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녀유혼 ( 天女幽魂 )
정소동 감독, 우마 외 출연 / SRE (새롬 엔터테인먼트)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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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倩女幽魂 A Chinese Ghost Story , 1987

   감독 - 정소동

   출연 - 장국영, 왕조현, 우마, 유조명





  하룻밤 머물 곳을 찾던 ‘영채신’은 ‘난약사’라는 오래된 절에 머무르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는 어여쁜 귀신이 남자들을 유혹해 나무귀신에게 바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영채신도 제물로 삼으려던 귀신 ‘섭소천’은 너무도 순수한 그를 살려주기로 한다.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나무귀신은 섭소천을 다른 요괴와 결혼시키려고 하는데…….



  예전에 동생과 함께 보면서 남녀주인공 둘 다 멋지고, 배경도 환상적으로 예뻐서 그냥 ‘와-’하는 감탄사를 내뱉은 영화였다. 두 사람의 사랑이 안타깝고,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악당이 무척이나 무시무시했었다. 귀신 영화인줄 알고 봤지만, 그것보다는 두 주인공에 홀려 본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애인님과 다시 본 영화는, 예전과 느낌이 달랐다. 그 때는 주인공에게만 집중했었는데, 이번에는 배경이나 다른 인물들도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을 도와 요괴와 싸운, 의리의 도사라든지 돈만 밝히는 관리, 영채신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지만 힌트를 주고 있는 시장 상인들, 그리고 양성체인 나무귀신과 그(또는 그녀)의 수하에 있는 다른 귀신들의 이야기가 의외로 재미있었다.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큰 줄기라면,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곁가지처럼 얼기설기 얽혀있었다. 마치 담쟁이덩굴들이 여러 개 엉키면서 커다란 벽을 가득 메우는 것처럼 말이다.



  화면은 여전히 멋졌는데, 특히 섭소천이 나오는 장면은 다 예뻤다. 그녀가 하늘하늘한 긴 천을 나풀거리면서 나타날 때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목욕통 장면은 지금 봐도 매혹적이었다. 그런데 음? 영채신이 이렇게 민폐 캐릭터에 순수하다 못해 눈치 없고 바보 같았던가? 섭소천과 도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영화가 시작하고 30분 안에 죽었을 것 같았다. 어쩐지 답답하고 손이 많이 가는 남자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얼굴이 잘생겨서 그냥 넘어가는 그런 느낌?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상당히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유형이었다.



  그나저나 나무귀신은 여자 옷을 입고 남자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분명히 암수한그루의 나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면 소나무나 자작나무의 귀신! 그리고 도사를 보면서 도와주겠다는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는 귀신에 홀린 불쌍한 어린애 하나 구제하겠다고 나섰다가, 목숨을 건 위험한 일에까지 휘말리게 된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자기가 한 말을 끝까지 지키려고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듬직하고 멋졌다. 사실 그가 없었다면 영채신은 백 번은 더 죽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 저런 남자가 진국이지. 예전에는 험상궂게 생겼다고 관심도 안 가졌었는데 말이다. 역시 사람은 외모보다는 말과 행동이 중요하다. 하지만 영채신의 외모라면……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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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씨, 멋지게 차려입고 어딜 가시나요? - 패션으로 본 인문학 이야기
연희원 지음 / 문예출판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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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패션으로 본 인문학 이야기

  저자 - 연희원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세계 역사 전집이 있었다. 지도와 사진, 그림과 함께 작은 글자가 아주 빽빽하게 적혀있던 10권이 넘는 책이었다. 당연히 어릴 적의 나는 작은 글자보다는 거기에 수록된 다양한 사진들을 더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화려한 드레스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그림들을 특히 좋아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리스 시대에는 남자들이 헐벗고 있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그린 그림은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다 벗고 있었으며, 르네상스 이후에는 여자들이 옷을 안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냥 옷을 벗는 성별도 시대에 따라 유행을 타는 건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잊고 있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는, 왜 그리스 시대에는 헐벗은 남자들 그림이 많았는지 이유를 알려주고 있었다.



