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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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눈이(hjmjkklll)
 


http://cafe.naver.com/wisdomhouse/5670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먼저 떠난 사람과 평생 같이 하고 싶었던 사람을 먼저 떠나 보낸사람중

누가 더 불행할까....그리고 그만남이 이생의 마지막 이었다고 한다면 혹시 그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아직 이곳에 살아남을수 있었을까....운명이란게 있기는 한것일까...

내내 이 물음에서 벗어날수가 없다.

 

분명 예쁘거나 잘생기거나 부자인 사람들이 세상을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을것이다. 아니 불편함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든든한 빽하나가 뒤에서 삶을 지긋이 밀어주는 큰힘이 될것이다.

그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출발선에서 부터 멀치감치 뒤에서 처져 터덜터덜 걸어야 하는 삶이

너무나 불공평하고 억울하다. 그때부터 이를 악물고 뛰어봐야 앞서 나간 인간들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일테니까.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185P

 

그렇다. 우린 서로가 서로의 영혼에게 불을 밝혀주어야 하는 인간일 뿐이다. 제 스스로 빛을 발해서

불을 밝히는 찬란한 전구가 되는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다. 그걸 우리는 알지 못한채 살아가거나

알았다 해도 너무나 빨리 잊어버린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 고독하다. 나도 이미 오래전에

그빛을 잃었다. 한때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도 이책을 읽고서야 기억해 냈으니까..

 

'영원한 장소도 영원한 인간도 없겠지만, 영원한 기억은 있을 수 있겠다' -213P

 

때로는 영원하지 못할뿐 더러 불완전하기까지한 내가 그 영원한 기억때문에 고통스럽다.

슬프고 아픈 기억일수록 망각의 행운을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실제보다 늘 긴 시간이었다.

 

'보잘것 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 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219P

 

그래 남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삶이라면 이렇게 내 초라함이 부끄럽지 않을수도 있었을텐데 내가 느끼는

고통과 열등감은 결국 보여지지 위해 세상을 살아왔던 나이기 때문이란걸..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삶과 생활에 경계는 무엇일까. 나는 지금 삶을 사는 것일까 생활하는 것일까. 그의 말처럼 나도 기억에도

가물한 잠시나마 느껴본 삶의 느낌..생활의 느낌이 아닌 진정한 삶과 헤어졌기 때문에 슬픈것은 아닐까..

그런데 나는 과연 잠시라도 꿈틀거리는 진정한 삶을 살아보기는 한것일까. 막막하다.

 

이책을 읽는내내 나는 그들과 켄터키옛집에서 같이 맥주를 마시고 마이클잭슨의 빌리진을 들었고

그들이 걸었던 길을 걸었다. 그를이 살았던 그시간에 나도 분명 그들과 같이 있었다.

그래서 문득 그들이 내가 알았던 사람들이 아니었는지 한참이나 기억속을 헤메였다. 

끝까지 예수의 주검을 지켰던 요한처럼 어떤 이유이든 낙오자의 십자가를 진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지켜본 요한은 끝끝내 내곁에 붙들어 두고 싶은 친구이다. 정작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

주인공보다 더 그를 알만큼 그는 모모의 귀와 심장을 가졌음이 틀림없다. 그것만으로도 치유가 될수 있는

사람...이 내게도 필요하다.

스무살적에 내사랑은 이들처럼 고결하지 못했다. 호프를 홀짝거리고 많이 걸었던 기억은 비슷한데

라흐마니노프도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도 알지 못했다. 나름대로 죽을만큼 치열했던것도같은데

눈오는 밤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고 오다 죽어버린 기억이 없기때문만은 아닌데 아직도 그를 떠나보내지

못한 두사람의 에필로그에서 갑자기 무게감이 없어져 버렸다.

떠나지 못한 사람은 죽은것이 아니다. 다 잊고 두사람이 행복하게 살았다. 보다..

-늙어감으로 비로소 평범한 사람들속에 섞이는 시간들이 필요하겠지만-

두사람이 마지막까지 그를 껴안고 살아주기를 바란다면 너무 가혹한 요구가 될까.

그리고 그때까지 모두 잘지내시기 바랍니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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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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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놓은지는 여러날이 되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책을 덮지 못하고 이제껏 붙들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녀는 무슨 마음을 먹고 이책을 쓴것일까. 자신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내 얘기일 수도 있는

이 가슴아픈 고백을 굳이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까.

문득 혹시 그녀도 서울역은 아니더라도 이세상 어디쯤에서 엄마를 잃은것은 아닐까..하고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그녀가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알고 있는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를...놓치면 안되는 소중한 어떤것들을 많이 잃고 살아간다는 것을..

