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시디어스 4: 라스트 키
애덤 로비텔 감독, 리 웨널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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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Insidious: The Last Key , 2017

   감독 - 애덤 로비텔

   출연 - 린 샤예, 스펜서 로크, 조시 스튜어트, 하비에르 보텟







  ‘인시디어스Insidious’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다. 겨우 4편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어쩐지 정으로 보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이 시리즈의 1편과 2편은 ‘램버트’ 집안의 남자들에게 쓰인 악령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3편은 1편에서 악령을 무찌르는데 도움을 준 영매 ‘엘리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뜬금없이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이번 4편은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악령과의 대결을 보여준다. 혹시 이 시리즈를 시작하고 싶은데 시간대별로 보고 싶은 사람은, 3편을 먼저 보고 4편, 그리고 1편과 2편을 보는 것이 좋다.



  영매로 활동하고 있는 '엘리스'는 한 남자의 전화를 받는다. 자신의 집에서 자꾸만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집주소를 듣는 순간, 엘리스는 과거 어린 시절 그곳에서 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그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집에서, 그녀는 악몽과도 같은 매일을 보내야 했다. 그녀에게만 보이는 귀신들은 당연히 무서웠지만, 엘리스는 폭력적인 아버지가 더 두려웠다. 결국 그녀는 어린 동생을 남겨두고 도망치듯이 집을 나왔고,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다.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돌아간 그곳에서, 엘리스는 어릴 적에 겪었던 공포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는데…….



  자신의 아이가 귀신이 보인다고 하면, 부모는 어떤 심정이 될까? 어린 엘리스에게는 귀신이 보인다. 그녀의 엄마는 그것을 재능이라 말해줬지만, 아빠는 그녀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몽둥이를 휘두르고 지하에 가뒀다. 귀신을 보는 것은 약간 극단적이니, 다른 경우를 대입해볼 수도 있다. 자신의 아이가 남들과 다른 점이 있을 때, 예를 들면 자기만의 세상이 확고해서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지만 독창성과 창의력이 있거나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곤충에 더 관심을 보이는 등의 태도를 보이면, 부모는 어떻게 아이를 가둬야 할까? 영화에서처럼 재능을 발휘하도록 용기를 북돋을 수 있고, 또는 남들과 똑같아지라며 억압할 수 있다.



  영화에서 엘리스는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아버지를 피해 집에서 도망쳤고,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나름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이 흘러도 그녀는 어린 시절의 그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건 누나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생각하며 자란 동생에게도 비슷한 경험을 주었다. 동생은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자신만 두고 가버린 누나를 용서할 수 없었고, 그 역시 어린 시절 겪은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건 그들이 나이를 먹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도 잊을 수가 없는 기억이 되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괴롭혔다.



  영화는 한 집에 도사리고 있던 악령과 그 때문에 일어났던 범죄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하는지 말하는 것 같았다. 만약 엘리스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대신, 엄마처럼 그녀의 재능을 믿어줬다면? 자신의 아이가 남과 다르다는 것에 분노하지 않았자면? 음, 그러면 악령이 풀려나지 않았고 그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려나?



  사건의 진실에 대해 알아가면서 좀 놀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반 이후부터는 집중도가 떨어지는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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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이 납신다 - 27명의 왕이 들려주는 조선의 역사
어린이역사연구회 지음, 김규택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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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27명의 왕이 들려주는 조선의 역사

  저자 - 어린이 역사 연구회

  그림 - 김규택

 

 

 

 

  조선의 역사를 1대 태조부터 27대 순종까지 왕 중심으로 간추린 책이다.


  각 왕에 대해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소제목으로 하고, 필요한 정보라고 하여 그의 업적이나 재위 중에 있던 일 일곱 가지를 골라놓았다. 그리고 왕이 간략한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초면에 말을 놓는 왕들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지만, 왕이고 조상님이라서 봐준다. 뒤이어 그들이 어떻게 왕위에 올랐고, 그 당시 사회적 상황은 어떠했고, 누구와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설명이 이어진다. 중간 중간에 각 왕의 재위 시절에 활약한 역사적 인물들의 그림과 표라든지 사회적 상황을 알 수 있는 그림이 곁들여져있다.




  소제목과 필요한 정보들만 잘 기억해두면, 어떤 사극을 보더라도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제목에 감탄했는데, 각 왕의 특징을 잘 잡아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세종’은 ‘조선은 중국과 다르다’라는 소제목을 갖고 있다. 중국 중심의 글자나 천문학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발명을 한 세종 집권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세조’는 ‘모든 결정은 왕이 한다.’ 인데, 그가 왕권 강화에 힘썼고 신하들이 많이 죽어나간 것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가장 마음이 아픈 소제목은 ‘순종 나라의 문을 닫다.’였다.

 

  각 왕들을 표현한 그림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정조’의 그림은 책과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고, 외척에 시달렸던 헌종은 신하의 손가락보다 가벼운 왕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순종은 커다란 문을 닫고 있는 그림이었다. 하아…….




