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깨기 - 원하는 것을 얻는 확실한 방법
일레인 린 헤링 지음, 황가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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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인 링 헤링의 『침묵 깨기』는 우리가 말하지 못한 채 삼켰던 말들, 입안에서 맴돌다 사라진 진심,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순간들을 다시 되짚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단지 ‘말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왜 우리는 침묵하게 되었는가’, ‘그 침묵은 우리 안에서 어떻게 학습되고 자리 잡았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단단한 어조로, 그 침묵을 천천히 해체해 나간다.

저자 자신도 침묵했던 사람이다. 직장에서 자신의 공이 동료에게 넘어가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자신마저 침묵했다. 왜 나는 그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이 질문은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근본적인 동기이자, 우리 모두가 이 책 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다.


책은 침묵을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 부족’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주입되어온 학습의 결과이며, 문화적이고 구조적인 결과다. 저자는 우리가 자라며 어떻게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지를 추적한다. 아이들은 하루에 125번 질문하지만, 어른이 되면 여섯 번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질문하면 싫은 소리를 듣고, 혼나고, 눈 밖에 나게 되며, 무언가를 지켜내려면 ‘말하지 말라’는 규범을 내면화한다. 직장에서 침묵은 ‘프로페셔널함’으로 포장되며, 불편한 진실은 ‘모른 척’하는 것이 지혜처럼 여겨진다. 이처럼 침묵은 생존의 전략이자, 질서유지의 방법으로 기능해왔다.

이 책은 침묵의 역사와 문화를 개인과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침묵이 종교와 철학에서 어떤 의미로 다뤄졌는지를 짚는다. 힌두교의 마우나는 침묵을 수행의 한 방식으로 여겼고, 불교는 올바른 말하기를 실천하기 위해 침묵을 존중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침묵은 종종 회피와 억압, 또는 무기력으로 기능한다. 특히 권력 구조 안에서, 주변화된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 침묵을 강요받는 구조는 더욱 견고하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침묵하는 이유, 직장에서 부당함을 보고도 아무 말 못 하는 이유, 소수자의 목소리가 묵살당하는 현실을 저자는 사례와 연구로 설득력 있게 펼쳐낸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문제를 지적하고 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침묵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자동화된 반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침묵을 이해하고,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성찰함으로써 비로소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침묵을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의해야 하는 것’으로 다루어야 한다.

책의 후반부는 ‘목소리를 되찾는 법’에 대해 안내서처럼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되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미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삶의 과정에서 그것을 잃었다. 그러니 다시 연습하면 된다. 아주 작은 실험부터 시작하라고 한다. 택시 안에서 창문을 열어달라는 요청처럼 소소한 말하기에서부터 점차 자신의 욕구와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목소리를 내는 건 용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훈련과 반복의 문제다.


또한, 저자는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자기 허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승인을 기다리며 산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그 허락을 내려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지금 말해도 괜찮아’, ‘나는 생각해도 되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신념대로 행동할 수 있는 존재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줘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어떻게 ‘타인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가를 말한다.

침묵을 깨는 것은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서로가 서로의 말을 들어주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저자는 목소리를 되찾는 여정에서 ‘나의 말’만이 아니라 ‘타인의 말’도 함께 존중하고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우리가 침묵하는 이유를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침묵이 왜 생겨났는지를 따뜻하고 단호한 시선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말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이제는 말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격려하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작은 실천을 제안한다.


『침묵 깨기』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특히 추천한다.

- 불편한 상황에서 말하지 못한 적이 있는 사람

- 조직 내에서 부당한 상황을 목격하고도 침묵했던 사람

- 사회적 약자, 소수자, 여성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던 사람

- 리더로서 조직의 ‘침묵 문화’를 바꾸고 싶은 사람

-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싶은 사람


이 책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높이는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침묵이 어떻게 내 안에 들어와 있었는지를 성찰하고, 그 침묵을 이해함으로써 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기보다 말할 수 없었던 나를 먼저 안아 준다. 그 뒤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목소리를 갖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혼자의 싸움이 아니라 함께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의 시작이다.

'알에이치코리아(RHK)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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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당신이 결과를 견딜 수 있고 계산된 위험만 감당하면 되는 실험으로 시작해라.
나의 작은 실험은 택시 운전사에게 택시 안이 답답한데 창문을 열어 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어이없다는 거 나도 안다. 하지만 학습된 침묵이 워낙 뿌리 깊었기에 그 정도로 작은 것에서 시작해야 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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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다이어리 - 오늘 당신은 어떤 미래를 살았는가?
스티븐 바틀렛 지음, 손백희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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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바틀렛의 『CEO의 다이어리』는 위대함을 성취해낸 이들의 내면을 해부하고 그 원칙을 체계화한 자기 성장서이자 실천서다. 저자는 지난 4년간 세계적인 인물들과 나눈 700시간에 달하는 인터뷰를 팟캐스트 <다이어리 오브 CEO>에 담았고, 이 콘텐츠는 유럽에서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하며 단숨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이 방대한 대화들을 통틀어 단 하나의 진실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시대와 분야를 초월해 공통된 네 가지 원칙을 따른다.”

