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부르는 만남 - 이해인 수녀, 혜민 스님, 김선우 시인… 열여덟 멘토의 울림 깊은 인생 이야기, 그리고 법정 스님 가르침
변택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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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열반에 드신지 어느새 3년이 되었다.

스님의 명저인 '무소유'의 표본을 다비식에서 몸소 보여주신 스님의 청빈한 삶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었다.

나와 같은 심정을 지닌 열여덟명의 그리움을 따뜻하게 담아낸 책이다.

 

 

불가에 귀의한 스님이니 당연히 부처의 말을 따르고 전하는 소명을 다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일테지만 법정이 만나고 소통한 사람들을 보면 종교의 벽도 귀천의 벽도 없는

사통팔달의 품이 그대로 느껴진다.

천주교의 이해인수녀님과의 만남은 종교와 남녀의 차이를 뛰어넘어 문학의 동반자로

혹은 도반의 동반자로 서로를 감싸는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스님에게 도넛을 드렸더니 '증거인멸 합시다'그러면서 드시더라는 말씀에서는 개구장이들의

작당인듯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 그게 바로 법정의 모습이셨구나.

편지를 보낸 수녀님들께 일일이 답장을 써주시기도 하고 기도할 때허리가 아프니 너무 고개를 숙이지

말라는 말씀에는 같은 도반인으로서의 안스러운 마음과 인정이 그대로 느껴지지 않는가.

 

 

지극한 마음은 만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일까.

시인 김선우는 한번도 뵌적은 없었지만 '어떤 귀한 분이 계시다'라는 생각만으로도 견딜 수 있더라고 했다.

그냥 그분이 이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스님을 추억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중들에게 꽤 알려진 사람이거나 존재감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스님을 '귀한 분'으로 추억한다는 것은 이미 열반에 드셨음에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성철스님을 만나기 위해 삼천배를 하는 것을 보고 쓴소리를 하고야 마는 올곧음도 나는 참 좋다.

우리는 그저 유명하니까, 존경받는 분이니까..하고 하고 싶은 소리도 삼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후 자신이 쓴 책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서점에 뛰어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제 스님이 남기신 책으로라도 만나야 하기에.

저마다 고운 빚깔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 듣는 스님의 이야기에 왈칵 스님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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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 사람 찾기
백현주 지음 / 순정아이북스(태경)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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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야무진 인상을 가진 여자 '백현주'를 '기자'가 아닌 '사람'으로 만날 기회였다.

'기자'와 '방송인'이란 타이틀로 살아가는 이 여자 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참다운 사람과 사람다운 이웃을 만나고 싶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계속되는 망치질을 통해 호미가 더욱 튼튼하고 쓸모 있는 물건으로 거듭나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물론, 갖은 연단과 고난을 통해 꺾이고 좌절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더욱

강건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나는 사람도 있다.(중략)고난이 심할수록 그런 사람은 더욱 단단해진다.'

-50p

 

 

그녀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특히 스타라고 불리는 사람들 속에서도 우연히 만들어진 스타가 없다고 한다.

가난했거나 무명생활이 길었거나, 하지만 이렇게 고난으로 단련되 스타일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스타로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비퍼(before)를 짐작할 수 없을만큼 성형을 해도 마음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스타의 생명은 길수가 없다.

 

한때는 감성적인 문학소녀이기도 했다는 백기자의 이야기 속에는 진실한 사람되기에 대한 해답이 숨어있다.

늙어가는 노모를 보며 가슴아파하는 딸의 모습에서는 바쁘다는 이유로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하는 애틋함이

느껴진다.

어쩔수 없이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혼자 살아가는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혼자'는 고립된 삶으로서의 혼자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혼자라며 꿋꿋이 멋지게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어쩌면 너무 혼자 멋지게 살아갈 수 있기에 '혼자'를 면하기가 싫은게 아닐까 싶다.

그녀를 응원하고 믿어주는 지인들이 많아서 두주먹 불끈쥐고 버티게 된다는데..

그만 믿어주고 그만 응원해주면 부쩍 외로워져서 '짝'을 찾게 되지 않을까하는 재미있는 상상이 들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궁합'이 맞는 짝을 찾는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뭐 '혼자' 제대로 잘 살고 있으니 굳이 '짝'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인생을 살려면 진짜 사람을 찾아라!'

