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
김나랑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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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길 위에서 나를 만드는 여정을 떠나다!

쿠바에서 콜롬비아까지, 매력적인 남미의 세계로 빠져들다!

 

 

 

   이 땅의 어딘가가 아닌 멀고도 낯선 이국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저마다 가슴에 품고 있는 어떤 이유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우연히 보게 된 아름다운 풍경 사진 한 장의 황홀함 때문이라든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떠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 때문이라든지, 여기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도피하듯 당장의 절박한 심정을 해소할 낯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든지 등등의 이유 같은 거 말이다.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의 저자 김나랑은 아마도 후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마치 누군가가 나의 온몸을 부여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것처럼 중심을 잡고 서 있기 버거울 때가 있다. 일상에 짓눌리다 못해 몸과 마음이 송두리째 찢어발기는 듯한 그런 느낌말이다. 그럴 땐 어디론가 삶의 중심을 확 이동해 버리고 싶다. '여행'이라는 이름을 빌려가며. 아마도 저자 역시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13년간 잡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유명 잡지인 《보그》 코리아의 피처에디터로 있는 그녀는 남미를 떠날 당시엔 카카오톡 대화창이 온통 절망과 험담으로 이뤄져있을 정도였다고 고백한다. 30대 중반에 이르러 회사를 퇴사하고, 병원에 다니며 심신이 지쳐 있던 그녀는 그저 쉬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왕 쉰다면 낯선 곳으로 가보자!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찾을 수 있겠지 하는 심정으로 남미 여행을 떠났다고 말한다.

 

 

 

내 여행의 목적은 분명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나를 불확실성의 세계로 밀어 넣고 싶었다. 지친 몸으로 길 위에 서고 싶었다. 현실로 닥치니 나는 나약했다. 죽음마저 느꼈다. 하지만 겪어 냈다. 한 우주비행사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경험으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내게 우주여행은 없을 테니 다른 경험을 최대치로 하고 싶었다. 아름다움을 보는 경험. 그것이 인생을 바꿀지는 알 수 없지만, 보지 않은 나와는 1밀리미터라도 다를 것이다. / 16p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는 이렇듯 불확실성의 세계, 낯선 길 위에서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싶었던 저자가 2월에서 7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다녀온 남미여행기를 담은 여행에세이다. 69호수의 장대한 아름다움 앞에서 여행자의 마음가짐과 이 여행의 목적을 가다듬었던 첫 여행지 페루를 시작으로 하여, 황홀하지만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감동의 여행지 우유니 사막으로 익히 알려진 볼리비아를 거쳐, 젊음과 예술에 대한 욕망을 일깨워줬던 칠레, 세계 5대 미봉으로 어마어마한 절경을 자랑하는 피츠로이 봉우리가 있던 아르헨티나, 전자제품 면세 지역으로 휴대폰 구매를 위해 잠시 들렸던 파라과이, 언덕 위의 예술상으로 유명한 브라질, 너무나 아름다운 키토의 구시가지에 매료되었던 에콰도르, 아바나의 따뜻한 촉감이 인상적인 쿠바,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의 마음을 쏙 빼앗았던 콜롬비아까지. 남미가 아니라면 어디서도 평생 보지 못했을 법한 풍경과 낯선 길, 오다가다 만난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을 마주하며 저자는 자신이 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이 투어의 일정은 콘도르 말고 아무것도 없단다!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믿는 것 하나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기뻤다. 그간 원하지도 않고, 딱히 관심도 없는 것에 시간과 돈을 쏟지 않았던가. / 32p

 

 

 

 

 

 

   개인적으로 여행에세이라 하면 기대하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여행자 자신만이 느낀 그곳에 대한 '이미지'와 '감각' 같은 것들이다. 여행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감동 어린 찬탄이 아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여행지라 하더라도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예민하게 느껴서 새로운 감각으로 독자에게 또 다른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 말이다.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를 읽다보면 그런 독자의 니즈를 충족시킬 만한 인상적인 문장들이 다소 엿보인다.

 

 

 

라틴아메리카 미술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오페라 극장을 개조한 엘 아테네오 서점, 에비타 페론의 묘지가 있는 레콜레타, 저녁이면 긴 줄을 서는 150년 된 카페 토르토니, 잘 빠진 상점들이 있는 팔레르모 소호만 가고 끝났다면 부에노스는 그저 '화려한 미녀'나 '남미의 파리'였을 거다. 내게 부에노스는 남미의 가난한 자들이 한 가닥의 희망을 보고 모여드는 도시이자, 그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기엔 자신의 형편도 넉넉지 않아 무뚝뚝할 수밖에 없는 미녀였다. 미모는 여전하지만, 슬픔이 서린. / 193p

 

 

아바나를 연상할 때 또 하나 생생한 기억은 '따뜻한 촉감'이다. 만 건너편에는 아바나를 바라볼 수 있는 엘 모로라는 지역이 있다. 모로 요새와 산 카를로스 요새가 있는 구역이다. 이 요새를 찾아 노을 지는 아바나를 바라봤다. 신발을 벗어 맨발로 요새 근처를 거닐었다. 뜨거운 한낮에 달궈진 돌이 이제야 숨을 쉬며 조금씩 식어 가고 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럽기까지 했다. 돌 위에 누워 노을을 보자 또 한 번 아바나를 사랑하게 됐다. 1달러, 1쿡을 외치며 혈안이 된 자본주의 총아들의 거친 눈빛이 씁쓸하나, 아바나는 낭만이다. / 247p

 

 

 

 

 

 

