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Walking with the Deadm 2015

  감독 - 스캇 다우

  출연 - 팀 오글트리, 조이 오글스비, 데이브 셰리단, 트로이 오글트리







  몇 년 전에 유행했던 ‘무서운 영화 Scary Movie’ 시리즈가 있다. 거의 매년 그 해에 유행했던 영화들의 장면을 패러디해서 만든 작품으로, 5편까지 나왔었다. 물론 시리즈의 법칙대로 초반 2편까지 정도가 좋았다. 그 시리즈는 대개 공포영화와 액션영화 중심으로 패러디를 했었는데, 아마 그 당시 그런 류의 영화가 히트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요즘은 어떤 종류가 대세일까? 두말할 것 없이 좀비물이다. 그러니 좀비 영화들만 패러디한 작품이 안 나오면 이상하다.



  이 영화, ‘워킹 위드 더 데드’는 제목부터 좀비 영화 패러디임을 말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의 포스터가 패러디하고 있는 작품은 드라마 ‘워킹 데드 The Walking Dead, 2010’이다. 그리고 내용을 보면, 고전인 '새벽의 저주 Dawn of the Dead, 2004'부터 '레지던트 이블 Resident Evil, 2002', '웜 바디스 Warm Bodies, 2012', '좀비 스트리퍼 Zombie Strippers 2008'에 '좀비 랜드 Zombieland, 2009'까지 골고루 다루고 있다.



  한 요리사가 손을 씻지 않고 만든 초밥을 노숙자에게 제공하는 바람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다. 그리고 5주 후,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보안관은 아들과 부인을 찾아 떠나고, 몇 명의 사람들은 쇼핑몰로 향한다. 아들을 찾은 보안관은 쇼핑몰로 가서 사람들과 합류하는데, 그곳마저 안전하지 않았다. 안전한 은신처라 알려진 농장으로 향하는 일행들. 그런데 도착한 그곳은 어딘지 수상한 구석이 있었는데…….



  영화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상식을 깨부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금기를 넘어선다고 하면 좋을까? 보안관의 열두 살 먹은 어린 아들은 좀비가 된 여자들과 인간인 엄마를 고용해 스트립클럽을 운영하고, 인간과 좀비를 구별 못한 사람은 가족을 찾아 헤매는 어린 아이를 죽여 버린다. 게다가 농장에서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고 약을 하는 장면이 아주 낭만적이고 장난스럽게 거의 6분 동안 펼쳐진다. 상영 시간이 88분인데 그 중에 7분이나 별 내용 없이 슬로우 화면으로 가득 찼다. 이건 약 권장 영화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낭만적이었다. 지금까지 본 영화중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약하는 장면을 보여준 게 있었던가?



  영화에서 소소하게 재미를 주는 요소들은 인물들의 다소 핀트가 어긋난 사람들의 반응이다. 가령 세상이 좀비로 망했다는 사실보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못한다는 말에 더 절망에 빠지고, 좀비 세상이라는 말에는 별다른 반응을 안 보이다가 딸이 마약을 한다는 얘기에 세상 다 잃은 표정을 짓는 장면 등등.



  하지만 전반적으로 뭔가 어설픈 느낌이었다. 여러 영화들을 가져오다보니, 각 이야기들의 연결이 어딘지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너무 억지스럽게 끼워 맞추려고 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 쇼핑몰까지는 파격적이고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농장에 온 이후의 이야기들은 너무도 이상하고 어색하고 또 지루했다.



