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알고, 바로 쓰는 빵빵한 어린이 경제퀴즈 우리 아이 빵빵 시리즈 13
박빛나 지음 / 유앤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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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알고, 바로 쓰는 빵빵한 어린이 경제퀴즈』는 아이들에게 경제를 알려주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재미’와 ‘이해’를 모두 잡은 책이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아버지가 두 형제에게 경제를 가르쳐주는 전통적인 방식의 이야기일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곧 그 예상을 뒤엎는, 발랄하고 기발한 전개가 펼쳐진다. 경제 선생님 역할을 맡은 주인공은 바로 딸이 들고 있던 ‘돼지 저금통’이다. 이름은 ‘대식이’. 말도 하고, 생각도 하며, 경제에 대한 탄탄한 지식을 아이들과 나누는 ‘돼지 저금통 나라’의 안내자다.


이야기는 경제 개념이 없는 형제에게 대식이가 경제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대식이는 단호하게 말한다. “경제는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해서 알고 싶지 않을 경우엔 손해를 본다.” 이 말에 남자 아이는 궁금해한다. “왜 우리가 손해인지?” 이 질문에 대식이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시작한다. “네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 마리가 좋아하는 예쁜 학용품들, 그리고 학교 갈 때 타는 버스까지도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건 없잖아? 이런 걸 모두 경제라고 하는 건데 이걸 몰라도 되는 거야?”


경제를 알려주는 방식도 참신하다. 대식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경제 개념이 살아 있는 공간, ‘돼지 저금통 나라’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마리와 그리라는 친구들도 함께 모여 경제 수업을 받는다. 문제를 맞히면 포인트를 주는데, 그 포인트의 이름은 ‘꿀꿀 포인트’다.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나오는 이 포인트는 실제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다. 아이들은 이 포인트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필요한 물건도 살 수 있다. 경제라는 개념을 체험형 게임처럼 배우게 되는 구조다.


책의 큰 장점은 아이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경제 개념이 녹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픈 아이들이 밥을 먹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근데, 나 배고파.”

“대식아, 우리 밥 안 줘?”

“너희가 음식을 먹기 위해선 뭐가 필요할까?”

“제일 먼저 돈이 있어야지!”

“아니지, 먼저는 음식이 있어야 하지!”

“맛있는 음식점에 가기 위한 자동차도 필요해!”

“차 타고 뭐하러 가! 배달 앱으로 시키면 되지. 앱을 실행할 휴대폰이 필요하네.”


이 짧은 대화 속에 이미 여러 가지 경제 요소가 숨어 있다. 음식, 자동차, 휴대폰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은 ‘재화’, 그리고 배달 기사나 요리사의 일 같은 보이지 않는 일은 ‘용역(서비스)’로 구분된다. 대식이는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만들고, 나누고, 사고 팔고, 사용하는 모든 것을 경제라고 해.”


경제라는 단어는 어른들에게도 종종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이들이 평소에 겪는 생활 속에서 경제 개념을 끄집어내,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재미있게 찾아내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경제는 시험 공부가 아니라 실생활에 필요한 도구’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꿀꿀 포인트’를 통해 아이들은 경제 활동의 흐름을 직접 경험해 본다. 문제를 풀고 보상을 받고, 그 포인트를 활용해 물건을 구매하는 과정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현실 세계와 똑같은 경제 메커니즘을 반영하고 있다. 어린이 눈높이에서 이처럼 실감 나게 경제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교육적 효과가 매우 크다.


무엇보다 ‘대식이’라는 캐릭터는 아이들에게 친근하고 유쾌한 경제 선생님이다. 잔소리 없이, 권위적이지 않게, 오히려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어렵고 낯선 단어도 대화 속에서 반복하고 예시를 들며 설명해 주기 때문에 아이들이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재화’나 ‘용역’ 같은 개념도 마치 친구들과 놀듯이 익힐 수 있다.