 다른 역사서와 다른 점을 꼽자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벌어졌던 시대에 대한 설명 부분이었다. 왕 중심이라서 그런지, 의병장이라든지 맹활약을 펼쳤던 장수들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었다. 대신 전쟁이 어떻게 흘러갔고, 그 때 왕은 어떤 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지가 더 주를 이루었다.

 

 

  게다가 요즘 추세를 반영했는지, 광해군에 대한 부분에서 그의 업적이 주를 이루는 것도 특이했다. 왜 그가 쫓겨났는지에 대한 것보다는, 그가 이루었던 것과 이루려고 했던 것에 대해 더 분량이 많았다.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기에 뒷이야기 같은 것은 들어있지 않다. 그래서 처음 역사를 접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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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Grave Encounters 2 (그레이브 인카운터)(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New Video Group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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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Grave Encounters 2 , 2012

  감독 - 존 폴리퀸

  출연 - 리즈 알렉산더, 제프리 보이어-채프맨, 리차드 하몬, 스테파니 베넷







  귀신이 나온다던 폐병원을 촬영하던 ‘그레이브 인카운터’ 촬영팀이 사라진 후, 발견된 영상은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누구는 진짜라고 하고 누구는 조작이라 하는 가운데, 영화학도인 ‘알렉스’에게 이메일이 하나 도착한다. 바로 촬영팀이 사라진, 그 폐병원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알렉스는 같이 영화를 찍는 친구들과 함께 병원으로 향하는데…….



  1편이 인기를 끌어 속편이 나올 경우, 특히 감독이 바뀌었을 경우, 영화를 볼까말까 고민하게 된다. 내 경험상 속편이 전편보다 더 좋았던 적은 ‘터미네이터 2 Terminator 2 : Judgment Day, 1991’라든지 ‘에이리언 2 Aliens, 1986’ 뿐이어서,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잠시 망설였다. 게다가 전편을 그대로 따라하면 식상해서 재미없고,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그게 어울리지 않으면 망작이 되어버린다.



  영화 초반은 알렉스를 중심으로 그가 촬영하는 공포영화나 친구들과 여는 파티를 보여줬다. 아이들의 관계라든지 주인공인 알렉스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그리고 알렉스가 의문의 메일을 받고 실종된 촬영팀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과정도 딱히 재미있지 않았다. 나름 왜 그가 그곳으로 가야했는지 설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여간 처음에는 내켜하지 않았던 친구들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폐병원에 잠입한다. 그리고 전편의 촬영팀에게 벌어졌던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아니, 어쩌면 더 끔찍할 수도 있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라는 말이 뭔지 확실히 알았을 테니 말이다.



  후반으로 접어가면서, 문득 폐병원에 귀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폐병원 자체가 귀신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의 표현에 의하면, 그 병원은 스스로 움직여 내부 구조를 바꾼다고 한다. 마치 소설 ‘로즈 레드 - 엘린 림바우어의 일기 The Diary of Ellen Rimbauer, 2001’에 등장하는 대저택인 ‘로즈 레드’처럼 말이다. 그래서 한 번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아까는 분명히 문이 있었는데 다시 가보니 벽으로 막혔다거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라 생각했는데 지하로 내려가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놀랄까?



  영화는 인간의 이기심이란 얼마나 추악한지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어떻게 보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리 이타적이고 희생정신이 강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다들 이기적이고 성공을 갈망했으며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결말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잘만 만들면 시리즈로도 제작할 수 있었을 소재였는데, 그런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아쉽다. 이번 영화처럼 만들 거면 안 만드는 것도 좋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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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천 년을 사는 아이들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지음, 손화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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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Bian Shen, 2013

  작가 -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







  다른 아이들이라면 생일이 되면 신나하겠지만, ‘아르투르’는 달랐다. 14세가 되는 생일날 아침, 눈을 뜬 그는 불안에 휩싸였다. 지난 7천 년간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매번 14번째 생일이 되면 그는 죽었고 모든 기억을 갖고 환생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아르투르처럼 환생을 거듭해온 다른 친구는 생일날도 헷갈렸냐고 놀리지만, 그가 계속 죽지 않자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다. 이 세상에는 아르투르처럼 14세가 되면 죽었다 환생하는 존재가 있었고, 그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아르투르에게 ‘수호자’라는 존재가 나타난다. 그는 아르투르에게 사명이 주어졌다고 말하는데…….



  한편 공학도인 ‘너새니얼’은 위성을 통해 지구의 인구수를 측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우연히 그는 421명에 해당하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 비해 강한 뇌파를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런 그에게 네트워크의 아이들이 접근한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환생자의 수보다, 너새니얼이 확인한 수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환생자 중의 한 명인 ‘파올로’는 어른이 되지 않고 계속해서 환생만 하는 것이 지겨워졌다. 그는 자신의 삶이 저주받았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그는 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환생의 고리를 끊어내겠다고 결심하는데…….