  저자는 그리스 시대의 지배계층인 재산과 참정권이 있는 남자와 고급 매춘부인 ‘헤타이라’, 그리고 남자들의 아내와 딸인 여자들과 노예로 나누어 각각의 패션을 설명하고 있다. 그 시절에 외모를 꾸밀 수가 있는 부류는 남자와 헤타이라 뿐이었다. 헤타이라야 남자들을 유혹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그러려니 하겠지만, 남자가 외모를 가꾼다고? 여자가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뭔가 많이 불공평하고 황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예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경우에 그는 국가란 남자 시민들로 이루어져야 하고, 여자들은 밖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집안일이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와 똑같이 운동을 하고 바깥일을 하는 스파르타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는 스파르타 여자들이 화장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온갖 방종과 사치에 탐닉했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의 고급 매춘부인 헤타이라가 패셔니스타로 활동하는 것이나, 남자들이 자신을 꾸미고 심지어 멋진 근육을 자랑하기 위해 나체로 운동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건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역시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 나체로 몸매를 자랑할 수 있는 건, 오직 남자들뿐이었다는 사실 역시 좀 웃겼다. 심지어 ‘프리네’라는 헤타이라는 연극에서 나체를 보였다고, 재판에 회부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나체로 멋진 몸매를 자랑할 수 있는 건, 오직 남자들뿐이었던 것이다. 물론 남자라고 해서 다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참정권이 없는 사람들은 제외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리스가 말한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학교 다닐 때 금권정치라든지 차별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이런 부분까지 나누어놓았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단지 옛날 중국처럼 황제나 황족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이나 신료들의 지위에 따라 관복색에 차이를 두었을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리스에서 한 건, 색차별보다 더 심했다. 지들은 매춘부 끼고 먹고 마시고 노는데, 그 음식이랑 장소 준비 다 한 부인이랑 딸은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라고 한 게 말이 되나? 아, 그래서 요즘은 술집이나 룸살롱으로 가는 건가?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란 고대 그리스 시대나 요즘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는 뭔가를 갖기 원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그 뭔가를 따라하거나 갖기 원했다. 그리스 시대에는 차별되는 뭔가가 화장이었다. 지금은 화장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허용되었고, 다른 뭔가가 또 차별을 가르는 요소가 되었다. 예를 들면 집이나 자동차? 어쩌면 역사라는 건, 계속해서 차별적인 그 뭔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 갖고, 그러면 또 다른 뭔가를 찾아내는 것의 연속인가보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를 투쟁의 역사라고 하는 걸까?



  어린 시절의 궁금증을 거의 30년 만에 해결할 수 있었던,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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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스톰
딘 데블린 감독, 앤디 가르시아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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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Geostorm, 2017

  감독 - 딘 데블린, 대니 캐논

  출연 - 제라드 버틀러, 짐 스터게스, 애비 코니쉬, 에드 해리스







  지구 온난화가 심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상 기후로 재난이 일어난다. 폭염으로 몇 백 명이 죽고 홍수로 도시가 잠기는 등 한 국가에서 처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결국 전 세계는 이 참사에 대처하기 위해 힘을 모아 ‘더치 보이’라는 기후를 조작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낸다. 더치 보이를 만들어 전 세계적인 영웅으로 부상한 ‘제이크’. 하지만 팀원을 퇴사시키라는 위원회의 명에 불복하여, 동생 ‘맥스’에게 책임자 자리를 빼앗기고 은둔 생활을 하고 만다. 그리고 3년 후, 우주 정거장에서 의문의 죽음이 발생하고 더치 보이가 오작동을 하여 사상자를 내고 만다. 위원회는 제이크를 불러 오작동의 원인을 밝혀내기로 한다. 우주 정거장으로 간 제이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 일부로 더치 보이를 오작동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는 우주에서, 동생 맥스는 지구에서 누가 왜 그런 일을 벌이는지 조사하는데…….



  주인공인 제이크를 비롯해서, 동생인 맥스, 그리고 우주 정거장의 팀원들뿐만 아니라 정치 관료들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는 작품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아무리 인간이 왔다 갔다 하고 자아 정체성이 제대로 서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나도 나를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지만, 이 작품의 인물들은 너무 이상하다.



