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6 - 구부의 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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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漢)의 대계를 무너뜨리고 고구려의 문명을 세우리라!

동아시아의 정치 판도를 뒤흔들려는 구부의 꿈, 찬란하게 피어나는 고구려의 힘!

 

 

  무릇 왕이란 태양과도 같이 밝아서 스스로 빛나야 하는 법이지만 또한 큰 그릇과도 같아야 한다. 담는 자리 하나 모자람이 없어야 하고, 하나로 모아 그것을 정직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 왕이 갖추어야 할 소양이다. 왕이 온 나라의 꿈을 담는 그릇을 제공해주면, 제 꿈을 저당 잡힌 많은 이들이 알아서 힘을 모아 채워주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왕좌이며 왕은 그러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 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요즘, 소설가 김진명이 마침내 고구려 6권을 들고 나타났다. 무려 4년 만에 미천왕 을불과 고국원왕 사유에 이어, 고구려의 불씨를 키운 천재 태왕 소수림왕(구부)과 함께.

 

 

  때는 고구부 즉위 5년, 고구려는 북방의 세력 다툼에서 탈락하여 이미 다 망해버린 줄로만 안 시기였다. 개국 이래 가장 강력한 군사, 가장 뛰어난 장수, 부여구라는 위대한 왕을 지닌 백제가 전성기를 이루던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부는 선왕의 유언으로 오직 내치에만 전념하기로 하여 태학을 설립하고 불교를 들여와 백성의 삶과 마음을 다졌고 스스로 법을 제정하여 나라의 근간을 다졌다. 강력한 왕권과 고구려의 새로운 부흥을 일으키기 위한 그의 노력으로 인해 고구려는 다시금 번영의 물꼬를 틔우고 있었다. 쥐 죽은 듯 발톱을 숨기고 있던 구부는 마침내 백제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는 갑옷조차 입기 싫어하는 왕이고, 이렇다 할 책사와 걸출한 장수도 곁에 없었다. 최고의 지략과 담력을 갖춘 백제군과 달리 고구려군은 허약해 보이기만 했지만 이상하게도 수곡성을 두고 벌이는 이 전쟁은 도무지 결착이 나지 않고 자꾸 미궁으로만 빠져든다. 마치 수십 수의 앞까지 내어다보는 바둑의 기사처럼 이 전장의 모든 수를 읽어내는 그로 인해,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전투는 오직 그의 뛰어난 계책으로 희생 하나 치르지 않고 승리한다. 태왕 고구부에 의해서 다시금 고구려가 북방의 패자에 올라 위대한 패업을 이룰 것만 같은 전조였다.

 

 

장수들은 들떠 있었다. 천하에 위세를 떨치는 백제군을 이토록 시원히 놀려댔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그들은 그것이 누구의 덕인지 잘 알고 있었다. 판은 처음부터 짜여 있었고 고구려군과 백제군은 모두 바둑돌에 불과했다. 정말이지 그들의 태왕 구부는 신기한 인물이었다.

사관 하나가 그의 병법을 기록하려 시도했으나 도무지 그 원리를 기술하지 못하여 사직하고 만 사례도 있었다. 무예를 전통의 미덕으로 여겨온 고구려 무장들이었으나 그들은 이 말도 제대로 못 타는 태왕 아래 진심을 다해 머리를 조아리게 된 지 오래였다. / 41p

 

 

  칼보다는 붓이 더욱 어울리는 구부, 그는 왕이라기에는 성정이 자유롭고 쾌활하였으며 어떤 중대사에도 항상 웃는 낯인 매우 보기 드문 이였다. 식견은 누구와도 비할 데가 없이 높아 먼 동진(晉)의 위대한 학사들마저도 구부의 존재가 마음에 걸릴 정도였다. 이렇다보니 그의 속내를 감히 짚어보는 이가 없었고 그에게 쉽게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 또한 없어서 모두가 그 하나만을 바라보며 움직였기에, 한편으로는 홀로 많은 중대사를 짊어진 채 외로운 싸움을 하는 왕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기댈 수 있었던 존재가 우연히 이불란사에서 만난 비구니, 단청이었는데 그녀는 한때 유학의 엄격한 예법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구부는 유학을 도입하여 그것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지기는 했으나 유학의 그늘, 즉 공자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한(漢)의 문명이 세상을 지배하고 그들의 것이 오로지 천하의 주인인 듯 오만하게 구는 것을 내내 마음에 두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내 그는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한의 유학, 마치 말의 눈가리개 같은 그것을 벗겨내고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 이 땅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겠다는 큰 꿈이었다.

 

 

“말의 눈가리개란 제가 어떻게 부림당하는지,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세상에는 어떤 다른 것이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만드오. 이끄는 대로 달리는 일, 제 본분으로 지워진 일에 가장 충실하게 될 뿐이오. 나는 그 눈가리개를 벗기고 백성이 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 것이오.” / 140p

 

 

  “자네는 또 하나의 공자가 되려는 것인가?”

