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된 미국의 역사는 불과 240여년에 불과하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이든 문제가 없는 곳은 없겠지만 특히 미국은 인종편견에 따른
갈등이 심각한 나라였다. 물론 대사건이라고 기록될만한 흑인대통령의 등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어두움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을 겪던 그 시대에는 노예제도에서 벗어난 흑인들이 각자의 삶을
꾸려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회의 가장 밑바닥층에서 귄리라고 표현될 수도 없는 삶을 살던
시기였고 여성의 지위역시 미국의 독특한 재판방식인 배심원제도에서조차 배제될 만큼 낙후된
시기였다.
이색적인 제목인 ‘앵무새’는 다른 개체에게 해를 끼치지 않지만 소외된 사람들을 상징한다.
미국의 인종문제처럼 확연히 드러난 소외층부터 겉으로 비슷한 집단이지만 알게 모르게
핍박받는 계층을 아우르는 흔히 말해 ‘왕따’들을 지칭한다.



미국 남부의 메이콤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흑인이 백인 처녀를 강간한 사건이 일어난다.
여전히 흑인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존재였고 인격을 떠나 모든 백인은 흑인보다
무조건 우월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국선변호사로 지정된 핀치변호사는 열 세 살의 아들 젬과 아홉 살 딸아이 루이즈가 있는 홀아비이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로 성장한 핀치는 이작품에서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따뜻한 배려를
지닌 인물이다. 아마 작가가 미국의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중심을 세워놓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사건만 아니라면 이웃에 산다는 이상한 인물 ‘부 래들리’정도가 아이들의 초점이 되었을 것이다.
심각한 술주정과 무지로 인해 일곱의 아이들이 있으면서도 정부의 보조금으로 생활하는 이웰이라는 인물은
힘든노동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흑인들보다 못난 인간이다.
열아홉살먹은 그의 딸 메이옐라는 폭력과 술주정에 시달리며 동생들을 돌보는 맏언니이지만 학교교육은
커녕 쓰레기장에서 음식을 구하고 더러운 물을 마시는 최하류의 생활을 하지만 단지 백인이라는 이유로
흑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악녀로 등장한다.
바로 이 이웰 집안의 사람들이 그 대 미국국민들의 사고를 상징하는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조금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최하류의 삶을 살면서도 단지 백인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아 드는 부녀는
바로 그 시대의 불합리하지만 사회전반에 팽배해있던 수많은 모순들을 대변한다.

미국이 궁극으로 지향해야 할, 하지만 여전히 벽을 넘을 수 없었던 자유와 진실의 패배는
한창 자라나고 있는 아들 젬에게 큰 상처가 된다.
이 소설에서 젬과 루이스는 바로 이제 세상에 눈을 뜨고 진정한 민주주의 싹과 함께 성장하는 태동의
의미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진실함을 가르치던 아버지 핀치의 고뇌에 안타까운 시선과 억울함을 느끼던
젬은 흑인 죄수를 죽이려는 백인 우월자들의 행동에 아버지를 보호하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지만
아직은 자신이 세상과 맞설 수 없는 어린아이임을 느끼고 입을 다물고 만다.
결국 교도소의 담을 넘는 것으로 자유를 얻으려 했던 흑인 톰의 죽음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지만 재판과정에서
톰을 죄인으로 몰고 자존을 지키려던 이웰의 엉뚱한 복수심으로 작가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클라이막스를 맞는다.

재판에 짐으로써 진실을 외면당했던 핀치판사의 집에 마을 사람들이 보낸 음식이 쌓였던 것처럼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편견을 부수고 진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사소한 이유로 인해 숨어 살아야 했던 ‘부 래들리’를 통해 가해자를 없앰으로써 불평등함과 모순의 뿌리를
잘라낸 것이다. 남편을 잃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자유마저 박탁당했던 흑인 톰의 아내를 도왔던 보안관
테이트는 이 한마디로 모든 사건의 종결을 고한다.
‘아무 이유없이 흑인 청년 한 사람이 죽었고 그 죽음에 책임 있는 자도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죽은 자가 죽은 자를 묻어버리게 하세요‘

