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 스토리 - 어떻게 가난한 세 청년은 세계 최고의 기업들을 무너뜨렸나?
레이 갤러거 지음, 유정식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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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 신개념 여행 비즈니스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

새로운 경영의 교과서라 불릴 만한 에어비앤비만의 전략과 미래!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이 문구 하나로 유독 마음을 끄는 광고가 최근 들어 눈에 자주 띈다. 바로 에어비앤비(Airbnb)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이름이 아직은 많이 낯설다. 나 역시 규모가 큰 여행사 내지 호텔스컴바인이나 트리바고, 익스피디아와 같은 전 세계 호텔 예약 사이트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기업이 창업 10년 만에 기업가치 300억 달러를 돌파하고 191개 국가 내 300만 개 숙소에 1억 6000만에 이르는 고객을 보유하여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손꼽힌다고 하니 이 놀라운 기업에 관심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에어비앤비만의 담대한 여정을 기록한『에어비앤비 스토리』는 단순히 이 기업의 창업 스토리와 성공 전략을 넘어,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으로 진입한 우리의 현주소와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난한 세 청년의 대담한 아이디어와 혁신

 

 

   늘 그러하듯 세계적인 기업의 창업 스토리 속에는 저마다 비범한 사연들이 존재한다.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만큼이나 에어비앤비를 이끄는 괴짜 3인방의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에어비앤비는 2007년 10월, 실직 상태였던 두 명의 디자인스쿨 졸업생이 샌프란시스코의 아파트에서 생각해낸 장난스러운 아이디어로 인해 탄생했다. 그들은 서로가 함께라면 재미있는 일을 벌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창업의 기회를 꿈꾸지만, 당장 방세를 마련하기도 벅찰 정도로 가난했다. 그러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낸 것이, 비어있는 방에 에어 매트리스를 펼쳐 다가올 ‘미국 산업디자인협회 컨퍼런스’ 참가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해 돈을 벌자는 의견이었다. 이것이 에어비앤비의 시초가 된 셈이다. 일주일만에 1000달러를 벌어들인 이들은 옛 룸메이트이자 엔지니어인 네이선 블레차르지크를 끌어들여 ‘룸메이트-매칭’ 시스템의 웹사이트를 구축해 이를 비즈니스로 정교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공간을 낯선 사람들에게 빌려준다는 이 대담하고 엉성한 아이디어가 괴기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한 투자자들은 이들을 외면했다. 하는 수 없이 이를 타개할 하나의 방안으로 일명 ‘오바마 오즈’라는 시리얼박스를 만들어 5달러짜리 시리얼을 40달러에 판매한 기지를 발휘했고, 론칭 하지 못한 신생 기업을 교육시키고 지원하는 와이 콤비네이터의 눈에 띔으로써 회생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초기에 그레이엄은 그들에게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줬다. 먼저 그들에게 고객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는데, 있어봤자 겨우 100명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레이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서비스가 괜찮다’고 여기는 고객이 100명 있는 것보다 ‘서비스를 사랑하는’ 100명의 고객이 있는 게 훨씬 더 낫다는 뜻이었다. 이게 바로 그가 알려준 첫 번째 교훈이었고, 이는 규모와 성장을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전통적인 실리콘밸리의 지혜에 위배되는 일종의 ‘교리’였다. / 66p

 

 

 

   원대한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에 미숙한 부분이 많았던 이 괴짜 3인방을 향한 그레이엄의 조언은 탁월했다. 이들은 그레이엄의 조언을 바탕으로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접근이 가능하도록 장벽을 걷어내고, 단순하게 플랫폼을 구축해 기존의 웹사이트들과 달리 호스트의 개성을 드러내는 무대로 활용되도록 디자인했다. 이를 위해 개별적이고 전문적인 사진 촬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임대 공간이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하고 검색과 메시지 발송, 대금 지불이 모두 매끄럽게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설계했다. 이는 호스트가 매일 자신의 공간으로 수익을 거두도록 하고, 동시에 호스트와 게스트 모두에게 새로운 영향을 끼친 최초의 서비스가 되었다. 놀라운 점은 회사를 시작할 당시에 세 창업자들은 조직을 이끌어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넘쳐흐르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뛰어난 멘토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최적의 해결책을 내놓는 이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던져 이들의 경영방식을 습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돈과 명예가 아닌 인간적인 ‘유대’의 가치에 집중할 줄 아는 보기 드문 CEO로, 에어비앤비를 일류 기업의 반열에 올린 지금에도 여전히 그 가치를 최우선으로 든다는 점이 이들의 성장을 응원하게 만든다.

