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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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만큼 포근한 곳은 없다. 하지만 도시가 고향인 나는 '바다'가 고향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바다가 고향인 작가는 '여기가 좋다'고 했지만 그가 그린 바닷가 사람들은 무시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처럼 외롭고 저물어가는 노을처럼 쓸쓸했다.

 



섬에서 나고 자란 소년은 무작정 바다가 좋았고 배가 좋아서 결국은 선장이 되었다.

왼쪽 발가락 하나를 쥐 뱃속에 남겨두고 저세상으로 떠난 아버지의 '꼭 훌륭한 선장이 되어라'라는

마지막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고기를 많이 잡고 바다를 사랑했던 그였지만 끝내

배를 포기할 수 밖에 없어서 훌륭한 선장은 되지 못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소주를 한 바가지씩 먹어가며 멀미를 이겨가면서 바다를 익혔고 자식을 낳고 먹이고 살아왔던 그였지만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바다는 풍요로운 어장이 아니었다. 빚은 늘어나고 결국 그에게 선장이란 이름을

갖게 해준 배를 계약하고 그는 아내와 마지막 고기잡이를 나선다.

아내는 이제 그를 떠나겠다고 했다.  섬에서 태어난 일은 천형이었다고 했다. 사람이 살 곳은 육지이기

때문에 당신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섬을 떠나는 것이라고도 했다.

 

떠나려는 아내를 잡지 못하는 그에게 아내는 말한다.

"당신은 육지를 무서워하고 있소."

바다 한가운데 몇 뼘 땅일 뿐인 섬과 몇 발자국 나무판자인 배에 떠서 표주박처럼 살아왔던 그에게

바다는 무엇일까. 한 때는 사랑이었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내어주지 못하는 비루한 바다는 이제 무엇인 걸까.

 

아내가 떠나버린 섬에 한 여자가 죽기 위해 찾아왔다. 언젠가 친구들과 여행삼아 온 곳이었다는데

왜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을 이 섬에서 마무리 하려고 했을까.

"여기가 공동묘지라도 된다는 거요? 나는 죽자사자 살아가는 곳이 당신들한테는 고작 죽을 곳이요?"

사랑하는 가족도 떠나고 이웃도 떠나고 죽지 못하고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만 남아 살기는 하지만

버리지 못하고 놓지 못할 만큼 소중한 이 곳이 당신들에겐 무덤이란 말이지.

사내의 외침에는 핏발이 서렸다. 심장병을 앓던 엄마가 어느 날 세상을 떠났다. 바쁘고 솜씨없는

딸을 위해 김치냉장고에 그득히 담가놓았던 김치를 보면서 화장터에서 보다 더 많이 울었다던

친구가 떠올랐다. 먹을수도 버릴수도 없던 그 김치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신을 바다로 밀어 넣어 줄테니 당신은 아내가 마지막으로 채워놓고 간 냉장고의 반찬들을 치워달라.

떠나간 사람의 흔적을 확인한다는 일은 결국 자신이 버려졌다는 증거가 될테니까. 외로워졌다는 의미일테니까.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바다가 때로는 생명을 버리는 곳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된다.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안식이 느껴지는 것일까. 바다위 몇 뼘 땅일지라도 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땅으로 기억되는 것은 나도 싫겠다.

 



 

깊은 산골에서 가난하게 자랐던 소녀는 일찍 남편을 만나 아들 하나를 두었고 조석으로 지지고 볶고 하다가

갈라선다. 혼자몸으로 막걸리집을 하던 그녀는 그 도시에 전근와 있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미 결혼하여 아이까지 있는 남자였다. 눈이 따시고 가슴이 따신 그 남자와는 전근기간이 남은 이년 반만

사랑하고 그 뒤로는 절대 만나지 말고 마음속에만 담아두자고 약속하고 시작한 사랑이었단다.

가슴속에 간직했던 그 얘기는 7년만에 그 남자가 걸어온 전화때문에 시작되었다.

누군가를 화장터에 보내고 내려오는 길이라는데 그녀는 그게 누구인지 끝내 묻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끝까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완성된 사랑을 지키는 것으로 알았다.

마치 지나간 첫사랑을 평생 다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내 마음처럼..

나도 그녀의 그 사랑이 완성된 사랑이라고 믿는다.

