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바이러스, 플루 - 신종플루, 조류독감, 킬러플루 등 무한 변신이 가능한 플루 대비책
김우주 지음 / 동아일보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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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생명에 위협을 느꼈던 신종플루의 등장이었다. 인류의 출현이래 시작된 질병은 그 어떤 전쟁보다도 강력한 살상력을 지니고 인간을 공격해왔다. 글로벌 시대인 요즘 이웃나라가 아닌 멀리 아프리카에서 발생된 질병도 남의일이 되지 못한다. 위생이 좋지 못했던 시대의 질병이 세균성질환이었다면 요즘에 무서운 질병은 바로 바이러스성 질환일것이다. 변종이 잘되는 특성으로 인해 미처 대응할 준비를 하지 못한채 공격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풀 꺽이긴 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위험수위가 '심각'단계에 이를만큼 우리에게 공포를 주었던 신종플루역시 바이러스 질환이다. 그동안의 계절플루와는 다르게 전파력이 강하고 빠르게 진행된다는것이 다르단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전세계적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신종플루를 좀더 많이 이해하면 막연한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 있고 조금은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가지지 않을까 싶어 선택한 책이었다. 어찌보면 의학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어려운 내용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김우주 교수의 쉽고도 간결한 설명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에볼라 바이러스니 에이즈니 사스같은 무시무시한 질병들이 모두 바이러스가 원인이란다. 무한변신이 가능한 바이러스 질환은 끊임엇이 변종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도저히 정복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동그라미모양일때 치료약을 개발해도 어느새 네모꼴로 변하기 때문이란다. 그 어떤 테러보다도 죽음에 공포를 느끼게 하는 질병이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것을 이번에 절실히 느꼈었다. 1918년부터 유행했던 스페인독감은 2500만에서 5000만 정도의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갔단다. 그 어떤 전쟁도 이런힘을 갖지 못한다. 지금으로 치면 핵폭탄을 수백개 떠뜨려야 할 가공한만한 살상력이다. 그래서 요즘의 전쟁에 세균전이 등장했는지도 모르겠다. 유럽처럼 국경선이 무너지고 하루면 전세계 어디든 도착할 수있는 요즘 이렇게 강력한 바이러스는 우리 인간들이 넘어야 할 또하나의 산이고 전쟁이다. 도대체 어떻게 예방하고 치료하고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것인가. 하루에 만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현실을 보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확진판정을 받은후 진행되는 병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미처 죽음을 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신종플루를 보면서 우주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해서 혹은 지구온난화로 대홍수가 발생되어 지구가 멸망할 확률보다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온인류가 멸망할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다행히 신종플루는 빠른 전파력에 비해 치명성이 낮아서 건강한 사람이라면 감기정도로 잘 넘어갈수도 있단다. 아주 예외적으로 건강한 사람에게도 치명성을 가지긴 하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질병군이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단다. 무척 위안이 되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 질병은 비말감염이 되는 질병이란다. 환자의 분비물로 인해서만 감염이 된다는 뜻이다. 공기중에 떠다니는 형태로는 아주 잠깐동안만 바이러스가 생존한단다. 그러니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하고 제대로 된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만 잘씻어도 어느정도 예방이 된다는 말이다. 전파력이 가장 큰 집단은 어린아이들이란다. 내아이가 어느정도 증세가 사라진다고 해서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된다. 의학지식이 부족한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란 당국의 지침을 잘 따라서 대처하는 일일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지침이 너무 늦거나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공포는 더할것이다. 인정사정 없이 달려드는 이기적인 바이러스의 공격에서 살아남으려면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고 제대로 된 의학처치를 받는일이다. 세계적인 불황에 한대 맞고 신종플루에 두번 얻어맞은 우리 인간들에게 가혹했던 2009년이 지났다. 아직 안심할 수는 없지만 잦아들고 있는 신종플루의 위력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김우주교수의 지적대로 새로운 변종이 나타나거나 다른 바이러스와 혼합되거나...하여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나타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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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선언
차동엽 지음 / 동이(위즈앤비즈)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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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도 내 허락 없이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

이 얼마나 당당하고 멋진 말인가. 불행한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행복이란 누가 만들어서 갖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같은 상황에서도 긍정의 힘으로 행복함을 느끼면 되는 것이다.

