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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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있어 기억될 그 시절, 그 공간, 그 끈적끈적한 추억들! 

무료한 일상을 펑키펑키함으로 채워줄 박상 작가의 위트 만점 감성충전 에세이!  

 

 

 

  평범하게 흘러가고 마는 찰나의 순간에 음악이라는 아이템이 더해지면 끈적하게 달라붙는 추억으로 돌변해버리고 마는 기이한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대로 '인생 노래' 한 곡 쯤은 있지 않은가 말이다. 거창하게 인생 노래라는 말로 수식하지 않더라도 축축 처질 때 기분을 업 시키기 위해서 빅뱅의 'FANTASTIC BABY'를 찾아 듣거나 현란한 랩핑과 넘치는 스웩을 내 안에 채우고 싶을 때는 비와이의 'The Time Goes On'을 듣기도 하고, 힘들어보이는 내 사람을 위로하며 힘이 되어 주고 싶을 때는 박장현의 '두 사람'을 찾아듣는 등 인생의 순간순간에 꼭 찾아듣게 되는 노래들이 있다.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비상한 기억력을 지닌 나의 남편은 심지어 발매년도와 몇 집에 수록된 곡인지까지 말하며 당시에 그 곡에 얽힌 추억들을 비장하게 말하곤 할 때가 있다. 그래, 그랬지. 머릿속 어느 한 구석에 밀려나있었던 그 시절, 그 공간, 그 끈적끈적한 추억들을 다시끔 생생하게 재현해낼 수 있게 하는 힘은 역시 음악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자칭 문학 천재인 줄 알고 바보 같은 행동만 골라서 하고 다닌다는 작가 박상의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작가의 그런 순간순간들이 기록된 뮤직에세이다. 인생이란 어느 정도 흥겨워야만 유연하게 유지된다는 메시지를 얻은 다프트 펑크의 '겟 럭키'로 시작하여 울고 싶을 땐 암울한 마이너톤의 블론드 레드헤드의 'Misery Is A Butterfly'로 감정을 차분하게 가다듬으며,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 일침을 던질 땐 역시 헤비메탈이라며 블랙홀의 '라이어'를 소개하는 그의 음악 세계는 가요, 록, 팝, 클래식 등 다양한 일탈과 변주를 오간다. 특히, 대형마트의 소음같은 광고음악과 어설픈 음질과 선곡으로 식당의 분위기를 망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작가 특유의 까칠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펑키한 감성과 올드 메탈 같이 낡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세련된 감각이 돋보이는 그의 선곡들에 귀가 솔깃해지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하게 되게 된다. 

 

 

어릴 땐 스펀지처럼 수많은 음악을 흡수하고, 소화해내면서도 계속 배가 고팠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고 싶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심지어 체하기도 한다. 아, 쓸 만한 기능을 하나씩 세월에게 내주다 보면 어느 순간 정말 좋은 음악을 만나도 시큰둥한 꼰대가 될까 봐 무척 쫄린다. 뱀파이어가 아닌 이상 주름살은 어쩔 수 없지만 감각의 쇠락에 대책 없이 당하긴 싫다. / 53p  

 

 

  사실 음악이 아름다운 것은 그 음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수식하는 우리의 일상과 삶 속에서 묻어나오는 다양한 해석들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뮤직 에세이라는 축의 또 다른 이면에는 환락의 천국이라 불리는 이비사 섬과 비현실적일 정도로 감상적인 이탈리아의 플랫폼, 오토바이 퍼레이드로 식겁하게 만드는 베트남 하노이, 항공권이 싸다는 이유로 다녀온 이스탄불에서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그의 여행기가 그것을 추억하게 하는 음악과 함께 자유롭게 펼쳐진다. 단지 속초 앞바다가 잘생겼다는 이유로 연고도 없는 속초로 이사를 가서 모텔 프런트에서 일했던 경험과 함께 버스커버스커의 '봄바람'에 함께 실려온 가장 낭만적인 한 때를 추억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헬조선에서 기 빨리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과 시국 비판을 담아내다가도 찌질한 궁핍함이 얽히고설킨 방구석 이야기까지 늘어놓는 정말이지 '웃기는 짜장' 같은 에세이(책을 비하하는 것이 아님, 쿨럭)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일부 착한) 음악들은 묘하게 지친 마음을 위안하는 영적인 힘이 있다. 어떤 음악을 오랫동안 좋아하면 신앙심이 생기는 걸까. 그들도 나처럼 힘들었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런던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 중 하나였고, 감자만 먹으며 버티던 그 시절의 씁쓸함을 조건반사로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일까. 아무튼 보컬 루 리드 아저씨가 발성하는 차분하면서도 쓸쓸한 목소리와 멜로디에서 록 정신의 기본 교리중 하나인 소외와 고통의 근원적인 심장을 느꼈다./ 56p   

 

 

 

 

 

 

이로운 전염성을 가진 감성 바이러스, 감성 백신 

 

 

