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 - 욕망이 소비주의를 만날 때
케이티 켈러허 지음, 이채현 옮김 / 청미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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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하여!
아름다움의 두 얼굴을 마주하고,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집착과 욕망에 경종을 울리는 책!





  “혹시 에드윈 리스트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어요? 아마 그가 플라이 타이어들 중에 최고일 겁니다. 플라이에 붙일 깃털을 구하기 위해 영국 자연사박물관에서 새들을 훔쳤을 정도니까요.” 커크 월리스 존슨의 『깃털 도둑』에는 플라이 타잉(낚시)에 쓸 깃털을 구하기 위해 국립 박물관에서 조류 표본 수백 점을 훔친 한 남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낚시꾼들과 플라이 타이어들 사이에서 플라이는 이른바 ‘낚시의 예술’로 통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깃털로 만든 아름다운 빅토리아식 연어 플라이를 향한 욕심이 에드윈 리스트를 범죄의 세계로 이끌었다.
 


  비슷한 제목의 수전 올리언의 『난초 도둑』에서도 무려 4만 7,000개의 난초를 가지고 정글에서 빠져 나온 난초 사냥꾼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때 유럽 중상류층 남성들 사이에서는 뒷마당 온실에서 열대 난초를 키우는 것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식물 밀렵꾼들의 전설적인 기행담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꼈을 정도로 열대 난초와 그 난초를 채집하는 이야기에 열광했다고 한다. 그 사이 수많은 난초 사냥꾼들은 해외에서 질병, 사고 또는 범죄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거울, 꽃, 보석, 향수, 실크, 유리, 도자기, 대리석….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근현대 소비주의 사회를 움직여온 이 아름다운 물건들 속에서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낳은 잔혹의 역사다. 케이티 켈러허는 『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를 통해 인류 전체와 우리 자신을 매혹시켰던 이 화려한 물건들의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역사를 추적한다. 외모에 대한 문화적 집착, 스토리텔링의 힘과 매력적인 광고가 광물의 물리적 특성과 결합하여 ‘보석’이라는 자본주의적 용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 고된 노동 환경과 생태계 파괴를 유발하는 화훼 시장의 역설 외에도 파시즘과 백인우월주의가 추구한 “표백된 이미지=순수함”이 낳은 수많은 자본주의 상징들을 소개한다.
 


나는 의심보다는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위대한 진실을 찾기보다는, 얼굴의 특징, 표정의 변화, 온전하고 생동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거울, 심지어 전신 거울도 이야기의 일부를 보여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잘못된 현대 사회의 신화에 휩쓸려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진실을 잊고 만다. 보이는 것은 제한적이며, 눈에 보이는 것이 곧바로 지식이 될 수는 없다. / 42p
 

“모든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장미 뒤에는 착취당하는 노동자와 독극물로 오염된 강이 있다”라고 독자들에게 경고한다. 물론 그들이 전 세계를 취재한 결과, 일부 꽃은 인도적인 환경에서 재배되지만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노동자들은 살충제와 살균제에 노출되어 있으며, 고된 노동에 대한 대가를 거의 받지 못한다. 농업 유출수는 야생동물을 죽이고 생태계를 파괴한다. / 72p

 
너드슨은 “모든 것은 자신이 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1700년대 여성은 화장을 하지 않으면 궁정에서 호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었고, 그러다가는 남편감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화장을 하는 데에 따르는 신체적 상해의 위험을 포함한 모든 위험들을 “충분히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느꼈던 것이다. / 161p

 









  책을 읽다보면 보다 더 많고, 더 아름다운 물건을 가지도록 부추기는 소비주의의 선전에 얼마나 철저하게 세뇌 당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허울뿐인 아름다움 뒤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고통에 쉽게 무감해진다는 것도. 저자는 말한다.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통스럽고 단순한 진실은,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 아름다움은 결국 사라진다’고.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은 나의 욕망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욕망의 허상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태도가 더더욱 중요한 이유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시점이라 보다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책이다.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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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 텍스트T 12
이희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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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고 아름다운 표지에 먼저 반하고, 독특한 세계관과 상상력에 푹 빠져 읽게 되는 소설!