물론 쉬운일은 아니다. 천국과 지옥이 모두 내마음속에 있고 얼핏 들으면 간단한

이론일것 같지만 거의 모든 인간들은 행복보다는 불행의 고통속에서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앞날이 창창해 보이던 한 남자가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무욕과 속죄와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 신부의 얼굴이 무척이나 행복해보인다.

 



 

'행복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

삶이 고단할수록 주머니가 가벼워질수록 앞날이 보이지 않을때 우리는 불평이 많아진다.

내가치는 이만큼인데 왜 나를 몰라주나...이시대에 태어나서 이런 대접을 받다니..

정작 나의 가치는 내가 만들어 가는 일임에도 우리는 세상탓을 하거나 남의 탓을 한다.

많이 가진자가 더 야박하고 약한자를 짓밟고 올라서서도 자신의 흠을 모른다.

마음이 투명한 유리는 바깓을 내다 볼 수 있지만 맑은 유리에 은을 하나 입히면

자기 자신만 보게 된다. 결국 마음에..영혼에 때가 묻으면 남을 돌아다 보지 않게 된다는

말씀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역시 때묻고 볼품없는 영혼으로 살고 있음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일생에 있어 나를 이끌어주는 멘토가 있다면 그것만큼 든든한 일이 또 있겠는가.

알고보면 가진것 없고 나약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희생을 통해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셨다.

신부님의 말씀처럼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살아계시다.

단지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하거나 외면하고 있을뿐이다.

고요한 절마당이나 교회 혹은 성당의 울타리에 들어서면 이미 마음에 평화가 깃드는 것을

느낀다. 성직자들의 얼굴만 봐도 고단한 삶의 무게가 좀 덜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과 자비와 평화를 가르치는 그들에게는 신의 또다른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을 인도하시고 내 손을 붙들어 주시는 '그분'이 내안에 함께 있다면 행복의 문에 이미

들어선것이 아닐까.

 

신부님이 참 통쾌하시다. '웃음이 파도라면 눈물은 해일이다.'라고 눈물 예찬을 하신다.

참아라 참아라 하지 않고 마음놓고 실컷 울라고..그리고 평상심을 찾으라고 하시니 눈물많은

내가 기죽을 일은 없을것 같다. 눈물 만세! 

 





 

큰집을 버리지 못하고 욕심만 가득한 달팽이는 되지말자.

덜어내야 채울수 있고 가난한자가 천국의 문에 더 가까이 간다고 하지 않던가.

외롭고 가난하고 박해가 있는 삶이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쓰시기

위해서 한번 정도는 몽둥이질을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파랑새가 멀리 있지 않고 행복과 불행은 결국 나의 선택일뿐...

나는 길지 않은 생을 고통과 불행의 그늘에서 살지 않고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선언하고 싶다.

'자신의 그림자를 벗어 던지고 싶은 이는 나무 그늘로 들어가면 된다'

2009년 마지막 날 새날을 행복하게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선물처럼 '행복선언'은

지친 내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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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최효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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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제도가 없어지고 평등한 사회가 된 요즘에도 우리는 괜찮은 집안에 대해
은근한 부러움의 눈빛을 보낸다. 요즘에 괜찮은 집안이라고 하면 재벌가같은
경제적인 능력을 더 우선할수도 있지만 옛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진출한 인원이 더 많고 덕을 높이 쌓은 집안을 일컬었던 모양이다.
정치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더라도 청류(淸流)로서 학문에 힘쓰고 자손들의
교육에 힘써 성공시킨 인물들도 결국은 명문가의 사람들이다.

조선5백년의 역사는 당쟁의 역사라고 할만큼 당파싸움이 대단한 시대였다.
조선의 정치가 썩고 수명이 짧았던 이유중에는 단연 이런 이유가 으뜸이었을것이다.
안동김씨의 위세가 대단하여 하늘을 뚫을듯 했지만 같은 안동김씨의 문중에서도
명문가의 위상을 높였던 인물이 있었는가 하면 당파싸움의 원흉으로 존경받지 못한
인물들도 많이 있었다.