이 책은 그 네 가지를 ‘위대함이라는 지붕을 지탱하는 네 기둥’으로 비유한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 두 번째는 자기 서사, 세 번째는 삶의 철학, 마지막은 조직의 삶이다.

즉, 나를 인식하고 다루는 법(자아관), 내가 세상과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서사), 내 삶을 관통하는 기준(철학),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만드는 문화(조직).

이 네 가지 기둥이 단단히 세워질 때 우리는 비로소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명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은 것은, 위대해지고 싶다면 이 네 가지 원칙을 통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실패 했다면 이 중 한 기둥이라도 약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저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왜 그렇게 노력하는지도 모른 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바쁘게 살아온 시절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 ‘자기 통제’와 ‘강단’이라는 핵심 가치를 깨달았고, 이 책을 통해 그 구체적인 공식을 공개한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법칙 27. 강한 의지는 죽음, 시간, 강단에서 온다”라는 챕터였다. 이 장은 인생을 ‘시간’이라는 칩으로 비유하면서, 우리가 어디에 그 칩을 걸고 살아가는지를 자문하게 만든다.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삶의 우선순위가 재정렬되고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된다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저자는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도박판에 앉은 도박꾼이고, 우리 손에 쥔 칩은 바로 ‘시간’이다. 어디에 걸지, 어떻게 써야 할지를 깐깐하게 결정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의 졸업 연설을 인용하며 저자는 ‘죽음의 인식’이야말로 최고의 동기 부여라고 강조한다.

시간 관리 기법은 수백 가지가 있지만, 그 어떤 것도 ‘강단’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강단이란 단순한 의지나 각오를 넘어서, 동기 수준의 변동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을 통제하며 인내심을 발휘해 목표 의지를 지속하는 능력이다.


책은 ‘강단 방정식’을 다음 3가지 요소로 구성한다.

1. 목표의 가치 인식 :

내가 진짜 원하는 목표는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 이를 명확히 해야 지속 가능한 추진력이 생긴다.

2. 심리적 보상과 유인 :

목표 달성 과정에서 나를 즐겁게 할 장치가 필요하다.

게임화(Gamification), 도전 과제 설정, 즉각적 피드백 등은 몰입을 돕는다.

3. 심리적 비용 최소화 :

방해 요소를 줄여라. 예컨대, 디제잉 연습을 하고 싶다면 장비를 바로 앞에 두어야지, 어둡고 먼 방에 두면 절대 실천되지 않는다.


책은 이렇게 구체적인 실천 방법과 심리적 기제를 하나하나 짚으며, 단순히 의지나 열정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의 실제 경험도 담겨 있어 설득력이 높다.

그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돈, 지위, 사랑”을 얻기 위해 애썼지만, 그 동기가 불안감과 수치심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목표가 진짜 내 것이 아닐 경우 아무리 노력해도 삶은 허망하다는 진실이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전한다.


결국 『CEO의 다이어리』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왜 하느냐”를 먼저 묻는 책이다.

자기 인식에서 시작해, 내 이야기를 어떻게 세상에 전달할지, 어떤 철학으로 삶을 견인할지, 어떤 조직을 만들지까지의 여정을 네 가지 기둥으로 풀어낸다. 각각의 기둥은 실제 사례와 데이터, 인터뷰 인용, 구체적인 실천법으로 촘촘히 채워져 있다.

이 책은 단지 CEO를 위한 책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자기 자신을 재정의하고 싶다면, 어떤 철학으로 살고 싶은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면, 혹은 ‘강단’을 잃고 자꾸 미루는 삶을 살고 있다면, 이 책은 가장 현실적인 지침서가 되줄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고 나니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당신의 위대함을 받쳐줄 네 기둥은 지금 얼마나 단단한가?

자신의 현재 상태와 위치, 철학에 대해 한번쯤 제대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월북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강단이란 동기 수준의 변동에 구애받지 않고,
일관된 방식으로 자신을 통제하며,
즉각적 보상을 추구하지 않고, 인내심을 발휘해
목표추구 의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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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이세훈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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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야스퍼스는 이러한 실존의 절박한 순간을 ‘한계상황’이라 불렀다. 실패, 상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죽음의 공포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독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내면의 진짜 목소리와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결정적 계기라는 것이 야스퍼스의 통찰이다. 외로움은 결국 우리를 기존의 틀로부터 해방시키고,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도약대’가 된다.

