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메르세데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킹느님이 호러가 아닌 추리를 쓰지만, 그만의 색의 잃지 않으면서 다른 분야에도 최적화된 내용을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시체스영화제 최우수작품상)
타셈 싱 감독, 저스틴 와델 출연 / 플래니스 엔터테인먼트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원제 - The Fall, 2006

  감독 - 타셈 싱

  출연 - 리 페이스, 카틴카 언타루, 저스틴 와델, 킴 울렌브로크

 

 

 

 

 

  애인님 집에서 프로젝터로 본 영화이다. 지난번에 ‘더 셀 The Cell, 2000’의 화면이 너무 멋있어서, 혹시 그 감독의 다른 작품은 어떨까 검색을 해봤다. 사진도 멋지고 이 작품은 영상미의 결정체라는 평까지 읽고는 주저 없이 골랐다. 그리고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쟤 나쁘다’라고 투덜대면서도 눈은 그대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국의 한 병원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다섯 살 난 소녀가 입원하고 있었다. 한 팔에 기브스를 했지만, 소녀는 씩씩하게 돌아다닌다. 어느 날, 좋아하는 ‘에블린’ 간호사에게 보내려던 편지가 바람에 날려 엉뚱한 곳에 떨어진다. 편지가 도착한 곳은 ‘로이’라는 젊은 남자가 누워있는 병실이었다. 다리를 다친 그는 어린 알렉산드리아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해줄 테니 부탁을 들어달라고 한다. 그리고 로이는 독재자인 ‘오디어스’에게 저항하는 다섯 명의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작품은 두 가지 이야기로 진행된다. 알렉산드리아와 로이의 병원 생활과 로이가 들려주는 다섯 영웅들의 모험 이야기다. 물론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야기가 바뀌기도 하고, 두 이야기가 섞이기도 한다. 그래도 교묘하게 현실과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처음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에게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모르핀을 몰래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문에 이야기에는 어린 여자아이가 좋아할 법한 용감한 다섯 영웅과 악독한 악당, 그리고 아름다운 공주가 등장한다. 위험에 처했지만 재치와 끈기로 역경을 이겨내고 공주와 사랑까지 나누는 내용에 알렉산드리아는 푹 빠져든다. 그녀는 매일 로이의 병실로 출퇴근을 하며,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른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의 그런 거짓말 때문에 알렉산드리아가 다치게 되자, 로이는 절망과 자책감에 휩싸인다. 그 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무척이나 슬프고 비극적이었다. 이 때 두 사람은 갈등을 빚는다. 로이는 나락으로 빠져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했고, 알렉산드리아는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애원한다. 로이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마스크 밴디트’가 오디어스에게 굴복하지 않고 부활한 것은, 어떻게 보면 죽음만 생각하던 로이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저 부분에서 ‘로이, 이 개XX! 어린아이한테 어떻게 저런 잔인하고 비극적인 얘기를!’하면서 욕을 했었다.



 

  영화는 죽음을 꿈꾸던 한 청년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건 어린 소녀의 우정덕분이었다. 너무도 순수하고 삶을 사랑했던 소녀는 청년의 마음속에 있던 어둠을 몰아낼 정도로 밝은 빛을 갖고 있었다.

 

  문득 덴젤 워싱턴과 다코타 패닝이 나왔던 영화 ‘맨 온 파이어 Man on Fire, 2004’가 떠올랐다. 거기서도 나락으로 떨어졌던 ‘크리시’라는 남자가 한 소녀를 만나면서 변화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무슨 로리타 콤플렉스를 다루는 내용은 아니다. 그들은 소녀를 성적인 대상이 아니라, 빛이자 희망으로 여겼다. 어쩌면 두 남자에게 두 소녀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어린 천사와 같은 존재였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생략된 부분이 무척 많았다. 알렉산드리아는 어쩌다가 팔을 다쳤는지, 그녀의 아버지는 누가 죽였는지, 로이는 왜 다리를 다쳤는지, 병실의 할아버지는 왜 갑자기 죽었는지, 로이가 왜 분노하는지, 알렉산드리아가 그 날 밤 본 것은 무엇인지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스쳐지나가는 대사라든지 주변 상황으로 추측하게 한다. 제목이 ‘더 폴’인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알렉산드리아는 나무에서 떨어졌고 로이는 말에서 떨어져서 그런 걸까하는 상상만 하게 한다. 아니면 모든 것은 위로 올라가려는 습성을 갖고 있고, 결국에는 떨어지게 마련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영화는 이 지구에 존재하는 유적지나 건축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CG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일일이 그곳을 찾아가서 찍었다고 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장소들을 감독 특유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각도로 보여주고 있었다. 덕분에 눈이 아주 호강을 했다. 그래서 중간에 영화의 내용이 이상해지는 부분에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내용 연결은 어색하지만 멋진 배경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냥 넣은 건 아닐까?’

