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 - 몽골에서 보낸 어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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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멀리 초원에서 부는 바람이 아닌 태평양 한가운데서 만들어진 큰 바람이 우리땅으로

휘몰아치고 있다. 같은 바람이라도 바다의 것은 습하다. 초원의 바람은 차고 건조하다고 했다.

-대륙을 누비던 살은 흙이 되고 근육은 바람이 됐다- 

대륙의 바람에는 그 전 사람들의 살과 근육이 흩어져 있을 것이다. 아마 혼(魂)까지도.

 

 

이제는 가는 곳마다 숙소를 얻기 힘들만큼 많은 여행자들이 몽골을 찾는다고 한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거리를 오가고 차가운 시멘트로 지은 집들이 하나 둘씩 늘어간다는 그 곳!

지은이는 그 초원의 땅 몽골을 열 한번 다녀왔다고 했다.

그가 몽골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고스란히 작품이 되어 우리들에게 전해졌다. 마치 바람처럼.

 

 

그의 전작 '조드'는 그가 울란바타르의 학술팀들과 함께 한 여정에서 이미 싹트고 있었다.

징기즈칸이 다스리던 그 시대에 몽골에는 문자가 없을 것이라는 상식은 초원에서 발견된 오래된 암각화에서

발견되곤 했다. 하긴 고려에 종이와 붓, 먹등을 요청했다니 문자가 없는 그들에게 그 물건들이 장식품으로

쓰여지진 않았을 것이다. 넓은 초원에서 만난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

키우던 양을 잡을 때에도 최대한 죽어가는 혼을 위해 기도하고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시를 쓰는 작가에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몽골의 사람들과 자연의 땅들은 수많은 시가 태어나기 좋은 곳이다.

 

 

'초원에 닿으면 사라진 고향을 되찾는 느낌을 벗어날 수 없다. 대지의 원초의 향기가 코끝에 닿을 때마다

내 몸에서 흩어져 간 동물적 본성이 하나씩 되돌아온다. 그것은 오랫동안 시를 쓰지 않던 내게 자주 쓰게 했다.' 169p

 

오랫동안 절필했던 시인에게 다시 시를 쓰게 하는 그 땅에서 나도 글을 쓰고 싶어졌다.

무감했던 신경들이 되돌아오고 굳었던 근육들이 나른하게 기지개를 펴고 일어날 것만 같은 그 땅에 닿고 싶어졌다.

 

 

노인 한 명이 사망하는 것은 한 개의 도서관이 불 태워져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하는 말이 아프리카에는 있단다.

그렇다면 초원이 한 뼘씩 사라지고 시멘트 블럭이 채워지는 그 땅에 재앙은 '조드'라고 부르는 겨울 재해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광야에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면 사람과 동물들은 마실물을 확보할 재간이 없어진다.

당장 살자고 미래의 물을 훔치다 보면 점점 초지는 황폐화되고 배는 더욱 고파온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은가.

자연의 순리를 거슬러 당겨쓰고 마구 써버린 댓가를 하나씩 되돌려 받고 있으니 '조드'는

이제 당장 우리에게 닥친 재앙인 셈이다.

그래도 여전히 아직은 조금이나마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초원에 서서 작가는 바람을 맞는다.

태고를 씻고 살다 간 사람들의 혼이 담겨진 바람 속에서 그는 그들의 언어를 듣는다.

초원에서 살아가는 순백의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시각을 가졌다고 한다.

아마도 순백의 영혼을 가진 사람들에게 초원의 바람은 태고의 언어를 느끼는 능력을 주는 모양이다.

그 초원에서 '바람이 가져다준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럽혀진 영혼들을 씻어주는 것만 같은 바람의 이야기가 순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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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 프로젝트 3부작
다비드 카라 지음, 허지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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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는 아직 건재한 것인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의 전범들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졌다.

일부는 잡혀 재판을 받기도 했지만 어디론가 숨어버린 나치의 악마들은 또 다른 전쟁을 수행중이다.

 

뉴욕의 월스트리에 주식 중개인인 제레미는 다우존스 지수가 곤두박질치던 어느 날,

동료들은 되는대로 팔아치웠지만 제레미는 닥치는 대로 사들여 장이 마감되는 순간 대박이 터졌다.