   책을 읽다보면 여행지의 인상을 보다 많이 좌우하는 것들이란 뜻밖에도 그녀가 머무른 게스트하우스에 속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이란 건 해당지에서 먹고, 보고, 자는 것들까지 포함한 모든 것들일 테니 특이할 만한 점은 아니겠으나, 흥미롭게도 책을 다 읽고 난 후 기억에 남는 것들이 대부분 그녀가 머문 게스트하우스에서 겪은 일들이란 점은 좀 남다르게 다가온다. 배낭 여행자이다 보니 아무래도 호텔과 같이 정밀한 체계를 갖춘 숙박업소에서 지낼 수가 없는 까닭에 그녀가 머무르는 곳은 대부분 에어비앤비 혹은 즉석에서 흥정으로 구한 숙소들이 대부분이었고, 운영자와 가족들의 생이 머물고 있는 곳이기에 좀 더 그들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같은 배낭 여행자들만이 주고받을 수 있을 법한 여행자의 감성과 때로는 얼굴을 붉혀가면서까지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는 무수한 감정들 또한 여행지에 대한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하루는 조식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남미 청년이 기타를 쳤다. 치다가 노트에 필기를 하고 다시 치기를 반복했다. 작곡을 하는 듯했다. 가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같은 익숙한 곡을 연주했다. 아름다웠다. 아침의 남는 시간에 '할 일'이 있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 타인의 인정과 상관없이 온전한 자신이 존재하는 것. 나도 몰두할 예술이 있길 바랐다. / 62p

 

 

남자가 리드하는 탱고에서 프로페셔널한 그의 스텝은 나를 빠져들게 했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탱고에선 남자가 잘 춰야 해. 넌 따라오면 돼." 그러면서 몇 가지 스텝을 알려 주었다. 신기하게 난 탱고 동작을 자연스레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싸움을 말리던 흑인 친구, 콜롬비아에서 온 환전상, 게스트하우스에서 청소하는 여성까지. 우린 동그랗게 모여 음악에 몸을 푸는 연습부터 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음악에 몸을 맡겨 봐." 흑인 친구는 꽤 췄는데,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저음으로 스텝을 외웠다. "우노(하나), 도스(둘), 뜨레스(셋)…" 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싸우는 친구들에게는 뭐라고 했을까. / 191p

 

 

 

   유독 마지막 에필로그의 한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한낱 여행객인 제게 베풀어 준 친절, 미소, 그 땅이 가진 아름다움으로 저는 전보다 조금 나아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생은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것들의 연속이며, 그것을 잊고자 떠난 여행조차 그러한 것들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을 내딛는 것, 그 용기와 도전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보다 완전함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 가만히 있는 것보단 100배 나은 것 같다는 그녀의 이 경험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의지가 될지 자연스레 드러나게 마련일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것이 모든 여행자가 원하는 진짜 여행의 목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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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영화 한 편 씹어먹어 봤니? - 학력도 스펙도 나이도 필요없는 신왕국의 코어소리영어
신왕국 지음 / 다산4.0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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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씹어먹기'로 고교자퇴생에서 UC버클리 명문대생이 된 영어 훈련 노하우!

영어 한 편 반복 훈련으로 귀가 트이고 입이 트이는 실전 영어 학습법!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영어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낸 지 오래였다. 직장에서 근무를 할 때 외국인 고객을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눠야했던 일을 제외하곤 영어를 사용할 일이 거의 전무했다. 그런데 갑자기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고야 말았다.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아이가 영어 동영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들리는 단어나 회화를 따라 하기도 하고, 영어 동요를 부르다가 막히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가 종종 생겨나는 것이었다. 귀와 입이 열려있지 않은 엄마로 인해 아이의 호기심과 관심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아직 아이가 어리니 이 틈에 엄마인 내가 먼저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어떤 교재로, 무엇부터 공부를 해야 하나. 이제 와서 문법부터 공부할 수도 없고, 수능 공부하듯 문장을 읽고 해석하는 일에 매달릴 수는 더더욱 없었다. 단어 공부부터 해야 하나, 회화 공부를 해야 하나, 아이의 수준에 맞춰서 기초 공부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 시중에 영어 관련 도서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어떤 책을 골라서 공부를 해야 할지 막막해하던 찰나였다. 마침 '영화 한 편'으로 시작해 영어를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다소 과장된 듯하지만 그럼에도 참신한 재미가 느껴지는 책이 출간되어 눈길을 끌었다. 제목도 독특하다. <근데, 영화 한 편 씹어먹어 봤니?>란다.

 

 

 

고교자퇴생이 영어 공부에 매달리기까지

 

 

   저자는 'wait a second'를 '기다려, 하나 둘'이라고 해석할 만큼 반에서 영어를 가장 못하는 아이, 영어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아이였다. 공부는커녕 복싱에 관심을 가졌고, 학교 짱과의 싸움에 휘말린 뒤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영어로 동시에 원어민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세계적인 명문대 UC버클리의 학생이며, 동시에 영어 강사가 되었다. 너무나 상반된 이력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형편이 어려운 와중에서도 자퇴생이 된 아들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셨던 부모와 그 마음을 뒤늦게야 깨달은 저자는 다시 공부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 중 그의 흥미를 끈 과목이 있었으니 그것이 뜻밖에도 영어였다고. 시중에 나온 다양한 영어 공부법에 대해 알아보다가 그와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게 되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영화를 보며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었다. 이때 처음 고른 영화가 바로 애니메이션 <라푼젤>이었다.

 

 

 

   영화 씹어먹기의 시작은 일단 어떤 영화를 고르는가가 핵심인데, 저자는 <라푼젤>과 같이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할 것을 권한다.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까닭에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을 뿐더러 대사가 깔끔하게 들린다는 장점이 있다. 애니메이션의 대사가 일반 영화의 대사만큼 실제 영어 소리와 거의 같다고 할 수는 없으나, 갓난아이가 부모의 또박또박한 말투를 통해 처음 말을 배우는 것처럼 첫 영화 씹어먹기는 분명한 말투와 대사의 전달력이 높은 애니메이션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를 더 붙이자면 애니메이션은 화면 속 상황이 대사와 딱딱 맞아떨어지다보니 자막을 보지 않아도 대사의 뜻을 유추할 수 있고 그러면서 문법과 단어를 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라푼젤>을 무자막 상태로 재생하면서 영화 대사를 정확히 듣는 데 집중했다. 처음엔 10개는 고사하고 100개 중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어려운 문장의 경우 900번에서 1000번 가량이나 반복하고 또 반복해 들을 정도로 집요하게 대사를 들었고, 그 이후에는 그 대사를 따라 말했다고 한다. 이때 대사가 나오는 것과 동시에 말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는 문장을 익힌다기보다 소리 자체를 스캔해 낸다는 느낌으로 최대한 정확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영화 대사를 반복해서 듣기, 그리고 반복해서 따라 말하기. 이것이 그가 한 공부 방법의 핵심이었고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한다. 놀라운 점은 그러는 사이 따로 암기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영어 문법이 이해되고, 아는 단어도 많아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시작한 공부법이 그에게 큰 흥미를 주었고, 영어 공부에 완전히 푹 빠져 버렸다는 점이었다.

