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마술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5 링컨 라임 시리즈 5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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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Vanished Man, 2003

  작가 - 제프리 디버

 

 

 

 






 

  링컨 라임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



  얼마 만에 읽는 링컨 라임 시리즈인가! 그동안 다른 책을 읽는다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거의 4개월 만에 집어 들었다. 이번 이야기 역시 쫓기는 범죄자의 심리와 쫓는 경찰의 심리가 번갈아가면서 드러나 있다. 그런데 이 구조 자체에도 함정이 있어서, 멍 때리고 읽다보면 뒤통수 거하게 얻어맞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마술쇼는 무척이나 신기하고 놀랍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마술과 마술사는 범죄 관련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놓칠 수 없는 소재이다. 좋은 쪽으로 사용하면 보는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나쁜 쪽으로 쓰면 잡기 어려운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마술사이다. 예를 들면 ‘나우 유 씨 미 : 마술사기단 Now You See Me, 2013’은 아예 마술사들이 팀을 이뤄 사기치고 다니고,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 金田一少年の事件簿, 1992’에서도 그의 최대 강적이 마술사였다. 이번 이야기의 범인은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마술사다. 하지만 원제에서는 마술사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역시 제목이 스포일러…….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사건이 금방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잠긴 문 안에서 인질을 잡고 있는 범인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 안에는 범인이 없었다. ‘아멜리아 색스’가 조사해온 현장 사진과 물건들을 본 ‘링컨 라임’은 범인이 마술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한다. ‘아멜리아’는 탐문을 하던 중 만난 ‘카라’라는 새내기 마술사에게 마술과 관련된 조언을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 팀원들은 범인이 사용한 독특한 마술의 흔적을 보면서 정체를 밝히는 한편, 그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노력한다. 그 와중에 범인은 간발의 차로 아멜리아에게서 벗어나고, 분노한 그는 링컨 라임을 노리는데…….



  이번 이야기 역시 범인은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행적을 보여줬다. 경찰들이 뻔히 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서 도망가고, 끝까지 자신의 이중 삼중의 연막작전을 펼쳤다. 아무래도 소설이니까 과장이 심한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어쩐지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술의 위력이 이 정도로 엄청나다면 첩보원들에게 기본적으로 마술을 가르쳐야하지 않을까? 그랬다면 멍청하게 외국 호텔 객실에서 첩보질하다가 들키지 않았을 것 같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구성은 앞선 책들과 비슷했다. 사건이 벌어지면 링컨 라임 팀이 투입된다. 한참 잘난 척 떠들던 링컨이 감을 잡으면, 아멜리아가 다른 경찰들과 열심히 뛰어다닌다. 그 와중에 아멜리아가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또는 집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링컨이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아멜리아가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면, 그걸 바탕으로 링컨이 범인의 의도를 알아낸다. 마지막으로 선수를 쳐서 범인을 유인해내고 체포하면 끝. 다섯 번째 책이라서 그런지 어느 정도 익숙해졌나보다, 예전처럼 심각하게 호흡곤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그나저나 몰상식한 의원의 갑질 횡포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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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담백경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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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鬼談百景, 2012

  작가 - 오노 후유미

 

 

 

 

 

 

 

  어떤 작가는 이미 여러 권을 읽어도 신간이 나오면 읽을까 말까 고민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작가는 단 한 권만 읽었지만 어쩐지 그 사람 소설은 믿고 읽을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의 작가인 ‘오노 후유미’는 나에게 후자의 경우이다. ‘시귀 屍鬼, 1998’를 읽은 이후, 그런 믿음이 생겼다. 이 책은 그런 작가의 작품이자 얼마 전에 읽은 ‘잔예 殘穢, 2012’와 세트이기에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99개의 단편 괴담이 수록되어있다니, 두근두근 거렸다. 하지만 한 이야기 당 짧게는 반쪽, 길게는 서너 쪽에 해당하는 분량 때문인지, 책은 예상보다 얇았다. 그래서 좀 실망했다.