 

여덟꼭지의 단편들은 연작처럼 이어진 듯하다. 선장은 배를 팔고 그의 아내는 성을 떠나고 어떤 여자는

죽기위해 다시 그 섬을 찾고 이천만원의 빚을 떠안고 이 섬까지 밀려온 또 다른 여자는 바다남자에게

몸과 마음을 열고 주저앉기로 결심한다. 섬에 남았던 노인들은 큰맘먹고 여행을 떠나고 그 섬에서 자랐을 것만

같은 한 남자는 항구가 가까운 도시에서 막걸리집 늙은 여자의 넋두리들 들어준다.

내가 만약 그 섬에 닿는다면 마주치는 섬사람들이 전혀 낯설지 않을 것만 같다. 그리고 나도 그 섬이 좋아질 것

같다. 섬에 남은 사람들과 같은 이유로 어쩌면 육지보다 그 섬이 내게 더 어울리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무심히 튀어나올 것만 같이 지금도 귓가에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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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 이외수의 감성산책
이외수 지음, 박경진 그림 / 해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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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물을 마시기 전에 자신의 흉한 모습을 볼 수 없도록 발로 물을 휘젓는다고 한다.'-42p

 

동물인 코끼리 조차 자신을 들여다 보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안다는데 하물며 인간은 어떠한가.

나이가 들어갈 수록 거울을 보고 사진을 보는 일들이 싫기만 하다. 그 곳에는 주름지고 까칠한

낯선 사람이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자신임을 인정하기가 싫기 때문이다.

지나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얼굴을 보는 일이 이렇듯 쉽지 않은데 만약 마음을 들여다

보는 거울이 있다면 인간들은 모두 우울증에 걸려 미치거나 수명이 짧아지는 현상이 생길 것이다.

그만큼 자신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리고 인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강원도 산골의 감성마을은 이외수작가가 있어 유명해진 곳이다. 더구나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임에도

도시보다 더 북적거리는 이유는 겉모습은 영락없는 산신령의 행색이나 첨단의 선두를 달리는 작가의

소통방법때문일 것이다. 트위터에 열심인 것은 물론 예전보다 더 많이 언론매체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꼭 마음에 드는 집을 지어준 화천을 더 많이 알리고 싶어서 였다는데...바로 얼마전에는 구제역으로

'산천어축제'가 취소되자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게된 마을 사람들을 위해 감자떡 홍보에도 동참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렇듯 산 속에 있으되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 나누는 그의 에너지를 보면

없던 기운이 솟고 가끔씩 도사님 말씀처럼 훈계가 내려오면 도무지 오금을 펼 수가 없다.

 



 

'하악하악'이나 '아불류시불류'에 이은 따끔훈계 연작의 제목은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이다.

아니...코끼리에게 날개를 달아주다니..코끼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거구의 몸으로 엄청난 풀을 먹어야 하는 코끼리는 죽을 때가 되면 자신들의 무덤으로 향한다는

말이 있다. 마치 자신의 죽을 때와 죽을 곳을 안다는 듯이...그 정도로 영(靈)이 뛰어난 동물이어서

그럴까.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싫어 발로 물을 휘젓는다니...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은 인간보다는 상당히 양심적인 동물이 바로 코끼리인 모양이다.

그래서 작가는 코끼리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을까. 평생 땅위에서 천적이 거의 없을 만큼 커다란

몸뚱이가 무기였지만 정작 조그만 쥐가 그야말로 쥐약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코끼리에게 날개를 달아주면 하늘로 날아올라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나도 가끔 하늘을 날아 오르는 꿈을 꾼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내려다 보기도 하고

가고 싶었던 나라를 향해 날아가는 꿈을 꾸노라면 꿈속이지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날개'라는 것은 승천을 위한 필수의 품목이다. 거대한 몸집을 들어 올릴 날개라면 엄청난

크기여야 할 것이다. 이런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작가가 내린 처방전이라고나 할까.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는 자기밖에 모르는 죄'    -89p

 

자신이라도 제대로 알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잘못 알고 있다는게 문제이다.

그래서 작가의 처방전을 읽고나면 문득 내가 너무 작아지는 느낌이다. 아니 부풀려진 허세와

만용이 빠져나간 영혼이 갑자기 헐거워진 느낌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낸 홀가분함이

뒤이어 찾아온다. 그래서 갑자기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했던 박경리작가의

작품 제목이 그렇게 다가올 수가 없다.

 



 

때로는 따끔하게 때로는 자상하게 들려주는 작가의 조언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건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일 것이므로...'촌철살인'의 위트와

교훈을 전수 받고 나면 한참동안은 잘 걷어내고 말개진 마음으로 거친 세상을 다시 한번

살아갈 준비가 된 것만 같다. 구정물 가득한 세상에 다시 한번 발을 담글 준비가..

