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광나치오 - 한 가지 일에 미쳐 최고가 된 사람들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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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든 미치지 않고는 최고가 될 수 없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몰입'이라는 책처럼 그 속에 푹 빠지지 않으면 일인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은 좋게 말하면 자신이 좋아했던 일에 몰입했고 일인자가 되긴

하였으나 어찌보면 미치광이 같았던 사람들이다.

 

더구나 자유와 언론이 보장된 시대가 아닌 조선시대가 아니던가.

저자는 학계에서도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인물들을 새로 발굴하거나 단편적으로 소개되었던

인물들도 새 자료를 발굴해 소개함으로써 옛 사회가 이름난 인물들에 의해서만 진전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기획하는데 힘을 쓸만한 사람들을 우리의 옛사람에게서 찾아 보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열 가지 재주 가진 사람이 밥을 굶는다'는 속담처럼 오히려 재주가 너무 많아 회한을 많이 남기고

서둘러 세상을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선비,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로서 그의 재능은 탁월했지만

그가 살다간 시간동안 그 재주를 다 풀어놓고 가기에는 시간도 시대도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았다.

그가 깎았다는 벼루는 그의 인생만큼이나 독특하고 미려하여 많이 전해지지 못한 것이 아까울뿐이다.

 

흔히 정선이나 김홍도, 신윤복을 조선시대의 명화가로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또 하나의 명화가 '최북'이란

이름이 낯설기만 하다. 성격도 괴팍한데다가 술주정뱅이에 심지어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찔러 애꾸눈을

만들었다니 그의 광기가 섬뜩하기만 하다. 특히 그가 잘 그렸다는 메추라기를 보니 섬세한 표현이

기가 막히다. 하나 그 역시 열흘을 굶다가 그림을 팔아 술을 먹고 만취하여 얼어죽었다니 끝까지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광인이 틀림없다.

 

책장수 '조신선'은 그의 이름처럼 신선처럼 살다간 모양이다.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니 이 또한

미스터리가 아닌가. 조선시대에는 책이 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시대에 지식 생산과 유통에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라는 것도 눈여겨 볼만 하지만 그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는 기록들을 보면 산에서

내려온 신선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선비라면 글 공부를 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양명하는 것이 최고이던 시절 원예가로서 이름을 날린

유박이나 천민으로 태어나 애꾸에 곰보, 어버버한 말씨를 가진 볼품없는 천재 문인 이단전의 삶도 아마

영화화된다면 딱일만한 이야기이다. 천한 신분임에도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천재성을 발휘했던

그의 재능도 역시 그의 삶을 고단하게 했던게 분명했을 것이다.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면 안될 재능을 맘껏 발휘해 보지 못했거나 혹은 많은 댓가를 치뤄야 만 분의 일이나마

드러내었을 천재들의 삶을 보면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외로웠던 것 같다.

사는 동안이 그러했고 거의 모두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고 지금도 우리가 몰라주고 억압하는 또 다른 천재들을

위해 이 책은 역사의 어둠속에 갇힌 인물을 끄집어 낸것 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소개된 11명의 인물들도 지하에서 기뻐하겠지만 여전히 역사의 어둠속에 갇혀있을 수많은 벽광나치오들의

삶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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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이라도 뜨거웠을까?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9
베벌리 나이두 지음, 고은옥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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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인류의 기원이 시작되었다는 그 땅은 지금 상처투성이의 아픈 땅이 되어버렸다.

자연과 가장 근접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아와 질병과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곳에 피부색이 다른 두 소년이 닥친 현실을 보면 아프리카의 고질병이 무엇인지를

알게된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영국에서 건너와 정착한 백인들이

농장을 가꾸며 살고 있다. 스와힐리어말로 와준구는 백인들을 말한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영국 편에 서서 함께 싸웠고 자유의 이름으로 죽어갔다.