『바로 알고, 바로 쓰는 빵빵한 어린이 경제퀴즈』는 어린이뿐 아니라 함께 읽는 부모나 선생님에게도 유익한 책이다. 아이에게 경제를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고민했던 어른이라면 이 책을 통해 훌륭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경제 교육의 입문서로 추천할 만하다.


경제는 어느 날 갑자기 필요한 지식이 아니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함께하는 기본이자 감각이다. 이 책은 그 감각을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익히게 해준다. 경제가 낯선 어린이에게 ‘꿀꿀 포인트’처럼 달콤하고 유쾌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이제 더 이상 경제는 지루한 공부가 아니다. 대식이와 함께라면, 경제는 재미있는 모험이 된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유앤북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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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되는 순간들 - 이제야 산문집
이제야 지음 / 샘터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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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되는 순간들’ 이 책은 첫 장을 읽을 때부터 저릿한 감이 왔다.

이건 나의 평생 소장용 시집이 될 것 같다란 감이 들었다.

지난 1년 동안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익숙한 분야는 물론, 그동안 멀리했던 장르들까지 일부러 손을 뻗었다. 그중에서도 시집은 나에게 유독 어려운 분야였다. 시를 읽는 일이 종종 추상적인 언어를 헤매는 일이었고, 때로는 “이게 무슨 말이지?”라는 질문만 남긴 채 덮어야 했다. 그 난해함이 나와 시집 사이의 거리감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정보가 넘쳐나고 AI가 문장을 대신 쓰는 시대에, 오히려 시집이야말로 인간만의 느림과 사유를 회복할 수 있는 통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 속도에 끌려 다니고 있는 듯한 내 모습에 지쳐 있을 때쯤, 이 책 『시가 되는 순간들』을 만났다.

첫 장을 시작하자마자 나의 눈길을 끄는 문장을 만났다.

“사랑을 알아버리기 전에 사랑을 외우기도 한다…‘라고 시작하는 문장이었다. 이 문장을 무심히 넘겼다면 몰랐겠지만, 가만히 곱씹다 보니 어느새 잊고 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어린 날의 감정, 누군가를 무작정 좋아했던 기억, 그 시절의 나를 마주보는 듯한 경험을 느꼈다. 짧은 문장 속에서 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펼쳐진 ‘언어가 되기 전의 사랑’이라는 글은 앞선 문장의 파동을 구체화하는 글이었다. 글 속에는 엄마와 두 아이가 함께한 브런치 카페의 장면이 담겨 있었는데 그 풍경 속에서 시인은 언어 이전의 사랑, 본능처럼 흘러나오는 감정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사랑이란 감정은 때로 설명보다 앞서 오고, 말보다 몸짓에 먼저 스민다. 그러한 사랑을 시인은 ‘언어가 되기 전의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 문장이 공감되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랑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던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사랑을 흉내 내는 모습에서 시인은 본질을 길어 올린다. 사랑을 알기도 전에 아이는 이미 사랑하고 있었다.

시인은 “시는 사랑을 몰랐던 때로 돌아가 모든 사랑을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를 쓰는 순간 기존의 믿음은 완전히 깨집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어온 사랑, 익숙하다고 여겼던 감정들이 실은 얼마나 낯선 것인지 깨닫게 된다. 시를 읽는다는 건 그런 낯설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단단한 믿음을 흔드는 것에서부터 시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잊고 있었던 말들이 떠오른다. “그리하여 시를 쓰는 일은 우리가 알고 있던 단어를 지워가며 사랑의 애초를 소중히 하는 것. 사랑을 하며 잊어갔던, 어쩌면 영영 기억하지 못했을 단어들을 모으는 일인지도요.” 이 문장은 이 시집이 품고 있는 감정의 핵심이다.

『시가 되는 순간들』은 시를 말하는 책이지만 동시에 기억의 복원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시인은 ‘시는 기억하고 싶은 것보다 기억되는 것을 쓰는 일. 기억되는 것들은 꽤 자주 살아나서 묵은 미안함이 용서되기도, 반복되는 슬픔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이 구절에서 나는 시의 쓸모를 다시 생각했다. 시는 치유이고 회복이며,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조심스레 다듬는 작업이다. 시를 읽는다는 건 꼭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기 위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답지 않았던 것들이 아름다워질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다.

