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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 최강 형제가 들려주는 최소한의 정치 교양
최강욱.최강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민주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이 책을 읽게 된 건 정당이 무엇이냐던 첫째 아이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빨간색 아니면 파란색. 당시 아이가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는 정당과 정치의 현실이 이러했기에 대답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사실 정당 정치의 가치가 뿌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수차례 겪고 보니, 가치판단은커녕 무엇이 보수이고 진보인지조차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워진 까닭이다.
그런 가운데 최강욱 전 국회의원과 그의 형제가 썼다던 이 책의 소개글이 눈에 딱 들어왔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욕할 때 하더라도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보수와 진보의 편가르기와 혐오, 경쟁으로 과열된 바로 지금이야말로, 무엇이 진짜 보수이고 진짜 진보인지 우리 스스로가 제대로 알고 판단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보수와 진보는 세상과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들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보다 균형감 있게 사용할 수 있을지, 민주 시민으로서 그에 대한 이해와 해답을 얻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책에 꼭 주목해보시길 바란다.
보수는 왜? 진보는 왜?
책에 따르면 한 시대의 보수와 진보는 세상과 사람과 삶을 대하는 ‘태도’, 변화를 꾀하는 ‘속도’ 등을 기준으로 나뉜다고 한다. 필요한 사회 변화에 대해 ‘천천히 신중하게 최소한으로’ 라고 생각하는 쪽이 보수, ‘빠르고 과감하게 전면적으로’ 라고 말하는 쪽이 진보다. 다시 말해 보수는 아무리 시대와 문화가 바뀐다 하더라도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할 핵심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반면, 진보는 이 세상에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며 시대와 문화의 요구에 따라 상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는 가족·질서·법·역사·전통·권위·안보·애국심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진보는 인권·정의·해방·관용·미래·참여·연대·변화·혁신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정치체제입니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느냐 아니냐를 놓고, 민주주의와 독재가 갈립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독재’입니다.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체제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반대말입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국가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같은 민주주의이면서 경제적으로 사회주의에 가장 가까운 나라가 어디인가를 놓고 생각해야 우리의 미래를 위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에 이런 장단점이 있고 스웨덴과 핀란드에 이런 장단점이 있겠지, 그렇다면 좀 더 미국 쪽으로? 아니, 좀 더 스웨덴 쪽으로? 늘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게 좋습니다. / 81p


‘보수와 진보’를 논할 때면 꼭 ‘우파와 좌파’라는 단어가 잇달아 등장하곤 한다. 나는 이제껏 좀 더 극단적인 성향의 보수를 우파, 또는 극단적인 성향의 진보를 좌파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읽고 그간 상당히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에서는 우파와 좌파에 대해 ‘자본주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에 따라 나뉘는 개념이라 정의한다. 시장에 국가의 개입이나 역할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쪽이 우파, 국가의 개입이나 역할이 좀 더 많아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좌파다. 즉 자본주의의 ‘장점’과 사회주의의 ‘단점’ 쪽에 조금 더 내 관심이 가면 우파이고, 자본주의의 ‘단점’과 사회주의의 ‘장점’ 쪽에 조금 더 내 관심이 가면 좌파인 것이다. 만약 정치적인 관점에서는 진보를 지향하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우파를 지향한다면 나는 진보우파라고 설명하는 것이 옳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보수=우파 또는 우익’ ‘진보=좌파 또는 좌익’이라는 도식적 구분을 벗어나 각각이 지향하는 바를 좀 더 사려 깊게 헤아리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공동체의 질서를 훼손하는 사람이 있다면 공권력과 법의 힘을 빌려서 알아들을 만큼 응징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모두 이기적인 존재인 만큼 내가 이익을 볼 때 누군가 손해 보는 일이 생기겠지만, 인간이 서로 다른 존재로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이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완벽한 평등은 불가능하다’라는 건 받아들여야 해요. 나는 전통과 질서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온 보수의 역사적 성취를 믿습니다. 헌법과 자유를 최고의 가치고 여기고, 시장경제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번영을 이끌어 낸 자랑스러운 역사, 이것이 보수의 성취입니다. / 118p
인간은 환경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면 전쟁 대신 평화를 선택할 수 있고,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국가를 세울 수 있고,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고, 인간의 삶 전반을 함께 나아지게 할 수 있어요. 자기 개성과 정체성을 마음껏 표현할 권리도 있지요. 성별, 성적 지향, 인종, 종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나는 믿습니다. 불평등과 편견, 약자를 위해 싸운 이타와 투쟁의 역사, 그래서 생긴 세상의 모든 변화.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진보의 모습입니다. / 119p


이 외에도 책은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고 한국 정치사에 뿌리를 내렸는지 역사적 배경은 물론,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관과 입장 차이를 구체적인 사례와 영화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알려준다. 빈자는 왜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지,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나오는 어르신들의 심리는 무엇인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또 극우가 준동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그간 납득할 수 없었던 현실 정치의 면면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보수와 사람과 세상을 의롭게 하는 진보가 어떻게 하면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며 균형 있게 나아갈 수 있느냐다. 이 책으로 하여금 나의 정치적 성향은 무엇인지, 나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