  때로 음악은 혼란스럽고 정체되어있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반전시킬 만한 평화를 선사한다. 무엇에 그리도 예민해 있었던 것인지 뒤틀린 감정으로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느라 거의 너덜너덜해질 지경이었을 무렵,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 올라탄 뒤로 나는 크로스오버 장르의 음악을 구사하는 두번째 달의 앨범을 구입해 내내 그것만 듣고 돌아다녔다. 그들의 1집 앨범에 수록된 '얼음연못'과 '서쪽하늘에'는 가사 하나 없는 연주곡이지만 오직 선율의 힘으로 내부에 침투해 살얼음처럼 변해버린 나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라고, 그리고 서쪽하늘로 지는 태양은 다시금 너를 향해 뜰 거라는 희망이 내 안에 가득차던 순간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이처럼 작가 박상의 에세이에도 음악이라는 이로운 전염성으로 하여금 반전을 맞이하는 순간들이 여럿 포착된다. 베트남 하노이 구시가를 걸으며 삭막한 오토바이 떼와 매캐한 매연과, 자비 없는 경적 소리에 영혼을 빼앗길 무렵 그는 서울 거리가 베트남처럼 무척 혼란스럽고 시끄러웠던 시절을 추억한다. 서울의 기동대에서 군 복무를 한 그가 대규모 시위 현장에 투입되어 공권력의 앞잡이로 거리에 나가 시위대의 샌드백이 되어야 했을 때였다. 그날은 평소와 비교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던 상황이었는데, 해산 안내 방송이 나와야 할 페퍼포그 차량에서 뜬금없이 카멜의 'Stationary Traveller'가 흘러나오는 실수가 발생하고 말았다. 시위대와 전경들이 뒤섞인 그 혼란스럽고 삭막한 현장 한복판에서 퍼지는 한편의 나레이션 같은 기타 선율과 아름다운 팬플루트의 황홀함이라니! 마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수류탄이 터지며 창고에 들어 있는 옥수수가 팝콘처럼 한가득 하늘에 팡팡 터질 때 흘러나오던 'Falls of the Popcorn'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카멜의 음악은 싸우기 직전의 대치 국면에 마치 '뽀샵질'을 하는 듯했다. 수많은 시위대와 전경들이 내 눈엔 카멜 콘서트에 몰린 팬들로 보였다. 무거운 국방색 진압복과, 시위대의 처절한 눈빛과, 등 뒤에 숨긴 쇠파이프와, 땀에 전 방독면과, 지휘관의 신경질적인 고함 소리 또한 평소와는 다르게 꿈을 꾸는 것처럼 인식되었다. 그대로 음악을 계속 틀었다면 모두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라는 마음이 들어 진압도 안 하고, 시위도 그만두고 그것참 좋은 선곡이었다며 악수한 뒤 헤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 70p 

 

 

음악이야말로 삭막함의 반대말이다. 경제고 사회고 정치고, 삭막하게 정체된 우리의 지금 여행이 음악의 '뽀샵빨'로라도 좀 아름다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 72p 

 

 

  메르스 사태로 나라 전체가 혼란에 휩싸였을 무렵, 작가는 크리스 가르노의 'Relief'를 들으며 음악이라는 감성 백신을 통해 후진 감성을 몰아내고 섬세한 사회적 항체가 형성되기를 상상하기도 한다. 마치 담백한 곡물 빵에 저염 버터를 부드럽게 발라놓은 느낌과 유사한 크리스 가르노의 나른하고 차분한 음색을 들으면 강력한 항체가 형성되면서 몸 안의 짜증 바이러스가 쫓겨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음악이 꼭 무슨 효능을 가져야 한다는 건 결코 아니지만 제목 그대로 안도, 안심, 경감, 완화 등을 선사하는 이 노래라면 잔뜩 예민해져 있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을 듯하다. 마침 이사를 마친 후에 새로운 집에서 맞은 첫 아침, 나는 크리스 가르노를 검색하고 이 노래를 재생해 들었는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의 묘한 음색에 머릿속에 짙게 깔려져있던 복잡한 감정들이 가만히 밀려나는 광경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 작가 역시 이런 광경을 보았던 것은 아닐까. 내 안의 많은 무게들이 덜어지고 덜어지는 그런 광경 말이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그러니 찬란한 거야 

 

 

  우리의 영원한 '마왕' 신해철. 마왕의 라디오 <고스트네이션>을 듣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공부를 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없이 낮지만 일그러진 세상을 향해 또렷한 일침을 내뱉을 줄 아는 그의 목소리에 매료되었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사실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록이라는 장르를 좋아하기엔 이미 나의 시대는 10대 아이돌 문화에 몸과 마음을 바친(?) 빠순이가 되지 않고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감히 마왕이라는 칭호가 붙을 만큼 마성의 매력을 내뿜는 그의 당당함이 좋아서 라디오만큼은 반드시 챙겨듣곤 했다. 작가 박상에게도 '신해철이 없는 세상만큼 개뿔 같은 것도 없을' 만큼 신해철은 역시 남다른 존재였나 보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정말 고마운 존재, 땅이 꺼지도록 더 깔아도 되니까 함께 인생의 기찻길을 달리는 중이기만 하면 좋을 것 같은 존재로 말이다. 영원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더 찬란하게 남아 있는 존재, 신해철이 남긴 '불멸에 관하여'의 가사를 읽어보면 정말이지 요즘의 흔한 가사들이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철학이란 게 담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회성 소비에 치우쳐 있는 대중 문화와 음악의 가치를 보다 단단하게 채울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작가의 마음에 유독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그대 불멸을 꿈꾸는 자여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으라 말하는가 왜 왜 너의 공허는 

