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만 - 유인경 기자의 더 생생하게, 즐겁게, 현명하게 살아가는 법
유인경 지음 / 위즈덤경향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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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나이가 들수록 사랑받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덕목이 필요하단다.

오죽하면 '노파심'이란 말이 있을까 싶게 나이가 들면 잔소리가 많아진다.

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이고 잘못된 길을 가는 자식들이나 후배들에게

지적질이라도 해서 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어지는 것도 '노파심'의 증세이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받아들면 저자의 나이를 보게 되었다.

우선 나와 비슷한 연배의 저자라면 고향 까마귀를 만난 것처럼 까닭없이 반갑고

더구나 굵고 짧은 평범한 외모를 지닌 저자라면 형제를 만난 것보다 더 반가웠다.

물론 '유인경기자'는 TV에서도 많이 봐왔고 톡톡튀는 멘트와 유쾌함으로 기억되는

기자였다. 그런 그녀가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해왔으며

나와 비슷하게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 왜이리 반가울까.

특별히 예쁜얼굴도 아니지만 그리 못난 얼굴도 아닌 그녀를 TV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면목을 들여다 보게 되어 다행스럽다.

어차피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우리같은 사람들보다야 날카롭게 들여다봐야 하고

쓴소리도 해야하는 기자일을 하는 사람이라 그녀의 안티팬도 꽤나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명품으로 도배를 하고 지나가도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은 20대보다 덜 주목

받는다는 50대에 들어선 그녀의 당당하고 진솔한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지난 50년간, 남의 꽃밭에 무슨 꽃이 피었나, 어떤 꽃이 더 예쁜가 구경하느라

열등감에 시달리고 내 꽃밭을 못 가꾸다가 이제야 내 꽃밭에 눈을 돌리는 나이가 50세다.' -92p

 

이웃 꽃밭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그저 소박함에 행복해하고 내가 갖지 못한 것보다

가진 것에 더 감사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이 어찌나 부러운지 갱년기의 우울함이 다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묘비명에 '은혜건 원수건 죽어서도 다 갚을게요'라고 쓰면 어떨까 하면서 너스레를 떠는

그녀가 참으로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기자 유인경이든 인간 유인경에게 원수진 인간들은 속으로 뜨끔할 일이지만

사실 그녀는 벌써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도 '용서'를 했단다.

그것이 자신이 행복해지는 일이라 그리고 자신을 단련시켜준 고마운 사람이라는 엉뚱한

반전으로 멋지게 갚아주는 모습은 비루한 나같은 사람은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일이다.

문득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니 꽤 열심히 살아온 것 같다.

여전히 나를 위해서는 비싼 옷 한벌 선뜻 집어들기 어렵지만 그동안 수고한 나를 위해

조금쯤은 보답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펑퍼짐한 뱃살과 자글자글한 주름도 세월의 훈장으로 당당하게 생각하는 그녀의 말이

이렇게 큰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어느 날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조금쯤은 덜어내도 좋겠다 싶어

주위를 둘러보다가  TV드라마를 보는 남편을 보면서 '저 남자도 별로 사용한 기억이 없는데..'

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날만큼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혹시 남편도 나를 '저 여자 별로 사용한 기억이 없네..'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 역시도 불필요한 생각일지 모르나 남의눈에 가시는 보면서 내눈에 들보는 못보는 맹과니는

아닌지 그동안 불평쟁이였던 나를 돌아다 보게 된다.

반평생을 살았고 반평생이 남았다면 지금부터라도 조금 단순하게 더 즐겁게 중년을 즐기고

평화로운 노년을 기다려보는 느긋함을 긍정의 '유인경'에게 한 수 배운 위안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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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쫄깃 - 메가쑈킹과 쫄깃패밀리의 숭구리당당 제주 정착기
메가쇼킹.쫄깃패밀리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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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 쫄깃 말랑 말랑한 마시멜로를 먹는 느낌이다.

'부족을 이루면 부족하지 않다'라는 소제목도 썩 마음에 든다.