 

 

 

“전통적인 사업은 창업자들에게 다른 강점을 요구합니다. 또 네트워크 회사나 게임 회사라면 담대한 마음가짐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켓플레이스 창업자가 가져야 할 강점들 중 최우선은 독창적으로 사고하고, 기꺼이 논쟁에 발을 담그려는 당돌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에어비앤비의 창업 스토리에 모두 녹아 있습니다. 에어베드를 임대하기 위해 애쓰고, 결코 죽지 않겠다며 시리얼박스를 만들었던 도전들, 그것이 바로 제가 ‘즉시 투자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던 이유입니다.” / 98p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 느끼는 새로운 개념의 여행 문화를 선도하다

 

 

 에어비앤비는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이라는 기업 신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켜왔다. 여행자들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호텔 숙박비보다 훨씬 저렴하게 ‘누군가의 집’에 머물 수 있었고, 그곳에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 ‘타인의 집에서 묵는다’는 이 색다른 경험은 누군가의 개인적인 공간에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조금이나마 타인과 연결되고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글로벌 체인호텔 브랜드에 대한 피로감을 덜고 ‘현지인’과 같은 경험을 누리면서 호스트와의 친밀감을 형성하여 독특하고 흥미로운 체험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평범한 가정집뿐만 아니라 나무 위에 지은 오두막, 선상 가옥, 이글루, 원뿔형 텐트 등 별난 공간에서 개성 있는 여행을 누릴 수 있다는 건 분명 큰 강점으로 작용했다. 이는 호스트에게도 호기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경우, 호스트 평균 연령이 43세로 자신의 집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의 회사나 웹사이트 곳곳에는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Belong Anywhere)’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데, 이는 회사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핵심미션이다.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이 ‘어디에서나 우리 집에 있는 것 같은 혁신적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다. 혹자는 이 말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과장된 이상주의라고 간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회사가 제공하는 경험은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점차 잃어버리게 된 인간적인 정과 유대감을 되찾아준다.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가 정성껏 준비해놓은 독특하고도 진실된 공간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가치들을 떠올릴 수 있다. / 15p

 

 

요즘 트랜드처럼 많은 여행객, 그중에서도 밀레니얼 세대는 조금 엉성하지만 특별한 여행 경험을 더 선호한다. 에어비앤비를 좋아하는 은퇴자와 함께 지낸다거나, 골목으로 난 뒷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뉴욕 소호의 멋진 로프트를 독차지할 수 있다면? 혹은 로스앤젤레스의 실버레이크 언덕에 한적하게 서 있는 어느 공예가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면? 이처럼 에어비앤비의 숙소는 제각각 다르고 독특하며, 그럼에도 현실에 엄연히 존재한다. 또 기존의 호텔들이 인간적인 정을 잃어버렸을 때 등장하여 여행을 매우 ‘인간적인 경험’으로 바꿔놓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호프만은 에어비앤비가 주는 경험을 일컬어 “상품이 아닌 인간화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 124p

 

 

 

   그러나 에어비앤비가 성장할수록 수많은 리스크와 유사 기업의 도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호스트의 집을 강탈하는 초유의 사건이나 백인 호스트가 흑인 고객을 거부하는 인종차별문제, 주거 공간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데서 이를 불법으로 여기는 일부 도시나 나라로 인해 합법적인 비즈니스 규정을 마련해야만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곤 했다. 또한 많은 호텔 기업이 에어비앤비를 ‘파괴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와 유사한 각종 부티크 호텔을 출격시키거나 단기 대여 산업을 성장시켰으며 온라인 여행사를 흡수하여 일종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는 이에 소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단순히 숙박이 아니라 여행 전체를 점유하여 에어비앤비만의 문화를 주도하기 위해 다양한 플랫폼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실제로 에어비앤비 사이트를 접속해보면 틈새시장, 전문성, 지역이라는 가치를 모두 결합하여 독특하고 지역 밀착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상품화하여 판매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년을 위한 목표를 말하자면 ‘많은 사람이 완전히 탈바꿈된 방식으로,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 느끼며 여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그는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이라는 미션을 현실화하는 일보다 우선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단언했다. 미션은 주주보다 먼저고, 기업가치보다도 우선한다. 이익보다도, 상품보다도, 그 모든 것보다도 우위에 있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사망한 이후에 에어비앤비의 가치가 정점에 이르기를 바라고 있다. / 212p

 

 

 