 

  로이와 알렉산드리아는 만나서 좋은 인연이었다. 이후 두 사람이 다시 만났는지의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 다시는 만나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병원에서의 그 짧은 만남만으로도 두 사람은, 특히 로이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충분한 희망과 용기를 갖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 역을 맡은 꼬마 아가씨의 연기는 그야말로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엑스 마키나
알렉스 갈란드 감독, 돔놀 글리슨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원제 - Ex Machina, 2015

  감독 - 알렉스 갈렌드

  출연 - 돔놀 글리슨, 알리시아 비칸데르, 오스카 아이삭, 첼시 리

 

 

 

  '칼렙'은 인공지능계의 천재라 불리는 회장 '네이든'의 저택에서 며칠 머무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아무도 모르는 숲 깊숙한 곳에 위치한 그의 저택에서, 칼렙은 뜻밖의 제의를 받는다. 네이든이 추진하고 있는 비밀 실험에 동참해 달라는 것이었다. 바로 그가 만들어낸 인공지능 로봇의 테스트를 해달라는 것이다.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단순히 프로그램에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인공지능 스스로 판단하는 것인지 확인하는 실험을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세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 분명한 일에 참가한다는 들뜬 기분으로 칼렙은 승낙한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아름다운 여인의 외모에 달콤한 목소리를 가진 로봇 '에이바'.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는 네이든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칼렙. 급기야는 자신이 진짜 인간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워한다. 한편 네이든은 칼렙에게 에이바를 조심하라고 말하는데…….

 

  예고편을 보면서 ‘우와!’했던 영화이다. 로봇과 인간의, 인간과 인간의 심리 대결이 멋들어지게 펼쳐지면서 한편으로 속고 속이는 반전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용은 예상과 맞아떨어졌다.

 

  다만 내 예상보다 영화의 속도가 느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영화 느리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눈을 떼지 못했다. 잠깐이라도 딴 짓을 하면 중요한 뭔가를 놓칠 것 같은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에이바라든지 네이든이 허튼 짓을 하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뱉을 것 같았다. 참 묘한 영화였다.

 

  로봇이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에이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이룰 수 있는 천재이자 부유한 네이든, 그리고 평범한 프로그래머인 칼렙. 이 셋의 만남은 처음부터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편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처음에는 순수하게 기뻐할 줄 알았던 칼렙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지적인 에이바에게 점점 끌리면서, 그는 네이든과 묘한 삼각관계를 이루었다. 그녀를 만든 창조주는 네이든이지만, 그녀가 마음을 연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남을 얕잡아 보는 듯한 네이든의 태도에 반발심을 느껴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갈라테이아와 피그말리온'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 갈라테이아를 사랑하게 된 조각가 피그말리온. 결국 그의 마음이 신을 감동시켜 조각상이 여인으로 바뀌어 사랑을 이루었다는 신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이아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그가 만든 수많은 조각상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대신 그의 조수가 그녀를 마음에 두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조수의 마음에서는 순수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경쟁심이 그 자리를 채웠다. 자신만이 그녀를 이해하고 아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자신 이외의 남자는 필요 없을 거라 믿었다.

 

  한편 갈라테이아도 신화와 달리 두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 때문에 세 사람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폭력은 물론이고,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처음 칼렙이 당첨되었을 때 모두가 부러워했고 행복해했던 며칠간의 휴가가 악몽으로 변해버렸다. 인간과 인간의 심리 대결도 볼만한데 여기에 로봇까지 가세하니,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다만 에이바와 칼렙의 실험 과정이 너무 느슨하게 느껴지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막판에 몰아치기위해 앞부분이 그렇게 느렸나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해드립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로런스 블록 지음, 이수현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 - Hit Man

  작가 - 로런스 블록

 

 

 

