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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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박범신

 

 

 

 

 

  책을 읽고 며칠 동안 텅 빈 한글창만 노려보았다.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 얘기와 저 얘기는 모순되지 않을까, 그 부분을 넣으면 너무 생뚱맞지 않을까 등등. 이렇게 고민을 하면서 감상문을 쓴 건 오랜만이었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세 개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람은 작가인 ‘나’이다. 작가로 살아온 자신의 삶과 글에 대한 철학 그리고 우연히 연락이 닿은 대학 시절 제자인 ‘ㄱ’의 얘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녀는 학교 다닐 때 꽤나 인상 깊은 단편 소설을 썼지만, 이후 활동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서 남들과 다른 세 사람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책으로 써보리라 생각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혼자 사니 참 좋아’로, 자신이 살던 집 우물에서 시체가 발견되는 바람에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 ‘ㄱ’의 과거 회상과 현재를 다루고 있다. 갑작스런 사고로 오빠와 부모님을 연달아 잃게 된 그녀. ‘남자 1’과 결혼을 했지만, 사랑이라 생각했던 그의 모든 행동들이 집착과 소유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고향집으로 돌아와 혼자 살던 중, 우연히 갈 곳이 없던 ‘ㄴ’과 ‘ㄷ’에게 잘 곳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둘이 사니 더 좋아’는 ‘ㄴ’의 이야기이다. 앞에서 시체로 발견된 그가 자신의 과거를 얘기한다.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그는 아버지와 형을 잃고, 어머니마저 실어증에 걸려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이후 폭도 집안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공장에서 일하던 그의 유일한 위로는 기타였다. 하지만 새로운 의미가 되었던 밴드에서 불화가 생겨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중, ‘ㄱ’을 만나게 되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셋이 사니 진짜 좋아’는 예상대로 ‘ㄷ’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ㄱ’에게 자신의 과거를 얘기해주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래서 ‘ㄱ’의 회상도 같이 들어있다. 탈북자였던 ‘ㄷ’은 다행히 조선족의 집에서 머물게 되지만, 그 대가로 그의 성폭력을 견뎌야했다. 이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온 그녀는 길을 떠돌다가 ‘ㄱ’과 ‘ㄴ’이 살고 있는 집으로 오게 된다. ‘ㄴ’이 죽은 후, 그곳을 떠나 바다가 보이는 동네에서 일하고 있다.

 

  이후 ‘ㄱ’은 소설을 탈고하지만 스승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언젠가는 문장으로 그를 이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인터넷을 보니, 출판사에서 하는 책 광고가 아주 마음에 안 들었다.

 

   ‘『은교』에서 이루지 못한 새로운 사랑 이야기! 불가능한 가능한, 사랑. 한 남자와 두 여자, 정확히는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 이 셋이 서로를 사랑한다. 도대체 이런 사랑도 가능한 것일까?’

 

  광고만 보면 마치 남자 하나에 두 여자가 나오는 그런 AV 비디오가 연상된다. 어쩌면 내가 음란 마귀에 씌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책이 사랑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닌데, 왜 그 부분만 부각시켰는지 알 수가 없다.

 

  세 사람은 각각 다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ㄱ’은 갑작스런 사고로 가족을 잃은 것도 모자라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환멸을 느끼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녀는 자기 마음에 있는 가시 때문에 다른 사람을 포용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그 가시에 찔리는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연이어 나타난 ‘ㄴ’과 ‘ㄷ’으로 인해, 혼자 사는 것도 좋지만 둘, 셋이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그러나 그녀는 두 사람에게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묻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 그들을 받아들인다. ‘ㄴ’과 ‘ㄷ’ 역시 남들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아픈 기억이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좋아하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선택을 해야 하기도 하고,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했다. 그들 역시 다른 사람의 배경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보이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세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나누고 보듬어주며,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외설스러운 부분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작가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게 표현했다. 아, 이게 예술과 외설의 차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 작가가 사용한 어휘와 표현 때문에 그렇게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단어와 문장들은, 지금까지 내가 주로 읽었던 다른 작품들과 달리 함축적이고 비유적이었으며 은유적이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시를 읽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어쩐지 글을 읽어주는 화자가 여자라는 생각이 드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어투였다. 두 번째 이야기는 남자인 ‘ㄴ’이 들려주는 형식인데, 그 부분도 마찬가지로 여성스러웠다. 혹시 세 이야기 다 ‘ㄱ’이 화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뺀 나머지는 ‘ㄱ’이 쓴 소설이 아닐까하는 추측까지 하게했다. 그 정도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느낌이 전반적으로 잔잔하면서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슬아슬함도 느껴졌다. 셋 다 애정에 목마르고 뭔가 한두 개 잃어버린 사람들이었기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빈자리나 공허함을 채울 수는 있지만, 그게 100% 전부는 아니었다. 천국과 지옥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한다.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그 순간, 그들은 속으로 불안해했다. 언젠가는 이 편안함이 끝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ㄷ’이 가장 행복할 때 같이 죽어야한다고 울부짖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연장선으로 ‘ㄴ’은 그런 선택을 했던 걸지도…….