 

 

 

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받을 때는 현재 시제는 뭐고 현재완료 시제는 뭔지, 이 문장에서 이 단어는 무슨 뜻이고 저 단어는 무슨 뜻인지 암기해야 했죠. 반면, 영화를 보며 영어 공부를 할 때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화면 속 상황을 보면 등장인물이 과거를 회상하는지 미래를 예상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말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 26p

 

 

 

   저자는 <라푼젤>에 이어 <슈퍼배드>, <미운 오리 새끼와 랫소의 모험>, 이 세 편의 애니메이션으로 영화 씹어먹기를 한 다음, 일반 영화로 넘어갔다. 일반 영화들 중에 그가 제일 처음 고른 영화는 <타이타닉>이었는데,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좋아했던 영화였기에 이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그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씹어먹기를 한 끝에 이제 어떤 애니메이션을 보아도 모든 대사가 잘 들릴 정도로 자신감이 생겼는데, 어찌된 일인지 일반 영화는 기대만큼 대사가 잘 들리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일반 영화의 대사는 어린이용인 애니메이션의 대사보다 덜 또박또박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애니메이션을 볼 때보다도 더욱 영어 소리의 특성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한국어와 구별되는 영어만의 발성, 강세, 리듬에 더욱 집중하면서 보다 실전 영어에 가까이 다가가며 애니메이션을 볼 때와 동일한 방법으로 대사를 반복해서 듣고 또 반복해서 따라 말했다. 이어 <어거스트 러쉬>를 보며 또 한번 영화 한 편을 통째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 이르자, 그는 놀랍게도 한국 영화의 한국어 대사를 듣고 있는 것처럼 영어 귀가 완전히 트이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며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고작 6개월 만의 일이었다.

 

 

 

 

 

 

닥치고 듣기! 영어 듣기가 되어야만 영어 말하기도 된다

 

 

   영화 씹어먹기를 통해 영어 훈련을 한 끝에 저자가 강조해마지 않는 것은 바로 영어 훈련의 기본은 '듣기'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우리 뇌, 그리고 영어 소리의 특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아이가 모국어를 유창하게 하게 되기까지 아이의 뇌는 '엄마'라는 단어를 듣고(소리 듣기), '엄마'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고(소리 이해하기), '엄마'라는 단어를 말하며(소리 내기), '엄마'라는 단어를 운동 피질에 저장하기(소리 저장하기)의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모국어를 익힐 때는 듣기부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외국어를 익힐 때도 이와 같은 순서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우리 뇌는 듣기부터 시작해야 새로운 언어를 유창하게 익힐 수 있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 시절부터 오랫동안 영어 공부에 매달려왔음에도 아직까지 대화 조차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애초에 접근부터 잘못되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영어를 잘하려면 절차적 기억을 쌓아야 하고, 절차적 기억을 쌓으려면 실제로 영어를 훈련해야 하고, 실제로 영어를 훈련하려면 영어 듣기부터 해야 한다. / 65p

 

 

진짜 문제는 이미 영어를 배울 시기를 놓친 것이 아니라, 예전에 모국어를 습득했을 때와는 너무 다른 방식으로 외국어 공부를 한다는 것입니다. 모국어를 습득했을 때와 같은 과정을 거쳐 외국어를 습득하면 됩니다. 듣기부터 한 다음에 말하기를 하고, 귀와 입에 익을 때까지 반복해서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화 씹어먹기이기도 하죠. / 192p

 

 

 

   이렇듯 <근데, 영화 한 편 씹어먹어 봤니?>는 나와 같이 영어 공부를 시작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중점으로 공부해야 할지 막막한 이들을 위해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조언들이 수록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영어 훈련법에 주목하기도 하면서, 고교자퇴생이 영어를 극복하고 능통해짐으로써 미국 명문대생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자기계발서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가 영화 씹어먹기로 명문대에 재학 중인 여느 유학생보다 유창하고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는 결국 인내와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을 통해 보여준 그의 노력은 영어에 자신이 없거나 늦었다고 생각하며 포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자극과 동기가 될 만한 살아있는 증거가 되어 주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강조 드립니다. 여러분이 똑똑하지 않다면, 돈이 많지 않다면,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럴수록 오히려 영어에 도전하세요. 그리고 영어를 정복하세요. 영어는 그런 조건들을 하나도 갖추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니까요. / 212p  

 

 

 

   시중에 나와 있는 별별 영어 학습법을 다 써봤지만 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의 방법을 한 번쯤은 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나 역시 애니메이션 한 편을 선택해 늦기 전에 얼른 도전해볼 생각이다. 이게 되겠어? 하던 생각이 이게 되네? 하는 기적을 나 또한 맞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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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공부지능 - 3세부터 13세 부모가 꼭 알아야 할 공부 잘하는 머리의 비밀
민성원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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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을 위한 공부지능 개발 실천서!

우리 아이의 잠재된 공부지능을 끌어내는 자녀교육 필독서! 