  3년 동안 말도 안하던 형제가 갑자기 서로를 너무도 잘 이해하는 우애 있는 관계로 바뀌는 것도 어색했고, 우주 정거장에 있는 팀원들의 태도도 이상하기만 했다. 과거 제이크가 해고되었던 이유를 생각하면, 팀원들의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거기에 주인공은 미국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내 가족을 위해 나를 희생해 모두를 지킨다는 행동을 보여준다. 양아치인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속 깊은 똑똑이라는 설정 역시 흔하기만 하다. 그리고 맥스의 애인은 백악관의 대통령 경호원인데, 애인의 부탁에 규정을 어기기까지 한다. 직업윤리와 애정 사이에서 애정을 택한 것이다. 영화니까 그러려니 하겠지만, 뭔가 좀 억지 같았다. 증거도 없는데 그냥 부탁한다는 말에……. 그만큼 애인을 믿는 걸 수 도 있다. 이 사람은 절대로 나에게 나쁜 일을 할 리가 없다는 그런 믿음? 그래도 억지스럽다.



  거기다 악당이 더치 보이를 이용하는 이유가 너무 식상해서 화가 났다. 엄청나게 정교한 계획을 짜놓고 이용해먹을 사람들도 다 유능한 인물로 배치해뒀는데, 꿈이 겨우 그거? 지금까지 해놓은 걸 보면, 굳이 그 자리에 오르지 않아도 충분히 원하는 걸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거기다 왜 지금까지 잘 하다가 막판에 그런 실수를?



  출연하는 배우들은 화려했고 CG도 괜찮았지만, 이야기의 설정이 너무 허술했다. 유명 파티쉐가 비싼 재료를 써서 맛있어 보이는 요리를 만들었는데, 먹고 보니 양념이 과하거나 덜 익힌 느낌?



  그나저나 앤디 가르시아, 못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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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놀고 싶은 날 숨은그림찾기 - 빨간고래와 떠나는 숨은그림 여행 40코스 혼자 놀고 싶은 날 미로찾기
박정아(빨간고래) 지음 / 조선앤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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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빨간고래와 떠나는 숨은그림 여행 40코스

   저자 - 빨간고래 (박정아)







  조카들이 어릴 적에 보던 학습지나 교육적인 만화책에 간혹 숨은 그림을 찾는 코너가 있었다. 그리고 역시 그 애들이 즐겨먹던 과자 상자에도 숨은 그림 찾기가 그려져 있기도 했다. 나란히 배를 깔고 누워서 같이 어떤 그림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경쟁도 하고, 때로는 조카를 울리거나 기를 살려줬던 추억이 있다. 요즘은 게임 사이트에 간간히 올라오는 숨은 그림 찾기 게임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휴대폰의 작은 화면으로 하다보면, 눈이 더 나빠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 한동안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색도 예쁘고 책도 사이즈가 큰 것 같고, 어쩐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은 주인공인 것 같은 사람이 여행을 준비하고, 이곳저곳 둘러보고 돌아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첫 번째 장을 펼치면 표를 예약하는 분주한 모습이 들어있고, 두 번째 장은 본격적으로 짐을 싸고 있다. 그 다음은 공항에서 면세점을 구경하고, 이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을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와 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과 다른 아시아권 나라들을 둘러본다. 물론 미국도 여행한다. 책은 각 국의 명소를 보여주면서, 그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물건들을 찾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런데 처음에는 숨은 그림 찾는 것보다, 각국의 명소를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림과 색감이 편안한 느낌을 주면서, 상당히 꼼꼼히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숨은 그림 찾기가 아니라, 무슨 그림 화보집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아니면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글자 없는 그림책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아, 비록 그림이지만 책에서 나온 각 국의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은 그야말로 식욕을 자극한다. 힐링 책이라고 했는데, 밤에는 보면 안 되겠다.




  책의 뒷부분에는 각 그림의 해답이 표시되어 있다. 그래서 이게 맞는지 아닌지 미심쩍은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색을 칠하고 엽서나 편지지로 쓸 수 있는 페이지도 몇 장 들어있다. 하지만 어쩐지 내가 색칠하면 엉망이 될 거 같아서 그냥 곱게 보존하기로 했다.



