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을 위한 맨처음 한국사 1 - 선사 시대부터 삼국 통일까지 초등학생을 위한 맨처음 한국사 1
윤종배 지음, 이은홍 그림, 전국역사교사모임 원작 / 휴먼어린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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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선사 시대부터 삼국 통일까지

  원작 - 전국역사교사모임

  작가 - 윤종배

  그림 - 이은홍

 

 

 

 

 

 

  역사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막내 조카를 위해 고른 책이다. 하긴 역사는 관심이 없으면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 과목 중의 하나이다. 아무래도 연도별 왕의 업적 위주로 배워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역사라는 게 꼭 왕들이 한 일을 외우는 것만이 아닌데 말이다. 거기다 예전부터 여러 나라가 생겼다가 망해서 합쳤다가 또 새로 생겼다가 망했다가를 반복하는데, 그걸 다 외워야하는 걸 생각하니 별로 재미없다고 말하는 조카의 의견에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중국이나 유럽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이 책은 만화로, 삼국통일 전까지의 한국 역사를 다루고 있다. 통일된 하나의 나라가 나오기 전, 조카의 표현을 빌면 ‘합쳤다가 해체하기를 반복한 시절’을 다루고 있다. 무슨 아이돌 그룹도 아니고 해체라니……. 요즘 초등학생의 어휘 선택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다.

 

  한솔이라는 아이를 중심으로, 가족이나 학교 친구들과 함께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 씹고 뜯고 맛보고……까지는 아니지만, 보고 듣고 경험하고 공부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학교 친구들과 발표를 한다거나 가족끼리 견학을 가는 등등의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서 역사에 관심이 없던 한솔이 점차 흥미를 갖게 된다.

 

  만화지만 여러 가지 사진을 첨부하고, 과거 인물들이 한솔에게 나타나 그 당시 상황을 얘기해주는 부분은 현장감을 높여주었다.

 

  인상적인 부분은 단군 신화에 대한 곳이었다. 왼쪽에서는 학생이 자신이 아는 신화에 대한 얘기를 하고, 오른쪽에는 그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신화가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다. 신화를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근거가 있는 이야기로 인정하려는 모습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왜 역사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솔에게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얘기하는 장면도 마음에 들었다. 역사는 일기 같아서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을 꿈꾸는 것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일기를 성심성의껏 쓰는 경우에나 해당되지, 숙제로 겨우겨우 해가는 아이들에게는 별로 감흥이 없을 것 같다. 쓰기 싫은 일기와 역사가 같다고 하면, 더 싫어지지 않을까?

 

  각 장이 시작되기 전에 ‘역사 연대표’를 보여주면서 어느 시대에 해당하는 것인지 미리 확인을 시켜준다. 그리고 한 장이 끝나면, ‘역사 돋보기’라고 해서 앞에서 다룬 시대에서 특이한 점이나 한번쯤 짚고 넘어갈 부분을 사진과 함께 얘기하고 있다.

 

  대사가 좀 많은 감도 없지 않지만, 역사를 얘기하는데 이 정도야 뭐. 처음에는 그림이 너무 단순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읽다보니까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자세하고 화려하면 도리어 집중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화보집을 보면, 사진에 시선이 가서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그나저나 조카에게 읽히려고 했는데, 고모와 할머니가 더 재미있게 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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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아, 자니? (양장) 단짝 친구 오리와 곰 시리즈 1
조리 존 글, 벤지 데이비스 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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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조리 존

  그림 - 벤지 데이비스

 

 

 

 

 

  눈 밑에 다크 서클까지는 아니지만, 보자마자 '얘 피곤하구나.'라는 느낌이 팍팍 드는 곰 한 마리가 있다. 피로회복제라도 먹으라고 손에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피곤함이 느껴지는 곰이었다. 이제 그는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자려고 한다.