 

 

   몇 주 전에 SBS에서 방영한 '사교육의 딜레마'편을 시청한 적이 있다. 사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인지, 시킨다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얼마의 비용으로 최고의 공부 효율을 이끌 수 있을 건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던 기획이었다. 많은 부모들이 머릿속으로는 사교육 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앞서지만 우리 아이만 뒤쳐지는 것은 아닌지, 뒤늦게야 진작 시키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사교육 시장을 배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와중에도 사교육 없이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 뚜렷한 교육 철학으로 소신껏 아이들을 키워낸 사례도 있어 눈에 띈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교육을 시키지 않거나 시키더라도 필요에 따라 제한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는 부모 나름의 교육 소신과 객관적 지식이 선행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막연히 공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지능과 재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역할은 '가정환경'과 '부모의 역할'에 달려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명확하게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과도한 사교육 시장에 우리 아이를 들이밀고 싶지 않고, 그럴 형편도 되지 않는 까닭에 이왕이면 효율적으로 교육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과 부모인 내가 먼저 지도해줄 수 있도록 효과적인 공부 방법에 대해 알아두는 게 현명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때문에 아이가 세 살이 될 무렵부터 공부학습법 관련된 책들을 통해 다양한 의견과 도움을 구해보고자 하는 시도들을 하게 되었다. 마침 여러 방송 매체에서 교육전문가로 정평이 난 민성원의 <아이의 공부지능>이 유독 관심을 끌었다. 전작인 <민성원의 공부원리 패턴학습법>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이 이르기까지 최적의 학습 전략과 공부 효율을 이끄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 소개한다면, <아이의 공부지능>은 공부지능을 이끄는 뇌의 비밀과 어떻게 하면 공부 잘하는 아이로 이끌 수 있을 것인지 보다 원리적인 차원에 집중한 자녀교육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공부지능'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공부'의 개념과 학업성취나 성공을 예언하는 지수인 IQ를 융합한 새로운 개념이다. 즉, IQ가 낮은 데도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을 보면 IQ 외에 공부를 잘 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는데, 이것이 공부지능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공부지능을 가리켜 IQ, EQ, 집중력, 창의력을 아우르는 것으로 이것이 고루 발달한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할 것으로 기대되며 부모의 관심과 노력이 만든 공부지능은 타고난 머리를 뛰어넘을 것이라 말한다. 각 요소들은 유전적 요인만큼이나 환경적 요인만으로도 얼마든지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인 연구와 사례로 설명하며 부모의 역할이 공부지능 개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함을 시사한다.

 

 

 

 

 

 

생체연령이 아닌 정신연령에 맞는 적기의 조기교육

 

 

   부모의 역할이라고 하니, 우리 아이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가장 알맞은 교육과 이에 해당하는 교육 방법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너무 이른 조기교육도, 그렇다고 뒤쳐지는 것도 원치 않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것이 가장 고민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해서 똑같은 교육을 시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신체연령이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정신연령이 초등학교 6학년이라면 6학년 수준의 공부를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신연령에 따른 '적기'의 교육이다. 능력은 아무 때나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각각의 능력마다 적은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적기가 있다. 흔히들 조기 교육을 많이 시키는데, 적기이면서 조기일 때에야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외국어 교육의 경우는 정신연령이 8세가 되기 이전에 배우면 좀 더 쉽게 익힐 수 있고, 초등 6년은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드는 최적의 시기로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때이다. 이때는 어떤 지능이 강점이고 약점이라고 섣불리 단정 짓지 말고 '공부는 즐거운 일'이란 인식을 심어주며 다양한 영역에서 개발 가능성을 열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아이들의 공부지능을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적기에는 어느 한두 가지 두각을 나타내는 능력에만 집중해서는 곤란하다. 여러 공부지능 중 강점 지능은 더욱 강화하고, 약점 지능은 보완하려는 노력을 병행해 각 부분별 지능 간에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지능 개발 적기는 충분히 긴 시간이므로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시기에는 오히려 IQ, EQ, 집중력, 창의력 이 4가지 영영역을 골고루 개발시키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한다. / 72p

 

 

사고력 수학을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것은 중학교 이상인 아이들에게나 가능한 얘기다. 적어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뇌를 발달시키는 데 사고력 수학보다는 연산이 효과적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단어를 많이 외우는 것이 지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글쓰기와 같이 표현하는 훈련은 중고등학교 이후에 하는 것이 좋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논술 교육 역시 중학교 이후에 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 77p

 

 

 

 

 

 

공부지능 개발의 4단계

 

 

   저자는 공부지능을 개발하는 원칙을 크게 4단계로 나눈다. 발견, 반복, 강화, 실현이다. 공부지능을 개발하는 첫 번째 원칙이 '발견'인 것은 공부지능 영역을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적기 내에서 가능한 일찍 개발을 시작해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체계적으로 공부지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아이의 재능을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늘 가까이서 관심을 갖고 아이를 지켜볼 수 있는 부모다. 또한 아이의 재능과 강점 지능을 발견하는 것은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때 부모가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보는 객관적인 평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필요 이상으로 비관적으로 보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아이의 강점 지능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자극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관심 있게 지켜보다 보면, 각 분야에 따른 아이의 재능이나 강점 지능을 보다 빨리 확연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 자극, 피아노 치기와 같은 음악 자극, 그림 그리기나 블록, 찰흙 같은 장난감 외에도 오감을 동원해가며 읽는 독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개발하기 어렵다는 공간지각능력의 경우는 충분한 야외활동과 프뢰벨의 '가베'와 같이 기하학적인 도구를 활용한 놀이가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인 '반복'은 공부지능을 높일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이다. 뇌를 발달시키는 시냅스의 경우 그 수가 무한정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는 시냅스는 없어지고 자주 반복해서 쓰면 더욱 발달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반복이야말로 더 높은 수준의 성취를 위해 창의적인 사고를 가능케 하고 후천적인 노력으로 타고난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까지 공부지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때는 단순 반복이 아니라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이 중요하다. 연산의 경우 학습지를 통해 유사한 문제를 무조건 많이 풀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집중해서 정확하게 빨리 풀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 아이의 정확성과 속도가 향상되었다면 늦은 수준의 연산 학습지는 밀어두고 과감하게 다음 수준의 연산 교재를 선택해야 한다. 이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 아이가 오를 수 있는 최고 단계까지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을 '강화'라고 한다. 강화 단계에서는 반복을 하면서 점차 난이도를 높이고 반복이 끝난 후에는 꼭 얼마만큼 좋아졌는지 살펴보고, 아직도 계속 안 좋은 점이 무엇인지 찾아서 또다시 반복하는 피드백이 중요하다. 끝으로 '실현'을 통해서는 즐거운 경쟁과, 흉내 내기, 아이의 수준보다 조금 어려운 과제를 통한 관심 유도, 인정받고 싶다는 아이의 욕구를 채워줌으로써 의욕이라는 스위치를 켜주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현재 수준보다 1정도 높은 수준이 중요한 이유는, 그 정도 수준이어야 도전 의식이 생기고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능력을 더 높은 수준으로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승수 효과'다. 승수 효과는 작은 성취에서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고, 작은 성공 경험들이 모이고 모여 커다란 성취를 만들어내는 원리다. 작은 성취를 통해 "너는 수학을 참 잘하는구나!", "너는 수영을 잘하는구나!", "너 참 달리기를 잘하는구나!"라는 칭찬을 들으면 아이는 자신감이 붙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스스로 반복과 강화를 한다. / 131p

