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순례라 함은 일반적으로 종교적 성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말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편지를 부치기 위해 나선 해럴드가 갑자기 나선 이 여행을 왜 순례라고 부를까.

바로 그가 걸었던 길 위는 모두 상처를 치유하는 성지와 같았고 그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성가와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순례란 꼭 종교적인 성지일 필요는 없다. 그 이상의 행복과 힐링을 느꼈다면 말이다.

 

 

 

 

어느 날 영국 남부의 킹스브리지 포스브리지로 13번지의 프라이의 집에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아주 오래전 같은 양조회사에서 근무했던 동료 퀴니 헤네시가 보낸 편지였다.

'이 편지를 받고 좀 놀라실지 모르겠네요....'로 시작된 퀴니의 편지는 그녀의 성격답게 타자기로

정갈하게 타이핑 되어 있었으며 거의 1000km 떨어진 버윅어폰 트위드의 소인이 찍혀 있었다.

 

이 십여년전 갑작스럽게 회사를 떠난 그녀가 암으로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전하게 된 것일까.

해럴드는 답장을 쓰기위해 펜을 들었지만 '편지 고마워요. 정말 안타깝네요. 모든 일이 잘되기를 빌며...'

라고만 쓰기에는 뭔가 어설프고 진심이 담긴 것 같지가 않았다.

어쨋든 그 편지를 부치기 위해 집 앞의 우체통을 향하던 해럴드는 입고 있던 셔츠와 보트 슈즈 그대로

퀴니를 향한 대장정을 시작하게 된다. 물론 현관문을 나설 때 그 곳까지 그런 차림으로 여행을 시작하리라는

계획은 전혀 없었다.

 

 

왜 그는 기억속에서도 가물가물한 퀴니를 만나기 위해 순례라고 부를만큼 어려운 여행을 시작한 것일까.

물론 그가 만날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제대로 된 옷차림이나 여행장비를 갖추었다면 단순한 그의 여행기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눈앞에 둔 퀴니에게 '내가 당신에게 걸어가고 있는 동안 살아 있어야 한다'는 숙제를 주고

그는 무작정 걷는다.

주유소에서 만난 아르바이트 소녀는 배고픈 그에게 치즈버거를 주었으며 암으로 죽어가던 고모가

있으며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해럴드는 소녀의 그 말에 큰 감동을 받고 여행내내 소녀에게 편지를 보내고 위안을 얻는다.

 

 

'해럴드는 다른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한 도회지를 걷고, 도회지들 사이의 땅을

통과하는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그의 삶의 순간들을 마치 방금 일어난 일처럼 받아들였다.

가끔 자신이 현재보다는 기억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바깥에 갇힌 구경꾼처럼

그의 삶의 장면들을 다시 돌려 보았다. 실수, 모순, 하지 말았어야 할 선택이 보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204p

 

해럴드는 길을 걸으면서 무심한 듯 펼쳐진 풍경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제는 사랑이 식어 버린

아내 모린을 떠올린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 데이비드를 떠올렸다.

댄스파티에서 만나 첫 눈에 사랑에 빠졌던 모린은 이제 손님방으로 나가 더 이상 그를 안아주지 않았었다.

자신을 조롱하고 하찮게 여겼던 아들 데이비드에게 그는 어떤 아버지였던가를 기억해내려 했다.

술주정뱅이 였던 자신의 아버지와 뉴질랜드로 떠나버린 어머니, 늘 바뀌었던 아버지의 여자들.

 

해럴드는 버림받았다는 어린시절의 상처로 모린과 꾸민 가정에서도 언젠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머리 좋고 잘생겼던 아들과는 왜 이렇게 멀어지게 되었던걸까.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다. 단지 크고 작을 뿐.

해럴드가 퀴니에게 가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은 더 이상 가정이 그를 안아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남처럼 되어버린 모린과 자신을 떠나버린 아들. 공허한 인생에 퀴니에게 도달하기 위해 내 딛은 발자욱은

자신을 만나는 여행이 되어 버렸다.

길에서 만난 누군가는 해럴드의 이 여행을 멋지게 포장하고 광고해서 이익을 얻으려고 했다.

또 누군가는 비슷한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그와 함께 걷고자 했다.

물론 그런 이들은 고통이 따르는 그 여행을 끝까지 해내지 못한다. 다만 멍한 상태가 되어버린 해럴드만이

퀴니에게 당도한다. 그의 도착을 기다리며 죽음을 밀어내며 기다렸던 퀴니.

 

아주 오래전 친절했던 해럴드를 위해 누명을 쓰고 회사를 떠났던 그녀.

