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Lights Out, 2016

  감독 - 데이비드 F. 샌드버그

  출연 - 테레사 팔머, 알리시아 벨라-베일리, 가브리엘 베이트먼, 알렉산더 디퍼시아

 

 

 


 

  언젠가 ‘제임스 완’의 이름이 너무 남용된다고 우려를 표한 적이 있었다. 그가 제작에만 참여해도 ‘컨저링과 쏘우의 감독 제임스 완 감독!’이라고 적히기도 하고, 어떤 공포 영화건 ‘애너벨보다 무섭다!’ 또는 ‘컨저링보다 무서운!’이라는 광고가 붙는 건 기본이 되어있다. 하지만 그런 건 거의 과장된 것이라, 영화에 대한 실망이 자연스레 제임스 완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갖게 한다. 그래서 이 영화도 제임스 완과 컨저링이 광고에 들어있지만,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몇 년 전에 유튜브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자랑했던 단편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불이 꺼지면 보이고, 켜지면 사라지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다룬, 몇 분 안 되는 분량이었지만 보는 사람을 충분히 오싹하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그걸 장편으로 만들었다니, 어쩐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갑자기 반반무많이로 치킨이 땅기는 건 왜 일까?

 

 

  그런데 영화를 먼저 본 사람들의 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 단편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단편을 만들었던 감독이 장편으로 데뷔하면서 너무 의욕만 앞섰던 걸까? 그래서 볼까 말까 했지만, 내가 남의 의견을 따라 영화를 본 적은 별로 없으니까.

 

 

  이제 열 살인 ‘마틴’은 언제부턴가 엄마가 무섭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 같지만, 엄마 방에 가면 엄마 혼자만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가 시끄러웠지?’라는 이상한 말을 한다. 그런 일은 아빠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더 심해졌다. 엄마 방에서 긴 손톱을 가진 뭔가를 본 다음 날, 마틴은 오래 전에 집을 나간 누나 ‘레베카’에게 전화한다. 동생을 만난 레베카는, 자신이 오래 전에 겪은 일이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도대체 엄마에게는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그것보다 수십 년 동안 집에 숨어있는 그 존재는 도대체 무엇일까? 레베카는 남자친구 ‘브렛’의 도움으로 비밀을 파헤치는데…….

 

 

  음, 의외로 영화는 괜찮았다.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연기도 좋았고, 이야기의 흐름도 괜찮았다. 다만 ‘이제 이러겠지.’라고 생각하면, 그대로 흘러가서 좀 식상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게다가 뭔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든지, 박자를 한 템포 늦추는 강약 조절도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아무렇지 않은 장면에서 심장을 덜컥하게 만드는 구성도 좋았다. 특히 엄마가 웃으면서 마틴에게 ‘우리 셋이 재미있게 놀자.’라는 부분은 진짜……. 집에는 엄마와 마틴 둘 밖에 없는데! 그 전까지 행복했던 분위가가 차가워지고, 화창한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는 느낌을 주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집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왜 각자 따로 자는 걸까? 같이 모여서 자고, 같이 움직이고 그래야지! ‘컨저링 2 The Conjuring 2, 2016’를 봐! 다 같이 모여 잤는데도 위험해졌었잖아. 왜 혼자 자고, 혼자 집을 돌아다니는 건데! 으아, 그 장면을 보면서 답답했었다.

 

 

  그나저나 가족을 괴롭히던 존재를 보면서,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 ‘엑스 파일 The X-Files, 1993’의 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거기서는 어둠이 없는 곳에서만 있어야 하는 남자가 나왔는데, 여기서는 반대로 어둠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뭔가가 등장한다. 그 둘이 만들어진(?) 계기가 무척 비슷해서인지, 혹시 그 에피소드에 영감을 받은 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둘의 성격은 완전 다르다. 엑스 파일의 남자는 사람을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여기서는…….

 

 

  단편이 더 오싹해서 아쉬운,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았던 영화였다.