 

 

 

   다음으로 IQ, EQ, 집중력, 창의력과 같은 공부지능 요소들을 강화하는 방법들에 대해 알아본다. IQ의 경우, 암기력과 어휘력, 연산력, 공간지각력, 사회적 이해력으로 세분화하여 이를 강화하는 방법들을 살펴볼 수 있다. 반면, EQ란 과정 속에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으로 정서지능이라 불리며 IQ를 보완하고 더욱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는 자신의 정서를 감지하고 통제하고 평가하는 능력,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인지하고 공감하는 능력, 자신을 잘 이해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것을 통해 공부지능을 높일 수 있게 한다. EQ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부모다. 특히 유아기의 경험은 대부분 부모와 함께 하기 때문에 부모의 말이나 행동, 선택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버리지 말고 세심한 노력과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일러준다.

 

 

 

부모들은 아이의 결정지능과 유동지능을 함께 개발해주어야 한다. 글을 일찍 가르치고 책을 읽게 하는 것이 결정지능 즉, 언어성 지능발달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각종 교구재와 야외활동, 친밀한 사랑(특히 엄마의 따뜻한 포옹은 아이의 심리를 안정시켜 유동지능을 높여준다)으로 아이의 유동지능을 높여주면 언어성 지능이 더 발달할 수 있다. 한쪽으로 편향된 자극을 주기보다는 다양한 자극을 통하여 유동지능과 결정지능을 함께 개발하여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아이들을 교육할 때 실시하는 '지능기반 학습'이다. / 172p

 

 

책을 읽을 때도 엄마가 권하는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아이 스스로 책을 골라서 읽는 것도 좋다. 아이를 정기적으로 도서관이나 서점에 데리고 가서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책이 있다는 사실만 알게 해도 성공이다. 단, 일단 서점에 가면 절대로 아이와 함께 책을 고르러 다니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책을 고를 때 엄마의 견해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2시간 정도 시간을 주고 아이와 부모가 서로 다른 분야의 책을 각각 5권씩 골라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자. 아이는 서로 다른 분야의 5권의 책을 고르기 위해서 50권 혹은 100권 이상의 책을 훑어보고 그중에서 자신이 사야 할 책을 고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창의성을 개발하는 과정이다. / 312p

 

 

 

 

 

 

   이처럼 <아이의 공부지능>은 적기에 우리 아이의 공부지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설명하면서 비록 타고난 머리가 좋지는 않더라도 얼마든지 노력을 통해서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적기이자 조기에 강점지능을 발견해 키워주고, 약점지능을 계속 보완해줄 수 있다면 후에 어마어마한 사교육비를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든다. 여전히 우리 아이에 대한 교육관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끊임없이 불어오는 사교육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나, 이 책을 통해 내 아이를 믿고 함께 응원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된다면 적어도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고통스럽게 마주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오늘도 아이의 교육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이 땅의 많은 부모들에게 이 책을 통해 위로와 비전을 가져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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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를 위한 자존감 수업 -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엄마의 대화법
임영주 지음 / 원앤원에듀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부모와의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우리 아이 자존감!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맞춤형 대화 실천법!

 

 

   언제부턴가 '자존감'이란 말이 많은 육아서 속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필수 화두인 듯하다. '자아존중감'이라고도 하는 이 자존감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고, 이를 통해 확립된 정체성으로 자신과 타인을 함께 존중하며,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쉽게 회복탄력성을 발휘해 도전과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이것이 공부, 인성, 창의성, 리더십 등 아이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임을 부모들은 이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알고 있다. 또한 부모의 양육 태도가 아이의 자존감을 결정짓는다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이런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오히려 부모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한 가정에 하나 혹은 둘 뿐인 자녀들을 누구보다도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에, 잘못된 양육 태도가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지 늘 불안해하며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넘쳐나는 다양한 정보 속에 중심을 잡기란 어지간해서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주변에서만 하더라도 "자존감이 대체 뭔지, 아이 자존감 높여주려다 내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며 하소연하는 부모들이 많다. 나 역시 세 살 된 남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감정 기복이 잦아지는 것은 물론, 하루하루가 늘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다. 결국엔 부모와 자녀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일 텐데 뭐가 이렇게 어려운건지 모르겠다.

 

 

 

   아이는 나날이 커 가는데 부모의 역할만큼이나 혼란은 더욱 가중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하면 의연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이미 시중에는 다양한 육아서를 통해 훌륭한 육아비법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현실에 적용 가능하고 우리 아이의 기질에 맞는 육아서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던 중에 다양한 저서와 매체 활동을 통해 부모교육 전문가로 익히 알려진 저자 임영주의 <우리 아이를 위한 자존감 수업>이란 책이 눈길을 끈다. <우리 아이를 위한 자존감 수업>은 홍수처럼 넘쳐나는 다양한 육아서를 통해 막연히 알고 있었던 자존감과 그것이 우리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을 비롯하여,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대화법에 대해 기술한 육아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우리 아이 자존감

 

 

   저자는 우리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자존감'이라고 말한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과업은, 아이가 이미 가진 자존감을 북돋워주는 것이다. 아직은 엄마의 눈길 하나, 말 몇 마디에도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을 만큼 아이의 자존감은 아직 연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엄마와의 관계가 그 시작점이며 엄마의 자존감이 아이의 자존감의 모태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엄마의 자존감이 높아야 아이의 자존감도 함께 높아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부모의 마음가짐으로 아이에 대한 기대 목표를 낮출 것을 권장한다. 쉽게 말해서 기대치를 낮추면 아이의 웬만한 행동과 말들이 거슬리지 않게 되고, 아이를 지적하는 일이 줄어든다. 아이가 부모의 기대치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보면 오히려 열등감만 부추기고 주눅이 들면서 오히려 자존감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아이는 해낼 수 있는 것들을 목표로 삼을 때 엄마와 아이의 자존감이 함께 올라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자. 진지하고 믿음직스럽지 않은가. 떼쟁이, 고집쟁이 내 아이도 묵묵히 지켜봐주자. 이때 후생가외를 떠올린다면 도움이 된다. 아이의 고집이 아이 안의 의지와 욕구를 성취하겠다는 표현으로 보여 대견할 수도 있다. 무언가를 이루어낼 아이로 보일 것이다. 이렇게 보이게 하는 힘이 모성이다. 이제 그 모성이 이끄는 대로 표현하면 된다. / 52p