  푸른 숲과 맑은 강이 흐르고, 그 속에서 크고 작은 동물들이 어우러지고 풍성한 열매가 열려 생명의 힘이 넘쳐흐르는 실바. 이곳에 터전을 둔 비스족은 이 땅을 돌봐주는 사계의 여신들을 숭배하며 그들이 내려 준 풍요를 감사히 여기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사계의 여신은 절대 한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법이 없어서, 아름다움과 풍요를 선사하면서 때때로 고통도 함께 주었다. 가뭄과 홍수로 심술을 부리고 번개를 내리쳐 산과 들을 태웠으며 질병을 퍼트려 죽음의 칼날을 휘둘렀다. 가장 아름답고 기름진 땅 실바의 주인이 된 대신 이따금 타 부족과 크고 작은 전쟁까지 치러야했다.




  비스족을 다스리는 왕인 쿤은 어느 날, 피프족이 하늘에서 내려온 지도자 탄과 함께 죽음의 숲 케이브를 넘어 전설의 땅 사라아를 찾았다는 소문을 듣는다. 그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었던 죽음의 숲 케이브를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던 피프족이 어떻게 건너갈 수 있었는지, 아니 케이브가 진짜 죽음의 숲인지, 풍요의 땅이자 전설의 땅이라 불리는 사라아는 정말 존재하는지, 어지럽게 휘도는 소문과 전설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이러한 쿤의 뜻에 따라 후계자, 베아는 스스로를 증명하고 비스족의 번영을 위해 케이브로 갈 것을 자처한다. 그렇게 오랜 지기인 타이와 함께 베아는 어둠과 죽음의 숲, 케이브로 향한다. 과연, 베아는 자신을 증명하고 비스족의 미래를 구할 수 있을까?
 


“삶에서 가장 강력하고 무서운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긴 손가락이 가볍게 톡톡 베아의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신중하고 깊은 생각 말이다. 그 힘을 가진 자만이 진정한 쿤이 되고 전사들을 통솔하는 솔이 될 수 있다.” / 34p
 

“전사들만의 힘으로 부족을 지키는 시대는 끝났어. 우리도 다른 힘이 필요해.” / 57p

 








  『베아』는 『페인트』, 『챌린지 블루』,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로 잘 알려진 이희영 작가의 신작이다. 비스족 왕인 쿤의 후계자로 지목된 베아가 죽음의 숲을 지나 전설의 땅 사라아를 찾아 떠나는 모험과 성장을 담은 청소년 판타지 소설이다. 베아는 타이와 함께 이제껏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땅, 죽음의 숲 케이브 속에서 마늘꽃, 움직이는 나무, 토끼 인간, 인어 님파, 말하는 흰 부리새 등 신비로우면서 무척 기묘한 생명체들을 만난다. 때로는 목숨에 위협을 느낄 만큼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지만 위기를 헤쳐 나가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중요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마음의 적이죠. 두려움은 막아 내는 게 아니라 이겨 내는 겁니다. 그것이 전사의 정신 아닙니까?” / 126p
 

“미안하지만 틀렸어. 나는 절대 모든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아. 그저 눈앞에 놓인 문제를, 최선을 다해 처리할 뿐이야. 알아 들어?”
불 속에 나뭇가지를 던져 넣으며 베아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해결하다 보면 아무리 엉망인 상황도 조금씩 낙관적으로 변해.” / 145p
 

