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불만족'의 작가 오토다케는 삶 그 자체가 기적인 사람이다. 태어날 때 부터 팔 다리가 없는 기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긍정적인 사고로 천형을 극복하고 정상인 못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귀감을 주는 멋진 남자이다. 더구나 얼마전에 둘째 아들까지 낳았다니 육체의 힘을 뛰어넘어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그가 스포츠라이터로 활동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의 주인공처럼 실제로 초등학교 교사로 교단에 섰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었다. 이 책 출간후 인터뷰에서 밝힌 것 처럼 5-3반 아카오 선생님은 오토다케의 분신이며 아이들 앞에서 무방비로 자신을 내보이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승부했던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아직은 어린아이일 뿐인 5학년이지만 개성이 다른 아이들이 모인 그 세상에서는 제법 심각한 일들이 아이들을 슬프게 하기도 하고 고통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꿈이기도 했던 초등학교 교사가 되긴 했지만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아카이 선생은 아이들의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진정한 '선생님'이 되어간다. 순수한 열정이나 충만한 자신감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난관들을 노련한 선배 선생님들의 조언과 보조교사로 곁을 지켜주는 시라이시의 도움으로 헤쳐 나가는 모습에서는 역시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없는 존재라는 것을 또 한번 깨닫게 된다. 5-3반 아이들은 자신들과 축구도 하고 수영도 하는 일반적인 선생을 원했을 것이다. 스스로는 우유병의 뚜껑도 따지 못하고 등산도 할 수 없는 선생님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자신이 부족한 것을 도와달라는 솔직한 선생님의 태도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된다. 환경이 다른 가정에서 자라고 장점과 단점이 다른 아이들에게 닥친 문제들을 서로가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는 장면에서는 가끔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교실이 아닌 벚꽃나무 아래에서 정한 학급목표 '모두모두 웃는 얼굴'은 때로 속상하고 우는 얼굴이 되기도 했지만 몸이 불편한 선생님과 함께 소풍을 가고 싶어했던 3반 아이들이 선생님의 휠체어를 서로가 밀어주고 이끌면서 결국 산의 정상에 올랐듯이 그렇게 모두가 웃는 얼굴의 목표를 이루고야 말았다. 조금은 모자라고 조금은 삐죽하고 조금은 자신없는 아이들에게 아카오 선생이 늘 해주었던 그 말! '괜찮아 3반!' 참으로 힘이되고 가슴이 따뜻해 지는 말이다. 나에게도 이렇게 힘을 주셨던 선생님이 계셨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떠나셨지만 사는 동안 내내 힘이 되주셨던 그분처럼...5학년 3반 아이들에게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괜찮아 애들아, 힘을 내자!. 세계 68억 인구중에 한 교실에 만났던 5-3반의 특별했던 1년을 보면서 존경과 사랑이 식어가고 있는 우리나라 교실의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렇게 훌륭한 최고의 선생님이 많아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언젠가 주부들의 가사노동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1일 14시간 기준으로 433만원이라는 보도를 본적이 있다. 어찌 보면 많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휴일없이 365일 출동대기조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로 보면 많은 금액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살림이라는게 하루종일 일해도 티도 안나고 하루만 안하면 왕창 티나는.. 다람쥐 체바튀 도는 것 같은 일상속에서 가끔 가사일을 대신하는 도우미나 로보트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막연한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세상이 오고야 말았으니 청소나 빨래는 물론 아이를 봐주거나 책을 읽어주고 무거운 가구 옮기기 같은 일을 도와줄 로봇이 조만간 등장할 모양이다. 이제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될 날이 멀지 않았으니 받은 적도 없는 월급을 아쉬워 할 일은 없겠다. '일한다', '노예'라는 의미를 갖는 체코어 'robota'에서 유래한 로봇이 세상과 마주하는 시대가 왔다. 아톰이나 태권브이같이 만화영화에서 보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의 고단한 노동을 대신하거나 감성까지 겸비한 인간의 복제품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터미네이터'같은 무법자가 나오는 미래가 걱정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전세계 주부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을 것은 확실할 것 같다. 전세계적인 기후변화로 인해 폭우와 폭설이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곡물이 자라지 못하는 현실이 다가온 요즘 좁은 공간에서도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게 고안된 토감이란 식물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땅위에서는 토마토가 자라고 땅속에서는 감자가 자라는 인공적인 잡종식물이다. 아직 그 크기나 질이 원래의 감자나 토마토에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조만간 성공할 것으로 본다. 이런 먹거리들이 나온다면 굶어죽는 아이들이 없어질 것같은 희망이 생긴다. 인간의 장기를 대체할 바이오 장기가 현실화 되고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면 불치의 병도 정복될 날이 올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능력은 무궁하기만 하다.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테크놀로지의 세계는 상상을 현실화시켜주는 마법의 기술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혜택을 누리고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환경을 살리고 자연과 상생하는 참된 테크놀로지야 말로 건강한 지구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EM발효액을 만들어 보는 것도 그런 미래에 한걸음 다가가는 실험이 될 것이다. 설탕이나 당밀, 천일염과 쌀뜨물을 이용하여 설거지 할 때 세정액이나 공기중에 있는 악취제거제로 사용할 수 있는 발효액을 만들어 사용한다면 하천의 오염을 줄이고 환경을 보전하는 착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속도로 테크놀로지의 세계가 진화한다면 지금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직업들은 또 얼마나 만들어질지 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너무 궁금해지는 책이다.
