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원제 - Effroyables Jardins, 2001

  작가 - 미셸 깽

 

 

 

 

  마지막 장면을 덮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이 책은 가끔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게 한다. 처음 읽을 때는 펑펑 울었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코끝이 찡해오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소년은 자신의 가족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가 왜 걸핏하면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거리로 나가는지 모르겠다. 어린 그의 마음속에 아버지는 창피한 존재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돌아오던 어느 저녁, 소년은 삼촌에게서 2차 대전 때 일어났던 어떤 사건에 대해 듣게 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소년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왜 아버지가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하는지, 삼촌 부부가 행복해하면서도 한편으로 괴로워하는지 알게 된다.

 

  2차 대전 당시, 소년의 아버지와 삼촌은 레지스탕스였다.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 치하의 비시 정부 아래에서 두 사람은 변압기를 폭파하라는 임무를 맡는다. 성공리에 폭파 임무를 완수한 두 사람은 다음 날, 독일군에게 체포당한다. 그 당시, 프랑스 비시 정부는 법률 하나를 통과시키는데, 범인을 잡지 못하면 인질을 대신 처형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범인이 자수하지 않으면 대신 다른 사람들을 죽여 본보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사건을 일으킨 진범을 인질로 잡아놓고 범인보고 자수하라고 하다니……. 무고한 다른 두 명의 인질과 같이 잡힌 두 사람은 고민한다. 자수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두 사람마저 희생시키는가.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진범이 자수한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선택을 한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갈림길에서 고민한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삶이란 리셋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나중에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소년의 아버지와 삼촌은 순수하게 나라를 구하고 침략자에게 저항하겠다는 생각으로 폭파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 결과 무고한 다른 두 사람마저 인질이 되어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다. 두 사람은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니콜은 결단을 내려야했다. 죄가 없는 사람들을 죽게 해야 하나, 아니면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모두를 살려야 하나. 아무도 나서지 않는데 굳이 자기가 나서서 총대를 멜 필요가 있을까?

 

  두 사람을 인질로 밀고한 사람은, 자기가 응원하는 축구팀을 위해 상대팀의 주력 선수였던 둘을 신고한다. 같은 프랑스 사람끼리! 단지 자기 팀을 이긴 상대팀 선수라는 이유로!

 

  여러 사람의 선택이 맞물려지면서 소년의 아버지가 왜 어릿광대 복장을 하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뜻을 이어받아 성인이 된 소년이 광대 복장을 하고 남긴 편지를 읽을 때면, 눈가가 촉촉해진다.

 

  누구는 죄책감을 느끼고 그 빚을 갚으려고 평생을 바치고,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평안을 위해 모든 것을 외면하고 회피한다. 인간이란 얼마나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인 걸까? 그리고 얼마나 불합리하면서 이성적인 걸까? 모순적인 인간이 만들어낸 전쟁은 또 얼마나 잔인하고 비극적인 걸까? 그러면서 곳곳에 처절할 정도로 아픈 희극이 숨어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면서 서로에게 남은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 역시 인간이었다.

 

  그러기에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건 집착하자는 것이 아니다. 거짓을 제거하고 진실을 남기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상처는 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또한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어떻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 p.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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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김민석 감독, 강동원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감독 - 김민석

  출연 - 강동원 , 고수 , 정은채 , 윤다경

 

 

 

 

  두 사람이 있다.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자 강동원. 폭력적인 아버지를 자신의 능력으로 죽게 하고, 이에 절망한 나머지 자신을 죽이려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 홀로 살아왔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때문인지, 그는 남을 믿지 못하고 세상을 미워하고 동시에 조롱하면서 능력을 이용해 호화스러운 생활을 해왔다. 이제 그의 능력은 엄청나게 발전하여 눈을 직접 마주치지 않고도 어느 일정 반경 안에 있는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또 한 명은 천애고아인 고수. 그는 어떤 부상에서도 죽지 않는 괴물 같은 회복력을 가졌다. 또한 강동원의 능력에 당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너무도 착하고 올곧아서 어떻게 보면 바보라고 여겨질 정도이다. 남을 의심할 줄 모르고, 무척이나 낙천적이다.

 

  능력을 이용해 그 누구의 눈에 띄지 않고 전당포에서 돈을 가져가던 강동원. 그런데 뜻밖의 변수가 있었으니, 하필이면 고수와 맞닥뜨린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사람의 등장에 강동원은 당황한다. 그리고 자신을 막으려는 고수를 저지하려다가 그만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자신의 눈앞에서 전당포 사장이 죽는 것을 보게 된 고수. 그는 강동원을 잡아 사장의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하는데…….