이소설이 인종갈등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성장소설이라고 평했던 옮긴이의 말처럼 핀치변호사부터
태동되었던 진정한 민주주의와 인간평등의 사고가 젬과 루이즈가 겪는 사건을 통해 세상에 눈뜨고
성장해가는 미국인의 사고를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로지 이 작품 하나로 숨어버린 작가 하퍼 리가 하고 싶었던 한마디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
이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포인트는 바로 작가의 이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임에도 글을 쓰는 것만이 완전한 행복이라고
말했던 하퍼 리가 가장 최고의 작품이후에는 어떤 것도 그 아래작품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작가가 ‘앵무새 죽이기’가 자신의 최고의 작품임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세상에 작품을 내놓지 못했음을
이해했던 최고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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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나는 행복한가? 문득 제목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분명 가난한 어린시절보다 가진 것도 많고 배 곯는 일같은 건 없는데도 가슴에 바람구멍하나가

뻥하니 뚫린 것같이 허리가 꺾이고 휴대폰에 저장된 그 수많은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아무의미가

없는 것같은 날들이 많아지면서 마음의 갱년기가 왔음을 알게된다.

먹을 것이 넘치고 탈 것도 넘치고 볼 것도 넘치건만 으스스하게 훑고 지나가는 스산한 바람같은 것.

 

길바닥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조차 을씨년스런 가을 어느 날!

문득 길을 나섰다가 눈에 띈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가슴이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그랬었다. 삶이 고단해지고 어디론가 나를 숨기고 싶을적마다 바다를 떠올리곤 했었다.

바다근처에 연고라곤 사돈의 팔촌조차 없으면서도 내 유전자 어디쯤에 남아있는 생명의 기억때문이었을까.

그리웠던 것만큼 가본적도 별로 없으면서도 늘 고향같은 바다가 내 마음속에 출렁거렸었다.

 

 



 

 '저는 당신이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늘 바다를 동경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찾아가더라도 회 사먹고 바닷가 조금 걷다가 돌아오고 말지 않나요?'  -책머리중에서-

 

쪽집게 무당처럼 짚어내는 작가의 첫머리글에 바로 백기를 들어야 했다.

다음글이 나를 더욱 부끄럽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바다란 늘 그곳에 있는 파랗고 거대한 덩어리일 뿐입니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게 앞에서 대책없이 들켜버린 마음속의 바다는 허상이었던 것일까.

 

바다에서 나서 뭍에서 떠돌다가 기어이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는 한창훈작가의 밥상위에는

같이 사진찍고나서 무참하게 먹어치우는건 인간밖에 없을거라는 미안한 마음을 보탠 바다것들이

올라와 있었다. 시장에 가서 흔하게 보았던 삼치며 갈치, 고등어에 병어, 겨울이면 모자란 음식솜씨를

감추어 주었던 김에다 이맘때면 포장마차에서 따근한 국물로 유혹하던 홍합은 응큼한 남자들의 입맛에다

입담을 더해주어 여자들에게 눈총을 받았던 안주거리였는데...작가의 첫작품이 '홍합'이었다니 바다는

그에게 생명만 준 것은 아닌 모양이다.

 



 

거리를 걷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우리는 온갖 추억들을 만난다.

손암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서 빌어온 바다것들의 설명은 그의 가슴속에 쌓여있는 추억의 문을

여는 열쇠일 뿐이다. 그가 낚아올리고 썰어냈던 물고기와 술국으로 없앴던 해초에는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함께하는 기적같은 확률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했다. 엄청난 숫자위에 1을 얹을만큼 소중한 사람들을 짚어낼 수 있는 작가라면 그의 작품을 읽은

모든 독자와도 기적같은 인연임을 감사하며 겸허해질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사실 자신과 이웃의 안주며 반찬거리외에 약간의 채소정도나 바꿔먹는 정도이면서도 생계형낚시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도 은근히 바닷사람으로 낚시는 제법한다는 자랑이지 싶다.

생계형이 되려면 허술한 낚시솜씨로는 어림도 없을테니 말이다.

 

낚시가서 잡아온 졸복을 손질하여 탕을 끓여놓고 혹시나 복어 독에 잘못될까 누가 놀러왔다면 먼저

먹여볼텐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음을 한탄하며 우선 한모금 먹고 걸어다녀 보고..별 이상이 없자

반 그릇 정도 먹고 기다렸다는 이야기에서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독이 있을까 너무 오래 담가둔 탓에 맛이 빠져버린 복어를 두고 좌불안석했을 장면에

검게 그을린 거친 바닷사나이의 자존심은 잠시 외출을 한 모양이라고 흉을 보면서 말이다.