  '켈러'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다. 어디 가서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중년의 독신이지만 고정적으로 사귀는 여자는 없다. 방탕하게만 살지 않으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재산도 모았고, 꽤 괜찮은 아파트에서 산다. 어떤 면에서는 다정다감하다고 볼 수도 있고, 감성이 풍부하며, 책임감도 있는 편이다. 신문에 실린 십자말풀이를 즐겨하고, 자기 취향에 맞는 식당을 찾으면 좋아한다. 다만 그에게는 마음 편히 속 터놓고 얘기할 친구가 거의 없다. 그가 주로 얘기하는 상대는 일하는 곳에서 연락을 담당하는 '도트'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이가 지긋한 노부인으로, 동갑내기 친구처럼 편하게 지낼 수는 없다. 심리 상담까지 받아봤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그런 그의 고민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악몽을 자주 꾼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대도시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위기의 중년 남성이 연상될 것이다.

 

 또한 그는 직업상 출장을 자주 간다. 게다가 한 번 가면 언제 일이 끝날지 모르는 게 태반이다. 출장지에서 그는 매번 모텔을 이용하는데, 그가 좋아하는 채널은 HBO다. 그 채널이 나오지 않는 곳에 묵기라도 하면, 그는 불안해한다. 그가 특히 싫어하는 모텔 유형은 리모컨을 고정시켜놓은 곳이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서이다. 간혹 출장지에서 마음에 드는 식당을 발견하면, 그는 입버릇처럼 '여기로 이사할까'라고 말한다. 물론 실행된 적은 없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고독에 몸부림치는 남자라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위의 두 문단으로 보건대, 그는 중년의 독신 남성으로 출장이 잦은 일을 하면서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해 외로워하는 비사교적인 남자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는 살인청부업자다. 그것도 꽤 실력이 좋은.

 

  '어르신'이라 불리는 사람이 의뢰를 받으면, 도트가 이것저것 준비해서 켈러에게 연락한다. 그러면 켈러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비행기를 타거나 차를 몰고 간다. 그리고 적당한 기회를 노려 목표를 죽인다.

 

  켈러의 입장에서 살인청부업이라는 직업은, 참고 기다리는 일이다.

 

  잦은 출장을 가야하고 언제 기회가 날 지 모르니 기다려야한다. 여자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눈다거나 연애다운 연애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이겨내야 한다. 사실 여자는커녕 허심탄회하게 술잔을 기울일 친구도 사귀기 어렵다. 반려동물이라도 길러서 외로움을 이겨내고 싶지만, 집을 자주 비우니 어쩔 수가 없다.

 

  그가 처음부터 그 직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하다 보니 그게 제일 잘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직업을 찾아볼 생각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끔 은퇴를 하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해볼 뿐이다.

 

  이 책은 우울한 몽상가 킬러인 켈러의 이야기를 모은 단편집이다. 『솔저라고 부르면 대답함』,『말을 탄 사나이 켈러』,『켈러의 상담 치료』,『개를 산책시키고 화분에 물을 줍니다』,『켈러의 카르마』,『빛나는 갑옷을 입은 켈러』,『켈러의 선택』,『현장의 켈러』,『켈러의 마지막 피난처』,『켈러의 은퇴』까지, 총 열 개의 사건 모음이 수록되어있다. 하나하나씩 읽다보면 어느새 그의 우울함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는 분명히 살인청부업자로 사회의 지탄을 받아야 하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다른 스릴러 소설과 달리, 켈러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그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그를 잡으려는 경찰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건과 관련된 여러 가지들, 의뢰를 완수하는 과정이나 이후 쫓고 쫓기추격 장면 같은 것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켈러와 다른 사람들, 예를 들면 정체불명의 의뢰인이라든지 어쩌다가 친구가 되어버린 목표 인물과의 교감을 통해 삶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물론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한다기보다는 그냥 소소한 가운데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예를 들면 몇 년을 조심스럽게 살았어도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살인 청부의 대상이 된 사람을 통해 세상사 부질없음을 얘기한다거나, 어르신의 기억력쇠퇴로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는 내용을 통해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니까 사람의 생사란 아주 우연찮게 나뉠 수 있고, ‘나’가 아닌 ‘남’에게 ‘나의 생사란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켈러와 한 여인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인연이란 예고 없이 찾아왔다가 가버릴 수 있다고 보여주고 있다. 만남은 선택이 아닐 수 있지만 헤어짐은 선택할 수 있으니, 진상으로 남을지 아니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지는 자신이 고를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담담한 어조로 들려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희망고문을 하는 것 같은 켈러의 살인 행각을 통해서, 온갖 망상에 상상을 하는 그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면서, 일을 끝내면 모든 것을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버리는 그의 생활을 얘기하면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은 끝이 있고, 그것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제 - As the Gods Will, 2014

