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지구에서 살고 있는 내가 조그만 먼지가 된 느낌이다. 아니 먼지보다도 더 작아서 존재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그런 미미한 존재! 수학이라면 더하기 빼기나 겨우 하는 정도인데다 책의 내용에도 등장하는 1/2+2/3 이란 문제조차 숫자가 등장하는 순간 갑자기 얼어 붙게 만드니 말이다. 변호사니 의사니 하니 이른 바 브레인집단들조차 왜 고급수학이 필요하냐고 반문한다니 그저 가계부가 끄적거리는 수학비애호자인 나와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안심하기도 했지만...수학을 모르는 사람은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없다는 성현들의 말이 영 꺼림직하기만 하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와 휴대폰, TV등 모든 기기들에 수학이 숨어있다니 마냥 싫다고 숨을 이야기가 아니다. 이작품은 수학에 무한한 애정과 비상한 재능을 지닌 작가의 '수학의 고찰'이라는 명제도 있지만 수학약소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탄원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는 문인들을 우대하고 수학자를 천시하는 풍조에 의해 비록 중인들에 의해 명백이 이어져 오기는 했으나 세계적인 수학자들과 어깨를 겨눌만한 인물들이 많았었고 세계적인 IT국가가 된 저변에는 이런 밑바탕이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앞섰다고 자만한 일본보다 우리가 뒤질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다만, 입시위주와 기초학문을 외면하는 현실에서 국가적인 지원이 없다면 이러한 오명을 씻기는 점점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무한한 우주에 지구는 하나의 점이고 우리는 눈에 보이는 지금 이 시간대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미미한 존재라는 걸 실날하게 깨우쳐주는 소설이다. 월드컵때면 온국민이 축구신드롬에 빠질만큼 열광하고 하나의 축구공에 온 지구인들이 미쳐돌아가면서도 오각형의 가죽 32조각이 만들어낸 축구공에 우주의 비밀이 있는 것은 몰랐을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가 2002년 월드컵 4강의 신화가 단지 우연이 아닌...예정된 일이었다는 사실도. 축구의 발상지라는 작가의 말이 맞는다면 4강도 아쉬운 일이다. 축구를 잘할 수 밖에 없는 유전자가 먼 조상으로 부터 내재되었으니 우승도 먼 이야기가 아닐 듯 싶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듯 차원이 다른 세계로 이동하고 같은 공간 다른 시대를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수학의 비밀을 풀었다면 천국의 열쇠를 얻은 것과 같다고 한다. 수학의 천재들이 모여 '컴가면'의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과 실종된 학자들의 행적을 쫓는 과정이 흥미롭다. 다만 난해한 그림처럼 보이는 수학식들만 빼면 말이다. 모든것이 변해도 절대지식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수정되고 재해석 되긴 하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세상이 신들이 뻥하고 내지른 우주 축구공이라도 우린 절대 알 수 없다니.. 머리속에 온우주를 들여놓은 것 같이 복잡한 내일상이 갑자기 허망하게 느껴진다. 크게보라..이세상 모든 삼라만상이 티끌만도 못하니..무거운 짐을 지고 살지 말지어다.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잡아타고 앨라바마의 소여턴스프링스로 달려가고 싶다. 분명 입구에는 '당신이 좋아하게 될 마을'이란 환영 입간판이 있을 것이다. 물론 비밀도 없고 소문이 온마을에 퍼지는데 긴시간이 필요치 않다는 문구는 없을 것이다. 앨라바마에서 여덟번 째로 오래된 신문인 '소여턴스프링스 센티넬'은 일주일에 한번 발행되긴 하지만 마을사람들이 신문이 나오기도 전에 무슨내용이 실릴지 이미 다 알고 있으며 비록 발행인의 '주관적인 발행방식'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게 바로 소여턴스프링스만의 독특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학교 선생님이 있고 전화벨소리가 울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있는 그곳! 바로 그마을에 가서 짐을 내려놓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나는 적어도 50년쯤 살아야 마을사람이 되었음을 인정받겠지만 말이다. 