하지만 정작 본인은 무엇을 놓치고 살아가는지를 모른다는것을...그래서 이책의 마지막장을 덮을 때즈음이면

거의 모두가 자신의 고백서가 되리라는 것을...

 

아주 어려서 읽었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처럼 딱 그마음이 되게 하는 작가의 의도가 밉지 않다.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그렇게 나도 내어머니의 첫애였다. 내 어머니도 고물고물한 내손을 제대로 만져보지 못하고 '이제 어째야 하나'

하고 두려움에 떨었을까...나는 어머니보다 다섯살을 더먹고서야 큰애를 낳았지만 절대 어린 어머니보다

의젓해지지 못했었다. 생애 처음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기쁨은 두려움과 함께 온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듯이 아이 하나하나에 담긴 사랑과 추억이 어찌 무게가 다르겠는가

자식입에 먹을것 넣어주는것이 가장 큰 행복이던 시절에 자신의 배는 늘 굶주렸으리라..

가난을 덕지 덕지 엎은듯한 부엌을 좋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쌀독이 비어가는 소리에 가슴이 덜컥거리던

그곳을 어찌 좋아할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그건 자식을 키우는 에미에게는 그저 당연한 굴레라고만 여겼지.

풀어주어도 다시 되돌아서 올수 밖에 없는 영원한 올가미였을거야.

 

'정신을 놓아갈수록...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자신의 옷을 태우고 흔적을 없애는 장면은

정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는 길을 알았더라면 그때라도 좀 언질을 해줄일이지.

그게 남은 가족에게 대못질을 된다는걸...결국 그동안의 무관심을 이렇게 되갚아주시다니..

새가 되었더군요. 살아생전 좋은 일 많이 한 사람은 저세상에 날개를 단 새가 된다지요.

아마 고단한 삶을 털어버리고 훨훨 날아오르라는 산자들의 위안일테지만...

그래도 난 당신이 새가 되어 어디로든 옮겨다니는것이 좋았습니다.

그래도 당신의 자식들은 어디선가 당신이 살아있을거라는 희망을 붙들고 살아가겠네요.

당신을 보내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것이 다행일까요. 이제 나는 집앞에 내려앉은 새를 볼때마다

당신을 떠올려야 하겠네요. 여자로서 평생 한사람쯤은 당신의 가슴을 덮혀주었던 수줍은 사랑이 있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다음생에서는 그사랑 꼭 붙들고 엄마로서만 살지 말고 여자로서도 행복하시길..'

 

꽃한송이 놓아줄 무덤도 만들지 못하고 떠나버린 그녀의 엄마에게 난 슬픈편지를 보낸다.

그래도 아직 기회가 남아있어 다행이다.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이제라도 엄마의 손을 잡고 지나온 잘못을

고백할수 있어 다행이다. 서울역앞에서 엄마를 놓치는 일은 절대 없을거라고 다짐할수 있는 기회를

주어 다행이다.

비싼 밍크코트 굽어지고  시린 어깨에 둘러주며

'엄마는 이 옷을 입을 자격이 있어'하고 말해줄 기회를 주어 다행이다.

불교신자인 엄마에게 부처가 탄생한 나라의 염주를 걸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적어도 난 이세상에서 가장 작은나라의 장미묵주를 갖고 싶다는 엄마의 말을 못알아들었던 백치딸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고 나처럼 엄마가 필요했던 딸이었음을 알게해주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이책을 늦게라도 이렇게 읽을수 있어서 정말로...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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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도 먹지 못하고 부랴부랴 광교에 있는 한국관광공사앞에 도착한 시간이 8시10분!

문학동네 직원분들과 한국관광공사,알라딘 직원분들이 반겨주셨습니다.

대략 참여인원은 55명정도..





우리를 태우고 갈 예쁜버스와 예쁜(?) 문학동네 미녀,미남입니다. 마침 제가 탄 1호차에 김훈선생님이 타셨어요^^

 





11시50분즈음에 문경새재 1관문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가는길에 실비가 내리다가 햇살도 살짝 비추다가..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걱정이 되긴했습니다. 아침에 문학동네에서 챙겨주신 김밥을 먹긴 했지만 배가 슬슬 고파올즈음..

월요일 SBS 생방송투데이에서 소개된 맛집 '할매집'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TV를 볼때만 하더라도 내가 문경까지

가서 저걸 먹을수 있을까...하고 눈여겨 보지 않았는데..사람일 모릅니다.^^

며칠전 답사오신 김훈선생님께 반한 사장님내외분이 특별히 잘 챙겨주시고...이곳이 촬영장이 있는지라 유명한분들도

꽤 많이 오신듯 하네요.

