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제 - Fatal Frame , 2014

  감독 - 아사토 마리

  출연 - 나카조 아야미, 모리카와 아오이, 야마야 카스미, 코지마 후지코

 

 

 

 

 

  수녀들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여학생들을 위한 기숙 학교가 있다. 그곳에서 학생들의 아이돌처럼 여겨지는 ‘아야’라는 소녀가 있었다. 하얀 피부에 긴 생머리, 크고 검은 눈동자에 붉은 입술 그리고 누구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그녀를 동경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학생 중에는 아야의 사진을 갖고 싶어 하는 소녀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이상하다. 방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종업식을 얼마 앞두고 학생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심지어 교내에서 다 같이 원예 활동을 하다가 사라진 소녀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아야의 환영을 본다는 것이다. 얼마 후, 사라졌던 다섯 명의 소녀들이 시체로 발견되는데…….

 

  난 처음 들어보지만, 호러 게임으로 유명한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라 한다. 원작이 있는 영화라는 것은, 완전 복불복이다. 원작 못지않게 재미있게 만든 것도 있고, 원작의 이름을 붙인 게 아까울 정도로 형편없는 것도 있다. 이 영화는 원작 게임을 보지도 못해서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루했다.

 

  이 학교에는 소녀들만 걸린다는 저주가 전해 내려온다. 자정에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에 입을 맞추면 서로에게 저주가 걸린다는 것이다. 한 명이 자신의 목숨을 건 키스를 하면, 상대방은 죽은 소녀의 혼령에 시달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음, 저게 사랑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혼자 짝사랑을 하는 상대의 사진에 입맞춤을 하고 귀신이 되어 괴롭힌다는 얘기니까. 사랑이 아니라 스토커 아닌가?

 

  영화는 소문의 중심에 놓인 아야와 미치가 괴담의 진상을 파헤치고, 소녀들을 죽인 범인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딱히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고, 공포 영화다운 무서운 장면도 없었다.

 

  대신 아야 역을 맡은 주인공의 뛰어난 미모를 보는 낙이 있을 뿐이었다. 나카조 아야미라는 그 어린 배우는 진짜 예뻤다. 그런 애가 대낮이건 밤이건 교실이건 예배실이건 가리지 않고 나타나서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우와……. 무섭다기보다는 꼬옥쓰다듬쓰다듬을 해주고 싶었다.

 

  광고는 공포 영화라고 해놓고, 보여주는 건 예쁜 화면 안의 예쁜 소녀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화면이 예뻐 보일까 연구하고 찍었다는 티가 팍팍 느껴졌다. 모름지기 공포영화란, 화면에서 긴장감과 공포심을 줘야지 예쁘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포 영화라고 타이틀을 걸고 싶었으면, 오싹한 느낌을 줘야했다. 배경도 외딴 시골에 있는 기숙사에, 주변에는 계곡에 저수지와 늪이 있다. 이건 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건이다. 그런데 그런 좋은 배경을 내버려두고 왜 이런 식으로…….

 

  과연 제작진이 말하는 공포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소녀들이 서로에게 연심을 품는 것? 그 마음 때문에 죽어도 좋다는 결심을 하는 것? 소녀들이 사랑하는 대상이 이성이 아닌 것? 하지만 여중 여고를 다닌 나에게 소녀들이 그런 감정을 갖는 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 나이 때, 세상의 전부를 줘도 아깝지 않을 존재가 없었다면 그게 더 아쉬운 일이 아닐까? 그런 과정을 거쳐서 성장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공포냔 말이다!