대략 이책에서 다룬 명문가의 일면을 보면 미래를 보고 자손을 교육시키고
중용의 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실리를 쫓았던 인물들이 많았다.
심지어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갔지만 자손들의 교육에 힘쓰기 위해
과감하게 벼슬을 내버린 김진과도 같은 사람도 있었다.
결국 그의 자손들이 크게 성공하여 집안을 빛내었으니 그의 안목이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가지 명문가의 초석을 닦은 가문의 기획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리더십은
'남성적'이라기 보다 '여성적'이라는 사실이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이런 리더십을 발휘하기란 쉬운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파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물어뜯는 시대에서 양쪽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던
우복 정경세의 일화는 인간미와 성품이 깊으면 어느것이라도 끌어안을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반대파의 사람을 사위로 맞이하는 그의 사람됨과 안목에 깊은 존경을
느끼게 된다. 명분과 실리사이를 중용의 자세로 명문가를 일구어낸 그가 있기에 그의
후손인 종손은 대학을 마치자마자 고향으로 내려와 종택을 지키는 결심을 했을것이다.

서구화에 밀려 우리의 소중한 것을들 잃어가고 있는 이시대에도 분명 명문가는 있다.
그들에게 전해진 유전인자는 후손에게 성공과 자부심의 길을 걷게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이시대에 진정한 명문가란 눈앞의 이익보다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가진 '장기투자자'에
비유한 작가의 말처럼 세월이 흐르고 돈이 최고가 된 이시대에도 영원히 존경받는
명문가는 분명 있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조상은 나에게 명문의 유전인자를 전해주지 못했지만 눈이 멀었어도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고 명문가로 이끈 고성이씨부인의 예처럼 내가 명문가의 기획자가 되어보고 싶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새시대에 필요한 새명문가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듯..징기즈칸의 한마디가 유난히
내마음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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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의 나라
유홍종 지음 / 문예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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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과 더불어 시작된 전쟁의 역사는 유구하기만 하다.
어떤 명분의 전쟁이라도 아름다울 수 없고 상처없는 승리란 있을 수 없다.
한반도에 고구려,백제,신라가 같이 존재하던 시절...에도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특히 지금의 경남에 자리잡았던 가야국이 신라에게 멸망하거나 속국이 되었던
시기에 가야연맹 일원인 다라국의 왕녀인 '아사'의 절절한 사랑이야기이다.
프롤로그에서도 밝힌것처럼 이 이야기는 완전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남 합천의 옛 가야 널무덤에서 도굴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적(일종의 흙피리)에
새겨진 8언 시의 글귀는 분명 그녀가 실존했던 가야국의 왕족이었으며 시의 내용처럼
사랑의 슬픈전설이 깃들어 있음이 분명한것이다.

얼마전 종영된 '선덕여왕'처럼 삼국시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었으며 나-당이 연합하거나 고구려와 신라가 연합하거나 하는 혼돈의
시기였다. 그와중에 찬란한 문화가 있었지만 힘이 미약했던 가야연맹이 막을 내릴수
밖에 없었던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을것이다.
가야국이나 백제는 왜국과 교류가 빈번했으며 주인공 아사는 왜국의 백제 총독 아시히토의
딸 하나미와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혼인한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였던 허황옥의 자손인
허장옥사이에서 난 딸이었다.
망국의 나라의 왕녀가 된 아사는 아름답고 지혜로우며 대담한 여자였다.
운명처럼 만난 신라의 화랑 설오유와의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은 맑은 두영혼의
결합이었으며 거불할수 없는 숙명이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잉태한 채 포로로 끌려가게 된 백제의 의자왕의 후궁이 된
아사...참담한 죽음 후에 남겨진 딸 사비는 또하나의 아사였다.
엇갈리고 비켜가는 사랑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사랑이 눈물겹고 너무나
아름답다.

황산벌의 계백의 최후처럼 스러져간 백제...살아남은 사비는 엄마의 소원대로 아버지
설오유를 만나고 영원한 자비의 세계로 귀의한다.

