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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피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3월
평점 :
원제 – Creepy, 2011
작가 – 마에카와 유타카
범죄심리학교수인 ‘다카쿠라’와 아내가 그 집으로 이사 온 지 열 달. 이웃이라고 해봤자 아들딸과 부부가 사는 ‘니시노’ 가족과 모녀가 사는 ‘다나코’ 가족이 다인 한산한 주택가이다. 다카쿠라는 ‘란코’라는 제자의 졸업논문을 봐주느라 자주 식사를 하지만, 선을 넘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란코를 스토킹하는 ‘오다와’라는 학생의 존재가 어쩐지 신경 쓰인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인 형사 ‘노가미’가 찾아온다. 그는 8년 전 일어났던 ‘혼다’ 가족의 실종사건을 재수사하게 되었다며 꽤나 유명한 범죄심리학자인 다카쿠라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런데 얼마 후 노가미의 후배라는 ‘다니모토’ 형사가 찾아와 노가미가 실종상태라는 얘기를 전한다.
한편 다카쿠라의 부인은 어쩐지 이웃의 니시노 가족이 이상하다. 이사 온 이후 그 부인을 한 번도 못 본데다가, 어느 순간부터 아들도 사라졌다. 게다가 그 집 딸인 ‘미오’가 공포에 질린 채 그 사람은 아빠가 아니라는 이상한 말까지 한 상태. 다니코씨 집에서 화재가 일어난 날, 모녀의 시체와 함께 노가미 역시 죽은 채로 발견된다. 도대체 그들이 무슨 관계였는지 의아해 하는 가운데, 옆집 니시노는 점점 더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다카쿠라는 어쩐지 혼다 가족에게 일어났던 일이 니시노 가족에게도 일어나는 게 아닐까 의심하지만, 증거가 없다. 그러다 미오가 다카쿠라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피신한 날, 마침내 니시노는 본색을 드러내는데…….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었는데, 영화감독을 고소하고 싶었다. 어떻게 이렇게 오싹하고 두려운 이야기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내가 원작자라면 화가 났을 것 같다. 사실 영화를 볼 때는 아주 엉망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소설을 읽고 나서는 그 생각이 달라졌다. 영화는 소설의 탄탄한 구성과 긴장된 흐름 그리고 오싹한 분위기를 반도 표현하지 못했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다카쿠라의 입을 통해 서술된다. 그가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한 것은 당연히 독자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그는 범죄심리학자라는 전공을 살려 끊임없이 생각하고 추리하고 행동한다. 또한 다니모토가 계속해서 사건의 새로운 증거를 공유하고 조언을 구한다. 그래서 그를 따라가면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경찰도 모르는 숨겨진 비밀까지 말이다.
거기다 니시노 역시 그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계속해서 다카쿠라를 도발하고 위협하며 맘 편히 두지 않는다. 마치 미국 드라마 ‘크리미날 마인드’에서 팀장인 ‘하치’의 주위를 맴돌며 위협하는 ‘포예’라는 연쇄살인마처럼 말이다. 드라마에서 그 범죄자는 ‘너 죽고 나 살자’라는 마인드로 하치의 가족까지 찾아내 죽이려 한다. 니시노 역시 그랬다. 그게 자신의 범죄를 완성하기 전에 정체를 밝혀버린 방해자에 대한 분노인지, 아니면 자신을 알아봐준 사람에 대한 집착인지 모르겠다. 아, 어쩌면 그는 다카쿠라도 지배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비록 다카쿠라 가족이 자신의 범죄 타겟 모델에 적합하진 않지만, 어쩐지 그들이 괴로워하고 굴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자신은 대단하다는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현대사회는 이웃 간의 정이 없고 삭막하다고 얘기한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가능하면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하지 않으려고 한다. 요즘에야 좀 인식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아이가 맞고 있으면 부모의 훈육은 끼어드는 게 아니라며 외면하고, 여자가 맞아도 부부싸움은 간섭하지 않는 거라며 회피한다.
니시노는 그런 현대인의 심리를 잘 파고들었다. 당사자도 몰랐던 불안이나 약점을 파악해서 가족간의 신뢰를 무너트렸다. 세상에서 믿을 존재는 가족밖에 없다는 말을 우습게 만들어버렸다. 그의 존재 앞에서 가족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불신하고 감시하고 기피하는 관계가 되었다. 그 뿐인가. 거기에 더해 그는 개개인의 정신마저 파괴했다. 그를 만났던 사람들은, 범죄의 목표가 아니었더라도 더 이상 전과 같을 수 없었다. 만약에 악마가 아무런 초능력도 갖지 못하고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다면, 아마 니시노가 그 예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소설이니까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요즘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보면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이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소설 같다'라는 말로 치부하면 안될 것같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니시노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된다. 으아……생각만으로도 무섭다.
인간은 나약하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 회사, 동호회 같은 여러 가지 집단을 이루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의 니시노는 그 집단이 얼마나 제도적으로 허술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인간이 악에게서 각자 자신을 지킬 수 없고, 사회도 그런 개인을 보호할 수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