 

  날도 더운데 영화 보다가 짜증이 나면서 확 더위가 몰려왔다. 다음에서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를 종료한 것도 화가 나는데 말이다. 이제 네이버와 예스24밖에 없는 건가. 극장도 롯데와 CGV 그리고 메가 박스밖에 없어서 그들이 보라고 강요하는 영화를 봐야만 하는데, 다운로드 서비스까지 독과점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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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 En Man Som Heter Ove, 2012

  작가 - 프레드릭 배크만

 

 

 

 

 

  30초마다 웃음이 터진다는 광고 문구에 끌렸었다. 그런데 음, 처음에는 웃음이 좀 나긴 했지만, 나중에는 웃을 수가 없었다. '오베'의 지나온 삶과 '소냐'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알고 나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한 여인에게 평생 동안 마음을 바친 한 남자의 이야기에 웃는다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어머, 어쩜…….'이라든지 '괜찮네.' 또는 '하아, 감동적이야.' 같은 감탄사만 나왔다.

 

  오베는 스웨덴의 한 마을에 살고 있는, 며칠 전에 정년퇴직을 한 59살 먹은 남자이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남의 일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비록 자동차에 관한 그의 독특한 사고관과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성격덕분에 오랜 시간 알아온 이웃사촌 루네와 말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는 절대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물러서지 않았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 목표였던 오베.

 

  그런 그에게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바로 이웃에 새로 이사 온 가족, 특히 그 집의 젊은 부인 파르바네가 옵저버처럼 그의 주변을 맴도는 것이다. 그것도 꼭 그가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순간마다! 오베의 유일한 소원은 얼마 전에 병으로 죽은 부인 소냐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목을 매달아 죽으려고 밧줄을 걸때도, 배기가스로 질식사를 하려고 자동차에 가스를 틀어도, 파르바네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의 집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어떤 핑계로라도 그를 밖으로 끌어내고, 온갖 마을의 사건사고에 휘말리게 한다. 적어도 오베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책은 오베의 과거와 현재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오베가 어떻게 성장했고, 어째서 그렇게 무뚝뚝하고 까칠한 성격으로 자랐는지, 소냐를 만나 그의 삶에 어떤 의미가 생겼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의 운명이 바뀌었는지 보여준다. 흑백이었던 그의 삶에 소냐라는 물감이 들어와 모든 것을 총천연색으로 바꾸어버렸다.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한 남자인 오베.

 

  그리고 소냐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금. 작가는 오베의 결심과 그것을 무너뜨리는 일련의 사건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파르바네였다. 파르바네 때문인지 아니면 덕분인지, 오베의 자살 시도는 번번이 무산되고 그의 삶에는 여러 사람과 한 마리의 고양이가 끼어들어온다. 무뚝뚝하고 까칠하고 옹고집이지만, 오베는 그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그에게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외면하지 못한다. 마치 츤데레처럼, 오베는 툴툴거리면서도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도와준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고나 그들이 주고받는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대사가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웃기보다는 마음 한구석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고의 까칠남이라고 책 뒤표지에는 적혀있지만, 자기감정을 잘 표현 못하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 서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고집도 있고, 확고한 자기만의 세계도 있다. 그래서 남들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남들도 그를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아니,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그를 있는 그대로 본다면, 가까워지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치 파르바네와 옆집 사는 지미 그리고 아드리안처럼 말이다.

 

  오베라는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작가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베나 파르바네, 지미 그리고 아드리안 심지어 고양이마저 각자의 영역이 있었다. 각자 삶의 범위를 그리는 커다란 원이 있다면, 그 원은 겹치기도 하고 아주 살짝만 닿아있기도 했다. 그들은 그 범위 안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애정과 존경, 그리고 배려를 통해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 더불어 살아갔다.

 

  그들은 서로에게 최고의 이웃이었고 이웃사촌이었고 가족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남자들은 가끔 멋진 말을 내뱉는다. 특히 소냐의 아버지가 재혼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 대사가 참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평생 혼자 살았다고 한다.