 

 

 

   그렇다면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대화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 '아이를 동등하게 대할 것',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 '아이의 이야기에 공감해줄 것', '아이의 감정을 이해해줄 것',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도 이해해줄 것' 등 크게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동등하게 대한다는 것은 현재 아이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부모가 먼저 바라는 점을 행동으로 보이고, 아이가 엄마를 예측할 수 있도록 일관되게 행동해야 하며, 엄마의 표정과 눈길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함으로 아이가 바라보고 싶은 거울이 되는 것이고 말한다. 또한 위험하거나 절대 안 되는 원칙 몇 가지를 제외하면 아이 스스로에게 선택과 결정권을 주도록 하고, 엄마 스스로가 아이의 욕구를 대하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혹 아이를 무시하고 위협하고 소리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면서 아이와 엄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정하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할 것을 권장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경청'과 감정을 이해해주는 ‘공감’의 자세이다. 이때 아이가 말 하는 중간에 알아들었다는 듯 이해한다는 듯 섣불리 끼어들지 않고, 엄마가 마음대로 다른 주제로 말을 돌리지 말 것이며, 아이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마무리를 훈계조로 맺지 말고 용기, 격려, 위로가 담긴 알맞은 피드백과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하는 말 한 마디 정도만 해주어도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울고 있을 때는 "슬프구나"라는 단정보다 포근히 감싸 안아 몸으로 먼저 공감해주고, 그다음 "왜 우는지 엄마한테 말해줄래?" 하고 마음을 담아 묻는 공감대화법을 실천해보면 어떨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영유아기 아이라면 엄마가 아이의 감정을 정리하는 말을 자주 들려주는 게 좋다. "화내지 마."라는 말보다 "화났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화를 내지 말라는 말은 아이의 감정을 조종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반면 "화났어?" "아, 그래서 화가 났구나."라는 말은 아이의 감정을 엄마가 궁금해하고, 어루만지는 말이기 때문이다.

"화났어?" "많이 슬펐어?" "무서웠니?" 등 이렇게 감정에 '화' '슬픔' '무서움' 등의 이름을 붙여 표현하게 하면 아이가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써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 대신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게 되기 때문이다. / 91p

 

 

 

   이 외에 정확한 지시어로 대화하는 법, 엄마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 구체적인 사실과 병행해 칭찬하는 법, 솔직한 사과를 통해 아이에게 이해를 구하는 법 등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의 자존감을 깎았던 나쁜 말 습관들을 되돌아보게 하고 이에 대한 해결점을 모색해본다. 이어 "안 해" "싫어"를 늘상 입에 달며 고집부리는 아이, 내성적인 아이, 거칠고 공격적인 아이, 지적하거나 이르는 아이와 같이 저마다 다른 아이의 타고난 기질을 인정하고 이에 맞는 맞춤형 대화 실천법도 함께 소개한다. 또한 서로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덜 화내면서 훈육을 하는 법을 일러주는데 실제 여기에서 일러준 대로 몇 번 해보니 아이가 생각보다 빨리 수긍하고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는 모습까지 보여줘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특히 반항심을 줄이는 '긍정 조건부' 화법은 습관처럼 몸에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엄마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가 화났으면 "화났다."라고 말하면 된다. 이 말의 효과는 크다. 엄마가 스스로에게 '지금 화났으니 조심하자.' 하고 이성뇌에게 주지시키게 된다. 엄마의 감정을 스스로 인정하고 아이에게 '화났다.'라는 사실을 알리면, 아이가 알아듣도록 차분하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이성뇌가 가동하기 때문이다. / 118p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자존감과 밀접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독립심, 자조능력, 결정력, 문제해결력을 키워주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이때 의존형 아이로 키우지 않기 위해 아이를 방치하거나 두려움을 키우면 아이의 마음속에 독립심 대신 좌절감만이 자리하게 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아이의 발달 상태와 발달 단계를 고려해 부모가 적절히 개입하는 것이 무조건적인 격려 "넌 잘할 수 있어."라는 말보다 훨씬 유효하다는 것이다. 또한 엄마가 무엇이든 대신해주는 사랑의 표현이 아이에게 독이 될 수 있으므로, "열심히 했네. 이 정도도 잘한 거야. 한두 번에 안 될 수도 있어. 지난번보다 훨씬 좋아졌는걸." 하며 아이의 시도를 인정하고 아이의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향상된 점을 알아주는 부모의 반응이 아이를 키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이가 열심히 무언가를 시도하면 꾸물거리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답답하거나 잘 못하는 것 같아도 기다려주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 믿음이 아이를 키운다. 엄마가 대신해주는 아이는 대신해줄 엄마가 없는 곳에서는 총체적 무능아가 된다. 자신감이 없어 또래와 학교에서도 위축되어 자신의 능력이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엄마가 '대신해주는' 사랑이 독이 된다는 말을 한 이유다. / 249p

 

 

