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단할 것, 빠를 것, 맛있을 것 - 내 부엌의 비밀병기가 될 요리책
윤정심 지음 / 소풍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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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부터가 논리정연하다.

* 초간단할 것

* 빠를 것

* 맛있을 것

뭐 그중 제일 중요한 건 '맛있을 것'이겠지만 다들 바쁜 시대에는 빠르고 간단한 요리비법도

중요하다. 18년 주부의 이 책은 말하자면 살림터에서 이기는 비법을 적은 요리계의 '손자병법'쯤 되겠다.

 

인생을 살다보면 대부분의 똑똑한 사람들은 어디다 데려다 놓아도 제몫이상을 하는 것을 보게된다.

전쟁터라면 유비같은 장수가 되었을 것이고 시장에서 장사를 해도 기가막힌 상술을 발휘할 사람들이

있다. 살림만 하는 주부들은 때로 '주부우울증'에 걸릴만큼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부족하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처럼 '살림살이'에 달인이 되고 '요리하고','찍고','쓰다'보면 이렇게 멋진 요리책을 내는

'대가'로 거듭날 수 있음에 오늘 하루 싱크대앞에서 동동거리고 있음을 지겨워하지 말아야겠다.

 

 

요리를 잘 못하는 나는 서점에 가면 요리책이 있는 곳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곤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대로 된 요리비법을 전수 받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지곤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듣도 보도 못한 요리와 소스들이 등장하고 해야할 숙제가 쌓이는 것같은

불안함이 엄습한다. 그래서 간단하고 빠르다는 이 책이 솔깃하게 다가온다.

 

 

우선 간단하고 빠르게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냉동실에 키트를 많이 만들어 놓는 것이 비법이란다.

고기고명에서부터 온갖 육수에 자주 먹는 찌개키트까지 그저 마늘키트나 만들어 놓았던 나로서는

'달걀말이용 채소와 햄 키트'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데친 시금치와 당근, 햄등의 재료를 잘게 썰어 얼려놓으면 기가막힌 달걀말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키트들을 쟁여놓자니 정체불명의 재료들이 들어가 자리잡고 나올줄을 모르는 냉동고가 부족하겠다.

자주 해먹는 닭고기도 가끔 비린내가 나길래 냉동고에 오래있어 그러려니 했는데 이 잡냄새를 우유가 잡아준단다.

이런 팁이 있었다니!

 

냉동식품을 자주 이용하는 내게 위안이 되는 조언도 있다.

시판제품을 가끔 이용하는 방법도 좋은 살림꾼이라니..조금 떳떳해져도 좋은건가?

물론 고스란히 데워 내놓는 성의없는 주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조금 더 참신하게 변신시키는 방법이 있으니

나도 저자처럼 인스턴트를 홈메이드로 변신시켜볼 일이다.

 

 

전해줄 것이 많으니 당연히 묵직한 요리책, 많이 쓰는 샐러드 소스와 각종 양념 레시피만

골라놓은 포켓북이 있어 내용은 튼실하지만 무게는 가벼운 특별 요리책인 셈이다.

이 정도의 부록이라면 냉장고옆에 붙여놓고 수시로 보기에도 편하겠다.

물론 이 책으로 대단한 요리사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 우리 식탁에는

그동안 엄두가 나지 않아 시도조차 못했던 요리들이 선을 보일 것 같다.

가족들이여! 맛있는 요리를 자주 먹고 싶다면 제발 맛있다고 말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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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1
EBS 역사채널ⓔ.국사편찬위원회 기획 / 북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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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조선왕조 최고의 폭군으로 일컬어지는 연산군이 이런 말을 남겼다는 것이 놀랍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될만큼 인정받은 '조선왕조실록'이 절대 권력을 지닌

왕조차도 볼 수 없을만큼 사실적인데다 자신이 어떤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으며 나라를

어떻게 통치했는지 낱낱이 기록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후세에 자신의 폭정이 어떤 평가를

받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이런 기록을 남기는 사관은 청렴한 신분의 사람인데다 왕으로부터도 독립적인 지위를

가졌다는 사실은 왕치주의 국가에서는 보기드문 제도임에는 분명하다.