 

  “난 여자가 있어. 지금 집에 없다뿐이지.”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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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02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문장 재밌네요.
나는 궁하지않다고 말하던 어떤분 기억나요. 허세가 귀여운ㅎㅎ

바다별 2015-07-02 11:54   좋아요 0 | URL
이 책에는 저런 재밌는 대사가 많이 나와요 ^^
 
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원제 - Moriarty, 2014

  작가 - 앤터니 호로비츠

 

 

 

 

 

  책이나 만화,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주인공들은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주인공들은 결말대로 살아갈까?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 시리즈를 쓰기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충 마무리 짓고자 뜬금없는 악당 대장 모리아티를 등장시켜서 홈즈와 같이 죽여 버린다. 아무리 최종 보스는 맨 마지막에 등장한다지만, 모리아티의 등장과 퇴장은 너무 갑작스럽지 않았을까?

 

  이 두 가지 발상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이 책 '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이다. 셜록 홈즈가 모리아티와 함께 죽지 않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면 모리아티는? 자칭 타칭 범죄의 천재라는 사람이 그렇게 허접하게 폭포에서 떨어져 죽었을까? 혹시 그 폭포 사건 뒤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범죄전문가와 천재 탐정이 사라진 다음, 대장을 잃은 범죄 조직들과 든든한 조력자를 잃은 경찰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작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점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두 대가가 사라진 다음의 런던을 그려냈다.

 

  라이헨바흐 폭포에서의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지 5일 후, 스위스에서 두 남자가 마주친다. 영국 경시청의 애설니 존스 경감과 미국 핑커턴 탐정소에서 온 프레더릭 체이스. 두 사람은 모리아티라고 추측되는 시체를 살피다가 암호 편지를 발견한다. 거기에는 새로운 범죄 조직이 영국에 자리잡으려한다는 사실이 적혀있었다. 바로 체이스가 미국에서부터 쫓아온 범죄자 클래런스 데버루의 조직이었다. 이에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데버루를 잡기로 한다. 그런데 반발도 만만치 않다.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고 여겨 조사를 받은 용의자들이 하나둘씩 처참하게 죽어나가고, 심지어 영국 경시청 건물에 폭탄 테러까지 일어나는데…….

 

  아쉽게도 이 이야기에서 셜록 홈즈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볼드모트와는 달리 이름을 말해도 되는 존재라서, 여러 번 언급은 된다. 대신 뒤에 짧은 단편이 하나 실렸는데, 거기서는 홈즈가 등장한다.

 

  그러면 사건은 누가 주도적으로 해결하는가? 바로 존스 경감이다. 그는 예전에 '네 사람의 서명 The Sign of Four, 1890' 사건에서 홈즈 덕분에 좌절을 겪은 경험이 있다. 이후 자신에게는 형사가 될 자격이 없다는 생각으로 엄청난 노력을 한다. 사실 홈즈를 존경해서 '좋아하는 오빠의 모든 것을 따라하겠다'는 마음인지, 아니면 '나에게 이런 굴욕을 준 건 네가 처음이야'라는 마음으로 눌러버리겠다는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그는 마치 홈즈처럼 생각하고 추리한다.

 

  체이스는 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왓슨이라고 볼 수 있다. 나중에 존스 경감도 체이스에게 같이 탐정 사무소를 하나 열자고 말하기도 한다. 홈즈와 왓슨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홈즈 시리즈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하고 기억할 사람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빨간 머리 연맹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범죄를 저지르려고 했던 존 클레이와 스위스에서 홈즈에게 편지를 전달했던 이름 모를 소년 등등. 한 번 나오고 말았던,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던 사람들이 얽히고설킨 관계를 형성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사건을 이끌어간다. 그 모든 작은 요소들이 교묘하게 연결되면서, 책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불법은 부지런하다는 말이 있다. 아마 악도 부지런한 모양이다. 홈즈가 3년 동안 유유자적하게 노는 동안, 범죄자들은 열심히 근면성실하게 일을 했다. 홈즈, 빨리 돌아오라고!