 

  바다 속을 누비는 활어처럼 힘차게 펄떡이고 생생한 오리가 한 마리 있다. 낮에 낮잠을 푹 잤는지 아니면 레드불이나 핫식스를 마셨는지, 밤이 되어도 잠이 오지 않아서 고민이다. 결국 오리는 옆집에 사는 곰과 놀기로 마음을 먹고, 그를 찾아가는데…….

 

 


 

  처음 볼 때는 곰이 참 착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니, 착한 것보다는 배려심이 철철 넘치는 것인지 아니면 오리를 짝사랑해서 잘 보이고 싶어 싫은 소리를 못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잠들만하면 놀자고 찾아오고 심지어 가택침입까지 하는 오리에게 짜증도 안 내고 좋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왜 곰처럼 미련하다는 말이 나왔는지 알 것도 같았다. 아, 물론 마지막 부분에 곰도 못 참겠는지 화를 버럭 내긴 한다.

 

  그래도 착하다. 나 같으면 그 전에 잠자는 걸 방해한다고 난리를 피웠을 텐데……. 내 조카들은 고모가 잘 때 방해하면 고모가 불을 뿜는 괴수로 변한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터득했기에, 절대로 방해하지 않는다. 역시 초장에 길을 잘 들여야 나중이 편한 법이다. 음, 곰은 설마 오리에게 호구였던 걸까?



 

  그런데 두 번째 읽을 때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처음 느낀 것처럼, 그냥 막연하게 곰처럼 착하게 친구를 배려하는 사람이 되자고 말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두 친구를 비교하면서, 이웃과 친구에 대한 예의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오리와 곰, 두 가지 등장인물에 자신을 대입해서,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어떻게 대응했을지 생각해보라는 책 같았다. 오리의 입장에서 왜 자꾸 곰에게 찾아가는지 이유를 찾아보고, 동시에 곰의 입장에서 자신이 뭔가 하려는데 친구가 방해하면 어떨지 각각 상황을 바꿔가면서 생각해볼 기회를 주고 있었다.

 

  오리에게 곰은 어떤 친구이기에, 늦은 밤까지 자꾸 놀자고 하는 걸까? 자기 말 잘 들어주는 만만한 상대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혼자서 외롭고 심심할 때 의지가 되는 친구라서 그랬을까? 나중에 화를 내긴 했지만, 그 전까지 왜 곰은 오리가 자꾸 찾아와도 싫은 내색을 별로 하지 않았을까? 그 애가 와주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걸까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의 친구라는 걸 알아서 내버려둔 걸까? 마지막에 곰이 버럭 화를 내는데, 과연 다음날 둘은 예전처럼 웃으면서 놀 수 있을까?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 가지 생각과 의문 그리고 뒷이야기가 자꾸만 떠오르는 동화였다.

 

 

 

  조카의 한 줄 평은 ‘왜 오리 엄마아빠는 애가 밤에 나가게 내버려두는 거야?’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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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속의 공주 PE (2disc) - 50주년 기념 플래티넘 에디션 / 한국어 더빙 수록
클라이드 제로니미 감독, 빌 셜리 외 목소리 / 월트디즈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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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Sleeping Beauty , 1959

  감독 - 클라이드 제로니미

  출연 - 메리 코스타 , 빌 셜리 , 엘리노어 오들리 , 베르나 펠턴

 

 

 

 

 

  유명한 페로 동화로, 디즈니 공주 시리즈 중에서 고전에 속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움직임이나 색감은 요즘 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어떻게 그림이 나보다 더 부드럽게 움직이는지…….

 

  스테판 왕과 왕비 사이에 오로라 공주가 태어난다. 그녀가 사람들 앞에 첫 선을 보이는 날, 말레피센트라는 사악한 마녀가 나타나 공주에게 저주를 내리고 사라진다. 다행히 착한 요정이 있어서 저주를 완화시키지만, 어찌되었건 그녀는 16세가 되는 날 물레 바늘에 찔려 잠이 들어야하는 운명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요정들의 축복으로 전신 성형은 물론이고 꿀성대까지 갖게 된 공주. 마녀의 눈을 피해 인간으로 변신한 요정들의 보살핌으로 시골 아가씨치고는 아주 예쁘게 자란 오오라. 16세 생일이 되는 날, 성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말처럼, 저주가 풀리는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마녀의 주술에 빠져 물레 바늘에 찔리고 만다. 요정들은 성 안의 사람들을 모두 잠재우고, 공주의 저주를 풀어줄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는 바로 오로라가 성으로 오기 전에 만나 한눈에 빠진 필립 왕자였다. 과연 그는 공주의 저주를 풀 수 있을까?