 





멋진 김훈선생님 사인이 할매집 제일 앞쪽에 붙여져 있구요. 선생님의 간단한 인사와 함께 드뎌 출발!

 





제 1관문앞에서 선생님의 멋진 소개글을 들었습니다.  문경새재는 백제,신라,고구려의 접경에 있는 곳으로 고구려가

만든길을 신라가 쳐들어갈때 이용하고 신라가 만든길을 고구려가 신라를 치기위해 밟았다는 말씀끝에,

대동여지도를 만드신 김정호의 선배님이신 신현준 선생님이 그러셨다네요.

'길은 만든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그길을 밟고 있는 사람이 주인이다.' 와우..멋지지 않습니까?

가는길에 마당바위라고...도적들이 이곳에 숨어있다가 한밑천 건졌다는 곳이랍니다.

태조왕건부터 천추태후등이 촬영된 셋트장도 멋진데..아쉽게도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길이 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1관문을 거쳐 2관문을 다다를때까지는 그런대로 시야가 괜찮았는데..

제3관문에 도착할 즈음에는 빗방울도 제법 느껴지고 안개가 어찌나 뿌옇던지...마치 꿈속을 걷는듯 했습니다.

물론 저는 헥헥거리느라 죽는줄 알았습니다. 이 문경새재길은 잘 다져진 흙길이라 걷기에 너무 편하고 경사도

완만한 곳인데 저질체력인 저는 히말라야를 넘는줄 알았습니다.^^


 

맑은 계곡과 진한 향이 솔솔나는 소나무의 맵시도 아름답고 꿈길을 걷는것같은 안개길도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사진솜씨가 없어 잘 찍어오지 못한것이 한스럽고 다 올리지 못하는것이 아쉽습니다.

대략3시간에 걸친 산행을 끝마치고 휴양림안에 있는 강당에서 조촐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내용도 궁금하실것 같아...2편으로 go go!

못가신분들..아쉬워 하지 마시고 이글로 위안 받으시라고 집에 오자마자 바로 올렸습니다. 저 괜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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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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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항상 길위에 있다. 편평하고 딛기 좋은 길만 골라 걸을수도 없는 길들이 수없이 펼쳐져 있다.

또한 되돌아갈 수 없는 길위에는 강도 있다. 건널 배한척조차 보이지 않는 강은 현재와 과거를 가르고 삶과 죽음을

나누며 사랑과 이별을 가름짓기도 한다. 하여 강은 우리에게 태곳적부터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내몸 유전인자 어디엔가 각인된 그 강물소리가 가끔 영혼을 깨우는것을 우리는 어렴풋이 느끼곤 한다.

 

기자인 주인공 문정수의 모습에서 저자의 잔영이 자꾸만 겹쳐진다.

냄새나는 양말속에 맹렬히 꿈틀거리는 무좀의 끈덕진 생명력은 지친 우리의 삶만큼이나 치열하다.

무작정 도시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허물어져 가는 영세민들의 삶과 비닐하우스안에서 기르던 개에게

물려죽은 소년의 영혼에게 나는 날개를 달아주고 싶어졌다. 그렇게라도 그 아이를 위한 위령제를 지내야만

따뜻하게 웅크리고 모른척 살아가는 우리들이 죄갚음을 할수 있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생의 죄가 무지막지하여 한평생 폭탄을 껴안고 살아야 했던 뱀섬의 상처는 사랑할수 없고 미워할수도 없는

우리 식민의 역사이며 목숨을 걸고라도 건너야 할 또하나의 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와 돈으로 팔려온 이국의 여인이 섬사람들의 삶을 위협했던 폭탄을 꺼내

목숨을 연명하게 된다.

그뿐아니라 순식간에 물에 잠긴 폭탄은  평화로운 삶을 포기할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재활용 보석으로

거듭나 새로운 희망이 되고 폭탄을 들이 붓던 사람들에게는 면죄부와 더불어 옹졸한 기부의 기쁨을 안겨주는 

서글픈 현실이 되는걸 보면 옛어른들이 '입찬 소리하지마라'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지금 더럽다고 침뱉을 용기가 점점 사라진다. 어찌 알겠는가 내일 나에게 절실한 식량이 될지도 모르는데..

 

공단에서 시위하고 목숨을 걸었던 노동자들은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문을 닫고 철수한 텅빈 공장을 떠나 그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져 버렸을까.

목숨을 건 화재현장에서 많은 생명을 구하고 병을 얻은 소방대원에게 백화점 화재현장에서 귀금속을 

훔친죄를 물을수 있을것인가. 더이상 폭탄도 캐먹을수 없는 예전의 선각자에게 콩팥을 얻는 댓가가 된

그 돈은 어차피 없어도 삶에 아무 지장이 없을 사람들의 몫이 아니었던가.