대박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만취한 제레미는 미녀들을 태우고 마구잡이 운전을 하다 유모차에 탄 아이를 치어 죽게한다.

그 날 이후 죄책감에 사로잡힌 제레미는 알콜중독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이미 25년전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버린 아버지 대니얼 코빈 중장의 사망 통보를 받게된다.

5년째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달려가 배신자인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지만 엄마는 슬픈 표정으로

아들에게 자신이 차고 있던 펜던트를 건넨다.

집에 돌아온 제레미는 엄마가 준 펜던트를 만지작 거리다가 나치 문장이 새겨진 열쇠를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과 엄마가 남긴 열쇠에 대한 추적은 오래전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와 그를 추종하는 나치의

무리들과 연결된 것을 알게되고 그동안 자신을 돌봐주던 회사의 ceo인 버나드가 cia요원인 것을 알게된다.

아버지와는 공군사관학교 동기인 버나드는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버지가 사실은 모종의 사건을 추적하고 있었고

그 사건뒤에는 인류를 위협할 만한 조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세계대전 당시, 빅터 블레이베르크는 유태인이지만 재능이 뛰어난 과학자로 나치의 지원을 받아 모종의 실험을 진행중이었다.

모트모르로 전락한 유대인들을 이용하여 유전자 변이를 이용한 실험을 거듭하다가 302호라고 불리는 실험자 소년에 의해

드디어 원하는 것을 얻게되고 자신을 원하는 소련 과학자를 처치하고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자신이 병원에 다녀온 후 킬러에 의해 엄마가 살해된 것을 알게된 제레미는 나치문장이 그려진 열쇠를 쥐고 버나드의 조언으로

cia요원인 재키와 함께 아버지가 남긴 스위스의 개인금고를 향해 출발한다. 그들의 뒤에는 모사드의 첩보원인 에이탄이 뒤따른다.

 

금고안에는 수열이 적혀진 쪽지가 남겨져있고 그들을 쫒는 의문의 사나이들을 제거해주는 것은 바로 에이탄이다.

과연 에이탄은 아군일까 적군일까.

주식중개인의 계산법에 익숙한 제레미는 수열의 암호를 풀고 아버지가 남긴 책에서 언급한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과거의 소련 과학자

플라닉을 찾아간다. 플라닉은 망명후 사라진 블레이베르크가 제약회사를 설립하였고 '컨소시엄'이라는 조직이 뒤에 있다는 것을 밝힌다.

 

아버지의 책에서 발견한 bci는 바로 블레이베르크가 세운 제약회사의 약자이고 이 회사가 바로 브뤼셀에 있다는 것을 안

제레미와 캐키, 에이탄은 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를 파괴하기 위해 그들의 아지트로 향한다.

 

세계전쟁과 나치의 기이한 인종실험, 그리고 어쩌면 성공했을지도 모르는 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의 실체는 단순한 소설속의

허구만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름모를 바이러스들이 창궐하고 수많은 희생자들이 속출하는 동안 새로운 백신들이 개발된다.

백신에 의해 전염병은 사그러들고 제약회사들은 떼돈을 챙긴다.

우리는 이런 현상속에 제약회사들의 농간이 있음을 짐작했었다. 병을 풀어놓고 병을 잡아내는 반복되는 행위속에 숨은 모종의

음모들. 이미 현실속에 이런 일들은 일어나고 있다.

 

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는 불사를 꿈꾸었던 진시황의 광기를 닮았다.

과연 젊음을 유지하는 약이 발명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브뤼셀의 bci가 폭파됨으로써 소리없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 크리스마스 메일속에 '당신의 베프'라고 온 메시지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에이탄이 어쩌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실제한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연결해 생생한 팩션 스릴러를 창조한 작품이다.

사건을 해결한 제레미와 재키는 몽실몽실 피어올랐던 애정을 확인하고 맨해튼과 cia를 떠나 뉴저지에 보금자리를 꾸민다.

하지만 속편 '모르겐스테른 프로젝트'를 보면 살아남았던 302호 아이가 되살아나 뭔가 사건이 이어진다는 암시가 나온다.

어설픈 스파이 제레미와 작지만 야무진 재키의 활약도 기대되는 속편을 꼭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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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돌아오는 곳 창비청소년문학 52
존 코리 웨일리 지음, 이석연 옮김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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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의 소도시에 살고 있는 열일곱 살 소년 컬런은 마약중독에 빠진 사촌형 오슬로의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 엄마와 동생인 가브리엘과 함께 안치소를 다녀왔다.