 

허기졌던 마음속이 따뜻하게 채워졌다. 언제라도 거문도 그섬으로 가면 회 한접시에 술 한잔하면서

어깨를 두드려 주는 바닷가 친구가 나를 기다려 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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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抱天) 1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해 질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가올 악운을 피하고 행운을 거머쥘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주선이 달나라를 왕복하는 세상이 왔어도 여전히 점집은 성행하고

오히려 타로점이니 사주카페니 해서 젊은사람들은 물론 외국인들까지도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한시대의 영웅호걸이나 군주가 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속에는 예언이 많이 등장하곤한다.

선지자들이 나타나거나 하다못해 꿈을 빌어서라도 등장이나 퇴장에 대한 암시가 있었다고 한다.

역사를 한페이지를 장식할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이니 이런 신화가 없다는 것이

더 이상할 수도 있지만 매스미니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일수록 하늘에 운을 맡기고 사람들의

입이 더 무섭게 느껴졌던 시절일수록 이런 동화같은 전설은 빛을 발했을 것이다.

서양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는 적중률이 높기로 유명해서 그간 수없이 인용되고 시절이

하수상하다 싶을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서이기도 하다.

그간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거의 맞았다고 하는데 그 마지막예언이 너무 무시무시하여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크기변환_사진 504.jpg

 

 


우리나라에도 토정 이지함의 저서인 ‘토정비결’이 있지만 재미삼아 보는 정도랄까 시대를 구분하여

세밀하게 드러내는 부분이 없는 편인데다가 적중률이 높은편이 아니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역사속 권력자들이 안으려 했던 하늘, 그들이 안으려 했던 하늘을 점쳐 꿰뚫어 본자 있으니...’

 

포천(抱天)이란 제목처럼 하늘을 안는자가 세상을 얻는다는 이야기인데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 즉

점을 보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상의 애꾸눈 점쟁이 이시경이 남겼다는 예언서 이야기를 시대를 넘다들며 한 시대를 쥐락펴락한

수많은 권력자들의 운명과 대비시켜 풀어놓음으로써 실화인지 아닌지 한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기이한

만화책이다. 대원군의 아들 고종이 왕이 될 것이라 예언했다하여 천하에 이름을 떨친 관상가 백운학의

이야기는 매천야록에도 전해져 올만큼 실제한 것이 분명해보인다.

지금도 이이름으로 활동하는 역술가들이 여럿이라니 백운학 박유붕이 신통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인생을 오래살다보면 어지간한 관상정도는 봐줄만한 식견이 생기기도 한다지만 왕이 될만한 재목을

알아본다는 것은 과연 공부만 한다고 가능할 능력인지 궁금해진다.

 


관상으로 호환으로 자식을 잃을 것을 예언하고 호랑이를 잡기위해 벼락틀을 세우고 한바탕 난리를

치르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절로 나오게 된다. 아무리 남의 운명을 점치는 예언자라 할지라도 정작

자신이 속곳에 방뇨를 하여 망신을 당할 것은 몰랐던가 보다.

만약 이시경이 이렇듯 예언에 능했다면 10만양성설을 주장한 율곡과는 친분이 있는 것으로 나오는 김에

미리 대비해서 왜놈에게 능욕을 당하는 역사만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긴 내가 그시대에 살았대도 그말을 믿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예언이라는 것이 겪을 것 다 겪어보고서야 증명이 되니 안다고 해도 꼭 피한다는 보장이 없기가

부지기수일 것이다. 너무 앞서나가는 사람은 모난 돌에 정 맞듯이 되려 자신의 안위마저 보장할 수 없을테니

보인다고 안다고 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크기변환_사진 505.jpg

 

 

복채를 두둑이 챙기거나 관상으로 면접을 본다는 기업체에 불려 다니는 점쟁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밤에도 별이 보이지 않을 만큼 화려해진 시대가 되어서 일까.

도리어 앞을 내다보는 일들이 더욱 어려워진 것 같다.

권력의 횡포에 허리한번 펴지 못하고 살아가야 했던 조선시대 불쌍한 백성들에게 그저 막걸리 몇 사발에다

장국 한그릇으로 가난한 백성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이시경의 유유자적이 호쾌하기만 하다.

