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차가운 오늘의 젊은 작가 2
오현종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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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는 손가락으로 나의 고통을 연주하고 있었답니다.

그는 노래로 나를 부드럽게 사로잡았죠.'

 

아이팟 터치의 볼륨을 높혀 이어폰을 통해 이 노래를 즐겨 듣던 재수생 지용은

학원옥상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마치 야동에서 남자의 성기를 빨던 소녀처럼 가늘고 긴 원기둥 모양의 아이스바를

돌려 가며 쪽쪽 빨아먹던 그녀의 이름은 신혜였다.

학원에 등록된 이보니라는 친구대신 강의를 듣고 있다는 신혜는 술장사를 하는 엄마와

얼마전 교통사고로 죽은 새아빠와 함께 들어온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영어유치원을 경영하는 엄마와 의대를 다니는 형, 유학중인 누나를 둔 지용은 한 마디로

집안의 골칫거리이다. 서울시안에 있는 대학은 모두 서울대라는데 웬만한 사립대에 합격을

했지만 양에 차지 않았던 엄마는 재수를 강요하며 학원을 골라주었었다.

 

새아빠가 남기고 간 열 한살짜리 여동생이 자신이 그랬던 것 처럼 엄마한테 성매매를 강요당한다며

김치냉장고에 숨겨둔 돈을 훔쳐 동생과 숨어버리고 싶다는 신혜를 대신해 지용은 신혜의 엄마를

살해하고 누나가 있는 미국으로 떠난다.

 

지용은 부드러운 것이 필요했었다. 온몸이 잠길만큼 부드럽고 따뜻한 신혜의 몸에 안기면 비로소

안정감이 찾아오곤 했던 지용은 신혜가 행복해지기를 바랬을 뿐이었다.

마녀같은 신혜의 엄마의 목을 아이폰 줄로 휘감아 죽이는 동안 지용은 집에 있는 익숙한 얼굴 하나를

떠올린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던 한 여자를.

 

메일과 트윗같은 은밀한 방법으로만 연락을 하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 지용은 어느 날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 신혜를 찾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녀의 자취는 어디에도 없고 자신이 살아가는 힘이라고 믿던 신혜를 찾아 나선다.

 

서서히 밝혀지는 신혜의 비밀들. 죽었다는 새아빠와 살림을 차려 이국으로 도망갔던 신혜.

지용은 복수를 하기 위해 신혜를 찾아가 마음속으로 외친다.

'나는 다만 부드러운 것을 원했을 뿐이야.' 하지만 더 이상 부드럽지 않은 그녀를 두고 발길을 돌린다.

 

사랑이라는게 그렇다. 내가 죽더라고 상대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다 줄 수 있는 것.

 

집안에 못난이 막내아들 지용은 신혜를 통해 숨을 쉬고 그녀의 부드러운 몸에 위안을 느꼈지만

신혜의 삐뚤어진 사랑은 지용에게 죄를 짓게 하고 엄청난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신혜는 자신의 사랑과 선택이 옳았다고 믿는다.

설사 지용이 자신의 엄마를 죽이고 미래마저 죽여버렸지만 조금의 후회도 없을 만큼 자신의 사랑은

순결했고 아름답다고.

 

사랑이란게 그렇다. 모든 오염도 죄악도 느껴지지 않는 직진의 방향으로만 치닫는 브레이크 없는 일방성.

 

순수한 사랑을 이용하여 죄악으로 이끄는 신혜의 사랑도 사랑이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옳다고 믿어 살인을 저지른 지용의 사랑도 사랑이다.

함께 살던 여인의 딸을 범하고 급기야 지용까지 끌어들이게 하여 살인을 교사한 새아빠의 사랑도 사랑일까.

사랑은 이렇게 누군가의 눈을 멀게 하고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무형의 폭탄같은 것.

 

맹목의 사랑으로 달려갔던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반전까지 가미된 멋진 소설이다.

인생이란 달고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야. 때로는 맵고 짜고 뜨겁고 달콤하고..그렇게 오묘한 것이지.