언젠가 나도 이 육중한 몸에 날개를 달고 마침내 하늘의 별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맑은 빛을 내는 별이 되기 위해 나는 작가의 책으로 자꾸 연마되는 기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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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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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성작가를 꼽으라면 단연코 공지영을 꼽는다. 초기의 작품에서는

그다지 감동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예사롭지 않은 결혼생활을 끝내고

이데올로기 보다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상처까지도 드러낼 수 있는

여유가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그 때부터 난 그녀의 이야기가 좋아졌다.

 

좋은 학벌에 좋은 인물에..도무지 그녀가 불행해질 이유를 들자면 흔히 '팔자'라거니

'성질'이 더러워서라느니...더구나 요즘은 진보의 선두에 서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그녀의 행보를 보자면 참 답답한 구석이 없지도 않다.

조만간 쉰이 되는 그녀의 용기인지..만용인지를 지켜보는 팬은 가슴이 조마조마할 뿐이다.

 



 

결국 이 책을 낸 그녀와 첫 만남을 가졌었다. 물론 개인적인 만남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예뻤고 당당했고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보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여전히 당돌하게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녀석때문에 고민입니다. 아빠없이 혼자 키우는 아들녀석의 사춘기가

어떠했는지요?"

"다시는 기억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라서...정말 너무 힘들어서 애한테 그랬어요. 그냥 중학교만

졸업하고 취직을 해라..내가 아는 사람이 많으니 일자리를 구해주겠다. 그랬더니 픽 웃으면서

'엄마 농담도 잘하네' 그래요."

 

힘든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유별났던 결혼과 이혼 성이 다른 아이 셋을 키우면서 온갖 시선을

견뎌야 했을 것이고 밥을 벌기 위해 밤을 세워 글을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지치고 힘들었을 때 달려간다는 지리산!

그곳에는 참 유별나서 유별난 그녀가 섞여도 전혀 유별날 것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행복학교'가 있단다. 처음 이 글이 신문에 연재되고 가뜩이나 여자등쌀에 몸살을 앓던 '버들치시인'은

지금 더 많이 여자들에게 둘러쌓여 있으며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져 시집도 내었단다.

정말 평생 네번도 아니고 네번 반만 여자를 안았을까...아 오늘 밤 궁금해서 잠자긴는 다 틀렸다.

남의 남자 잠자리 횟수가 뭐 그리 궁금할 일이라고............그러나 궁금하다.

 

고알피엠 여사의 이름도 예사롭지 않지만 전장에서 후퇴한 패잔병을 구원해준 용기에는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다. 그러게....정말 시인들은 사랑을 해야 글이 잘 써지는 모양이다. 물론 그 순간

그의 연인은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 될테고...근데 그게 언제까지 유효하지 않은게 문제지만.

 



 

지금은 주차장관리인 자리에서도 떨려났다는 최도사도 걱정스럽고 늙어가는 개 '지화자'가 또 뜨거운

밤을 보내고...뜨거운 낮일수도 있겠지만...또 헐떡거리며 새끼를 낳아야 하는 천형을 겪을지도 걱정이고.

아니..정작 밥이 끓던 죽이 끓던 만사태평인 그들은 행복에 겨워 학교까지 세웠다는데...보는 나는

왜 이리 걱정이란 말인가. 도시가 싫고 속박이 싫고 편견이 싫어 지리산으로 숨어 들었다는 그들이

과연 몰려드는 사람들에 휩싸여 초심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하지만 이건 얄팍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난 어느새 언제 짐을 꾸려 슬그머니 묻어 갈까.

궁리부터 하고 있지 않은가. 설마 나 하나 더 얹혀져 들어간대도 뭐 워낙 품이 넓은 지리산이니 내 몸과

영혼에 덕지덕지 붙은 온갖 오욕과 불행의 찌거기들을 조금 풀어 놓는다 해도 괜찮지 않을까?

 

 

우선 '버들치시인'집에 전화를 걸어 그의 구수한 자동응답기 녹음부터 들어봐야 겠다.

"덥기는 덥지요? 고추밭에 빨갛게 익은 고추를 안 따고 놔두었더니 그만 뚝뚝 떨어져버렸네요.

집에 있는 꼬추들은 잘 간직하고 있겠지요. 이 더위에 꼬추가 축축 늘어져 떨어지지 않도록

잘 붙들어 매주시기 바랍니다. 전 지금 개울가에 있습니다. 뭐하냐구요? 빨래하지요. 안녕!"

푸하하..이제 꽃피는 봄이 왔으니 어떤 멘트가 녹음되어 있을지 너무 궁금하다.