이 모든 이야기가 단지 발굴된 토적에 새겨진 글귀 하나에서 시작된 허구라 할지라도
물붓고 3분이면 먹을수 있는 인스턴트식 사랑이 난무하는 이시대에 고루하고 허무맹랑
하게 들릴지라도..난 황강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르던 두사람의 사랑과 끝내 그들의
결실인 사비에 의해 완성된 지고지순의 사랑이 가슴깊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살아보지 못한 시대에 이보다 더한 사랑이 없으란 법이 있겠는가.
사랑하는 지아비를 떠나보내고 머리를 잘라 신을 삼고 연서를 남긴 미이라가
발견되기도 했으니 비록 자유분망한 사랑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은근하고도
절절한 사랑은 깊이가 더하니 혹시 전생에 나도 한번쯤 그런사랑을 해봤음직도 하다.

하여 설오유와 아사도 현세에 다시 태어나 아쉬웠던 사랑을 불태우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전쟁의 참혹함이 진탕처럼 난무하던 시대에 태어나 연꽃같이 고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이제는 활짝 꽃피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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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하트 2 - 살아 움직이는 도시
찰리 플레처 지음, 김난령 옮김, 김근주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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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 여전히 숨이 턱에 찰 정도로 쫓겨야 하는 조지와 에디!

표지에 있는 조지와 에디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면 슬픈 눈빛을 느낄수 있다.

그 슬픔의 원인이 서서히 드러난다. 사랑하는 아빠를 잃고 가족을 잃은 두 아이의 슬픔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스톤하트'는 영국의 탄생과 존엄성을 상징한다. 지금은 어느 스포츠가게의

외벽에 박혀있다는 '런던스톤'이 '스톤하트'의 모티브이다. 과거의 찬란했던 왕국 '영국'이 고요한

수면속에 잠자는 지금..작가는 화려한 부할을 꿈꾸며 조지에게 새로운 영국을 찾아 세우라고 한것은

아니었을까.

 



 

 

누구에게나 슬픔은 있다. 제 나이만큼의 슬픔보다 더한 슬픔은 고통이고 재난이다.

조지와 에디는 각자의 무거운 슬픔을 감추고 폭풍과도 같은 모험에 빠져버렸다.

사수가 일러준 '흑수사'는 과연 믿을만한 것일까. 그역시도 창조자인 조지를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것은 아닐까. 갑자기 흑수사의 친절이 수상하다.

 

사실 어느 누구도 믿을수가 없다. 용의 위협에서 자신을 구해준 '사수'라면 혹시 모를까.

마치 살인청부업자같은 느낌이 드는 '워커'란 인물은 정말 기분나쁘다. 어깨에 올라앉아 있는

갈가마귀는 더 기분 나쁘고. 그들에게는 어둠과 죽음과 불길한 기운들이 가득하다.

도대체 이들은 왜 조지를 쫓는 것일까. 사실 조지는 자연사박물관에서 실수로 용머리 조각상을

부순 죄밖에 없는데 말이다. 흑수사의 말대로라면 조지의 팔에 생긴 상처는 '창조자'의 표시라는데..

정말 조지가 창조자의 운명을 가진 소년일까. 이렇게 평범한 소년이?

 

에디는 자신의 능력을 불길한 저주라고 생각한다. 손이 스치기만 해도 과거의 시간들이 그대로 느껴지다니..

하긴 그 과거의 시간들이 상처투성이라면 에디역시 아프긴 하겠다. 과거와 현재를 잇고 창조자와

추격자를 이어주는 에디의 역할이 스톤하트를 찾아가는 중요한 열쇠가 아닐까?

 

 



 

영화 각본가로 큰 명성을 얻고 있다는 작가의 작품인만큼 마치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과 같은

거대한 판타지 영화를 보는것 같은 긴박함과 영상이 자꾸 겹쳐진다.

24시간안에 '스톤하트'를 찾아야만 한다는 미션이 주어진 조지..이제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흑수사의 수상쩍은 눈빛이 두렵지만...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 하지만 두려움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단다.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생각이 멈춰 버리거든. 그리고 생각이 멈춰 버리면 나쁜 것들이 너를 조종하기 쉬워져.

그러니까 두려움을 극복해야 해.'

스톤하트를 찾으려는 조지에 에디에게 두려움은 추격자들이 원하는 일일뿐이다.

조지..에디! 뛰어 두려움을 떨치고 뛰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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