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든 당신
김하인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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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등불처럼 삶을 밝혀주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요즘 사람들의 사랑은 간편하게 데워먹는 인스턴트 음식처럼 흔하고 열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긴 내가 하면 로맨스로 남이 하면 스캔들이 되기도 한다는 그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게 해준

감동적인 소설이다.

얼핏 이런 사랑이 있을까 싶을만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통속함마저

느끼게 하지만 실화 소설이기에 가슴속 깊이 절절하게 와 닿는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지방대학을 졸업한 석민은 도시에서 취업을 하려 했지만 지방대출신이라는

편견때문에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집배원이 된다.

하지만 그의 귀향은 병든 노모를 돌보고 싶었던 '사랑'이 더 큰 이유였다.

춘천교대를 나와 초등학교의 교사가 된 선영은 석민이 근무하는 진부로 첫 발령을 받아 대도시의

화려한 삶을 뒤로하고 다부지고 알찬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아름다운 여선생이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 그대로 석민은 우연히 마주친 선영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만다.

가슴앓이를 하던 석민은 가난하고 소심한 자신의 삶을 밀어내고 용감하게 연애편지를 보내게 된다.

'그대없는 세상은 안꼬없는 진빵이요'하는 식의 다소 유치하기도 하고 어설픈 내용이었지만 진심으로

그녀를 원하는 마음은 거짓없이 그녀에게 전달된다.

서로에 대해 잘 몰랐던 두 사람이지만 이렇듯 첫 편지를 보내고 마음을 열었던 것을 보면 맑은 두 영혼끼리

서로를 알아봤던게 아닌가 싶다. 이런 것이 바로 운명일 것이다.

 

 

두 사람은 선영의 엄마와 동생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고 3년을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선영은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이제부터 석민이 첫편지에서 그녀에게 맹세한 것 처럼 극진한 사랑의 행로가 시작된다.

영원히 당신을 놓치 않겠다는 맹세.  상대의 마음을 잡기 위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이 맹세가

진심이었음을 석민은 감동스럽게 보여준다.

중환자실에서 뇌사 직전의 상황에 있는선영을 씻기고 주무르고 끊임없이 사랑의 고백을 하면서도

한 순간도 그녀가 삶을 놓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던 석민은 선영의 뱃속에 자신의 아이가 자람을

알게된다. 뇌사에 가까운 환자의 경우 아이를 출산한다는 것은 산모의 목숨을 담보하는 일이라 했다.

두 생명중에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살면서 항상 어느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나는 과연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내 아이를 선택할 것인가.

기적이 있기 때문에 기적이란 말이 생겼다고 한다. 석민의 지극한 사랑은 기적을

이루고 잠이 들었던 선영을 일으키고야 만다.

이런 사랑은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나는 이제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어진 사람인 모양이다.

'소설 같은 사랑'을 이룬 석민과 선영의 아름다운 여정이 잠들었던 내 감성을 깨웠는지

자꾸 눈앞이 흐려지고 왈칵 슬픔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과연 이들의 사랑이 어떤 기적을

이루어냈을지 궁금하여 끝까지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석민은 비바람을 무릅쓰고 산골을 누비며 집배원의 일을 할 것이고 먼 길에서

돌아온 선영은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키우며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 어딘가에 이런 사랑이 있어 사랑 건망증에 걸린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불행한 사고로 삶을 놓칠 뻔한 선영이 한 없이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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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 당신의 반대편에서 415일
변종모 지음 / 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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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고 사막에 뜬 별처럼 고독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속에 뻥 뚫린 구멍사이로 찬 바람이 오가는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돌풍때문에 지붕이 날아가고 뿌연 황사까지 먼길을 달려왔다는 소식을 들어서였을까.

 

 

'여행이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생각만으로 이미 시작이다. 때로는 과거의 여행을 추억할 수

있는 일 또한 추억하는 동안은 현재 진행형이다.....은밀히 말하면, 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하게 되는 것이 여행이다...여행을 하지 않고서 여행할 수 있는 것이 여행이고,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하듯 살지 않는 것 또한 여행이다. 여행의 반대말은 삶의 끝. 그러니 당신은 사는 동안 여행자.'