그리고 꽁지작가! 솜씨 좋은 사람이 얼굴까지 예쁘면 성질이 좀 더러워지지 마련이긴 한데

그대 말처럼 계산 정확하고 남에게 신세 안지고 그리고 속이지 않는 것도 다 맞는데..

솜씨는 좋지 않고..얼굴도 별로이긴 한데 성질도 좀 더러운 사람이야...근데 그 사람도 계산

정확하고 남에게 신세 안지고..속이지 않고..가면 친구좀 해주실라나...누구냐고? 나지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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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픔 -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이기웅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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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퍼주는 최일도 목사님은 문턱이 높은 병원이 야속해서 누구든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병원을

지었다고 했다. 실제로 그 병원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적은 월급과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참 의사와 의료인의 자세로 봉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도 했다. 나는 그 병원이 아픈 몸을 치유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지치고 아무도

돌보는 없는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 주는 진정한 병원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인지 병원이란 곳은 정말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곳이 되어 버렸고 성적순으로 뽑힌 의사들은

아픈 몸만 열심히 치료하는 전문가가 되어 버렸다.

물론 병원과 의사의 존재 목적이 그러하므로 그건 당연한 일일것이다.

하지만 여기 그 의사로서의 단순한 소임을 벗어나 엉뚱한 치료에 힘을 쏟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나는 사람들이 아프기를 바라는 한의사입니다."라고 돌에 맞아 죽을 소리까지 서슴치 않는다.

어려서 부터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시달리더니..결국 혜안이 열린 것인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영혼의 질병까지 들여다 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침도 놓지 않고 약도 처방하지 않는 이상한 치료법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 쯤되면 이 사람..한의사라기 보다는 나수자 같은 철학자에 더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한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고 모범만을 강요받는 시대에 제목자체가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어설픔'이라니...하긴 한의사라는 전문직업인으로는 상당히 어설퍼 보이긴 한다.

의학공부 열심히 해서 병고치는 명의가 되나 했더니..인도로 히말라야로..맥 놓고 떠돈 시간이

더 많아 보이기까지 한다. 얼핏 스님이 되거나 명상가가 되었더라면 더 어울릴 법한 남자!

천지에 부처가 가득하니 산에 들어가야만 수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어느 스님의 말마따나

산속보다는 이 속세에서 그가 할일이 더 많아 보이니 어쩌면 그가 도시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숨어 버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기도 하다.

 



 

'세상을 깊이 들여다 보는 법'을 알아야 만 시를 쓸 수 있다고 했던 시인의 말도

생각났다. 바람소리, 나무소리,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다보니 시가 되었다는..

저만치 떨어져 나를 보고 세상을 보고 우주를 보는 법을 꾸준히 익히더니

이제 이 사람 앞에서는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을 만큼 혜안이 밝아진 모양이다.

어수선한 도시의 생활을 접고 논산에 쉼터라는 병원을 열고 진료를 시작한 그를

찾아온 사람들은 몸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더 깊은 사람들이었다.

사랑에 굶주리고 무관심에 병들고 혹독한 삶에 여정에 지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영혼을 어루만지며 자연의 품으로 인도하는 그를 너무나 만나고 싶어졌다.

나도 완벽한 삶을 이루기 위해 한시도 나를 내려놓은 적이 없으며 불면의 밤들이 길어지고

시름시름 시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화타같은 명의가 아니면 도저히 고칠 것 같지 않은

이 병도 그 곳에 이르면 말끔히 회복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침도 약도 고칠 수 없는 병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존재가 이 우주에서 이곳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연과 집중과 사랑이 필요했는지...그렇기에 지금 비록 너덜너덜한

몸뚱이에 헐벗은 영혼을 가진 존재이지만 한 없이 소중하다는 자각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절망한 여인을 구원하여 아내를 삼았다는 사람이니..

적어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친구라도 삼아주지 않겠는가. 그런 바람으로 그를 찾아 이 봄..

햇살 가득한 그의 쉼터로 찾아갈 것이란 예감으로 벌써부터 마음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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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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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왕은 누구인가? 군주의 나라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무슨 소리야’ 하겠지만...누구에게나 살아오는 동안 영웅이 있다.

아버지 일수도 있고 존경하는 스승일수도 있고 정말 어느 왕국의 왕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사오란 인물의 이름은...참으로 안타깝게도 대지진으로 참담한

현실을 맞게 된 일본과 상관이 있으며 광복이 되던 해에 태어난 마사오가 그의 부친이

빌붙어 지내던 일제의 헌병조수, 혹은 순사 끄나플의 경력과 무관치 않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가 지금까지도 마사오란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에는 일국의 왕의 이름

으로 ‘박정부’라는 독특한 본명이 결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바로 주인공 ‘장원두’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마사오가 왕으로

군림하던 곳이다.