홍콩의 구룡반도 끝에서 신혜를 두고 발길을 돌리던 지용은 신혜와 함께 평생 지옥에 살 것임을

예감하며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과 살인과 복수가 난무한 이야기속에서도 사랑은 위대했노라고 눈을 반짝거리며 내게 말을 하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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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스테롤은 살인자가 아니다 - 그들이 감추려 했던 콜레스테롤의 비밀
우페 라븐스코프, MD, PhD 지음, 김지원 옮김 / 애플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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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충격적인 내용의 책이었다. 어머니에 이어 고지혈을 앓고 있는 내게는 그동안

알고 있던 콜레스테롤의 진실이 허구라는 주장에 어떤 판단을 해야할지 혼란스럽다.

콜레스테롤은 HDL(High Density Lipoprotein)이라고 부르는 고밀도 지질 단백질은 흔히 좋은 콜레스테롤로

불리고 있으며 LDL(Low Density Lipoprotein), 즉 저밀도 지질 단백질은 나쁜 콜레스테롤로 알려져 있다.

흔히 LDL은 혈전을 만들어 동맥경화증이나 심장마비를 일으킨다고 한다.

HDL은 잉여 콜레스테롤을 간으로 이송하여 대사에 이용케함으로써 혈중 콜레스테롤의 농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좋은 콜레스테롤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혈액검사를 하면 HDL과 LDL의 수치가 나오며 HDL량이 높으면 LDL의 량은 낮다고 한다.

10여년 전 LDL의 수치가 200이 넘어가면서 고지혈 진단을 받은 후 십 여년을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을 복용하고

있는 내가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억지로 낮출경우 사망할 확률이 더 많다는 주장에 어찌 경악하지 않겠는가.

 

 

지방성 음식을 많이 섭취하지 않고 체중도 정상인 어머니에게도 고지혈이 있다.

오랫동안 고지혈약을 먹었던 엄마를 보면서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가족성 고콜레스테롤 혈증을 의심했었다.

만성 성인병인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고지혈 진단을 받은 환자는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고지혈 환자라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물론 가족력으로 인해 고지혈이 내림 되긴 했어도 일반인들처럼 긴 수명을 누리고 건강하게 살았다는 주장에

안심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고콜레스테롤이 심지어 더 이롭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에 전염병이 인류를 위협하던 시대에는 전염병을 예방해

주는 것으로 알려진 콜레스테롤이 많았던 사람들이 더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은 사람들은 위와 장, 폐에 일어나는 질병으로 죽을 위험이 훨씬 높다.' -43p

 

하지만 위생적으로 더 안전해지고 영양적으로 과잉의 시대인 지금 과연 고콜레스테롤이 더 이롭기만 할까.

고콜레스테롤이 원인이라고 알려진 심근경색은 음식을 통한 과도한 지방 섭취 때문에 유발 된다고 주장한

안셀키즈의 주장은 가장 일반적이고 믿을 만한 의학상식으로 알려져왔다.

회식 메뉴를 고르기 위해 나는 늘 저지방식을 찾아야했고 간혹 삼겹살이나 등심을 먹는 날은 잊지 않고

고지혈약을 먹음으로써 위안을 얻곤 했기 때문에 동물성 지방이 콜레스테롤의 증가를 유도한다는 것이

심각한 오류라는 저자의 주장에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고콜레스테롤은 여성들에게 위험 요인이 아니다'라는 단호한 주장에 대해서는

믿고싶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많은 질병을 완치시켰거나 늦추는 의학계의 업적은 인류를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으나

거대제약업체와 의학계의 잘못된 커넥션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은 알고 있다.

과연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추는 처방이 이런 커넥셕의 일종이라면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없다.

어쩌면 이런 행동이 동맥경화나 심근경색보다 더 심각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 때문이다.