전쟁이 끝난 뒤,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의 조국에서 자유스럽게 살기를 원했지만 백인 정착민들은

계속 영국의 지배하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인들이 아직 어린애들 같아서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자유를 갈망하는 아프리카인들과 계속 지배하고자 하는 백인들간의 갈등은 결국 '마우마우'라는

아프리카인들의 조직이 만들어진다. 자신들의 땅을 찾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우겠다고 맹세한

단원들로 구성된 비밀조직이었다.

 



 

백인농장의 주인 아들인 매슈와 말을 돌보는 하인의 아들인 무고는 계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좋은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하지만 의식있는 아프리카인들의 자유에의 갈망은 '마우마우'와

같은 비밀조직을 만들게 되고 폭력을 싫어하는 순진한 원주민들은 '마우마우'의 폭력과 협박에

할 수 없이 가입을 하게 된다. 이 와중에 무고의 형 역시 '마오마오'의 열혈 조직원이 되고 무고와

그의 아버지는 비밀조직과 백인 주인 어디에서도 의심을 받는 신세가 된다.

 

무조건 힘으로 누르려는 백인들의 지배욕도 문제이지만 선량한 주민을 폭력으로 끌어들여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급진주의자들도 문제이다.

어디가 잘하고 어디가 잘못인지는 모르겠다.

순수한 우정을 나누던 두 소년이 이런 소용돌이에서 상처를 받고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더

가슴 아팠다.

 

과연 이 땅의 주인은 누군지 생각하게 된다. 식민정책으로 고향에서 건너와 땅을 일군 백인들은

순순히 그 땅을 떠나야 하는가. 서로 공존하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인가.

순수한 마음을 가진 두 소년의 삶이 어른들의 폭력과 억압으로 어떻게 허물어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아프리카의 아픔을 짚어낸 이 책은 실제 자신이 남아프라카공화국에서 나고 자랐던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기에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지금도 케냐 뿐만아니라 아프리카의 많은 땅들이 선진국들이 개입으로 내전을 겪고 있다.

단순한 민족성을 가진 그들이 선진국의 횡포에 희생당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가슴아프다.

이제 두 소년이 자라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날이 오는 건 아닐지..가슴이 답답해온다.

언제나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평화와 안식이 올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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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디디에 드쿠앵 지음, 양진성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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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바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 불리는 비극적 사건은 1964년 3월 13일 새벽 3시 미국의 뉴욕 퀸즈 지역의

주택가에서 일어났다. 신드롬이라고 불릴만큼 세상을 놀라게 한 이유는 스물 일곱살의 제노비스가 35분에 걸쳐

살인자에게 공격당하는 동안 무려 38명의 이웃들이 그 사실을 알거나 목격하고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는 목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도움을 주지않고 방관하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은 줄어들어 자신이 꼭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집안의 딸이었던 그녀는 식당을 열기위해 바에서 열심히 일하던 여성이었고 살인자와 그녀는 단지

그 시간에 그곳에서 마주쳤다는 불운 이외에 그녀가 죽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범죄의 조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중산층 거주지역인 퀸즈지역의 주민들은 사실 우리와 다름없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반드시 그들이 냉혹했다거나 비인간적이었다고 손가락질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점이다.

직접 살인의 현장을 목격한 남자는 바로 경찰에게 신고를 하기 보다는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전하자

새벽의 달콤한 잠에서 깨어난 애인은 절대 그 일에 휘말리지 말고 곧바로 침대로 가서 자라고 권한다.

이 부분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지 경찰에 전화를 거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던가.

 



 

처음 공격을 당하는 순간에 그녀의 살려달라는 목소리를 듣고 창밖을 바라보았던 사내가 만약 바로 신고를

했더라면 어쩌면 제노비스는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피를 많이 흘리긴 했지만 아직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을 안 범인이 도주하다가 다시 되돌아와 그녀가

흘린 핏자국을 따라 뒤쫓아가 다시 칼을 휘두를 수 있었다는 것은 평범했던 이웃이 결국 방관자 내지는

방조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범인 모즐리는 시체애호자이거나 연쇄살인을 즐기는 정신이상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힘없는 젊은 여성이 공격받고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다는 것에

더 희열을 느끼고 결국 그녀를 뒤쫓아 자신의 먹잇감을 쟁취했다는 것에 우리모두 인간의 이기심을 생각해야 한다.