 

  좋게 말하면 사랑은 모든 역경을 뛰어넘는다는 교훈을 주는 예쁜 만화이고, 나쁘게 말하면 여자는 역시 외모가 제일이라는 의미를 포함한 수동적인 여성상을 확립하는데 공헌을 한 만화중의 하나이다. 태어나자마자 요정들의 마법 보정으로 최고의 미모와 엄청난 미성을 갖게 된 소녀. 아빠는 왕이고 엄마는 왕비이다. 게다가 태어나자마자 옆 나라 필립 왕자와 결혼이 약속되어있었고, 시아버지가 될 이웃나라 왕은 그녀를 위해 엄청 큰 성을 별장으로 줄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었다. 이건 뭐, 금수저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것이다.

 

  단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마녀의 저주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마녀의 저주는 사실 저주가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녀가 평범하게 성에서 공주로 대접받고 태어났다면, 과연 어떻게 성장했을까? 흔히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싸가지 없는 여아로 자랐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거기에 금발은 멍청하다는 속설이 있으니 머리에 든 것도 없을 것이고.

 

  하지만 마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인간으로 변신해 16년 동안 마법을 안 쓰면서 살았지만 달걀하나 제대로 깨지 못하는 요정들의 손에서 자라야했기 때문에, 그녀는 모든 것을 스스로 척척 해내는 생활력 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 16년 동안 인간으로 살면서 요리도 청소도 재봉도 할 줄 모르는 학습능력 제로인 요정들이 뭐하나 제대로 해줬을 리가 없다. 아마 철이 든 이후, 오로라는 혼자 요리하고 청소하고 먹을 식재료를 구해오고 그랬을 것이다. 그런 노동의 가치를 안 그녀가 나중에 왕비가 되어 함부로 낭비를 하거나 평민들의 삶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하!

 

  그러니까 마녀는 저주를 내린 것이 아니라, 그녀가 올바르게 자라도록 도와준 것이다.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난 아이가 혹시나 잘못 자랄까봐, 약간의 시련을 주어서 비뚤어지지 않게 성장하도록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거기에 그렇게 관심을 갖고 돌본 아이가 혹시 엉뚱한 놈팡이에게 넘어가서 결혼할까봐, 필립을 시험해보고자 감옥에도 넣어보고 용과 싸우게도 한 것이다. 한눈에 반해서 목숨을 걸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까, 그의 마음가짐을 확실히 잡으라는 의미로 그런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일부로 악역을 자처해서, 쎈 언니로 보이게 눈 화장도 짙게 하고 웃음소리나 행동도 무서운 느낌이 들게 한 것이다. 아아, 그 희생정신이란!

 

  그녀는 진정으로 왕국을 위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왕국의 수호자였다.

 

  이런 숨은 비밀을 깨달은 것은, 나만이 아니었나보다. 그래서 '말레피센트 Maleficent , 2014'라는 영화가 나온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말레피센트와 크루엘라, 자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았다.

후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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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바스티안 피체크.미하엘 초코스 지음, 한효정 옮김 / 단숨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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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Abgeschnitten, 2012

  작가 - 제바스티안 피체크, 미하엘 초코스

 

 

 

 

 

  표지를 보면, 구름이 잔뜩 낀 바닷가에서 태양을 등지고 서 있는, 또는 태양을 보고 있는 한 여인의 실루엣이 인상적이다. 감동적인 성장 이야기나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작가 이름을 보는 순간 ‘응?’하고 놀랐다.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 이름은 절대로 저런 서정적인 표지와 어울리지 않았다. 다시 확인했다. ‘눈알 수집가 Der Augensammler, 2010’와 ‘눈알 사냥꾼 Der Augenjager, 2011’으로 재미와 놀라움을 안겨줬던 그 작가가 맞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조용한 분위기의 표지를 갖고 있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뜻이다.