때는 사단장이었던 어떤 군인이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이지만 굳이 이곳이 어느 지역인지

는 알려고 하지 말자. 나와 당신이 자랐던 고향일 수도 있고 아마 이런 곳이 수십 곳일 수도 있다.

문제는 바로 우리나라에는 마사오같은 왕과 그를 추종하거나 견제하는 똘마니들이 있는 왕국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혹시 당신의 고향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주인공의 영원한 왕이며 그가 자란 지역의 왕이었던 ‘마사오’가 죽었다.

사실 주인공은 마사오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었다. 굳이 문상을 갈 필요도 없었다.

정승의 개가 죽으면 상가가 미어터지고 정승이 죽으면 썰렁하다는 속담대로 왕의 상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쓸쓸한 병원 장례식장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의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있지만 희미해진 왕의 실체를 제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난 사람도 같은 운명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두 인물,

바로 주인공과 재천의 관계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결국 힘이 쎈 재천에게 빼앗긴 전력으로

보자면 분명 적에 가까워 보이지만 한 때는 친구라고 여겼던 시절도 있었으니 참으로 어정쩡한

사이처럼 보인다.


마사오는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 적이 없었다. 군대 시절 탈영을 하고도 일개 중대의 헌병들을

물리쳤다거나 엄청난 힘을 가진 인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왕이 될 수는 없었다.

 


‘진정 왕이 되려는 자는 모든 면에서 완벽해서는 안 된다. 완벽한 인간에게는 도움이 필요없고

도움이 필요없으면 도와주는 사람도 없게 된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이니

사람이 없으면 다스릴 백성이 없는 것이고 백성이 없는데 왕은 무슨왕. 약아빠진 인간보다 어리석은

인간이 왕이 되는 이치도 이와 같다.’ -290p

 


마사오가 굳이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자면 고작 이런 이유가 전부일 것이다.

마사오는 완벽하지 못했고 심지어 어리석기까지 했으므로.


그 지역에는 마사오보다 조금 머리가 좋거나 아부를 잘하거나 말 잘하고 소문을 잘 만들어내는

참모들이 너무 많았다. 왕의 자리를 탐내고 끌어내리려는 깍두기들도 있었다.

하지만 마사오가 왕으로 있는 한 그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왕이 죽고 권좌를 향한 이인자 삼인자들의 다툼이 시작되면 왕국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왕이 영원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사오는 자신이 원했던 자리는 아니지만 우여곡절 끝에 화려한 은퇴식을 고하서야

왕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칼을 기가 막히게 쓰거나 맷집이 좋거나 자신을 따르는 무리가 많거나 했던 놈들은

모두 죽거나 사라지고 정작 마사오가 버린 왕의 자리를 차지한 놈은 혀끝이 야물었던

놈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결국 돈이나 칼보다 혀끝이 더 무서운 무기였음이 증명이

된 셈이다. 세치 혀로 이간질과 거짓 소문과 허풍과 아부가 이룬 결과였다.

 


어느 사회이든 줄을 잘 서야 한다. 그런 점에서 찌질하게 퀴퀴한 지하셋방을 전전하고

있는 주인공보다는 그를 차버리고 재천을 택한 세희의 선택은 탁월해보인다.

스스로 여자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야망을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왕비의 자리는 차지한 셈이니 변방의 족속으로 속한 사내의 여자가 되는 것 보다야

훨씬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줄을 제대로 서지 못해 왕비는 커녕 왕을 먼 발치로

본적도 없는 일개 무수리의 삶을 살고 있지만 과연 내 마음의 가장 오랜 영토를 지배하는

영원한 왕은 누구인지 기억할 수가 없다.

 

그 것은 잘 정리된 삶을 살아가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누군가 내 삶을 지배하는

왕이 있었다면 하층 백성의 삶을 살아도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말이다.

혹시 지금의 내 삶이 이렇게 고단하고 외로운 것은 자각은 없었지만 스스로가 왕이라고

생각하고 오만했던 결과는 아니었을까. 전혀 완벽하지도 않았고 수시로 도움도 필요했으며

심지어 어리석기까지한 나야 말로 왕의 자질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나는 왕을 찾아서 온전히 내 마음의 영토에 영접하고 싶다.

그래야 울퉁거리고 이가 맞지 않은 엉성한 톱니바퀴같은 내 삶이 제대로 돌아갈 것만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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