 

  편안한 울타리가 사라지고 나면,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울타리 밖으로 나가볼 것인가. 전자는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고, 후자는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었다. ‘ㄷ’은 전자의 길을 택했고, ‘ㄱ’은 후자를 택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들 셋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던 것일지 모르겠다. 그 기억을 추억으로 남기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어쩌면 세 사람의 사랑은 단순히 연인 같은 감정이 아니라,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고 어루만져주는 치유의 의미였던 것 같다. 작가의 표현대로 아픈 기억이 가시였다면, 셋이 나눈 사랑은 그 가시를 무디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더 이상 남을 아프게도 하지 않고, 자신을 찌르는 일이 없게 말이다.

 

  물론 완벽하게 다듬지 않아서 셋은 여전히 가시를 품 안에 가득 가지고 살아야한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덜 아플 것이다. 그들은 추억, 그러니까 숨구멍을 찾았기 때문이다.

 

  문득 왜 하필이면 셋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아무래도 삼각형이 사각형보다 굴리기 쉽기 때문일까? 넷이면 둘씩 짝을 이루어 분리될 수 있으니까? 아니면 삼위일체?

 

  하지만 난 책에 나온 세 사람처럼 사랑은 하지 못할 것 같다. 애인님은 나 혼자 독점하고 싶으니까. 작가는 ‘고귀한 소유의 적합성을 결혼이 비천한 지배에의 욕망으로 조금씩 바꾸어놓았다. p.53’고 했지만, 음란마귀에 쓰인 비천한 욕망덩어리가 나의 일부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게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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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30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다별 2015-04-30 12:21   좋아요 0 | URL
전 나이가 들어도 독점할래요 ㅜㅜ
 
선생님이 가르쳐 준 거짓말
제임스 W. 로웬 지음, 이현주 옮김 / 평민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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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Lies My Teacher Told Me: Everything Your American History Textbook Got Wrong

  저자 - 제임스 W. 로웬

 

 




 

  우연이라도 이 책을 제목을 보면 놀랄 것이다. 세상에,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다니!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해야 할 선생님이 진짜로? 물론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라 미국의 일이라 다행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계 제일이라는 미국에서도 그러는데 하물며…….’라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헐, 자기들 잘났다고 맨날 남의 나라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더니만, 뒤로는 이런 짓을 하고 있었군.’ 이런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휘리릭 대충 앞부분에 있는 조작된 역사에 관한 부분만 읽고 넘겼다. 거기가 제일 관심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예를 들면, 헬렌 켈러가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어떻게 살았는지 왜 위인전에서는 다루지 않는 건지, 민족 자결주의를 내세웠던 윌슨 대통령은 사실 지독한 인종차별 주의자였다는 사실 등등.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읽은 헬렌 켈러 위인전은 예전과 조금 달라졌다. 그 책이 재작년인가에 나왔는데, 지금까지 어디서도 보여주지 않던 그녀의 인생 후반기까지 다루고 있었다. 그녀는 여성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차별 정책에 반대하여 시위도 많이 하고 그랬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와서, 그런 특별한 몇몇 경우를 빼놓고는 이 책의 존재에 대해 거의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요즘 사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는 저번에 넘어갔던 뒷부분에 있는 얘기까지 꼼꼼하게 읽었다. 특히 ‘역사를 왜 이렇게 가르치는가?’ 와 ‘역사를 이렇게 가르친 결과는 무엇인가?’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역사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가 많은데, 그 중의 하나는 ‘교과서가 확실성의 수사학’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교과서란 검정을 받고, 외부의 압력을 받기 때문에 교사가 자유롭게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 공부란, 교사가 통제하는 정보의 전달에 국한된다고 말한다. ‘사적 대담에서는 생기발랄하고 생각이 넓고 많은 지식을 가진 교사가 수업시간에는 편협하고 단조롭고 엄격한 교사’로 변한다고 지적한다. 교과서의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해도, 어떻게 그들이 힘 있는 출판업자나 후원화된 저자의 기획물과 경쟁할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미국의 수업도 그렇지만, 한국의 역사 시간도 비슷할 것이다. 교과서에 반하는 것은 가르칠 수가 없다. 교과서는 가장 기본이 되는 지침서이다. 그래서 그것을 선정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또한 저자는 역사에 재미를 붙이는 방법으로, 학생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역사를 제시해보라고 제안한다. 그냥 활자로만 존재하는, 죽어있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과 가치관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 우리 역사 가운데서도 특히 근현대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우리 상황과 가장 가깝게 연결이 되어있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교과서를 제대로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과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학교와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서 살면 마음은 편할 것이다. 이것저것 골치 아프게 생각하거나 걱정할 거 없고, 모든 것은 잘 아는 위에서 알아 처리해줄 테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시키는 대로 했던 것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이후 삶은 머리가 아파진다. 반대 의사를 하게 되고 저항을 시작하면, 아마 살기 고달파질 것이다.