과연 범인만 정신이상자였을까. 아무리 방관자효과라는 심리현상때문에 등을 돌렸다고 해도 소중한 목숨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커튼을 닫고 불을 끄고 잠을 잘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곰곰히 되돌아보니 나역시도 살인의 현장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사람들에게 아무 조건없이 도움을 주었던 기억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나 아니더라도..'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니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불운하게 죽어간 제노비스는 범인에게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 순간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로부터...그리고 지금도 사건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로 부터

또다른 '제노비스'는 죽어가고 있다.

혹시 비명이 들리는 현장을 외면하고 커튼을 닫고 불을 끄고 숨고 싶지는 않은지 모두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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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위새 날다
구경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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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때로 살인의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을 때, 법망을 벗어나서

교묘하게 사람을 괴롭히는 놈이 있을 때 그저 법은 멀고 사람하나 사서 손을 봐주고 싶거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버지처럼 리볼보하나 구해 상대의 시커먼 심장을 향해 멋지게 한 방

날려보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8년전에 위암으로 죽은 아내의 사인이 그녀가 양말장사를 하던 터를 제공했던 국제상사의

사장 황명순여사가 준 스트레스라니.

다소 황당한 결론에 도달한 아버지는 서른이 된 딸아이와 아직 이십대인 아들녀석에게

엉뚱한 명령을 내린다. 이른바, 아내를 죽인 복수를 위해 아들은 염탐꾼으로 국제상사에

취직을 시키고 딸과 자신은 행동대장으로 나서기로 한다.

 

세계각국에서 온 냉장고 자석을 수집한다거나 동네 여인들과 고스톱판을 벌이거나 사마귀를

실로 묶어 도로 횡단 내기 같은 것을 하는 황여사가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살인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딸인 은수는 굳이 죽일 것까지야 있겠나 싶어 확인작업에 들어가기로 한다.

총을 쏘기위해 총탄을 장전하는 것처럼.

황여사의 말투가 거슬리기는 했다. 그래서 독설과 조롱으로 탄알 하나 장전!

쓰잘데기 없이 모여서 도박과 남 흉을 즐기는 것으로 탄알 하나 또 장전!

살아있는 사마귀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생명경시로 또 하나 장전!

 

은수는 황명순을 죽이는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쫓아내겠다는 아버지의 엄포에 못이겨 할 수

없이 이 일에 동참하면서도 명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황명순을 들여다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의외의 아픔이 있음을 알게된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버린 그녀의 아들!

황명순은 은수를 통해 가슴에 묻었던 아픔을 끄집어내고 위안을 받게된다.

국제상사에 취직한 경수는 같은 직원 미스리와 사랑에 빠지고.

 

뭔가 수상한 약을 먹어가며 복수에 열중하는 아버지와 얼떨결에 동참한 아들과 딸의 좌충우돌

이야기는 결코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멀리서 보면 인정머리 없고 생각없이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여도 나름대로 사연도 아픔도

다 깃들어 있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첫눈이 푸짐하게 오는 어느 날! 결행에 나선 아버지는 과연 황명순을 죽일 수 있었을까.

평생 고생만 시킨 아내의 죽음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고 싶었던 아버지의 고통과

자식을 잃고 상처투성이로 살아가면서 사소한 관심에도 위로를 받는 황명순!

우리속에는 아버지와 황명순과 은수의 모습이 같이 살고 있다.