침례교와 감리교의 두교회가 있으며 서로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리 표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L'을 'R'로 발음하는 야구코치가 있고 물론 투수는 그의 아들이 맡는다는 불문율이 전통처럼 이어지는 곳! 가을에 열리는 연례 켐퍼 카운티 시장은 일주일간 성황을 이루고 장의사인 마이크가 여러개의 관과 비석을 전시하는 것을 나역시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언젠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꼭 필요한 물건이니 기왕이면 취향에 맞는 것으로 준비해 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자기의 관을 미리 골라놓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과연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 자란 내게 이런 고향이 있었다면 항상 든든한 울타리처럼 내영혼을 감싸주지 않았을까? 이책의 저자이며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의 작가 '앤디 앤드루스'의 위대한 능력은 바로 소여턴스프링스의 비옥한 자연과 마을사람들의 사랑에서 자라난 것이 아니었을까. 노먼의 그로스테리아와 릭의 이동가게는 더이상 으르렁거리지 않고 동업은 잘하고 있는지.. 너무 더워서 마을사람들이 죽은 듯 조용하기만 하면 전혀 소여턴스프링스답지가 않다. 앤디에게 쓸거리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죄악'에 가깝다고 단언하겠다. 이마을에서 지금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적어도 이책을 읽은 독자에게는 '속편'의 기대감을 저버려서는 절대로 안될 일이다. 제발 개발이란 이름으로 변신하는 불행한 일은 없을 지어다. 소여턴 스프링스여 영원하라!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여전히 내 귓가에서 맴도는 이 한마디!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청춘들은 과연 가슴이 뛰고 피가 끓는 신록의 푸르름만이 가득할 것인가. 하긴 고대의 동굴에서조차 '요즘것들은 버릇이 없어'했다니 우리의 청춘은 언제나 새초롬이 실눈뜨고 꼬나보고 있는 노목들에게 둘러쌓인 꼴이긴하다. 꼬나보기만 하면 괜찮게? 노파심이란 말이 왜 나왔겠는가. 어쩌면 푸르름에 샘나신 어르신들이 늘 뒷짐지고 혀를 차며 던지는 그 수많은 잔소리들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일찍이 초대 국제백수협회 총회장을 역임하고 세계 백수자활대책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현재는 사단법인 백자방협(백수자살방지협회) 이사장이기도 하시고 쓰면 작가 안쓰면 백수로서의 양다리 인생을 개척하여 절망에 빠져 있는 모든 백수들에게 희망을 무료로 공급하시는 이분의 말씀은 결코 잔소리가 아니다. 조금 쓰기는 하지만...하지만 좋은 약은 입에 쓴법! '안쓰럽구나 그대여. 나는 먼저 마음의 담요 한 장을 꺼내 그대의 시린 어깨부터 감싸주고 싶다' -72p 그렇다고 너무 떨지는 말자. 이렇게 담요까지 미리 준비해주시는 자상한 도사님이니까 말이다. 지금 청춘들이 지나는 길을 술에 쩔어 질곡의 갈지(之)자를 그리며 당당히 걸어왔고 마음이 비우기 전에 내장이 먼저 비어있던 젊은 날을 눈물로 걸어왔으니 적어도 몇마디쯤 던질 수 있는 자격증은 갖춘셈이 아닌가 말이다. 지금 비록 캄캄한 고치속에서 절대 고독과 싸우고 있을지라도 '희망'의 끈을 놓치 않는다면 그대들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것임을 호언하노니 결코 공약(空約)이 아님을 먼저 저만치 앞길에 선 저자와 청춘그대들이 서있는 중간에 서있는 나는 안다. 타협없이 의(義)만 충만했던 치기어린 시간들과 용서하지 못해 울분으로 소모되었던 아까운 시간들을 나역시 지나왔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은 모두 내것이니 내가 맘대로 쓰고싶은 곳에 쓰면 될 줄 알았다. 누구에게는 24시간 금처럼 부렸던 시간들이 내게는 24분처럼 허망하기도 하였으니 결코 노인의 말을 흘려듣지 말지어다. '그대여 이제 가까이 오라. 가까이 와서 저 비틀거리는 세상에 연민을 던지면 술을 마시자.' -194p 비틀거렸던 걸음을 멈추니 세상이 비틀거려서 술도 끊었다는 노인이 결심을 꺾고 그대들과 원샷을 하시겠다지 않은가. 깊은 눈을 들어 그대들의 아픔까지 들여다 보신다지 않은가. 나도 노인곁에 서서 외치련다. 용기를 가져라. 분연히 일어서라. 찬란한 날개를 달고 창공을 날아올라 아래를 굽어보며 그대들도 똑같이 외칠 것이다.
'쯧쯧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어 내가 어렸을 적에는.....' 그런날이 올 것임을 의심치 않으며 노인도 나도 그대들이 도착할 그 길에서 기다릴 것이다. 그때즈음 노인이 여전히 강원도 산골에서 트위터를 하며 꿋꿋하게 버텨주기를 더 소망하지만 말이다.
