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筆仙 III, Bunshinsaba 3,2014

  감독 - 안병기

  출연 - 강일연, 초준염, 동자건, 왕용화





  정신병원에 갇혀있던 ‘리나’는 딸 ‘샤오아이’를 만나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딸은 존재하지 않다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단호히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이었다. 노부부는 리나의 눈을 피해 어린 샤오아이를 데리고 집을 떠난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두 사람이 죽고 나서야, 리나는 딸을 되찾게 된다. 딸과 함께 물려받은 시골 저택으로 온 리나. 밤마다 집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이웃들 역시 수상하기만 하다. 몸이 약한 샤오아이를 돌봐주기 위해 '웬웬‘이라는 학생을 고용하는데, 공교롭게도 그녀는 귀신을 부르는 분신사바의 달인이었다. 리나는 웬웬과 분신사바를 하면서, 집안을 떠도는 원혼을 달래고자 하는데…….


  ‘분신사바, 2004’라는 한국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중국에서 만든 ‘분신사바 筆仙 시리즈’가 나타났다. 전에 ‘분신사바 2 筆仙 2, Bunshinsaba 2 , 2013’ 감상문에서도 썼지만, 그 모든 것은 ‘안병기’라는 감독이 만든 작품들이다. 한국에서 ‘가위 2000’, ‘폰 2002’ 그리고 ‘분신사바 2004’를 만들어 히트를 치고, 중국으로 건너가 분신사바 시리즈를 제작한 것이다.


  왜 이렇게 감독 소개를 길게 하냐면, 영화 얘기를 별로 할 게 없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할 말은 많지만 하고 싶지가 않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이 시리즈의 2편은 ‘박한별’이 나오는데 감독의 전작인 가위를 그대로 리메이크했으니 패스하고, 1편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의 연속이었다.


  그런 느낌은 이번 3편도 마찬가지였다. 이 장면은 이렇게 흘러가겠군, 저 사람이 수상한데? 역시나 비밀이 있었어, 이 장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어디였지?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지루할 정도로 느릿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와 깜짝 놀라게 하려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귀신의 등장은 더 이상 매력은커녕 흥미조차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사실 귀신이 너무도 전형적인 방법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언제 튀어나올지 예측이 가능했다. 영화 ‘주온’에서 토시오가 대낮에 테이블 밑에 숨어있는 것이 무척 놀라웠지만, 매 편마다 반복되어 이제는 ‘저기서 나오겠네.’라고 심드렁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거기다 이야기의 구성은 물수제비를 뜨듯이 퐁당퐁당 건너뛰기 일쑤였다. 어떤 부분에서 퐁당퐁당을 느꼈는지 일일이 애기하다보면,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서 적을 수가 없다. 그러니 영화 얘기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1편에서는 주인공인 소설가 이름이 샤오아이였다. 여기서는 어린 딸의 이름이 샤오아이다. 중국에서는 흔한 여자아이 이름인지, 아니면 1편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포스터는 무척이나 무서웠다. 와, ‘디 아이 見鬼: The Eye, 2002’ 이후 보자마자 화면을 가려버린 포스터는 두 번째이다. 음? 그러고 보니 디 아이 감상문이 없다. 적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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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스로 해야 하죠? - 자율,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주는 인성 동화 올바른 가치관 1
이아연 지음, 백용원 그림 / 파란정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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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자율,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주는 인성 동화

  작가 - 이아연

  그림 - 백용원





  ‘민기’는 엄마가 시키는 것만 하는 생활에 익숙한 초등학생이다. 엄마가 알림장을 확인하고 어떤 숙제가 있으니 하라고 해야만 하고, 준비물도 엄마가 챙겨주거나 갖고 가라고 말하지 않으면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숙제를 안 해서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들은 민기는 엄마가 제대로 챙겨주지 않아 혼이 났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미술 시간에 자유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데, 혼자 뭔가를 정해본 적이 없는 민기는 곤란하기만 하다. 그의 고민을 들은 엄마는 민기가 혼자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하는데…….



  조카들이 어렸을 때, 혼자 뭔가 하려는 게 안쓰럽거나, 제대로 못하는 것같이 보여서 또는 위험해보여서 이것저것 도와준 적이 많았다. ‘고모가 도와줄까? 고모가 해줄게, 이리 줘봐.’ 그러다보니 조금 시간이 지나서 이제는 혼자 해보라고 했을 때, 입을 삐죽이며 화를 내거나 왜 안도와주냐고 항의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때 알았다. ‘아, 고모의 지나친 도움이 독이 되었구나.’