  하지만 좀비를 죽이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된 계기도 되었다. 지루한 영화 얘기를 하면 좀비도 뇌가 터져버린다. 음, 전에 본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Scouts Guide to the Zombie Apocalypse, 2015’에서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로 좀비와 공감대를 갖더니……. 그나저나 좀비를 치유할 방법은 있어도 마일리 사이러스를 치료할 약은 없다니,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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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Annabelle: Creation, 2017

  감독 - 데이비드 F. 샌드버그

  출연 - 알리시아 벨라-베일리, 미란다 오토, 스테파니 시그만, 안소니 라파글리아







  지난 1편이 너무너무 별로였기에 속편이 제작된다고 했을 때, 그리 기대하지 않은 작품이 있었다. 하지만 감독이 ‘라이트 아웃 Lights Out’이라는 엄청난 단편(2013)과 그럭저럭 괜찮은 동명의 장편(2016)을 만들었기에 ‘흐음, 봐줄까?’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있었다. 그리고 개봉일인 어제,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애인님에게 “다음번에는 자기는 보고 싶어 하지만, 난 별로 기대안하는 ‘다크 타워 The Dark Tower, 2017’를 같이 가줄게.”라는 약속을 하고 보러 갔다. 역시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



  그리고 결론은 애인님과 나, 둘 다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만족스러운 얼굴로 극장을 나왔다. 와, 진짜 1편이 진창에 빠져 허우적댔다면, 이번 2편은 그걸 끄집어내서 깨끗이 씻기고 하늘로 올려 보낸 느낌이었다. 감독은 만약에 1편을 안 본 사람이 2편을 봤다면 1편을 한 번 보고 싶게 만드는, 아니 꼭 봐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만드는 깔끔하면서 너무도 멋진 엔딩을 보여줬다. 하지만 내가 장담하건데, 1편을 보고나면 실망할 수도 있다. 2편이 너무 훌륭해서, 상대적으로 1편이 초라해보일 테니 말이다.



  인형을 만드는 ‘멀린스’ 부부에게는 ‘애나벨’, 애칭으로는 ‘비(Bee 그러니까 꿀벌)’이라는 애칭을 가진 일곱 살 먹은 귀여운 딸이 있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고 12년 후, 여섯 명의 고아 소녀들이 수녀의 지도 아래 멀린스의 집으로 오게 된다. 그 동안 부부의 삶은 많이 변했다. 부인은 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얼굴 반쪽을 가면으로 가린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남편은 인형 만드는 일을 중단하고 아내 수발을 들고 있었다. 커다랗고 예쁜 집에서 살게 되어 너무도 기쁜 여섯 명의 소녀들. 그런데 소아마비로 다리를 잘 못 쓰는 바람에 친구들과 뛰어놀지 못하는 ‘재니스’에게 의문의 쪽지가 전해진다. ‘나를 찾아봐’ 예전에 애나벨이 아빠와 술래잡기 할 때 쓰던 방법이었다. 쪽지를 따라 잠겨있던 애나벨의 방으로 들어간 재니스. 열쇠로 잠겨있던 옷장에서 커다란 인형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다른 아이들도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는데…….



  영화를 보다가 재니스의 절친으로 나오는 ‘린다’라는 소녀가 무척이나 눈에 익었다. 어쩐지 그녀가 입을 크게 벌리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아!’했다. 얼마 전에 본 영화 ‘위자 : 저주의 시작 Ouija: Origin of Evil, 2016’에서 악령에 들린 꼬마로 나온 소녀였다. 그때도 연기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도 엄청났다. 거의 그녀가 후반부를 이끌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악령에 쫓기는 그녀를 보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그냥 팝콘 먹으면서 여유 있게 봤는데, 어느새 둘이 손을 꽉 잡은 채 보고 있었다. 둘 다 어느 정도 공포영화 많이 봤기에 별로 놀랄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아니, 그래서일까? 뭔가 나오면 분명히 저게 나중에 악령이 들리거나 아이들을 위험에 처할 도구로 쓰일 거라는 게 뻔히 보여서, 처음부터 ‘어떡해’를 연발했다. 그 긴장은 계속 이어져 중반을 넘어가면서 점차 상승곡선을 이루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네가 이게 이렇게 쓰일 거라고 상상했겠지만, 난 거기다 한 수 더 나가주지.’와 ‘이거 보면서 팝콘 먹을 생각 하지 마! 손도 움직이지 마! 숨도 쉬지 마! 눈도 깜빡이지마!’라는 감독의 의지가 느껴졌다. 전작인 라이트 아웃에서보다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는 기법이 더 절묘해지고, 사람을 조였다가 풀어주는 흐름을 최소한으로 하는 비법을 터득한 것 같았다.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는 다른 생각은 아예 못할 정도였다. 다른 작품을 볼 때는 이따가 끝나면 뭐 먹을까 상상도 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럴 여지가 전혀 없었다.