   현재 에어비앤비는 구글만큼이나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1순위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괴짜 3인방이 가장 신경 쓴 것이 조직 문화이듯, 이들은 직원들이 ‘나는 세상에 이로운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것은 직원들 스스로를 ‘에어 패밀리’ 혹은 ‘에어팸’이라고 부를 만큼 단단한 결속력을 갖게 한 원동력이 된다. 이미 거대 기업의 반열에 올랐지만 에어비앤비는 여전히 수직 상승을 진행 중이다. 어쩌면 이 책이 나오는 순간에도 에어비앤비 스토리는 ‘과거’가 되어 있을 만큼 눈부신 발전을 보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비록 엉뚱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을지라도 에어비앤비는 검색 및 매칭 매커니즘의 정교화,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이라는 고도화된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성장한 4차 산업혁명의 현재이자 미래가 될 기업이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한 듯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은 에어비앤비의 방식이 정착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이는 시간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이들이 지닌 잠재적인 가치가 우리 산업에도 주요한 본보기로 작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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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가 정말 좋다 - 파리에서 보낸 꿈 같은 일주일
박정은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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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영화 같은 낭만이 숨 쉬는 감성 여행 에세이!

 

 

 

   파리라는 도시를 향한 동경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본 뒤부터가 아니었을지. 내가 생각했던 파리의 인상은 주인공인 김정은이 자전거를 타고 파리 시내를 활기차게 누비고, 박신양이 사업 파트너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 뒤로 에펠탑과 유유히 흐르는 센 강을 비추는 장면 그 자체였다. 낭만 가득한 드라마의 소재 탓인지 이국의 전경이 유독 아름다웠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리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그 자리에서 파리다운 낭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만 같아서 반드시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손꼽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파리가 정말 좋다』라는 에세이의 제목에서 묻어나는 파리를 향한 애정이 마치 나에게까지 전이되는 것 같아 유독 마음이 설레었다. 어쩐지 이 책을 읽고 나면 파리를 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왜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걸까?

 

 

『나는 파리가 정말 좋다』는 파리에서 보낸 일주일간의 기록으로, 유럽과 아시아, 중동, 남미 등 총 62개국을 여행한 저자의 폭넓은 경험이 빛나는 여행에세이다. 그녀는 미얀마를 여행하는 도중에 만난 소피라는 프랑스인과의 인연을 통해 일주일 동안 소피의 집에 머물며 있는 그대로의 파리, ‘in Paris’의 경험을 솔직담백하게 기록하였다. 책은 여행가이드북처럼 주요 명소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비롯하여 파리의 색채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사진은 물로, 소소한 그날의 일상과 만남들, 때로는 친절하지만 때로는 불쾌했던 경험들까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소피의 집을 나선 첫날,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찬 그녀의 발걸음이 책을 읽고 있는 나로 하여금 설레게 한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김정은이 그랬던 것처럼, 특별히 자전거를 구매하지 않아도 파리 시에서 운영하는 시티 바이크를 타고 시내를 누빌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체험이란 말인가. 비록 파리가 자전거를 타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도시는 아닐뿐더러, 시티 바이크를 반납할 때 제대로 주차하지 않으면 자전거 디포짓 150유로가 신용카드를 통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위험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생 마르탱 운하를 지나 노천카페의 파리지앵들을 스치고 지나갈 수 있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인상적으로 본 까닭에 15세기 파리를 생생하게 구현한 빅토르 위고와 이에 얽힌 노트르담 대성당의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무려 387개의 어지러운 달팽이 계단을 올라가야 하지만, 콰지모도가 종을 친 종탑에 올라가 파리 시내의 멋진 전망과 신비로움을 체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둘째 날, 저자는 바스티유와 함께 감옥으로 사용된 콩시에르주리를 통해 프랑스 혁명의 뒷이야기를 전한다. 특히, 프랑스혁명 당시 급진파의 산악당을 이끌던 마라의 죽음과 그를 죽인 샤를로트 코르데라는 여성을 그린 두 그림을 통해 역사의 진보에 일조했지만 그만큼 피를 원했던 혁명의 이면과 온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이는 역사책에서도 배우지 못한 것이어서 이 책의 묘미를 더한다. 이 외에도 170년이 넘게 운영된 크레므리-레스토랑 폴리도르를 통해 언제가도 한결 같은 전통 있는 로컬식당이 우리나라에도 쭉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군주제를 폐지하고 혁명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며 공포정치를 펼친 마라에게 적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이 시기에 콩코르드 광장의 기요틴에서 목이 날아간 사람만 해도 셀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라의 죽음을 샤를로트의 생각과는 달리 더 큰 공포정치의 이행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샤를로트는 기요틴에서 머리가 잘린 뒤에도 한 사내에게 뺨을 맞는 수모를 당했다. 또 공안당국은 샤를로트의 단독 범행을 의심하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 잠자리를 함께한 남자가 있는 처녀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혁명은 여성에게 더 가혹했다. / 65p

