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깔끔한 아이 괜찮아, 괜찮아 8
마릴리나 카발리에르 지음, 레티지아 이아니콘 그림, 이경혜 옮김 / 두레아이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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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Pavor Nocturnus, 2016

  작가 - 마릴리나 카발리에르

  그림 - 레티지아 이아니콘






  올해 여덟 살 난 ‘파보르’는 엄마 말을 무척 잘 듣는다. 그래서 그는 엄마가 하지 말라는 것들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으니 씨 있는 과일은 먹지 않기, 학교에서 병균이 옮을 수 있으니 다른 아이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앉기 등등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파보르는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원인이 잘 놀지 못해서가 아닐까 생각하고, 다소 독특한 처방을 내린다. 바로 ‘친구 사귀기, 작은 동물 돌보기, 눈 뜨고 꿈꾸기, 그리고 모든 물건을 자기가 좋을 대로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아래서 올려다보기’였다. 과연 파보르의 악몽은 끝날 수 있을까?



  처음 책 소개를 봤을 때는, 아이가 외부의 것들에 공포증이 있는 줄 알았다. 몇 년 전에 시리즈가 끝난 미국 드라마 ‘명탐정 몽크 Monk, 2002’처럼 말이다. 참고로 드라마의 주인공인 ‘에이드리안 몽크’는 아내가 살해당한 이후, 무려 312개나 되는 공포증과 강박증을 가졌다고 나온다. 사건 해결에는 천재적이지만, 사교적이지 못한 그의 성격과 공포증 때문에 외부 생활을 거의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여덟 살짜리가 공포증이 많아야 얼마나 많겠냐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했었다. 그 나이 또래에는 음, 광대라든지 어두운 곳 또는 질병에 대한 공포증이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파보르가 그렇게 된 것은 부모의 탓이었다. 책에서는 엄마가 상당히 극성맞아서 아들을 과보호로 길렀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신기하게 아빠에 대한 것은 아빠의 ‘ㅇ’도 나오지 않았다. 한 부모 가정인 건가? 아니면 아빠는 집안일에 무관심 한 건가? 읽으면서 파보르의 집안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을 했다. 그래서 아빠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서,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은 부모의 책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아이라며 과보호를 하고, 아빠는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 때문에 아이만 고통 받은 셈이다. 책의 제목을 지나치게 깔끔한 아이라 아니라, 지나치게 깔끔하도록 강요받은 아이라고 바꿔야할 것 같다.




  친구도 못 만들게 하고, 강아지나 고양이도 만지지 못하게 하며 심지어 과일도 엄마가 골라주는 것만 먹어야 했다. 사과나 포도를 못 먹다니…….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엄마가 싫어해서 아이에게 둘러댄 거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씨앗 알레르기가 두렵고 체체파리 예방 주사까지 맞힐 정성이면, 우유나 달걀 내지는 글루텐 알레르기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 먹일 것 같다. 외국은 우유나 달걀 알레르기 환자가 없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게다가 채소도 기생충 알이나 방사능이라든지 농약이 묻어있을까 걱정되어 어떻게 먹였을까?



  음, 갑자기 흥분해서 이상한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하여간 이 책은, 어린아이가 읽고 엄마에게 보여주거나 엄마가 아이와 읽으면서 반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에게 아이다움을 빼앗아버리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보여준다. 파보로가 악몽을 꾸는 원인은 간단하다. 세상 모든 것이 위험하다고 엄마가 아이의 뇌에 주입시키는 바람에, 모든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잠잘 때조차도 말이다.