  감히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구부가 펼치려는 세상에 놀란 백제의 왕 부여구가 한 말이었다. 구부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백제에 싸움을 걸어 그 왕이 응답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서벌(西伐)에 동참할 것을 제안한다. 당시 백제의 우방인 동진과 손을 놓고 고구려와 함께 힘을 모아 요하를 치자는 것이었다. 요하를 차지함으로써 대륙의 패권을 장악한 다음, 두 나라의 백성 모두가 천하 만민이 사랑하고 따르는 새로운 법제, 학문, 사상을 만들어 낼 것을 주장하는 구부의 뜻은 너무나 원대해서 아득하기만 했다. 역사상 이만한 거래가 또 있을까. 모두가 말리고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겠으나 부여구는 이를 받아들인다. 실로 구부만큼이나 백제의 왕 부여구 또한 큰 그릇임에 틀림없었다. 한편 동진의 학사들은 그들이 보낸 학자 백동으로 하여금 구부의 속내를 간파해내고 고구부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들의 천 년 대계가 무너지리라는 위협을 느낀다. 천하의 힘을 모아 고구려를 역사에서 지우라는 사안의 명령은 그만큼 고구부의 꿈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위대한 것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방증이었다.

 

 

"듣고도 모르겠느냐? 그가 생쥐를 키우는 자, 게으른 자, 과식하는 자를 벌하는 것이 한(漢)의 세상이라 하지 않았더냐. 그렇다면 그의 세상은 무엇이겠더냐? 법(法)을 추리고, 예(禮)를 줄이고. 백성의 몸을 묶은 수만 관습과 규제, 백성의 눈을 가린 신분의 구분을 없앤 세상. 당당히 걷고 자유로이 공부하며 할 말을 하는 세상. 백성은 어느 세상을 택하겠느냐?“ / 153p

 

 

  동진의 움직임으로 인해 고구려는 사방을 적으로 맞이하게 된다. 심지어 백제의 왕 부여구가 요하로 떠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탓에 수천 년을 내려온 한의 전통과 역사를 깨부수려는 구부의 꿈이 시작도 전에 주춤하게 된다. 홀로 외로운 싸움을 견뎌야 하는 왕의 무게, 이를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것을 가만히 위로하는 단청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홀로 가셔도 홀로 간다 생각지 마소서. 다만 찬찬히 걸으소서. 언젠가 뒤따를 사람이 폐하의 발자국을 좇을 수 있도록. 오늘 사람이 없거든 내일에, 내일에 없거든 그다음 날, 또 그 다음 날에는 폐하의 뒤를 따를 사람이 있을 것이옵니다.” / 186p

 

 

  놀랍게도 구부는 그늘을 떨쳐내고 마치 잠시 부린 투정이었다는 듯 오직 부여구와 둘이서만 꿈꾸었던 비밀을 세상 밖으로 꺼낸다. “가자, 우리끼리. 요하로.” 이 짧은 단어 속에 품어놓은 큰 뜻을 알기에 나는 울컥했다. 그는 또다시 마른 모래더미로 거대한 파도와 맞서는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위험하지만 돌파해내려는 그의 용기는 반드시 백성들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꿈을 펼치게끔 하려는 그의 신념에서 기인했기에, 무모하지만 아름답고 그래서 더욱 위대하게 느껴졌다. 또한 철옹성 같았던 요동성을 무너뜨리는 기발한 계책, 신의 한 수. 그 놀라운 광경에 몰입하여 나는 단숨에 요하를 점령하려는 구부의 꿈이 마침내 실현되는 것 같아 기분이 들뜨기까지 했다.

 

 

  하지만 백제도 함께 회유하려 했던 그의 뜻이 어긋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완벽한 복안이었고 설계였건만, 무엇 하나 틀어질 일이 없는 그림이라고 생각했건만 치명적인 결점을 발견하게 된다. 너무나 큰 그림이었고 그것을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던 까닭에 그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이가 없었고 이것은 곧 그의 한계가 되고만 것이다. 아무리 왕의 능력이 뛰어난다 한들, 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그 뜻을 받쳐줄 수 있는 이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 그는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양위를 결정한다. 온 나라의 중지를 모아 대신 실천하는 것이 왕의 역할이므로, 그는 애초에 무리를 대표하는 일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우앙, 나의 꿈은 전쟁이 아니다. 고구려라는 나라와 맞지 않아. 더군다나 나는 대중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다. 공론(公論)이라는 투박하고 귀찮은 담론에 얽히고 싶지 않아. 대중이란 눈앞의 일만 보는 짧은 식견, 선동당한 가짜 신념, 순간순간의 감정, 그런 것들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왕이란 그런 대중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포용하여 함께 걸어가는 그릇이다. 나는 대중과 함께 걸을 수 없어. 내 싸움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니까. 수백, 수천 년 후에야 드러날 싸움, 나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싸움. 거기에 내 자리가 있어.” / 244p

 

 

