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김동식과는 다른 블랙요원으로 활동한 정구왕의 기구한 삶을 보니 가슴이 저려온다.
단동근처에서 사업가로 위장하여 활동하던 정구왕이 납치되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건만
남한에 돌아와서도 차라리 죽었더라면 하는 푸대접을 받는 장면은 울분을 넘어 슬픔까지 느껴진다.
그의 말처럼 '군인이었으니까, 조국에 충성하는건 당연하다'고 지금까지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온
그의 삶이 얼마나 가없은지 그에게 조국은 배신의 상징일 뿐이다.
할머니 이선실의 존재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제주출신으로 그토록 철저한 신념으로 평생 북한의
스파이로서 살아온 그녀에게 묻고 싶어진다. 당신의 삶은 위대했냐고. 행복했냐고.
엊그제 '박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던 남파간첩 출신 김신조목사의 소천이 있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아 자신의 수명대로 살다간 그가 만약 남한에서 태어났더라면 드라마틱한 삶이
달라졌을까. 대통령이 파면되는 엉망진창의 한국에 아마도 수많은 간첩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물론 블랙요원들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테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스파이들의 삶을 보니 누구의 선택이었든 가혹한 운명속의 주인공인 것
같아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남은 삶이라도 긴장없이 두려움없이 행복하게 누릴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