 

  어디서 읽은 것인지 확실히 기억은 안 나는데,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은 평안하다는, 그런 비슷한 뉘앙스의 구절이 생각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한다. 이왕이면 편안하게 별다른 고민 없이 살아가는 것도 좋고. 책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 이 책은 현재 절판되었고, 2010년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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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연인 1 - 제1회 퍼플로맨스 최우수상 수상작
임이슬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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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임이슬

 

 

 

 

  조선 광해군 때 UFO와 비슷한 것이 나타났었다는 기록을 처음 접한 것은 ‘UFO가 날고 트랜스젠더 닭이 울었사옵니다’라는 책에서였다. 그 전까지는 서양에만 UFO가 나타난 줄 알았는데, 조선 시대에도 나왔었다니 놀랍고 신기했었다. 이후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만화도 등장했고, 얼마 전에는 드라마로도 나왔다. 이 책 역시, 그 사건을 기본 설정으로 하여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거기에 ‘선녀와 나무꾼’ 설화를 덧붙이고 연쇄 살인까지 양념으로 가미했다.

 

  임해군과 관련이 있다는 죄목으로 강원도 양양으로 귀양을 온 정 휘지는 눈 내리는 겨울 산에서 선녀, 아니 한 여인을 만난다. 우주선 고장으로 원래 도착하려고 했던 미래의 지구가 아닌, 과거의 지구로 오게 된 유리아 미르. 하늘에서 이상한 것을 타고 내려온 그녀가 휘지의 눈에 선녀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주선을 고칠 때까지 휘지의 집에 머무르게 된 미르는 점차 그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한편 휘지 역시 그녀에게 끌리지만, 어차피 그녀는 돌아가야 할 사람이고 자신은 귀양 온 처지이기에 애써 그 마음을 억누르려 애쓴다.

 

  이런 두 남녀를 중심으로, 휘지를 짝사랑하는 안동부사의 딸 수연, 휘지와 우정을 나누는 그녀의 오빠인 수하, 새로 향교에 부임하여 미르를 마음에 둔 도명, 그리고 예전부터 수연을 좋아한 문혁까지 여러 청춘남녀가 등장하여 얽히고설킨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있지만 확신이 없어 사소한 것에 오해하고 싸우다가 결국 사랑을 확인하는 두 주인공, 그들을 애끓는 마음으로 바라만 보거나 용기를 내 고백하지만 결국 차이고 마는 비련의 조연이나 두 사람을 끝까지 괴롭히는 조연까지, 로맨스 소설의 전형적인 인물 구성이 적절하게 이루어져있었다.

 

  거기에 조선 시대의 풍습이나 절기마다 있는 행사들이 적절하게 가미되어,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었다. 어휘 역시 가능하면 현대적인 것보다는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들로 이루어져있었다. 물론 ‘아빠 미소’라든지 ‘찌질하다’같은 단어들이 중간에 있는 경우가 있지만, 자주 등장하는 게 아니라 한두 번 정도여서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이야기는 술술 쉽게 읽혔고, UFO가 나오는 장면도 그리 억지스럽지 않았다. 연쇄 살인과 반란의 연결이 자연스러웠고, 결말까지 가는 과정 역시 어디 하나 튀지 않았다. 꽤 재미있고 잘 짜인 구성이었다. 작년 말에 읽었던 네오픽션에서 나온 다른 로맨스 소설과 비교해보면, 이 책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여주인공인 미르의 갑작스런 변화였다. 처음 휘지를 만났을 때는 당돌하고 자기 할 말 다하면서 현대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그의 집에서 머무르면서는 약간 소심하고 수줍어하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100% 바뀐 건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처음과 달라진 그녀의 말투와 태도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생면부지 사람의 집에 얹혀산다는 상황이 그렇게 만든 걸까? 하긴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걸 거꾸로 하면 자기 집이 아닌 곳에서는 힘을 제대로 못쓴다는 뜻이겠지.