  이대로 동생인 이련에게 양위를 물려주고 뒷방에서 그의 해가 저물어가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먹먹해지는 찰나, 그는 뜬금없이 도굴꾼과 풍수사, 선비와 함께 머나먼 여정을 떠나려고 한다. 행색은 꾀죄죄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이들이 천하를 상대로 싸워 이겨낼 영웅들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구부의 의도가 자못 기이하다. 그러나 함께할 사람들을 얻은 구부, 세상 어디에도 엮일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그가 데리고 나타난 사람들이 또한 괴짜들이니 그가 또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지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미처 마치지 못한 구부의 꿈이 어떻게 갈무리 될지 궁금해서 얼른 다음권이 나왔으면 하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김진명 작가는 역시 탁월하다. 개인적으로 그에 대해 현세를 읽어내는 능력이 시의적절하고 또한 뛰어나다고 생각해왔는데, <고구려>로 하여금 과거와 현세를 하나로 관통하는 통찰력까지 지닌 작가라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되었다. 이 <고구려> 6권은 뭔가 정점에 다다른 듯한 느낌까지 든다. 그는 이미 우리들의 <삼국지>를 실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단순히 고구려의 역사가 아니라 시대를 읽어내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하기 위해 이 기나긴 글을 써나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에게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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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광고다 - 연애, 그 인생최대혼란의 47가지 현실원칙
여성욱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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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통해 연애를 바라보는 남다른 연애서!

냉철한 연애상담자가 알려주는 현실 연애의 모든 것!

 

  오매불망 나만을 사랑해 줄 연인을 찾아 헤매는 이 땅의 많은 선남선녀들, 연애는 시작했는데 도통 상대를 이해할 수 없어 오늘도 친구를 붙들고 연애상담을 하는 연인들이라면 한 번쯤 연애 관련 서적이나 칼럼 등을 통해 연애에 관한 궁금증이나 각종 고민들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연애를 글로 배우냐는 식의 놀림을 당할까봐 대놓고 읽기가 부끄러울 때가 있고, 나와는 상황이 맞지 않거나 적용시키기 어렵다는 이유로 읽기만 하고 옆으로 밀쳐둘 때도 있지만 연애서는 이성과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는 안목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이미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마당에 굳이 연애서를 읽을 이유가 없겠지만, 아내와 엄마를 떠나 여전히 여자이기를 바라고 사랑받기를 원하며 건강한 결혼 생활을 이루고 싶기에 때때로 연애서의 조언이 참고가 될 때가 있다.

 

 

  <연애는 광고다>의 경우, 광고 속의 메시지를 연애에 접목한 독특한 연애서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광고든 연애든 소비자 즉, 상대방을 이해하고 설득하여 긍정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는 발상이 흥미롭다. ‘바닐라 로맨스’라는 닉네임으로 저자가 게시하는 연애칼럼이 블로그와 카카오 브런치북 등을 통해 많은 구독자 수를 기록하고 국군방송 및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력에도 주목할 만하다. 학문적으로 심리 상담을 전문으로 연구한 이들의 저서와 달리 실제 다양한 창구를 통해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조언하다보니, 보다 현실에 가깝게 접목할 수 있는 연애서라는 점에서도 공감을 이끈다.

 

 

  총 47장의 광고와 함께 각종 연애의 기술을 6장의 대전제를 통해 서술한 이 책은 이성으로부터 호감을 이끄는 법에서부터 연애 과정 속에서 빚어지는 각종 오해와 해결법, 행복한 연애를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들을 소개한다. “당신의 매력과 가치를 알아볼 사람을 찾아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은 전국나무꾼협회에서나 꺼내라”, “심심풀이 수다에 불과한 함량미달의 연애충고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마라” “상대는 당신에게 질렸다, 헤어진 남자를 붙잡고 싶다면 매달리지 마라”, “짜릿함에 집착하지 마라. 짜릿함은 흔하지만, 신뢰와 행복,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몇 명 안 된다” 와 같은 조언들은 촌철살인과 같은 단호함으로 애매한 관계를 서둘러 정리하여 연애의 어두운 수렁 속에서 건져내도록 한다.

 

 

당신은 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자신이 있는가? 그 사람에게 어떤 단점이 있어도 다 받아줄 것인가? / 46p

 

 

  대부분의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해줄’ 상대를 찾는다. 37억 명의 남자(여자)가 있지만, 내가 만날 수 있는 남자(여자)는 100명이 안 될 것이고 그 중에서도 나에게 먼저 대시할 이성은 10명도 채 되지 않을 것인데 과연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고 다가올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저자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명언으로 자신의 비현실적인 연애관을 합리화하지 말라고 한다.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고, 사랑을 얻으려면 적당히 꾸민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이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과연 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자신이 있는지, 그 사람의 어떤 단점도 모두 받아줄 자신이 있는지 반문해보라고 한다. 내가 먼저 깔끔하고 단정한 외모로 나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노력들을 상대에게 보여야만 상대도 멋진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고 말이다. 결혼을 했을지언정 전혀 꾸밈이 없이 펑퍼짐하게 늘어진 옷을 입고 남편을 대했던 것을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연애 초기에는 몰랐던 상대의 단점이 보였을 때 상대를 괜히 비난하지 마라. 그 사람은 원래 그런 모습이었고 당신만 이제 그 모습을 본 것이다. / 92p