 

 

  음, 영화가 안 무서웠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극장에서 옆과 뒤에 앉은 두 커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뭐만 나오려고 하면 미리 짠 것처럼 여자들이 ‘무서워~’를 연발하고, 그때마다 남자들이 ‘괜찮아, 내가 있어.’라고 하는데……. 그냥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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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Stare, のぞきめ, 2015

  감독 - 미키 코이치로

  출연 - 이타노 토모미, 시라이시 슌야, 이리키 마리, 아즈마 치즈루

 







 

 

  전에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기대하는 마음이 조금 있었다. 물론 그와 동시에 원작의 공포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불안도 있었다. 지금까지 소설을 영화화한 것 중에 원작의 느낌을 전달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으니 말이다. 특히 공포 소설은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그래서 가야코나 사다코 류만 나오지 않아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방송 리포터인 ‘미시마’는 우연히 나간 현장에서 한 남자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는 죽은 남자의 후배인 ‘카즈요’에게서 ‘로쿠부 고개’에 대해서 듣게 된다. 호기심을 느낀 그녀는 그곳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 얽힌 끔찍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한편 카즈요 역시 죽은 선배처럼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현실이 되어 문틈과 창문, 책장과 박스 사이사이 심지어 씽크대 배수구에서도 뭔가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그녀는 도망을 치지만…….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로 나뉘어졌던 소설을 적절히 조합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대본을 쓴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그의 인간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 많은 분량을 하나로 합치다니!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원작과는 전혀 상관없는 커플을 주연으로 해서, 원작이 주었던 공포를 반감시켰다. 게다가 두 번째 이야기의 주연을 커플로 할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을 내세웠는데, 이 역시 원작의 으스스함을 깎아먹었다. 두 이야기를 합친 건 그럭저럭 잘 했는데, 그 과정에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이 축소되고 사라져버렸다.

 

 

  아쉽고 안타까웠다. 연인간의 애틋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건 알겠지만, 아쉬웠다. 굳이 원작에도 없는 안타깝고 절절한 사랑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차라리 로쿠부 고개 사건을 좀 더 자세히 보여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원작에서는 몇 대에 걸친 끔찍한 액막이 행위가 쌓이고 쌓여 강력한 저주가 되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설정은 나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욱하는 마음에 어쩌다 저지른 일처럼 묘사되었다. 그래서 보는 사람을 오싹하게 만들고 서서히 조여 오는 분위기 조성이 많이 부족했다.

 

 

  게다가 후반부를 보면서, 감독이 마치 영화 ‘주온 Ju-on: The Grudge, 呪怨, 2002’처럼 만들고 싶어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아, 어째서 저주에 관련된 모든 영화는 다 주온이 되고 싶어 하는 건지……. 물론 저주가 외부로 퍼지는 기본 설정이 비슷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그런 식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그건 원작이 보여주었던 공포의 결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설을 읽지 않았으면, 이게 무슨 소린가하고 의아해할 내용 전개였다. 초반과 중후반이 어쩐지 동떨어진 분위기였다. 차라리 첫 번째 에피소드로만 영화를 만들면 더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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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Ghostbusters, 2016

  감독 - 폴 페이그

  출연 - 멜리사 맥카시, 크리스튼 위그, 케이트 맥키넌, 레슬리 존스

 

 

 

  영화를 다 보고 든 생각은, 서툰 영어로나마 감독에게 편지를 보내서 2편을 만들어달라고 해야 하나였다. 아니면 이렇게 멋진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냥 고민만 했다.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도입부에서 주제가가 나왔을 때랑, 후반부에 멤버 중의 한 명이 쌍권총을 들고 멋진 액션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훌쩍이고 말았다. 도대체 왜 귀신 잡는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쓸데없이 눈물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종신교수가 되길 바라는 물리학 교수 ‘에린’은 자신이 운영하는 건물에서 유령이 나왔다며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런 쪽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거절하려하는데, 뜻밖에도 그가 내민 것은 그녀가 예전에 적었던 ‘과학과 유령’에 대한 책이었다. 오래 전에 다 없앴다고 생각했던 책의 등장에 그녀는 공동 저자이자 어린 시절 친구인 ‘에비’를 찾아간다. 그녀는 에린과 달리 유령의 존재를 믿고 그것을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에린은 엉겁결에 에비와 그녀의 동료 과학자 ‘홀츠먼’과 함께 유령이 나온다는 건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진짜로 유령을 목격하고, 의기투합해서 본격적으로 연구하기로 한다.