  간혹 어린 친구들을 보면, 초등학교 고학년 심지어 중학생이 되어도 자기 스스로 뭔가 할 줄 모르는 경우가 있다. 공부를 스스로 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준비물이나 숙제 같은 것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 아이들이 성격상 원래 태어난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 부모는 아이가 혼자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생활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걸 보고, 다시 개입하고 말았다. 아이가 힘들어해도 지켜봐 줘야 하는 것이 옳겠지만, 점수와 관련되면 약해지는 것이 부모 마음이다. 결국 그 이후 부모는 아이의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되었고, 아이는 부모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말았다. 그런 습관이 중학생이 되어도 계속된다. 간혹 신문에 나오는 ‘헬리콥터 맘’이나 ‘캥거루 맘’이 저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다행히 이 책의 민기와 엄마는 그런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냈다. 담임선생의 적절한 도움이 효과적이었고, 민수 자신도 뭔가 이루고 싶은 욕심이 컸기에 가능했다. 시간표 짜기에서부터 학교 조별 주제 정하기까지 혼자 해보고, 어려움에 부딪혀서 실패의 아픔도 느껴보고.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민수는 자기 생활을 스스로 계획하고 책임지고 이루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어린 아이를 가진 부모는 의무적으로 자녀의 독립을 격려하고 지원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다. 도와주고 지원해주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잘 못하고 실수도 많지만, 그게 다 거름이 되고 양분이 되는 경험들이 될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균형 있게 발달해야 할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해야한다.



  아이들이 읽으라고 만들었지만, 어쩐지 부모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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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제 - Bite Me If You Love Me, 2011

  감독 - 토모마츠 나오유키

  출연 - 하네다 아이, 코바야시 유토, 후쿠텐

 

 

 

 


  ‘히토미’는 영화와 좀비를 좋아하는 고등학생이다. 학교의 킹카남학생보다 좀비를 더 좋아하는 그녀는 책에서 좀비 가루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다. 히토미는 같은 학교 학생인 ‘쇼타’에게 좀비 가루를 뿌린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쇼타는 히토미와 함께 지내면서, 살아생전에는 꿈도 못 꿨던 유명인이 된다. 그런데 전학생인 미국계 일본인 ‘제이슨’을 본 히토미가 관심을 보이는데…….


 

  좀비에 관한 영화가 뭐가 있을까 찾다가 발견한 영화이다. 좀비를 너무도 좋아해서 좀비 남자친구를 갖고 싶었던 여고생이 같은 학교 남학생을 죽이고 좀비로 만든다는 줄거리를 보자마자 ‘이건 무슨 병맛인가!’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지만 줄거리에 집중하느라, 그 외의 정보를 간과한 것이 실수였다면 실수이다. 작품 정보에 적혀있는 ‘성인’이라는 단어와 상영 시간 59분을 나중에서야 보고 말았다.


 

  사람은 원하던 것을 갖게 되면, 예상과 달라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갖기 전에 온갖 상상과 망상을 덧씌우면서 엄청난 착각과 오해로 가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다 망상과 현실의 차이를 알게 되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실망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이 맛있다고 남긴 음식평을 보고 잔뜩 기대를 하고 갔지만, 상상보다 별로여서 속은 기분이 든 적이 있다. 또한 누군가가 감동적이라고 말한 책이나 영화를 봤지만, 기대와 달라 ‘내 취향이 이상한가?’라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도 있다. 때로는 직접적인 친분이 없이 이러이러한 사람일 것이라 추측했지만, 우연히 그 사람의 민낯을 보고 실망한 적도 있다.