  애인님의 표현대로, 공포영화보고 나서 이렇게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적은 오랜만이었다. 극장을 나오면서 둘 다 아주 그냥 싱글벙글 미소가 사라질 줄 몰랐다.



  아, 이 작품은 쿠키 영상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두 장면이 들어있다.



  그리고 리뷰의 제목을 ‘에’나벨이 아닙니다, ‘애’나벨입니다라고 쓰려다가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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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씽
마티스 판 헤이닌겐 주니어 감독,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원제 - The Thing, 2011

  감독 - 매티스 반 헤이닌겐 주니어

  출연 -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조엘 에저튼, 울리히 톰센, 에릭 크리스찬 올슨







  당연히 리뷰를 적었다고 생각하고 넘어간 작품들이 간혹 있다. 너무 유명해서 안 봤을 리 없고, 또 봤으니까 안 적었을 리 없다고 생각하여 확인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진짜로 일어나고 말았다! 왜 없을까? 아주 우연히, 더위에 아무 이유나 생각 없이 검색을 해보지 않았다면, 이 작품 역시 그냥 넘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진짜. 설명을 보니, 이 작품은 존 카펜터 감독의 ‘괴물 The Thing, 1982’의 ‘프리퀄’에 해당한다고 한다. 헐, 찾아보니 이 작품도 리뷰가 없다. 조만간 써야겠다.



  프리퀄이란, 앞선 이야기를 뜻한다. 뒷이야기를 다룬 시리즈를 이어가기 힘들면, 종종 제작사에서는 앞선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최근에 개봉했던 ‘에이리언 커버넌트 Alien: Covenant, 2017’가 있다. 리플리 일행이 1편에서 에이리언을 만나기 전에, 어떻게 그 생명체가 생겨났는지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그 외에도 엑소시스트도 ‘엑소시스트 더 비기닝 Exorcist: The Beginning, 2004’이라는 작품이 있었고, 난 안 봤지만 엑스맨 시리즈도 앞선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있었다고 한다. 몇몇 작품은 왜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엉망으로 오리지널의 이름에 먹칠하는 것들도 있고, 어떤 것은 그럭저럭 괜찮은 것들도 있었다. 그러면 이 영화는 어떨까?



  북극의 노르웨이 탐사팀이 뭔가를 발견한다. 빙하에 갇힌 지 거의 십만 년이 되었을 거라 추측된 커다란 우주선과 승무원으로 추정되는 생명체였다. 팀원들은 괴생명체를 얼음 째 연구소에 가져다놓고, 역사상 최고의 발견이라 기대에 부푼다. 그런데 얼음이 녹으려면 오래 걸리고 생명체는 이미 죽었을 것이라던 그들의 예상과 달리, 십 만 년 넘게 빙하에 갇혀있던 괴생명체가 깨어나는데…….