이 책은 시를 어려워했던 나에게 시를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를 느끼는 방식을 알려주었다. 무언가를 온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냥 마음에 닿는 문장을 따라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래서 이 시집은 나에게 단순한 시집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내 감정과 마주하고, 묻어두었던 마음을 끄집어내게 해준 책이다. 삶이 너무 빠르고 복잡해서 나를 놓치며 살고 있던 때에 이 책은 조용히 손을 잡아준다. 더딘 이해가 오히려 깊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걸 알려준다.

『시가 되는 순간들』은 시와 거리 두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드는 첫마디 같은 책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시가 왜 필요한지를 질문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따뜻한 대답이 된다.

읽는 내내 많은 부분에서 마음이 움직였다.

이제는 나도 시를, 그 조용한 언어를 다시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나는 이 시집을 평생 곁에 둘 책이라 부르기로 한다.


'까치글방 서포터즈 3기' 활동을 통해 '까치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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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알아버리기 전에 사랑을 외우기도 한다. 마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사랑의 시절을 기억하라는 듯이. 시를 쓰는 일은 우리가 알고 있던 단어를 지워가며 단어의 애초를 아끼는 것. 어쩌면 영영 모를 수 있었던 단어들을.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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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존재의 연결을 묻는 카를로 로벨리의 질문들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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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끝없이 연결된 관계 속에 존재한다.”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이 오래된 물음에 대해 카를로 로벨리는 놀랍도록 유연하고 섬세한 대답을 내놓는다. 『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리 존재의 방식, 인식의 구조,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며 과학자의 눈으로 철학과 예술, 인간 사회를 해석해낸 깊이 있는 에세이 모음이다.


이 책은 로벨리가 지난 몇 년간 유럽의 여러 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엮은 것이다.

그 주제는 물리학의 경계를 넘어 철학, 윤리, 예술, 역사 등 인문학 전반을 아우른다. 

그는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가 믿는 것은 진실인가?”

“진리를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단정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확신을 유보한 채 대화와 사유의 장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로벨리는 이 책의 원제를 중국 고대 철학서인 『장자』의 유명한 일화에서 따왔다. 두 철학자가 강물 위를 지나다가 물고기의 기쁨에 대해 논쟁하는 장면이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도 진리를 논할 수 있는 유쾌한 소통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이 책 전체에 흐르는 중심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가 속한 세계는 단절된 개별이 아니라 상호 연관된 존재들의 집합이라는 인식이다.


로벨리의 사상은 ‘관계적 존재론(relational ontology)’이라는 개념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 이론물리학자이며, ‘루프 양자 중력 이론(loop quantum gravity)’을 연구한 과학자이지만, 이 책에서는 존재를 물리적 단위로 보지 않는다. 존재란 상호작용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며, ‘관계’야말로 실체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은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나 중국의 장자, 현대의 화이트헤드 등의 철학자들과도 함께한다.


그는 우리가 하나의 보편적 세계에 속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세계가 근본적으로 ‘연결’을 통해 존재한다는 인식을 통해 공감과 책임감을 끌어낸다. 이 책은 일상의 단면을 새롭게 조명하고, 사물 너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고정된 자아’조차도 타인과의 관계, 사회, 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형성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통찰은 단지 추상적 철학이 아니다. 그는 과학자로서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했지만, 이제는 확신보다는 질문을 던진다. 과학은 진리를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로벨리의 과학은 매우 인간적이다.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도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이 말은 이 책 전체의 주제를 잘 요약한다. 로벨리는 과학을 넘어, 우리 모두가 공동 세계의 일원임을 자각하고, 공감과 연대의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편을 가르고, 단절하고, 경쟁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런 시대에 로벨리는 말한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작은 호기심 하나가 세계를 연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과학자가 철학자의 말투로, 예술가의 감성으로,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은 ‘관계성’이며, 이는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 본인의 양자 중력 이론을 넘어 철학적 신념과 맞닿아 있다. 그는 “사물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고 강조하며, 물리학의 언어를 통해 인류 전체의 윤리적·사회적 책임까지 논의하는 드문 지성이다.