 

 

  주변의 커플이나 부부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변했어”, “연애하기 전에는(결혼하기 전에는) 안 그랬는데” 이다. 처음부터 그런 줄 알았다면 연애를 했을까 싶을 정도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바꾸려고 잔소리를 하다 보니 싸움으로 번지게 되더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처음부터 한결같을 것이라고 믿는 것 자체가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상대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욱 눈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저자는 이에 대해 사실은 상대가 변한 것이 아니라 몰랐던 부분이 조금씩 보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모습이었고 당신만 이제 그 모습을 본 것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느끼는 불평불만은 그 사람의 단점이 아니라 그저 당신과 잘 맞지 않는 상대의 개성일 뿐이다. 이때 연애의 관건은 속았다고 분노하는 게 아니라 속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 하는 것, 고치라고 하지 말고 고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만약 온갖 지혜를 끌어 모아 노력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변화시킬 수도 없다고 느낀다면 분노로 소모하지 말고 과감히 이별하라고 따끔하게 말한다.

 

 

  자랑이라고 할 것까지야 없지만 우리 부부의 경우 연애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 주변에서는 이를 두고 말도 안 된다는 듯 놀라워하거나 믿지 않는다. 물론 상대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대체로 ‘그럴 수도 있지’ ‘다 이유가 있겠지’하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노력한다. 이러한 생각의 전제에는 상대에게 믿음을 주려고 하는 것과 내가 믿은 만큼 상대도 나를 믿을 거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괜한 상상은 때론 의심만 낳을 뿐이고, 상대의 모든 것을 내가 다 알고 있어야한다는 듯 가까이 있으려고 애쓰기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상대가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존중해주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저자도 이에 대해 말한다. 단편적인 정보로 전체를 의심하지 말라고,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보지 말고 한 발짝 물러설 줄도 알라고.

 

 

남자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남자가 100퍼센트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무슨 수를 쓴다 해도 그의 속마음을 100퍼센트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추궁하다 보면 꼬투리를 잡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추궁으로는 남자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연애는 간단하다. 상대를 믿어라. 믿지 못하겠다면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든가, 아니면 차라리 깔끔하게 헤어져라. / 276p

 

 

  한때, 남녀의 연애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JTBC에서 방영했던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이 상당히 인기를 끌었는데 자칫 연애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이들에게 진행자들이 꽤 냉철한 조언을 해줬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연애는 광고다> 역시 연애를 함에 있어 자기합리화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혼란스러운 감정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냉철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연애서란 단순히 연애를 넘어서서 자기 계발서이자 타인을 보다 이해할 수 있는 심리 서적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자신을 끊임없이 계발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서 건강한 연애가, 영원한 사랑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싸늘한 겨울이 찾아오고 2016년의 해도 저물어가는 이때에 긍정적인 관계의 변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솔로를 탈출하고 싶은 이들에게, 예쁜 연애를 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이 따뜻한 위로이자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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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당신을 위한 감정의 심리학
유은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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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보석을 찾는 긍정 심리학!

기대 심리의 덫에서 벗어나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심리 처방전!

 


