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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1970년대의 이란은 우리와 너무나 닮았다. 미국의 개입으로 독재자로 군림하는 통치자 밑에서
신음하는 국민들의 아픔이 그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쳐낼 수 없는 선망의 욕구가 그러하다.
1940년대 군사혁명으로 팔레비왕조가 세워지고 친서방정책을 편 이란은 1951년 모사데그가 수상이
되어 반서방정책을 펴고 이를 계기로 왕정파와 국정파간에 내란이 일어난다. 1953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왕정파는 군사쿠데타를 통해 모사데그를 축출해내고 팔레비 왕조의 친서방정책은 계속된다.
자신의 정권을 지켜준 미국과의 공존은 이슬람원리주의자들과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바로 1970년대의
이란은 페르시아인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의지가 국민들사이에서 서서히 피어오르던 시기였다.
1973년 여름, 테헤란의 지붕 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테헤란에선 여름에 지붕에서 자는일이 흔하다.
비록 지붕에서 자다가 떨어지는 사람이 수백명이긴 하지만 낮동안의 뜨거운 열기가 식은 지붕은 이책의
주인공인 열입곱의 소년 파샤와 아메드의 중요 무대가 된다.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예민한 시기인 사춘기를 보내는 파샤는 옆집에 사는 아름다운 여인
자리를 남몰래 사랑하지만 그녀는 이미 태어날 때 부터 테헤란 대학 정치학과 3학년생 일명 '닥터'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이다. 그는 그 동네에서 가장 똑똑하고 다정다감한 청년으로 파샤의 친구이자 멘토이다.
그래서 파샤의 짝사랑은 죄책감에 부끄럽고 아플 수 밖에 없다.
박독재 저항정신을 지닌 닥터는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고 이란의 비밀경찰 사바크에게 쫓기게 된다.
사실 파샤의 아버지 역시 젊은시절 친구들과 반정부활동을 벌이다가 아버지의 친구 메흐르반씨가
18년씩이나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고 지금은 산림감시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페르시아인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민족주의자였다. 파샤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정치적인 발언이나 글이 엄격히 금지
될 만큼 억압적인 분위기였다.
파히메를 사랑하게 된 아메드는 위트가 있고 용기가 있으며 파샤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을만큼 친한 친구이다.
아메드와 파히메, 자리와 그를 짝사랑하는 파샤의 사랑은 영원하지 못했다. 어느 날 닥터가 사바크에게 잡히게
되고 결국 죽음을 당하게 된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닥터의 부모와 파샤,자리, 아메드와 파히메 뿐만아니라
그동네의 모든사람들이 충격에 빠지게 된다.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은 조직 사바크의 감시에 반정부주의자인
'닥터'의 장례식은 비밀리에 치러지게 되고...그때부터 남은 사람들의 고통이 시작된다.
친구의 여자를 사랑했던 파샤의 죄책감과 사랑하는 이를 잃고 방황하는 자리..그들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들과
친구, 이웃들...우리도 이와같은 암흑의 시대가 있었다. 말한마디에 어느날 사라져 버렸던 사람들..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무서운 시간들...과연 미국이란 나라가 세계곳곳에 행한 만행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통당했는지 알기는 할까? 자신들의 꼭두각시처럼 전락해가는 나라들을 보면서 침략과 정복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을까. 팔레비왕의 생일날...자리는 그들이 지나가는 거리에서 분신을 하고...
파샤는 그녀를 미처 말리지 못한 채 경찰의 폭행으로 정신을 잃는다.
기억을 잃은 파샤..깨어나서 맞닥뜨려야 할 현실이 두려워 그는 깨어나길 거부한다.
사랑했던 친구와 여자를 잃은 파샤는 누군가 자신의 심장에 칼을 꽂아주기를 바라지만 사랑하는 부모님과
아메드의 보살핌으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미국으로의 유학을 결심한다.
자신의 나라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미국으로 가야하는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침을 뱉으면서도 버릴 수 없는 더러운 현실과 운명앞에 세상은 자신이 꿈꾸던 대로 될수 없음을 알게되고
그렇게 파샤는 아픈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모두들 파샤에게 말해 주었던 '그것'은 바로 '명예,우정, 사랑, 자신이 가진 전부를 주는것, 일신의 평안을
위해 눈 감고 귀 막지 않게 깨어있는 정신으로 사는것...'
파샤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것'을 지키려고 결심한다.
파샤가 정신병원에서 돌아오던 날 텅빈 마당으로 들어서자 어딘선가 날아오는 눈덩이들..
"집에 온걸 환영한다" 담장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그제서야 일제히 켜지던 이웃집들의 불빛들..
창가에, 지붕에, 발코니에 이웃들이 나와 축복을 보내주던 장면에서는 눈물이 쏟아진다.
아무리 문화가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만큼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이란에 이웃들이
너무 고마워서 자꾸 눈물이 나왔다.
저자 마보드 세라지의 자전전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만큼 그의 성장과 미국유학의 이야기는 닮아있다.
마지막 반전은 기쁘면서도 가슴이 아파왔다. 우리의 상처와 너무도 닮은 이란인들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서 가슴이 먹먹해왔다. 결국 호메이니에 의해 팔레비는 쫓겨나지만 미국을 등진 이란이 그 뒤로
더 행복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것 같다. 이어진 숙청과 전근대적인 국가로의 환원이
이미 서구의 문명에 길들여진 국민들에게는 또다른 전쟁과 상처가 되었을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는 불평등이 존재 할지라도 죽음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닥터가 묻혔던 공동묘지 입구에서 사제가 말한것 처럼 과연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한것일까?
혹시 죽음의 형태에 따라 죽은이의 가치에 따라 이것마저도 불평등한것은 아닐까..의구심이 들었다.
'연을 쫒는 아이'에 이은 아랍권 페르시아인의 자존심을 일으키는 역작임을 숨길 수 없다.
사랑과 우정과 자유의 감동스토리 강추하고픈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