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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뇌
마수드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6월
평점 :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이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자아를 형성하는 요소로 가정 환경이나 교육, 사회적 배경, 또는 우리가 속한 집단을 떠올린다. 그러나 저자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에 주목한다. 바로 ‘뇌’다. 우리의 자아는 뇌가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지만, 이 책의 저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마수드 후세인은 묻는다. “생각한다는 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는 우리가 사고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모든 과정이 뇌의 특정 기능들이 정교하게 협력한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의 말투, 기억, 감정, 유머 감각, 도덕성까지—그 모든 것은 뇌가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작동이 멈추거나 어긋나는 순간,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이 책에는 언어를 잃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2장 ‘단어를 떠올리지 못한 남자’ 파트에 있는 부분으로, 우리는 마이클이라는 인물을 만난다. 그는 60대 후반의 지적이고 품위 있는 남성이다. 말하기에 어려움을 겪으며 병원을 찾은 그는, 대화를 하다 말문이 막히는 자신에게 좌절과 당혹을 동시에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어릴 적 자신이 잘하던 럭비 경기의 기본 용어인 ‘스크럼’이라는 단어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가 겪고 있는 문제는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개념화하는 능력, 즉, 의미 기억(semantic memory)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마이클은 여전히 자신의 과거, 가족, 여행지 같은 일화적 기억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일상적인 개념, 농담의 맥락, 단어의 의미 같은 지식은 점점 사라져간다. 그의 아내는 “예전의 남편이 아니에요.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색해졌어요.”라고 말한다. 마이클은 더 이상 예전처럼 농담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고, 친구들 또한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말과 웃음이 사라지자, 관계도 사라졌다. 결국 그는 ‘의미 치매(Semantic Dementia)’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이는 언어와 개념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점진적으로 손상되며 사람의 내면의 사전이 무너지는 병이다.
이 책은 마이클만을 다루지 않는다. 뇌의 손상으로 인해 ‘자신’을 잃어가는 수많은 사례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는 바닥핵이 손상되어 감정이 거의 사라진 ‘병적인 무관심 상태(아파시)’에 빠졌다. 한때 사랑과 공감을 표현하던 그는 이제 주변의 기쁨이나 슬픔에 무반응한 존재가 되었고, 그의 가족은 정서적 관계의 붕괴를 견뎌야 했다.
트리시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일화 기억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겪고 있다. 남편과 나눴던 대화, 가족의 얼굴, 소중한 추억들이 하나둘 지워지면서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과거를 통해 자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기억이 사라지자 그녀의 존재감도 옅어져갔다.
와히드는 시각 착시에 시달렸다. 신경 손상으로 인해 그는 현실을 오인하고, 주변 사람들을 기이한 방식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의 세상은 더 이상 타인과 공유되지 않았고, 그는 현실과 자신 사이의 경계를 잃어버렸다.
윈스턴은 집중력이 무너진 사례다. 뇌의 주의 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기며 일상적인 대화조차 유지하기 힘들어졌고,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이 흐려졌다. 그는 말하자면, 사회의 ‘속도’와 ‘리듬’을 놓쳐버린 사람이었다.
수 라일런드, 이른바 ‘카우걸’은 전두엽 손상 이후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타인에게 해가 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면서도 멈출 수 없었고, 스스로를 조절할 수 없다는 인식은 그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회적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고, 점점 더 외부인으로 밀려났다.
마지막으로 애나는 신체 자기 인식의 상실을 경험한다. 뇌졸중 이후, 그녀는 자신의 팔과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느낄 수 없었고, 심지어 자신의 몸 일부를 타인의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몸의 경계가 사라지자,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병리학적 현상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 언어, 기억, 공감, 집중, 충동, 신체 감각—이 모든 뇌 기능들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나’를 구성하는 축이다. 이 중 하나만 어긋나도 우리의 자아는 흔들리고, 사회 속 위치 역시 불안정해진다.
우리가 어떤 집단에 속하는가, 누가 우리를 내부인 혹은 외부인으로 간주하는가는 단지 인종이나 언어, 국적 때문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회적 기대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자기 자신’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정교하고, 동시에 얼마나 깨지기 쉬운 구조 위에 놓여 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외부인의 경험을 몸소 겪었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유색인으로서 영국에 정착해 신경과학자가 된 그는, 억양, 외모, 피부색, 이름 모두에서 ‘다르다’는 시선을 받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느 집단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실감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뇌와 타인의 뇌, 그리고 그 뇌들이 만들어내는 정체성을 연구하며, 그 질문에 대한 과학적 대답을 찾아간다. 속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언제 ‘우리’이고, 언제 ‘그들’이 되는가.
『아웃사이더』는 결국 자아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뇌의 섬세한 작용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구성되고 해체되는 존재임을 말한다. 우리는 감정이 사라질 수도 있고, 기억을 잃을 수도 있으며, 자신의 몸조차 낯설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단지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를 정의하고 이해하는 방식마저 뒤흔든다. 자아란 타인의 시선과 기대, 그리고 나 자신의 뇌 작용이 만나는 접점에서 태어난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언제든 ‘아웃사이더’가 될 수 있으며, 그 경계에 선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는 일이야말로 가장 절실한 공동체적 과제임을,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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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글방 서포터즈 3기' 활동을 통해 '까치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는 단순한 정보 교환이상이 필요하다. 관계가 즐거워야 하며, 즐겁게 어울리려면 서로가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깔깔거리는 웃음은 사회적 유대에 필수적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집단 소속감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진화적 구조일 수도 있다. 유머의 공유는 우리에게 사람들과 계속 접속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런 유머는 우리가 쓰는 표현들과 관련된 더 폭넓은 의미론을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마이클이 이제 확실히 느끼듯이, 그런 유머를 상실하면 우정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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