“나는 결코 미리 걱정하지 않을 거야.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토끼 인간에게 죽을 뻔하고 나무 괴수를 만났어. 그리고 인어에게 홀려 물속으로 끌려갔어. 그때마다 힘들었지만 나름 현명하게 잘 극복했잖아. 피프족을 만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겠지. 하지만 분명 길이 있을 거야. 나는 그걸 배웠어. 설령 내가 쿤이 된다 해도 문제는 곳곳에서 발생하겠지. 그럼 그때 해결하고 헤쳐 나가면 돼.” / 180p

 









  신비로운 존재의 등장과 단군 신화를 모티브로 한 세계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위기와 갈등, 모험을 능수능란하게 엮어나가는 이희영 작가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중 소설의 주요 갈등 국면인 가치관의 충돌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개혁과 번영을 희망하는 쿤과 베아, 안정을 중시하는 쿤과 타이의 대립은 마치 극과 극으로 분열된 오늘의 우리 사회를 조명한다. 부족의 안녕을 위해서는 분명 두 가치관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두렵고 불안하지만 그 두려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낯선 곳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멈추지 않고 더 강하고 맹렬하게 내 앞을 가로막는 벽에 온몸을 던져보는 사람에게만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을 베아의 모험을 통해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왜 새로운 길은 위험하다고만 할까. 아직 가 보지 않은 길이고, 아무도 만나지 못한 세상이었다. 그 미지의 문 앞에서 두렵고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테지. 하지만 그 두려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바로 낯선 곳의 문을 여는 것뿐이었다. 베아를 이곳까지 오게 한 진짜 힘은 쿤의 후계자로 증명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었다. 실바를 떠나 더 넓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 218p




  기묘하고 아름다운 표지에 먼저 반하고, 독특한 세계관과 상상력에 푹 빠져 읽게 되는 소설이다. 방학을 맞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 소설을 찾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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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홀 1 - 맨부커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작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1
힐러리 맨틀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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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지만 냉철하고 소름 돋도록 통렬하다!

16세기, 권력의 중심에 선 토머스 크롬웰과 왕실을 둘러싼 암투 그리고 욕망을 다룬 소설!






선왕은 공공연히 말했다. 

애정의 대상이 못 될 바에는 공포의 대상이 되겠다고. / 283p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꾸 호명되는 단어란 것이 ‘권력, 부패, 욕망, 음모, 공모’ 따위라는 게 참으로 유감이다. 공교롭게도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이 이러한 호명에 곧잘 부응하게 되는데, 마침 『울프홀』이 눈에 띈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인 듯하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늑대가 되는 ‘울프홀’의 세계(정치와 종교의 대립, 권력을 향한 욕망과 왕실의 암투가 극에 달했던 16세기 영국 왕실) 속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왕의 최측근이 되어 마침내 권력의 중심에 선 토머스 크롬웰. 그의 생을 재현한 이 작품은 앞서 호명된 단어들을 통렬하게 투영한다.




이런 생각이 든다.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이. 

/ 36p




  이야기는 대장장이인 아버지에게 모진 학대를 받는 크롬웰의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피범벅이 되어 누나의 집으로 도망친 크롬웰은 약간의 돈을 챙겨 도버해협을 건넌다.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더 나은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책은 그로부터 시간을 훌쩍 넘어 헨리 8세 치하의 영국 왕실로 이동한다. 헨리 8세는 아라곤의 캐서린 왕비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자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교황청에 혼인을 무효화해 달라고 압박을 넣는다. 이 일의 책임자 역할을 맡은 울지 추기경은 교황청이 끝끝내 헨리 8세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왕의 신임을 잃고 추락한다. 이 무렵,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법률가로 자수성가한 크롬웰은 울지 추기경의 심복으로 왕실과 중개자 역할을 자처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추기경의 실각과 함께 왕의 눈에 띄게 된다.




“딱히 잉글랜드인이라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원래 그렇지 싶어요. 사람들은 늘 뭔가 더 나은 게 있기를 바라죠.”