  평소 타인과의 관계를 이루는 데 있어 하나의 소신이 있다면 기대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너도 이렇게 해줘야지라고 생각하지 않기, ‘혹시 나를 위해 이런저런 것을 준비한 건 아닐까하고 헛된 상상이나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상대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루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왔다. 대부분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는 경우는 혼자 부풀려놓은 기대 심리가 어긋날 때 종종 발생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대 심리를 억지로 누르고, 나의 감정을 모르는 척 하는 것이란 스스로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일이다. 타인에게서 상처 받지 않으려고 스스로가 상처를 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이렇듯 웬만큼 단련이 되어 있거나 세상을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기대 심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기대심리를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다면 적어도 나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면서, 서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존감 심리치료센터를 운영하는 정신과 전문의 유은정 원장은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를 통해 이러한 방법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모색해본다.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관계 속의 다양한 상처와 그 원인을 살펴보고, 자존감을 잃지 않는 법 및 나의 마음을 더 단단하고 선명하게 만드는 법들에 대해 조언한다. 무엇보다 나를 최우선으로 두되, 관계를 망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들에게 대해 매우 설득력 있고 현실에 가까운 조언들을 아끼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가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들이란, 일단 상대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혼동하지만 않아도 상처받을 일은 현저히 줄어든다고 말한다. 자신의 에너지를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데 허비하거나,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오는 게 상처뿐이라면 굳이 그 인연을 더 이상 끌고 가지 말라고 한다.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지금껏 한없이 친절했던 내가 조금 변했다고 외면할 사람이라면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떠날 사람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에서 마음이 울컥했다. 언젠가 가깝게 지냈던 지인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연장자이다 보니 그녀가 하자는 대로 웬만하면 따랐고 한없이 착한 동생으로만 지내오다가 딱 한 번, 회사 일로 지금은 안 될 것 같으니 다음으로 미루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변했다는 말을 듣고서 절교를 당한 적이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원인을 오로지 나에게서만 찾느라 다른 관계에서도 거절은커녕 상대의 기분에 휘둘리느라 감정소비가 심했다. 스스로 선택한 지나친 선행에 발목 잡히고 만 것이다. 만약 그때 겨우 이 정도로 멀어질 사이였다면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떠날 사람이었다’, ‘남이 원하는 걸 나의 원칙으로 삼지 말자고 보다 빨리 나를 다독였다면 어땠을까.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데 중점을 두고 이에 의존하기만 했던 나는 결과적으로 내 인생의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 것과 다름이 없었다. 흔히들 선택장애라고 하듯, 그저 아무 거나’, ‘네가 원하는 대로를 습관적으로 말하며 타인의 선택에 의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느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저자는 흥미로운 조언을 하나 한다. 바로 제비뽑기를 하라는 것이다. 제비를 뽑으라는 것은 절대로 쪽지에서 적힌 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뽑았을 때 처음 느끼는 감정, 즉 자신의 본심을 직면하라는 뜻이다.

 

 

나는 고민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제비뽑기를 한다. 제비뽑기는 머리로만 계산하고 고민하는 피상적인 선택법이 아니다. A를 뽑으면 A에 대한, B에 대한 내 마음과 직면하도록 도와준다. 모든 항목에 대해 내 마음을 테스트하는 것. 이것이 제비뽑기가 제공하는 최대 이점이다. / 86p

 

 

   얼마 전,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주변을 관찰하고, 마음을 열어 직관에 따르라는 메시지가 담긴 소설책을 읽었다. 머리로 판단하거나 제어하려들지 말고 마치 전신의 모공을 활짝 열 듯 외부의 모든 것들을 몸으로 느끼는 의식을 치름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이 새롭게 태어나는 경험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의 저자 역시 리추얼 프로젝트를 통해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의식을 소개한다. 아침에 출근하는 것이 싫다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소한 일(차 마시기, 드립 커피 마시기 등)을 직전에 해봄으로써 그 일을 하고 싶어서라도 그날의 시작을 미루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미술관에 가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거나 일요일은 운동하고 분기별로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등의 의식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작은 동기, 시간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련의 의식들이 사소한 것 같지만 생각보다 큰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한다.

 

 

우울하다면 무조건 몸을 움직여라. 우울증은 정신질환이 아니라 전신질환이기 때문에 무작정 움직이는 것으로도 증세가 좋아진다. 시간 내서 운동할 형편이 안 된다면 스트레칭이라도 꾸준히 해보자...(생략)...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할 때 중요한 점은 꼭 거울 앞에서 하라는 것이다. 팔을 뻗고, 등을 굽히고, 다리를 펴는 과정에서 어떤 신체 변화가 일어나는지 보는 것으로도 치유 효과가 있다. 거울을 통해 몸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자기애를 체험할 수 있다. / 128p

 

 

   결국 저자는 모든 관계의 실마리를 푸는 대전제는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이때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서 실패를 수용하고 더 적극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누구나 친구든, 부모든, 남녀 간에 있어서든 힘든 시기를 보내기 마련이다. 이때 그들과의 관계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특히,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 얘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을 거야’, ‘나를 더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 거야라며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막연한 미래에서 앞당겨 채움으로써 보상받지 말아야 한다. 이는 친구와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다를 바가 없다. 50대와 60대라고 해서 모두가 성숙하고 완전한 존재들인 건 아니다.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모두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해야 할 존재들, 즉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상처에 허우적대기 전에 바로 이러한 점들을 인정하고, 그 사이 다른 사람과 바꿀 수 없는 나만의 강점을 찾는 데 더욱 집중한다면 건강한 관계도 자연스럽게 다져지는 것이 아닐까.

 

   평소 많은 내담자들을 만나 다양한 사례와 심리 치료의 경험을 바탕으로 둔 덕분일까, 읽는 내내 차분한 어조로 따뜻한 위로와 시의적절한 조언을 함께 전하는 그녀의 글에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날카롭고 냉철한 어조를 일관하며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여타의 심리계발서에서는 전해지지 않는 편안함과 다정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이 관계에 지친 이들에게 완벽한 처방전이 될 수는 없겠지만, 한 알의 비타민 혹은 영양제처럼 곁에 두고 복용하는 심리 캡슐이 되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말처럼 관계의 두려움을 느끼고 상처를 받을 때마다 한 번씩 꺼내들어 마음을 위로받으면 어떨까. 적어도 혼자 상처받아서 펑펑 울고 관계가 소원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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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고양이가 선사하는 기적 같은 행복 수업!