외모로만 보면 전혀 부족장답지 않다. 머리나 수염을 좀 깎으면 단정하고

더 젊게 보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 남자 제법 지구를 생각하는 환경주의자란다.

샴푸도 안쓰고 가능하면 일회용품도 안쓰려고 노력한단다.

흠...이 남자 청정지역 제주도에 살 자격은 일단 되는 셈이다.

재작년 제주도곁에 있는 거문도라는 섬에 정착한 나로서는 부족장의 제주도 정착기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누가 제주도를 따뜻하다고 했던가'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곳 거문도역시 제주도와 모든 면이 비슷한 곳이기 때문에 여름의 그 따가운 자외선과

겨울에 뼈속까지 스며드는 바람의 위력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쫄깃센타를 기어이 짓고야 말겠다는 부족들의 의지에 존경의 마음이

절로 생긴다.

SNS에 능한 편이 아니라 메가쇼킹이란 작가를 알지는 못했었다.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고 신나게 놀고 싶은 자기들만의 공간을 만들어보겠다는 첫 발상은

한편으론 기발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철들지 못한 한심한 남자들의 동화같아서 내심 혀를 차기도 했다.

하지만 기어이 '꿈'과 '동화'를 현실에 우뚝 세운 뚝심앞에서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크든 작든 '섬'은 폐쇄된 곳이었고 이른 바 '섬'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텃세'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장벽을 자신의 쫄깃센타의 담을 허물듯 허물어 버린 그들만의 전투력이

너무도 갸륵하다. 일단 순수하고 아름다운 열정을 그곳분들도 꺾지 못한 것이겠지.

 

 

작지만 아늑한 극장과 많은 분들이 기증해준 책들이 가득한 '쫄깃센타'에 기어이 가볼 예정이다.

내가 꿈꾸던..아니 도시의 찌든 인생들이 꿈꾸던 그런 '네버랜드'를 어찌 가보지 않겠는가.

담벼락에 그려진 고래처럼 '쫄깃센타'號를 타고 자유의 세계로 힘차게 나아가고 싶다.

제주도에는 열정과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부족들이 살고 있다.

지나가는 과객들의 허기를 달래줄 먹거리 잔뜩 사들고 한번 쳐들어 가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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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 안도현 아포리즘
안도현 지음 / 도어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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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없이 잎이 지는 것은 지구 반대편 어느곳에서 누군가 울고 있는 거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 내가 서있는 섬을 스치는 광폭한 바람이 누군가의 간절한 그리움이라면 그야말로 메가톤급

그리움일 것이다.

간질 간질한 제목처럼 간질 간질한 그리움들이 묻어나는 아포리즘들이다.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처럼 이 시인은 늘 간절하게 누군가에게 닿고 싶은 모양이다.

그는 첫사랑을 모른다고 했다. 어쩌면 그를 스친 많은 사람들 중에 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언제 어느 때든 그게 바로 첫사랑이라고.

 

 

연어로 유명해진 시인은 물고기의 삶이 궁금하여 집안 어항에 물고기들을 길렀단다.

하지만 오는 동안 죽기도 하고 기르는 동안 죽기도 하여 죄책감에 빠지기도 했다는데..

어느 날 문득 아들의 말처럼 내가 물고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들이 나를 보고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물론 그 녀석들의 시력이 뛰어나다면 충분히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쩝쩝 소리를 내며 밥을 먹는 모습이며 하품을 하거나 끄덕 끄덕 조는 모습까지도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문득 내가 보는 것이 다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가치가 있든 없든 누군가...생명이 있는 뭔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한다.

오히려 CCTV라는 기계앞에 옷깃을 여미게 되면서도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절대적인 어떤 것들이

우리를 지켜본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을까.

 

손주가 남긴 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어머니는 유독 당신 아들 앞에 맛있는 반찬을 갖다 놓으려고 하고

아내는 그걸 보고 샐쭉 토라졌다가는 여섯 살 난 아들 앞으로 반찬을 슬쩍 옮긴다. 고추 달린 아들 둘을 앞에

두고 어머니와 아내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다.' -119p

 

시인의 집 풍경인지 여느 집의 풍경인지 거의 비슷한 모양새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늘 자신에게는 인색하고 자식에게는 퍼주기만 하는 어머니와 깍쟁이 같고 여우같은 아내의 모습을 그린

'어머니와 아내의 차이'에서는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나는 아직 어머니쪽보다는 아내쪽에 가까운 듯하여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무안스럽기도 하다.