부제목속에 글귀처럼 그녀의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 진짜 사람도 많겠지만 진짜 '남자'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행복한 인생과 보물찾기의 길에 손을 잡아주는 멋진 남자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

여전히 방송 카메라 앞에서는 완벽한 방송을 위해 긴장하고 단순히 '특종'을 찾는 기자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내면까지도 들여다보는 그녀의 눈과 마음이 아름답다.

여성이 사회의 일원으로, 거기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10년, 20년후에도 톡톡튀는 발랄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만 같다.

사람속 '사람'찾기는 그녀에게 영원한 숙제가 될 것이다. 문득 나도 진짜 '사람'인지 되돌아보게되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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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즌우드 바이블
바버라 킹솔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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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미국 조지아주 침례교 목사인 네이선 프라이스는 아내인 올리애너와 15살인 맏딸 레이첼, 쌍둥이 자매 리아와 반신불수와 실어증 증세가 있는 에이다, 5살의 막내딸 루스 메이를 데리고 아프리카 콩고로 1년 예정의 선교활동을 떠난다.

그들은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을 가능한 최대로 챙겨가지만 열악한 콩고의 생활에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게된다.

지독한 홍수와 가뭄이 교차하고 온갖 벌레와 해충, 바이러스가 난무하는 환경에 던져진 가족들은 냉철한 목사인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낯선 문화와 빈곤한 생활에지쳐간다.

 

벨기에령이었던 콩고는 아프리카에 몰아친 독립열풍에 힘입어 독립국이 되지만 불안한 정치와 폭력에 휩싸이게 된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였던 레이첼은 모국의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과 열악한 환경에 진저리를 내지만 맏딸로서의

역활은 생각지 않는다. 쌍둥이로 태어난 리아는 영재반에 속할만큼 우수한 두뇌를 자랑하지만 미숙아로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에이다는

단지부자연스런 몸이 문제일 뿐 뛰어난 두뇌와 감성을 지닌 아이로 성장한다.

리아와 에이다는 목사인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했지만 막내동생인 루스 메이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고 결국 엄마인 올리애너의 결정을 

따라 콩고를 떠나려고 한다.

부족장의 아내가 될뻔했던 레이첼은 비행기 조종사인 액셀루트와 거짓약혼을 하고 결국 루스 메이의 죽음 이후 그를 따라 남아프카공화국으로 도망치고 만다.

 

 

'예수는 뱅갈라'라고 외치는 네이선의 설교를 콩고인들은 '방갈라'즉 '독나무'라고 알아듣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포이즌우드'는 네이선이 이루고자한 복음을 의미한다. 아내를 사랑하고 네명의딸을 둔 네이선은 실제로 아내와의 섹스를 부정하게 여기거나 선교활동에 가족들의 존재를 가벼이 여기는 모습으로 종교인의 맹목을 보여준다.

사실 모든 식민의 시작이 선교였음을 알고 있다. 이 소성에서네이선의 종교에 대한 맹목은 미국이란 나라가종교를 통해 미개국에 어떻게

개입되고 존재감을 심어가는지를 보여준다.

불행하게 던져진 가족들은 루스 메이의죽음으로 자신들이 가야할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그 소용돌이의 와중에 엄마 올리애너는 쌍둥이중 장애를 지닌 에이다를 선택하여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상실과 불완전의 존재였던 에이다가 장애를 이겨내고 의사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상처를 치유하고 무너진 인간성을 회복해나가는 그 시기의 미국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쌍둥이중 영재라고 여겨졌던 리아는 콩고인인 아나톨을 선택하여 결혼하고 그후 가해지는 폭력과 억압을 같이 극복해가는 인물로 설정하여 마치 미국의 마지막 양심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태되거나 잠식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몇번의 결혼으로 자신이원하는 부유한 삶을 거머쥔 레이첼은 정의와 부도덕의 경계선에 선 영악한 인간의 상징일 수도 있다.

선하고 순수한 루스 메이와 온벽과 상실의 두얼굴을 지닌 쌍둥이 자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삶에만 열중하는 레이첼의 모습은 우리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을 대표하며 네이선의 독선과 이기는 그 시절 미국의 국가관을 연상시킨다.