내 삶의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찾아온 긍정의 메시지!

 

 

  당신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누군가가 이렇게 물어본다면, “그럼요, 저는 아주 좋아요.”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해버릴 것 같다. 불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일이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 삶을 사는 것 같지 않다. 분명 무난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할 만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써는 그저 별 탈 없이 지내는 것도 행복한 거라고 여길 만큼 내게도 사연이 있었던 적이 있고, 주변을 둘러보면 사연 하나쯤은 모두들 가지고 살아간다.

 

 

  불행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무게로 찾아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버겁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소설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속의 사라 역시 마치 재난처럼 덮쳐온 불행에 일상이 뒤틀리고 만다. 곧 마흔을 앞둔 그녀는 11년차 광고 디자이너로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지하철 안에서 자료가 담긴 노트북을 두고 내린다. 미팅 도중에는 몇 주 전부터 시달린 어지럼증이 겹쳐 쓰러지기까지 한다. 게다가 10년째 동거 중인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불안하다. 커리어도 잘 쌓아왔고, 별 문제 없이 잘 지내왔는데 어째서 자신의 삶이 이토록 위태로워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라는 안 그래도 남자친구와의 미지근해진 관계에 불안해하고 있던 때라 이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당분간 떨어져 지내자고 고백하는 그의 발언으로 충격에 빠진다. 단순히 시간을 갖자는 의미인 것일까,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일까. 떨어져 있자는 생각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지, 바람을 피웠느냐고 다그쳐봐야 할지, 이런저런 이유로 그와의 모든 걸 다 잃어버리게 되는 건 아닌지 갈팡질팡 하고 있을 즈음, 창밖에 느닷없이 고양이가 나타나 말을 걸기 시작한다. 고양이가 말을 하다니, 게다가 자신을 입양하러 왔다고 한다. 고양이가 사람을 입양하겠다고? 이 밑도 끝도 없이 황당한 일에 사라는 아연실색하지만 어쩐지 이 고양이에겐 뭔가 특별함이 있다.

 

 

너희는 상상 속의 유령에 겁을 먹고 있지. 꾸며낸 환상에 오싹해하고. 이야기와 망상과 거짓말의 시계 속에서 살면서 서로를 속이고 있어. 머릿속에 그렇게 생각을 찾고 넘치도록 담아서 빙빙 돌리고 있으면 결국은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되고, 그 생각들은 네 감옥이 될 뿐이야. / 94p

 

 

  고양이 시빌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사실 네 머릿속에서 날뛰고 있는 생각들과는 상관없다’고, 괜한 걱정만 앞세우지 말고 ‘주변을 관찰하고, 마음을 열고, 직관에 따르라’ 말한다. 결국, 어떤 진실이든 막연한 의심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이른 사라는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조우한다. 때마침 고향인 스페인으로부터 가족의 파산 소식까지 들려온다. 겹쳐오는 불행을 감당할 수 없어 자살이라도 하려는 찰나에 고양이 시빌이 그녀를 감싸고 온기를 전해주며 위로한다.

 

 

고통이 올 때면 마음을 내줘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걸 제어하려고 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아. 넌 이미 여기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와서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강렬한 고통을 경험했지. 그 고통 역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끝이 날 거야. 그렇게 고통을 보내주면 전속력으로 달린 뒤에 쉴 수 있지. 밤이 지나고 찾아오는 다음 날을 기쁘게 시작할 수 있고, 아이가 태어나면 뽀뽀해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거 알아? 넌 이제 울고 있지 않잖아. 기분이 좀 나아졌어? / 188p

 

 

  이때부터 고양이 시빌은 사라에게 현실을 바로 보게 하는 냉철한 조언과 행복을 가져다줄 특별한 수업을 하기 시작한다. 비록 낡고 허름하지만 행복을 볼 수 있는 집을 구하고, 진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워나간다. 그 방법이란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법, 좋은 일에 감사하고 나쁜 일을 받아들이는 법, 내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법, 어린 시절의 꿈을 따라가는 법, 닫힌 방의 벽을 부수는 법, 나의 동물적인 천성을 발견하는 법, 내 자신을 거울 속의 형상에서 해방시키는 법, 마음을 열고 놀며 맛보고 듣고 관찰하는 법, 무엇보다도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사는 법이다. 이를 테면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싼 색채와 여러 감각들을 인식하기, 고양이 요가를 하며 자신의 몸에 귀 기울이기, 먹을 때는 먹는 것 그 자체에만 집중하여 천천히 음미하기 등 뭔가를 판단하려 하거나 제어하려들지 말고 그 자체를 느끼고 직관할 것을 조언한다.