  영화는 다른 생명체의 몸에 파고들어가 복제를 하는 외계 생명체와 누가 진짜 인간이고 복제된 인간인지 구별하지 못해 의심하는 인간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지금이야 흔한 설정이지만, 원작 소설이 1938년에 나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꽤나 놀라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여간 영화는 같은 편으로 믿고 의지해야 할 인간들끼리 서로를 믿지 못하고 죽이려는 상황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인간과 결합한 외계 생명체의 모습은 기괴하고 흉측하기까지 했다. 보는 즉시 연구하기보다는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외양이었다. 1982년 작을 이미 보았기에, ‘그거 아니지!’ 내지는 ‘아니 너 혼자 그러면 어떡해! 이 바보야!’같은 외침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 꽤 있었다. 그리고 조사팀원들 간의 불신과 긴장을 보여주는 것보다, 액션 장면에 치중한 느낌도 좀 들었다. 거기서 왜 그렇게 멍하니 서있었는지 보는 내내 갑갑했다. 하긴 그래야 외계 생명체가 더 기괴하고 이상하게 변신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었겠지. 전대물에서 주인공 팀이 변신할 때 멍하니 봐주던 악당처럼 말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1982년 작의 오프닝으로 이어진다. 프리퀄이라는 이름답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연결이었다. 아, 그래서 내가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실망했던 모양이다. 어딘지 모르게 1982년 작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말이다. 그러니까 오리지널을 보고 이 영화를 보면 좀 실망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을 보고 존 카펜터의 영화를 보면 무척이나 재미있을 것이다. 물론 프리퀄이 거의 30년이 지난 후에 나와서, 뒷이야기의 의상이나 화면이 좀 더 구식으로 보이는 것만 감안한다면 말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나온 배우가 어딘지 낯익다 싶었더니,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 10 Cloverfield Lane, 2016’의 주인공이었다. 와, 이 사람도 별로 안 늙는 스타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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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원제 - 絶望讀書――苦惱の時期、私を救った本, 2016

  부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저자 - 가시라기 히로키







  조선 시대 때 우리 조상들은 부모가 사망하면 무덤 근처에서 3년 동안 상을 치렀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상을 치르기 위해 관직에서 사퇴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그게 잠시 벼슬길에서 떠나있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진짜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어떤 사람은 3년 내내 슬퍼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금방 비통함에서 벗어났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3년을 채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14년에 배 한 척이 바다로 가라앉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사망자 중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어린 학생들이 많았다. 그 부모들이 어째서 배가 가라앉았는지, 왜 구조를 하지 않았는지 정부에 진실을 말해달라고 시위를 하는데, 몇몇 사람들이 그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언제까지 자식이 죽은 슬픔에 잠겨서 이럴 것이냐고, 이제 그만 털고 그만둬야하는 게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그 중에는 위로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비아냥거리는 어조였다.



  부모와 자식을 비교하는 것에 이견을 표할 수도 있겠지만, 위 두 가지 경우를 보면 예전에는 비통함을 달랠 시간을 넉넉히 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3년으로도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책, ‘절망 독서’를 읽으면서 문득 위의 두 가지 경우가 떠올랐다. 저자는 대학에 다니면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던 중 난치병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10년이 넘는 투병 생활을 겪으면서, 저자는 절망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그 우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는, 책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그가 읽은 책들은 아기자기하게 밝고 희망찬 내용이 아니라, 음울하고 비탄에 젖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종류들이었다.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라는 말이 있다. 책을 읽다가 이 문장이 생각났다. 난 우울한데 주위에서는 좋다고 떠들고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쟤들은 뭐가 그리 좋을까, 난 왜 이 모양일까’라면서 더 우울해질 때가 있다. 심지어 난 이런 불운한 운명을 타고 난 걸까라는 상상까지 하게 된다. 저자가 절망에 빠졌을 때, 우울한 책을 읽은 것은 그런 이유였다. 아주 그냥 슬픔과 우울의 바다에 푹 빠져서 더 이상 슬퍼할 수 없을 때까지 슬퍼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책의 반 정도 되는 분량동안, 왜 절망에 온전히 나를 맡기고 더 암울한 작품을 접해야하는지 얘기했다. 사람마다 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디어를 원할 때는 나와 다른 시각으로 보는 사람의 조언이 무척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절망에 빠지거나 우울해할 때는 그런 사람의 위로는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제 그만’이겠지만, 나에게는 ‘아직’일 수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충분히 슬퍼하고 비탄에 빠질 시간을 줘야한다고 얘기한다. 내 상식과 기준으로 남의 슬픔을 마음대로 끝내라고 오지랖을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건 위로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위에서 얘기한 어린 학생들의 부모에게 사람들이 가한 것이 위로가 아니라 비아냥과 조롱이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자신이 보기 싫다고 남의 감정을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책의 띠지에 적힌 것처럼 폭력이다. 요즘 포털 사이트나 SNS를 보면 그런 짓을 하면서 뭐가 잘못인지 모르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예전에는 3년이라는 넉넉한 기간 동안 슬퍼할 수 있게 배려해줬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공감이 많이 가는 책을 읽는 건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지금까지 난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울한 분위기의 책을 피해왔다. 내가 우울하고 슬픈데, 굳이 그런 내용의 작품까지 읽어야하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절망에 빠진 나는 ‘다른 나’라는 생각으로 외면해왔던 것 같다. 이제는 외면하지 말고, 차분히 응시해봐야겠다.