 

 

 

 

 

 

  셋째 날에는 몽마르트르를 찾아가는 일정을 다룬다. 그녀는 이곳에서 문득, 예전에 니스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며 북역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민 한국인과 여승을 만난 사연을 떠올린다. 여행자의 고난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고마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여행이 매력이 아닐지, 그것이 이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이어 예술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언덕 위와, 언덕 아래의 ‘물랭루주’로 대표되는 붉은 빛의 환락가로 천양지차의 매력이 담긴 몽마르트르를 소개한다. 만약 이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가 추천하는 영화 <아멜리에>를 보고, 배경으로 등장하는 몽마르트르의 곳곳을 찾아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가 될 것이다.

 

 

 

   넷째 날에는 폴란드 바르샤바 여행 때 만난 프랑스인 얀을 따라 ‘파리 외방 전교회’를 다녀온 일과 오스카 와일드, 쇼팽, 알퐁스 도데 등 유명인의 도심 속 묘지 투어의 매력을 전한다. 사실, 그 어느 일정보다 로맨틱한 파리의 낭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다섯째 날의 일정은 무척 흥미롭다. 그 유명한 로베르 드와노의 사진 <시청 앞에서의 키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이성과의 로맨스를 꿈꾸게 했던 영화 <비포 선셋> 외 시리즈를 통해 파리의 낭만과 로망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여섯째 날에는 역시 여행가이드북이든 여행에세이든 빠질 수 없는 맛있는 파리를 소개한다. 도심에서 만나는 시장과 로컬 푸드를 비롯하여 프랑스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카페 문화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누구나 한번쯤은 테라스에 앉아 커피와 수다를 즐기는 낭만을 꿈꾸듯 그녀 역시 카페 테라스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다리를 우아하게 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책을 보며 하루 종일 죽쳐 봐야지 하고 결심했지만 뜨거운 햇살에 땀은 줄줄 흐르고, 무엇보다 지루해서 더는 앉아 있을 수 없었다던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에서는 살풋 웃음도 나온다.

 

 

 

파리의 카페는 프랑스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저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철학․문학․예술을 논하는 토론 문화가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다. 재미난 것은 프랑스 관광청에서 이러한 카페를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요리와 함께 프랑스의 3대 문화로 손꼽았다는 것이다.

카페가 주요 문화의 범주에 들어가다니! 파리에는 이러한 토론 문화를 당당히 이끌며 철학과 문학적인 생산물을 만들어 낸 대표적인 카페 두 곳이 있다. 두 곳 모두 파리 6지구 생 제르맹 데 프레 교회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오래된 카페다. / 212p

 

 

 

 

 

 

 

   마지막 날에는 소피와 함께 마레 지구 골목탐방에 나서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상업 지구가 가장 번화해지는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는 일요일에 슈퍼마켓과 백화점을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일요일에 일해서 돈을 벌게 하는 것보다 법적으로 모두 일하지 않게 규제해 가족의 단란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데 더욱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무엇보다 작은 잔디밭에서 소박한 가족 나들이를 즐기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비록 흑인 일행에게 카메라를 빼앗기고, 머리채가 잡히는 불상사에 글을 읽는 나까지 아찔해졌지만 예술과 낭만으로 가득하고, 친절의 손길을 내민 파리지앵으로 하여금 여전히 파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마지막 말은 참 인상적이다. ‘이런 게 인생이지요(C'est la vie)’와 같은 산경험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으니까.

 

 

 

   이 외에도 책은 특별히 파리를 교통지옥으로 만든 차원이 다른 파업 이야기, 각각의 테마가 담긴 파리의 특별한 메트로, 영화 <비포 선셋>에 나온 스폿들을 찾아다닐 수 있는 지도, 키스를 부르는 파리의 장소 등 다양하게 파리의 매력을 즐길 수 있는 소스들을 제공하고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미리 보고 여행 일정을 짜보는 구성이 여행의 흥미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파리에서 보낸 꿈 같은 일주일’이란 부제처럼 나 역시 잠시나마 파리의 꿈 같은 공간 속으로 잠시 다녀올 수 있어서 즐거운 독서시간이었다. 최근에 스페인이나 스위스 등 유럽의 다양한 지역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역시 나에게 있어 ‘파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로망 그 자체라는 것을 실감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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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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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어가는 순간에,

마지막까지 붙잡고 싶은 눈부신 동화!