채워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처음부터 그것은 텅 빈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내릴 곳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인생이든 여행이든 텅 빈 채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 원고의 의미가 텅 비어 보이더라도, 그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다. / 296p 

 

 

문화적으로 사려 깊고 단단한 것들이 많이 나타나 유치하고 헐렁한 것들을 점점 밀어내는 분위기가 판치면 좋겠다. 오래된 음악들이 자꾸 머그잔처럼 묵직하게 다시 소비되는 건 말입니다. 일회용 종이컵 같은 음악들이 너무 범람했다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 262p  

 

 

  이처럼 박상의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음악'을 넣어도 무방할 만큼 인생을 달달하고 끈적하게 만드는 순간순간에 함께 한 음악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음악이 많은데 나는 왜 그간 모르고 살아온 건지, 그의 에세이를 읽으며 사는 게 버거워서 감각보다 실존에 치우쳐 살아오느라 놓치고 있었던 음악들을 다시금 찾아 듣고 싶어졌다. "모쪼록 달콤한 사랑이 쩍쩍 달라붙는 날들 되시기를!" 하고 기원하던 그의 글귀처럼 내 인생에도 달달한 감성으로 가득한 추억이 가득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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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플라이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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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라는 이익 앞에 노출된 욕망과 부조리가 낳은 끔찍한 사건!

조작된 진실과 증명되지 않는 의문들 사이에서 단 하나의 진실만을 쫓아가기 위한 가부라기 특수반의 활약상! 

 

 

 

   요즘 들어 산책을 할 때면 여러 마리의 잠자리를 심심치 않게 발견하곤 한다. 내 앞에 보란 듯이 나타났다 어느 틈에 파르르 날아가 버리곤 하는 잠자리를 바라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마치 바람결을 느끼듯 공중을 유영하는 잠자리를 보며 나는 문득 '드래곤플라이'라는 영문 이름에 낯선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유독 서정적이고 시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우리 이름 '잠자리'와 달리 '드래곤플라이'는 어쩐지 특별한 기운의 상징성이 두드러지는 이름 같다. 가와이 간지의 추리소설 <단델라이언> 을 읽은 이후 민들레가 예사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처럼, 그의 전작인 <드래곤플라이>를 읽고 있으려니 또 다시 그때와 같은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었다.

 

 

 

   일상성의 반전이 주는 묘미랄까, 나는 <단델라이언> 이후 읽고 싶은 추리소설로 주저하지 않고 <드래곤플라이>를 손꼽았다. <단델라이언>의 민들레가 그래했듯, <드래곤플라이>에서 잠자리의 상징성과 이미지는 그 어느 작품보다 강하게 서사의 힘을 떠받치며 소설 전반을 지배한다. 굳이 말하자면 <단델라이언>보다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이며 근래에 읽은 추리소설 중 단연 수작이라 할 만하다.

 

 

 

행운의 상징이 슬픔의 메신저가 되어 돌아오다

 

 

   어느 날, 니코타마가와 강변에서 불에 탄 시신이 발견된다. 그 시신의 모습이란 목에서 아랫배까지 일직선으로 배가 갈라져 폐를 제외한 장기들이 모두 사라진 상태로, 복부를 찌른 후 사후에 배를 가른 것으로 추정되는 기이한 형태였다. 게다가 입 안에는 돌이 들어 있어 입이 쩍 벌어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노련한 직감이 뛰어난 형사 가부라기와 그의 부하인 엘리트 히메노가 즉시 사건에 투입되어 현장에 나타난다. 시신이 불에 탔으니 사망 추정 시간이나 흉기조차 짐작하기 어려워 수사가 난항으로 이어질 찰나, 시신의 목에 걸려 있었던 잠자리 장식의 팬던트가 눈길을 끈다.

 

 

 

"잠자리는 말이야, 유럽에서는 재수 없는 곤충으로 취급해. 때론 사람을 문다는 오해까지 받는데 일본에선 아주 친숙한 곤충이지. 어디 그뿐인가? 예로부터 잠자리는 '승리의 곤충'으로 불리며 행운을 가져다주는 곤충으로 여겨졌어. 그래서 무사들이 칼이나 투구, 겉옷 장식이나 무늬로 즐겨 사용한 거야. 그뿐인가? 잠자리는 그 자체가 참으로 신비한 생물이야." / 221p 

 

 

 