해럴드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저 편지 몇줄로는 자신의 마음이 당도하지 못할만큼.

하지만 해럴드의 여정은 결국 식어버린 사랑과 돌이킬 수 없는 잘못들을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된다.

 

'아이가 더 있었으면 사랑하는 고통도 희석되지 않았을까? 아이가 자라는 것은 계속 부모를 밀어내는 것이다.'-73p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떠나버린 아들은 해럴드와 모린의 상처였다.

누구나 자신의 분신인 아이에게 사랑을 준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두 떠날 것임을 알기에 해럴드의 이런 아픔이

내게도 전해져왔다. 아이가 자라는 것은 나를 밀어내는 것....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해럴드의 이 여행이 모린에게 기적을 선물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떠나버린 아들로 해서 서로를 아프게 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임을.

앙상하게 말라버린 해럴드를 목욕시키고 그의 얼굴을 만지던 모린의 눈빛이 얼어붙었던 두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마지막 장면에 그동안 아팠던 마음이 가라 앉는다. 우리는 저마다 이런 아픔을 간직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1000km의 여행을 하지 않고도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기적인 셈이다.

87일간의 순례는 우리네 인생길과 너무나 닮아있어 해럴드와 함께 했던 여행길이 내내 숭고한 기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404번지 파란 무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空)은 비어 있음이니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공(空)은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空)으로 꽉 차 있습니다.'

공(空)에 관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어 있음으로 해서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고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꽉 차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공윤후도 그런 존재이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는 없는 것같은 존재.

 

 

경기도 도개산 404번지 무덤 속에 공윤후가 산다.

1982년생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에게 나이라는 숫자매김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역시 있지만 없는 공(0)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으로 둔갑해 다시 살아가는 존재. 공윤후는 영원불사의 비밀을 가진 도깨비인가.

조부로 알려진 공청옥이 어느 순간 세상에 나타나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그의 아들인 공해경 역시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하고 사라진다.

공윤후는 조부와 아버지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슬프고 눈물 흘리는 여자들을 아픔을 어루만져 준다.

'부풀어 오른 눈, 녹아내린 듯 쳐진 살덩어리...여자는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만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윤후는 여자의 얼굴에 매달려 있던 육중하고 단단한 슬픔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눈으로 사물과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위장한 것의 정체를 보는 데는 오히려

그 눈이 가장 큰 장애가 되지." -24p

 

그녀에게 매달린 섬유종 덩어리들은 사람들의 눈으로 해석되어진 아픔과 고통 덩어리일 뿐.

그 덩어리를 달고 있던 그녀의 내면은 전혀 보지 못하는 맹과니의 눈은 가진 사람들이 장애인일 뿐이다.

 

설화로 전해지는 도깨비와 혹부리영감의 이야기같기도 하고,

신출귀몰했던 전우치의 이야기 같기도 한 공윤후의 이야기속에는 아픔을 치유하는 마법이 숨어있다.

 

 

 

"둘이 있다고 덜 무서운 건 아니야. 겁나 살벌한 인생이잖아. 결혼은 말이야, 혼자인 것이 무섭지 않다고

여겨질 때 해야 하는 거야. 내가 무서울 때 둘이 되면 두배 무서워지고, 셋이 되면 세 배 무서워진다고." -90p

 

미술학원 원장인 민혜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해 외로움에 빠진 병구에게 공윤후는 말한다.

홀로남을 병구때문에 차마 눈을 감지 못했던 어머니는 집안 대대로 이어온 반지를 병구에게 남겼지만

병구는 그 반지를 엄마와 함께 무덤에 묻었었다.

강원도의 어디선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민혜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예전과는 다른 모습과 성격을 지니게 되고

어느 날 공윤후에게 홀려 도개산의 구덩이에 갇히게 된다.

병구는 민혜를 구하기위해 도개산 구덩이로 향하고 가까스로 그녀를 구출한다.

얼음처럼 차가웠던 민혜는 그제서야 볼품없어 보이던 병구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 남자를

사랑할 수도 있겠구나...과연 민혜는 엄마의 무덤속에 묻혀있던 반지의 변신이었던가.

마술이라기 보다는 도술을 써서 공윤후는 외로운 병구에게 짝을 맺어주려 한 것인가.

 

 

"보물은 보물을 감당할 후 있는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야. 사람마다 보물을 알아보는 눈이 각기 다르지.

너도 누군가의 보물이야. 그리고 내가 그 보물을 이제 여기 숨길 거야. 꼭꼭 숨어 있다가 누가 널 찾아내는 잘 봐." -155p

 

나도 누군가의 보물이었을까. 그리고 내 보물을 알아보고 찾아냈을까...문득 궁금해진다.