  막내 조카와 함께 찾아봤는데, 이제는 나보다 더 잘 찾는다. 어릴 때는 내가 하나라도 더 빨리 찾으면 분해했는데, 이제는 아주 여유롭게 후다닥 찾아낸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다 찾고 하는 말이 “고모, 이거 너무 쉽잖아요!”란다. 사실 너무 대놓고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설마 이건 아니겠지?’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었다. 음, 힐링이 목적이라 그림을 찾느라 집중해서 머리 아프거나 못 찾아서 화를 내지 않도록 쉽게 그려져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조카와 함께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책이었다. 한 번에 다 찾지 말고, 조금씩 아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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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예언자 1 오드 토머스 시리즈
딘 R. 쿤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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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Odd Thomas, 2004

   작가 - 딘 쿤츠






  검색을 해보니, 이 작품의 영화 리뷰를 쓴 날이 2014년 12월이다. 그 때 원작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책을 손에 들었다. 거의 3년 만이다.



  부모에게 외면당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오드 토마스’. 그에게는 부모도 모르는 특이한 능력이 있었으니, 바로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능력을 아는 것은 경찰 서장과 몇 명, 그리고 여자친구 ‘스토미’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드는 자신이 일하는 대형 쇼핑몰에 ‘바다흐’들이 무리지어 나타나는 광경을 보게 된다. 비극적이고 끔찍한 죽음이 생길 곳에 미리 와있는 존재인 바다흐. 그들이 그렇게 몰려있다는 것은, 그곳에서 조만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을 징조였다. 오드는 그걸 막기 위해 바다흐를 몰고 다니는 남자를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쿤츠의 작품은 특유의 속도감 때문에 읽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느릿한 것 같지만, 기차가 가속이 붙으면 엄청난 속도로 빨리 가는 것처럼 직선으로 쭉쭉 뻗어가는 시원함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면, 그 엄청난 두께에 ‘이 양반이 또…….’라며 한숨을 쉬지만 한번 펼치면 멈출 수 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런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어쩌면 내 집중력이 약해졌거나 날이 추워서 이불 속에서 읽었더니 자꾸 졸려서 그랬을지 모르지만, 중간에 여러 번 책을 손에서 놓고 말았다. 세상에, 쿤츠의 책인데! 게다가 초반을 읽으면서 어쩐지 이건 쿤츠답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물론 번역본이니 번역가의 역량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고 해도, 어쩐지 문장이 너무 길었고 늘어지는 분위기였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쿤츠 소설의 문장은 이 책처럼 몇 줄씩 길게 이어지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어쩐지 주저리주저리 설명이 긴 것이, 지금까지와는 좀 달랐다. 번역가가 긴 문장을 한두 개로 끊어서 번역하는 경우는 있지만, 한두 개의 문장을 하나로 합치는 일을 별로 없지 않나? 그러니, 이 긴 문장은 쿤츠가 적은 문장이라는 얘긴데……. 설마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는 쿤츠의 문장은 번역가가 짧게 끊어서 번역한 것들이었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그 정도로 이 책의 문장은 호흡이 길었다. 이 책은 오드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었다. 원래 사람의 생각이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법이니, 오드가 당황하거나 혼자 온갖 망상과 상상과 추측을 하는 게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집중하기 어려웠다. 물론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쿤츠 소설의 특징처럼 사들건이 휘몰아치면서 속도감이 붙어서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그 전까지는 읽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오드와 그 주변 지인들에 대한 설명이 너무 길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거의 초반은 등장인물 소개로 채워졌고, 본격적인 사건으로 접어든 것은 중반부터였으니까 말이다. 이 이야기가 시리즈라서, 초반에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걸까? 다음 이야기에도 이 사람들이 그대로 등장하는 모양이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와는 결말이 다르길 빌었다. 하지만 영화와 똑같은, 어쩌면 더 슬픈 마무리여서 마음이 아팠다. 힘내라, 오드.



  두 번째 이야기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지금 심정으로는 별로 끌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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