엉뚱발랄한 어린 딸 초희의 아버지 골려먹기도 재미있거니와 가는 곳마다 새엄마가 열둘이라니 난봉꾼

이시경의 남은 여정에 안팎으로 여난(女難)이 예상되는 바,

그가 남겼다는 예언서에 등장할 인물들과 사건들과 더불어 두 부녀의 좌충우돌이 더욱 궁금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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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서울산책 - 쉽고 가볍게 즐기는 서울 걷기 여행 레시피 38 동네 한 바퀴 시리즈 1
이하람 지음, 이동천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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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등잔밑이 어둡다’라는 말은 바로 나같은 사람을 두고 생긴말이 아닌가 싶다.

태어난 후 몇 년을 제외하고는 몇 십년을 서울하늘아래서 살아왔건만 이렇게 좋은 곳이 많다는 걸

모르고 지내왔었다. 지난 추석처럼 연휴가 길어지는 날이 오면 유럽을 가볼까 중국을 가볼까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제주도를 가볼까 하고 다른 곳에만 눈을 돌렸지 가까운 곳을 깊이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생기고 세계각지에서 관광객이 많이 온다는데 서울 둘레길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명소가 되었다는데 무심죄로 서울시민자격을 박탈하는 법이 없기에 망정이지 복잡하고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발걸음을 못떼고 있으니 아무리 좋은 곳이 많으면 뭐하겠는가.

게으름이 발을 묶고 있었으니 이참에 ‘서울 정복하기’에 도전을 해볼 모양이다.

제목처럼 두근거리는 맘으로 우선 책으로 ‘눈산책’을 먼저 나서보자.

 



 

‘산책’이란 단어에는 천천히 걷는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니 ‘빨리빨리’에 길들여 고단했던 생활을 잠시

내려놓고 사진으로나마 서울의 풍경을 감상하노라니 고즈넉하고 여유있는 마음이 저절로 찾아든다.

하물며 워킹화라도 갈아신고 서울길을 사뿐사뿐 걷게 된다면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

이제 서울은 세계의 거대한 도시 몇위안에 들만큼 어마어마한 크기와 인프라가 구비되어 있는 국제적인

도시가 되었다. 사방에 둘러쌓인 콘크리트 숲들이 현대적이고 편리함을 주는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져버린 옛모습들이 문득 그리울 때가 많다.

 

북촌의 한옥마을이나 후암동의 옛동네처럼 추억을 만날 수 있는 곳들도 있지만 서투른 개발로 인해

망가져 버린 모습을 복원한 것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청계천이나 성곽길같은 곳들이 바로 그런 곳이다. 대한민국이 과연 먹고 살만해지긴 했구나 하고

느껴지는 곳들도 곳곳에 눈에 띈다. 서울숲이며 한강다리위에 세워진 조망대, 푸른 나무들이 자리잡은

공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리라.

 

 

작가가 소개한 서울의 명소들을 보면 일단 사람냄새 폴폴나고 휴식이 있으며 추억이 느껴지는 곳들이다.

한달이면 두세번은 가게 되는 대학로며 광화문 홍대앞과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곳들과 청담동처럼

부티가 줄줄 흐를것 같은 곳에서부터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궁이나 릉에 대한 정보도 들어있다.

생각지도 않은 젊음의 캠퍼스까지....이런 곳을 추천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 신선한 느낌이다.

책을 읽는 중간 익숙치 않은 작가의 약력이며 나이들을 다시한번 검색하고 싶어졌다.

그녀가 소개한 곳들의 특징도 잘 잡아냈지만 골목마다 동네마다 깃든 과거의 이야기들까지

어떻게 짚어낼 수 있었는지...마치 그곳에서 너무도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처럼 이미 흘러간 시간들까지

천연덕스럽게 풀어내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골목이며 추억이며 비하인드스토리까지를 담아내기 위해

참 많은 수고를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 고향이면서도 무심했던 이태원의 골목길도 새삼스럽고 출퇴근길이면 지나쳤던 선릉의

또다른 이름 ‘삼릉’이 낯설면서도 아주 오래전에 소풍으로 가본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서래마을의 프랑스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카페가 단골일것 같은 그녀가 천원짜리 커피와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집을 강추할 때는 몇 년지기 친구처럼 낯설지가 않았다.

하기는 세대를 아우러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여행작가가 되려면 몇 만원짜리 점심식사에도 주눅들지 않고

자판기커피에서도 스타벅스의 향기를 느낄 줄 아는 신축성은 필수이리라.