-본문중에서-

 

하긴 우린 어느 별에서 지구로 구경온 여행객이란 말도 있고 인생역시 지금 이시간을 잠시 머물다가는

객이란 말도 있으니 그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우린 모두 지금 같은 시간을 여행하는 먼 우주에서 온

여행객이라.

그러면서도 늘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방랑객이기도 하다.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떠나고 싶다고 모두 떠나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처럼 이렇게 훌쩍 일년이상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집세든 연금이든 차곡차곡 나오는 곳이 있어 돈걱정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거나...

딸린 식구들이 자신의 존재를 버거워하여 어디론가 좀 가주기를 바란다거나..

전생으로 부터 유전한 집시의 기운이 넘쳐 어디 한군데에 엉덩이를 붙박아 살 수 없다거나...해야할 것이다.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힘으로 이렇게 세상을 떠돌고 있을까.

유명 관광지를 깃발따라 움직이는 단체여행객도 아니고 마땅히 쉴만한 숙소조차 없었다는 이란이며 그루지아,

아르메니아라니..모스크의 마당에서 추위와 모기에게 제몸을 내주면서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남자의 속마음이

내내 궁금했다. 때때로 '너'라거나 '당신'이라고 표현했던 대상은 누구였을까.

그 길 끝에 만난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짐을 꾸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따듯하고 안락한 침대를 포기하고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떠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때로는 부럽고 때로는 어리석게 느껴진다.

 

 

고작 그에게 감동을 주었던 사람들은 코흘리개 엄마이거나 선한 눈망울을 가진 어린아이이거나

따듯한 차한잔을 나누어 주었던 가난한 노동자들이었다니 그가 사람을 짚어내는 저울은 소박하고

눈높이는 겸손하다고 느껴진다.

하긴 그런 감성을 지닌 그 이기에 책에 실린 사진들은 그가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더 만날일이

없었을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의 체취가 물씬 실려있다.

한결같이 분칠하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들이 느껴진다.

안개처럼 뿌옇고 쓸쓸하고 처연한 그의 글보다 사진이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대부분 같은 방향으로 함께 흘러간다는 동지 의식에 사로잡혀 서로에게 살가운 인사를 하고

굳이 나를 발설하지 않아도 기분좋았다는 그의 여정에 동참한 내내 모두가 사는게 다 그만그만하고

나나 당신이나 사랑하는 부모도, 형제도, 연인도, 모두가 인생의 아주 짧은 부분만 같이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너무 자주 인식시켜 주어서 고독했다. 그리고 나 역시 잠시 다녀가는 여행자라는 것을

당신이 알게 해주어서 사는 동안 내가 가보지 못할 '그 곳'들이 너무 아쉬워서 한숨지어야 했다.

그래도 당신, 다음 여정에 또 불러주기를...이렇게라도 '그 곳'들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주기를..

부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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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밍 제인 에어
실라 콜러 지음, 이영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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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시절 그 뜨겁던 질풍노도의 시간을 견디게 해준 소설중에 압권은 '제인 에어'였다.

어려서 부모을 잃고 외숙부의 집에서 살게 된 제인 에어가 어려움을 이기고 결국 사랑을

쟁취하는 내용을 보면서 영원히 걷히지 않을 것 같았던 내 어린시절의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 후 음울하고 비감한 소설인 '폭풍의 언덕'을 읽으면서도 두 작가가 자매라는 건 한참후에

알게되었다. 재능도 유전이 되는 것인지 후에 두 작품 모두 명작으로 남게 되었다.

영국의 소설들은 대부분 날씨의 영향인지 조금 우울하고 가라앉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근대화가 이루어지던 시절의 영국의 모습이 그려진 '제인 에어'는 바로 작가인 샬롯 브론테의

실제가 아닐까 싶다. 도덕적이고 경직된 목사의 딸로 태어나 조금은 억압된듯한 삶을 살았을

샬롯이 제이 에어를 통해 어두운 삶에서 벗어나 사랑을 쟁취하는 모습으로 투영시킨것은 아닐까.

이 책을 쓴 작가 실라 콜러는 샬롯 브론테를 추적한 전기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브론테 자매들의

작품을 섭렵하면서 작품 속에 녹아있는 브론테 자매들의 감정과 삶의 흐름들을 잘 유추해 내었다.