 

 

  너른 광장 하나가 있다. 그곳에는 늘 한 자리에 머물러서 내가 서 있는 쪽을 지그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딘지 모르게 바쁘게 사라졌다가 다시 모퉁이를 돌아 나타나는 사람들도 있다. 광장의 한쪽에는 프리지아가 한 가득 피어있고, 뿌리 깊은 높다란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기도 하다. 나의 아이가 좋아하는 아기 사자 인형이 작은 벤치에 놓여 있고, 그 옆에 있는 멋진 그랜드 피아노 위에서는 악보 하나가 살포시 부는 바람에 팔랑팔랑 소리를 내며 페이지를 넘긴다. 하늘 위에는 뭔가가 둥실둥실 떠다니는데 가만히 보면 구름이 아니라 책이다. 그렇다, 이곳은 다름 아닌 ‘기억’이라는 나만의 광장이다. 이 광장은 당시의 감정이나 기분, 정서를 동반하는 온갖 매개체들이 존재하는 나만의 우주 즉, 나만의 천체이다. 기억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끼거나 인생의 마지막에 임박했을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이 광장을 함께 거닐며 그것들에 얽힌 사연들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이별을 마주할 수 있다면 어쩐지 그 이별이 슬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과 헤어짐을 배워가는 손자        

 

 

 

“노아한테 뭐라고 하지? 내가 죽기도 전에 그 아이를 떠나야 한다는 걸 무슨 수로 설명하지?” / 31p

 

 

 

  세상에 이별에 익숙한 사람이 있을까. 일생에 누구나 한 번은 이별을 마주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특히 가족과의 이별 앞에서는 누구나 깊은 상실감과 무기력함을 느끼곤 할 것이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속 할아버지는 서서히 잃어가는 기억만큼 하루하루 이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손자의 이름이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좋아서 항상 ‘노아노아’라고 부르는 그는 손자와의, 기억과의 이별 앞에서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이별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에게도, 이별을 설명해야만 하는 어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기억이라는 광장으로 손자를 이끌며 두려움 없이 작별할 수 있는 서로만의 방식을 찾아나간다. 두 사람이 굉장히 좋아하는 수학 이야기를 하거나, 광장에 존재하는 반짝이는 추억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원의 넓이를 계산할 때 필요한 원주율 외우기도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게임이다. 할아버지는 비밀의 문을 열어서 온 우주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런 신비한 숫자들을 사랑한다. 할아버지는 원주율을 소수점 이하 200번째 자리까지 외운다. 아이의 기록은 그 절반이다. 할아버지는, 아이의 사고는 확장되고 할아버지의 사고는 수축돼서 둘이 중간에서 만나는 날이 올 거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 40p

 

 

‘중요함!’ 한 건물을 이렇게 깜빡인다. ‘기억할 것!’ 한 건물을 이렇게 얘기한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높은 건물은 ‘노아의 사진들’이라고 반짝인다.

“저 건물들은 뭐예요, 할아버지?”

“기록을 보관하는 곳. 중요한 것들이 전부 저 안에 들어 있지.”

“예를 들면 어떤 거요?”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모든 것. 사진, 영화, 그리고 네가 준 가장 쓸모없는 선물들.”

할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리고 노아도 웃음을 터뜨린다. / 62p

 

 

 

 

 

 

 

   이 소설이 가장 빛나는 지점은 아이의 사고는 확장되고 할아버지의 사고는 수축돼서 중간에서 만나는 날이 올 거라고 말하는 데에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점점 자라고 한 사람은 점점 작아져서 몇 년이 지나면 중간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 존재한다. 광장이 하룻밤 새 작아졌음을 눈으로 보면서, 모든 게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며 삶에 대한 기대마저도 잃기 마련이지지만 여기, 이 우주처럼 어디로 확장될지 모르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으니까. 나를 추억해 줄 테니까, 슬프지 않다. 이렇듯 상실과 새로운 시작을 따뜻하고 담담하게 담아내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이별이 단순히 단절과 사라짐이 아니라는 잔잔한 울림을 준다.

 

 

 

“제 손을 왜 그렇게 꼭 잡고 계세요, 할아버지?”

아이는 다시 속삭인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서, 노아노아야. 너는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있고 싶거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보답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더욱 세게 잡는다. / 81p

 

 

 

나랑 평생을 함께 했잖아요. 내 평생을 가져갔으면서.