 

어디에서도 후원을 받지 못해 스스로 연구를 계속해야 했고 어떤 논문들은 읽혀지지도 않은 채

되돌려지는 일이 빈번했다는 '왕따' 의학박사 우페 라븐스코프가 이미 수십년이상 굳어진 학설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심정적으로 그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고지혈약을 처방받고 있는 환자로서-

선뜻 약을 끊을 용기가 없는 것은 여전히 그의 주장이 기존의 학설을 뒤집기에는 열세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감추려고 했던 콜레스테롤의 비밀'이 과연 제약업체와 기존학설을 신봉하는

권력들의 합작품이라면 인류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반드시 밝혀져야만 할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테이블위에 평생 자리를 차지하고 나를 노려보고 있는 고지혈 약병을 어째야 할지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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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섬옥수
이나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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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땅끝섬 사람들 마음속에는 고립감이 뿌리 깊어 스스로를 유폐시키며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산다.

섬이라는 단절되고 폐쇄된 공간에서 거친 바다와 싸우고 또 순응하면서 체득된 오랜 정서 탓인지도

모른다.' -263p

 

그렇다. 섬은 그 자체가 수인을 가두는 천연의 요새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은 애초에 자신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그 곳에 떨구어진 사람들이었다.

빗물로 갈증을 달래고 척박한 땅에 고구마를 심어 먹어도 모든 세상이 다 그러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름의 안분지족을 습득했던 사람들이었다.

섬들 중에서도 쳐질대로 쳐졌던 땅끝섬은 대한민국 최남단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으면서 요란하게

탈바꿈을 시작했다.

섬에 사람들이 몰려 들어오면서 척박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돈맛을 알아갔다.

손바닥만한 섬에 골프차 수십대가 으르렁거리고 뜬금없는 짜장면 열풍으로 몸살을 앓는다.

한집안처럼 화목했던 사람들은 서로를 물어 뜯으면서 뭍의것, 육지것보다 더 그악스러워졌다.

 

 

섬을 찾아드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최남단'이라는 푯말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들어오는 관광객이

많아지기 전에는 인생의 끝자락에 서있던 사람들이 많았었다.

한가락 하시던 조폭아저씨도 간암판정을 받고 찾아든 곳이 이 섬이었으며,

분식집으로 모은 돈을 아는 언니한테 사기당하고 죽음으로 몰리던 여인도 있었다.

타고난 역마병을 껴안고 방황하던 사나이는 섬에 있는 절로 들어와 결국 주지가 된다.

떠돌만큼 떠돌다가 들어온 땅끝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10년 넘게 보따리 강사생활을 하던 여인은 알량한 그 자리를 내어놓기 위해 땅끝까지 내려와 결심을

굳힌다. 어디로 여행을 떠났는지 묻지 않았던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조금 더 행복했을까.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틈이 있으므로 오히려 안전하고 견고하다.'

서로 빈틈이 없었기 때문에 불편했었는지도 모른다. 섬을 다녀간 후 그녀는 조금 느슨해지기로 한다.

섬이란 치밀하지 않아야만 살아가기가 편한 곳이다. 그녀는 섬의 지혜를 나누어 가져간 모양이었다.

 

대책도 없이 너도 나도 들여놨던 개들이며 골프차들은 인간의 탐욕이 부른 재앙의 상징이었다.

관광객이 던져주는 과자로 연명하는 개들은 눈치만 빤해졌고 개주인들은 사육의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가 결국에 잡아먹는 것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지워버렸다.

 

애기업개당의 슬픈 전설을 지닌 섬은 여전히 할망당의 위력이 존재한다.

거친 바다와 마주한 사람들에게 귀신은 섬겨야 할 조상이고 달래야 할 업인것을.

 

섬에 들어와 살고 있는 내게 이 소설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막막함과 너무도 닮아있어 놀랍기만 하다.

평생 두통에 시달리는 잠녀들의 늙은 모습과 질긴 생활력,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젊은 잠녀가 없다는 것도.

그렇게 키워낸 자식들은 모두 뭍으로 떠나고 늙은 몸뚱이만 붙들은 잠녀들은 오늘도 힘겨운 발자욱을

떼어 좀 더 자유로운 바다속으로 물질을 간다.

 

짜장면 한 그릇을 더 팔기위해 반목하고 뒤늦게 들어온 뭍의 것들을 무참하게 공격하는 모습.