 

 

  덧붙이자면 주영미국 대사로 로버트 링컨이 등장한다. 바로 그 유명한 링컨 대통령의 큰아들이다. 연도를 확인해보니 헐! 그러니까 홈즈가 꼬꼬마 아가일 적에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거야? 뭔가 이상하다. 남북전쟁은 아주 아주 오래전의 일이고, 홈즈가 활약하던 때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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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시그널
윌리엄 유뱅크 감독, 로랜스 피시번 외 출연 / 노바미디어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원제 - The Signal , 2014

  감독 - 윌리엄 유뱅크

  출연 - 브렌튼 스웨이츠, 로렌스 피쉬번, 올리비아 쿡, 뷰 크냅

 

 

 

 

 

 

  포스터에 낚인 영화들이 몇 있다. 얼마 전에 리뷰를 올린 ‘야반소두 Midnight Hair, 2014’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런 편이었다. 방역복인지 우주복인지 입은 사람들이 한 줄로 서있는 모습은 긴박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아니면 복제 인간이거나. 그런데 영화는 음, 방역복 입은 사람들이 나오긴 한다. 아주 떼로 나오고 줄도 서 있긴 하다. 아! 이 포스터는 과대광고를 하지 않았구나. 오해한 내 잘못인가보다.

 

  닉, 조나 그리고 헤일리는 전설적인 해커 노매드(Nomad)의 뒤를 쫓다가, 어느 건물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닉은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 와있음을 알게 된다. 헤일리는 혼수상태였고, 닉과는 환풍구를 통해서만 대화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곳의 책임자 데이먼(Damon)은 닉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마치 침팬지 지능실험을 하는 것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탈출 시도가 무산으로 끝난 어느 날, 닉은 자신의 다리가 기계 같은 것으로 대체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공포에 질린 닉은 겨우 정신을 차린 헤일리를 데리고 시설에서 탈출한다. 그런데 바깥에서 만난 사람들도 어딘지 모르게 정상이 아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영화를 보면서 좀 갑갑하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부분에서는 ‘헐?’하면서 놀랐다. ‘이게 끝이야?’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그들의 정체가 뭐야?’라는 의문도 들었다. 영화는 그들이 지금 처한 상황과 환상인지 아니면 과거 회상인지 모를 장면들을 교차해서 보여주곤 한다. 그것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슬로우 모션으로. 영화는 슬로우 모션 장면을 적절하게 사용한다. 그걸로 긴장감을 완화시키려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는 언제나 미화된다는 걸 말하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마지막 부분을 위해 영화는 전반부를 그렇게 지루하게 만든 것 같다. 그런데 음, 앞부분이 너무 지루해서 딴 짓하다가 마지막이 무얼 말하는지 이해를 잘 못했다. 그래서 다시 봐야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앞부분이 더 재미있어지는 건 아니었다.

 

  전반부에 사건사고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해커를 쫓고, 시설에 갇히고, 검사를 받고, 탈출하려다가 잡히고, 친구가 있었는데 원래 없었다는 말도 듣고, 주인공이 겪은 일은 많았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진행에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격수들이 노리고 있어도, 추격전이 벌어져도 전혀 빠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혹시 느리면서 몽환적인 배경음의 영향이었을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느리다는 인상을 줬다. 그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다 환상 같았다. 설마 감독의 노림수였을까?

 

  결말을 보고는 잠시 멍했다. 그러니까 이건 뭐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문득 떠오르는 다른 영화들이 있었다. 아, 제목을 적었다가 스포일러가 될까봐 지웠다.

 

  인간의 의지와 외계인 기술의 완벽한 융합이라는 데이먼의 대사가 참 비정했다. 이 모든 것은 그것을 위해서였다. 에바와 싱크로가 잘 되는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아들마저 희생시키려던 겐도 박사를 보는 것 같았다. 도대체 그는 인간을 뭐로 본 걸까? 도구? 지능이 좀 높은 영장류?