날지 못하는 키위새지만 언제가는 훨훨 날아오르리라는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상처투성이인

현실을 견디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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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다 - 우리시대 시인 서른다섯 명의 내밀한 고백
이재훈 지음 / 팬덤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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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병을 앓는 자들이다. 대개의 병이 그렇듯 병의 형태와 증세도 각각일 텐데, 유독 시인들이 앓는

병이 의미화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148p

무당이 무병을 앓듯 시인은 시병을 앓는가보다. 병명이 어떠하든 뭔가를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병을

앓았던 어느 시인은 평생 잘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시를 쓴 것이고 평생 잘못한 것도 시를 쓰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시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를 보면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라고 한다.

정의조차도 쉽지 않은 단어가 바로 詩이다. 자연과 인생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글이라니..그 방대함을

어찌 함축한다는 말인가. 오히려 장문의 글로 써내려도 시원치 않을 분량이 나올 주제 아니던가.

얼핏 몇 자 안되는 글을 써야 하는 시인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문학은 실패한 자의 기록입니다. 그래서 진실이거든요. 실패한 자에겐 실패의 변명이 있습니다.

오히려 크게 실패한 자가 큰 시, 위대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86p 유안진

 

실패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큰 작품을 내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은 처절하게 다가온다.

하긴 배부른 자가 예술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못견뎌서 쓰긴 했지만 자신에게 혹은 남에게 무엇을 주는 것일까. 시는.

 

시인이 말하는 시는 무엇인가. 이 책은 이 어려운 작업을 하는 시인들의 고행의 자서전이다.

설사 자라온 환경이 조금 부유했다해도 결국은 세상과 그리고 자기자신과 투쟁하고 협박하고

때로는 협상해서 내어놓은 목숨같은 작품들을 스스로 평가하는 재판대인 셈이다.

 

어줍잖은 시를 쓴적이 있다. 어찌보면 채 200여자가 안되는 글 몇자 쓰는 것이 쉬워보이기도 한다.

수 십장 수 백장 원고지를 메워야 하는 작업보다는 훨씬 가볍게 느껴지지 않은가.

정해진 규격도 없기 때문에 느낌 그대로 끄적 끄적 적어 놓아도 시라고 우기면 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결코 그게 아닌 모양이다. 박목월이나 황순원은 제자를 거의 두지 않았다고 한다.

시를 제대로 평생 쓸 것 같은 사람이 그만큼 많아 보이지 않았다는 뜻일게다.

존경하는 스승앞에서 소금그릇을 옮겨 제 그릇에 넣은 용기가 없어 맹탕으로 먹는 모습을 보고서야

'저렇게 숙맥인 걸 보니까 시는 제대로 쓰겠구나' 하셨다던가.

그런점에서 보면 더더욱 나같은 속물은 시를 제대로 쓰기는 틀린셈이다. 아마 나는 소금에 다데기에

국수사리쯤 하나 더 시켜서 양껏 먹는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줄 사람이니까.

 

세상일에는 숙맥이어서 시 밖에는 못 쓴건지 시 쓰는 일 밖에는 할 줄 아는게 없어서 세상일에는

숙맥이었는지 모를 서른 다섯 명의 시인이 은밀한 고백이 펼쳐져 있다.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를 모른다는 사람들도 다 아는 '꽃'의 김춘수가 국회의원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은 퍽이나 놀라운 일이다. 정치와 시가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더 묻고 싶었지만 나중에 자서전에 자세히 밝히신다고 했지만 아쉽게도 이 대담후 얼마만에 영면을

하셨다니 영원히 들어볼 일이 없어진 셈이다.

 

이렇게 우리가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고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아름답고 처절한 시를 쓴

시인들이 그들의 인생에 어떻게 시가 다가갔고 어떤 의미였는지를 솔직하게 담아낸 책이다.

10여년에 걸쳐 시인들을 만나고 혹은 소통한 기록을 담아낸 이재훈저자 역시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진 시인이다. 시인과 시인이 만나 시를 이야기하고 시를 끌어안다 보니 비가 오는 오늘 나도

뭔가를 쓰지 않으면 병이 될것 같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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