 

 

샬롯은 자신이 다녔던 학교의 교장이었던 유부남 교수를 사랑했지만 이루어질 수 사랑은

결국 제인 에어의 로체스터로 탄생되었고 소설속에서나마 사랑을 이룸으로써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알콜과 마약중독이었던 남동생과 작가의 길을 같이한 여동생들과는 사랑과 경쟁이 오가는 미묘한

관계였을 것이다. 피를 나눈 자매였지만 작가로서는 서로를 견줄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 점

때문에 후에 우리는 브론테 자매들의 명작을 읽어볼 수 있는 영광을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억눌렸던 욕망과 이룰 수 없었던 사랑, 그리고 밉지만 버릴 수 없었던 애증의 사람들에 대한

갈망을 작품에 투영시킴으로써 샬롯은 외로운 삶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샬롯은 그들을 자신의 작품속에 등장시킴으로써 가슴에 고였던 슬픔들을 걷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 형제들에 대한 샬롯의 마음과 삶의 여정들이 이 작품을 통해 충분히 표현된 것 같다.

마치 작가 자신이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샬롯 자신이 되어 말하고 있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사랑했던 가족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늦게서야 자신의 손을 붙잡아 준 남자와 결혼하지만

불과 9개월여 만에 임신한 상태로 세상을 떠난 샬롯의 일생이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하긴 긴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갈망들이 명작을 탄생시킨 거름이 되었겠지만 한 여자의 일생으로

본다면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샬롯을 단박에 유명작가로 만들어준 '제인 에어'를 다시한번 꺼내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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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한의학 - 매일매일 쉽게 따라하는 자연주의 건강법
김형찬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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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루소는 말했었다.

젊어서 건강의 소중함을 모를 때에는 거칠고 못생긴 음식들 보다는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을 탐했고 가사일을 대신하는 온갖 기기들의 도움을 받아 청소하고

밥하고 이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슬슬 건강식품들이 눈이 들어오고 하루가 다르게 삐걱거리는 몸뚱이의

변화를 느끼고 보니 비로소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몸은 우주의 미니어처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도 자각하게 되었다.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우주의 기와 소통하고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음을 알게되면서

자연스러운 것이 우주의 순환법칙에 가장 근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태양의 에너지와 땅의 기운을 받아 들에서 자란 나물들이 좋아지고 가능하면 인공의 맛이

덜한 음식을 찾게 되면서 나이가 들었음을 절감하고 아프기전에 면역력을 높여야겠다고

다짐하지만 기존의 습관을 고치기는 쉬운일이 아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더니 달콤하고 편리한 일상을 조금쯤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허약한

도시인으로서는 결심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약한 현대인에게 어렵지 않게 자연스런 삶으로 인도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인듯하다.

의료정보의 남용과 오용이 또다른 위험요소가 되는 요즘 원초적으로 내 몸이 갖고 있는 자연스러움으로

돌아가는 길을 어렵지 않게 가르쳐 주고 있다.

 

 

다이어트가 일상의 구호가 된 요즘, 사실 조금 먹고 운동하면 살이 빠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게으르고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건강의 적신호가 될 지방을 차곡 차곡 쌓으며 살고 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에 흔히 하던 맨손 체조가 이렇게 좋은 효과가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요즘 아이들은 수학, 영어가 중요하지 체육은 불필요한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트레칭위주의 이 체조가 우리 몸을 깨우고 순환시키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대학지상주의의

현실에서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제철에 난 과일과 채소를 먹고 최소한의 조리과정을 거칠 것이며 소식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알면서도 기름진 음식을 물리치지 못한다면 내 몸에 맞는 적당한 약차를 우려 마시고 운동을 하라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많이 먹지만 않는다면 커피나 술도 괜찮다고 권한다. 유혹에 약한 나는 이말에 큰 위안을 느낀다.

물만 먹어도 잘 붓고 살이 되는 나 같은 사람은 기의 흐름이 정체되어 몸속 체액이 정체되고 노폐물이

쌓여 있는 것이란다. 의이인가 창출은 위장 기능을 좋게 해서 몸속 노폐물의 배출을 돕고 진피는

기의 흐름을 활발하게 하며 복령은 체액의 순환과 배설을 돕는 약재라고 한다.

이름이 생소한 이런 약재들을 어디서 구입해야 할지 어떤점을 확인하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까지도

꼼꼼하게 설명해 놓은 것이 이 책의 남다른 점이라고 해야겠다.