 

 

 

“여보, 기억들이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어. 물과 기름을 분리하려고 할 때처럼 말이야. 나는 계속 한 페이지가 없어진 책을 읽고 있는데 그게 항상 제일 중요한 부분이야.” / 85p

 

 

 

 

 

 

  이별을 준비하면서 할아버지는 아내와 나눈 시간들에 대한 회상과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유독 사무친다. 반세기가 넘도록 서로의 사람으로 지내며 히아신스 향기가 나고 가끔 고수 냄새도 풍기는 정원에서 공유했던 그들의 시간이 지금은 이토록 생생한데, 그 기억이 지워지게 될 것을 생각하면 나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없지 않겠는가. 이별을 직면하게 되고나니 더욱 크게 느껴지는 서로의 존재와 그 애절한 마음을 “당신의 히아신스. 그 향기가 이렇게 강렬했던 적이 없는데.” 이 한 문장으로 압축한 저자의 표현이 애잔하게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우리가 맨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당신이 잠자는 시간이 고문이라고 했던 거 기억나요?”

“응. 잠은 같이 잘 수 없었으니까. 날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거기가 어디인지 알아차리기 전 몇 초 동안 얼마나 괴로웠다고. 당신이 어디 있는지 알아차리기 전 몇 초 동안 말이야.”

그녀는 그에게 입을 맞춘다.

“매일 아침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점점 길어질 거예요. 하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했던 이유는 당신의 머리가, 당신의 세상이 남들보다 넓었기 때문이에요. 그게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 97p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 마치 『어린 왕자』와 같은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기법으로 인해 확실히 프레드릭 배크만의 전작과는 차별화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보일 생각으로 시작한 원고가 아니라고 한 저자의 말처럼 두터운 서사나 흥미로운 전개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인생의 종착점에 이르렀을 때 되돌아볼 ‘나’라는 기억의 광장에 앞으로 무엇을 채워나가야 할 지 청사진을 그려보게 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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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시간 -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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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시간, 인생의 단상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우리는 차를 마시러 갑니다.

 

 

 

   그간 써왔던 서평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써볼까 해요. 그냥, 어쩐지 마스다 미리 작가님이 쓸 법한 어투처럼, 느긋하면서도 편안하게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마스다 미리 작가님은 『평범하고 느긋한 나의 작가 생활』,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주말엔 숲으로』,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등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만화와 에세이로 사랑을 받고 있지요. 그녀의 신작 『차의 시간』은 커피와 카페라는 공간을 애정해마지 않는 저로써는 흥미를 감출 수 없는 책이었습니다.

 

 

 

 

 

 

 

 

 카페가 내 집 안방처럼 되는 일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있어 카페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곳을 넘어 꽤나 다중적인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지요. 퇴근길에 삼삼오오 모인 일행과 가벼운 수다를 즐기거나 다정한 연인과 달콤한 디저트만큼이나 달달한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며, 비밀스러운 고민과 서로의 푸념을 덜어주는 위로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카페는 온갖 인생의 단상들이 머무르는 곳이 맞는 듯합니다. 차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공감력이 확대되는 것 또한 마찬가지고요. 식어가는 찻잔과 녹아드는 얼음으로 커피가 거의 물이 되어갈 만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날의 나눈 대화를 돌이켜보면 참 별 거 없다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러나 그 순간, 순간이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미스다 마리 작가님도 알고 있었어요. ‘잡담’을 유사어 사전에서 찾아보니 거기에는 담소, 여담, 잡소리, 소담, 한담, 에피소드, 잡음 등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을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도 많은 말이 있더라는 거예요. 결국 그날 그저 가볍게 나눈 잡담이란 것이 알고 보면 참 소중한 말이었단 거지요.

 

 

 

 

 

 

 

  요즘 카페를 가면 노트북을 켜고 일하거나 책을 펼쳐들고 저마다 자신의 미래에 몰두하고 있는 청년들이 참 많아요. 『차의 시간』 속에도 그런 장면이 담겨져 있어요. 취업준비 중인 듯한 대학생 그룹 열 명이 토론 같은 하고 있는 광경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간다’ 하는 밝고 건강한 ‘미래’ 같은 것을 눈으로 마주하는 느낌이랄까요. 한때는 저도 그들 중 한 명이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이르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들의 모습이 유독 젊어 보입니다. 저들의 눈에 제 모습은 30대 중반에 아이 하나를 둔 아줌마의 모습으로 보이는 건 아닌지 괜스레 움츠러들곤 합니다. 그런데 작가님이 쓴 단순한 문장 하나가 마음의 무게를 더네요. 40대를 인생의 반환점이니 뭐니 하지만 반환한 사람이 있나?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장면은 화려한 수식어 따위가 없어도 큰 위로가 됩니다.