  이 세상이 위험한 것은 맞다. 내가 신호등을 잘 지키고 다녀도 어떤 미친놈이 차로 박아버릴지 모르는 일이고, 부실 공사라든지 폭탄 테러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 지진이나 태풍 같은 천재지변은 거의 매년 일어나고 있다. 묻지마 살인은 또 어떤가? 그 때문에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도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불 속이라고 안전한 건 아니다. 주변이 다 지뢰와 함정으로 가득한 데, 엄마가 무조건 막는다고 과연 아이가 안전할까? 차라리 아이에게 안전한 길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위험하고 안전하지 않다고 무조건 금지할 수 는 없다. 그러니 차라리 그 안에서 안전한 길을 찾아내도록 아이에게 가리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책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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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Last Shift (라스트 쉬프트)(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Magnolia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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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Last Shift, 2014

   감독 - 안소니 디블라시

   출연 - 줄리아나 하커비, 조슈아 미켈, J. 라로즈, 행크 스톤







  신입 경찰인 ‘로렌’은 하룻밤만 지나면 폐쇄가 될 경찰서 건물에서 첫 근무를 하게 된다. 이미 다른 곳에 새로 경찰서를 지어 이동했지만 아직 다 옮기지 못한 것들이 남아있어, 처리할 사람들이 올 때까지 지키는 것이 임무였다. 그곳은 로렌의 아버지가 근무하던 곳으로, 그녀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는 장소였다. 그런데 혼자 있는 그녀에게 기묘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납치되었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한 소녀의 전화를 시작으로,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노숙자에다가 불길한 환상까지. 로렌은 신축 건물로 이사한 경찰서로 연락하지만, 어쩐지 장난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로렌은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던 한 여인으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일 년 전, 아이들을 납치하고 살해한 혐의로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들이 현장에서 사살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에 의하면, 사실은 그들이 경찰서에서 자살했다는 것이다. 다시 자리로 돌아오던 로렌에게 그들의 취조 영상을 녹화한 테이프가 재생되고,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서히 밝혀지는데…….



  이 작품 역시 ‘오텁시 오브 제인 도 The Autopsy of Jane Doe, 2016’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로 등장하는 사람은 주인공인 로렌뿐이고, 그 외에 잠깐 왔다가 가버리는 사람들까지 합쳐봤자 대여섯 명을 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보는 이를 긴장하게 하고 다른 데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잠시 쉬려고 하면 의문의 전화가 걸려오고, 순찰을 돌면 이상한 사람을 만나거나 기이한 사건이 자꾸만 일어난다. 그렇게 여러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니, 다른 데 눈을 돌릴 수 없다. 게다가 사건이 점점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 힌트가 주어지니, 다른 생각도 할 수가 없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생각지도 못한 장면에서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장치들이었다. 원래 공포 영화를 보면, 이쯤에서 뭔가 나오겠다는 느낌을 주는 장면들이 있다. 불 꺼진 복도라든지 창문 등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것들 빼고,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부분도 많았다. 사무실이라면 어디나 있는 사물함과 바퀴달린 캐비닛 그리고 의자가 그렇게 오싹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어릴 적에 혼자 집을 보는 건 아주 싫어했다. 혹시 누군가가 숨어 있다가 튀어나오지는 않을지, 무척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까지 생각나는 것은, 베란다에 있는 장독 뒤에 숨어서 울었던 일이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인가 1학년 때였을 것이다. 오빠는 학교에서 안 왔고 어린 동생은 엄마와 외출해서, 나 혼자 있었던 것 같다. 대낮이었는데도 뭐가 그리 무서웠는지……. 방에 못 있었던 건 아마 장롱 문이 열리면서 뭐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 나에게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혼자 큰 건물에 그것도 밤에 있으라고 하면, 그런 제안을 한 사람과 절교할 거다. 내가 주인공 입장이었다면 엉엉 울거나 밖으로 뛰쳐나갔을 게 분명하다. 역시 경찰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가 전화와 경찰서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연결된다. 사실은 그걸 연결이라고 해야 할지, 환상이라고 해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과거의 재현이라고 해야 할지 좀 의문이다. 결국 그날 밤 로렌에게 벌어졌던 모든 일들은 현실일 수도 있고, 환상일 수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은 혼자 남겨진 그녀가 온갖 이상한 상상을 하다가 미쳐버린 것일 수도 있고, 진짜 사이비 광신도들이 남긴 뭔가가 그녀에게 영향을 준 것일 수도 있다. 음, 겨울 오두막에 혼자 남겨져 온갖 이상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결국 미쳐버린 남자에 대한 단편이 기억난다. 로렌에게 생긴 일이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결론내리기엔 그 환상이 너무 끔찍하고 실감났다. 만약 그게 현실이라 생각하면, 악은 집요하고 끈질겼으며 엄청난 집착을 갖고 있었다. 죽음을 이길 정도로. 그리고 로렌은 그걸 이길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녀와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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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제 - MEMOIR OF A MURDERER, 2016