자신의 진료실에서 만난 다양한 계층의 환자들을 보면서 또다른 세상과 만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저자의 조언을 듣다보니 어렵지 않게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맘이 든든해진다.

책을 다 읽은 후 책꽂이에 꽂아 둘 책이 아니고 거실 한가운데 놓고 수시로 들쳐봐야 할 보배같은

책이다.  물론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에게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나누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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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남자의 물건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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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물건이다.

'남자의 물건'이라면 기껏 '거무튀튀한 그것'만 생각한다고 나무라지 말라.

나를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상상을 할테니.

김교수는 그런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혀를 차겠지만 솔직히

그런 상상을 하라고 재기발랄하게 이런 제목을 붙인 것도 사실 아니오?

 

 

표지의 일필휘지는 소주병에 붙어 자신의 한글 서체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처음처럼'을

쓴 신영복의 글씨란다. 잘 갈은 먹의 검은빛을 좋아했고 대단한 우리의 글 '한글'의 또다른

탄생을 이끌어낸 그의 비범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서체이다.

이 책을 읽고 마침 서평을 쓰려는 순간 TV에 나온 김교수와 맞닥뜨렸다.

그가 좋아한다는 슈베르트의 헤어스타일에 나비넥타이 차림이 과연 자신의 말처럼 '귀족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잘 삐쳐서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다는 이어령교수처럼 그 역시 귀여운쪽에 가깝다.

 

 

 

잘 몰랐는데 이 책 말고도 베스트셀러가 많다고 자랑이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책을

낼만큼 간이 부은 남편이지만 아마 이 책을 쓴 이후에는 꼬리를 내리고 '욱'하는 성질을 죽이지 않았을까.

TV에서 보는 솔직하고 경쾌한 모습 그대로 '남자의 물건'에 나오는 10명의 남자들에 대한 그의 평가는

리얼하다. 부인 '오은미여사'에게 더 이상 반항하기를 멈췄다는 차범근의 물건은 의외로 소박한 '계란받침대'였다.

나의 우상이었던 그가 낯선 독일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할 때 가족들의 식탁을 지켜주었던 '계란받침대'는

외로운 이국생활에서 가족들과 둘러앉아 따뜻한 음식을 나누고 사랑과 소통의 현장을 지킨 증인같은 것이었다.

 

 

힘든 13년의 독일 유학생활을 버티고 독일 대학의 강단에까지 섰던 김교수의 물건은

'만년필'이란다. 어려서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그늘이 싫어 소통하기를 피하기만 했던

그가 박사학위를 받자 금색 몽블랑 만년필로 축하해 주셨던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고

이제 그 만년필을 통해 아버지의 아들과 아들의 아들에게 이어지는 소통을 경험하고 있다.

이렇듯 남자에게는 자신만의 '뮬건'이 있단다.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장군같은 위엄을 느끼게 해주는 이어령의 '책상',

번잡한 일상에서 때로 앙금처럼 가라앉혀 평화를 느끼게 해준다는 문재인의 '바둑판'

다시 태어나면 소설가는 하기 싫다는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

못생긴 조영남을 얼굴 반 쪽을 가려준 검은 뿔테 안경은 열등감을 자신감으로 뒤바꿔준

긍정의 물건이기도 하다. 하긴 좌충우돌 말많고 탈많은 연예생활에서 여전히 그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 그만의 특별한 아이덴티티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선물한 면도기를 여전히 손에서 떠나 보내지 못하는 이왈종화백에게는

정많고 감수성 짙은 예술가의 면모가 그대로 느껴진다.

'남자는 울면 안된다.' 고 배웠던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외롭다.

여자들처럼 맘껏 수다를 떨지도 못하고 재미있게 사는 법도 모르는 그들에게 '물건'은 자존심이고

친구이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의 표상이다.

 

 

심리학 교수의 눈으로 본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외롭다. 어두운 술집에서 폭탄주를 들이키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고 계속 부추기는 김교수는 정말 외롭지 않을까.

오십줄에 들어선 그의 얼굴에도 슬쩍 바흐의 첼로곡 '아리오소'의 흐느낌같은 연민이 느껴진다면

'욱'하는 그가 또 화내며 달려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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