세상 도처에 '강남'과 '강북'이 있었다. 부와 권력과 명예가 득시글 거리는 신시가지가 번창할 수록 강 이편의 구시가지의 어둠은 더욱 짙어만 갔다. 그렇게 인간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고 '양지'와 '음지'로 나뉘었다. 이제 인간들은 기능적으로 뚫린 대로를 불철주야로 달려 꿈과 이상을 쫓아 '강남'을 향해 불나방처럼 몰려들고 있다. 이제 전세계의 중심으로 급속하게 떠오르고 있는 중국이 바라다 보일 것만 같은 서해의 'ㅁ'시(市)! 대중국 수출을 위한 제조 공장이 들어서고 공항의 활주로가 만들어지는 그 도시에 '탁월한 비즈니스맨'인 시장이 있다. 한 때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혁명을 꿈꾸다가 감옥살이를 한 이력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어느 그물망에도 걸려들지 않는 탁월한 정치 감각의 바탕이 되어주었다. 가장 빠른 시간에 ㅁ시를 거대한 도시로 키운 시장의 앞날은 무척이나 탄탄해 보였다. 퇴락한 도시를 재개발하기 보다는 바다를 막고 땅을 만들어 새로운 시가지를 조성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환영받는 시대에 발 맞추어 꿈의 도시를 건설하고 그 도시에 입성하지 못한 미개국민들은 변방인 구도시에 갇힌 채 이제는 쓰레기 매립장과 비환경주의자들의 은신처가 된 그 곳에서 오염과 공해에 찌들어 병든 가슴을 부여안고 숨죽인 채 살아가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던 남자는 '대파'라는 말로 그 말을 대신했고 여자도 '쪽파'라는 말로 화답했던 아름다운 젊은이가 있었다. 비빌 언덕이 아무것도 없었던 남자는 사법고시로 벽을 넘고 싶었지만 결국 젊음을 다 허비하고 나서야 손을 들고 만다. 여고생이었던 소녀는 사랑을 쫓아 그 남자와 결혼했지만 그의 추락으로 함께 ㅁ시의 구시가지로 낙향하고 말았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패배를 인정하고 결코 뛰어넘을 수 없었던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접는 것 뿐이었다. 자식에게 만큼은 빛나는 미래를 물려주고 싶었던 여자는 '비즈니스우먼'이 되어 학원비와 과외비를 번다. 한 때 정의를 갈망하고 전도 유망했던 경찰이기도 했던 한 남자는 '탁월한 비즈니스맨'인 시장을 위해 선거판에 뛰어들어 결국 시장의 강력한 비즈니스의 희생자가 되어 이제는 경매처분만을 기다리는 '횟집'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고독한 '비즈니스 맨'이 되어 버렸다. 세상 사는 모든 일이 '비즈니스'라 믿었던 여자와 남자는 몸을 파는 여자와 몸을 사는 남자로 처음 만났다. 변방의 도시에서 허우적거리던 두 사람은 곧 동지가 되었고 공범이 되었다. 그 남자의 자폐아 아들을 위해 밥을 짓고 청소를 해주면서 여자는 행복을 느꼈고 언제부터인지 '쪽파'를 외치고 싶어졌다. 이미 무너져버린 남편과 버릇처럼 학원과 과외를 오가는 아들의 존재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사는 일이 자꾸 험악해진 탓일까. 우리 시대를 이끄는 중견작가들이 일제히 성공지상주의의 세태를 향해 붓을 들었다. '강남몽'과 '허수아비 춤'에 이은 '비즈니스'역시 경제가 최우선이었던 시대의 오류들이 인간들은 어떻게 잠식해 나가는지...실랄하다 못해 날선 비수처럼 날카롭기만 하다. 자본시대의 권력과 부와 명예를 향한 '비즈니스'는 얼핏 타당하고 명분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 서슬에 튕겨져 나가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오히려 그들을 딛고 이용하고 결국 내팽겨치는 작태에 울분이 치올라오고 가장 마지막까지 몰린 현실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세상은 풍요로워졌다는데...가난과 절망은 오히려 더 치밀하고 교묘하게 인간들의 삶에 바이러스처럼 침투해오는 것 같았다. 결국 여자가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그 남자의 자폐아들을 껴안는 결말에서는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속된 '비즈니스'가 아닌 잘 생긴 삶을 살것 같아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태풍이 몰아치는 어둔 바다로 떠난 남자가 바닷속이 아닌 그 어딘가에서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하고 있을거라 나도 믿고 싶다. 그래야 이 더러운 놈의 세상을 살아갈 마지막 힘이라도 남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어느 도시에 속한 사람인가. 나의 '비즈니스'는 무엇에 도달하기 위한 것일까. 자식의 미래를 위해 몸을 팔아 과외비를 벌어야 했던 여자처럼 나도 '비즈니스 우먼'의 삶처럼 고독해졌다. '내가 맞닥뜨린 오류는 , 그가 세계의 과오를 되돌리려는 야망 때문에 고독할 때, 나의 고독은 겨우 사랑의 갈망을 쫓아온 숲에서 미아처럼 길을 잃고 말았다는데 있었다. 슬픈 아이러니였다. 믿어야 할 나의 조국은 여전히 그 어디에도 없었다.'