 

 

  처음 몇 개의 이야기를 읽을 때까지는 그렇게 무섭지도 않고, 그냥 그랬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서운 이야기 모음집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스무 개를 넘어가고 서른 개쯤 될 때, 갑자기 오싹해졌다. 책을 덮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다음에 물을 마시고 환한 밖을 한참 바라보고 나서야, 다시 책을 펼쳤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처음에는 그냥 짧은 이야기를 읽는데 급급해서 무섭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과 우리나라의 생활 습관이나 문화가 좀 다른 부분도 있어서, 그리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어릴 적에 살았던 동네나 학교를 연상시키는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내가 아는 동네와 학교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그 순간부터 책에서 적힌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아, 처음에 책이 얇다고 실망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얇은 게 이 책의 장점이었다. 만약 얼마 전에 읽은 ‘노조키메 のぞきめ, 2012’ 정도의 두께였다면, 아마 책을 읽다가 중간에 덮어버렸을지도 몰랐다. ‘시귀’에서 그렇게 당해놓고 그걸 까먹다니……. 하긴 그 책을 읽은 게 거의 십 년 전의 일이니까, 잊는 게 당연다고 우겨본다.

 

 

  이제부터 비 오는 날, 골목을 걸을 때, 그리고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릴 때마다 이 책이 떠오를 거 같다. 누가 우산 밑으로 날 보면 어떡하지? 옆에 누가 서 있는 데, 그 위로는 아무것도 없는 거면 어쩌지? 집에 올 때 골목에 누군가 서 있으면 어떡하지?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데 아무도 없는 거면 어쩌지?

 

 

  그나저나 책을 다 읽고 오싹한 것은, 무려 99개나 되는 괴담을 적은 작가의 능력이었다. 비록 독자에게서 투고 받은 사연도 있다고 하지만, 장편으로 만들 수 있는 소재가 99개나 있다는 얘기다. 아, 이 중에서 몇 개는 ‘잔예’에 써먹으니까 빼야겠지. 그래도 90개가 넘는 소재가 있다니……. 어쩐지 기대가 되면서 또 다시 두근두근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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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키메 스토리콜렉터 2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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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のぞきめ, 2012

  작가 - 마쓰다 신조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아주 우연이었다. 여름에 개봉하는 공포 영화가 뭐가 있나 찾아보니, ‘잔예’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원작을 쓴 작가 역시 믿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좋았어! 올 여름엔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또 뭐가 있을까 찾아보니, ‘노조키메’라는 영화도 개봉한다고 나오는데, 헐? 이것 역시 원작 소설이 있었고, 그 작가 역시 꽤나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바로 ‘미쓰다 신조’로, 책을 읽고 나서 ‘별로 안 무섭네, 엄마랑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세상에나, 일본에서 어쩐 일로 믿음직한 작가들의 소설을 두 편이나 영화화한 거지? 하지만 그동안 일본에서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망쳐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원작을 먼저 읽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야 영화를 봤을 때 욕을 하더라도 찰지게 할 수 있고, 좋았던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노조키메’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 상영시간이 막 24시 30분, 26시 20분 이렇게 되어있는데, 이건 영화를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세상에 26시가 어디 있어? 상영관을 대기업이 독점하면서,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 그냥 네이버나 예스24에서 다운이 가능해질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이야기는 마쓰다 신조 본인을 지칭하는 ‘나’를 통해 진행된다. 나는 ‘토쿠라 시게루’라는 사람이 학생 시절에 경험했던 아르바이트에서 있었던 이상한 일을 듣게 된다. 그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바쁘게 지내던 중 ‘니구모 케이키’라는 사람을 소개받는다. 그 역시 기담이나 괴담, 전설을 찾아다니는 라이터였는데, 그는 나에게 ‘아이자와 소이치’라는 재야 민속학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학자가 딱 한 번 언급했던,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원고에 대해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사건이 꼬이면서, 나는 그 원고를 손에 넣게 된다. 이미 그것을 읽은 니구모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경고를 하지만, 난 과감히 내용을 보기로 결정한다.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이야기인 ‘엿보는 저택의 괴이’는 내가 토쿠라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고, 두 번째 이야기인 ‘종말 저택의 흉사’는 학자가 남긴 미발표 원고이다.

 


  어떻게 보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지만, 읽다보면 묘하게도 연결점이 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오싹해진다. 몇 백 년 전부터 외딴 마을에만 존재했던 저주가 도시로 나왔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첫 번째 이야기에서 그냥 스치듯이 지나갔던 대사가 아주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재방문한 손님이 없더라.’ 아, 그래서였구나.