어느새 그녀의 이런 발랄함이 내게도 옮겨진 것일까 경동시장안에서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걸어도 오래된

기와위로 펼쳐진 고추밭의 향연을 볼 수 있는 삼선동을 걸어도 마음먹고 머리손질을 하기위해 청담동을 간다해도

맘 불편하지 않게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서울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그사랑을 여기저기 나누어 주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들을 듣자니 새삼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서울이 더 자랑스러워진다.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그녀와 함께 서울길을 타박타박 걷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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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갖추고 상대를 압도하라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김문주 옮김, 펑슈화이 편역 / 비즈니스세상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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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란 전쟁과도 같아서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꺾고 우위에 서거나 반대로 패배자가 되어 낙오자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전장에 나가기 위해 체력도 좋아야 하고 무기도 좋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지략이 있어야만 적은

힘으로도 상대를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17세기 성직자 출신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손무의 <손자병법>과

그의 저서 <지혜록>을 일컬어 ‘인류 3대 지혜서’라 한다니 대단한 작가임이 분명하다.

인류 3대 지혜서를 보면 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법이나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등 왕이나 승리자가

되기 위한 지침서임을 알 수있다. 그만큼 인간으로서 최고가 되는 길은 마치 전쟁과 다름없음을 반증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왕이 되거나 승리자가 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군사의 숫자나 무기의 종류보다 ‘지혜’에

있음을 저자는 간파했던 것 같다. 동서고금을 통해 지혜를 가진자들의 승리담을 예로들어 상대방을 압도하는

방법을 조언한 이책이야 말로 옛날보다 더 복잡하고 변수가 많아진 현대인들의 필독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상대도 하지말라’더니 인용된 중국의 역사에 등장한 인물들의 흥망성쇠를 보니

모든 인간사를 총망라해놓은 압축서를 보는 것만 같다.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하고 서로가 승리를 위해 온갖 지략들을 동원하고 때로는 용기로 때로는 속임수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장면들을 보니 한나라의 역사가 몇사람들의 머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통제하는 힘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포카훼이스’란 말이 있듯이 말과 행동을 감추고 침묵을 지킬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만 진정한 승리를 거둔다니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얼굴에 한껏 드러내는 나같은 사람은 아무래도 반은 지고 들어가는 셈이 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버려지기 전에 먼저 버려야 한다’는 말은 사실 너무 어려운 숙제이다.

물러날 때를 알 수 있다면 당연히 현명한 사람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때를 알기 어렵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고 욕심을 내려놓을 마음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책을 읽는 내내 거울을 보듯 나를 비쳐보면서 부족한 점이 한둘이 아니란 것을 알게되니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승리자는 커녕 남의 뒤를 쫓기에도 역량이 많이 부족하니 영웅호걸들이 앞을 내다보는 혜안과 지혜가 못내

부러울 뿐이다.

언제 당근을 써야 하는지 채찍을 써야하는지 판단하는 일이나 자기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할지 숨은 듯

침묵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일들도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사랑에 관해서도 신비함을 잃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함에도 막상 콩깍지에 씌우면 물불을 못가리는

맹꽁이가 되어버리니 늘 쩔쩔매는 포로가 되기 십상이다.

 



 

 

닉슨대통령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키신저의 처세를 보면 외교의 달인답게 중국과 손을 잡는척하여 소련을

긴장시켜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든지 어느 한 권력자에게 몰입하지 않고 흔히 말하는 양다리작전을 구사해

정권이 바뀌어도 살아남는 지략등은 정말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지렛대를 이용하면 혼자힘으로 도저히

들어올릴 수 없는 것들을 들어 올릴 수 있듯이 지혜야 말로 삶의 지렛대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지렛대를 사용할 줄 모르거나 안타깝게도 역량이 부족하여 쉬운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집중해서 상대를 꿰뚫어 보는 안목도 힘을 역이용하는 인내심도 용서하는 관용도 부족한 내가 과거에 왕손으로

태어났더라면 틀림없이 나라를 말아먹고 말았을테니 현대에 범부로 살아가는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조르주 상드’라는 남성작가의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할 수 밖에 없었던 뒤드방부인이 살았던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라 생각하자.

하지만 삶의 다하는 순간까지 우리는 전장에 나선 군인과도 같다는 것을 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늦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많이 남지 않은 시간을 알차게 쓰기위해서는 이 책속에 있는 지혜라도 빌어 느슨해진 삶을

탱탱하게 끌어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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