'사람마다 보물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는 윤후의 말에 가슴이 울컥해진다.

존재하지만 없는 공윤후처럼 우리는 그의 존재를 평생 만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어떤 존재들.

 

공윤후는 지금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는 느껴지고 혹은 만날지도 모른다.

그를 만나면 혹처럼 달려있는 아픔을 떼어줄지도 모르고 파란 코트의 안감을 찢어 눈물을 닦아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언젠가 너에게 갈게'하는 편지를 건네줄지도.

그를 믿지 못하고 보이는 것만 보겠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그를 만날 가능성이 없다.

길가에 서있는 회화나무가 보인다면 조용히 속삭여보자.

'어이 공윤후에게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줘'

나도 공윤후를 통해 영원한 사랑과 행복을 얻고 싶다.

하지만 과연 그가 내게 와줄까?

"어이 김씨 나를 찾았어?"하면서.

 

환타지속 도깨비 세상에 다녀온 느낌은 조금 혼란스럽다. 시공을 넘나들고 사라졌다 나타났다하는 그를

쫓다보니 어느새 환하게 아침이 밝는다. 꿈처럼 내게 공윤후가 다녀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모사드 -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의 위대한 작전들
미카엘 바르조하르 & 니심 미샬 지음, 채은진 옮김 / 말글빛냄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아무리 대단한 미스터리나 스릴러의 책들이 있다고 해도 이 책과는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건 리얼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소련의 KGB, 미국의 CIA, 영국의 M15가 있다면 이스라엘은 '모사드'가 있었다.

모사드(연구소, 혹은 기관이란 뜻의 히브리어)는 1949년 다비드 벤구리온 총리 시절 탄생되었으며

해외의 이스라엘인들을 겨냥한 테러행위를 저지하거나 비밀정보 수집, 유대인을 이스라엘로 귀환시키고

이런 것들을 위한 특수작전및 임무수행등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예언의 땅을 되찾는다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들의 땅을 점령하였고

아랍국가들에 둘러싸인 유대국으로써 명실상부한 '아랍의 화약고'이다.

조그마한 영토에 둘러쌓인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등과의 갈등과 화해를 계속하면서 국권을 지키고자 했던

이스라엘은 '모사드'라는 첩보부대를 통해 국권을 지키고자 했던 목표를 이룬 셈이다.

 

 

'모사드'의 업적중에는 나치 전범들에 대한 응징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자 아부에 능한 기술 관료였던 아이히만은 6백만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학살한 장본인으로

전쟁이 끝난후 사라졌지만 독일의 바우어 박사에 의해 그 소재가 밝혀지기에 이른다.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후, 이름을 바꾸고 가족을 불러 들인 뒤 철저히 위장된 삶을 살고 있었다.

'모사드'는 치밀한 계획하에 그를 납치한후 이스라엘로 끌고와 사형대에 세우게 된다.

'결코 잊지 않는 사람들'

이스라엘사람들은 나치의 학살을 결코 잊지 않았으며 그 후로 많은 나치 전범들을 재판정에 세우거나

암살한다. 어느 누구도 '모사드'의 이런 징벌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전 파쇼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탈출시켰던 나치 장교 슈코르체니같이 이스라엘을

도왔던 비현실적인 스파이도 있었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 참가한 이스라엘 선수들을 살해한 '검은 9월단'의 조직을 끝까지 쫓아 일망타진한

사건은 '모사드'의 끈질김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1965년 5월 사랑하는 아내 나디아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 교수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엘리 코헨은

'모사드'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파이였다.

거의 20년 동안 '카말 아민 타베트'라는 인물로 시리아의 실세속에 섞여있던 그는 엄청난 비밀들을

이스라엘로 넘겼고 비극적인 사건을 예방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 외로움과

불안을 견딘 최고의 스파이 코헨은 결국 발각되고 만다.

그에게 조국은 사랑하는 가족보다 우선시 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핵무기를 둘러싼 이스라엘과 이라크, 이란, 시리아간에 전쟁속에는 '모사드'가 있었고 실제로 비밀첩보활동으로

시리아의 핵시설을 파괴했으며 이라크의 핵보유국의 꿈을 저지시키기도 했다.

사실 이스라엘도 몰래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었으며 단순한 기술자였던 바누누의 폭로만 없었다면 비밀로

유지될뻔 했었다. 하지만 모사드는 미인계를 이용하여 바누누를 체포한 후 재판장에 세웠다.

물론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 역시 이스라엘의 국민이어서 그랬는지 18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반정부활동을 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합리적인 자유국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주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망신을 당한 일도 있었다.