   잠자리는 신이 보낸 심부름꾼이라고 했던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곤충인 잠자리는 유독 일본에서는 행운, 기쁨과 제국을 상징한다고 한다. 사건으로부터 한참이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히류무라의 두메산골에 사는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 이즈미는 많은 생물들 중에서도 잠자리를 특히 좋아했다. 선천적으로 앞을 볼 수 없었던 이즈미는 늘 혼자였던 탓에, 자신에게 다가와 어디선가 날아와 자신의 어깨나 무릎, 단발로 깎은 머리 꼭대기에 가만히 내려앉곤 하는 잠자리만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놀러 와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두 남자 아이, 유스케와 겐이 이즈미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들은 잠자리를 매개로 친해졌다. 죽마고우인 유스케와 겐은 앞을 보지 못하는 이즈미를 항상 지켜주기로 약속하고, 이후 함께 잠자리를 잡으러 다니기도 하고 이제는 화석으로만 남아 있는 옛날 잠자리 '메가네우라'를 보았다던 유스케의 말에 따라 함께 이 광경을 보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날아다니는 용을 뜻하는 이곳 지명 역시 '히류무라'. 마치 용이 날아오르는 것 같은 모습의 거대한 메가네우라를 발견한 이 세 아이의 믿기지 않는 이 날의 경험은 훗날 그들 앞에 펼쳐지는 끔찍한 운명의 전조처럼 다가온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장기를 훼손당하고 불에 탄 시신은 혹시 유스케와 겐 둘 중에 한 명이 아닐까. 앞서 읽었던 이즈미와 두 소년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끄는 잠자리의 흔적이 훗날 그 목걸이로 이어지는 것만 같아 불길한 예감이 드는 가운데, 불에 탄 시신이 결국 유스케라는 사실을 드러나고 만다. 행운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잠자리가 슬픔의 메신저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 세상에 진실 같은 건 없다

 

 

   유스케에게 끔찍한 일을 벌인 살인자가 누구일지, 도쿄 경시청 소속 형사들과 가부라기 특수반이 추적을 거듭하는 가운데 드디어 가장 유력한 용의자 한 명이 떠오른다. 바로 히류무라 마을의 촌장인 다누마다. 과거부터 이 지역은 잠자리의 성지라 불리는 천혜의 생태환경지로, 마을 사람들의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댐 건설이 계속해서 추진되어 온 곳이었다. 촌장인 다누마는 자신이 앞장 서 댐 건설을 반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오랫동안 촌장직을 유지해왔지만, 결국 댐 건설은 추진되고 마을 사람들은 보상금을 받아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히류댐이 완공을 앞두게 된 상황에 유스케의 시신이 발견되고 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그간 촌장이 건설사와 내통해 댐 건설에 반대하는 척 공사 기간을 질질 끌어 국가로부터 돈을 계속 부풀려 받는 데 일조 했을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살 만한 정확히 포착된다. 즉, 유스케는 자신이 아끼는 잠자리의 성지가 히류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던 인물로 다누마로서는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모든 의심은 범인을 촌장 다누마로 향하기 시작한다.

 

 

 

   분명, 누가 봐도 범인은 촌장 다누마이고 모든 증거가 다누마를 향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게다가 시신 역시 유스케임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오~ 내가 생각한 게 맞나보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아.' 하고 뭔가 사건이 금방 해결될 것만 같은 쾌감 같은 것이 이미 중반부부터 들곤 할 것이다. 그런데 묘한 이질감이랄까. 누구보다도 직감이 발달한 가부라기가 그러했듯 이게 정말 진실일까? 의문이 든다. 자꾸만 중요한 것을 못보고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 여러 가지 증명되지 않은 사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듯한 의문들이 계속해서 가부라기의 발목을 붙든다.

 

 

 

"어떤 사실에 맞닥뜨렸을 때 우선 그걸 '의외로 놀라운 사실'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진실을 향해 가는 첫걸음이죠. 이 '의외로 놀라운 사실'에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비로소 '추론'이란 행위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진실에 이를 수가 있죠. 그걸 애브덕션(abduction)이라고 하죠." / 183p

 

 

 

   애브덕션. 누구보다도 직감이 발달해 엉뚱한 어림직작과 같은 애브덕션법 추리력을 빛내곤 하는 가부라기는 이미 정해진 수사방향과 다른 노선을 그리며 이제 모든 가설을 깨부수고 다시 시작한다. 과연,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은폐되고 조작된 진실은 무엇일까. 소설은 줄곧 잠자리가 가리키는 진실이 무엇인지 또 다른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개성 있는 캐릭터의 다양한 활약상이 추리소설의 활력을 높이다

 

 

   앞서 <단델라이언>을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여타의 추리 소설 및 형사 소설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 형사의 개성과 인상이 가와이 간지의 소설에서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에 아쉬움을 표한 적이 있다. 그나마 위로 할 만한 것은 가부라기 형사의 일방적인 활약이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팀원들이 의기투합하여 사건을 해결해나는 과정에서 진정성을 느꼈다는 점이다. <드래곤플라이>를 탄탄하게 받치는 힘 역시 가부라기 외 주변 형사들의 개성 있는 캐릭터와 이들의 단단한 팀워크에 존재한다. 가부라기와 오랜 동료로 성질이 급하고 괄괄한 면이 있으나 시종일관 유머 있게 팀의 분위기를 띄우는 마사키, 26세라는 젊은 나이의 프로파일러로 범죄 심리 분석에 능하고 사건의 단서로 진실을 추론해가는 능력이 탁월한 엘리트 사와다, 형사 오타쿠라고 불리며 뛰어난 외모와 스타일로 기동력을 자랑하는 젊은 에너지 히메노는 단서를 조합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나아가게 하는 소설의 완성도를 높인다.