  감독 - 미이케 다카시

  출연 - 후쿠시 소타, 야마자키 히로나, 카미키 류노스케, 소메타니 쇼타

 

 

 

 

 

  어느 날 수업을 하던 선생의 머리가 터졌다. 그리고 달마 인형이 교탁에 나타나, 뜬금없이 ‘다루마상가고론다(だるまさんが轉んだ)' 그러니까 우리식으로 하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자고 제안한다. 사실 제안이 아니라 강요에 가까웠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인형이 돌아보는 순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학생들도 선생처럼 머리가 터지면서 죽어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지쳐가고 그때마다 죽어가는 숫자도 늘어났다. 최후의 한 명이 남을 때까지, 게임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달마 인형의 게임에서 살아남은 '슌'을 기다리는 것은 체육관에 있는 거대한 고양이 인형이었다. 인형 쥐 옷을 입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게임이 끝나면, 그 다음에는 목각인형이 나타나 누가 말했는지 맞추는 게임을 이어갔다.

 

  비록 새로 추가되는 인원이 있을지라도 살아남은 이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아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고조된다. 특히 다른 친구들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슌'과 자신만 살아나면 된다는 '타케루'의 대립은 게임이 계속될수록 심화된다. 아이들은 마지막 게임을 통과하여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과연 이 모든 게임을 관장하고 있는 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짜고짜 생명을 담보로 한 게임에 휘말린 아이들. 뒤늦게 반응하거나 게임의 룰을 지키지 않으면 죽는다. 게임에서 이기지 못해도 죽는다. 상대방의 함정에 걸려도 죽는다.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첫 판에 죽을 법한 게임들이다. 아이들에게도 그렇고 보는 사람에게도 불친절한 영화였다. 누가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 모르긴 서로 마찬가지다. 단지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고, 보는 이들은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조마조마해하면서 지켜봐야한다.

 

  어쩌면 이건 삶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사고는 언제나 예상하지 못했을 때 일어난다. 내가 아무리 안전운전을 하고 교통 법규를 지키며 걸어 다녀도, 언제 어디서 음주 운전이나 졸음운전을 하는 차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이다. 내가 가스를 잘 잠그고 전기를 뽑고 다녀도, 이웃에서 부주의하면 불이 나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내가 인도로 걸어 다녀도 건물에서 뭐가 떨어질 수도 있고, 고장 난 차가 갑자기 뛰어들 수도 있다. 아이들이 게임에서 잘못하면 죽어나가는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갑자기 사고를 당할 수 있다. 게다가 아이들이 서로 속고 속여 살아남으려는 것 역시, 주위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일들이다. 다만 일상생활에서는 속아 넘어갔다고 해서 죽지는 않지만 말이다.

 

  잔혹한 장면으로 유명한 감독답게, 영화는 꽤 잔인했다. 비록 피를 붉은 구슬로 대체하긴 했지만, 그게 더 으스스했다. 사람이 죽으면서 사람이 아닌 게 되어버리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붉은 핏속에서 굴러다니는 구슬들이 더 섬뜩하게 보였다. 역시 ‘미이케 다카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 감독은 아쉬운 스토리 대신, 영상을 통해 ‘이게 바로 잔인함이다!’라는 걸 보여준다.

 

  아이들은 생명을 걸고 게임을 하는데, 그걸 바깥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보면서 즐거워하는 어른들의 행태에서는 화가 났다. 마치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일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게임이나 영화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 같은 느낌? 팔레스타인 공습을 보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의 짤방을 보는 느낌? 하지만 그건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어서 그랬는데, 여기서는 아이들과 어른들은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죽은 아이들 중에 자기 자식도 있을 것이다. 설마 내가 모르는 설정이라도 있는 걸까? 가령 저기에서 반드시 한 명이 살아남아야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다는 거 같은?

 

  마지막 부분에서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이게 뭐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 모든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쓴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지력, 체력, 상상력 등을 능가하는 게 '그거'였다니……. 결국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봤자 신이 원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걸까? 아니 그러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사나?

 

  다음 편이 나와야 확실한 것을 알 수 있을 영화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