  원작 -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2013’

  감독 - 원신연

  출연 - 설경구, 김남길, 설현, 오달수







  2013년에 나온 김영하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감독판이다. 극장판과 감독판은 포스터가 다르다. 극장판은 주인공이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감독판은 주인공이 입 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면, 저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병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우연한 접촉사고로 마주친 ‘태주’를 본 순간, 병수는 깨닫는다. 바로 그가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을. 그가 그걸 알 수 있는 건, 17년 전 교통사고가 나기 전까지 병수도 연쇄 살인범이었기 때문이다. 병수는 태주가 살인을 저질렀음을 익명으로 제보하지만, 그가 미처 몰랐던 일이 있었다. 태주가 경찰이라는 것이다. 태주는 병수의 딸 ‘은희’에게 접근하고, 병수는 딸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그의 기억은 오락가락하고, 심지어 무엇이 환상이고 현실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워지는데…….



  처음에는 이 감독판을 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극장판과는 결말이 다르다는 말을 듣고, 그럼 ‘어디 한 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말이 다소 모호하고 어딘지 모르게 영 애매했던 극장판과 달리, 감독판은 그럭저럭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문득 외국의 어떤 영화가 떠올랐지만, 그걸 적으면 대놓고 스포일러가 되기에 지워버렸다. 음, 그런데 그걸 안 적으니 할 얘기가 없다.



  감독판은 극장판보다 10여분 정도 더 길다. 그만큼 추가된 장면도 있고, 빠진 부분도 있으며, 아예 달라진 곳도 있었다. 그러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인물의 성격이 더 드러나고, 결말의 반전도 더 극적이었다……라지만 중후반부터 추측 가능했고, 외국 영화가 떠올랐다. 그래도 초반부터 주어진 퍼즐들이 결말부분에서 맞아떨어지는 과정은 마음에 들었다. 극장판과 달리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극장판보다는 나았지만, 소설에 비교하면 좀 아쉬웠다. 소설의 결말은 심심하면서도 놀라웠는데, 감독판은 놀라우면서 좀 뻔했다. 그 외국 영화……. 그런데 왜 처음부터 감독판으로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은 걸까? 사람들로 하여금 두 번 보게 해서 VOD 수입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배급사의 노림수인건가!



  그리고 이건 영화 외적인 부분이긴 한데, 포털 영화 소개에서 보면 극장판과 감독판의 구별이 가지 않는다. 포스터도 둘 다 똑같이 감독판이 올라와있고, 작품 설명도 똑같다. 극의 흐름이나 결말이 다르면, 다른 작품으로 구별해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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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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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김영하





  2013년도에 나온,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MEMOIR OF A MURDERER, 2016’의 원작 소설이다. 영화만 봤었는데, 소설은 결말이나 진행이 좀 다르다고 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나’는 26년 전까지는 연쇄 살인마였다. 하지만 마지막 살인을 하고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때 당한 뇌손상 때문인지, 살인이 주는 매력을 느끼지 못해 그만 두었다. 마지막 희생자 부부의 딸인 ‘은희’를 입양하고, 수의사로 일하던 중 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그 병을 빼고는 별다른 문제가 없던 삶에,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전직 살인마의 감으로 확신하건대, ‘박주태’ 그 놈은 연쇄 살인마다. 그런데 놈이 은희의 남자친구란다. 딸을 보호해야 한다. 나는 그를 죽이기 위해, 다시 살인을 저지르기로 하는데…….