하마스의 지도자 칼레드 마샤알을 독살시키기 위해 감행했던 작전은 사실 너무 허술해 보였다.

단지 피부에 뿌리기만 해도 죽게 되는 독으로 마샤알을 죽이기 위해 모사드 요원들은 그가 출근하는 건물앞에

대기중이었다. 그 날 마샤알의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지 않았다면 작전은 성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아빠를 쫓아 오는 바람에 운전기사와 하마스의 전투원이 모사드의 요원들을 저지한 것이다.

살짝 뿌리기만 독은 마샤알을 중태로 몰았지만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그들의 적이자 위험한 테러리스트인

남자의 목숨을 구하는 헤프닝을 벌이게 된다. 물론 나라간의 알력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깜쪽같이 헤치웠다면 결코 드러나지 않을 사건이었다. 그 독은 그렇게 아무 흔적도 없이 살인할 수 있는 무기였지만

때론 엉성한 작전이 대 망신을 부르기도 했단다.

 

이 책은 모사드의 탄생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비밀스럽게 묻혀있던 모사드의 작전들이 세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이나 '본 아이덴티티'와 같은 스파이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아니 이건 영화가 아닌 논픽션이기에 더욱 흥미롭고 때로는 손에 땀이 차기도 할 만큼 박력있다.

'모사드'가 세계 평화에 긍정으로 작용했는지 그 반대인지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영웅과도 같은 기관임은 틀림없다.

 

이제는 밝혀도 좋을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이런 비밀스런 내용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모사드'는 비밀스런 일들을 할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밖으로 드러나겠지만.

왠만한 추리소설을 능가하는 리얼의 스파이 대전을 읽다보니 어느새 더위를 잊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 이 시대 7인의 49가지 이야기
김용택 외 지음 / 황금시간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각자의 분야에서 자기만의 색을 뽐내는 7인의 7가지 이야기가 무지개처럼 펼쳐져 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자신이 낳고 자라고 아이들을 가르친 섬진강변의 고향집이

자신을 시인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갑자기 비가오면 땅속의 벌레들에게 놀라지 말라고

다독거리셨던 어머니. 무심코 베어 버렸던 나무 한 그루에게도 저승길까지 목숨을 이어주던

의식을 보며 자란 그가 시인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의 에세이 출간행사에서 그를 만났었다. 그의 담백한 고향집과 앞뜰처럼 펼쳐진 강가.

그의 천진한 미소처럼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았었다. 강이 시가 되었던 삶이 참으로 부럽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시작한 박찬일의 돼지고기 예찬은 쇠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내가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사실 유럽이나 미국은 쇠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더 비싼데

그 이유는 물론 맛이 더 좋기 때문이다.

가죽부터 머리까지 한 점 남김없이 활용하는 대한민국의 돼지고기 사랑은 못살던 시대의 유물이겠지만

참으로 다양한 맛을 내는 요리감각에 세계적인 쉐프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마전 읽었던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의 작가 이충걸은 참으로 독특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잡지 편집장으로 패셔니스타로 개성있는 삶을 살면서도 문학에 대한 사랑을 놓지않고 이렇게

늘 글을 쓰고 산다는 것이 그의 프로필에 적힌 이력보다 멋지게 다가온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세상에 나올 무렵 홍세화는 파리의 망명객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고 했다.

비슷하게 성장했던 뒤짱구는 미국에 유학한 후 서울대 교수에 이어 총장이 되어 있었는데 옆짱구인 자신은

선배를 잘못 만나 전태일을 알았고 정치적 난민이 되고 말았다.

그런 그를 파리의 한식당에서 만난 적이 있다. 90년대 초였을 것이다.

마침 그의 첫 책이 나온지 얼마되지 않았던 터라 파리에서 그가 제법 알려져 있던 때였다.

표지에 나온 그의 모습보다 머리숱도 많았고 확실히 젊었던 그의 어깨가 상당히 외로워 보였던 것은

아마도 난민의 고독과 기약없는 회향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고국에 돌아와 이렇게 담담하게 과거를 회상하는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이제 더 이상 외로운 난민이 아닌 대한민국의 주류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못생긴 얼굴때문에 공부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는 서민 교수의 이야기는 늘 그렇지만 참 재미있다.

얼마전 읽은 '기생충 열전'역시 징그러울 것 같은 기생충이 살짝 귀여워졌으니 찬찬히 들여다 보면

귀여운 그의 얼굴만큼이나 재미있는 책을 만드는 감각이 돋보인다.

기생충 학자로 빛을 보기전에 작가로 대성할 수 있는 싹이 보이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닌가.