 

 

 

 

 

 

 

 

 

인간은 성장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의 숫자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생물이야. 

 

 

 

  팬 사인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세 명의 출판사 직원들과 가졌던 티타임 장면이 참 인상적입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작가님은 자신이 먹을 케이크 하나를 주문했는데, 디저트가 세 개 뿐인 건 왜인지 의문이 들었나봅니다. 각자 하나씩 먹으려면 네 개가 필요한데 말이죠.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는 혼자 한 개씩 디저트를 먹기보다 여러 가지 주문해서 함께 나눠 먹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지요. 마치 된장찌개 하나로 여러 사람이 숟가락을 가져가는 것처럼 말이죠. 개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주 예쁘게 생긴 디저트 하나만 있어도 분위기는 묘하게 달콤해지고 우리는 그 달달함을 나눠먹음으로써 감정을 공유하게 되니까요. 어쩌면 차의 시간은 ‘애써 채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넘치는, 그런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말입니다.

 

 

 

   『차의 시간』을 읽고 나니 누군가와의 티타임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어쩐지 이전과는 다르게 티타임 이후의 여운까지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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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기술
이반 안토니오 이스쿠이에르두 지음, 김영선 옮김 / 심심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삶의 질을 완성하는 기억과 망각의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다!

 

 

  우리는 모두 기억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며, 기억의 산물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감각 정보들을 받아들여 이를 저장시키고, 회상이라는 작용을 통해 복기해나가는 일련의 연속된 행위들 속에서 우리의 삶이 유지된다. 알츠하이머나 치매와 같이 기억장애를 지닌 이들이 겪는 곤란함에 비추어보았을 때 기억은 생존과 결부될 만큼 기능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기억은 정서적이기도 하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잊고 싶어 몸부림치게 만드는 아픈 상처들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왜 반드시 잊고 싶은 기억은 유독 끝끝내 잊히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영화 <맨 인 블랙>처럼 기억을 지워주는 아이템이라도 있다면, 불쑥불쑥 떠오르는 괴로운 기억 따윈 모조리 지워버릴 수 있을 텐데.

 

 

 

   이렇듯 우리에게 ‘망각의 기술’이란 게 있다면, 이것을 적절히 사용할 수만 있다면 삶의 만족도가 보다 높아질 수 있지는 않을까. 이러한 이유로 『망각의 기술』이란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마주하면서, 우리가 쉽게 기억을 통제하지 못하듯 망각 또한 통제하기 어려운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나름의 근거를 통해 기술을 체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접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기대와 달리 ‘지우고 싶은 기억을 잊을 수 있는 법에 대해 기술한 책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책은 기억과 망각이란 무엇이며, 신경과학을 기반으로 하여 이것을 일으키게 하는 생화학적 기제들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다소 전문적인 주제를 다룬다. 즉, ‘우리는 왜 기억을 하고 또 잊는 것인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생존의 기술로써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기억과 망각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 망각한다

 

 

   『망각의 기술』의 저자 이반 안토니오 이스쿠이에르두는 브라질의 과학자로 학습과 기억을 연구한 신경생물학 분야의 선구자이다. 그는 생물학적 기제에서 기억 과정을 설명하는 일에 초점을 둔 연구를 통해, 뇌에서 어떤 정보가 기억으로 형성되는 과정과 공포나 스트레스 등 특정 상태일 때만 인출되는 기억 인출 조절에 에피네프린, 도파민, 내인성 오피오이드 펩티드, 그리고 아세틸콜린 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최초로 밝혀낸 인물이다.

 

 

 

   그는 기억이란 우리가 흔히 학습이라고 부르는 습득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고 말한다. 경험이 뇌의 언어로 번역되면 그 결과 생긴 정보는 기억의 흔적이나 기억 파일로 응고화 되어 뇌의 언어로 저장되는 것이다. 그는《심리학》이라는 저서를 출간한 맥고가 “기억의 가장 두드러진 양상은 망각”이라고 한 말을 인용해, 우리가 기억하는 것보다 잊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분명히, 매일 우리 기억의 많은 부분이 영원히 사라진다. 망각이란 기억을 형성하고 인출하는 기제가 포화될 수 있기 때문에 쓰이지 않는 기존 기억은 새로운 기억에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정리되고 마는 과정이다. 즉, 우리가 모두 개인으로서 활발히 또는 흡족히 행동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기억 또는 기억의 단편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는 곧 망각 역시 기억만큼이나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며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듯, 우리가 망각하는 것 또한 우리 자신임을 피력한다.