 

 

'역사채널e'라는 프로그램이 화면에 뜨면서 자막으로 내보내는 정보들은 역사를

싫어하고 불편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도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조차도 후세의 평가를 두려워할만큼 '역사'란 현실의 또다른

잣대이기 때문이다.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눈길을 멈췄던 사람들도 '과거'에 '미래'의

모습이 녹아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하나의 장면을 만들기 위해 방송팀들이 찾아낸 정보들은 어마어마 했다.

수많은 저서와 학자들을 찾아보고 심지어 역사의 현장까지 취재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담긴 과거의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귀하고 놓칠 수 없는 것들 뿐이다.

 

특히 조국인 일본에서는 역적이었으나 조선에서는 충신이었던 사가야, 조선이름 김충선의

기록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자신의 귀화가 가족들의 멸문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조선의 백성이 되고자 했던 그의 선(善)함을 받을만큼 조선은 대단한 나라였던가.

 

그후 일제의 탄압으로 이어지는 일본과의 악연은 철저한 문화말살로 나타났으니 선대의

패배를 후대에 앙갚음으로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된 조선의 사진을 그저 희한한

것으로만 봤더니 미개국임을 연출하기 위한 술수가 숨어있다니 참으로 치사한 일본이 아니던가.

하긴 땅을 점령한다는 것보다 문화를 점령한다는 것이 더 큰 치욕임을 그들이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성군인 세종이 어렵게 찾은 '시간'이 여전히 일본의 도쿄의 표준시간을 쓰고 있다니

지하에 누운 세종이 통탄을 금치 못하겠다. 이런 사실도 이 책을 읽기전까지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서만 일본과 얽힌 사건이 꽤 된다. 오래전부터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악연으로 만난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다시 되살아나는 일본의 우경화 정책이 껄끄러운 요즘

지나간 역사의 회귀가 두려울 뿐이다.

 

역사란 단순히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나 기록뿐만이 아니다.

현대의 지구촌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구조가 더 치밀한 시대가 되었다.

나비효과처럼 지구 저편의 바람 한점이 태풍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과거의 일들이 현대에 미치는 영향이 바로 이와같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기억하고 거울처럼 들여다

봐야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들어서는 시험장에 수험생들은 닥칠일이 막막할 것이다.

하지만 꼼꼼히 대비하고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웬만한 어려운 문제들은 해결할 능력을 갖춘 셈이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e'의 퍼즐조각같은 시각들이 더 소중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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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지 않는 비 - 제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개정판 문학동네 청소년 17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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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잊을 수가 없어요." -97p

기억이란 것들은 때로 현실보다 더 선명하게 들러 붙어 삶을 파괴하기도 한다.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비가 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해요." -100p

여행길에서 마주친 할머니의 말에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말이 함축되어 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무작정 짐을 꾸리는 열아홉살의 남자를 소년으로 불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꿈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나가는 행인A'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 시대에 누가봐도 별것 아닌

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소년의 꿈이 하찮아 보인다고 비웃을 수가 없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내곁을 지나치는 그렇고 그렇게 보이는 숱한 평범한 사람들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의 꿈이 얼마나 이루기 힘든 일인지를 알게된다.

 

세간살이라고 부를 것도 없는 초라한 집을 떠나 그가 당도하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그의 곁을 맴도는 형과 함께 시작된 여행길에서 그들은 줄기차게 쏟아지는 비를 만나게 된다.

누군가는 비오는 날이 운치가 있어 좋다고도 했고 심지어 급작스럽게 삶을 놓친 그의 어머니도 비오는 날이

좋다고 했었다.

하지만 여행자들에게 비란 뽀송한 옷과 신발에 감겨드는 축축하고 기분나쁜 방해꾼과 같다.