5~60년대의 미국의 모습이 이 작품으로 잘 표현되어 있어 미국의 교과서에도 소개될 만큼 우수한 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결국 어떤 식으로든 아프리카에 몸과 영혼을 내 주었다. (중략)우리는 제각기 아프리카의 흙에 우리의 가슴을

묻었다. 내 가족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가슴을 파내 흙을 털고 그것을 다시 빛으로 

가져올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580p

 

 

다행히 작가는 아프리카의 남자를 선택하여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리아를 통해 희망의 불씨를 남겨 놓았다.

그것도 조국인 콩고에게 정치적인 박해를 받는 의지의 인물 아나톨과 그 모든것을 함께 견디는 인물로 설정된 리아를 통해서 말이다.

영악함과 비겁함에 타협하지않고 갈색피부를 가진 아이들을 위해 기저귀를 삶는 의지의 여인 리아는 문명의 이기심에 물든 야만인들에게

양심을 묻는 진정한 바이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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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와 미소시루 - 떠난 그녀와 남겨진 남자 그리고 다섯 살 하나
야스타케 싱고.치에.하나 지음, 최윤영 옮김 / 부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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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는 늦은 나이에 풋풋한 스물 다섯의 치에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오래도록 행복하기를 바랬지만 불행하게도 치에는 유방암에 걸리고 만다.

암이라는 이유로 집안의 반대가 심했지만 이를 무릅쓰고 결혼한 야스에 치에는

이후 8년동안 항암치료와 재발의 시간을 겪게되고 그 와중에 사랑하는 딸 하나늘 얻게 된다.

치에는 투병생활중에 '먹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소중한 딸인 하나에게

건강한 삶의 방식들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하루 하루를 뜨겁게 살아간다.

 

 

 

 

하지만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고 만 치에!

남겨진 야스와 하나!

이 이야기가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은 실화이기 때문이다.

몇년 전 방송되었던 휴먼다큐 '사랑'에 나왔던 위암 말기의 풀빵엄마가 떠오른다.

장애인의 몸으로 혼자 두 아이를 키우며 어렵게 살아왔건만 위암에 발목잡혀 결국 사랑하는

딸아이의 입학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엄마!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할 하나를 위해 칼 쥐는 법부터 건강한 생활이 기본인 현미밥짓기, 미소국 끓이기를

가르치는 치에의 모정이 눈물겹기만 하다.

한때는 세 가족이 함께 바라봤던 바닷가에 와서 아내와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가슴이 미어진다.

 

 

지금도 야스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치에가 쓴 일기와 블로그를 읽으며 그녀를 그리워한다고 한다.

이제 그만 그녀를 놓아주어도 좋지 않을까.

치에라면 당연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괜찮아요.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행복하게 오래토록 있다가 만나러 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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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 나를 움직인 한마디 세 번째 이야기
곽경택.김용택.성석제 외 지음 / 샘터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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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을 하고 이 세상에 나온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살면서 마주치는 난관들은 모두 낯설고 어렵고 버거워 자칫 포기하고 싶어진다.

이럴 때 누군가 '지금은 서툴러도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토닥거려 준다면 조금쯤은 허술했던

내 인생이 단단해 보이지 않을까.

 

이 세상에 나와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린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각자 자신이 노력하고 인정받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인생 선배 마흔 아홉명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들 역시 평탄하기만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란 것에 위안이 느껴진다.

하물며 그들도 그럴진대 평범하지도 못한 내가 이렇게 서툴게 살아가는 일은 어쩐지 일도 아닌 것만 같다.

하지만 언젠까지 서툴게 살아갈 것인가.

 

 

'못난 내가 미워 숨고만 싶은 날'은 너무도 많았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두가 등을 돌린 것 같을 때도 많았었다.

누군가는 비난했고 누군가는 위로를 건넸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까지 서툰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겨우 스무 살'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서른, 마흔, 쉰의 고개에서도 여전히 서툰 인생을 살고 있다면 분명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

성공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가진 능력이외에도 행운이 함께 하는 것 같다.

어쩌다가 표류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에도 혹은 자신의 가치를 전혀 몰랐던 때에도

운명처럼 그들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 주거나 심지어 혹평의 말로 그들을 일으켜 세웠주었으니 말이다.

위안이든 비난이든 자신의 성공의 키워드로 승화시킨 마흔 아홉명의 안목과 의지가 더욱 돋보이는 이유이다.

설사 그들에게는 약이 되었을 말이 내게는 독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래도 아이처럼 여전히 '서툴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들이 있어 안심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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