이처럼 『외로움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는 철학을 삶의 가장 민감한 감정인 외로움과 연결시켜,

우리가 삶과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다.

외로움을 밀어내기보다는 그 감정이 내 안에서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를 듣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 시간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내 삶을 천천히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외로움이 고통스럽기만 한 감정이 아니라,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씨앗이라고 말한다. 고독을 딛고 나면 우리는 조금 더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

요즘도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문득 공허한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불안하거나 초조하진 않다. 어릴 때처럼 무작정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서지도 않는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조금씩 내게 익숙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이제는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걸 알고, 그 시간을 최대한 소중히 써보려고 한다.


이 책은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외로움은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전하려는 신호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삶의 방향을 천천히 다시 세울 수 있게 된다. 외로움 속에서 우리는 더 단단하고, 더 자유로운 자신을 만나게 된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시크릿하우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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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틸리히Paul Tillich가 ‘실존적 불안’을 말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심리적 우울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근본적 갈망과 불안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물음을 가리켰습니다.
즉,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으며, 왜 이렇게 한없이 연약하고 허무함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이 한 번이라도 든다면, 그 불안은 인생 전체를 향한 더 큰 갈망의 흔적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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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문장들 - 흔들리는 이들에게 보내는 다정하지만 단단한 말들
박산호 지음 / 샘터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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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산호의 『어른의 문장들』은 멋진 문장을 모아둔 책이 아니었다. 읽다 보니, 이건 삶에서 길을 잃고, 흔들리고, 때로는 부서지기도 했던 한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문장으로 정리해 놓은 일기 같았다. 문장을 빌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천천히 되새긴 기록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지만, 어른이라는 말에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나 기대가 얼마나 많은 착각일 수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짚어주고 있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어른이란 고정되고 완성된 하나의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각성하고 성찰하며 만들어지는 가변적인 존재”라고 쓴다.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린아이에게서 어른다움을 배우는 경우도 있다. 어른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밝혀줄 수도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이처럼 저자는 ‘어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본문 초반, 저자는 우리가 자주 묻는 질문—‘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인생은 원한다고 다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정말 중요한 시점은 우리가 유한한 자원을 어떤 선택에 집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 선택의 기준은 타인의 잣대가 아닌, ‘나의 성장의 한계’를 냉정히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나만의 집중이다. 평범한 인생의 진짜 승부는 ‘선택 이후의 집중’에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다양한 문학과 철학, 예술 속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장정일의 칼럼을 인용하며 출판사에서 신인 작가들의 책을 보내 주겠다는 말에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상황이라 남은 시간동안 고전을 읽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 역시 무의미한 소비성 독서를 줄이고 좋은 책은 재독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한다. “40세가 넘은 사람은 나쁜 책을 읽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롤프 도벨리의 문장을 되새기며 저자는 책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도 이 원칙이 유효함을 보여준다.

히사이시 조의 말도 인상 깊다. 그는 “경험은 가능성을 좁히기도 한다”고 말하며 쓸모없는 고생을 강요하는 어른들에 대한 경계를 드러낸다. 저자는 이 지점을 짚으며 경험이 풍부할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그것이 타인에게 강요될 때 더욱 위험하다고 단언한다. 경험은 삶을 풍요롭게도 하지만, 세계를 닫히게도 만든다. 이 책은 그런 양면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가장 가슴을 울리는 대목은 아마도 『자기 앞의 생』을 인용한 부분이다.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라는 모모의 질문에 “그렇단다”라고 답하는 하밀 할아버지, 그리고 그 말 뒤에 오는 눈물. 저자는 이 장면을 통해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사랑 때문에 살아낼 수도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돈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에서조차 인간을 버티게 하는 힘은 사랑이며 그것이 꼭 피를 나눈 관계일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는 감동적이다.

또한, 이 책은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직면하라고 말한다. “실수가 나쁜 것이 아니라 변명이 나쁘다”는 할머니의 말은 단순한 꾸짖음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핵심이다. 저자는 이 말을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이해한다고 고백한다. 인생이 공평하지 않고,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도 변명이 아닌 행동과 책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 책의 문장 하나하나가 그 다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지금 당장 행복하자.”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의 말을 인용한 이 대목은 우리가 왜 ‘행복’을 자꾸 미래로 미루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아이가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저자는 깨닫는다.