  모호하게 마무리 지었던 극장판 영화와 달리, 소설은 확실한 결말을 보여줬다. 그리고 몇 가지 설정 부분에서 영화와 달랐다. 우선 딸인 은희의 설정, 주인공의 배경과 나이, 박주태의 직업 그리고 영화에서 친분이 있던 경찰과의 관계 등이 달랐다. 또한 영화에서 부각되었던 누나의 존재가 사라지고, 대신 개가 그 자리를 채웠다.



  영화가 막판에 휘몰아치듯이 쏟아 부었다면, 소설은 주인공을 조금씩 야금야금 무너뜨리고 있었다. 앞부분과 미묘하게 달라진, 하지만 무심히 지나갈 법한 문장이나 대사에서 주인공의 병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걸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개’였다. 개에 대한 두 번째 언급이 나오는 부분에서, ‘어?’하는 의문과 함께, ‘헐!’하는 놀라움이 들었다.



  1인칭 시점이건 3인칭 시점이건, 소설을 읽을 때 서술자가 거의 진실을 얘기한다고 믿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걸 깨버린 애거서 크리스티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서술자를 믿고 읽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서술자부터가 자신이 보고 듣는 것에 확신이 없었다. 책의 모든 것이 그의 기록에 의존했기에, 그가 착각했거나 혼란스러워하는 일들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아까 그가 한 말과 들었던 얘기, 그리고 그가 생각했던 일이 지금 그가 하는 말과 듣는 얘기 그리고 생각하는 일과 미묘하게 달랐다. 그 전까지는 그냥 ‘저런, 알츠하이머가 무섭네’라는 안이한 자세로 읽었는데, 그걸 느낀 순간 책 읽는 자세가 달라졌다. 그 전까지 무심히 넘긴 대사나 문장 하나하나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이번 달에 읽었던 ‘폐허 The Ruins, 2006’나 ‘걸 온 더 트레인 The Girl on the Train, 2015’ 같은 책과 비교하면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두께였는데, 어쩐지 시간은 비슷하게 걸렸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장점은, 소소한 즐거움이 곳곳에 숨어있었다는 점이다. 두 연쇄 살인마의 대결을 그리고 있지만, 중간에 숨을 고를 시간을 충분히 주고 있다. 몇 십 년 동안 살인을 저질러왔지만 의심조차 받지 않았기에, 자신은 남들보다 뛰어나다며 우쭐해있는 주인공의 심리가 책 여기저기에 흩어져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약간의 뒤틀림을 보여주며, 읽는 재미를 주었다. 특히 은희와 주인공의 이 대화 장면이 개인적으로는 제일 웃겼다. 한참 진지하게 읽고 있다가 여기서 그만 빵 터졌다. 예상치도 못한 기습을 당해버렸다.



  “그놈은 푸른 수염이다.”

  “무슨 수염? 그 사람 수염 안 길러.”

  은희는 교양이 부족하다. -p.100



  정말로 은희가 이렇게 대답했는지는 의심스럽다. 왜냐면 그의 정신세계는 기억과 환상과 망각과 현실의 경계가 뒤섞여있기 때문이다. 진짜로 저런 대화가 오갔을 수도 있고, 그의 망상이 빚어낸 의외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 문득 주인공이 은희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대한 힌트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푸른 수염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는 어린 시절의 은희와 남자친구와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 성인이 된 은희가 뒤섞여있는 그런 상태?



  내 생각으로는, 극장판보다는 소설이 훨씬 더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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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음모
프랭크린 J. 샤프너 감독, 그레고리 펙 외 출연 / 에이스필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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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Boys From Brazil, 1978

  원작 - 아이라 레빈의 ‘The Boys from Brazil, 1976’

  감독 - 프랭클린 J. 샤프너

  출연 - 그레고리 펙, 로렌스 올리비에, 제임스 메이슨, 릴리 팔머






  아이라 레빈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주연을 맡은 두 배우는, 얼굴은 잘 몰라도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 유명하나 사람들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진짜 얼굴을 못 알아봤다. 분명 ‘그레고리 펙’인 것 같은데, 기억하고 있는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고민을 좀 해야 했다.