 

 

나도 한 때 섬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아니 바다를 사랑한 적이 있었다.

마음이 울적해질라치면 바다로 뛰어가 몇날 며칠 도시를 잊고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렇게 섬에 들어와 살다보니 '제발 폭풍이라도 불어서 배가 뜨지 못했으면..'

하는 시인의 바람이 끔찍하게 들린다.

이 삼일 걸러 주의보가 떨어지고 수시로 뱃길이 끊겨 그야말로 고립된 '섬'이 되어버리면

저절로 자신이 '섬'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얼마나 고독한 일인지..

정말 행복하기만 한 일인지..유독 추운 이 겨울 섬으로 들어앉혀 느끼게 해주고 싶다.

어차피 동경일 때는 아름답지만 현실일때는 냉혹하다는 걸..

시인이여..이 곳은 거문도라는 섬이요. 동백꽃이 몽울이 지는 이 계절에 꼭 한번

들어오소. 글처럼 아름답기만 한 일은 아니외다.

'섬'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며칠은 느낄 것이외다.

 

문을 열기도 전에 소리만으로도 옷깃을 여미게 되는 섬의 칼바람도

분명 어디선가 나를 보고싶어하는 이의 간절한 사랑일 것이라고 나는 아이처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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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접시
다쿠미 츠카사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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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제 막 세상을 향해 날개짓을 하는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을 맛있게 버무려 낸 작품이다.

제목처럼 찬란한 일곱빚깔 무지개의 알록달록한 이야기들이 유쾌하게 그려졌다.

대학지상주의에 사는 우리나라나 일본의 청소년들은 자신의 진로가 당연히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대학은 더 이상 자신의 꿈을 이루는 필수조건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세계적인 불황에 힘들게 대학을 진학하고 졸업한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로 연명하고 있고

꿈과 미래는 어디론가 사라진 시대가 되어 버렸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비전이 없었던 히로는 고등학교 3학년 어느 날 tv를 보다가 '그릇에 담은 것은

나 자신'이라는 셰프 혼마라는 프렌치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의 말에 감화를 받고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부모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지 조리사 전문학교에 입학한 히로는 꽃미남 바람둥이 요스케와 쥐처럼 생긴

얼굴을 한 도시오, 전형적인 모범생 게이고등을 만난다.

 

 

스승인 나시모토교수의 교육이 첨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모범으로 졸업을 하게된

히로는 꿈에 그리던 '셰프 혼마'에 취직을 하게되고 꿈에 그리던 요리사 수업을 받게된다.

하지만 하루 12시간 이상 양파나 당근같은 재료나 다듬는 고단한 견습생활을 견디다 못해

뛰쳐나오고 만다. 

스무 살전에 동정을 떼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히로는 동료였던 에리와 사귀게 되고

조리학교 시절 만났던 자신의 이상형 '미호'를 떠올린다.

 

과연 요리사가 되기 위해 10년이상의 견습기간이 필요한 것일까.

자그마한 카페가 꿈이었던 에리처럼 최고의 요리사보다는 자신있는 요리를 손님에게

내어줄 만큼의 실력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장인정신이 투철한 일본답게 최고의 요리사가 되는 길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나약해진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혹독한 과정을 견딜 수 있을까.

그리고 스무 살 이전에 동정을 떼야한다는 강박은 또 뭐란 말이지.

아주 오래전 분명 내가 지나온 시간들임에도 낯선 그들의 청춘의 빚깔들이 낯설었다.

하지만 그게 지금 이 시대의 젊음이었다.