10년이 넘게 살아야 겨우 주민으로 인정하겠다는 극렬한 텃세.

 

나는 이 소설이 허구가 아님을 안다.

도시의 각박함과 처세가 싫어 들어온 섬은 내게 자유를 준 것이 아니고 스스로 수인이 되어 갇혔다는 것을 알았다.

눈빛 하나에도 싸늘함을 걷어내지 못한 원주민들의 텃세보다 이제는 뭍의 것들이 점령해버린 섬사람들의

비겁함과 집요한 욕망을 알기에 상상만으로 이 글은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육지와 섬사람들이 어찌어찌 섞여서 살아가는 섬의 모습들은 대체로 비슷한 모양이다.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섬의 모습을 그린 듯 생생하여 내가 소설속에 녹아있는 느낌이다.

뱅어돔을 낚는 낚시꾼들의 모습속에서는 작가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그녀는 굉장한 낚시꾼일 것이다.

아니면 세상 모든 것에서 글감을 낚아올리는 리얼 낚시꾼이거나.

더구나 그 어렵다는 제주도 방언을 이리도 실감나게 살려내다니. 물론 해석하는데 무척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투박하고 난해스럽게 느껴지던 그 말들은 태초의 숨결이 녹아진 것 같은 신비감이 숨어 있었다.

섬 특유의 방언은 여전히 외지인을 밀어내는 듯한 단담함과 함께.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면 태풍이 올라오고 풍랑주의보가 수시로 내릴 것이다.

방파제에서 건져올린 뱅어돔이라도 썰어놓고 작가와 마주앉아 소주한잔 기울이고 싶어진다.

다음번엔 우리 섬 얘기도 좀 써주실라요. 여그도 심란한 야그가 만당케요.

섬, 섬옥수 2편 쓰고도 남는당께. 우째 생각있음 연락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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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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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라 함은 일반적으로 종교적 성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말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편지를 부치기 위해 나선 해럴드가 갑자기 나선 이 여행을 왜 순례라고 부를까.

바로 그가 걸었던 길 위는 모두 상처를 치유하는 성지와 같았고 그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성가와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순례란 꼭 종교적인 성지일 필요는 없다. 그 이상의 행복과 힐링을 느꼈다면 말이다.

 

 

 

 

어느 날 영국 남부의 킹스브리지 포스브리지로 13번지의 프라이의 집에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아주 오래전 같은 양조회사에서 근무했던 동료 퀴니 헤네시가 보낸 편지였다.

'이 편지를 받고 좀 놀라실지 모르겠네요....'로 시작된 퀴니의 편지는 그녀의 성격답게 타자기로

정갈하게 타이핑 되어 있었으며 거의 1000km 떨어진 버윅어폰 트위드의 소인이 찍혀 있었다.

 

이 십여년전 갑작스럽게 회사를 떠난 그녀가 암으로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전하게 된 것일까.

해럴드는 답장을 쓰기위해 펜을 들었지만 '편지 고마워요. 정말 안타깝네요. 모든 일이 잘되기를 빌며...'

라고만 쓰기에는 뭔가 어설프고 진심이 담긴 것 같지가 않았다.

어쨋든 그 편지를 부치기 위해 집 앞의 우체통을 향하던 해럴드는 입고 있던 셔츠와 보트 슈즈 그대로

퀴니를 향한 대장정을 시작하게 된다. 물론 현관문을 나설 때 그 곳까지 그런 차림으로 여행을 시작하리라는

계획은 전혀 없었다.

 

 

왜 그는 기억속에서도 가물가물한 퀴니를 만나기 위해 순례라고 부를만큼 어려운 여행을 시작한 것일까.

물론 그가 만날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제대로 된 옷차림이나 여행장비를 갖추었다면 단순한 그의 여행기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눈앞에 둔 퀴니에게 '내가 당신에게 걸어가고 있는 동안 살아 있어야 한다'는 숙제를 주고

그는 무작정 걷는다.

주유소에서 만난 아르바이트 소녀는 배고픈 그에게 치즈버거를 주었으며 암으로 죽어가던 고모가

있으며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해럴드는 소녀의 그 말에 큰 감동을 받고 여행내내 소녀에게 편지를 보내고 위안을 얻는다.