 

  이후 내용은 고수가 두 친구의 도움으로 강동원을 쫓는 것으로 채워진다. 물론 그냥 호락호락 당할 강동원이 아니다. 그는 주위의 사람들을 조종해 고수를 압박해간다. 너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고. 너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이라고. 급기야 고수는 누명을 쓰고 경찰의 수배까지 받게 된다.

 

  영화의 묘미는 아마 아무런 관련 없는 주위 사람들을 조종해 고수를 제거하려는 강동원의 능력 사용과 어떻게 그 난관을 고수가 극복하는 가였다. 혹시 조종당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과연 강동원이 잡힐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잡혀도 사람들을 이용해서 탈출하는 건 쉬운 일이니까 말이다. 너무도 착해서 바보같이 보이는 고수가 영악하고 머리 좋아 보이는 강동원을 잡을 수 있는지의 여부도 궁금했다.

 

  두 사람의 싸움은 처절했다. 특히 고수의 입장에서 보면, 굳이 저래야했을까 의아했을 정도였다. 사장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고 해도, 그와 사장은 몇 번 보지도 않았고 별다른 정이라든지 의리를 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장이 그에게 살갑게 대하거나 특별히 잘 대해준 것 같지도 않았다. 사장의 딸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왜 그렇게 그에게 맞서서 싸우려고 하는 걸까?

 

  아! 그래서 고수의 성격 설정이 그런 거였나 보다! 바보라고 여겨질 정도로 착하고 남을 의심할 줄 모르고. 그렇기에 그 짧은 기간에 말 좀 몇 마디 좋게 해주고, 허울뿐이지만 '대리'라는 직함을 붙여준 것만으로 은혜를 입었다며 복수해야겠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어떻게 보면 딱 호구라고 여겨질 정도의 성격이지만, 영화에서는 그렇기에 복수를 하겠다고 나설 개연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고수의 절친은 한국인이 아닌, 무시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로 설정되어야했고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음,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확 바꾸어놓을 장면이었다. 그 전까지는 처절하고 암울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면, 마지막 장면은 할리우드 히어로 물 같은 느낌이었다. 좋게 보면 평생을 무시당하던 그가 사람들의 열광과 떠받듦을 받고 살아가겠구나하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그 성격 때문에 사람들에게 또 이용만 당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찌되었건 꽃미남 두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 눈이 호강하는 영화였다. 강동원이야 그 미모를 알고 있었지만, 고수가 그렇게 잘 생겼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 하나. 두 사람의 최후의 대결이 일어난 시간은 낮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밤이 될 때까지 아무도 사건 현장을 찾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 난리를 피우면서 도심을 쏘다녔는데 말이다.

 

 

  아! 고수의 외국인 친구 중의 한 사람으로 나온 배우가 얼마 전에 물의를 일으켰던 '에네스 카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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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제임스 건 감독, 조 샐다나 외 출연 / 월트디즈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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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제 - Guardians of the Galaxy , 2014

  감독 - 제임스 건

  출연 - 크리스 프랫, 조 샐다나, 데이브 바티스타, 빈 디젤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신 날, 외계인에게 납치당한 피터 퀼. 이후 자신을 ‘스타 로드’라고 칭하며 우주를 떠도는 도둑으로 성장한다. 뜻하지 않게 우주의 최대 악당 로난이 원하는 것을 갖게 된다. 그리고 감옥에서 만난 엄청난 거구의 드랙스,  최고의 암살자이지만 악당의 반대파로 돌아선 가모라, 나무 형태의 그루트 그리고 너구리 로켓과 함께 로난에 대항하기로 결심한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음, 주인공이 루크라면, 로난은 다스 베이더이고, 가모라는 레아 공주, 그루트는 추바카, 로켓은 한 솔로, 드랙스는 음……. 물론 가모라와 피터는 절대로 혈연관계가 아니다. 그리고 둘 다 출생의 비밀이 있긴 하지만, 루크에 비하면 피터는 더 야생적이다.

 

  외계인에게 납치당한 지구 소년이 비뚤어지지도 않고,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있음에도 생각도 하지 않는 걸 보면, 우주 도둑 생활이 적성에 맞는 모양이다. 아니면 엄마가 없는 지구에 더 이상 미련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유품인 카세트테이프를 애지중지하는 걸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것 같다. 지구에 돌아가기엔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하고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결말 부분에서 우주 최대 악당이라는 로난을 물리치는 장면에서는 좀 웃음이 나왔다. 사랑, 우정, 용기, 의리 같은 것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건지, 아니면 뭐니 뭐니 해도 제일은 아이템 빨이라는 걸 말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이템 빨이라는 것에 한 표 주겠다. 그런 힘을 갖고 있으니 모두가 다 갖고 싶어 하는 것이겠지.