 

이렇듯 일곱 남자의 각기 다른 삶과 생각을 엿볼수 있는 타박타박 산책길을 걸으며 나눈 담소같은 책이다.

이렇게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무심했던 내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되짚어 보게된다.

글쎄 치열했든 외로웠든 어쨋든 그들은 지금 나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동무이기 때문이다.

다 가보지 못한 길들에 대한 호기심과 부러움들이 조금은 사그라든 것 같이 가볍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는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리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린 사랑을 깨닫고 서른일곱의 미연은 말한다.

전문대학을 나와 사이버대학을 다시 졸업하고 몇 번의 직장을 거치다가 해드헌터가 된 미연은

이십대라는 단어를 음미해보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무엇인가가 올라오는 것같은 그런 20대가 있었다.

누구에게나 20대는 있다. 하지만 지금 서있는 나이가 늘 낯설게 느껴지는건 나 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늘 자신보다 앞서가던 여동생 세연은 기자로 자리잡았지만 단지 서울대를 나왔다는 것이 유일한

빽이었던 남자와 결혼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다. 물론 불행하다는 건 세연이의 시각이 아니다.

이제 다섯살인 아이를 옆집에 맡기고 갓 6개월인 둘째 아이는 아침 저녁으로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사시 시험을 포기한 백수남편의 밥을 해먹이면서 동동 거릴지라도 말이다.

 

제법 값나가는 아파트를 대출금을 끼고 무리하게 구입했지만 이미 많이 오른 것은 미연같은 올드미스에게

큰 위안일 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바로 윗층에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남자가 잘생긴 아들녀석과 예쁜 마누라를

끼고 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신문광고이거나 잡 코리아같은 매체만 있는 줄 았았다.

하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인력시장을 휘두르는 헤드헌터라는 직업이 있는 줄 몰랐다.

미연에게 학벌, 흔히 SKY라는 훈장은 자신의 석세스를 위한 인력들에게는 필수였지만 다리를 놔주고 성공보수를

받는 헤드헌터의 업무에는 하등 상관이 없는 스펙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만나고자 했던 남자들에게 학벌은 중요했던 것일까.

 

S대 출신의 태환은 그런 그녀의 허영을 충족시켜줄만한 남자처럼 보였다.

채식주의자이며 완벽주의자처럼 보이는 태환의 비위를 맞추는 일쯤은 자신이 있어보였다.

거의 그의 직장근처로 찾아가야 하는 데이트도 그랬고 고기를 좋아하지만 채소식단은 선택하는 일쯤이야.

 

 

정경훈이라는 버젓한 이름을 두고도 '흐물'이라 불리는 남자는 멀리 대전에서도 그녀가 부르면 달려오곤

했던 남자였다. 시시한 지방대를 나와 조금은 안락해보이는 공사에 다니는 연하의 그 남자는 미연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너무 편했기에 연하였기에 남자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조금 못생긴 얼굴때문에? 하긴 태환이는 조각처럼 아름다운

남자였지. 하지만 태환에게 미연은 어떤 의미도 아니었음을 나중에야 확인하게 된다.

 

무작정 대학로로 나와달라는 태환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고 흐물을 불러 맥주를 마시던 밤.

미연은 태환에게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었다. 뒤에 남겨진 흐물은 서둘러 태환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의 등 뒤에 이렇게 외쳤지.

'기다릴게.'

 

'이미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다음,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받아들이고 다시 걸어가는 것.' -282p

 

헤드헌터라는 직업과 미연의 로맨스는 우리가 분명 보이지만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아니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들에 대한 냉정하지만 어리석은 '시선'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저 한 사람의 이력서에 기술되는 몇 줄의 스펙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듯이 미연이 만난 남자들의

스펙만 확인했던 시선은 직업이 주는 재앙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부르기만 하면 달려와주던 남자의 사랑을 진작 알아보았더라면 미연의 미래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기가막힌 사연이 있었어도 아침이면 시치미를 떼고 화장발처럼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숨어있는 풍속도를 생생하게 살려낸 작가의 시선이 신선하다.

작가는 혹시 헤드헌터였던가. 아님 주변에 그런 지인이 있던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생생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엮어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미연의 부실했던 사랑이 조금은 안타깝지만 그러니 어쩌랴. 그것도 인생이니

감내할밖에. 언제든지 다시 일어나 받아들이고 다시 걸어가는 것...그게 인생인걸.

그동안의 한겨례문학상 수상작에 비해 다소 가벼운 작품이어서 놀랐지만 그러니 어쩌랴.

이게 현실이고 세태이고 우리네 참 모습인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