행복은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누릴 수 있는 작은 감정의 쌓임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른의 문장들』은 나이만 먹었을 뿐 삶에 대해 정직하게 마주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어른이라는 단어가 더는 부담스럽거나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책이다. 어른이란 결국 망가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사람,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또 건네줄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책은 그런 어른이 되어가는 여정을, 문장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더 이상 정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질문을 아주 따뜻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건넨다.


'샘터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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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란 고정되고 완성된 하나의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각성하고 성찰하며 만들어지는 가변적인 존재란 생각도 하게 됐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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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종이 울릴 때
임홍순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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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눈치를 챘을 것이다.

표지를 장식한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다. 익숙한 이 그림은 단지 아름다운 봄의 정경을 담은 것이 아니다. 봄에 피는 아몬드 꽃은 새 생명과 희망, 그리고 부활을 상징한다.

이 책 『저녁 종이 울릴 때』의 표지로 이 그림이 쓰인 이유는 뭘까?

아마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통을 딛고 피어나는 삶, 잊힌 기억 속에서도 다시 살아나는 인간의 존엄,

그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임홍순 저자의 『저녁 종이 울릴 때』는 한 교사의 삶을 따라가지만, 그 안에는 우리 모두의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책이다. 주인공 김기수는 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군복무를 마치고, 1960~70년대 가난의 골짜기였던 산골 학교에 부임한다. 화전민들이 모여 살아가는 산촌, 학교는 교육의 사각지대였고, 아이들은 배움보다 생존이 더 급한 현실에 놓여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그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로 머물지 않았다. 아이들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청춘의 시간을 교실에 온전히 바친다. 아이들의 눈빛에서 희망을 발견했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며, 스스로도 회복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렇게 이 책은 한 교사의 삶을 통해 한 시대의 고단한 풍경을 조용히 펼쳐 보인다.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소박하면서도 생생하게 풀어낸다.

설날을 앞두고 어머니가 손수 만드시던 다식, 맷돌에 갈아 만든 두부와 빈대떡, 바구니 가득 담긴 대추와 밤, 감나무 아래에서 떨어질 감을 기다리던 풍경들.

이 모든 기억은 단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가난했지만 따뜻했고, 힘들었지만 품이 있었던 삶.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자,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삶의 본질이다.

이야기는 점차 개인의 기억을 넘어, 민족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일제강점기, 광복, 6.25 전쟁, 분단, 독재, 산업화와 민주화.

우리는 가시밭길을 걸어온 민족이다. 오랜 세월 고난 속에 살았지만, 그 고통을 견디며 살아남았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가시떨기 같은 백성’이라 말하듯, 우리 또한 시련 속에서 선택받은 민족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일부 역사학자들은 우리를 ‘동방의 이스라엘’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말에 생생한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단지 문장으로가 아니라, 삶으로 증명해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시련은 때로 가장 귀한 것을 만들어낸다.

병든 고래의 기름으로 향수가 만들어지고, 병든 소의 우황으로 명약이 만들어지듯이.

로키산맥의 바람과 눈보라를 견딘 나무가 명품 바이올린의 재료가 되듯, 시련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 존재만이 세상을 울릴 수 있다. 『저녁 종이 울릴 때』는 바로 그런 울림을 품고 있다.

김기수는 이름 없는 교사였지만, 그가 남긴 울림은 작지 않다.

그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미래를 열어주었고, 가난이라는 벽을 넘게 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한 줄기 등불처럼, 아이들의 어두운 터널을 밝혀주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이면, 우리는 그가 가르친 아이들이 결국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또 다른 빛이 되었으리라는 사실을 조용히 확신하게 된다.


이 책은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기억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단지 옛날을 그리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앞날의 길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잊지 않아야 앞으로의 길도 흔들리지 않는다.

표지에 피어난 아몬드 꽃처럼,

우리는 다시 피어날 수 있다.

그 믿음이, 그 부활의 메시지가 이 책 전반에 잔잔히 흐르고 있다.


『저녁 종이 울릴 때』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삶이 고단할수록, 기억은 더 빛난다.

그리고 그 기억이, 결국 우리를 다시 일으킨다.”

'도서출판 클북'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물론, 배고픈 아이들에게 책을 쥐서 그들의 허기를 전부 채워줄 순 없지요.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용기를 줄 수는 있어요. 겨울에 얼어붙은 개울물 밑에서도 붕어들이 헤엄치고, 눈 덮인 엄동설한 밭고랑 속에서도 밀과 보리는 뿌리를 내리며 자라잖아요. 헐벗은 가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할 일 아니겠어요?"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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