 

  내용이나 전개는 무난했다. 적절하게 웃겼고, 적당할 때 액션 씬이 등장했으며, 튀지 않게 흘러갔다. 볼 때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다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었다. 음, 굳이 고르자면 맨 나중에 화분에서 춤추는 어린 그루트의 귀여운 모습 정도?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미국 드라마 ‘파이어 플라이 Firefly, 2002’가 떠올랐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비슷한 내용도 없었는데……. 주인공의 직업 때문인가? 아니면 우주를 떠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사건을 겪기 때문인가? 잘 모르겠다.

 

  피터가 20년이 넘게 들은 카세트테이프가 늘어나지도 않고 잘 재생이 되는 걸 보면서 너무 부러웠다. 무슨 장치를 쓰기에 음질이 저리도 좋을까? 저 기술만 있으면 내가 애지중지하던 카세트테이프들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 노래 하나를 녹음하려고 애쓰던 기억도 나고, 조카들이 말 처음 배울 때 옹알옹알 대던 것도 떠오른다. 나중에 잘 보관했다가 시집장가가면 주려고 했는데, 테이프가 늘어나서 버렸던 안타까운 기억이…….

 

  영화를 다 본 후, 배우 목록을 보다가 ‘헐’하고 놀랐다. 영화 ‘호빗 The Hobbit,2012’ 시리즈와 미국 드라마 ‘푸싱 데이지스 Pushing Daisies, 2007’의 잘생긴 리 페이스와 영국 드라마 ‘닥터 후 Doctor Who, 2010’와 영화 ‘오큘러스 Oculus, 2013’의 예쁜 카렌 길리언도 등장했다는데 왜 난 몰랐지? 두 사람이 맡은 배역 이름을 알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분장을 너무도 철저하게 해놔서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다. 이름을 알고 보니 어쩐지 목소리가 비슷하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에 대한 내 별점은 본래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분장하고 열연한 두 배우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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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 블랙 로맨스 클럽
멜리사 젠슨 지음, 진희경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원제 - Falling in Love with English Boys, 2011

   작가 - 멜리사 젠슨

 

 

 

 

 

  원제는 그렇지 않지만, 한국에서 붙인 제목을 보면 이 소설이 어떤 성격인지 알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은 영국의 소설가이고, 블로그는 20세기에 발전해온 사이버 개인 공간이다. 흐음, 그러면 21세기에 사는 소녀가 제인 오스틴을 꿈꾸며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내용일까? 아쉽게도 내 예상은 맞지 않았다.

 

  이 책은 영국에 잠시 오개 된 16살 된 미국 소녀 캐서린이 미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영국의 문화에 익숙해가면서, 엄마의 일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된 윌과의 콩닥거리는 썸을 올린 블로그 글 모음이다. 미국에 남아있는 친구들과 메일과 댓글로 소통하면서, 그녀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지레짐작으로 실연의 아픔을 겪기도 하고, 오해가 밝혀지면서 해피해피한 나날을 보낸다. 그런 그녀의 솔직하고 십 대 특유의 튀는 감성이 블로그 구절구절마다 잘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캐서린의 어머니가 연구하는 19세기에 살았던 캐서린 퍼시벌이라는 소녀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블로그와 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시대에 살았던 두 명의 십대 소녀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캐서린 퍼시벌의 이야기를 보면, 너무도 자연스레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1813’이 떠오른다. 자신의 인연이라 믿었던 남자가 알고 보니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는 실속 없는 사람이었다거나, 집안에서 정해준 남자와 결혼해야하는 위기에 처한다거나, 언제나 자신에게 태클만 거는 얄미운 사람이라 생각했던 남자가 사실 자신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성격이 완전 다른 두 소녀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솔직하고 직설적이기까지 하면서도 윌 앞에서는 온갖 내숭을 떠는 21세기 캐서린. 사랑받고 싶고,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어떻게 보면 꿈꾸는 여린 소녀인 19세기 캐서린. 하지만 두 소녀 다 자신의 사랑 앞에서는 물러서지 않고 당당했다.

 

  특히 19세기 캐서린은 원하지 않는 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난생처음으로 말대답을 한다. 사실 아버지가 선택한 남편감은 으……. 물론 19세기 캐서린의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간 일기에서 접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영 아니었다. 작위가 있고 돈이 있고 성이 있다지만, 인품이라든지 성격이 완전 꽝이다. 어떻게 18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를 어떻게 해볼 생각을 했는지, 파렴치한이다. 결혼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 당시는 그 나이 대에 거의 다 했으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어린 여자아이를 희롱하려고 하다니. 죽일 놈! 게다가 그 아빠라는 사람도 상당히 이상하다. 그가 자기 딸에게 그런 짓을 하려는 걸 몰랐을까? 그 야심한 밤에 둘만 남겨두고 자리를 피하다니! 그래서 자기 딸이 무슨 일을 당하면, 그걸 빌미로 결혼을 강요하려는 거였을까? 아무리 딸에게 관심도 애정도 없다지만, 진짜 너무했다. 그런 주제에 그 결혼에 대해 딸과 부인이 반대하자 집을 나가버린다. 진짜 옹졸하고 편협하고 쪼잔하다.