  예전부터 지금까지, 죽지 않고 오래 오래 사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많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아르투르를 비롯한 아이들은 환생을 거듭하면서 오랫동안 살아왔다. 전생의 기억이 있기에, 그들은 몇 천년동안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삶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습득한 지식과 인맥으로 그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기도 한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기에, 그들은 몇 개 국어뿐만 아니라 사라진 고어까지 습득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무한으로 읽을 수 있는데, 2권까지만 볼 수 있다면? 뒷이야기가 궁금하지만, 강제적으로 다른 소설 1권을 읽어야 한다면? 소설 읽는 재미가 사라질 것이다.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들도 그랬다. 그들은 오래 살기는 했지만, 그건 십대 초반인 열네 살 때까지 뿐이었다. 그 이후의 삶은 어떠할 지 절대 알 수가 없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도, 20대의 열정적이면서 불안한 감정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느낄 경험이나 자신의 일에 열정을 바치는 경험도, 그들은 하나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파울로가 왜 그랬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어른이 되고 싶었고, 죽고 싶었다.



  책은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파울로와 이를 막아야 하는 아르투르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어떨 때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동시에 과학 기술을 적절히 활용했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작가는 예전에는 그냥 마법이라는 단어로 넘어갈 수 있는 현상을,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굳이 과학적으로 풀어줄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과 함께, 약간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책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면서 보여준다. 하나는 현재 아르투르와 너새니얼이 파울로를 찾아 헤매는 과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환생자인 아이들 중의 한 명의 과거 이야기였다. 그 과거가 참으로 서글퍼서, 환생하는 것이 꼭 좋은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르투르와 파울로, 그리고 너새니얼의 삶 중에서 어떤 삶이 좋은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었다. 그들 나름 고통이 있었고 기쁨이 있었으며 이루어지길 바라는 꿈이 있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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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감독 - 토미 위르콜라

  출연 - 누미 라파스, 윌렘 데포, 글렌 클로즈, 로버트 와그너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인구 증가는 거의 모든 자원의 부족을 가져온다. 결국 정부는 한 가정 당 한 명의 자녀만 허용하는 정책을 발표한다. 이에 이미 태어난 아이들까지 정부에 의해 끌려가는 가운데, 한 집안에 무려 일곱 쌍둥이가 태어난다. 할아버지인 ‘테렌스’는 아이들을 몰래 기르기로 결정한다. 그는 각 아이들에게 요일 이름을 붙이고, 해당 요일에만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한다. 일곱 명의 아이들은 ‘캐런’이라는 한 이름으로 바깥에서 활동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을 공유한다. 그러던 어느 날, ‘먼데이’가 회사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남은 여섯은 도대체 먼데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고 하는데…….



  주연을 맡은 ‘누미 라파스’가 무척이나 고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1인 7역이라니……. 영화를 다 본 지금도 사실 누가 먼데이고 ‘웬즈데이’인지 구별을 못하겠다. 그냥 머리 긴 애, 염색한 애, 짧은 애로 구별했다. 그래서일까?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누가 잡혔고, 누구와 누가 다투고, 누가 희생되었는지 헷갈렸다. 집에 있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밖으로 나오면서는 비슷하게 옷을 입어서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그게 가능했으면 후반을 더 즐겁게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한정된 자원과 늘어만 가는 인구에 관련된 이야기는 미래 사회를 그린 작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소재이다. 전쟁이 난다거나 계층이 나뉘어서 빈익빈부익부의 암울한 사회를 다룬 것만 봤는데, 여기서는 인구 수 조절을 시도한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는 이미 태어난 아이들까지 계획에 포함시킨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부모에게서 떨어져 강제로 끌려간 아이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몰랐던 걸까? 그냥 정부에서 자손을 낳지 못하도록 강제 시술 정도만 하고 다른 곳으로 보낼 것이라 생각한 걸까? 그 법안을 만들었을 때, 이미 아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래서 후반부에 그 법안을 내놓은 의원에게 사람들이 보인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거의 20년이 넘게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무도 몰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너무 순진한 모양이다. 아니면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은 일이라 여기는 사람인 걸지도. 어쨌든 그들은 끌려가지 않고 집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살아남은 아이들이었으니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다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캐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일곱 쌍둥이는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공유해야 했다. 그 날 친구들과 나눈 대화라든지 행동, 있었던 일 등등. 그래야 다음날 다른 아이가 위화감 없이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먼데이가 사라진 다음,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그녀에게는 다른 자매와 공유하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건 다른 여섯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어쩌면 너무도 능숙하게 몇 십 년을 살아왔기에, 경계가 느슨해진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무리 쌍둥이라지만, 감정이나 성향, 취미, 그리고 사고방식이 같지 않아서 생긴 일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비호감인 사람이, 다른 누구에게는 호감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일 수도 있었을 테고 말이다.



  쌍둥이는 흔히 모든 것이 비슷하거나 똑같다고 여겨지지만, 다른 존재이다. 그러니 쌍둥이가 아닌 사람들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요즘은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몰아붙이거나 배척하고,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다. 그 다름 때문에 일곱 쌍둥이는 위험에 처하고 서로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모두를 위한 하나가 아니라, 온전한 자기 자신을 선택했다.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은 개별적인 인격체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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