그것도 준비해둔 우산이 없다면 더욱 끔찍한 여정이 될 것이다.

 

 

도무지 열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버지와 비루한 삶을 박차고 나와 그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너무 비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엉성한 로커도 그러했고 첫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초등학교때 짝꿍인

19번의 삶도 그러했다.  어머니의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만난 여자는 잘 참기만 하면 뭐든

이룰 것이란 믿었던 삶이 무너져 내리는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미친듯이 헤매는 사람이었고 자칭

목사라는 사람은 전직 조폭이었다고 했다.

도대체 세상 사람들은 왜 모두 평범치 않은 것인지 여행내내 그를 쫓아다니는 비만큼이나 지리멸멸하다.

 

공중전화앞에서서 자신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첫사랑에게 전화를 걸고 텅빈 집으로 전화를 걸어보는

것은 지나쳐온 시간과 사람들에게 대한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싫어도 미워도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했던 사람들과 시간들에 대한 아련함은 차마 수염이라고 부르지도

못할 솜털을 깎기 위해 가방속에 챙겨온 면도기만큼이나 서글프다.

남들보다 조금은 덜 성숙한 몸뚱이를 가진 소년이지만 언젠가 억세게 솟아나 귀찮아질 수염을 기다리는 것처럼

삶은 어차피 단단해질 것이고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그가 기억하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지워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특히 꼭 지우고픈 기억같은 것일 수록 더욱 더.

하지만 무덤덤하게 내뱉었던 아버지의 말처럼,

'영원히 계속되는 비는 없다'

그칠 수 밖에 없는 비임을 알기에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했더라도, 살이 구부러진 우산을 비집고 들이치는

빗줄기도 견딜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세상을 버리고 죽음을 선택한 이들을 지켜봐야 했던 이들이 꼭 묻고 싶었던 말.

"왜, 왜 그렇게 삶을 버려야만 했어? 남겨진 우리같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시간들을 생각해보기는 한거야?"

아직 겨울의 찬바람이 머물고 있는 요즘, 시원스런 비를 기다리는 것은 오랫동안 묵은 갈증 때문이다.

그치지 않을 것같은 비가 그치듯 멈출 수 없었던 우리들의 무거운 발걸음도 언젠가는 멈춰야 할 시간이 올 것이다.

그 사이 우리는 그저 젖은 신발과 양말을 드라이어기에 말려가면서라도 그렇게 씩씩하게 걸어야 하는거야.

그게 삶이야. 비에 젖는게 싫다고 언제까지나 숨어있을 수는 없잖아.

언젠가 한국어로 씌어진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가 될 수 있을것이란 평가처럼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이

저자의 앞날에 디딤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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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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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인 후지슌은 동급생 3명의 가혹행위에 견디다 못해 자신의 집마당의 감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이른바 왕따였던 후지슌의 죽음은 그 후 남겨진 사람들에게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된다.

 

과연 후지슌을 죽인 것은 세명의 가해자일 뿐일까?

제노비아증후군이라고 부르는 방관자들은 과연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우리는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를 비난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과연 그 상황에서

피해자를 옹호하고 지켜줄 만한 용기가 있었을지를 묻게 된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수히 많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교우에게 왕따 당하고 학교 옥상으로 향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이런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었고 현재진행형의 범죄이지만 우리는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구하거나

미래의 가해자들을 일깨울 방법을 갖고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삶을 마감한 후지슌도 안타깝지만 남은 가족들과 친구들의 아픔은 또 얼마나

클것인가. 이런 기억들은 평범한 추억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후지슌을 자살로 몰고간 아이들을 원망도 증오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용서도 하지 않는다는 후지슌의

아버지 하루오의 대답이 가슴을 친다. "앞으로도 그럴일은 없습니다, 계속."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74p

 

20여년의 아픔을 2주만에 써내려갈 정도로 몰입했다는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폭력, 그리고 그로 인한 상처와 죽음에의 선택, 또한 남은 자들이 치러야 할 댓가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또한 후지슌과 같은 아이들이 더 나오기전에 그리고 미래의 가해자들을 위해 남은자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자랄때는 심각할만큼의 왕따문제는 없었다.