“하지만 그런 변화로 그들이 얻는 게 뭡니까?” 캐번디시는 집요하다. “고기로 실컷 배를 채운 개가 뼈다귀까지 뜯을 만큼 굶주린 개로 바뀌는 것뿐인데. 명예로 살을 찌운 자가 나가고 배곯고 깡마른 자가 들어오는 셈인데.” / 95p




이 나이쯤 되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남달라서 성공하는 게 아니다. 영특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강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교활한 사기꾼으로 거듭남으로써 성공하는 것이다. / 102p











  이렇게 『울프홀』 1권은 토머스 크롬웰이 천한 신분이라는 배경을 딛고 왕의 오른팔로 급부상하기 시작하며 끝이 난다. 책은 울지 추지경조차도 ‘미천한 인생들이 줄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저 네모난 몸집의 투견에 가까운 사람’이라 묘사할 정도로 주변으로부터 경멸과 무시를 당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내부에 철저히 숨긴 채 이를 착실하게 실현해가는 인물로 그려나간다. 가족이나 자신의 사람이라 여기는 이들에게는 한없는 충성과 애정을 보이지만,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냉철하다. 잔인하고 교활하며 기회주의적인 성품으로만 묘사되었던 여타의 작품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궁금하군.” 울지 추기경이 말한다. “자네는 우리 군주를 참아낼 수 있을까? 한밤중까지 술을 마시며 서퍽 공작과 낄낄거리거나 노래를 하고, 그날 올린 서류에 아직 서명도 하지 않았고, 자네가 독촉이라도 할라치면 이렇게 말하는 군주를. 나는 이제 자야겠소. 내일 사냥을 나갈 거라…… 언젠가 보필할 기회가 오거든 그분을 있는 그대로, 향락을 사랑하는 군주로 받아들여야 할 걸세. 그리고 폐하도 자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지. 미천한 인생들이 줄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저 네모난 몸집의 투견에 가까운 사람이란 걸 말이야.” / 140p



“맞아, 그 법률가도 추기경이랑 같이 망하겠지. 말이 법률가지, 진짜 정체가 뭔데? 아무도 몰라. 소문으로는 그치가 제 손으로 사람들을 죽이고도 고해성사 한 번을 제대로 안 했대. 하지만 그렇게 센 척하는 인간들이 꼭 교수형집행인 앞에 서면 질질 짜고 난리지.” / 258p











  1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자정이 넘은 시각 헨리가 다급하게 크롬웰을 불러들이는 부분이다. 망연한 표정의 헨리는 죽은 형님이 꿈에 나왔다며, 차남이었던 자신이 죽은 형님을 대신해 왕위에 오른 것도 모자라 그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맞은 것에 대한 수치를 주러 꿈에 나온 게 틀림없다며 고통스러워한다. 이때 크롬웰은 헨리의 팔을 덥석 붙든다(이 행동 하나로 힐러리 맨틀은 크롬웰의 위치와 지위가 얼마나 상승되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는 수치가 아니라 본인이 실현하지 못한 것을 헨리가 대신 해주길 바란다는 뜻으로, 유일무이한 최고 지도자로서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통치자의 면모를 보일 때임을 강조하며 오히려 그를 북돋는다. 이는 훗날 헨리가 수장령을 통해 교황청에서 독립하여 잉글랜드 국교회를 성립하는 역사의 단초가 되는 장면으로, 상황을 새롭게 전환하고 장악하는 크롬웰의 명민함이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크랜머가 미소를 짓는다. “하느님은 우리의 적을 교란할 목적으로 선생의 얼굴을 빚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손, 상황을 장악하는 손 말입니다-선생이 폐하의 팔을 움켜잡았을 때 내가 움찔하고 말았습니다. 폐하 역시 그걸 느꼈고요.” / 417p





  2권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일단 여기서 글을 추스르고 서둘러 2권으로 넘어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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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사파리 스콜라 창작 그림책 90
한연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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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기심으로 탄생된 기묘하고도 수상한 사파리!

독특한 발상과 강렬한 그림체로 멸종 동물의 위기를 전달하는 한연진 작가의 아주 특별한 그림책!





