면 강한 거부감도 어느 순간 익숙함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 78p

 

 

 

   끝으로 저자는 밥상 위에서 "뱉지 마", "밥 안 먹으면 버릴 거야", "밥 먹고 나면 맛있는 사탕 줄게"와 같은 말들은 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특히 밥을 안 먹으면 버린다는 식의 협박은 언젠가 아이 스스로 먹기 싫은 밥은 버려도 된다고 여기게 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밥을 먹고 나서 아이가 좋아하는 군것질을 주겠다는 약속은 부모 스스로가 달콤한 군것질이 아이의 목표 대상이 되게 하는 것이며, 이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는 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요즘, 밥을 먹을 때에도 아이에게 영상을 틀어주고 밥을 먹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단호하게 영상물과 스마트 기기를 끊고 식사의 즐거움만 느끼게 해주기를 조언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잠시 부모가 편하자고 하는 행동들인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오히려 아이의 습관을 망치고 부모의 고민만 더욱 지연시키는 결과가 될 것임을 유념해야겠다.

 

 

 

 

 

 

   <편식 잡는 아이 밥상>은 오늘도 매일같이 밥상 앞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엄마와 아이들을 위한 좋은 처방전 같은 책이었다. 더불어 만들어보기 쉽고 맛좋은 반찬 레시피도 수록되어 있어 이를 참고해 아이 식단을 보다 다채롭게 구성해볼 수 있는 것 또한 좋았다.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욱 많았던 만큼 내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꾸준하게 아이의 편식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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