 

  뒷맛이 영 좋지 않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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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구해야 해 별숲 동화 마을 10
하은경 지음, 홍선주 그림 / 별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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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하은경

  그림 - 홍선주

 

 

 

 

  금동이는 배오개 시장에서 목공일을 하는 아버지 그리고 몸이 약한 어머니와 살고 있다. 작년에 고리대금업자인 황 부자에게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해 독촉 당하느라 아버지는 술만 늘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황부자네 집에 큰 불이 난다. 그리고 불이 나기 바로 전에 술김에 황 부자에게 불만을 토하던 아버지가 방화범으로 잡혀간다. 금동이는 자신이 직접 방화범을 잡겠다고 다짐한다. 그를 돕겠다고 나선 사람은 백정의 딸 선이뿐. 둘은 현장검증, 탐문수사, 미행, 엿듣기 등을 하면서 단서를 모은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사건에는 여러 사람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둘. 과연 농민의 아들과 백정의 딸이 양반 집안이 얽혀있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의적 보라매의 정체는 누굴까?

 

  아버지를 구하겠다고 나선 금동이 앞에 펼쳐진 어른들의 세상은 참으로 추악했다. 고리대금업으로 농민들을 착취하는 부자, 돈을 주지 않으면 아버지의 면회도 시켜주지 않는 부패한 관리들, 투전에 빠진 타락한 면문가의 도령, 술에 찌들어 사는 서당 훈장까지. 소년이 가질 수 없는 권력이나 재력을 조금이라도 가진 자들은, 그것조차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다. 심지어 을쇠처럼 그 재력과 권력의 부스러기라도 맛보기 위해 잘난 척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자들이 파놓은 함정에서 아무 힘없는 소년이 아버지를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소년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돌봐주려고 한 사람은, 평소에 천시 받는 백정 봉춘 아저씨나 그의 딸인 선이 같은 힘없는 자들이었다. 문득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고자 힘을 모은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다리를 끊거나 외국으로 망명을 시도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묵묵히 위기를 이기고자 전쟁에 뛰어들기도 하고 갖고 있는 패물을 팔기도 했다. 이번 이야기에서도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과 선량한 이웃들뿐이었다. 선량하지 않은, 을쇠같은 이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금동이가 아버지의 무죄를 밝힐 수 있었던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고을의 수령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나보다. 어떻게 보면 증인의 증언이라는 게 다소 빈약해보였기 때문이다. 보라매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금동이 마저 죽임을 당하거나 누명을 쓸 뻔 했다.

 

  책은 어린 금동이와 선이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부패한 사회상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초반부터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자의 횡포, 중반을 넘어서면서 보여주는 성균관생도의 타락, 뇌물을 요구하는 포졸의 뻔뻔함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밝혀지는 신분제의 맹점과 물질 만능주의까지, 작가는 조선시대를 보여주면서 요즘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책을 보면서 요즘 광고를 많이 하고 있는 대부업체라든지 사학 비리, XXX리스트 같은 것들이 자꾸 떠올랐다.

 

  그런 와중에도 금동이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의적 보라매라 의심이 가는 사람을 향해 활을 겨누는 걸 미루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은인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인데! 보라매가 아니었으면 진범에게 꼼짝없이 죽었을 텐데도 소년은 활을 겨눈다. 의적이라고 해도, 도둑은 도둑이라는 논리였다.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왜 작가가 그 대목을 넣었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그러다 깨달았다. 이 책은 어린이용 동화였다. 그렇기에 금동이는 불의에 굴복하지 않아야 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믿어야 했다. 비록 나중에 커서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런 비뚤어진 세상을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에 맞서서 바르게 바꾸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래서 작가는 금동이에게 그런 행동을 하도록 설정한 것 같다. 그는 양반에 맞서 아버지의 누명을 풀겠다고 나섰던 소년이니 말이다.

 

  어린 소년이 주인공인 추리 동화지만, 달리 보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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