 

  아, 어쩌면 너무도 조선시대적인 미르의 말투는 그녀가 갖고 있는 번역기 탓인지도 모르겠다. 자동으로 말이 통하게 해주는 기계니까, 알아서 잘 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르의 태도는……. 어떻게 보면 여자와 남자의 차별에 의문을 품었던 수연의 말과 행동이 더 현대적인 여성으로 보일 정도였다. 나쁘게 보면 여주인공의 성격 변화가 너무 급작스러웠다는 것이고, 좋게 보면 그녀의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리라.

 

  개를 이용한 연쇄 살인은 어쩐지 코난 도일 경의 ‘바스커빌의 개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1902년’를 떠올리게 했다. 단지 커다란 개가 나와서가 아니라, 투견을 훈련시켜 사람을 물어죽이게 하고 그 지역의 전설이나 미신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미르를 곤경에 빠트리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녀가 나타난 이후로 마을에 변고가 생겼다고, 다들 아우성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와중에 자신을 변호하는 휘지를 보며, 미르의 짝사랑이 점점 더 깊어지는 계기도 되었다.

 

  전래 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보면, 나중에 선녀가 날개옷을 찾아 하늘로 돌아가 버린다. 이후 어떤 이야기에서는 나무꾼 혼자 지상에 남아 가족을 그리워하며 살았다고도 하고, 또 어디서는 나무꾼이 하늘로 그들을 찾아 가기도 한다. 또 다른 책을 보면 하늘에서 가족들과 잘 살던 나무꾼이 지상에 남아있는 노모를 보러왔다가 잘못해서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결국 선녀와 나무꾼의 사랑은 지상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나 보다. 아무래도 인간과 선녀는 많이 다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끼리끼리 살아야한다……아니, 이게 아니라 외계인인 미르와 인간인 휘지의 사랑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서로 자라온 시대가 다르고 생활 습관이나 풍습도 다르고, 외모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내부는 다를 테니까. 특히 미르는 거의 죽어가는 사람도 되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아, 그러면 휘지가 나이 들어 죽을 때마다 미르가 되살리는 건가?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럭저럭 두 사람이 비슷한 수명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400년 후에도 여전히 살고 있는 둘의 얘기가 후속편으로 이어지면 꽤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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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 제1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62
김진희 지음, 손지희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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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김진희

  그림 - 손지희

 

 

 

 

 

 

  막내 조카 어린이날 선물로 무엇을 고를까 하다가 집어든 책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동우는 이른바 학교 폭력 가해자이다. 특히 같은 반인 준희에게서 돈을 뺏기도 하고 물건은 가져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게 잘못된 일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다. 다른 날처럼 등굣길에 준희의 돈을 빼앗으러 뛰다가 트럭에 치인 동우. 저승사자를 따라 염라대왕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어럽쇼? 알고 보니 저승사자의 착오로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다시 지상으로 돌아가려면 저승 곳간에 있는 노잣돈을 내야하는데, 동우의 곳간은 텅텅 비어있었다. 결국 49일째 되는 날까지 갚기로 하고 노잣돈을 빌리기로 한다. 만약 갚지 못하면 그는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야 한다. 동우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노잣돈을 갚을 수 있을까?

 

  판타지 소설에서는 저승사자가 착오로 인간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면 보상으로 다른 차원에 환생하게 해주는데, 여기서는 돌려보내주는 대신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다시 살아 돌아온 동우는 노잣돈을 갚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한다. 그는 단순하게 그동안 빼앗은 돈을 돌려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아, 이 부분에서 한숨이 나왔다.

 

  이건 동우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었다. 진정한 사과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은 어른들의 문제였다. 일 때문에 바빠서 가정에 소홀하고 성적만 좋으면 다 좋다는 부모, 학교에서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좋다는 선생, 인성 교육보다는 높은 점수를 얻는 방법만 알려주는 교육 시스템 그리고 모든 문제는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사회 분위기.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바로 동우와 그 친구들이었다.

 

  어른들이 안 계시는 친구 집을 뒤져서 돈을 훔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들의 죄를 모면하려고 아무 관련 없는 아이 이름을 댄다거나, 자기들과 의견이 다르다고 폭력을 행사하고 급기야 가해자인 주제에 어른들 앞에서는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한다.

