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외계인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16
남강한 글.그림 / 북극곰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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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남강한

  그림 - 남강한

 

 

 

 

 

 

  제목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드디어 학교 선생님과 (새)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외계인이 되었구나.’였다. 그리고 이제야 아빠가 외계인이라니 너무 늦은 게 아닐까라는 우스운 상상마저 들었다. 아빠가 처음부터 외계인일 리는 없으니 바꿔치기 당한 걸까? 아이들이 진짜 아빠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일까? 아니면 새 아빠가 외계인? 이런저런 추측을 하면서 책을 펼쳤는데, 내 예상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책은 외계인이 어느 가정집에 아이가 담긴 바구니를 내려놓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외계인인 아빠가 어린 시절부터 자기 동료들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뒤이은 이야기는 조금 슬펐다.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 아빠는 남들처럼 똑같이 행동해야했고, 남들처럼 군대를 가고, 자신과 같은 외계인이라 생각한 여자와 결혼을 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고 이어진다. 그러다 아빠는 자신과 꼭 닮은 아이를 얻고, 자기와 같은 외계인을 찾았다고 기뻐한다. 이제 어린아이가 된 아이는 아빠처럼 외계인을 찾길 바란다.

 

  장면마다 외계인이 곳곳에 숨어있어서, 그걸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렇게 몰래 지켜볼 거였으면 왜 지구인 집에 놓았는지 의문이지만…….

 

 




  아빠가 지구인처럼 지내기로 했다는 부분에서 어쩐지 울컥했다.

 

  아빠는 사실 외계인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는 남들과 조금은 다른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다른 아이들과 생각하는 방식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좀 튀는 성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선생님에게 혼이 나는 장면에서 알 수 있었다. 외계인 친구를 만나고 싶은 일념에 그는 다른 친구들이 수업을 받을 때 몰래 통신 기구를 만들었다. 어린 소년이 만든 것치고는 꽤 잘 만들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의 그런 창의성을 격려해주기는커녕, 어른들이 정해놓은 획일화된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꾸지람을 했다. 그 때문에 아빠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행동하기로 했다. 즉, 그만이 갖고 있던 독특함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획일화된 교육이 어떻게 아이를 망치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아빠는 자식을 얻고 기뻐한다. 그리고 아이는 아빠처럼 외계인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마 아빠는 자기가 어렸을 때 겪었던 좌절을 자식이 또 다시 느끼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만약에 아빠가 이미 지구인과 너무도 동화가 되어서 자신의 어린 아이에게 지구인처럼 행동하라고 윽박지른다면……. 아, 그건 너무 슬프다.

 

  이 책은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그래서 남들과 똑같이 되라고 아이들에게 말하는 어른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성장한 외계인들이 많이 각성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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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하기 무서워요! 괜찮아, 괜찮아 7
미나 뤼스타 지음, 오실 이르겐스 그림, 손화수 옮김 / 두레아이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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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Alfred må lese høyt, 2015

  작가 - 미나 뤼스타

  그림 - 오실 이르겐스







  ‘알프레드’는 무슨 일에건 안절부절못하고 자신감이 없는 소년이다. 누군가 길을 물어볼 때도, 버스를 탈 때도, 심지어 전화통화를 할 때도 어쩔 줄 몰라 한다. 특히 그가 제일 두려워하는 건, 바로 학교에서 발표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선생님이 각 학생들에게 동물을 조사해 발표해오라는 과제를 낸 것이다. 그가 조사할 동물은 ‘대왕고래’. 조사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걸 아이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그에게는 더 큰 문제였다. 아빠의 도움으로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던 알프레드는 어느새 대왕고래에 푹 빠져버린다. 하지만 막상 발표 날이 되자, 그는 너무도 긴장하고 마는데…….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되면, 배가 살짝 아파오고 어쩐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갑자기 뭔가 얘기하라고 지목을 받으면 그런 증상은 특히 더 심해진다. 목소리도 떨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또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지금은 덜하지만, 어릴 적에는 혼자 버스를 타고 갈 때면 잘 내릴 수 있는지 걱정이 태산이었고, 전화를 받았을 때 갑자기 어른 목소리가 들리면 어떻게 말을 했는지 모르고 두근거리기만 했다. 전화를 끊고, ‘아, 좀 더 예의바르고 자연스럽게 말 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길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대책이 전화를 안 받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저 정도는 아니다.