 

  21세기 캐서린 역시 아버지와는 인연이 별로 없다. 이혼 이후, 그는 아버지로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던 것 같다. 딸과 같이 보내기로 한 날에 나타나지 않거나, 딸에게 특별한 날을 빼먹기 일쑤였다. 그래놓고 나중에 돈으로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에는 재혼 준비로 딸의 생일도 그냥 지나가버린다.

 

  아버지에게서 애정을 받지 못한 두 캐서린은 대신에 막강한 아군으로 어머니를 갖고 있다. 19세기 캐서린의 엄마는 딸이 원하지 않는 결혼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며, 남편과의 별거도 불사한다. 21세기 캐서린의 엄마 역시 자기 일 때문에 바쁘지만, 딸과의 대화 시간은 꼭 가지려고 노력한다. 가능하면 딸을 데리고 다니면서 낯선 타국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한다. 물론 딸의 연애를 은밀히 도와주기도 한다. 두 어머니 다 성격이 화끈하면서 다정했다.

 

  두 캐서린의 성격이 확연히 차이가 나서, 블로그와 일기가 번갈아 나오지만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다. 성별과 이름 빼고 모든 것이 다른 두 소녀. 하지만 한 가지는 같았다.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고, 진짜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래,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자. 우주가 도와준다고 나랏님도 말씀하셨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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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힘든 말
마스다 미리 지음, 이영미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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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제 - 言えないコトバ, 2012

  저자 - 마스다 미리

 

 

 

 

  하기 힘든 말이라는 제목에 이런저런 상상을 해봤다. 언제나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일까 추측하는 재미가 있으니까 말이다. 내 예상과 책의 내용이 맞으면 맞는 즐거움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시각을 배우는 기회로 여기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름 제목에 충실한 내용이지만, 한편으로는 내 예상과 좀 달랐다.

 

  내가 생각한 하기 힘든 말은 마음에 묻어두었던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서 저자가 그 특유의 감성과 표현법으로 어떻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놓을지 기대도 되었다. 그런데 음, 책은 내 예상과는 좀 다른 내용이었다. 하지만 하기 힘든 말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회가 변화하면서 예전에는 잘 썼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말들, 세대 차이가 느껴질 법한 말들, 그리고 지금은 다른 표현으로 대체된 말들에 대해 저자는 얘기하고 있었다. 어감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예를 들면 예전에는 다방이나 찻집이었지만 지금은 카페라고 한다. 다방이라고 하면 완전 아저씨 느낌이고, 카페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밝고 세련된 느낌이다.

 

  저자는 일상생활에서 그런 말들에 대해 느낀 것들을 그리고 있었다. 왜 그 단어를 사용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시대에 뒤쳐진 것은 아닌지, 한 번 시험 삼아 사용하려 했지만 입에 붙지 않아 어색해서 결국 못하고 말았다는 경험담이 짧은 글과 만화로 펼쳐져있다.

 

  크게 활짝 웃는 부분은 없지만 소소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대목은 있었다. 그게 이 작가의 특징인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 사람, 너무 소심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너무 의식한 나머지, 하고 싶은 말이나 쓰고 싶은 표현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지금 이 말을 해도 될까 안 될까 생각만 하다가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새로운 표현을 알았다고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그런 신조어를 써도 되는지 고민한다. 왜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지, 그러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나름 유명인이기 때문일까?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어떤 후폭풍이 올지 몰라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저자 너무 마음이 여리고 소심해 보인다. 어떤 부분에서는 '이 정도까지면……. 좀 너무 심한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도 소심하고 내향적이라 사람들과 어울릴 때 이런저런 고민을 좀 하지만, 이 책의 저자만큼은 아니었다. 나보다 더 심한 사람이 있다니. 어쩐지 신세계를 발견한 기분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단어 하나에도 관심을 갖고 깊은 성찰을 하는 모습은, 마음에 들었다. 아무 단어나 함부로 쓰지 않고 어원이라든지 바른 사용법을 정확히 알아 쓰려는 것이니까. 유행한다고 제대로 의미도 모르면서 남발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자세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태도로 단어를 익혀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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