 

 

  한편 지하철에서 근무하는 ‘패티’는 선로에서 의문의 물체를 보고 그들에게 의뢰를 하게 된다. 조사를 하던 셋은 누군가 봉인되어있는 유령을 풀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유머러스한 대사는 계속해서 빵빵 터졌고, CG로 표현된 유령들의 모습은 약간 오싹하면서도 멋졌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확실하게 잡혀있었고, 누구 하나 구멍이 없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배역에 녹아들어서, 그 배우 이외의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 없었다. 거기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예전 ‘고스트버스터즈’의 출연진들 모습을 찾는 것도 무척 재미있었다. 예전에는 유령을 잡던 사람이 유령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온다거나, 유령 따위 무섭지 않다고 도망가는 모습은 너무 웃겼다.

 

 

  영화는 마냥 웃기면서 귀신 잡는 것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이 작품은 꿈과 친구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유령을 본 경험 때문에 친구가 된 에린과 에비. 하지만 크면서 에린은 그것을 부정하고 일반적인 과학자가 되려고 노력했고, 에비는 홀츠먼과 함께 유령에 대해 연구를 계속했다. 결국 에린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외면했던 마음속의 열정을 되찾는다. 그 때 그녀의 모습은 무척 행복해보였다. 학교에 있을 때는 불편해 보이는 정장 치마 차림으로 매사에 조심하면서 지냈는데, 고스트버스터즈로 활동하면서는 청소복을 입고 영구차를 타고 다녀도 즐거워보였다. 물론 그건 비록 일은 못하지만 외모는 출중한 비서의 존재도 거들었을 지도 모른다.

 

 

  홀츠먼은 좋아하는 기계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행복해했다. 계속해서 더 나은 장비를 만들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에비는 미친 짓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유령에 대한 자신의 이론이 사실로 증명되면서, 행복해한다. 패티는 지하철에서 일하며 소외감을 느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하지만 고스트버스터즈로 일하면서, 그녀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를 얻었다.

 

 

  자신이 믿고 의지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영화는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굳이 옥에 티를 꼽자면, 리메이크된 주제가 정도……?

 

 

  또 옥에 티를 고르자면, 한국의 대형 배급사와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XX같은 상영 시간표 설정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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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
헨리 홉슨 감독, 아놀드 슈워제네거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6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원제 - Maggie, 2015

  감독 - 헨리 홉슨

  출연 - 아놀드 슈왈제네거, 아비게일 브레스린, 조엘리 리차드슨, 로라 케이요트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단순히 주연을 맡은 두 배우 때문이다. “I'll be back!"이라는 대사 하나로 대표되는, 영원한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왈제네거 그리고 ‘좀비 랜드 Zombieland, 2009’에서 놀라운 영악함과 뛰어난 생존력을 보여줬던 아비게일 브레스린. 이 둘이 모였으니, 어쩐지 영화 ‘아저씨’와 ‘레옹 Leon, 1994 ’ 스타일의 좀비 영화가 아닐까하는 기대가 들었다. 그런데 둘이 부녀로 나온다고? 두뇌를 맡은 딸과 액션을 맡은 아버지의 조합이라니……. 영화 ‘테이큰 Taken, 2008’을 능가하는 가족 좀비 액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거의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사실 저건 배우에 대한 편견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을 바탕으로,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고정관념이자 선입견이다. 배우를 힘들게 하는 건 아마 관객의 그런 성향이 아닐까 싶다. 이 사람은 코미디만 해야 해, 저 사람은 그냥 쌈질만하는 무식한 이미지가 제격이지. 그런 걸 깨기 위해 가수들은 복면을 뒤집어쓰고 노래 부르고, 배우들은 평소에 하지 않은 배역을 맡나보다.

 

 

  이 영화는 두 배우에게 그런 계기가 되는 작품이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좀비로 변하는 딸을 지켜주려는 아버지 ‘웨이드’로 나왔고, 아비가일 브레스린은 좀비로 변하는 자신을 느끼면서 혼란스럽고 분노하는 딸 ‘매기’ 역할을 맡았다. 그들에게 문제는 좀비나 다른 인간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딸을 격리 시설로 보내지 않고, 어떻게든 곁에 두고 보호하고 싶은 웨이드는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좀비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괴로워한다. 자기 딸의 미래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매기 역시 증상이 나타나면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게 되자, 고통스러워한다. 격리 시설로 끌려가거나 비참하게 죽을 까봐.