그 뒤 마을에서 가장 예쁘다고 알려진 에이다 테일러와 사귀었던 남자애들이 차례로 죽음을 맞이하자

죽음의 존재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컬런의 가장 가까운 친구 루커스는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알콜중독자가 된 형이 교통사고로

죽은 상처를 캐런과의 우정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

 

컬런이 살고 있는 반대편 아프리카 땅에는 선교를 하기위해 에티오피아에 온 열 여덟 살 소년 벤턴이 있었다.

폭력적인 아버지는 어린 소년 벤턴이 하느님의 종으로 살기를 원해 성경을 외우게 하고 아들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선교사의 길을 걷게 한다. 하지만 선교사의 길이 맞지 않음을 알게된 벤턴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는 날 자살하고 만다.

 

 

 

벤턴의 룸메이트였던 캐벗은 룸메이트의 짐을 정리하다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고 벤턴이 남긴 성경구절의

의미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3년동안 신학공부를 하던 캐벗은 동생과 함께 영화관에 갔다가 앨마를 만나게 된다.

캐벗과 앨마는 결국 결혼하게 되었지만 앨마는 무능한 캐벗을 떠나게 된다.

 

서로 만난적이 없었던 컬런과 밴턴, 캐벗과 앨마의 연결 고리는 결국 컬런의 동생인 가브리엘의 실종으로 이어진다.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환자가 된 에이다와 사귀게 된 컬런은 에이다가 다시 예전남자친구에게로

돌아가자 앨마를 만나기 시작한다.

 

앨마가 떠나고 상심에 빠진 캐벗은 앨마를 찾아 헤매다가 컬런이 앨마의 새 남자친구가 되었음을 알게된다.

앨마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컬런을 찾아 나섰던 캐벗은 엉뚱하게도 동생인 가브리엘을 캐런으로 알고 납치하게 된다.

 

가브리엘이 실종된 후 컬런의 엄마는 정신적인 방황에 빠지고 아빠는 생업마저 포기하기에 이른다.

컬런은 가브리엘이 시체로 발견되는 상상을 하며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나날을 지내게 된다.

 

누구에게나 어둠과도 같은 시간을 지날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나 죽음은 정신적인 공황을 초래한다.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아이들에게 사랑과

이별은 온 우주를 등에 업은 것같은 무게감을 준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가고 빛나는 햇살아래로 나아가는 것.

 

미국의 소도시에서 그저 그렇게 성장하는 소년들의 삶을 통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들여다보게 된다.

미국이든 아프리카든 고만고만한 아픔을 겪으며 성장하는 아이들은 있다.

이 소설은 두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결국 한 점에서 만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한 점에서 만나 열 다섯살 소년이 실종되는 사건의 빌미가 된다.

 

 

실종되기 전 동생인 가브리엘은 형 컬런에게 이렇게 말한다.

 

"형, 우리는 아직 인간을 포기해서는 안돼. 누구한테나 새 출발의 기회가 있는 거 알아?

홍수가 난 다음의 노아처럼 다시 시작하면 돼. 인간이 아무리 악해지더라도 어떻게든 새롭게

출발할 기회는 있는거야."

 

동생의 이름이 대천사 가브리엘의 이름인 것은 결코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남루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가브리엘의 이 말이 등대불처럼 반짝거린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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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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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저 우주에 문명을 가진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누구든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심심치 않게 ufo가 나타났다는 보도가 나오고 어느 우주비행선에 지구의 정보를 담아 우주로 띄워보냈다고도 한다.

인류는 늘 우주의 세상을 동경하고 우리와 비슷한 생명체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이 소설은 우주에 대한 시선을 중국적으로 해석한 책이라고 평하고 싶다.

물론 작가가 중국인데다 중국의 역사가 스펙트럼처럼 펼쳐져 지나갔기 때문이다.

 

 

나도 연구 센터의 연구원인 왕먀오에게 어느 날 경찰 두명과 군인 두명의 이상한 조합을 가진 네 사람이

찾아온다.  그 중에서도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스창이란 경찰은 태도부터가 불량스럽다.