'쌤앤파커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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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자가 되려는 꿈을 실현할 수 없게 된 카불의 자산가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대신, 9.11테러 이후 우리 통치자들이 맹목적 복수를 위해 일으킨 무의미한 전쟁으로 학살당하고 비참한 처지에 빠진 아프가니스탄 사람 수백만 명에 대해 안타까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탈레반, 다에시, 서방의 폭탄으로 자녀, 형제 자매, 부모가 죽거나 불구가 된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폭탄은 누가 터뜨리든 모두에게 똑같이 피해를 입힙니다. 우리는 잔인함과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폐허가 된 나라에 대해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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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 - 어느 교도소 목사가 가르쳐주는 인생의 교훈
카리나 베리펠트.짐 브라질 지음, 최인하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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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는 사형장 목사로 활동한 짐 브라질의 삶을 기록한 감동적인 논픽션이다. 기자 출신의 저자 카리나 베리펠트는 오랜 시간 그를 밀착 취재하며, 죽음을 앞둔 사형수들과 나눈 대화와 삶의 궤적을 글로 옮겼다. 이 책은 단순히 교도소 이야기를 전하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살아 있는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용서는 가능한가’ ‘진정한 회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깊이 있는 작품이다.


책의 중심 인물인 짐 브라질은 한때 잘나가던 목사였다. 하지만 외도와 실수로 인해 가정이 무너졌고, 목사직마저 내려놓게 된다. 그는 인생의 밑바닥에서 병원 화장실의 막힌 변기를 뚫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중, 똥물 위에 무릎을 꿇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바라는 대로 네가 행동한다면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그 말은 짐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다시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고, 이후 사형수를 위한 형목(刑牧)으로 활동하게 된다.


형목이 된 그는 276명의 사형수와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독극물이 주입되는 순간, 전기의자에 앉는 찰나, 참관실 너머에서 숨이 멎는 그 짧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짐은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빠르게 꺼지는지를 목격했다. 그가 사형수들에게 전한 말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인생은 축복입니다. 허비하지 마세요. 할 수 있다면 언제든 좋은 일을 하고, 무엇이든 용서하세요. 그리고 그렇게 한 후에는 넘어가세요.”


이 말은 단지 사형수에게만 전해진 것이 아니다. 짐은 기자인 저자에게도,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도 같은 말을 건넨다. 하지만 독자는 그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다. 특히 저자 역시 고통과 분노, 용서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왔기에 짐의 말이 처음엔 낯설게 느껴진다. 그는 삶이 축복이라고 말했지만, 저자는 “나는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중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솔직한 마음은 같은 경험을 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맞닿아 공감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 책은 사형수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단지 죄인이기 이전에 사람임을 강조한다. 어떤 이들은 열여덟, 열아홉의 철없던 시절 저지른 실수로 감옥에 들어왔고, 긴 세월을 속죄하며 살아왔다. 짐은 그들에게 “신은 누구에게나 두 번째 기회를 주신다”고 말한다. 그는 이 사역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영원히 변화시키는 것”이 자신의 진짜 소명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덧붙이기를, “사람 사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도 말한다. 신은 용서하나, 인간은 쉽게 용서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의 용서란 얼마나 어렵고 숭고한 일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ㅡ 이 부분에서 예전에 봤던 한국 영화 ‘밀양’이 생각났다. 『밀양(감독 이창동, 2007))』은 용서의 본질과 신의 섭리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주인공 신애(전도연)는 아들을 납치·살해한 범인 박도섭을 용서하기로 결심하고 교도소를 찾아간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무너뜨린 것은 살인범의 “나는 이미 신께 용서를 받았습니다”라는 한 마디였다. 가해자가 먼저 신의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는 그 순간, 피해자인 그녀는 절망에 빠진다. 왜냐하면 그녀는 ‘용서’라는 주도권을 스스로 쥐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믿음은 산산이 부서진다. 신애가 느낀 충격은 용서란 인간의 의지와 감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잡하고 깊은 차원에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에서 짐 브라질 목사가 사형수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겹쳐진다. 짐은 형장에서 죽음을 앞둔 수감자들에게 “신은 두 번째 기회를 주신다”고 말한다. 그는 누구든 진심으로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역에 임한다. 하지만 그 역시 말한다. “신은 용서하시지만, 사람은 그러지 않는다.” 이 문장은 신애가 느낀 감정의 본질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신이 용서했다는 말은 어떤 이에게는 위로지만, 어떤 이에게는 가장 잔혹한 선언이기도 하다.

