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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특별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9월
평점 :

태평양에 난파된 인도
소년과 벵골 호랑이의 기묘한 동거와 치열한 사투를 다룬 감동적인 소설!
끝없는 공포와 절망 앞에서 생존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명작 중에 명작!
π=3.14......
끝없이 이어지는 원주율 값에 마침표가 없듯 삶과 이야기라는 이 유한한 존재값에도 역시 마침표란 없다. 삶은 어떤
식으로든 나아가고 또 다른 삶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며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라는 창작의 세계 역시 늘 자신의 존재값을 넓혀간다.
피신 몰리토 파텔이라는 이름 철자를 간단히 '파이(π) 파텔'이라 고쳐 자신을 소개했던 한 소년의 이야기는 이미 그 시작부터 '파이'가 지닌
어떤 숙명 같은 것을 예고하는 듯했다. 자신의 삶이 끝 모를 원주의 중심에 놓이고 말 것이라는 운명,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이어져서 새로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생산될 것이라는 어떤 운명 말이다. 누구나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227일간 표류해야 할 만큼 거대한 운명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어쩌면 그런 연속된 삶에 붙들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난객이 되는 것은 계속 원의 중심점이 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많은 것이 변하는 것
같아도-바다가 속삭임에서 분노로 변하고, 상큼한 하늘이 앞이 보이지 않는 흰색이 되었다 칠흑같이 까맣게 변해도-원점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의
시선은 언제가 반지름이다. 원주는 대단히 크다. 사실 원들이 겹쳐 있다. 조난객이 되는 것은 춤추듯 겹쳐지는 원들 사이에 붙들리는 것이다.
당신은 한 원의 중심이며, 당신 위에서 두 개의 반대되는 원이 휘휘 돌아간다. / 327p
태평양에 난파된 인도 소년과 벵골 호랑이의 227일간의 표류기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는 작가가 남부 인도를 탐험하러 갔다가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자 한 노신사가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이제는 그 주인공이 어른이 되었을 만큼 오래된 이야기로, 작가는 사실인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놀라운 사연에 이끌리듯 주인공을 찾아 나서게 된다. 소설의 1부는 주인공이 소년일 적 경험했던 일들을 회상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와 작가가
취재하면서 주인공을 관찰하는 시점이 교차 반복된다. 주인공의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로 자신의 이름을 잘못 발음해 '소변을 보는 이'로 놀려대는
친구들과 인기 많은 형 라비로 인해 그림자 신세를 면치 못했던 열여섯 살의 평범한 한 인도 소년이었다. 그러나 피신은 계속해서 고통 받고 있는
자신의 이름을 새로운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파이(π) 파텔로 고쳐서 부르게 할 만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소년이었다.
파이는 동물원을 경영하는 아버지, 다정한 어머니, 운동을 좋아하는 형, 오래전 남인도 수영 챔피언으로 소년에게
수영을 가르쳐준 마마지 곁에서 소박하지만 따뜻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이 무렵 그의 운명을 이끌 두 명의 선지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생물 선생님, 이슬람교를 가르쳐준 빵 굽는 아저씨다. 이들은 훗날 파이가 토론토 대학에서 동물학과 종교학이라는 학문에 전념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며 이 두 개념은 이 소설의 기본이 되는 가장 큰 축이 된다. 소설의 전반부에는 동물원을 경영하는 아버지로 인해 파이가 직접 관찰하여 깨달은
동물원의 운영 원리 및 동물과 인간의 관계, 생태계의 원리 등이 흥미롭게 쓰여 있다. 이때 알게 된 동물학적 지식은 태평양에 벵골 호랑이와
난파된 위기의 순간을 이성과 기지로 극복해나갈 수 있게 하는 원천이 된다.
아버지는 매표소 바로 뒤 벽에 선홍색 글씨로 '동물원에서 가장 위험한 건
뭘까요?'라고 적고, 작은 커튼이 있는 곳으로 화살표를 해놓았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답을 보느라 커튼을 걷는 바람에, 정기적으로 커튼을
바꿔야 했다. 커튼 안에는 거울이 있었다. / 58p
달아나고 싶은 이유가 뭐든, 마쳤든 아니든, 동물원을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점이 있다. 동물은 '다른 곳으로'가 아니라 '뭔가로부터' 달아난다는 사실이다. 자기 영역 안에 두려움을 주는 게 있으면-적의 침입,
우두머리인 동물의 공격, 놀라게 하는 소음-도망칠 태세를 취한다...(중략)...도망치는 동물들을 아는 곳에서 미지의 세계로 간다-동물이
무엇보다 꺼리는 게 있다면 바로 '미지의 세계'다. 달아난 동물은 처음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은 곳에 숨게 마련이다. 그 동물들은 그들과
안전지대로 여기는 곳 사이에 끼어드는 대상에게만 위험할 뿐, 다른 것은 해치지 않는다. / 73p
동물학이 합리와 이성을 이끄는 축이 된다면 종교학은 믿음과 사랑으로 고난을 극복하게 하는 또 다른 축이 된다.
독특하게도 파이는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에 이르는 세 종교의 신을 아울러 섬기는 소년이었다. 우연히 부모님과 함께 세 종교인을 동시에 만나
자신들이 믿는 신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하나의 종교를 선택할 것을 강요받는 곤란한 상황 속에서도 파이는 '간디께서는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에요'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파이의 종교적 신념은 후에 태평양에서 난파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흔히들 종교를 통해 구하게 되는 기적이라는 힘에 기대기보다, 합리와 이성으로 명확히 이해될 수 없는 이 고난과 역경을 이해하고 이겨내, 다시
삶을 사랑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을 떠받치는 존재로써 승화된다. 개인적으로 종교에 있어서는 상당히 아둔한 탓에 '신을 사랑하고자 하는'
파이의 신념과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어떠한 뜻을 확실하게 나의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점이 애석하기만 하다.