  저자가 소개한 책을 보니, 도스토예프스키나 카프카를 제외하고는 일본 작품이 많았다. 흐음, 일본 사람이니까 당연한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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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Wish Upon, 2017

  감독 - 존 R. 레오네티

  출연 - 조이 킹, 이기홍, 라이언 필립, 시드니 파크







  어린 시절, ‘클레어’는 엄마가 목을 매 자살한 것을 처음 발견한 트라우마가 있다. 청소년으로 성장한 그녀에게는 좋은 친구와 다정한 아빠가 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아빠가 고물을 주워 파는 것 때문에 학교의 여왕벌과 그 일당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것, 짝사랑하는 남자애가 그 일당의 일원이라는 것 등등.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고물을 줍다가 중국어가 잔뜩 쓰여 있는 골동품 상자 하나를 선물로 준다. 학교에서 배운 중국어 실력으로 겉에 적힌 글자를 읽어보니, 소원을 일곱 개 빌어보라는 내용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여왕벌이 다치면 좋겠다는 소원을 빈 클레어. 다음날,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마음으로 연이어 상자에 소원을 비는데, 그게 이루어질 때마다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의 누군가가 죽어 가는데…….



  영화는 깔끔했다. 내용의 흐름도 괜찮았고, 뮤직 박스가 열리면서 누군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분위기도 좋았다. 특히 두 사람을 후보에 놓고 누가 죽을지 계속 왔다갔다 보여주는 장면은, 어쩐지 영화 ‘데스티네이션 Final Destination, 2000’ 느낌이 나면서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다른 죽음들도 그렇지만, 일상생활에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위기탈출 넘버 원’이 과장이 아니었다. 욕조가 너무 커도 문제고 너무 작아도 위험하다. 크면 익사할 것이고, 작으면 머리를 부딪쳐 죽을 테고……. 거기다 싱크대에 음식물 분쇄기가 붙어있을 때는 뭔가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한다. 거실에 양탄자가 있으면 발이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그 외에도 타이어 갈 때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조심하고……. 아, 엘리베이터는 조심해도 어쩔 수가 없을까? 탈 때마다 건물 안전도를 측정할 수는 없으니까.



  주위에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도 영문을 몰라 하는 주인공 때문에 초반에는 좀 답답했다. 그렇게 눈치가 없을까? 그러다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호러스릴러추리 장르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영화를 보니, 애들이 그런 걸 즐긴다는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과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연관성을 금방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말하지만,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추리스릴러 장르를 의무적으로 접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사건사고가 일어날 때 아이들이 답답하게 굴다가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도 상자에 집착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문득 ‘골룸’이 떠올랐다. 물론 거기에는 반지의 마력도 어느 정도 작용하긴 했지만, 그는 반지에 집착하다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여기서도 비슷했다. 클레어는 뮤직 박스의 마력에 홀려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소원을 빌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해하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 저러다가 애가 정신 줄을 놓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되었다.



  다른 영화들처럼 전형적으로 흘러가던 작품은 결말에서 놀라움을 주었다. 와, 그런 결말이라니……. 어떻게 보면 그러는 게 흐름 상 당연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마무리를 지을 줄은 몰랐다.



  아, 영화에서 문제가 되는 뮤직 박스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나온다. 동양의 신비, 뭐 이런 건가? 그나저나 클레어의 친구 중에서 ‘시드니’ 배역, 캐릭터 설정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거침없이 말하고 어디서나 당당한 것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런 성격이 주인공이었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컨저링의 꼬마가 많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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