  그런 기억 때문에 알프레드의 심정이 너무도 잘 이해가 되었다. 상상 속에서는 아주 낭랑한 목소리로 멋지게 발표를 하지만, 현실에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잔뜩 상기된 얼굴로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해하며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발표라는 건 커다란 짐이 된다. 이왕이면 안하고 싶고. 어린 알프레드에게 발표라는 건, 아주 괴로운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프레드는 그런 부담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벗어날 수나 있을까? 당연히 알프레드는 발표 공포증을 극복한다. 그가 그걸 이겨낼 수 있었던 계기는 뜻밖에도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조사 대상이었던 대왕고래에 대해 관심을 갖고 푹 빠져버린 것이다. 알프레드는 대왕고래가 부르는 노래를 매일 듣고 흥얼거릴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 발표를 시작할 때는 떨렸지만, 대왕고래만 생각하다보니 심지어 친구들 앞에서 노래까지 부를 정도로 대담해졌다.



  자신이 하려는 일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게 되면, 그래서 그 대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자신감이 생기고 당당해지게 되는 법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아는 것이 힘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면 주눅이 들거나 막무가내로 우기기 쉽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아는 것이 있으면, 자신이 모르는 것을 더 알고 싶어 하고 생각을 하고 논리적으로 자료를 모으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확신이 생기기 마련이다. 부들부들 떨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작가는 알프레드의 헤어스타일 변화를 통해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보면서 무척이나 마음에 든 장면이다. 처음에는 눈을 덮었던 머리카락들이 점차 옆으로 넘어가더니 나중에는 소년의 웃는 얼굴을 확실히 보여준다. 발표하기 어려워하는 어린 친구들이 읽으면 아주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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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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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저자 - 이다혜







  이 작품은 기자인 저자가 지금까지 읽은 책이나 본 영화 그리고 살면서 겪었던 일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놓은 책이다. 그러면 그냥 감상문 모음 내지 에세이일까? 그런데 책을 찬찬히 읽어보니, 어쩐지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작품을 보는 다른 시각을 알게 해줬다고 해야 할까? 아니, 예전에 이런저런 작품을 접하면서 막연하게 느꼈던 이상한 감정들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걸 알려줬다고 할까?



  그래, 그랬다. 예전에 부모님이 사다주신 고전 명작을 읽으면서 ‘왜?’라는 의문이 생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주인공은 다 남자야? 왜 주인공이 정신을 차리려면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납치되거나 살해당해야 해? 그런 의문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봐도 계속해서 들었다. 왜 맨날 대장은 남자야? 여자애는 왜 맨날 분홍색 옷만 입어야 해? 하지만 그런 의문은 원래 그런 거라는 말에 싹이 채 자라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렸다. 그 시대에는 원래 그랬고, 그래야 스토리 진행이 되는 거였고, 원래 분홍색은 여자색이고, 주위를 봐도 회사 사장이나 대통령 같은 건 다 남자가 하는 거니까 당연히 대장은 남자가 하는 거였다.



  원래 그런 거였다. 그런 의문을 갖는 내가 이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문을 품는 게 나 혼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난 그 이후 원래 그런 거라는 말에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고, 저자는 계속해서 왜라고 의문을 품어왔지만 말이다.



  ‘왜’라는 말은 중요하다. 왜라는 의문을 갖기 때문에 생각을 해보고, 나만의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의 이견을 존중하면서 발전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원래 그렇다’는 말은 의문을 품지 말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원래 그런 거야. 예전부터 원래 그래왔으니까, 아무 것도 바꾸려고 하지 말라는 의미다. 원래 주인공은 남자이고, 그를 각성시키는 제일 좋은 설정은 사랑하는 사람을 처참하게 굴리는 거야. 강간당하거나 살해당하거나, 여자가 처참하게 당할수록 남자 주인공의 분노는 커지고 정당화되며 그의 순정은 빛을 발하지. 여자는 딱 그런 존재야. 그 이상은 넘보면 안 돼. 원래 그래왔으니까. 옛날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예전부터 드라마나 책을 읽으면서 뭔가 거슬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저자의 말처럼, 독자는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작품을 대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인공의 대다수는 남자였다. 따라서 난 여자이지만, 남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교육되어왔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꺼림칙하게 여겼던 지점이었다. 원인을 알고 나니 속이 시원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답답했다. 지금까지 내가 접한 여러 작품들이 떠오르면서, 무심코 넘겼던 여러 지점들이 생각났다.