신은 '궁극적인 실체'이자 존재를 떠받치는 틀이건만, 마치 신의 힘이 약해서 자기가
도와야 된다는 듯 나서서 옹호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중략)...이런 자들은 겉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신을 옹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분노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는 걸 모른다. 바깥의 악은 내면에서 풀려나간 악인 것을……. 선을 위한 싸움터는 공개적인 싸움장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있는 작은 공터인 것을……. / 117p
신을 믿는 것은 마음을 여는 것이고, 마음을 풀어놓는 것이고, 깊은 신뢰를 갖는
것이고, 자유로운 사랑의 행위다. 하지만 때로는 사랑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때로는 내 마음이 분노와 절망과 약함으로 급속히 가라앉아서, 태평양
바닥에 처박일 것 같았다. 거기서 다시 올라오지 못할까 두려웠다. / 317p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인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된 파이와 가족이 탄 침춤 호가 엔진
고장으로 추측되는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침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배가 가라앉을 시각에 깨어난 파이는 손쓰지도 못할 만큼 빠른
시간 안에 화물선이 거품을 내고 트림을 하면서 물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구명보트 속에서 황망히 지켜봐야만 했다. 물에 떠 있는 것들 중에서
희망을 주는 것은 없었다던 그의 고백은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 무력하게 남겨진 파이의 고통과 상실감을 여실히 전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명보트에 오른 뜻밖의 생존자들이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구명보트 안에서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일 뿐인 얼룩말, 멀미하는 오랑우탄, 굶주린
욕망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하이에나, 방수포 안에서 언제 살육의 공포를 드러낼지 모른 채 은밀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벵골 호랑이,
마찬가지로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앞길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동물의 나까지. 이 다섯 동물의 기묘한 동거는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공포와 함께
소년을 시시각각 위험으로 몰아넣는다.
구명보트라는 이 협소한 생태계는 당연한 수순처럼 얼마가지 않아 곧 정리되고, 결국 리처드 파커와 단둘이 남게 된
파이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벵골 호랑이를 길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파이는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마음으로 리처드
파커를 조련하는 동시에 둘이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가 끝까지 리처드 파커를 놓지 않은 것은 혼자 남겨질지 모르는 절망 보다
리처드 파커와의 공존이 오히려 생의 의지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닌 까닭이다. 그는 채식주의자였던 자신의 소신 마저 버리고 바다
거북과 날치, 상어, 가마우지까지 자신과 리처드 파커의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잡아먹었다. 어마어마한 갈증, 극한으로 내모는
파도와 환경, 그 와중에도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펼쳐지는 바닷 속 풍경, 그러나 여지없이 이어지는 권태와 공포의 무한한 반복. 젖은 걸레가
말랐다는 어떤 시간의 변화, 현재의 순간이 이전의 순간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소중하다던 그의 고백이 뭉클해질
지경이다. 이렇듯 소설은 한 소년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 본능에 휘둘리고, 이성으로 통제하는 일련의 과정과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해준 영성들의
조화를 경이롭게 펼쳐나간다.
살면서 고통을 많이 겪으면, 더해가는 아픔은 참기 힘들기도 하지만 사소해지기도 한다.
내 인생은 유럽 그림에 나오는 해골과 비슷하다. 옆에는 늘 씩 웃는 해골이 있어, 야망의 아둔함을 일깨워준다...(중략)...죽음은 생물학적인
필요 때문에 삶에 꼭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시기심 때문에 달라붙는다. 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 21p
무려 227일만에 파이는 구조된다. 마지막 3부에서는 멕시코 해안에 닿아 살아남은 파이로부터 침춤 호의 사고 진상을
듣기 위해 온 일본 화물선 회사 직원과의 대화가 그려진다. '리처드 파커는 해안에 닿자마자 사라졌고 나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 기막히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직원들은 내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자신들이 원하는
이야기만 듣고 싶어 하는 직원들을 향해 파이는 그간에 했던 이야기를 뒤집는 어마어마한 반전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는 이야기 한다.
어떤 이야기가 더 나은가요?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나요? 바꾸면 좋을 대목이라도 있어요? 라고.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믿고 싶은 대로 만들어가는 것이어서 그것이 이야기이자 곧 인생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파이의 대사는 이 소설이 단순히 227일
만에 태평양에서 살아남은 소년의 모험 소설로만 생각할 수 없는 깊은 함의를 느낄 수 있다. 3.15를 향해 끝없이 나아가기 위한 수학 기호
파이의 운명처럼.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 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 459p
이 책은 기존의 <파이 이야기>가 갖고 있지 않은 풍성한 일러스트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어서 더욱
마음을 끈다. 크로아티아의 일러스트 작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가 그린 40여 점의 일러스트는 가볍지 않은 터치와 질감, 컬러의 조합으로
<파이 이야기> 속 세계관을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소설이 도달하고자 하는 상징과 은유의 지점을 잘 형상화하여 또 다른
색채감 있는 이야기를 부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때문에 영화 <파이 이야기>는 또 어떤 식으로 이 소설을 구현해냈을지 기대가
된다. 듣기로는 영상미가 무척이나 뛰어나나 소설이 지닌 철학까지 모두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다는 설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의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3살짜리 나의 아들이 책의 속표지에 유독 관심을 보인다. 훗날 나의 아들 역시 이 책을 읽고 용기와 삶의 의지, 생의 희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