멋진 메이커의 옷에 유혹을 느끼고 화려한 연애를 꿈꾸고 적당히 쉬어가면서 돈도 많이 벌어

멋지게 살아가는 것.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면서 방황했던 히로는 자신이 만든 요리에 자신의 혼을 담고 싶다던 바람처럼

제자리로 돌아온다. 쭈뼛거리며 다가서지 못하던 미호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역시 이 장면에서도 원칙을 고수하는 장인이면서도 어쩔 수없이 부모의 마음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셰프 혼마의 사랑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니들이 부모의 마음을 알아?

요리사 출신의 작가답게 요리사로 입문하는 인물들의 심리와 꿈을 제대로 그려냈다.

입뿐만 아니라 영혼이 행복해지는 요리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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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박수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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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열 다섯살이나 차이가 나는 남자 진지와 6년째 동거중인 토와코는 아주 오래전 근무했던

회사에서 그를 만났었다.

T건설에 다니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던 그였지만 지금은 퇴직한 후 조그만 회사를

전전하며 꾀죄죄하게 늙어가고 있는 한심한 남자였다.

검은 피부에 작은 키, 땀냄새와 담배냄새가 몸에 밴 지저분한 남자와 함께 산다는 것에

회의를 느낀 토와코는 8년전에 자신을 버리고 떠난 쿠로사키를 잊지 못한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얼굴을 하고 세련된 옷차림의 쿠로사키는 그녀에게 영원한 애인이었고

언제나 다시 만나고픈 사내였다.

하지만 그가 5년전에 실종됐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진지가

쿠로사키를 죽였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된다.

그러던 중 고장난 손목시계 때문에 알게 된 백화점 직원 미즈시마와 불륜에 빠지게 되고

자신을 버리고 떠난 쿠로사키처럼 미즈시마를 잃게 될까봐 집착하게 된다.

 

달콤한 사탕처럼 자신의 귓가에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쿠로사키처럼 미즈시마역시

그녀를 달콤한 말과 섹스로 현혹시키고 토와코는 지겹기만 한 진지와 헤어져 유부남인

마즈시마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꿈을 꾸게 된다.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고 조만간 이혼을 하겠노라는 말로 토와코를 안심시킨 미즈시마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미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몸을 사리게 된다.

 

사랑하기는 커녕 너절하고 한심한 늙은 남자와 살고 있다는 것에 지독한 혐오를 느끼는

토와코는 자신을 사랑했다고 믿었던 쿠로사키와 미즈시마를 동일시하며 묘한 집착감에 빠진다.

언제든지 진지를 떠나 새로운 삶을 꾸리리라 꿈꿨던 토와코는 쿠로사키의 실종을 안 순간부터

진지를 의심하게 되고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한 남자의 실종과 그 실체를 따라가는 미스터리물을 닮았지만 이 소설은 지독한 사랑이야기이다.

누가봐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여자와 찌질한 남자와의 묘한 동거부터 혐오감을 유발하지만

댓가를 바라지 않는 절대적인 남자의 사랑에 점차 가슴이 찌르르 해지는 것을 느낀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잣대로 사랑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는 것일까.

잘생긴 외모와, 재산, 환경..물론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 진지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잃고 초라하게 살아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 아니었다.

쩝쩝거리며 음식을 먹고 화장실을 더럽게 사용하고 누가봐도 한심한 족속인 진지의 삶을 우리는

눈으로만 본 것이었다.

퉁퉁 불어터진 우동국물을 얻어먹고 바나나 하나를 다 먹어보지 못하는 가난을 겪은 소심한 소년의

외로움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했을까.

 

결국 쿠로사키의 죽음뒤에 진실이 밝혀지고 이야기는 큰 반전을 맞는다.

어눌하고 볼품없고 더러운 중늙은이 진지의 마지막 말은 큰 여운이 되어 내 가슴에 남는다.

토와코는 무엇을 잃고 살아온 것일까. 그녀의 가벼운 삶이 오히려 한심해진다.

가슴 깊이 자리한 트라우마의 실체를 보면서 우리가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수많은 진실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은 결국 우리가 진실을 보지 못하고 날려보낸 무수히 소중한

것들에 대한 보고서인 셈이다.

지금 내 곁에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2012년 마지막 날 더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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