 

 

  그런 두 사람의 감정을 중점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영화는 잔잔하게 흘러갔다. 좀비에게 쫓기면서 총질하거나 죽고 죽이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았기에, 어떻게 보면 좀 심심했다. 그래서 처음에 가졌던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가족 좀비까지는 맞았는데, 액션이 빠졌다.

 

 

  영화는 좀비 시대에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에는 여러 가족들이 등장했다. 과보호하면서 끼고 있거나, 언제든지 총 쏠 준비를 하고 있기도 하고, 변해가는 가족을 보다 못해 외면하거나 미쳐버리는 사람들까지. 그들을 통해서 좀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족과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등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 감동적인 영화인데, 내가 기대한 것과는 너무 달랐다. 좀 지루했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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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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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박연선

 

 

 


 

 

  아직도 바람이 심하게 불면 텔레비전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너무 첩첩산중에 있어서 구급차가 구급차 역할을 못하는 아홉모랑이 마을. 그곳에서 평생을 산 강씨 할아버지가 막장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숨을 거둔다. 장례를 치르고 자식들은 홀로 남을 ‘홍간난’ 여사를 걱정해, 마침 백수인 손녀 ‘무순’을 남기기로 결정한다. 물론 그녀의 의견은 묻지도 않았다. 할 일이 없어서 이것저것 뒤지던 무순은 우연히 자신이 여섯 살 때 그린 지도를 발견한다. 거기에 그려진 대로, 마을 종갓집을 찾아가 몰래 땅을 파던 무순은 그 집의 고등학생 아들과 마주친다. 처음에는 그녀를 도둑 취급하던 종손 ‘창희’였지만, 보물 상자에서 나온 조각을 보는 순간 표정이 달라진다. 그것은 15년 전에 실종된 그의 누나가 만든 물건이기 때문이다.

 

 

  15년 전, 마을 할머니의 백수를 맞이해 온 동네 어른들이 온천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바로 그 날, 마을에서 네 명의 소녀가 사라졌다. 종갓집의 딸로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던 ‘유선희’, 엄마를 대신해 살림을 맡았던 ‘황부영’, 남자아이들과 잘 어울렸다는 ‘유미숙’, 그리고 목사의 막내딸 ‘조예은’. 무순은 창희와 함께 선희가 조각한 남학생이 누구일지 찾아보기로 한다. 거기에 홍 여사까지 가세하면서, 15년 동안 숨겨졌던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나는데…….

 

 

  책을 읽으면서 문득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유명한 첫 문장이 떠올랐다. 옆에 책이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행복한 집은 그 이유가 비슷하지만 불행한 집은 이유가 제각각이다’였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도 결과는 실종이라는 하나로 나타났지만, 그 뒤에는 각각의 소녀들이 그 누구에도 말 못한 비밀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자의건 타의건 사라지고 말았다.

 

 

  이야기는 실종 사건을 주로 파헤치고 있지만,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무척 비중 있게 다루고 있었다. 한 가정이 어떻게 무너지고 자식을 잃은 부모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다르면서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네 집안을 통해 보여주었다. 또한 그런 일을 겪은 집이 넷이나 있는 마을은 어떤 모습을 감추고 있는지 은근히 드러내기도 했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나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하이에나처럼 뉴스거리가 될 만한 일에 몰려드는 언론과 네티즌 수사대라는 이름으로 마구 남의 비밀을 파헤치거나 앞뒤상황 고려하지 않고 욕부터 하는 사람들의 행태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위기가 진지하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등장인물들, 특히 무순과 홍 여사는 캐릭터자체가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가, 생각하는 방향 자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함이 있었다. 그 할머니에 그 손녀라고 해야 할까? 덕분에 나름 진지하고 고민 많은 캐릭터인 창희가 고생했다. 어쩌면 그래서 세 사람의 분위기가 균형을 이룰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명색이 네 소녀의 실종 사건을 다루는데 너무 유쾌발랄하게 흘러가는 게 아닐까 싶을 때마다 적절하게 진지해지는 흐름이 꽤 좋았다.

 

 

  읽으면서 웃음도 났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씁쓸하고 마음이 안 좋아지기도 했다. 한 사람의 그릇된 마음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 보면서 화도 났다. 처음에는 마냥 유쾌하더니,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한숨이 나왔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살아도 인간이란 어쩔 수 없구나…….

 

 

  이 책의 표지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다만 ‘꽃돌이’라 불리는 창희의 모습이 없는 게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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