디자인(design)은 '의미하다', '표현하다', '그리다'를 뜻하는 라틴어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20세기 초만해도 디자인보다는 기술을 더 우선시 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회사마다 기술이나 품질이 비슷비슷해지면서 인간의 개성과 다양성을 담은 디자인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효과뿐만아니라 기술과 접목된 '디자인의 힘'의 위력은 놀랍기만 하다. 우리 아이들이 열광하고 있는 아이팟이나 멋진 자동차뿐만아니라 인체공학을 본뜬 의자, 오염된 물을 정화시켜 생명을 살리는 휴대용 정수기까지..더구나 뽀로로와 같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시장은 수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의 왕국 일본의 경우를 보면 우리가 왜 디자인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 수출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디자인으로 세계를 석권하는 꿈도 가질만하겠다. 자! 이제부터 내가 가장 취약한 디지털의 세계를 들여다 보자. 사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조차 낯선 내게 이 책의 비유만큼 명쾌한 정의가 없다. 눈금이 움직이는 용수철 체중계와 숫자판이 있어 소수점 이하의 값까지 읽기 쉽게 측정해 주는 전자 체중계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즉 소리, 빛, 전압과 같이 연속되는 값으로 표현되는 신호가 아날로그 신호이다. 반면 디지털은 정확도가 높다. 바쁜 현대를 살면서 디지털세대에 속하지 못한 아웃사이더의 서글픔은 있지만 때로는 미세한 떨림으로 휘청거리는 화살표 눈금이 마음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편지대신 이메일을 주고 받고 종이책대신 전자책이 유통되는 시대이지만 때로는 주판알을 튕기며 계산에 몰두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나 저울추를 이리저리 맞추며 무게를 재고 덤까지 얹어주었던 시장골목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원은 점점 고갈되어 가고 환경은 점차 오염되어 가는 이 시대에 무작정 눈만 감고 있을 수는 없다. 탄소를 왜 사고 팔아야 하는지, 왜 1회용 용기를 줄여야 하는지, 사소한 것들부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자연에만 기대어 무작정 소비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미 대체 에너지가 개발되고 있고 다음 세대를 살아가야 할 내 아이들이 선택해야 할 직업군도 다양해지고 있다. 바로 이 책의 장점은 미래의 세상을 대비하는 설계도를 제시해 주는데 있다. 무한한 테크놀로지아의 세계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예언서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이 책에 소개된 제작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방학숙제 과제물로 적당한 과학 소품들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이끌어 낼만 하겠다
시인으로 등단했던 그가 어느 날 온 세상을 누비고 다니는 여행작가가 되었다. 어찌보면 그가 쓰는 시와 세상을 향해 들이댄 카메라의 렌즈가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긴 망막에 맺힌 사물의 그림으로는 해독 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써내려간 싯구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삶은 더욱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책을 낸 것일까. 그가 내민 이 책은 세상을 보고 느끼고 말하고 싶었던 것들중에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전하고 싶었던 것들을 시와 풍경을 담아 전하고 있다. 집에 한달만 있으면 어느새 아내가 답답하다며 밀어낸다고 궁시렁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한 때 여행지를 소개하던 기자생활을 하다가 불쑥 사표를 던지고 배낭을 꾸려 길로 나서게 된 이면에는 그의 핏속에 흐르는 역마살때문이 아니었을까. 외항선원이었다는 아버지가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배를 탄 것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낯선 곳에 수없이 닿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어느새 다시 세상밖을 꿈꾸는 그가 혼자 먹는 밥에 쓸쓸함과 비애를 버무려 넣으면서도 길 위에 서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을 닮은 사람들을 만나고 지나간 추억을 만나고 낯선 곳의 공항과 터미널의 경계에서 삶을 넘나드는 그에게 여행은 무엇인지 조금씩 읽혀졌다. 그가 닿은 곳이 바다이든 산이든 숲이든...그곳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결국 그가 만난 것은 자기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여행의 목적은 결국 자신을 만나는 일! 바람이 미친듯이 몰아치는 제주도의 우도에서 밤새 텐트줄을 붙잡고 날을 새면서도 참치 통조림을 깨끗이 비우기 위해 간 사람처럼 허허롭게 돌아오면서도 그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내인생!' 하고 메시지를 보낼 것만 같다. 비우기 위해 떠났던 여행에서 결국 비우지 못한 것들과 붙들 수 없는 것들이 교차되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 그가 나를 자꾸 부르고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