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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따라 공간 따라 역사 문화 산책 - 신병주 교수의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5월
평점 :

“공간을 걷다 보면, 역사는 결국 사람이다.”
“누군가의 삶이 스며든 자리에 서면, 과거는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 된다.”
조선이라는 시간의 강을 따라 걷다 보면, 그 한복판에 늘 사람과 장소가 있다.
신병주의 『인물 따라 공간 따라 역사 문화 산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역사라는 거대한 내러티브 속에서 인물은 맥을 잇고, 공간은 숨을 쉰다.
이 책은 그러한 공간들을 ‘답사’라는 형식으로 호흡하게 하고, 독자로 하여금 살아 있는 역사를 마주하게 만든다.
책은 궁궐 안에서 출발한다. 전염병이 창궐했던 조선시대, 궁궐 속 ‘내의원’은 단순한 왕실 병원이 아니라 국가 보건의 상징이었다. 숙종이 천연두에 걸리고, 인경왕후가 세상을 떠날 만큼 조선은 질병의 공포에 늘 노출되어 있었다. 19세기 콜레라가 번졌을 때는 이름조차 ‘호열자(虎列刺)’, 즉 ‘호랑이에게 찢기는 병’이라 불렸고, 백성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혜민서와 활인서로 몰렸다. 동소문 밖에 위치한 활인서는 전염병 환자들을 격리한 공간으로, 오늘날의 감염병 전담병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내의원은 왕의 약을 조제하는 궁중 약방으로, 정무 못지않게 건강을 챙겼던 영조가 월 11회씩 찾았다는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남아 있다. 그는 조선의 최장수 임금이었고, 건강 관리의 상징이기도 했다. 내의원이 있던 창덕궁의 성정각은 일제강점기에 약방으로 활용되었으며, 지금도 ‘왕의 몸을 보호한다’는 뜻을 담은 어필 현판이 건물에 남아 있다. 의술은 곧 권력의 생명줄이었고, 그 생명은 공간에 기록되었다.
경복궁 안에는 또 다른 공간, ‘집옥재’가 있다. 고종이 세운 도서관이자 서재였던 이곳은, 책을 ‘옥처럼 소중한 것’으로 여긴 정신의 결정체다. 단지 책을 모으는 공간이 아니었다. 고종은 집옥재에서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어진을 봉안했으며, 새로운 서구 사상을 받아들이는 지적 실험을 감행했다. 4만여 권의 장서를 수집한 이 공간은 조선 후기의 열린 정신과 불안한 근대를 동시에 품고 있었다. 지금은 조선 왕실 문헌에 특화된 ‘작은 도서관’으로 재개관되어, 그 뜻을 잇고 있다.
이 책이 조선의 여인들을 잊지 않은 점도 인상 깊다. 창경궁은 왕실 여성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다. 왕비들이 거처했고, 인현왕후는 이곳 경춘전에서 승하했다. 혜경궁 홍씨는 경춘전에서 정조를 낳았고, 노년에 『한중록』을 집필했다. 창경궁은 궁중 여성들의 정치와 문화, 모성의 기억이 교차하는 무대였다. 자경전은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을 위해 지은 정전으로, 사도세자의 사당을 마주 보게 하여 효심의 건축이 되었다.
또한, 책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자의 몰락을 압구정이라는 공간에 담는다. 한명회는 정난공신 1등, 조선의 실세였지만, 압구정이라는 개인 정자 하나가 그의 인생을 무너뜨렸다. 성종의 명을 거절하며 왕의 권위에 흠집을 냈고, 결국 국문 끝에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정자는 곧 자아의 표출이었고, 그 과시는 조선 왕조의 질서에 반했다. 지금의 압구정은 아파트촌이지만, 그 지명엔 여전히 권력과 허망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세종은 이 책 곳곳에서 등장하는 영원한 주인공이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경복궁 안 집현전을 중심으로 집무를 이어간 그는 자신의 무덤까지 직접 골랐다고 한다. 처음은 서울 근처였지만, 풍수지리적 문제로 인해 여주로 천장(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김)되었다. 이때부터 세종의 영릉은 ‘영릉가백년’이라 불릴 만큼 조선의 국운을 상징하는 명당이 되었다. 지금 여주시는 ‘대왕님표 여주쌀’로 그 전통을 기린다.
무덤도 하나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단지 누군가가 죽은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고 추모할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책 후반부로 갈수록 ‘공공성의 공간’들이 등장한다. 상주의 ‘존애원’은 조선 최초의 사설 의료기관으로, 전란과 전염병의 시대에 지역 선비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시설이다. 단순히 치료만 한 것이 아니라, 백수회 같은 경로 행사를 통해 지역 공동체의 정신적 허리를 지탱했다. 오늘날 공공의료의 기원이 거기에 있었다. 사회적 약자를 품은 공간의 흔적은 지금도 재조명되어야 할 역사다.
마지막으로 책은 무성서원, 오죽헌, 예산의 추사 고택 같은 곳으로 향한다. 무성서원은 조선의 성리학 정신과 교육의 요람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장소다.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인격과 사유가 태어난 곳이며, 예산의 고택은 추사 김정희의 예술과 절의가 뿌리내린 자리다.
이 공간들은 단지 기념물이 아니다. 그들의 사고, 문장, 그림, 교육, 예절이 한옥의 마루와 기둥에 박혀 지금도 숨 쉬고 있다.
직접 공간을 걷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낀 이야기를 전하기에, 이 책 속 역사는 단지 과거의 사건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 무심코 지나치는 이 길 위에도 수많은 삶과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왔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공간 역시,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역사로 읽힐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우리를 어떤 인물로 기억하게 될까?
『인물 따라 공간 따라 역사 문화 산책』은 궁궐과 정자, 전염병 환자들을 격리하던 병사, 백성을 위해 세운 의료시설 등 조선의 다양한 공간을 따라가며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시대의 흐름을 전한다. 이 책이 전하는 가장 큰 교훈은, 역사는 결코 책 속에만 있는 기록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간은 기억을 품고, 그 안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역사는 결국, 사람의 숨결이 스며든 자리를 통해 살아 움직인다.
이 책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추고, 현재를 통해 미래의 기억을 준비하게 만든다. 역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걷고 느끼는’ 경험으로 확장시키며,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장소에 담긴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인물 따라 공간 따라 역사 문화 산책』은 공간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고, 사람을 통해 역사를 기억하게 만드는 특별한 인문 여행의 길잡이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공간에 대한 질문을 조용히 던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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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신문사(매경출판)'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도서관은 세종 시대에 세운 집현전과 정조 시대에 세운 규장각이다. 세종과 정조는 집현전과 규장각을 도서관이자 학문 연구의 중심 기관으로 삼고 많은 성과들을 창출했다. 경복궁에는 고종이 세운 도서관인 집옥재도 있다. ‘옥을 모은 집’이란 뜻으로 이때의 옥은 책을 의미한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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