 

  그러던 동우가 달라졌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을 때 빚이 줄어드는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을 하게 된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면서, 그는 변하기 시작한다. '반성'이라는 것을 하고 다른 아이를 '배려'하기 시작하면서, 동우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처음에는 돈을 갚기 위해서였지만, 나중에는 진심으로 행동하게 된다.

 

  저승의 곳간과 노잣돈이라는, 설화를 이용해서 학교 폭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이야기였다. 우왕좌왕 갈팡질팡 어찌할 바 모르는 동우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공감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해 생각하고, 진짜 친구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난 막내 조카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학교에서 누가 괴롭히면 여기 나오는 준희처럼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어른들에게 말해. 그러라고 엄마아빠랑 고모랑 큰아빠랑 큰엄마랑 형아랑 누나가 있는 거니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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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연애 블루스
한상운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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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한상운

 

 

 

 

 

 

  한 청년이 있다. 이름은 ‘성욱’. 사법고시를 준비했으나 몇 번의 낙방 끝에 꿈을 접고, 그냥 그런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에게는 대학 동창이자 7년 째 사귀고 있는 동갑내기 여자 친구 ‘인영’이 있다. 하지만 성욱은 인영에게 차인다. 어떻게 잡아볼 새도 없이. 잠시 고민하던 그는 그렇게 이별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바로 그 날, 그의 앞에 시선을 잡아끄는 아가씨 ‘수정’이 나타난다. 척 보기에도 돈과 배경이 있어 보이는 남자에게 강제로 끌려갈 뻔한 그녀를 구한 성욱은 영웅이라도 된 기분을 느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있어 보이는 남자는 사채업계에서 큰 손이라 불리는 방 회장의 아들이었고, 수정은 그 남자의 약점을 빌미로 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엉겁결에 수정과 한패로 몰린 성욱. 거기다 해결사로 유명한 ‘일도’가 사건에 끼어들어 두 사람을 쫓으면서, 일은 점점 더 꼬여가기만 한다.

 

  유쾌한 글이었다. 얼떨결에 폭력배에게 쫓기게 된 한 청년의 고군분투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냥 고생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일을 겪으면서 전과 달리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며 성숙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도 보여준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여인과의 운명 같은 이끌림, 마약과 살인으로 점철된 조직의 비정함, 복수 등이 양념처럼 들어있었다. 그래서 첫 장을 펼치고 나서 마지막 장까지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쫓기는 성욱과 쫓는 일도의 거리가 좁혀지면 ‘어떡하나’하고 조바심을 냈고, 거리가 멀어지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수정의 비밀과 거짓말이 하나둘 밝혀질 때마다, 혹시 뭔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호구 같은 짓만 골라하는 성욱에게 ‘이 멍청아!’라고 화를 내기도 하고, 일도가 진상을 알아차리고 상욱을 도와주길 바라기도 했다.

 

  그런데 수정이 예쁘지 않았다면, 상욱이 그렇게 목숨 걸고 도와주려고 나섰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역시 여자는 예쁘고 볼 일인가보다.

 

  책을 읽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성욱에 대한 묘사에서 받은 인상은 30대 초반에서 중반이었다. 왜냐하면 몇 번 사법고시를 낙방했고, 출판사에서 몇 년 근무했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한두 번을 몇 번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3번은 되어야 몇 번이라는 말을 쓰니까, 그런 걸 감안해서 성욱의 나이를 그렇게 보았다.

 

  그런데 인영과 7년을 사귀었단다. 확실히 언제부터 사귀었는지 나오지는 않지만, 대학 시절인 것 같다. 인영은 대학을 다닐 때 사법고시를 합격했다고 나온다. 인영이 합격한 다음에 사귀자고 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 전부터 사귀었다고 생각하면……. 음, 나이대가 맞지 않는다. 3학년 때부터 사귀었다고 해도, 두 사람의 나이는 30이 되지 않는다.

 

  30살도 되기 전에, 열정도 없고 꿈도 없고 의욕도 없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는 남자라니……. 허황된 꿈을 가지고 늙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모든 것을 너무 일찍 포기하는 남자라면 차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도가 해결사 노릇을 하기 2년 전까지 경찰이었다고 나온다. 휴직계를 내고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 2년 전까지 경찰이던 사람을 어떻게 믿고 해결사 일을 맡기는 거지? 아무도 모른다고 나오는데, 진짜 모를 수 있나? 그냥 사무실에서 서류만 보던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뛴 것 같은데? 좀 이상했다.

 

  수정과 성욱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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