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컬처블룸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대로마제국의 16대 황제이자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이다.
황제였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스스로를 경계했던 사람이었다.
세계 최강의 제국의 황제였고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존재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아첨으로 자칫 자신을 잃기 쉬운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권력이 사람을 부패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 태도가 사람을 무너뜨린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정말 쉽지 않은 선경지명이 아니던가.
철학자이기도 했기에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깊은 고찰이 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의 태도가 철학이 전해져내려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미 오래전 살다간 인물의 조언이지만 현대에서도 적용될 그의 주옥같은 말들이 난세인 지금 더욱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세월이 지나도 인간의 본성은 다름이 없고 언제 어디서나 쓸데 없는 인간들은 넘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책이 이렇게 다시 세상에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하다.
그가 살았던 시대보다 현대는 가짜의 구별이 더 어려워졌다.
AI가 더 인간같기도 하고 가짜뉴스에 속아넘어가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인류는 더욱 편리한 삶을 위해 과학을 발전시켜왔지만 인간 본성은 교묘해지고 가짜가 진짜를 넘어서 삶을 변질시키는 시대가 온 것이다.
통탄할 사실이 아닌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살던 시절에는 계급이 있었다.
가진 권력이나 부에 따라 인간을 등급별로 분류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국가를 지향하는 현대에는 계급이 사라졌을까.
더욱 치졸하고 세분화된 계급사회가 존재함을 우리들은 안다.
그리고 나를 속이는 사람에게도 분통이 터지겠지만 무례한 인간들에게 상처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한심할 정도이다.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온다면 인류는 정화되었고 더욱 행복한 시대를 맞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소환되는 것은 시대가 변해도 인간을 괴롭히고 부당하게 대하는 인간들은 여전히 넘쳐나고 공정한 사회는 요원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다시 마음을 추스려 붙잡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 또 우리의 숙제가 아니던가.
다 가진 사람이었지만 현명한 철학으로 스스로를 경계하며 살았던 철학자의 조언이 간절하게 와닿았던 시간이었다.
부부는 전생에 원수였다는 말도 있지만 현생에서의 인연으로 보면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거의 모든 부부는 사랑을 했고 같이 살려고 결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사랑도 희미해지고 정으로 산다는 말을 하게 된다.
중년의 남자 아서는 출장을 간 소도시의 중개인 여인과 잠시 바람을 피게 된다.
잠시 마음이 흔들리고 관심이 가기도 했지만 그저 지나가는 바람같은 관계였다.
익숙했던 아내와의 잠자리와 다른 색다름이 아서의 마음을 흔들었다.
중개인 여인 역시 유부녀였고 알고보니 불륜의 상대가 아서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친구의 부모님 금혼식에서 아서는 잠시 부부로 50년을 살아간다는 것에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아서 역시 아내말고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기도 했지만 가정을 깰 의사는 없다. 그저 삶에서 잠시 반짝거리는 흥분이 간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인 세영은 아이들의 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전에 했던 마트 계산원일을 다시 시작한다.
세영 역시 우연한 기회로 알게된 남자와 뜨거운 밤을 보내게 된다.
이혼남인 그는 여장부스타일의 세영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고 심지어 사랑같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세영은 그저 스치는 바람에 인생을 맡길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근육질의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뜨거운 감정을 물리치기 힘들다.
아서는 친구의 안경점에서 일하는 여직원에게 아주 오래전 느꼈던 신선함을 만나고 가슴이 설렌다.
큰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직원 역시 그에게 설레임을 느낀다.
중년에 이른 부부들이 어떻게 지루함을 이기고 다른 상대와 만나는지 마치 저자가 경험한 것처럼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오래된 상대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몸이나 마음의 설레임을 부도덕이라고 손가락질 하기 어렵다.
사랑은 남아있고 결혼을 깰 생각도 없지만 설레임을 물리치기도 어려운 현대 부부들의 모습을 잘 그린 작품이다.
누구나 잘 살고 싶다.
잘 살려고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게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님을 잘안다.
특히 요즘처럼 시끄러운 시절을 만나면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고 어디론가 조용한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어진다. 열심히 살았는데 해놓은 것은 없는 것 같고 허접한 인간들은 넘치고 살아갈 기운도 사라지는 것 같다.
이럴 때에는 누군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거가 그저 안아만 줘도 힘이 날 것도 같은데 나이가 들어가면 그런 일도 괜히 어색해진다.
나이가 들 수록 사람이 보인다. 사람의 진면목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적어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아니라 상대가 나를 밀쳐냈을지도 모르지만.
암튼 나이가 들어가면 좋을게 그닥 없는데 사람을 알아보는 재주는 조금 늘어가는 것 같다. 사람이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정리해야할 사람은 과감히 정리해야한다.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해온다던가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등등...