  동물 사랑꾼 김사냥의 《이상한 사파리》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동물 사랑꾼 김사냥의 사파리에 ‘자연 사랑 모임’ 회원들이 찾아온다. 김사냥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투어버스에 올라 탄 회원들은 푸르른 초원을 뛰어다니는 토끼, 풍성한 털을 뽐내는 여우, 낮잠을 자는 거대한 거위 무리, 아름다운 꽁지깃이 눈에 띄는 수컷 공작들을 차례로 만난다. 회원들은 울타리가 없어 동물들의 생생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이 특별한 사파리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연신 사진 찍기에 바쁘다.










여러분, 즐거우신가요?

이제 저희 사파리의 자랑인 마지막 코스로 접어듭니다.

더욱 깊숙하고 특별한 공간으로 이동하오니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 주시길 바랍니다.

 / 책 속에서



  대체 이 위화감은 뭐지? 사파리의 마지막 코스로 이동할수록 뭔가 이상한 느낌이 감지된다. 멸종 위기 동물의 뿔이 사파리 곳곳에 전시되어 있고, 지구상에서 가장 큰 호랑이와 곰이라고 자부하는 동물의 가죽이 걸음걸음마다 밟힌다. 최초공개라며 회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곳에는 초대형 코끼리의 거대한 상아가 탑처럼 쌓여 있다. ‘자연 사랑 모임’ 회원들은 이 신비한 광경에 플래시 세례로 환호한다!




  “엄마, 여기 이상해….”



  이게 맞는 걸까, 함께 책을 읽던 아이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파리’라는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인간의 이기심과, 그로 인해 멸종되어 전시되고만 동물의 흔적들은 시종 유쾌해 보이는 이야기와 달리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아낌없이 내어주었던 자연에게 정작 인간은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상한 사파리》 라는 제목처럼,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내몰린 동물들의 모습을 한 편의 블랙코미디처럼 담아낸 그림책이다. 동물 보호라는 주제를 반전과 아이러니, 유머로 풀어낸 한연진 작가의 특별한 작품 세계에 감탄하며 읽게 된다. 과감한 펜선 처리와 흑백 패턴의 질감, 주요 포인트에만 색을 덧입힌 강렬한 그림체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동물이 전시품으로 전락하는 미래가 오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고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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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 사전 - 기획자가 평생 품어야 할 스물아홉 가지 단어
정은우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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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성장을 꿈꾸는 기획자다!

기획자라면 반드시 마음속에 품고 있어야 할 가치와 덕목들!






  최신 트렌드를 알고 싶다면 ‘편의점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편의점 신상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정리된 목록이 매주 SNS에 업데이트될 정도로 트렌드 반영이 가장 빠른 곳이 편의점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와 사회적인 현상까지 식품 산업에 반영하는 기획자들의 기민한 감각과 통찰이 놀라울 정도다. 기획이란 결국 ‘인간의 마음은 언제 움직이는가’를 알아채는 작업이라던 정은우 대학내일인사이트전략본부 본부장의 말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생태계 속에서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로잡기 위한 기획자들의 분투가 편의점이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도 여실히 느껴지는 요즘이다.





기획자에게 필요한 자질과 능력은 무엇이며,

성장하는 기획자는 무엇이 다른가?




기획은 직업이 아니라 상태다. 

타깃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아이디어를 고민하면 

그건 늘 기획 상태에 있는 것이고, 

그 상태에 있는 한 우린 모두 기획자다. / 76p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획은 어떻게 탄생하며 탁월한 기획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질과 능력이 필요할까? 『기획자의 사전』은 치열한 기획의 경쟁 세계에서 인정받는 기획자로 살아남고자 한다면 반드시 품어야 할 자질들을 스물아홉 가지 단어로 정의한다. 1부인 ‘실무 사전’ 편에서는 트렌드, 케이스 스터디, 문제 정의, 인사이트, 콘셉트와 같이 기획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들을 되짚어본다. 흔히 써왔지만 너무 무분별하게 사용하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용어들 속에서 기획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길어 올리는 저자의 혜안이 빛난다.




