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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조정래란 이름만 들어도 나는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아마도 '아리랑'을 읽고서 생긴 듯하다.
유독 전라도 사람을 싫어했던 우리 아버지(충청도)는 언니와 나 때문에 전라도 사위를 둘이나 맞아야 했다. 그렇게 싫어했어도 내 자식이 된다니까 전라도 사람의 장점을 짚으며 받아들이셨다. 결혼 6개월만에 졸지에 광주로 발령난 남편을 따라와 살면서, 전라도 사람들의 말에 거부감이 생겨 참 힘들었다. 5년만 살고 올라가자 생각하며 정들지 못하던 광주살이가 10년이 훌쩍 넘어, 조정래의 '아리랑'을 읽고서 "우리 삼남매를 자랑스런 호남인으로 키우리라!"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책으로 만난 조정래를 존경했고, 그런 감동이 식어가면 다시 '아리랑'을 읽거나 그의 문학관을 찾았다. '태백산맥'과 '한강'을 읽으며 이런 대작을 집필하느라 10여년의 세월을 글감옥에 갇혀 살았다는 작가를 더욱 흠모하게 되었다. (사설이 길어졌다~~~ )
몇년 전, SBS에서 방영됐던 '노르망디의 코리안'을 먼저 시청했기 때문인지, 방송과는 다르게 문학 작품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요소들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오 하느님'에 아쉬움이 남는다. 신길만을 중심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힘없는 나라 조선의 백성이 당해야 했던 아이러니를 더 밀도있게 그려내지 못했다는 느낌에 '이분도 이젠 늙으셨구나' 하는 애잔함이 들었다.
우리 민족의 수난을 그려낸 전작들과 다르게 역사 속의 한 개인에 촛점을 맞추었다고는 하지만, 작가의 대담한 필력을 느끼기엔 역부족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시대상황이라 당연하겠지만, 아리랑에 묘사되었던 비슷한 분위기와 주인공 신길만이 아리랑의 지삼출을 닮았다고 느꼈다면 나만의 감상일까?
'군대에 갔다오면 면서기를 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강제로 일본군이 된 신길만은 만주에서 소련군 포로가 된다. 어쩔 수없이 국적을 변경하고 소련군이 되었다가 다시 독일군복을 입는 운명이지만 패전과 함께 미국의 포로가 된다. "나는 조선인이요 조선으로 보내주시오" 호소하지만 약자의 말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조선인이 아닌 소련국적이라 소련으로 송환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그의 인생이 눈물겹고 짠하다.
'호랭이한테 열두 번 물려가도 정신만 채리면 살아난다'는 어머니와 '총알 피해 댕겨라'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마치 주술처럼 사지에서 그를 지켜낸다. 반드시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다짐하던 그는,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소리없이 죽어간 약소국 조선의 이름없는 백성일 뿐이었다.
권력자와 승자를 위한 기록이었던 역사의 한 귀퉁이에 개인의 삶을 추적하여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작가로서 '인간탐구'를 하고자 했던 그분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또한 문학평론가 복도훈의 '노르망디의 실종자'란 제목의 해설은 작품이해를 도왔다. 그래도 끝끝내 아쉬운 것은 실존인물(양경종)이었던 주인공의 사진 한장에서 시작된 작품이기에 책 어딘가에 문제의 그 사진을 실어주는 친절까지 담았다면 더 좋았을거란 생각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2007년 2분기 우수문학도서인 이 책은 우리마을 어머니독서회의 8월 토론도서였는데, 조정래의 대작을 읽지 않은 회원들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약소국의 비애에 충분히 가슴 저리고 짠한 마음에 심란한 책읽기였다는 감상을 풀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