  2차 대전 이후, 유대인 청년 ‘콜러’는 도망간 나치 잔당을 추적한다. 그는 전범 추적자로 유명한 ‘리버맨’에게 ‘요제프 멩겔레’와 그들의 음모에 대해 알려준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서방세계에 있는 94명에 달하는 65세의 남자공무원들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멩겔레와 그 부하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리버맨은 콜러가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하던 중,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된다. 사망자들에게는 20세 연하의 부인과 검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입양한 어린 아들이 있다는 것이다. 리버맨은 멩겔레가 하려던 실험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리는데…….



  '요제프 멩겔레'는 실존 인물로, 히틀러 치하에서 여러 가지 생체 실험을 자행한 의사이다. 다른 전범들이 나이가 들었어도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것에 비해, 그는 브라질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1979년에 수영하다 사망했다고 하니, 할 거 다하고 살았다고 해야 할까? 그가 죽은 것도, 제보를 받고 무덤에 있는 시체와 치아 기록을 비교해서 알았다고 한다.



  이 영화의 원작이 나온 것이 1976년이고 영화가 발표된 것은 1978년이니, 어쩌면 멩겔레는 자신이 악당으로 나오는 이 작품을 직접 봤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미남 배우가 자기 역할을 맡은 것에 대해 기뻤을까? 아니면 영화의 결말을 보고 혀를 찼을까? 그것도 아니면, 왜 영화에서와 같은 실험을 시도할 생각을 못했을까 아쉬워했을까? 원작자인 아이라 레빈은 아마 멩겔레가 수용소에서 주로 했던 생체실험의 대상이 쌍둥이나 임산부였다는 사실에 힌트를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상당히 오래 전에 만들어졌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물론 그 시대까지 남아메리카에서는 나치 잔당들이 버젓이 파티를 열고 대놓고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게 좀 미심쩍지만, 그 때는 그랬나보다. 그 당시 남미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이야기는 초반부터 흥미진진하다. 멩겔레와 일당의 회의를 엿듣던 콜러가 발각되어 쫓기는 과정은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고, 제거 대상이 된 사람들이 하나둘씩 살해되는 과정은 안타까웠다. 특히 리버맨이 희생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 첫 번째 집에 이어 두 번째 집을 갔을 때는 나도 놀랐다. 쟤 아까는 다른 집에 있었잖아? 그리고 사망자들의 공통점이 하나둘씩 밝혀지는 순간에는 오싹했다.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건 아니겠지. 그런데 그게 맞았다. 그 순간 ‘와, 미친’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과연 그 실험이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멩겔레는 이미 1940년대에 현대 과학기술에 대해 알고 있어야 했다. 아는 것뿐만 아니라 성공도 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는 세대를 뛰어넘는 천재라는 말인데……. 그런 것치고는 결말이 너무 약했다. 그 전까지는 진짜 조마조마 두근두근 초조초조했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리버맨과 유대인 조직 간의 갈등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멩겔레의 성공적인 실험 결과물인 9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유대인 조직은 그들을 다 제거해야한다고 주장했고, 리버맨은 위험 요소는 사라졌으니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과연 무엇이 옳은 걸까? 미래에 위협이 될 여지가 아주 조금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다 죽여야 할까? 아니면 지금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고,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내버려둬야 할까?



  원작은 어떠했는지 읽어보고 싶었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절판이라니……. 도서관에도 없다니……. 예전에 서점에서 봤을 때, 구입해놓을 걸 그랬다.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기면, 기다리지 말고 낚아채야하는 법인가보다.



  만약 지금 어디선가 멩겔레의 실험을 시도하려는 사람이나 조직이 있다면, 그들은 누구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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