 

 

또렷한 감각으로 네 주변의 모든 것을 인식해봐. 매 순간을 충만하게 살도록 해. 네가 사는 매 순간이 바로 너의 순간, 너의 시간, 너의 인생이니까. 네 인생은 회사 것이 아니야. 네 인생은 네 거라고. 다른 사람한테 네 인생을 뺏기지 마. / 239p

 

 

  시빌이 알려주는 모든 방법들은 낯설고 때로는 황당해 보인다. 사라 역시 ‘못 해’, ‘나는 지금 이러이러한 이유로 할 수 없어’ 라는 핑계를 대며 몇 번이나 주저한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시빌의 조언을 따라가면서 삶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사라는 이제 열린 마음가짐으로 변화와 존재의 흐름을 인식하고, 발길이 이끄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됨으로써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는다. 결국 고양이 시빌이 알려준 것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을 새롭게 태어나게 함으로써, 행복이란 의미 있는 무언가에서 찾는 게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데에서부터 오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행복전도사를 만난 듯 고양이 시빌을 통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마침 공원에 갔다가 서슴없이 다가와 나와 나의 아이에게 몸을 기대는 집고양이를 만났다. 시빌처럼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상하게도 마치 시빌을 만난 것처럼 묘한 따스함이 전해졌다. 그래서 한참동안 아이와 나는 그 고양이를 쓰다듬어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고양이를 만지며 까르르 웃는 내 아이의 웃음소리를 듣는 바로 이 순간이 행복이구나 싶었다. 알고 보면 내 주위에도 시빌이 있었는데, 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빌이 전하는 긍정의 메시지를 꼭 읽어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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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걸스
에마 클라인 지음, 정주연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광란의 1969년 여름, 히피 집단 속 어긋난 10대들의 질주!

자유와 사랑을 갈망한 소녀들의 상실과 상처의 고백들!

 

 

  1960년대 무렵, 미국에서는 물질문명에 항거하는 반체제 자연찬미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히피’라고 일컬었던 그들은 옷을 되는 대로 입고, 문화와 예술을 즐기며, 개방적인 성관계를 가지기도 하는 등 탈사회적인 행동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갔다. 기성사회의 통념이나 가치관을 부정하고 자유과 일탈을 갈망하는 그들의 모습은 특히, 10대들에게 더없이 아름다운 유혹이었을 것이다. 유독 그 무렵이면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꿈꾸기도 하고, 반항을 해보기도 하며,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 ‘내 마음대로’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마련이기에 자연스럽게 그 문화를 동경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 <더 걸스>의 중심에는 바로 이 히피 문화 속에 방치된 10대들의 왜곡된 자화상이 놓여있다.

 

 

   1969년의 미국 캘리포니아, 열네 살의 소녀 이비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났으나 따분한 일상의 연속, 기껏해야 코니라는 친구뿐인 얄팍한 대인 관계, 어긋나기 시작하는 부모로부터 늘 외로움을 느끼며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공원에서 히피 소녀들의 무리를 목격한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특히,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수전이라는 소녀의 자유로운 옷차림과 행동에 이끌린다. 곧 있으면 엄격한 체제의 기숙사로 들어가 따분한 삶을 살아야 할 이비로서는 어쩐지 야단스럽게 폭발하듯 피어나는 꽃들처럼 생소하고 원초적인 매력을 지닌 수전의 모든 것들에 매료된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그녀처럼 누군가를 안달 나게 만들고 설레게 하는 매력이 없었다.

 

 

   이비는 친구 오빠의 무리 속에서 술을 마시거나 헤어스프레이로 머리를 떡칠하기도 하고, 남자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가슴이 살짝 보이도록 노출을 하며 어른처럼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짝사랑하는 친구의 오빠의 눈에 그녀는 여자가 아니었고, 때로 호기를 부리다 괜한 망신만 당하는 수치스러운 제 모습만 발견하게 될 뿐이다. 아마도 많은 10대 소녀들이 한번쯤은 엄마의 화장품과 어른스러운 옷을 몰래 입어보고, 나도 마실 줄 안다며 이른 술이나 담배를 손에 대어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된 뒤에 생각해보면 참 별 것 아닌 것들인데. 그녀가 좇았던 남자들에 대한 환상, 어른들에 대한 이미지들, 왜 유독 이 시기의 소녀들에겐 그것들이 거대하게 느껴지고 일탈 또한 아름답게만 보이는지.

 

    

그건 우리의 착각이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착각 중 하나. 남자애들이 어떤 논리에 따라 행동하고 있어 언젠간 우리가 그 논리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은 것. 그들의 행동 위에 경솔한 충동이 아닌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은 것. 우리는 음모론자들처럼 아주 세밀하게 징조와 의도를 찾아냈고, 계획과 심사숙고의 대상이 될 만큼 우리 자신이 중요한 존재이기를 애타게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그냥 남자애들이었다. 멍청하고 어리고 솔직했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 65p

 

 