 

묻혀진 사건도 캐내서 신문에 훈장을 달아야 하는 기자로서 묻어야 할일이 많아진다는건

아직 붓끝이 시퍼런 열혈후배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난 그의 이런 직무유기가 아주 마음에 든다.  비수처럼 날서야 할글은  비굴하게 깍이고

비루먹어 볼품없었을 권력의 흔적들이 모피를 두른 비만의 글이 되는 비겁함을 더이상은 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의 눈치없이 온전하게 사람들을 파고드는 적당히 따뜻한 글들을 쓸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책을 읽을수 있는 행운을 얻은것은 작가의 바로 이런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므로..

 

강으로 뛰어드는 백수광부를 보고 통곡하지도 못하고 따라 죽지도 못한 사람은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까.

사랑이라고 이름짓지 못하고 남은 기억들을 떠나보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강은 자꾸 건너라고..

아님 흘려 보내라고 자꾸 웅웅거리는데  우리는 멈칫거리고 강물만 바라보고 서있다.

뜯지도 못할 공후만 만지작 거리면서 결국 죽어야 저강을 건널것임을 막연하게 예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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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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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되짚어 글을 짓는 다는것은  분명 있었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안개낀 산속을 헤메는

절망감과 혹시 있을지도 모를 사학자들의 지탄을 견뎌야 하는 모험을 감내해야 한다.

가뜩이나 김정호의 발자취는 더욱 미미하여 저자의 고단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김정호의 이야기를 쓸수 밖에 없었던 절박함과 애정이 또한 눈물겹다.

아마 글을 짓는 내내 작가 박범신도 조선팔도를 헤메고 짚신을 고쳐신기를 반복하였을것이며

몸뚱이 하나 누일곳 없는 막막함과 반역의 오명에 분을 삭이지 못했을 것이다.

 

중인의 신분으로 만리재 근처 어디엔가 살았다는 흔적과 몇몇 선비들의 글속에 잠깐씩 언급되어진

것만으로 이렇게 절절한 작품을 완성한 작가의 노력과 열정이 그저 감탄스러울뿐이다.

 

왜 세상의 모든 위인들은 고난과 핍박을 딛고 일어설수 밖에 없는 것인가.

천재적인 대부분의 예술가의 삶처럼 늘 불행과 가깝고 어깨시린 목숨값을 지불해야 하는가.

하긴 태어난 나라와 시대가 비루먹고 남루한데 그 값을 제대로 쳐줄 안목인들 있었겠는가..하고

혀를 차지만 평생을 길위에서 보냈을 김정호의 삶이 너무나 가엽다.

 

하늘위에서는 위성이 호시탐탐하고 몇걸음의 거리에도 네비게이션의 친절한 안내를 누리고 있는

요즘에야 지도의 고마움을 짐작이나 하겠나마는 고작 큰산위에 올라서야 지형이 삼삼하게 보이고

길도 없고 교통편도 없을 그 시절에 오로지 자신의 발과 눈..손만을 가지고 그려나갔을 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댓가없이 평생 그일을 해야만 했던 그의 운명이 너무 혹독하다 싶다.

무지몽매한 인간들이 상석에 자리잡고 여린 백성들을 착취하고 진실을 외면하는 사이에 그래도 몇사람쯤은

비바람 몰아치고 산짐승 우글거리는 큰산위에서 깃발을 붙들고 있었나보다. 

독도를 그려넣지 못한 가난함과 궁핍함이 서럽고 전생의 업이었던가 다리저는 자식으로 평생 역마살낀

아비곁을 지켰을 순실이의 터지고 두꺼워진 손등이 떠올라 가슴이 시리다.

 

종이위에 선 그리고 산 그리면서 그는 행복했을까?

저마다 케케묵은 지도를 꺼내놓고 내땅이네 네땅이네를 논하는 시대가 되고보니 김정호의 그 우둔함이

백성에게 그다지 해준일이 없는 조선의 역사속에서 나중에라도 빛을 발하였으니 어디에서 눈을 감았는지도

모를 그의 주검앞에 조금은 죄를 덜은 느낌이다.

 

삼장을 높게 달고 곡을 해야만 했던 그의 한(恨)이 하늘위에서는 풀렸을것인가.

아무도 붙들어 주지 못했던 그의 외로움이 그곳에서는 풀렸을것인가.

이제는 길위에서 내려와 혜련스님과 순실과 따뜻한 된장국 마주놓고 앉아 이제는 따순 불때고

시린 어깨를 녹이고 살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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