 

  이 영화의 히토미 역시 상상 속의 좀비와 현실의 좀비가 다르다는 사실에 실망한 경우였다. 그런 그녀의 심경 변화는, 방의 소품과 즐겨보는 영화에서 잘 드러난다. 예전에 좀비를 좋아할 때는 좀비 영화만 보고 방 곳곳에 좀비 포스터와 좀비 그림이 박힌 옷들이 걸려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제이슨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방 곳곳에 영화 ‘13일의 금요일 Friday The 13th, 1980’ 포스터와 여러 소품이 놓이고, 그 영화 시리즈를 즐겨 보기 시작한다. 그렇다. 제이슨은 바로 영화 ‘13일의 금요일’에 등장하는 그 살인마 제이슨을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서 크나큰 판단 미스를 범하는데, 제이슨은 영화와 너무도 비슷한 남자였다. 정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후반부에 제이슨의 그녀의 집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나와 산에 버리는데, 거기서 좀비 가루가 든 병이 떨어진다. 그게 왜 히토미의 옷과 함께 튀어나오는 걸까? 제이슨이 그냥 옷만 버릴 이유가 뭐가 있을까? 옷 말고 다른 건 보여주지 않은 게 아닐까?


 

  이야기의 진행이 너무도 허점투성이라, 곰곰이 따져보거나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면 괜히 머리만 아파진다. 여길 메우면 저기에 구멍이 나 있고, 저길 막으니 여기가 뚫린 상황이다.


 

  영화 정보를 검색할 때 히토미 역을 맡은 배우가 AV 배우 이름과 똑같다며 그 사람이 아니냐는 글을 보았다. 그래서일까? 영화에서는 히토미가 두 남자친구(...)와 각각 벌이는 섹스신이 등장한다. 쇼타와의 섹스 장면은 정적이었지만, 제이슨과의 관계는 아주 역동적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에로가 주목적인 영화가 아니라, 그냥 맛보기 정도로만 보여주고 말았다. 아깝다. 문득 쇼타는 좀비라서 신체 특성상 한 가지 체위로밖에 관계를 못 갖지만 제이슨은 어쨌든 살아있는 몸이라서 여러 가지 체위로 할 수 있어서, 그녀의 마음이 바뀌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는 예스24에서 1500원이면 다운 받을 수 있는데,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돈 좀 더 보태서 컵라면이랑 삼각 김밥 사먹는 게 더 유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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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Stonados (아이스 투모로우)(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Arc Entertainment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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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Stonados, 2013

  감독 - 제이슨 부케

  출연 - 폴 조한슨, 세바스찬 스펜스, 미란다 프리곤, 제시카 맥레오드

 

 

 



 

  ‘토네이도 Tornade’는 바다나 평지에서 갑자기 생겨나 매우 강하게 돌아가는 회오리바람을 뜻한다. 미국의 중부나 동부에서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이 영화의 배경이 ‘보스턴’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갑작스런 회오리바람 때문에 플리머스 만의 명물 ‘플리머스 바위’가 꽤 먼 곳에 있는 보스턴 시내에 떨어진다. 사람들은 회오리바람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하겠냐고 의심을 품지만, 기상 캐스터인 ‘리’와 날씨 연구 일인자인 ‘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끝도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등대에서 일하는 ‘벤’의 도움으로 그들은 지금까지 본 것과는 다른 엄청나게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발생할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사람들, 특히 담당 관청에서조차 그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계기에 측정되기도 전에 회오리바람은 갑자기 생겨난다. 또한 회오리바람의 영향으로 시내에 떨어진 돌들은 폭발까지 일으키며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된다. 게다가 급기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미식축구 경기장으로 토네이도가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자연재해를 다룬 영화들은 많다. 대개 기상이변이나 운석의 충돌로 인해 사람들이 고난을 겪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그런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번 작품은 좀 이상했다.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단 세 사람밖에 보이지 않는다. ‘조’와 ‘리’, 그리고 경찰인 ‘매디’. 그들만이 회오리바람에서 사람들과 가족을 구하고자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담당 기관에서 하는 일은 모니터를 보면서 각 지역의 피해상황을 보고받으면서 한숨 쉬는 게 다였다.

 

  제일 황당한 건, 토네이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민간인 세 명에게 시키는 장면이었다. 자연 재해에 대응하는 방법도 좀 허황되었지만, 내가 과학 쪽은 모르니 패스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했다. 아니, 아무리 그들이 전문가라고 쳐도 아무런 보조도 안 해주는 거야? 사실 그 중에 전문가는 한 명밖에 없잖아! 어떻게 민간인에게 직접 대응 무기를 옮기고 조립해서 발사하라고 시킬 수 있는 거지? 직원이 수십 명은 보이던데, 그 중에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야? 게다가 거기에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가는 주인공은 뭐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건가?