 

 

'해럴드는 다른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한 도회지를 걷고, 도회지들 사이의 땅을

통과하는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그의 삶의 순간들을 마치 방금 일어난 일처럼 받아들였다.

가끔 자신이 현재보다는 기억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바깥에 갇힌 구경꾼처럼

그의 삶의 장면들을 다시 돌려 보았다. 실수, 모순, 하지 말았어야 할 선택이 보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204p

 

해럴드는 길을 걸으면서 무심한 듯 펼쳐진 풍경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제는 사랑이 식어 버린

아내 모린을 떠올린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 데이비드를 떠올렸다.

댄스파티에서 만나 첫 눈에 사랑에 빠졌던 모린은 이제 손님방으로 나가 더 이상 그를 안아주지 않았었다.

자신을 조롱하고 하찮게 여겼던 아들 데이비드에게 그는 어떤 아버지였던가를 기억해내려 했다.

술주정뱅이 였던 자신의 아버지와 뉴질랜드로 떠나버린 어머니, 늘 바뀌었던 아버지의 여자들.

 

해럴드는 버림받았다는 어린시절의 상처로 모린과 꾸민 가정에서도 언젠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머리 좋고 잘생겼던 아들과는 왜 이렇게 멀어지게 되었던걸까.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다. 단지 크고 작을 뿐.

해럴드가 퀴니에게 가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은 더 이상 가정이 그를 안아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남처럼 되어버린 모린과 자신을 떠나버린 아들. 공허한 인생에 퀴니에게 도달하기 위해 내 딛은 발자욱은

자신을 만나는 여행이 되어 버렸다.

길에서 만난 누군가는 해럴드의 이 여행을 멋지게 포장하고 광고해서 이익을 얻으려고 했다.

또 누군가는 비슷한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그와 함께 걷고자 했다.

물론 그런 이들은 고통이 따르는 그 여행을 끝까지 해내지 못한다. 다만 멍한 상태가 되어버린 해럴드만이

퀴니에게 당도한다. 그의 도착을 기다리며 죽음을 밀어내며 기다렸던 퀴니.

 

아주 오래전 친절했던 해럴드를 위해 누명을 쓰고 회사를 떠났던 그녀.

해럴드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저 편지 몇줄로는 자신의 마음이 당도하지 못할만큼.

하지만 해럴드의 여정은 결국 식어버린 사랑과 돌이킬 수 없는 잘못들을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된다.

 

'아이가 더 있었으면 사랑하는 고통도 희석되지 않았을까? 아이가 자라는 것은 계속 부모를 밀어내는 것이다.'-73p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떠나버린 아들은 해럴드와 모린의 상처였다.

누구나 자신의 분신인 아이에게 사랑을 준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두 떠날 것임을 알기에 해럴드의 이런 아픔이

내게도 전해져왔다. 아이가 자라는 것은 나를 밀어내는 것....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해럴드의 이 여행이 모린에게 기적을 선물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떠나버린 아들로 해서 서로를 아프게 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임을.

앙상하게 말라버린 해럴드를 목욕시키고 그의 얼굴을 만지던 모린의 눈빛이 얼어붙었던 두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마지막 장면에 그동안 아팠던 마음이 가라 앉는다. 우리는 저마다 이런 아픔을 간직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1000km의 여행을 하지 않고도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기적인 셈이다.

87일간의 순례는 우리네 인생길과 너무나 닮아있어 해럴드와 함께 했던 여행길이 내내 숭고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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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번지 파란 무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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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空)은 비어 있음이니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공(空)은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空)으로 꽉 차 있습니다.'

공(空)에 관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어 있음으로 해서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고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꽉 차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공윤후도 그런 존재이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는 없는 것같은 존재.

 

 

경기도 도개산 404번지 무덤 속에 공윤후가 산다.

1982년생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에게 나이라는 숫자매김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역시 있지만 없는 공(0)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으로 둔갑해 다시 살아가는 존재. 공윤후는 영원불사의 비밀을 가진 도깨비인가.