 

 

 

   뿐만 아니라, 시종일관 가부라기의 돌출행동을 못마땅해 하고 냉정한 태도로 수사방향을 지휘하는 사이키 역시 누구보다도 가부라기 특수반이 마음껏 수사할 수 있도록 뒤에서 은근히 지원해주는 모습이 멋지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드래곤플라이>에서는 진중하지만 특유의 직감이 이끄는 방향으로 획일화 된 수사에 새로운 가설을 끊임없이 재기할 줄 아는 가부라기의 뚝심이 빛난다는 점에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이들 형사들이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서 사건에 다가가는지 그 소신과 철학을 진정성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타의 추리 소설과 다른 지점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의 감정을 '희로애락'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원한'이나 '증오'는 없다. 마치 그런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듯. 아니, 존재할까봐 두려운 듯이. 그건 자기 안에 원한이나 증오 같은 감정이 존재한다는 걸 누구도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런 골치 아픈 감정을 짊어지고 사는 걸까. / 74p

 

 

"인간은 언젠가 틀림없이 변할 겁니다. 그리고 동족을 죽인다는, 있어서는 안 될 습성을 버릴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저는 그렇게 믿어요. 하지만 그날까지는 인간 스스로가 인간을 지켜주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경찰관이 필요하죠. 저는 그래서 경찰관이 된 겁니다." / 487p 

 

 

 

   가만 보면 <단델라이언>과 <드래곤플라이>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인류애 같은 철학이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듯하다. 우리는 왜 같은 동족을 죽여야만 하는 것인가. 왜 이러한 비극은 계속되는 것인가. 자극적인 살인사건에 얽매이지 않고 일그러진 욕망과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고민하고 아파하는 우리 인간들의 고뇌와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작가의 사명 같은 것이 엿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앞으로도 가와이 간지의 작품만큼은 줄곧 찾아보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쭉 이와 같은 작품이 계속해서 출간되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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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 - 엄마와 남자아이가 함께 행복해지는 관계의 심리학
루신다 닐 지음, 우진하 옮김 / 카시오페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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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를 키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모를 위한 기술서!

이유 없는 행동은 없다, 남자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부모가 알아야 할 것들!

 

 

 

   '안 돼' , '하지 마!'

   최근 들어 가장 많이 한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아이를 제지하거나 해서는 안 될 행동에 주의를 줄 때 하는 말들이다. 뭐든 빨라지는 세상이 아니랄까봐, 한 때는 네 살 아이를 가리켜 미운 네 살이라더니 이제는 더 빨라져서 미운 세 살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쓰게 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깔깔거리며 웃던 아이가 느닷없이 칭얼거리며 공격적으로 돌변하고, 원하는 것을 바로 들어주지 않으면 악을 쓰며 고집을 부리는 일이 다반사다. 어쩔 때는 '딸이어도 이랬을까' 싶기도 하다. 엄마와 같은 성별을 지닌 딸이라면 아이의 기질을 조금은 더 잘 헤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것은 아무래도 아들의 기질은 엄마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는 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듯하다.

 

 

 

   이 때문에 평소에는 잘 읽지 않던 육아서를 조금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육아서에 나오는 내용들은 대부분 알고는 있지만 좀처럼 체득하여 활용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어 찾아서 읽어보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좋은 줄 누가 모르나, 모두 허울 좋은 이론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잘 안 되는 걸'하고 은연중에 거부하게 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과연 이 아이를 현명하게 키우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늘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나의 육아관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로 아이를 대하는 게 과연 옳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곤 했다. 단순히 아들의 마음을 좀처럼 헤아릴 수가 없어 답답하거나 속상했던 마음을 책으로나마 위로받을 수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 때에 굉장히 직관적인 제목의 책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라니, 남자아이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만큼 적절한 제목이 있을까 싶었다.

 

 

 

남자아이의 본성을 알면 어떻게 다룰지도 알 수 있다

 

 

   <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는 남자와 여자 어른 모두에게 남자아이의 본성이 어떤지, 어떻게 하면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하고 실용적인 정보를 알려준다. 자세하게는 아이들의 동기를 유발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아이의 에너지를 모아 하나에 집중하게 할 수 있는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루도록 도와줄 수 있는지 적절한 전략법과 이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한다. 저자는 남자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여자아이와 다르다는 생각에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남아와 여아를 비교하면 다른 점보다 같은 점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또한 남자아이를 장난꾸러기나 이해하기 어렵고 다루기 힘든 존재라는 편견에서 벗어날 것을 지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본인에게 오히려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은, 그간 남자아이가 까다로운 존재라는 것을 고정관념처럼 지니고 있었던 나의 습관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에서는 남자아이의 본성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들에 대해 살펴본다. 여기에서는 아이를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아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며 흥미, 유머, 용기, 정의를 통해 남자아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남자아이가 가진 특유의 기질들을 설명한다.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는 인정과 존중을 받지 못하면 반항하고 화를 내며 무례하게 돌변한다는 점이다. 아이를 인정하는 모습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면 아이의 변화는 커지며 아이는 어른이 자신을 인정한다고 느끼면 이번에는 어른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서로가 존중하는 관계 속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다음 2장에서는 남자아이들의 에너지를 잘 다루어 긍정적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법에 대해 설명한다. 위험하다고 섣불리 막지 말고, 아이에게 육체 에너지를 발산한 기회를 주되, 안전하게 하는 방법을 가르칠 것을 권장한다. 일반적으로 남자아이는 집중하는 시간이 짧다고 여기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함으로 하지 않으려는 것이 있다면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해 하기 싫고 재미없는 일도 흥분되는 도전적인 일로 만들기를 추천한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나이에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말자. 차이점을 인정하고 언제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주목한다. 남자아이는 일단 육체적 정신적으로 준비되면 새로운 기술을 굉장히 빠르게 습득한다.