 

 

  게다가 아버지의 부성애, ‘너희들이 어디에 있건, 찾아내 구할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려고 노력은 했는데, 어쩐지 그걸 위해 일부로 위험에 빠트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애들이 개념이 없다고 해도 그 전날 회오리바람으로 그 난리를 겪었으면, 좀 자제하고 그러지 않나? 눈앞에서 헌팅 하던 남자애가 돌에 맞아 죽는 걸 봤는데, 어떻게 그 다음 날 미식축구를 보러갈 수 있을까? 설마 그건 요즘 애들이 험한 세상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로는 겁먹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

 

 

  뭔가 감동을 주려고 애쓰는 것 같은데, 전혀 감동적이지가 않았다. 토네이도 CG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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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Vatican Tapes, 2015

  감독 - 마크 네빌딘

  출연 - 올리비아 테일러 더들, 마이클 페나, 자이몬 훈수, 캐슬린 로버트슨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목만 보면 바티칸에서 일하는 가톨릭 사제들의 일상에 대한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사제가 되는지, 어떤 생활을 하고, 교단의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져있는지 등등에 대해 알려주는 다큐멘터리가 아닐까하는 추측하게 한다. 하지만 포스터까지 보게 되면 그런 생각은 싹 사라진다. 성흔일지도 모르는 상처가 있는 두 개의 발이 공중에 떠있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신부의 모습이 보인다. 붉은 천을 두르고 있는 신부의 모습을 보자 느낌이 온다. 아, 엑소시즘을 하려는 거구나.


  영화의 시작은 다소 충격적이다. 지금까지 바티칸에서 모아뒀다는 귀신 들림과 그것을 퇴치하기 위해 엑소시즘을 벌이는 영상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상의 일부인 것처럼, 뉴스 보도와 고위 신부의 인터뷰 영상이 이어진다.


  인터뷰에 나왔던 두 신부가 한 여성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안젤라’로, 27번째 생일 이후부터 이상한 일이 자꾸만 일어난다. 새의 공격을 받거나 정신을 잃기도 하고 전과 달리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급기야 폭주하던 그녀는 교통사고를 낸다. 하지만 사망선고를 받기 직전 극적으로 되살아나는데, 그 때부터 그녀를 중심으로 끔찍한 사건들이 계속된다.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는 것을 꼽자면, 동양에서는 ‘삼국지’이고 서양에서는 ‘성경’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다. 그 중에서 특히 ‘재림 예수’나 ‘적그리스도’에 대한 것은 호러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얘기이다. 이 영화 처음에는 단순한 귀신 들림을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적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적그리스도라니……. 문득 영화 ‘오멘 The Omen, 1976’이 생각났다. 거기서 나오는 ‘데미안’도 적그리스도로 세상을 지배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때문에 권력자의 집안에 들어가고 유일한 상속자가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갔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어린 시절부터 후계 교육을 받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힘이 생기고, 각성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건 20세기와 21세기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는 인터넷이라는 기술이 있어서, 정치권력이나 엄청난 재산이 없어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유튜브와 트위터같은 소셜 네트워크서비스를 사용해, 빠른 시간 내에 거의 전 세계를 상대로 자신의 힘을 보여줄 수 있다. 게다가 이미 현대인들은 SNS에 올라온 글들이 조작 가능성이 있는지 아닌지 판단할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었고, 기존의 종교계나 정치에 환멸을 느껴 새로운 누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외모 지상주의가 너무도 팽배해있어서, 겉만 멀쩡하고 괜찮으면 내면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아요!’를 누르기 바쁘다. 그러니 금발에 흰 피부를 가진, 기적을 일으키는 적그리스도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21세기는 다른 어떤 때보다 사람들을 선동하기 쉬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영화는 그런 점을 얘기하고 있었다. 너무도 쉽게 그 사람은 ‘성인 聖人’이 되었고,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어쩐지 오싹해지는 것이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은 그렇게 충격적이지가 않았다. ‘오멘’처럼 으스스하거나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부분이 없었다. 사실 그 사람이 각성하는 과정보다 오프닝이 더 무서웠다. 어쩐지 세상의 종말을 나타내는 듯한 엔딩 크레딧 장면도 분위기가 좋았다. 차라리 영화가 그런 느낌을 유지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제작진이 시작과 끝에만 신경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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