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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소녀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7년 5월
평점 :
원제 - La Ragazza Nella Nebbia, 2015
작가 - 도나토 카리시
조용하고 다소 폐쇄적인 산악마을 ‘아베쇼’에서 ‘애나 루’라는 10대 소녀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사라진다. 처음에는 단순 가출이 아닐까했지만, 범죄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유명 형사 한 사람이 수사에 참여한다. 그의 이름은 ‘포겔’로 사건 해결에 언론을 잘 이용하던 형사였다. 하지만 증거조작까지 하면서 자신이 범인이라 점찍었던 사람을 감옥에 보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침체기에 빠져있었다. 그는 이번 사건이 자신의 재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수사에 전념한다. 그리고 그의 눈에 애나를 따라다니던 한 소년이 들어온다. 소년의 캠코더에서 애나를 지켜보던 한 남자를 발견한 포겔. 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 초조해하던 그는 마지막 수를 쓰는데…….
이야기는 애나 루의 실종 사건이 일어나고 두 달이 지난 후, 포겔이 피투성이로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그는 정신과 의사인 ‘플로레스’ 박사에게서 치료를 받으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한다. 실종 사건 발생 전과 발생 후, 그리고 포겔이 치료를 받는 현재까지,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건의 진상을 알려주고 있다. 주로 포겔의 시점에서 진행이 되지만, 그가 범인으로 지목한 학교 교사인 ‘마티니’의 입장에서도 이야기가 서술된다. 진짜 마티니가 범인인지, 아니면 포겔이 저번처럼 형사의 감만 믿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것인지, 이야기는 두 사람의 상황을 교차로 보여주었다.
‘유죄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말이 있다. 또한 ‘모든 것은 양 쪽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인터넷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글들이 올라온다. 그 중에는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면서 분노를 일으키는 것도 있다. 그걸 읽은 사람들은 댓글을 달고 스크랩을 해가면서 여론 재판을 벌이고, 나름 판결을 내린다. 그리고 마치 정의의 사자라도 된 듯이 신상을 털고 그걸 또 대중에게 뿌리고 당사자들에게 모욕을 가한다. 심지어 합성까지 해 퍼트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중 그 누구도 그 이야기의 진위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 이야기의 당사자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범죄자가 되고 만다.
그런데 나중에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정이 난다고 해도, 사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또다시 재판관이자 집행자가 되어, 처음에 거짓을 퍼트린 사람을 욕하기 바쁘다. 이 모든 건 처음에 거짓을 퍼트린 너의 잘못이라는 말과 함께. 사실 제대로 된 사실을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
이 책에서는 그런 여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지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보다, 지금 당장 욕하고 물어뜯을 대상이 필요했다. 마티니가 의심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친분이 있던 주위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비난하는데 앞장섰다. 평소에는 그냥 넘어갔던 그의 시선이나 행동, 말을 다르게 해석해 욕하기에 바빴다.
이 모든 것은 언론과 대중의 심리를 파악한 포겔의 작품이었다. 확실히 효과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비열했다. 이미 증거 조작으로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보낸 전적이 있었던 그였기에 더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밀고 나간다는 건, 어떻게 보면 우직하고 곧은 성정이지만 달리 보면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고집쟁이였다.
결말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확실했던 포겔은 언론을 이용하여 사건을 유리하게 이끌어간다. 모든 정황만 보면, 마티니가 의심이 가는 건 사실이었다. 정황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없는 경찰의 초조함은 이해가 가지만, 너무 거기에 사로잡혀서 다른 시각으로는 사건을 보지 못하는 단점도 있었다. 만약 포겔이 자신의 형사의 감에 너무 의존하지 않았다면, 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그가 자신만의 세계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언론으로 흥해 언론으로 망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애나 루와 그녀의 가족만 안쓰러웠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