저자는 어떻게 그럴걸 잘 안단말인가.
맞다.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좋지만 바보는 되지 말라는 말에 무릎을 치게 된다.
좋다고 잘해주면 이용하려는 인간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그렇다고 부정적으로만 보지말라고 다독인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 수록 공감하게 되고 힘을 얻게 된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맘껏 살게 될 줄 알았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나만 그런 생각을 했던게 아니란걸 알았다. 처음부터 멋진 어른이라는 없다는 말에 울컥해진다. 그저 어른이 되었으니 어른노릇을 해야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뭐가 제대로 된 어른 노릇인 것인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책을 읽어갈 수록 살아내는 것을 힘들어하는 딸에게 건네주고 싶었다.
내가 전하고픈 이야기가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에게 저자가 전하고픈 이야기가 얼마나 큰 힘이 될지 기대를 넘어선 책이다.
얼마전 즐겨보는 TV프로그램에서 '홍콩영화는 왜 쇠퇴했는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과거 홍콩은 아시아의 허브도시라고 할만큼 비지니스의 중심이었고 영화며 여행의 성지였다. 그러던 홍콩의 화양연화는 이미 끝난 것일까.
그냥 홍콩여행에 대한 책이 아니고 왜 '퇴사 준비생의 홍콩'이라는 제목을 붙었는지 궁금해졌다. 매달 따박따박 받는 월급이 무서워서 그만두지 못하고 가슴속에 사표 하나쯤 써가지고 다니는 직장인이 한둘이겠는가. 기어이 버티다가 작년 가을 쯤 퇴사를 한 딸아이가 떠올랐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얼마나 서글픈 말인가.
하고 싶은 하고 살아도 짧은 인생이건만 그저 먹고 사는 문제때문에 억지로 끌려나가는 듯한 직장생활이라니. 야경으로 유명한 홍콩은 수면 부족의 도시라고 한다.
그래도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을 꿀 수 없다'라는 말이 왜 현대인의 아픔처럼 다가올까.
세계인을 사로잡았던 영화의 전성시대는 갔지만 추억은 여전한 모양이다.
첨밀밀, 중경삼림같은 영화의 포스터와 주인공들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 찬란했던 시절은 어디로가고 주인공들도 어디에선가 늙어가겠지.
씁쓸해진다. 하지만 영국에서 돌려받은 홍콩인들이 중국이란 생각은 거의 들지 않는다.
과거의 행복한 기억을 칵테일바나 커피숍, 쇼핑센터로 다시 구현해내는 것을 보니 홍콩인들만의 힘이 분명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퇴직을 준비하는 저자도 홍콩을 찾았던 것일까.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
'집이 제일 편하더라'고 돌아오는 여행이지만 분명 얻는 것들이 있다.
여유가 있어 하는 여행도 좋지만 뭔가 새로운 반전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여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새로운 생각으로 멋진 삶을 설계했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흑인 노예들의 역사를 알까? 지금은 서로 어울려 잘 살아가는 것 처럼 보여 오래전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의 후손이라는걸 모를 것같다.
벌써 몇 십년 전 미드로 소개된 '뿌리'라는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 잔인했던 흑인노예들의 역사와 아픈 여정이 떠오를 것이다.
지금은 유명해진 작가 알렉스 헤일리는 자신의 7대손인 쿤타 킨테가 어떻게 미국의 노예로 팔려가고 고난을 겪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풍요롭지는 않지만 자신의 고향에서 자유스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노예 사냥꾼에 의해 억지로 끌려가 배에 태워지고 낯선 곳에서 팔려나간다.
흡사 동물시장에 팔려간 동물들처럼. 검은 피부색과 원시스런 모습을 백인들은 동물과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팔고 사고 심지어 죽여도 되는 대상이라고.
극심한 노동과 탄압을 견디고 아메리카땅에 살아남은 후손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할까. 노예로 팔려오지 않았다면 아프리카 어느 땅에서 자유를 누렸겠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팔려온 조상의 시간들이 얼마나 아팠을까.
그나마 노예 해방을 위한 전쟁에서 승리한 대통령에 의해 자유를 얻었지만 지금까지도 인종차별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
이런 역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할 수는 없다. 차마 말할 수는 없지만 알아야 할 시간들.
이 가슴아픈 역사를 이렇게 리얼하게 그려낸 그림책이라니.
사진보다 더 리얼한 그림때문에 내가 책속에 들어간 것 같은 생생함이 느껴졌다.
내가 저들과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면. 끔찍하다.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기어이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이 책에 그려진 아픈 시간들을. 미래를 살아갈 어린아이들에게 꼭 읽혀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