  이 중 어떤 상황이나 사유에서 상호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를 연결하는 사고를 가리키는 ‘이종 교배’라는 단어가 무척 흥미롭다. 뻔하고 당연한 것들이 아닌, 때로는 어울리지 않는 엉뚱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해보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탄생하는 법이다. 그렇게 이종의 많은 것을 길어 올리려면 일단 내 안에 이종의 많은 것을 고이게 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크게 와 닿는다.




시대에 따라서, 국가나 사회에 따라서, 개인이 놓여 있는 상황에 따라서 답은 모습을 바꾸지만 ‘질문’은 늘 변함없으며, 그 질문에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 담긴다. 기획자는 이 질문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채굴할 수 있어야 한다.

트렌드를 쉽게 자각할 수 있는 자명한 것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일정 부분 사실일 수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나쁜 기획자는 트렌드를 베끼지만 좋은 기획자는 그 속에서 욕망을 찾으려 한다. / 26p



기획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자료 조사를 한다. 대부분은 몇 가지 희귀한 성공 사례만 조사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만 둘러보면 같은 방식을 쓰고도 실패한 사례가 지천이지만 성공 사례가 보여주는 그럴싸한 방식에 매몰되어 진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놓친다.

기획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경쟁사의 성공 사례를 모으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경쟁사의 성공 사례만 모으다 보면 생존편향에 빠지게 된다. / 30p



빠르게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종의 성공이나 동종 업계의 실패 사례까지 볼 줄 알아야 한다. 다르게 볼 줄 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 34p









  2부인 ‘도구 사전’ 편에서는 필기구, 기록, 데이터, 언어, 수집과 같이 기획자들의 강력한 무기가 되어줄 도구를 설명한다. ‘아무리 육중한 생각이 있더라도 한 줌의 빙산으로 떠오르지 못하면 그 생각은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기획은 육체의 노동이라기보다는 사고의 노동이기에 ‘내 안의 생각들을 많이 퍼올리기 위해서는 또한 다시 고이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좋은 취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이는 좋은 기획을 만드는 마음가짐을 다룬 3부 ‘태도 사전’과도 이어지는데, 개인적으로는 ‘등속’이란 단어가 크게 다가온다. 저자는 누군가 자신에게 기획자에게 가장 필요한 에너지가 뭐냐고 물을 때마다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견디며 계속하는 힘’이라고 답한다고 한다. 매일 아침 내가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에도 욕실로 들어가 출근 준비를 하는 마음 같은 것, 매번 참신한 아이디어와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꾸준히 하는 능력이 기획자의 큰 능력이라는 그의 말은 기획자를 비롯해 우리 모두에게도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좋은 브랜드는 편지 쓰듯 자기 제품을 말한다. 멋을 내려는 게 아니다. 정확히는 자신들이 제품을 만드는 ‘마음’을 전하려는 것이다. ‘진실된 마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이만한 방식이 없다. / 148p



나를 둘러싼 세상이 내가 좋아하는 세상보다 더 크고 깊다는 사실을 기획자는 알아야 한다. / 210p



‘부엽토’라는 말을 좋아한다. 내게서 떨어진 낙엽이 다시 나를 자라게 한다는 부엽토의 원리를 보면 결국 성장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려주는 것만 같아서다. 하긴 인간의 성장이나 식물의 성장이나 뭐가 그리 다르겠는가. 그걸 귀하게 여기는 마음과 아닌 마음이 있을 뿐이지. / 234p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삶에서 성장을 꿈꾸는 기획자다. 그런 의미에서 책에서 제시하는 스물아홉 가지의 단어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큰 영감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한 줄의 글을 길어 올리기 위해, 한 줌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기획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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