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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 - 어느 교도소 목사가 가르쳐주는 인생의 교훈
카리나 베리펠트.짐 브라질 지음, 최인하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5월
평점 :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는 사형장 목사로 활동한 짐 브라질의 삶을 기록한 감동적인 논픽션이다. 기자 출신의 저자 카리나 베리펠트는 오랜 시간 그를 밀착 취재하며, 죽음을 앞둔 사형수들과 나눈 대화와 삶의 궤적을 글로 옮겼다. 이 책은 단순히 교도소 이야기를 전하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살아 있는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용서는 가능한가’ ‘진정한 회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깊이 있는 작품이다.
책의 중심 인물인 짐 브라질은 한때 잘나가던 목사였다. 하지만 외도와 실수로 인해 가정이 무너졌고, 목사직마저 내려놓게 된다. 그는 인생의 밑바닥에서 병원 화장실의 막힌 변기를 뚫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중, 똥물 위에 무릎을 꿇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바라는 대로 네가 행동한다면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그 말은 짐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다시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고, 이후 사형수를 위한 형목(刑牧)으로 활동하게 된다.
형목이 된 그는 276명의 사형수와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독극물이 주입되는 순간, 전기의자에 앉는 찰나, 참관실 너머에서 숨이 멎는 그 짧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짐은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빠르게 꺼지는지를 목격했다. 그가 사형수들에게 전한 말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인생은 축복입니다. 허비하지 마세요. 할 수 있다면 언제든 좋은 일을 하고, 무엇이든 용서하세요. 그리고 그렇게 한 후에는 넘어가세요.”
이 말은 단지 사형수에게만 전해진 것이 아니다. 짐은 기자인 저자에게도,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도 같은 말을 건넨다. 하지만 독자는 그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다. 특히 저자 역시 고통과 분노, 용서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왔기에 짐의 말이 처음엔 낯설게 느껴진다. 그는 삶이 축복이라고 말했지만, 저자는 “나는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중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솔직한 마음은 같은 경험을 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맞닿아 공감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 책은 사형수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단지 죄인이기 이전에 사람임을 강조한다. 어떤 이들은 열여덟, 열아홉의 철없던 시절 저지른 실수로 감옥에 들어왔고, 긴 세월을 속죄하며 살아왔다. 짐은 그들에게 “신은 누구에게나 두 번째 기회를 주신다”고 말한다. 그는 이 사역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영원히 변화시키는 것”이 자신의 진짜 소명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덧붙이기를, “사람 사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도 말한다. 신은 용서하나, 인간은 쉽게 용서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의 용서란 얼마나 어렵고 숭고한 일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ㅡ 이 부분에서 예전에 봤던 한국 영화 ‘밀양’이 생각났다. 『밀양(감독 이창동, 2007))』은 용서의 본질과 신의 섭리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주인공 신애(전도연)는 아들을 납치·살해한 범인 박도섭을 용서하기로 결심하고 교도소를 찾아간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무너뜨린 것은 살인범의 “나는 이미 신께 용서를 받았습니다”라는 한 마디였다. 가해자가 먼저 신의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는 그 순간, 피해자인 그녀는 절망에 빠진다. 왜냐하면 그녀는 ‘용서’라는 주도권을 스스로 쥐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믿음은 산산이 부서진다. 신애가 느낀 충격은 용서란 인간의 의지와 감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잡하고 깊은 차원에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에서 짐 브라질 목사가 사형수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겹쳐진다. 짐은 형장에서 죽음을 앞둔 수감자들에게 “신은 두 번째 기회를 주신다”고 말한다. 그는 누구든 진심으로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역에 임한다. 하지만 그 역시 말한다. “신은 용서하시지만, 사람은 그러지 않는다.” 이 문장은 신애가 느낀 감정의 본질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신이 용서했다는 말은 어떤 이에게는 위로지만, 어떤 이에게는 가장 잔혹한 선언이기도 하다.
짐 목사의 메시지가 “인생은 축복이며, 무엇이든 용서하고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라면, 『밀양』은 그 말을 정면에서 의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용서할 수 없는 상처 앞에서 우리는 과연 신처럼 용서할 수 있는 존재인가? 신의 용서가 인간에게 위안이 되지 못할 때, 우리는 그 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가 신의 이름으로 구원을 말하는 책이라면, 『밀양』은 그 구원이 인간에게 항상 유효한가를 되묻는 작품이다. 두 작품은 정반대의 길을 걸으면서도 결국 같은 지점을 바라본다. 용서란 과연 무엇인가? 신의 뜻은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오는가? 그 사이의 간극과 충돌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고통이자 질문이다.
따라서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를 읽는 있는 독자라면, 『밀양』이라는 영화를 함께 보면서 비교해보는 행위가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 둘은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며 종교와 삶, 죄와 구원, 인간과 신 사이의 간극을 더 정밀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과 상처, 그리고 용서의 가능성을 다시 묻게 된다.
ㅡ 이 책에는 교도소 내부의 냉혹한 현실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성 간의 성적 행위, 물물교환, 절망감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수감자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지만 현실이다. 짐은 그 속에서도 예배당만큼은 “신의 집”이라 말하며 질서를 지키려 한다. 그는 외형적으로는 단호하지만, 그 누구보다 수감자들의 내면을 돌보고 진심으로 그들의 회복을 바란다.
또한 이 책은 짐 개인의 삶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룬다. 그의 가정은 외도로 인해 무너졌고, 아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 그는 자신이 아내에게 화를 냈던 이유가, 결국 자신이 바란 이상적인 여성상에 그녀가 맞춰주지 않았기 때문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아내의 잘못이 아니라, 저 자신이 문제였어요.”라고 말하는 짐의 변화는 회개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짐이 똥물 속에서 무릎 꿇고 기도한 후 신의 응답을 듣는 순간이다. 그는 그 이후에도 변기를 닦고, 화장지를 주우며, 가장 낮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웠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단지 상황의 변화가 아닌, 내면의 변화였고, 신과 다시 연결된 순간이었다.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는 삶과 죽음, 죄와 용서, 회개와 구원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책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남긴 말은 때로는 단순하지만, 그것만큼 진실된 말도 없다는 것을 이 책은 반복해서 증명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이며, 나는 무엇으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나에게도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울림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고통을 겪은 사람, 실수로 삶이 무너진 사람,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또한, 죽음이라는 거울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싶은 모든 이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짐은 말한다. “사형수들과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말이다. 어쩌면, 진실은 늘 죽음 가까이에 있다. 이 책이 말하는 ‘죽기 좋은 날’은 그래서 곧, ‘진심으로 살기 좋은 날’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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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책방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신과의 대화,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많은 수감자들을 만났던 경험은 짐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짐이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의 삶을 영원히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형수에게 남겨진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무척 중요했다. 하지만 사형 일자가 정해지지 않은 다른 사형수들에게도 마음과 영혼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고 싶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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