“아저씨 접시 가져가도 될까요?” 나는 너무 아뜩해서 주춤거리지도 않으며 물었다. 엄마에게서 배운 것 중 하나였다. 공손해지기. 공손한 자세로 고통을 줄이는 것. 재키 케네디처럼. 그것이 그 세대에겐 미덕이었다. 불쾌한데 모른 척하며 예의 바른 행동으로 그것을 밟아 없애는 것. 하지만 그런 방법은 이미 낡은 것이어서, 남자가 자기 접시를 건네줄 때 눈빛에서 경멸감 같은 것이 보였다. 어쩌면 내 상상일 수도 있지만. / 93p

 

 

   이후 이비는 다시 수전을 만나게 된다. 수전에게 잘 보이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고, 닮고 싶어 그녀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수전과 그 일행들인 소녀들이 함께 타고 가는 차에 몸을 실어 그들의 파티에 참여한다. 그곳에는 대부분이 10대인 히피 무리들과 그들을 이끄는 러셀이 있었다. 모두들 러셀을 동경하고 그를 마치 신처럼 대한다. 마치 이교도의 어느 수장처럼. 러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의 얼굴에 스쳤던 메시지들엔 하나 같이 그와 잠을 잤을 거라는 위험하고 음험한 경고가 담겨져 있었지만, 그런 러셀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수전을 향한 동경과 우정에 자신도 그곳으로 빠져들어만 간다. 자신도 사랑 받을 수 있고, 수전처럼 될 수 있다는 망상을 마치 기대처럼, 희망처럼 와락 붙들고 싶은 마음에 낡고 추레하고,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그 모든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재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재앙에 대해 설명할 때는, 토네이도 경고나 엔진이 고장 났다는 선장의 방송 이야기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항상 훨씬 더 전의 일부터 시작한다. 그날 아침 햇빛이 좀 이상했다거나 아딧줄이 이상할 만큼 가만히 있었다거나 하는 것. 남자 친구와의 무의미한 다툼 같은 것. 마치 이 전의 모든 일들이 다 한데 엮여서 재앙이 되었다는 듯이.

내가 신호를 놓친 걸까? 내부에서 느껴지던 아릿한 통증? 토마토 상자 속에서 번들거리며 기어다니던 벌들? 그 도로에 이상하게 차가 없던 것? 그 버스에서 도나가 나에게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어쩌다가 갑자기, 너무 늦게. / 118p

 

 

   이비에겐 이곳이 자유롭고 싶은 로망을 실현시켜줄 판타지 그 자체였지만, 사실 그곳은 약과 술로 얼룩진 광신주의에 가까운 집단에 불과했다. 수전을 향한 우정과 사랑도 사실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수전은 오로지 러셀을 위해서, 러셀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인형과 다름없었다. 수전도, 이 집단에도 그녀가 원하는 판타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을 깨닫게 되는 아주 결정적인 사건, 마침내 러셀의 명령에 의하여 피를 부르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수전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러셀에게 던져버려서 그때 이미 수전의 인생은 러셀이 제멋대로 할 수 있는 물건 같았다. 이리저리 뒤집고 무게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 수전과 소녀들은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되어버렸다. 사용되지 않는 자아의 근육이 점점 더 늘어지고 쓸모없어졌던 것이다. 그들 모두 옳고 그름이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에 살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됐다. 언젠가 그들에게 있었던 직감의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약간의 통증을 일으키던 인식 같은 것들조차도, 설사 그것들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다고 해도 이제 뭐가 뭔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 314p

 

 

   훗날 이비는 중년이 되어서도 이때의 끔찍한 기억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녀에서 여자가 되고,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혼자였고 세상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마치 죄 없는 도망자처럼 그렇게 살아간다. 마침 잠시 머물고 있던 집의 아이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자신의 지난날과 같은 모습을 보게 되지만 그녀로서도 그들을 구원해낼 방법이 없다. 흔들리는 청춘들이 멈추지 않는 한 그녀로부터, 아니 그 이전의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또 다른 누군가와 앞으로의 그 누군가가 계속 이어갈 것이다.

 

 

   이렇듯 <더 걸스>는 1969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10대를 겪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성장소설이다. 여리기에 흔들리기 쉬웠던 소녀 특유의 감성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때로는 충격적인 소재를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힘을 가진 매력적인 작품이다. 뒤늦게야 안 사실이지만 실제로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찰스 맨슨과 그를 추종하는 소녀들이 저지른 끔찍한 살인 사건이 있었다고 하고, 또 이 소설이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한편으로는 한 아이를 둔 부모의 입장인 탓일까, 이 소설을 읽으며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이 아이에게 당연히 찾아올 불안한 시기들을 부모로써 어떻게 건강하게 지나갈 수 있게 해줄 것인지, 혹은 그것조차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나는 아직도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소설 속 이비의 엄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더 어긋날까봐, 가족이라는 틀이 무너질까봐 두려운 마음이 내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생은 내가 한때 상상했던 것처럼 쌓아올려지지 않는다고, 곡절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말해줄 거라는 사실이다. 또한 그것을 딛고 올라설 때야 말로 너의 인생이 단단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내 삶을 통해 이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나는 부모로서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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