  이 책은 내가 잊고 있었던 ‘왜’라는 질문을 일깨워주었다. 아마 앞으로 작품을 볼 때마다 혼란스러워질 것 같다. ‘왜?’라는 의문이 드는 것과 동시에 예전처럼 받아들이는 일이 생길 테니까 말이다. 아마 ‘왜’보다는 ‘원래 그런 거구나’라면서 넘어가는 일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몇 십년동안 갖고 있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어떤 사실을 알게 되면, 그걸 몰랐던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아마 조금씩 조금씩 ‘원래 그런 거야’보다 ‘왜’라는 질문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예전에 시들었던 싹이 튼튼하게 자라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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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검은숲 굿즈는 ‘엘러리 퀸 저널’과 작은 연습장(또는 메모장)이다. 저널은 4쪽짜리 신문형식으로 ‘엘러리 퀸’의 신간인 ‘범죄 캘린더’ 출간을 맞아, 특집으로 꾸며졌다. 우선 앞면에는 엘러리 퀸의 창조자인 두 사촌의 사진이 커다랗게 들어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범죄 캘린더’에 수록된 에피소드들이 방송된 실제 날짜가 표로 들어있다. 아하, 이번 책에 있는 단편들은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송이 되었구나! 우리 엘러리, 방송 작가로도 활동했었구나! 역시 내 최애 작가 중의 한 명답다!




  그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책에 수록된 단편 중의 하나가 수록되어있다. 하지만 읽지 않았다. 신문에서 보는 것보다 책으로 읽는 게 더 좋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범죄 캘린더’를 사놓은 지 이주가 지났는데, 아직도 못 읽고 있다. 이제 도서관에서 욕심내서 마구 빌려오는 건 자제해야겠다.


  소설이 실려 있는 두 번째와 세 번째 페이지를 휘리릭 넘겨 마지막 네 번째 페이지를 보자. 여기 하단에는 지금까지 검은숲에서 나온 엘러리 퀸 책 사진이 실려 있다. 음?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갖고 있는 책 수보다 적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내 안좋은 시력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하! ‘퀸 수사국 Queen's Bureau of Investigation, 1954’와 ‘악의 기원 The Origin of Evil, 1951’, 그리고 ‘꼬리 많은 고양이 Cat of Many Tails, 1949’가 빠져있었다. 하긴 이 책들은 ‘국명 시리즈’라든지 ‘라이츠빌 시리즈’와는 관련이 없고, ‘드루리 레인 시리즈’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신문 형식이라 접은 선이 생긴 게 너무 마음에 안든다. 두 사촌 사진은 그렇다고 쳐도, ‘범죄 캘린더’의 다양한 표지 사진에 선이 생긴 게 아쉽기만 하다. 이왕이면 드라마 방송분을 조금이라도 들어볼 수는 없을까하는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남아있을 리가……있을까? 내가 책을 읽으면서 상상한 엘러리 퀸을 비롯한 다른 인물들, 예를 들면 ‘퀸 경감’이라든지 ‘주나’의 목소리가 얼마나 비슷하고 또 다를지 궁금했는데 말이다.




  좋았어, 이번 주말은 퀸과 함께 보내야겠다.



  아! 연습장 (또는 메모지)는 얼마 전에 읽은 책 ‘별세계 사건부’ 표지가 그려진 줄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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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이 보고서 - 비루한 청춘의 웃기고 눈물 나는 관찰 일기, 제4회 한우리 문학상 청소년 부문 당선작 한우리 청소년 문학 5
최고나 지음 / 한우리문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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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비루한 청춘의 웃기고 눈물 나는 관찰 일기

  작가 - 최고나

 

 

 

 

 

  읽으면서 무척이나 화가 나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현실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떠올랐기에, 그 사건에 대한 처리 과정이나 이후 피해자의 상황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을 들었기에, 책을 읽으면서 그 사건이 자꾸만 떠올라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주 많이 부조리한 세상과 불공평한 사회에 화를 내고 싶고 어딘가에 태클을 걸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책의 표지에 적혀있는 부제가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들었다. 비루하다니? 누가 누굴 보고 비당하다고 하는 거지? 비루하다는 것의 정의는 누가 내리는 거지? '비루하다'는 말을 찾아보면 '사람이나 그 태도가 천하고 너절하다'는 뜻으로 나온다. 부제를 보면 관찰일기를 쓴 인물이 비루하다는 뉘앙스인데, 책을 읽어보면 정작 천하고 너절한, 비루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으아, 이런 식으로 주인공을 매도해도 되는 건가!