짐 목사의 메시지가 “인생은 축복이며, 무엇이든 용서하고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라면, 『밀양』은 그 말을 정면에서 의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용서할 수 없는 상처 앞에서 우리는 과연 신처럼 용서할 수 있는 존재인가? 신의 용서가 인간에게 위안이 되지 못할 때, 우리는 그 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가 신의 이름으로 구원을 말하는 책이라면, 『밀양』은 그 구원이 인간에게 항상 유효한가를 되묻는 작품이다. 두 작품은 정반대의 길을 걸으면서도 결국 같은 지점을 바라본다. 용서란 과연 무엇인가? 신의 뜻은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오는가? 그 사이의 간극과 충돌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고통이자 질문이다.

따라서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를 읽는 있는 독자라면, 『밀양』이라는 영화를 함께 보면서 비교해보는 행위가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 둘은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며 종교와 삶, 죄와 구원, 인간과 신 사이의 간극을 더 정밀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과 상처, 그리고 용서의 가능성을 다시 묻게 된다.


ㅡ 이 책에는 교도소 내부의 냉혹한 현실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성 간의 성적 행위, 물물교환, 절망감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수감자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지만 현실이다. 짐은 그 속에서도 예배당만큼은 “신의 집”이라 말하며 질서를 지키려 한다. 그는 외형적으로는 단호하지만, 그 누구보다 수감자들의 내면을 돌보고 진심으로 그들의 회복을 바란다.

또한 이 책은 짐 개인의 삶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룬다. 그의 가정은 외도로 인해 무너졌고, 아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 그는 자신이 아내에게 화를 냈던 이유가, 결국 자신이 바란 이상적인 여성상에 그녀가 맞춰주지 않았기 때문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아내의 잘못이 아니라, 저 자신이 문제였어요.”라고 말하는 짐의 변화는 회개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짐이 똥물 속에서 무릎 꿇고 기도한 후 신의 응답을 듣는 순간이다. 그는 그 이후에도 변기를 닦고, 화장지를 주우며, 가장 낮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웠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단지 상황의 변화가 아닌, 내면의 변화였고, 신과 다시 연결된 순간이었다.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는 삶과 죽음, 죄와 용서, 회개와 구원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책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남긴 말은 때로는 단순하지만, 그것만큼 진실된 말도 없다는 것을 이 책은 반복해서 증명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이며, 나는 무엇으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나에게도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울림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고통을 겪은 사람, 실수로 삶이 무너진 사람,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또한, 죽음이라는 거울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싶은 모든 이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짐은 말한다. “사형수들과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말이다. 어쩌면, 진실은 늘 죽음 가까이에 있다. 이 책이 말하는 ‘죽기 좋은 날’은 그래서 곧, ‘진심으로 살기 좋은 날’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다산책방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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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의 대화,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많은 수감자들을 만났던 경험은 짐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짐이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의 삶을 영원히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형수에게 남겨진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무척 중요했다. 하지만 사형 일자가 정해지지 않은 다른 사형수들에게도 마음과 영혼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고 싶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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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컨닝페이퍼
박종경 지음 / 토네이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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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겪은 사람이 건네는, 인생을 덜 헤매게 해주는 실전형 힌트북”


당신은 인생을 어디에서 배웠는가?