그들은 뜬금없이 "최근 '과학의 경계' 회원과 접촉한 일이 있죠?"라고 물어온다.

유명한 과학자들의 모임인 '과학의 경계'의 회원인 물리학자들이 최근 두 달 사이에 순서대로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사건을 조사하는 팀들은 미국과 영국등의 정보원을 포함한 중국의 정보국과 군인들.

사건조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왕먀오는 취미인 사진을 찍다가 이상한 숫자들이 사진에 찍힌 것을 발견한다.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에는 찍히지 않고 왕먀오의 사진에만 보이는 이상한 숫자들은 뭔가를 향한 시간의 카운트 다운 표시였다.

 

단순 자살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뒤에는 자살한 여성 물리학자 양둥의 어머니이며 천체 물리학자 예원제가 숨어있다.

문화혁명시절 물리학자인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되는 현장을 목격한 예원제는 벌목현장에 투입되었다가

건너편에 세워진 레이더봉이 있는 홍안으로 차출된다. 비밀스런 기지인 홍안은 우주와의 교신을 위한 조직이다.

 

한편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시간의 카운트 다운 표시를 쫓던 왕먀오는 '과학의 경계'회원인 선위페이를 만나게 되고 그녀가

하고 있던 인터넷게임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v장비 방식만을 지원한다는 이 게임이 바로 '삼체'의 존재를 밝히는 열쇠가 되는 셈이다.

어둠과 여명이 교차하는 황야에서 그는 주나라 문왕이라는 사람과 복희를 만난다.

 

삼체란 세 개의 태양이 있는 우주의 한 행성으로 항세기와 난세기가 교차되면서 삼체인들은 탈수와 입수를 반복하며 200여번의 멸망을

견디며 살아남은 별이다. 이 삼체와 지구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것이 바로 예원제이다.

예원제는 비밀스런 홍안기지에서 몰래 태양을 향해 전파를 쏘아올린다. 이 전파를 수신한 삼체는 400여년 후 지구에 도달할 예정이고

삼체와 교류하면서 지구의 멸망을 부추기는 조직체인 '과학의 경계'인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삼체반군들의 모임의 최고 사령관이 바로

예원제였다.

'이곳에 오십시오. 나는 당신들이 이 세계를 얻는 것을 돕겠습니다. 우리 문명은 이미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잃었습니다.'

석유재벌의 아들로 유조선이 좌초되면서 기름범벅이 된 새들의 죽음을 목격한 에번스란 남자가 애초에 이 조직을 결성하였으며

삼체를 향해 지구를 멸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삼체 반군을 주도한 인물이다.

삼체반군들은 인간의 본성에 철저하게 절망하여 지구 종의 대 멸종을 염원하는 강림파와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줄 신을 기다리는

구원파로 나뉘게 된다.

 

 

삼체반군의 정체를 파악한 지구의 많은 나라에서는 공동으로 작전을 세워 반군을 저지하는 작전을 세우고 파나마 운하를

지나가는 삼체반군의 기지 '심판호'를 파괴하고 삼체에 관한 정보를 빼내기 위해 초강도 나노 소재인 비도를 이용하기로 한다.

 

먼 우주의 삼체에서는 양성자 두 개를 지구로 보내고 3차원의 형태로 지구에 도달한 양성자의 이미지가 왕먀오에게 포착된 것이다.

그 시간의 카운트다운 영상은 바로 지구의 멸망을 예고한 것이었다.

 

과연 삼체는 400여년 후 지구에 도착되고 지구를 멸한 것인가.

 

자신들이 도착할 먼 미래의 지구가 과학적인 진보가 이루어져 자신들보다 우월할 것을 염려한 삼체는 삼체반군들을 이용하여

기초과학자들을 하나 씩 없애는 작전을 편 것이었다. 그들이 '너희는 벌레다'라고 불렀던 지구인들은 빙하시대에서도 살아남은

바퀴벌레처럼 살아 남을 것이다. 벌레는 결코 미개하거나 미천하지 않은 존재임을 반드시 보여줄 것이다.

 

이 소설의 스케일이 너무 커서 과학을 극도로 싫어했던 내가 읽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우주에 지구의 존재를 아는 인류보다 좀 더 진화된 명체들이 살아있고 200여번의 소멸과 탄생을 겪은 그들이 좀 더

살기 좋은 지구를 향해 함대를 발진 시켰다는 상상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과연 이 소설이 완전한 허구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인가.