 


  ‘노조키메’는 ‘엿보는 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길을 걷는데, 누군가 계속해서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면, 지나가는 집집마다 닫힌 문틈 사이로 누군가 날 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진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래서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데, 다시 걷기 시작하자마자 누군가 뚫어지게 나를 보는 것 같다면? 게다가 그 시선이 점점 가까워져서 집안에서까지 느껴진다면? 찬장 위, 문틈이나 창문 틈, 커튼 사이, 옷장과 천장 사이 등등 아무것도 있을 수 없는 곳에서 누군가 날 보고 있는 것 같다면? 문득 몰래 카메라가 떠올랐다. 어딘가에 있는 건 알지만 확실히 어디 있는지는 모르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고 있는 시선. 이건 몰래 카메라라고 여길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몇 대 선조가 저지른 일 때문에 고통 받는 후손이 등장한다. 선조가 저지른 일 때문에 집안 대대로 저주를 받게 되고, 그것을 액땜하기 위해 악습을 반복해야하는 집안이 나온다. 그 때문에 그 집안은 마을에서 대대로 불길한 집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거의 없는 존재처럼 무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한다. ‘종장’에서 ‘나’도 얘기하지만, 이 이야기는 차별이나 따돌림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작가는 비록 괴담 형식을 했지만 두 이야기를 통해 차별과 따돌림 그리고 몰래 카메라와 SNS의 무분별한 전파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특정인을 따돌리고 괴롭히는 것으로 모자라, 굴욕적인 동영상이나 비밀스런 사생활을 찍어 역시 퍼트리는 일이 많은 요즘, 두 이야기가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특히 노조키메에게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사람의 얘기는, 몰래 카메라에 개인적인 영상이 찍히고 그것이 SNS에 퍼져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하지만 노조키메에게 당하는 사람은 잘못을 저질러서 그런다고 하지만, 몰래 카메라에 찍히는 건 글쎄? 찍힌 사람에게 굳이 잘못이 있다면, 연인을 잘못 사귄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행히 작가의 다른 책인 ‘도조 겐야’ 시리즈처럼 다 읽고 나서 ‘뭐야, 별로 안 무섭잖아. 엄마랑 자야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문이랑 창문 꼭 닫고, 벽장 위는 절대로 안 보고, 책꽂이 사이나 장식장 밑에 벽장 사이 같은 곳만 안 보면 된다. 훗, 별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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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의 비극
나쓰키 시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손안의책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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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Wの悲劇, 1982

  작가 - 나쓰키 시즈코

 





 

 

  제목을 보고 순간적으로 의아했다. 엘러리 퀸 소설에도 비슷한 제목이 있는데? 따라쟁이인가? 표지 안쪽을 보니, 엘러리 퀸과의 사숙을 인연으로 허가를 받고 똑같은 제목을 사용했다고 적혀있다. 사숙? 아쉽게도 한글로만 적혀있어 어떤 한자를 쓰는지 알 수가 없지만, 엘러리 퀸과 안면이 있다는 거잖아? 헐, 좋겠다. 그리고 진짜 부럽다.

 

 

  ‘하루미’는 영어를 가르치던 ‘마코’의 부탁으로, 논문을 봐주기 위해 ‘와쓰지 가’의 별장으로 향한다. 연초에 와쓰지 가문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연례행사처럼 모임을 갖는다. 하루미는 집안사람들 모두가 다 마코를 귀여워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큰할아버지 부부도, 작은 할아버지도, 새아버지와 엄마도, 아저씨도 심지어 집안 주치의까지 모두가 다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날 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거실로 마코가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난다. 자신을 덮치려는 큰할아버지인 ‘요헤’를 엉겁결에 죽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지만, 요헤가 죽은 이유가 부적절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멈칫한다. 그들은 마코를 재빨리 도쿄로 보내고 사건 현장을 조작하기로 한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그리고 마코의 앞날을 위해, 그들은 강도가 들어와 살인이 일어난 것처럼 꾸민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어가는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들이 조작한 증거가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두가 다 가문과 마코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배신자가 있었다. 배신자는 누구이고, 무엇을 노리는 것인가?

 

 

  와,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흘러갔다. 처음에 알리바이라든지 현장 조작 같은 걸 너무나도 척척 잘해내서, 설마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의를 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배신으로 조작한 증거들이 다 소용이 없어지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그동안 숨기고 있던 사람들의 비밀이 하나둘씩 폭로되면서, 실낱같던 유대감 대신 팽팽한 긴장감과 아슬아슬한 불안감이 집안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모든 억눌린 감정들이 터지면서, 모두를 연결하고 있던 끈은 끊어지고 만다.

 

 

  제목의 ‘W’는 가문의 이름인 와쓰지(Watsuji)를 뜻하기도 하고, 여자(Women)를 의미하기도 한다.