아이가 흥미로워하는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원하는 속도 안에서 해야 한다. 그러면 그 흥미는 평생 지속된다. 아이에 대해 미리 선입관을 가지지 않도록 주의하자. / 77p

 

 

 

   경계선과 규칙의 중요성을 일러주는 3장은 인격과 책임감을 심어주는 튼튼한 경계선이야말로 아이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며 이때 단호함과 지속성 있는 규칙을 지정할 것을 추천한다. 남자아이는 규칙을 넘나드는 것을 놀이로 간주하기 때문에 '안 된다' 혹은 '하지 마라'와 같은 부정적인 말이 아닌 긍정적인 말로 표현할 때 부모가 원하는 효과를 더욱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가 집안을 어지럽혔다면, '치워!', '누가 이랬어?'라고 다그치기보다 '나는 어질러진 게 다 치워졌으면 좋겠구나', '누가 이런 짓을 했든지 솔직하게 말해주었으면 좋겠어'하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경계선을 적용할 때에는 지속적으로 남녀 아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하고, 아이가 받아들이고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 이후 아이가 경계선과 규칙을 지킬 때는 반드시 제대로 보상해줄 것!

 

 

 

남자아이는 주어진 일을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약간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이것을 '준비 시간(take-up time)'이라고 부른다. 아이에게 어떤 일을 부탁할 때는 그 말만 하고 아무렇지 않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아예 아이를 혼자 남겨두고 필요한 준비시간을 준다. 아이가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했다고 느끼면 쉽게 부탁에 응할 것이다. 만약 아이가 통제당하거나 잔소리를 듣는다고 느끼면 자신도 모르게 반항할 마음이 들게 된다. 아이에게 공간을 내어준다는 의미는 아이를 믿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 101p 

 

 

 

   4장에서는 엄마의 올바른 피드백이 자존감 높은 아들로 키울 수 있음을 설명한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아이의 진짜 본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아이의 성격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면 아이는 물론 행동까지 긍정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므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아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행동이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할 것을 권한다. 또한 무조건적이거나 잘못된 칭찬은 실질적인 평가가 아니며 계속 똑똑하다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뭐든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하도록 한다. 이 장을 읽고 나 역시 바로 실천해본 것이 그냥 잘했다고 칭찬할 게 아니라 '~ 해줘서 고맙다' 혹은 '아들, ~을 무척 잘하네. 최고!' 하고 해당되는 구체적인 행위를 들어서 칭찬하는 화법을 익히기 시작한 점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려면 이렇듯 칭찬도, 바꿔야할 점도 구체적으로 피드백 할 것을 권장한다.

 

 

 

아이의 행동에서 동기를 찾다 보면 아이를 이끄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하고 싶은 것을 말하기 꺼리는 아이는 사실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스스로 원하는 걸 찾도록 도와주자. 새로운 경험을 원하지 않는 아이라면 실패가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장점을 설명해주면서 자신감을 심어주자. 자기 자랑이 심한 아이는 인정받고 싶은 아이니 먼저 칭찬해주고 장점을 인정해주자. / 140p 

 

 

 

   5장에서는 남자아이가 감정을 쉽게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법에 대해서 설명한다. 남자아이들은 겁이 나거나 부끄러우면 때로는 분노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공격성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하며 적절한 배출구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부모는 '남성다움'에 갇힌 사고방식을 요구해서는 안 되며 아이가 느끼는 감정의 이름을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자연스럽게 감정을 받아들이면서 적절한 방향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아이가 감정을 나타내는 어휘를 배우는 데는 어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때 어른이 먼저 자신의 감정을 아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중요한 건 무언가를 고치는 게 아니라 아이의 대답을 듣는 것이다. / 168p 

 

 

 

 

 

   6장에서는 최고의 아들로 키우는 12가지 대화법으로 아이와의 대화에서 실제로 적용하면 도움이 되는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한다. 마지막 7장에서는 아이의 첫 번째 역할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빠'만의 역할을 강조하며 그들이 아들에게 보여야 할 중요한 태도 등을 언급한다. 이때 엄마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아이와 아빠 혹은 남자 어른이 함께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도록 해줄 것을 부탁한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끝으로 마지막 페이지에는 남자아이의 성장에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을 만한 다양한 책들을 함께 소개하는데 여기에 수록된 권장도서를 선별해 읽혀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듯하다.

 

 

 

   이렇듯 책은 세 살부터 속을 알 수 없는 사춘기의 남자아이들까지 아이들의 행동 속에 숨어 있는 본마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내 뜻과 방식에 따르지 않는다고 무조건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아들의 행동에 어떠한 뜻이 숨어있는지 이해해보려고 한다면 어떤 난처한 상황일지라도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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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코믹 스트립 완전판 1 : 1954~1956
토베 얀손 지음, 김민소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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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무민 시리즈의 완전판을 만나다!