무한한 우주의 공간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끌어와 '삼체'를 탄생시킨 작가의 역량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더불어 인간의 본질을 악(惡)으로 규정짓고 멸망으로 이끌겠다는 주장도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자연파괴와 그에 따른 수많은 재앙들이 도래하고 있는 요즘,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성이 꼬리를 물고 있다.

삼체반군의 지도자들이 지식인들인 것은 세상의 이치를 알고 있는 그들이 지구의 미래를 어둡게 예측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과연 삼체 혹은 명명되지 못한 우주의 어떤 존재가 지구를 향해 오고 있다는 가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무수히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작가의 상상이 그저 상상으로만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더불어 중국과 인류의 역사뿐아니라 과학적인 지식의 수준이 대단한 작가의 다음 작 '어둠의 숲'에서는 인류를 구원할 희망의

메시지가 들어있기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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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린 다시 만나야 한다 - 가슴으로 써 내려간 아름다운 통일 이야기
이성원 지음 / 꿈결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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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60년! 여전히 전쟁중인 가슴아픈 땅 한반도에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30년차 통일부 공무원의

생생한 남북 교류 현장의 이야기를 읽으니 가슴부터 저려온다.

내 어머니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한 북한을 누구보다 많이 고간 사람이기에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아내의 부모님 고향도 평양이라니 그가 바라본 평양의 거리가 남 달랐을 것이다.

왜 우리는 분단의 땅에서 살게 되었을까.

몇 시간이면 당도하는 북녘의 땅은 여전히 철책선 너머에 존재하고 이질적인 삶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동포들과의 만남은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었을 것이다.

처음 남쪽 사람들을 만났던 북한 사람들의 뚱한 모습도 이제는 많이 부드러워졌다지만 60년의 분단이

만든 이질성은 통일 후에도 분명 힘든 과제가 될 것이다.

 

 

평양시내에서 만난 아이들의 순박한 얼굴이며 소박한 도시락속에서 어린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모습이며 개성공단내에서 만난 아이들과 어울리며 좀 더 좋은 탁아소를 지어주고 싶어하는 마음들은

작가의 착하고 순수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탈북자들을 교육하는 하나원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부모처럼 따뜻하게 대해주고 다시 설수 있게 해주는

모습은 앞으로 우리가 통일을 한 후 어떻게 그들을 맞고 대해야하는지 해답을 보여준다.

 

그와 같이 일을 하던 북한의 당국자들도 자존심과 사상을 잠시 접어두고 서로 손을 맞잡고 한 마음이

되는 장면들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게 바로 한 민족이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영양이 부족하여 피그미족이란 말까지 들어야 하는 어린 군인들의 모습에서 북한의 절박한 실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과연 그들에게 식량이며 비료를 지원해야 옳은지 불만이 많았던 나로서는 누렇게

뜬 그들의 얼굴에서 차마 지원을 중단하라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아들과도 같았던 북한의 병사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시합을 끝내고 북한으로 돌아가는

태권도선수에게 자신이 찼던 시계를 주면서 아버지에게 전해달라고 하는 장면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북한에 가기 전 미리 선물을 정성껏 준비하고 접대원들에게 후한 팁까지 주는 그의 마음은 '사랑'그 자체가

아닐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아버지같은 그런 마음.

그가 오랫동안 북한을 오가면서 나누었던 사랑은 앞으로 통일후에 우리 민족의 문제를 극복하는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동안 그동안 중단 되었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었다는 소식과 갑자기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연이어 전해졌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리기에 시간이 부족한 연로한 어르신들이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평생 기다려온 상봉일을 기다리다 갑자기 운명하셨다는 할아버지의 소식도 가슴아프다.

 

매번 우리를 실망시키고 울분케하는 북한은 마치 계륵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어쩌랴 그들도 같은 핏줄임을. 언젠가는 다시 만나 함께 살아가야 하는 핏줄임을.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다시 만나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그들을 이해하고 만남의 광장으로 손을 잡고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무뚝뚝하고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그들이라도 뜨거운 사랑앞에서 어찌 무릎을 꿇지 않을까.

그들 역시 따뜻한 피가 흐르는 우리의 핏줄임을 다시 한번 새겨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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