 

 

  평생 여자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며 바람을 피운 ‘요헤’와 ‘시게루’ 형제를 대신해 집안을 다스린 것은 부인인 ‘미네’였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집안의 명예와 가문의 존속이었다. 그 때문에 남편의 시체 앞에서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고 가족들을 이끌었다. ‘요시에’에게 중요한 것은 딸 마코보다는 남편의 사랑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결혼을 세 번이나 하면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찾아 헤맨 것이다. 그녀에게는 어머니로의 삶보다는 여자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한 사랑과 현실의 사랑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녀는 바뀐다. 그러면 마코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녀의 졸업 논문이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라는 것이 힌트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제3자인 하루미의 시각으로 보고 있었기에, 확실히 전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집안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이이기에,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과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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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예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원제 - 殘穢, 2012

  작가 - 오노 후유미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원작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영화에서는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으면, 상상이 구체화가 되면서 그 느낌이 더 강렬하게 와 닿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원작이 있는 영화는, 영화를 먼저 보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간혹 영화가 너무 재미없으면, 원작을 읽고 싶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책 ‘잔예’는 영화를 보고나서, 꼭 원작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지름신이 오기도 전에 질러버렸다.

 

 

  주인공인 ‘나’는 소설가로 예전 작품 후기에 독자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알려달라고 쓴 적이 있다. 그 때 ‘쿠보’라는 기자가 편지를 보내온다. 자신이 이번에 이사 온 집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별 거 아닐 것이라 답을 보냈지만, 몇 달 후에 다시 편지가 온다. 그 내용을 읽은 나는 그 집에 뭔가 있다는 확신에, 쿠보와 함께 전에 살던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이후 틈틈이 이어진 그들의 조사는 무려 6년이나 걸리고, 메이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침내 알아낸 결론은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엄청난 원한이 맺힌 것이었는데…….

 

 

  대강의 내용은 영화와 비슷하지만, 몇 가지 세부적인 면에서는 다른 점도 있었다. 우선 쿠보가 대학생이 아니라 기자였고, 그들의 조사는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이나 걸린 것이었다. 그 기원도 전쟁 이전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까지 올라가고, 관련된 사람들도 더 많았다. 그러니까 저주의 범위와 대상이 더 넓어지고 많아진 것이다.

 

 

  더러움이 묻은 집에서 살았던 사람은 그 저주에 걸리고 만다는 설정이 영화 ‘주온’과 무척이나 흡사했다. 작가도 그걸 의식했는지, 작품 내에서 그 얘기를 꺼낸다. 그런데 비교해보면, 이 책에 나오는 저주가 더 절망적이다. 주온에서는 ‘가야코’와 ‘토시오’가 살해당한 그 집만 가지 않으면 살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더러움이 남아있는 집에 갔던 사람이 저주로 자살하게 되면, 그 사람의 집에 새로운 저주의 근원지가 된다고 한다. 이른바 이중 저주에 걸린 집이 된다는 얘기다.

 

 

  소설에서는 맨 처음 문제가 있던 집을 헐고 그 위에 다른 집을 지었는데, 거기 이사 온 사람들이 이상하게 죽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저주 위에 또 저주가 쌓인 것이다. 그리고 또 집을 부수고 다른 집을 짓고, 그러면 또 자살하거나 이상한 일을 겪는 사람이 생기고, 그래서 아무도 안 살려고 하면 다시 부수고 새로운 집을 짓고……. 이런 식으로 저주가 계속 돌고 돌게 된다. 그 뿐인가? 그 집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간 사람이 만약에 저주 때문에 죽으면, 그 집이 새로운 중심지가 된다. 이렇게 가다보면, 아무런 더러움이 없는 땅이 과연 존재할지 의문이 생긴다. 잘못하면 일본 전체가 저주에 걸린 땅이 되는 거 아닌가?

 

 

  이런 비슷한 얘기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집터’라든지 ‘조상의 묏자리’를 중요시했다.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으면, 터가 나쁘거나 조상의 묘를 잘못 썼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옆 나라니까 비슷한 게 있나보다.

 

 

  소설이지만, 어떻게 보면 탐구 보고서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각 시대별로 조사한 내용이나 인터뷰한 사람의 얘기를 적어서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진짜 있었던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진짜 어느 동네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믿어졌다. 그래서 집에 혼자 있을 때 읽다가 너무 오싹해서,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선풍기에서 나는 소리도 어쩐지 심상치 않게 들렸다. 선풍기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건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오노 후유미’다. 이 더위에 선풍기를 끄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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