괴짜지만 사랑스러워서,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아름다운 동화!

 

 

  마치 하마를 닮은 듯 순둥순둥한 얼굴에 통통한 몸매를 지닌 귀여운 캐릭터 무민. 그간 소품샵에서 무민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들을 만나보곤 했지만, 사실 이 캐릭터가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 혹은 어떤 스토리를 가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 캐릭터가 핀란드에서 태어나 나의 부모님보다 더 오래 전에 탄생해 지금껏 전 세계의 다양한 연령층에게 사랑받아왔다는 점이 놀랍기만 했다. 한 캐릭터가 꾸준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귀여움을 넘어서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순백의 동글동글한 캐릭터 무민에게서 우리는 어떤 영감을 받고 계속해서 애정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일까,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엉망진창이지만 모든 게 즐겁기만 한 여유만만 무민 가족

 

 

   무민은 작가이자 예술가로, 핀란드의 뛰어난 젊은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던 토베 얀손에게서 탄생되었다. 그녀는 어릴 적, 바닷가의 푸른 골짜기에서 살며 꽃밭에 늘어놓을 진주 조개 껍질을 주어 모으거나, 파도 속에서 사소한 보물을 건지거나, 시냇가에서 주운 돌멩이를 마가린으로 문질러 반짝반짝 빛나게 닦곤 했다.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그녀에게는 영감이 되었다. 그리하여 탄생한 무민 캐릭터는 한 잡지에서 일러스트 속 시그니처 캐릭터로 처음 소개되었다가 이후 그녀의 첫 동화책에서 무민 가족 전체가 등장한 것이 그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발매된 <무민 코믹 스트립 완전판 volume.1>은 1954년에서 1956년까지 연재하던 시리즈를 한 데 모은 것으로 고전 형식의 그대로인 흑백으로 출간되었다. 이 흑백의 형식은 무민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기상천외하고 독특한 무민 골짜기에 보다 상상력을 덧입히고, 현실인 듯 현실이 아닌 듯 무민 만의 새로운 세계관을 완성하는 데 일조를 한 듯하다.

 

 

 

 

 

 

   무민의 세계 속에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해서 늘 곤란한 일을 겪게 되는 태평한 캐릭터 무민과 온화한 성격으로 기상천외한 일을 벌이는 가족들 사이에서 늘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무민마마, 항상 새롭고 자극적인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는 아빠가 등장한다. 모두가 지닌 한결같은 태평함 때문에 늘 별난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때로는 곤란한 일을 겪곤 하지만 이들 가족은 특유의 긍정적인 마음으로 위기를 모면하곤 한다. 이들 뿐만 아니라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지기를 원하는 스니프, 사랑에 빠지면 아무 것도 안 먹고 상대방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밈블, 약하거나 지는 것을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브리스크, 뭐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강아지 핌플 등의 캐릭터들은 무민의 세계관에 현실과 삶의 이중성들을 은유적으로 꼬집는 다채로운 역할들을 한다.

 

 

 

 

 

 

   이들은 천진난만하게도 해적들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살인 용의자가 되는 상상놀이를 즐기기도 하는 등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을 것만 같은 일들을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벌인다. 그러면서도 애써 지은 자신의 집을 진짜로 집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선물하거나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언제나 비관적인 미자벨에게 여유와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일깨워주는 모습은 무척 사랑스럽다. 뭐, 이런 가족이 다 있어?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들을 사랑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삶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소중한 가치란 구름 위를 떠다니고, 빨간 장화를 신고, 언제나 평화롭게 사는 것'임을 세상에 깨우치고 싶었던 작가 토베 얀손의 희망이 무민을 통해 탄생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겨우 그 정도의 근심일랑은 내려놓고 조금은 나를 위해 자유로워져봐, 하고 말하는 듯한 무민의 그 동글동글한 눈과 몸매가 어쩐지 위안이 된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근심을 떠안고 사는 어른들이라면 이 책이 자그마한 위로가 되고 작지만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동화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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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날개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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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달린 기린 조각상에 숨겨진 아버지의 마지막 메시지가 전하는 감동의 역작!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며 진실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히가시노 게이고 표 미스터리!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몇 안 되는 작가들 중에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야말로 다수의 작품이 증명하는 존재감 넘치는 작가인 듯하다. 한때는 그를 단순히 '추리'라는 틀 안에 가둔 채 일본을 대표하는 장르소설 작가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비교적 최근작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라플라스의 마녀> 등을 보면 미스터리와 사회소설의 성격을 절묘하게 조직한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작품성까지 인정받는 작가임에 틀림없다는 믿음을 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출간되었다 하면 흔히들 하는 말로 '믿고 보는', '믿고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린의 날개> 역시 그런 책이었다.