아이에게 어른의 해결책을 따르라고 강요하지 말고 스스로 문제해결방법을 찾게 해주자. 방법은 엄마의 '질문'에 있다. 중요한 건 질문을 하는 엄마의 마음에 '아이는 문제해결방법을 잘 찾을 거야.'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안에 따라 긴 대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편식이 이미 습관화 되었을 수도 있다. 습관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1~2분 대화로 고쳐지겠는가? 아울러 아이 문제는 아이가 해결할 수 있다. 문제를 가진 아이에게 해결의 열쇠가 있음을 인정해주자. 그리고 아이가 해결을 위한 노력을 시도할 때 따뜻한 시선과 격려로 용기를 북돋아주자. / 265p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점은 '엄마의 자존감이 아이에게 직결되므로 먼저 엄마 스스로를 잘 살피고, 엄마부터 자존감을 높여야 진정으로 아이와 눈맞춤, 마음맞춤의 자존감을 높이는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이다. 아이의 기질도 중요하지만 엄마의 기질이 어떤지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의 자존감도 함께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간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느라 내 자존감은 바닥'이 되는 기분을 빈번하게 느끼곤 했던 일상을 되돌아보며 이제부터라도 나의 자존감을 키우는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어른이라는 점을 이용해 말 뿐만 아니라 몸짓, 눈짓을 통해 아이를 비난하거나 책망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최근에 읽은 여느 육아서보다 가장 현실적이고 우리 아이와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유용한 정보가 많아서 주위의 많은 엄마들에게 꼭 권장하고 싶다. 사실 오늘만 하더라도 아이에게 불쑥불쑥 터져 나올 뻔했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마저 다독이지 못해서 후회가 들곤 했지만 어쩌겠나, 조금씩 실천하다보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과 내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억지로 육아서에 나오는 각종 비법들을 다 흡수하려고 노력하면서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보다, 아이의 타고난 자존감을 망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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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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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된 젊음, 8090세대의 슬픈 자화상!

견디어 사는 삶에 익숙해진 청춘들에게 '반격'을 고하다!

 

 

 

   어느 덧 내 나이가 서른 하고도 넷이나 더 먹었다. 100세 인생이라는 길어진 수명에 비하면 서른은 아직 '청춘'이고, '예쁘다'거나 '반짝반짝'이란 수식어를 앞에 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얼마든지 기회와 도약의 '가능성'을 품은 나이라고 믿었다. 적어도 무엇을 하든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이 엄마로, 서른이라는 나이의 중반에 이르고 보니 좀처럼 변화를 꿈꿀 기회는 사라지고 쌓아온 커리어는 보류인지 포기인지 모를 애매한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팍팍한 현실에 수긍과 타협이라는 적정한 선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더라고 하소연한다면 과장된 것일까. 내 인생에 드라마 같은 반전은 없을 거라고, 속단하기에 이를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마냥 기대하기에는 세상 물정 모를 만큼 어리숙하지도 않은 나이가 되어버린 까닭에 '반격'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생경하고 공격적으로 느껴질 줄은 몰랐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이 고단한 청춘사에 반격을 고할 수 있단 말인가. 힘껏 저항하다 결국 현실에 부딪치는 익숙한 그림이 펼쳐지는 건 아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종의 행위에 가담이라도 하듯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른의 반격>을 읽기 시작했다.

 

 

 

난파된 젊음, 일상에 균열을 가하다

 

 

내가 아는 건 그 정도다. 그전에 벌어진 피, 광장, 투쟁의 흔적은 사진과 다큐에서나 본 겪지 못한 옛날 얘기일 뿐이다. 세상은 몇 발자국쯤 앞으로 나아갔지만 그 몇 발자국이 전부인 것 같다. 여전히 부당함이 우위를 점령하고 있고 당연히 보통 사람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대신 대세에 머리를 조아려 수긍하면서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나는 몹시 특별난 사람이라고, 그러니 제발 나를 좀 주목해달라고 온몸으로 외쳐야 하는 세상이 왔다. 나는 하필이면 이 시대에 청춘의 끝자락을 맞이한 숱한 여럿 중 하나이다. / 8p 

 

 

 

   1988년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고 보통 사람의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선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취임한 해로, '손에 손잡고' 화합의 장을 마련한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기도 하여 나라의 분위기가 상당히 고무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른의 반격> 속 주인공 김지혜는 새로운 변화와 기회의 시대로 도약을 꿈꾸던 나라 안팎의 분위기를 업고 이 땅에 태어났지만 여전히 보통 사람의 시대는 오지 않았고, 대세에 편승하여 자신이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득바득 드러내야만 겨우 주목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 청춘들의 현실을 자조한다. 자랑할 것이 많지 않은 삶일 바에야 차라리 김지혜라는 무수한 동명의 이름 속에 숨어 지낼 수 있는 삶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며 고백하기도 한다.

 

 

 

   그녀는 시멘트 회사에서 출발해 대기업 성공신화를 일궈낸 DM그룹의 공식 채용에서 떨어졌지만 그룹 산하 문화사업의 한 일환으로 건립된 디아망 아카데미에서 의자 정리, 복사 등 각종 심부름을 도맡아야 하는 인턴사원으로 근무 중이다. 운이 좋아 여기서 정직원이 되어 일하다보면 경력을 인정받아 본사로 들어갈 기회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도 믿을 수 없지만 일말의 기대감이나마 가져볼 뿐이다. 그녀는 직장 내에서 자신의 역할은 복사기 토너나 나사 정도의 부품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5층짜리 빌라의 쾌적하고 아담한 방에 사는 것으로 알고 계신 부모님과 달리 현실은 지상과 지하에 걸쳐진 반지하이고, 혜택이랍시고 인턴사원에게 강좌 하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월급에서 매달 무료 강좌 수강료 명목으로 일정 금액이 빠져나가는 일에도 저항 한번 하지 못한다. 그렇게 9개월째 시간이 흘렀지만 정직원 채용의 기회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고작 인턴 한 명 더 뽑겠다는 지시만 덜컥 내려온다. 이처럼 소설 속 김지혜가 바라보는, 그녀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중심부에서 비켜나 주변인처럼 배회하고 적당히 순응하며 견디어 사는 삶에 익숙해진 청춘들이 만연한 세상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적당히 일을 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분수에 맞게. 주어진 시간과 급여에 맞게. 그러므로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비정규직인 우리에게 일이라는 건 꼼수, 눈치, 요령의 삼 요소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최소한의 노동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헤프게 이용당하지 않고, 당연한 듯 착취당하지 않고, 적당히 치고 빠질 수 있다. 계속 못하다가 갑자기 잘하면 칭찬을 받지만 계속 잘하다가 한 번 실수하면 본전도 못 뽑고 신랄히 욕만 먹는다. 아슬아슬 선을 지키는 수준에서 일하고, 할 수 있는 일도 가끔은 못하는 척 피해하고, 귀찮더라도 가끔 핀잔을 듣는 상황을 만들어 상사를 우쭐하게 만들 줄도 알아야 한다. 당신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그럭저럭 보통은 해. 가끔 덤벙대기도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있어' 정도면 충분하다. 그게 자신을 지키며 일하는 방법이다. / 43p