 

  하아, 진정하고 차분하게 이야기에 대해 말해보겠다.

 

  고등학교 2학년인 무민은 학교에서 이런저런 사고, 예를 들면 소각장에서 담배피기 같은 걸 저질러 퇴학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담임이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는데, 학교를 나오지 않고 있는 순희를 등교시킨다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는 것이다. 무민이 이사 간 곳이 순희의 옆집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1년 전까지는 밝고 모범생이어 선생들의 평이 좋았던 순희는 왜 그렇게 갑자기 변해버린 걸까? 자살시도로 인해 아파트 부녀회에서는 순희네를 내쫓을 기세고, 학교에서도 그녀를 퇴학시켜야하나 논의 중이다.

 

  처음에는 퇴학을 모면하기 위해서였다. 무민은 순희나 다른 아이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담임과 순희 엄마의 동의하에 몰래 카메라를로 순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무민은 점차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하는지 무민은 알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그 와중에 순희의 전 남자친구였던, 이사장의 아들이자 황태자로 불리는 양껌이 미국 유학을 갔다가 잘려서 돌아오면서, 그동안 숨겨졌던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여기까지 보면 순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양껌이 무슨 짓을 했는지 견적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양껌이 이사장의 아들이라는 부분에서 사건이 어떻게 돌아갔었고, 이번에도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지 추측이 가능하다.

 

  이 사회가 피해자에게, 그것도 시장에서 일하는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는 넉넉지 못한 집안의 어린 여자아이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이미 알고 있기에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사회가 부유층 집안의 자식들이 저지른 죄에는 얼마나 관대한지 익히 봐왔기에 책을 읽으면서 화가 났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도 있지만, 요즘은 바위를 치워버리거나 낙숫물이 떨어지지 못하도록 막아버리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 그런 건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다.

 

  무민이 순희를 위해 분노하고 울분을 터트리는 걸 보며 같이 화를 내고, 살고 싶어서 마음을 다잡으려는 순희를 안쓰러워하면서, 양껌의 새로운 피해자가 된 혜령이 너무나 불쌍해 한숨을 내쉬고, 그런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자기 일이 아니라고 나 몰라라 하는 아이들이 너무 미웠다.

 

  특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 너무도 분노를 느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일을 몰래 얘기하면서 비웃고 놀림감으로 삼으며 낄낄댔다. 자기가 당하는 게 아니라 이거지? 이사장에게 대들면 자기에게 불리하니까, 모른 척한다. 도리어 피해자를 무시하고, 가해자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 완전히 어른 사회의 축소판이다. 사실 그들에게는 모범이 될 어른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사장에게 쩔쩔매는 교장이나 교감, 선생을 보면서 공정함이나 정의에 대해 배울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책을 덮으면서 양껌과 무민에 대해 생각해봤다. 요즘 이 나라를 들썩이는 사건에 둘을 대입시켜보았다. 양껌은 부모의 배경으로 유학지에서 대충 졸업장 받은 다음에 기부금으로 한국의 명문대를 들어가겠지. 군대는 면제받을 거고, 나중에 아버지 자리를 물려받을 것이다. 그 와중에 제 버릇 남 못준다고 약 같은 걸 하면서 많은 여자들을 농락하겠지. 소문이 퍼질만하면 집안의 재력을 이용해 무마시킬 것이고, 겉으로는 명망 있는 사학 재단의 이사장으로 번지르르하게 살아갈 것이다. 유력 정치인의 딸을 부인으로 얻으면 검찰 수사도 받지 않을 것이다. 부인이 눈물로 읍소하면 장인이 봐줄 테니까.

 

  그에 비해 무민은……. 무민과 순희, 그리고 혜령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그리고 여자가 꼬리치는데 안 넘어갈 남자가 어디 있냐고? 안 넘어가라고 뇌가 있는 것이고 이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성도 뇌도 없으면 그게 인간입니까? 짐승이지. 아니, 짐승도 뇌는 붙어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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