학교에서였는가, 부모에게서였는가, 아니면 수많은 실패와 상처를 겪으며 겨우겨우 터득해왔는가. 우리는 누구나 정답이 없는 시험지를 손에 쥔 채, 매일같이 ‘인생’이라는 문제를 풀어가며 살아간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험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문제의 의도를 이해하게 된다.


박경종 변호사의 책 『인생의 컨닝페이퍼』는 그런 시행착오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가기 위해 한 번쯤 미리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정리해 둔 실용적인 안내서 같은 책이다.


책의 시작은 마치 고백처럼 다가온다. 저자는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 표현하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결코 단순하지 않다. 역사학자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지만 돈이 안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접고, 사람의 인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직업인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그 결정 뒤에는 어린 시절 겪은 가정의 불화, 부모의 이혼, 경제적 불안정이라는 배경이 깊게 깔려 있다.


부모님의 갈등과 빚, 그리고 결국 이혼에 이르기까지, 그는 어린 나이에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돈이 없으면 가족이 무너질 수도 있고, 아이는 불안해지며, 꿈을 포기하게 되는 현실을 그는 일찌감치 알아버렸다. 이 모든 경험은 지금 변호사로 일하는 그에게 사람을 이해하는 깊은 바탕이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법률 조언이 아니라 타인의 삶의 패턴을 읽어내는 관찰에 있다. 저자는 수많은 사건과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반복하는 실수를 짚어낸다. 예를 들어, 가정경제의 불균형이 아이의 자존감과 선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결혼이라는 제도는 어떤 준비와 시기에 더 건강한 선택이 될 수 있는지, 혹은 ‘성공’이라는 말 뒤에 감춰진 자기소외와 내면의 고독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실제 의뢰인의 사례와 자신의 경험을 엮어 현실감 있게 풀어낸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돈’에 대한 솔직함이다. 저자는 “돈은 많을수록 좋고, 삶은 의미 있을수록 좋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흔히 가난을 미화하거나, 부자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분위기와 달리, 그는 경제적 안정이 가족, 사랑, 그리고 꿈을 지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 기반인지 강조한다. 이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태도가 솔직하게 다가온다.


『인생의 컨닝페이퍼』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는 명확하다. 이 책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미리 들여다보고, 나의 삶에 필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마치 시험 전에 살짝 훔쳐보는 요점 정리처럼, 이 책은 우리가 부딪힐 수 있는 문제들을 미리 보여주고, 조금 덜 아프게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한다. 과거에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도, 현재 삶이 복잡한 사람도, 누구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그 증거로 저자는 자신의 삶을 꺼내 보인다. 변호사라는 직업 너머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어떻게 다잡고 살아왔는지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책은 달콤한 위로나 추상적인 조언 대신, 실제 삶에서 건져 올린 단단한 이야기들을 건넨다. 쉽게 넘길 수 있는 에피소드 같지만, 그 안에는 삶을 지탱하는 통찰이 담겨 있다. 다른 사람의 선택과 실수를 보며, 나의 방향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고, 멈춰 있던 삶에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줄 수 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먼저 고민해본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인생의 컨닝페이퍼』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와 저자의 경험이 담긴, 조용하지만 강력한 읽는 힘을 가진 책이다. 지금 삶이 어디서부터 막히고 있는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어쩌면 그 안에 당신을 위한 해답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토네이도 출판사 북클럽 <소용도리> 2기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사람들은 이처럼 일상이 무너질 때에야 비로소 현실의 무게에 좌절하고 절망하며, 이전에 자신이 무심코 당연히 누려오던 것들의 가치를 뒤늦게 체감하게 된다. 그래서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하고 어렵다.

지금 당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에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가늠해보라.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대비해야 할지 점검해보라. 만약 지금의 생활이 다가오는 당신의 삶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과감하게 지출을 줄이고 생활 수준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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