 

 

 

   그러던 어느 날 지혜는 아카데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 중 하나를 진행하고 있던 박교수가 두고 간 휴대폰을 가져다주려다, 한때 그의 연구 보조로 일했던 남자가 자신이 쓴 원고를 고스란히 출간한 박교수에게 항의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십 년 전에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건으로 인해 교수직을 박탈당한 박교수였지만 삶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된다고 했던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교수가 아닌데도 여전히 교수라고 불리며 스타 강사로 재기에 성공한 그에게 이는 모멸감 따위가 무슨 대수겠는가, 이 작은 소동 또한 세상은 금세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박교수에게 일말의 부끄러움과 저항감을 심어준 이 낯선 남자의 일침이 유독 마음에 걸린다. 설상가상 새로운 인턴으로 온 남자가 다름 아닌 그, 규옥이다.

 

 

 

"꼭 이 강의실의 의자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의자의 마법'에 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면 권위와 힘을 가진 줄 착각하는 마법에 걸리게 되죠. 그리고 수없이 깔린 의자에 앉으면 힘없는 대중이 되어 앞에 있는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마법에 걸립니다. 의자는 의자일 뿐이라는 걸 다들 까먹어버린단 소리예요." / 49p

 

 

 

 

 

   애써 외면해왔거나 당연하게 여기고 지냈던 지난한 현실에 균열을 가하듯 규옥은 가치의 전복을 꿈꾸고, 박교수에게 그러했듯 권위에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혜 앞에 차츰 드러내기 시작한다. 마침 그와 함께 듣게 된 우쿨렐레 강좌에서 만난 시나리오 작가 무인, 온라인으로 먹방을 진행하는 남은 아저씨의 억울한 사연은 그들에게 뜻밖의 의기투합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창작가의 권리와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도용한 영화사, 애써 고생해서 개발한 장맛을 빼앗은 유명 식품업계 동업자, 친구임을 강조하면서 몸종 부리듯 제 이득만 챙긴 이들에게 한번쯤은 제 목소리를 내어 보자고, 우리 방식대로 '반격'을 가해보자고 뜻을 모은다. 마치 놀이를 하듯 부당한 곳에 일침을 가한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무언가가 변하거나 확산될 것이다. 그럴듯하면서도 곱씹으면 갸우뚱해지는, 영웅적인 반란이랄 것도 없이 다소 미미하고 대단한 반전을 기대하기에도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계획들이다. 하지만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비록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이렇게 세상을 향해 균열을 가하다보면 경직된 것들이 느슨해지고 부서지는 날이 언젠가 오지 않겠느냐는 듯한 규옥의 목소리는 작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질걸요? 억울함에 대해 뒷 얘기만 하지 말고 뭐라도 해야죠. 내가 말하는 전복은 그런 겁니다. 내가 세상 전체는 못바꾸더라도, 작은 부당함 하나에 일침을 놓은 수는 있다고 믿는 것. 그런 가치의 전복이요." / 68p

 

부당한 권위를 이용해 세상을 경직되게 만드는 사람들이 대상들이었으며, 그들을 곤란하게 하고 면박을 주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우리에 대한 반응은 한결같았다. 물을 뿌려도 젖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들은 늘 깜짝 놀라면서 황당해했다. 그들의 마음속에 담긴 단어들은 이런 것들인 것 같았다.

누가, 감히, 나에게.

그래봤자, 너희들이, 어떻게. / 131p

 

 

 

 

 

   소설은 현실을 영리하게 따를 것과 현실에 균열을 일으킬 용기를 가질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지혜의 모습을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보통 서른이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실 우리 모두는 늘 세상을 향한 반격을 꿈꾸지만 그럼에도 그 세상에 온 힘을 다해 편승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이러니를 늘 겪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들이 세상에 던지는 '반격'이 마냥 반갑거나 흔쾌히 지지하고픈 류의 것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곤 한다. '그래봤자, 우리 같이 힘없는 이들이, 어떻게', 고작 그걸로 세상이 바뀌겠느냐는 삐딱한 시선을 나도 모르게 던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처음 입사한 작은 출판사에서 착취당하듯 일을 하고, 직원들에게 온갖 욕설을 내뱉다가 금세 후회하며 달래기 바쁜 대표를 대표랍시고 따랐으며, 몇 달씩 밀리기 일쑤였던 임금 문제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대응 한번 해보지 못했던 지난날이 떠오르면서 '너는 말이라도 해봤느냐고', 고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조차 시도해본 적이 없는 내 자신에 대한 회한이 밀려들기도 했다. 말하지 않으면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이 불온한 세상에 제 목소리 한번 내보는 용기 정도는 가져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듯한 이 소설의 메시지에 우리 역시 반응해볼 일이 아니겠는가.

 

 

 

없는 사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없는 사람이다. 늘 소리치고 있는데도 없는 사람이다. 수면 위에 올라있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다. 반지하방에 살면 없는 사람이고, 문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고, 인생과의 게임에서 지면 없는 사람이다. / 203p 

 

 

 

   감정을 느끼고 읽는 뇌의 기능이 고장 난 탓에 ‘공감 능력 장애’를 지고 살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아몬드>의 손원평 작가가 쓴 작품인 만큼 가독성이 높고 서른 살이 겪어야 할 사회적, 심리적 무게를 밀도 있게 그려낸 점에서 이 역시 수작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다만 비현실적으로 보일지라도 가슴 통쾌하게 이 사회를 향해 한방을 날려줄 수 있을 만한 잽 하나가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 내내 현실적으로 그려지던 작품의 전개가 갑자기 마지막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오히려 어설퍼진 느낌이다. 하지만 청소년문학상 수상에 이어 이 작품으로 제주4.3평화문학상까지 수상하며 문단과 대중에게 호응하는 괜찮은 작가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이게 된다. 사회 내부에서 소리 죽여 있던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에 응답할 수 있는 작가로 계속해서 성장해나가길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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