 

 

 

 

 

 

   기억을 떠오르지 않게 하는 데는 습관화, 소거, 차별화, 억압의 네 가지 방식이 있다. 이 네 가지는 근본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게 아니라 기억으로의 접근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습관화란 망각의 기술을 이루는 중요한 기둥으로, 경적소리를 처음 들으면 놀라서 그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만, 열아홉 번째로 경적소리를 들으면 그냥 무시해버리는 예를 통해 점진적인 반응의 억제를 바로 습관화라 명명한다. 습관화는 우리가 세상을 좀 더 마음 편하게 돌아다니도록 도와준다. 공항 같은 시끄러운 장소 또는 극장처럼 빛이 많거나 공공시장처럼 여러 목소리가 뒤섞이는 곳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 소거는 우리에게 친숙한 ‘파블로프의 개’의 실험으로 설명된다. 신호음은 조건 자극, 먹이는 무조건 자극, 개가 습득한 신호음에 타액을 분비하는 반응은 조건 반사다. 무조건 자극은 조건 행동을 강화하기 때문에 ‘강화물’이라고 부른다. 일단 조건화를 확립한 뒤 강화물을 생략하면 동물은 조건 반응을 억제한다. 이것이 바로 소거이다.

 

 

 

   차별화는 생물학적으로 의미 있는 반응을 일으키는 자극과 질적으로 비슷한 자극에 대한 반응을 억제하는 것이다. 어린 아기가 주변 모든 남성을 ‘아빠’라고 부르다가 곧 진짜 아빠를 가리키는 데만 한정해서 이 말을 쓰도록 스스로 학습하듯, 아무 남성을 보고 아빠라고 부르는 일을 억제하는 것을 차별화라고 한다. 앞선 세 가지가 학습의 형태를 통해 이뤄진다면 마지막인 억압은 의식 안으로 어떤 기억을 들여보내지 않기 위해 그 표출을 억제하는 것으로, ‘자발적 억압’이 뇌 체계 작동 결과임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진짜 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망각의 네 가지 기술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생존하는데 유리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다음으로 저자는 기억과 망각에 관여하는 뇌 영역과 감정이 기억의 형성과 인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원인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증명한다. 인간과 다른 동물, 주로 포유류에게 있어 감정적이지 않은 순간은 없다. 이런 점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자극적인 기억이 대개 잘 기억되는 것은, 이때 기억의 형성과 인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신경호르몬 때문이라는 그의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 정서적 각성이 해마와 편도체의 노르아드레날린성 자극을 발생시켜 더 선명하고 강렬한 기억의 형성과 인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정서나 감정의 영역이라 여겼던 부분까지도 뇌의 기능과 호르몬의 역할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하니 새삼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신경을 제거한 횡격막 실험이 극적으로 보여주듯 시냅스의 폐기는 그것을 거쳐 이동한 정보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확실한 방법이다. 라몬 이 카할이 1893년에 주장하고 현대 신경과학이 증명한 대로 시냅스가 기억 보관소로 여겨지는 한, 인간과 모든 동물에게 일어나는 진짜 망각의 대부분은 시냅스의 폐기에서 비롯된다. / 121p

 

 

기억이 지속되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 기억의 감정적 내용이나 개인적인 중요성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많은 각성이 따르는 강렬한 감정 상태에서 습득한 기억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이 과정은 보통 기저외측 편도체로부터의 입력 그리고 노르아드레날린성 및 도파민성 자극으로, 해마에 있는 기억 형성 세포의 유전자가 활성화하고 단백질 합성이 강화된 결과다. / 123p

 

 

 

 

 

 

 

   뇌 속에는 단백질과 뉴런의 많은 교체가 이루어지는데, 하루에도 여러 차례 구성 물질을 바꾼다고 한다. 뇌에 들어오는 많은 정보가 그 안에 그대로 머물지 않으며 다른 정보로 대체되거나 또는 대체되지 않을 수도 있는, 매우 복잡하고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는 기억과 망각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존재들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자서전 《살아남기》의 첫 구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기억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라고. 결국 내 삶을 완성해가는 건 무엇을 기억하느냐와 무엇을 망각하느냐 사이에 있음을,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 역시 그 지점에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불편하고 귀찮은 기억에 사로잡힐 때마다 나의 뇌에게 ‘소거’하자, ‘억압’하자 하고 명령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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