당신의 수입은 얼마나 되십니까? 아마 충분하다고 대답할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항상 수입에 비례한 지출이 있기마련이고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으므로 남는다고 생각하는 여유보다 늘 모자라다는 아쉬움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당신은 부자라고 생각하는지..혹은 중산층? 물론 빈곤층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일본의 트렌드 전략 전문가인 오마에 겐이치는 몇 년전 중산층의 소멸 현상을 지적하며 20년동안 관찰한 결과를 'M형 사회'하는 이론으로 발표해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다. 사실 일본뿐아니라 한국과 이책의 저자가 성장한 대만에 이르는 동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이 이미 마치 M자 모형으로 부자와 빈곤층의 양극화가 뚜렷하고 중산층이 몰락한 'M형 사회'에 진입했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경제국가순위 상위에 진입한 우리나라역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중산층이라고 생각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신빈곤층으로 전락한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전후 재건의 시대와 경제개발 5개년 계획들의 연이은 성공으로 성큼 경제국으로 도약한 우리는 이제 '보릿고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고 최근 불황의 여파로 위축되긴 했지만 분명 수십년전에 비하면 살기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가 우려한 것은 밥먹고 살만한 정도의 경제수준이 아닌 높아진 수준에 맞게 삶의 질도한 높아져야 하고 그에 따르는 단단한 경제력의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책은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의 사이의 소득차가 거의 20배 이르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사회가 우리를 구해주길 기다리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이 시대의 생존법을 찾자'는 메세지이다. 당신은 몇살이 은퇴를 할 예정인가? 노후는 준비되고 있는가? 당신 주변에 귀인은 몇명이나 있는가? 특히 사교육에 찌들은 우리나라 부모들의 경우라면 자신들을 위한 노후준비에 대비하고 있다고 대답할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것인가. 유유상종이라는 속담처럼 과연 내 주변에는 나를 성공으로 이끌수 있는 인물들이 몇이나 될것인가. 35세 이전에 이런준비들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에 제법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 나역시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하지 말라' '돈이 돈을 버는 구조가 되려면 남을 잘 부릴줄 알아야 한다'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온 우리세대들에겐 정신이 번쩍드는 회초리가 아닐 수 없다. 단순히 부지런하게 일만 하지 말고 지혜를 발휘하여 또다른 수입나무를 키우라는 것이다. 저자는 어느 순간 안락한 고연봉의 월급생활을 접고 5년후, 10년후를 준비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우리는 자칫 지금 철밥통에 안심하고 이 안락함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당장 안정적인 월급생활을 청산하고 창업에 나서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림처럼 혹시 눈의 착시현상처럼 잘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곰곰히 돌아봐야 할 일이다. '가난의 뿌리는 끊기 어렵고 부의 씨앗은 자리기 어렵다.' 혹시 나도 '악성 가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아닐지... 문득 '우리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을 받지 못하는 1세대'라는 저자의 말이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분명 나도 그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므로.. '만약 당신이 현재 40세라면 1,839만 분이 남은 것이다.' -32p 너무 늦은 자각이 뼈아프게 느껴지는 한마디이다. 10년만 빠르게 이 책을 만났더라면 지금의 내모습과 위치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 남은 시간만이라도 수렁에서 건져내려면 맨발로 뛰어도 모자랄 판이다.
일제강점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격동기의 대표적 인물들의 삶이 숨가쁘게 펼쳐진 작품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이던 기회주의의 틈은 있고 눈치빠른 이들을 동아줄을 잘 잡고 하늘로 올라간 오누이처럼 승천의 기회를 얻게 되어있다. 대한민국자본가들..특히 부동산재벌로 일컬어지는 부자들의 과거 행적을 보면 정치와 군부의 커넥션이 필수적 요소였다. 전후 재건의 망치소리가 울리기 시작할 무렵 막대한 이권의 배후에는 큰 그림을 그리고 결정하는 권력들과 커넥션을 운영하여 정치자금을 챙겼던 정치세력까지.. 그야말로 한통속으로 이루어진 집단들의 몫이 될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소 뒷걸음치다 쥐꼬리 밟은 격의 우연한 부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탄탄하게 자리잡은 재벌들중에는 그시절 커넥션의 일원들이 많음을 우리는 알고있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라고나 할까. 격동의 세월을 몸소 체험한 작가의 실전적 이야기들은 80%가 실화라는 작가의 말처럼 때로는 실명으로 때로는 짐작가능한 실존의 인물들의 삶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첩보원으로 미군정시절에는 정보원으로 활동하던 '김진'이란 인물이 가장 대표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이다. 시작은 살아남기위한 선택 내지는 필연같은 운명이었다면 이어진 그의 행적은 권력의 깊숙한 내면에서 실리를 챙겼던 속물로서의 선택인 셈이다. 보잘 것 없는 태생에 배움도 짧았던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물론 성실하게 노력한 만큼의 댓가로 평범한 생을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선택받은 부류임에는 틀림없다. 자신의 자리를 이용하여 권력과 결탁하고 불우한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술집마담이 되거나 깡패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그리고 그들이 돈탑을 쌓듯 지어올렸던 아파트단지에서 묵묵히 맨손으로 시멘트를 바르던 선량한 사람들의 삶이 4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어떻게 달라졌는지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과연 성실하게 바르게 착하게 살자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삼풍백화점붕괴사고는 그 백화점을 쌓아올렸던 사람들의 삶과 그안에서 숨져갔던 사람들의 일생이 극명하고 드러나고 또한 스러져간 기록의 시작이었다. 부의 상징같았던 그곳은 있는 사람들 뿐아니라 성실하게 살아가려했던 수많은 종업원들의 죽음도 있었다. 임정아처럼 말이다. 그녀의 외침이 내마음을 크게 울린다. '여기 사람있어요' 그렇다. 권력의 가장 밑바닥 그들을 떠받히고 살아가는 무수한 선량한 사람들이 있음을..우리도 사람이라고..돌아봐달라고 외치는 것 같아 차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