 

 

 

기린 조각상을 향해 칼에 찔린 채 기도하는 남자, 이 의문의 살인사건이 향하는 메시지

 

 

   도쿄 한복판에 위치한 니혼바시 다리에서 중년의 남자가 가슴에 칼이 꽂힌 채 경찰에 의해 발견된다. 기이하게도 남자는 전설 속의 동물인 기린 조각상이 있는 곳에서 기도하는 자세로 쓰러져 있었다. 그는 곧 병원으로 후송되지만 이내 숨지고, 출동한 형사들이 추적한 끝에 다리로부터 한 블록 떨어진 지하도에서 핏자국을 발견하게 된다. 남자가 굳이 지하도에서부터 고통을 참아가며 기린 조각상 앞까지 걸어와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경찰이 사건 현장을 폐쇄하고 용의자를 추적하기 위해 검문을 실시하던 중 의문의 한 청년이 이들을 피해 달아나다 트럭에 치여 의식불명에 빠지고 만다. 청년의 몸에서는 사망한 남자의 운전면허증과 지갑이 발견되어 단번에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그가 남자를 살인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때부터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수사 조직이 꾸려지고, 형사들은 살해당한 중년의 남자와 용의자로 지목된 청년 사이의 연결고리를 파고들기 시작한다. 조사 결과 피해자는 건축 부품 제조 회사의 본부장으로 재직 중이었고, 용의자로 지목된 청년은 그 회사에서 계약직 현장 근로자로 일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합당한 조치 및 산재 처리도 받지 못하고 해고가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는 공장에서 해고 됐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좀처럼 다른 일자리도 찾을 수 없던 때였다. 이에 경찰은 물론 각종 매스컴에서도 살인 사건을 원한에 의한, 즉 ‘산재 은폐’라는 기업의 횡포가 계약직 종업원으로 하여금 충동적인 복수심을 일으켰다는 등의 자극적인 내용으로 사건의 원인을 몰고 간다. 이로 인해 피해자의 가족들은 아버지를 잃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산재 은폐의 책임자로 몰림으로써 사회로부터 질타를 받는 제2의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산재 은폐는 범죄입니다. 좋은 일은 결코 아니죠. 원한을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해되어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 180p

 

 

 

   가가 교이치로 형사와 그의 사촌인 마쓰미야 형사는 이 사건이 그저 원한에 의한 살인사건이라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고 여긴다. 용의자는 용의자일 뿐, 그가 범인이라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다. 경찰 조직 내에서는 이 사건을 서둘러 종식시키고 하나의 결말로 완성 지으려는데, 그 와중에도 끈질긴 추적과 집요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가가 교이치로는 사건의 진실을 향해 차츰차츰 나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용의자의 알리바이가 발견되고, 피해자가 일대 신사를 돌며 속죄와 구원을 기도해왔다는 의외의 사실이 드러난다.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가 죽음에 직면한 와중에도 기린 조각상을 향해 기도하며 전하고 싶었던 그의 간절함이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어진다. 거기에 실마리가 있다.

 

 

 

   이렇듯 추리를 불러일으키는 흥미진진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작품들이 그러했듯 <기린의 날개>는 추리적인 면면보다 사회 부조리에 대응하고 미래지향적인 감동의 휴먼스토리에 보다 집중한다는 점에 특징이다. '추리'는 그저 도울 뿐. 소설의 실마리라 할 수 있는 기린 조각상은 일본에서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모든 도로가 시작되는 기점인 니혼바시 다리에 있는 것으로, 이는 번영과 희망찬 미래를 기원하는 이들을 위한 응원이자 위로의 상징물이다.

 

 

 

   용의자로 지목된 청년이 함께 사는 여인과 함께 후쿠시마에서 상경해 처음 발을 디딘 곳도 바로 이곳이다. 너무나 가난했던 그들은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쿄로 올라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애쓰지만 현실은 계약직 노동을 전전하거나 아르바이트로 먹고 살기조차 빠듯할 뿐이다. 그러던 가운데 직장에서 사고를 당해 일자리를 잃고, 불의의 사고와 함께 사건의 용의자가 되고 만다. 소설은 열심히 살아보고자 한 청년이 어쩌다 용의자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그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계약직 종업원들이 늘 노동 현장에서 위험에 방치되어 있고 사건이 일어나면 은폐하기에 급급한 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꼬집는다. 또한 시청률과 흥행성에 몰두해 사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매체의 문제점도 함께 지적하며 피해자 가족들에 가중시키는 고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살인 사건이란 게 암세포와 같아서 일단 생겼다 하면 그 고통이 주위로 번진단 말이지. 범인이 잡히든 수사가 종결되든, 그 고통에 의한 침식을 막기가 어려워." / 249p

 

 

 

   그간에 다양한 추리소설을 접하면서 '~ 형사' 시리즈라는 부제가 있을 때면 단순히 주인공인 형사 개인의 활약상보다 경찰 소설의 성격답게 경찰 조직의 생리와 그것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주인공 형사의 남다른 사고와 집중력에 초점을 맞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래서일까, <기린의 날개> 역시 경찰 조직 내부의 모순을 지적하는 장면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이와 달리 자의적으로 짜 맞춘 조직의 결말에서 한발 물러나 사건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질릴 만큼 집요한 끈기를 보이는 가가 형사의 더딘 걸음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세상은 각종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하지만, 본연의 신념을 믿고 나아가는 가가 형사와 죽음을 앞두고서도 끝까지 진실로부터 도망치지 않을 것을 전하고자 했던 남자의 메시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가 아름답게 유지될 수 있는 희망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표 추리 소설 답다. 다작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 작가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작품이 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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