조부로 알려진 공청옥이 어느 순간 세상에 나타나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그의 아들인 공해경 역시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하고 사라진다.

공윤후는 조부와 아버지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슬프고 눈물 흘리는 여자들을 아픔을 어루만져 준다.

'부풀어 오른 눈, 녹아내린 듯 쳐진 살덩어리...여자는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만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윤후는 여자의 얼굴에 매달려 있던 육중하고 단단한 슬픔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눈으로 사물과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위장한 것의 정체를 보는 데는 오히려

그 눈이 가장 큰 장애가 되지." -24p

 

그녀에게 매달린 섬유종 덩어리들은 사람들의 눈으로 해석되어진 아픔과 고통 덩어리일 뿐.

그 덩어리를 달고 있던 그녀의 내면은 전혀 보지 못하는 맹과니의 눈은 가진 사람들이 장애인일 뿐이다.

 

설화로 전해지는 도깨비와 혹부리영감의 이야기같기도 하고,

신출귀몰했던 전우치의 이야기 같기도 한 공윤후의 이야기속에는 아픔을 치유하는 마법이 숨어있다.

 

 

 

"둘이 있다고 덜 무서운 건 아니야. 겁나 살벌한 인생이잖아. 결혼은 말이야, 혼자인 것이 무섭지 않다고

여겨질 때 해야 하는 거야. 내가 무서울 때 둘이 되면 두배 무서워지고, 셋이 되면 세 배 무서워진다고." -90p

 

미술학원 원장인 민혜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해 외로움에 빠진 병구에게 공윤후는 말한다.

홀로남을 병구때문에 차마 눈을 감지 못했던 어머니는 집안 대대로 이어온 반지를 병구에게 남겼지만

병구는 그 반지를 엄마와 함께 무덤에 묻었었다.

강원도의 어디선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민혜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예전과는 다른 모습과 성격을 지니게 되고

어느 날 공윤후에게 홀려 도개산의 구덩이에 갇히게 된다.

병구는 민혜를 구하기위해 도개산 구덩이로 향하고 가까스로 그녀를 구출한다.

얼음처럼 차가웠던 민혜는 그제서야 볼품없어 보이던 병구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 남자를

사랑할 수도 있겠구나...과연 민혜는 엄마의 무덤속에 묻혀있던 반지의 변신이었던가.

마술이라기 보다는 도술을 써서 공윤후는 외로운 병구에게 짝을 맺어주려 한 것인가.

 

 

"보물은 보물을 감당할 후 있는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야. 사람마다 보물을 알아보는 눈이 각기 다르지.

너도 누군가의 보물이야. 그리고 내가 그 보물을 이제 여기 숨길 거야. 꼭꼭 숨어 있다가 누가 널 찾아내는 잘 봐." -155p

 

나도 누군가의 보물이었을까. 그리고 내 보물을 알아보고 찾아냈을까...문득 궁금해진다.

'사람마다 보물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는 윤후의 말에 가슴이 울컥해진다.

존재하지만 없는 공윤후처럼 우리는 그의 존재를 평생 만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어떤 존재들.

 

공윤후는 지금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는 느껴지고 혹은 만날지도 모른다.

그를 만나면 혹처럼 달려있는 아픔을 떼어줄지도 모르고 파란 코트의 안감을 찢어 눈물을 닦아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언젠가 너에게 갈게'하는 편지를 건네줄지도.

그를 믿지 못하고 보이는 것만 보겠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그를 만날 가능성이 없다.

길가에 서있는 회화나무가 보인다면 조용히 속삭여보자.

'어이 공윤후에게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줘'

나도 공윤후를 통해 영원한 사랑과 행복을 얻고 싶다.

하지만 과연 그가 내게 와줄까?

"어이 김씨 나를 찾았어?"하면서.

 

환타지속 도깨비 세상에 다녀온 느낌은 조금 혼란스럽다. 시공을 넘나들고 사라졌다 나타났다하는 그를

쫓다보니 어느새 환하게 아침이 밝는다. 꿈처럼 내게 공윤후가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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