이제 우리아이가 자라고 있는 이시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때문에 가슴이 미어진다.

이 작품이 단순한 소설이 될 수 없음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숙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안전한가. 그리고 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

평생 내려놓을 수 없는 십자가를 지기 전에 분명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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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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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 쓸모없는 물건, 폐물, 쓰레기

제목의 정의는 이러했다.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여성성을 지향하는 사람인 보텀(bottom]인 성재는

치과의사인 민수를 사랑한다. 하지만 민수는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유부남이 되었다.

몇번의 이별을 했지만 결국 부메랑처럼 다시 민수에게 향하는 성재.

일주일에 두번 정도만 찾아오는 아버지와 노래방 도우미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난

이른 바 첩의 자식인 성재는 화장품 판매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꾼다.

하지만 빽도 없고 스펙도 부족한 그를 채용하겠다는 곳은 없다.

 

 

술도 좋아하지 않고 유일하게 화장을 하는 것을 즐기는 성재는 자신의 얼굴을 짙은 화장으로

감춰야 안심이 된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동성애자라서?

아님 매일 술에 취해 들어와 구토를 하는 도우미 엄마를 두어서?

이태원 골목에 자리잡은 동성애자 클럽을 찾아 물뽕을 하고 충무로 극장의 어둠속에서

낯선 남자들과 섹스를 하는 자신이 싫어서?

 

'스스로의 얼굴에 화장을 하는 내 얼굴은 자꾸만 결연해졌고, 단단해졌고, 두꺼워졌다.

화장을 하고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조금쯤 더, 나를 보여줄 수 있었고, 똑바로 설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164p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따끔한 훈계나 손가락질이 아니었다. 그것이 설사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해도 나는 진자 사실을 덮어 버리는 가짜 위안이 좋았다.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고 잘되지 않았지만

그저 괜찮다고, 참 잘됐다고 말해 주는 거짓말, 그 진심 어린 거짓말이 필요했다.' -94p

 

여린 사람이었다. 성재는.

랏슈를 흡입하고 야한 동영상을 보면서 수음을 해야하는 몸뚱이를 지녔지만 그는 진정으로 살고 싶어했다.

정말로 두렵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죽어도 도망쳐지지 않는 현실과 더럽고 구질구질한 생애가 두렵고

무서워 이가 덜덜 떨리긴 하지만 진심으로 살고 싶었다고 했다.

허리띠를 풀어 목을 메는 순간에 그는 이 사실을 깨닫는다.

이미 현실을 피해 죽어간 친구들도 있었지만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긴 하지만

그저 제대로 된 가정에서 태어나 엄마와 아버지가 같이 사는 그런 소망을 가졌던 미숙아였다.

 

읽는내내 바닷물을 마셔 더 애타는 목마름을 느끼는 것처럼 목이 말랐다.

몸과는 다른 성을 지녀야하는 성재의 뒤를 쫒다보면 외로움이 확 밀려들어왔다.

선택하지 못한 삶이었는데 그가 짊어진 굴레가 너무 무거웠다.

그저 위장된 삶을 살기로 결정한 성재의 남자 민수역시 화려한 치장속에 숨겨진 곰팡이처럼 어두웠다.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결국 마이너이고 이들은 루저일까.

'정크'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아니, 그들에게 '정크'라는 낙인을 새긴 것은 세상이었다.

여전히 이태원과 서빙고의 뒷골목을 헤매고 있을 수많은 '성재'들의 이 꼬리표를 떼어줘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그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어둠속에 서식하는 아픈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렇게 그려낼 수 있었는지 작가의 역량이 놀랍게 다가온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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