 

  법의학자 헤르츠펠트는 부검하던 시체의 머리에서 한 쪽지를 발견한다. 거기에 적힌 딸 한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본 그는 경악한다. 누군가 그의 딸을 납치하고 찾을 수 있는 힌트를 시체에 남긴 것이다. 경찰에 알리지도 말고, 범인이 숨겨놓은 힌트를 찾아 딸을 찾아야 하는 헤르츠펠트. 그에게 남은 유일한 힌트는 헬고란트라는 섬에서 발견된 한 남자의 시체였다. 하지만 태풍 때문에 고립된 그곳에서 그를 도울 수 있는 유이한 존재는 관리인인 엔더와 만화가인 린다뿐이었다. 침입자에게 공격을 받아 부상을 당한 엔더를 지키면서, 린다는 전화로 헤르츠펠트의 지시대로 시체를 해부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들을 노리는 침입자도 피해야 한다. 한편 시체의 신원을 확인하던 헤르츠펠트는 한나를 납치한 사람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은 4년 전에 체포된 사들러라는 변태성욕자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고, 세 번째 장을 넘기면서 ‘헐!’하고 놀랐다. 그리고 읽어가는 내내 ‘어떡해’라는 마음과 ‘헐!’이라는 생각 그리고 ‘으아’하면서 인상을 찌푸리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 정도로 이야기는 충격과 놀라움 그리고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여자아이들을 납치감금해서 반복적인 강간과 온갖 고문을 가한 끝에, 결국 아이가 스스로 자살하게 만드는, 흉악범이라는 말조차 아까운 사들러. 납치강간고문은 했지만, 살인은 하지 않았기에 그는 가벼운 형량을 받고 출소한다. 납치강간고문을 했다는 건 이미 그 아이를 죽인 것이다. 책에서 자세히 묘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그 XX가 어떤 짓을 했는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그런 짓을! 그런 상황에서 자살은 그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자살하도록 강요했다고 할 수 있다. 그건 살인이다.

 

  그런데 직접 살인하지 않았다고 3년 형만 선고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아니 왜! 도대체 판사 머릿속엔 뭐가 들었기에! 이런 분노는 나만이 느낀 것이 아니었나보다. 그래서 그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놈이 가벼운 형량을 받는데 도움을 줬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몇 년 전에 사람들을 경악시킨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조두순 사건이라 불리는 일이다. 8살짜리 여아에게 온갖 몹쓸 짓을 한 그가 앞으로 5년 후에 출소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세상에나! 그가 출소할 때, 피해를 입은 여아는 스무 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여아가 입은 피해를 생각해보면, 그가 받은 형량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두 저자가 소설 전반에 걸쳐서 얘기하지만, 성폭행범에 대한 형량은 죄질에 비해 너무 낮다. 거기다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왜 감형을 시키는 것이다. 술이 무슨 면죄부라도 되는 건가? 모든 사람들이 다 술을 마시고 강간폭행살인을 저지르는 게 아니잖아?

 

  법치국가에서 피해자는 어떤 기회도 갖지 못하는 반면, 범인은 그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대사에 공감한다.

 

  아, 사들러의 범행이 너무 잔인해서 상대적으로 묻혀버린 린다의 스토커가 벌인 짓도 잊으면 안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는 건 집착이고 정신병이다.

 

  이 세상은 너무도 넓고 미친 사람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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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장수미 옮김 / 단숨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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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Der Augenjager, 2011

  작가 - 제바스티안 피체크

 

 

 

 

  전작인 ‘눈알 수집가’의 표지도 으스스했지만, 이번 표지도 만만치 않다. 눈이 있는 부분은 제목과 음영처리로 잘 보이지 않은, 뭔가 덮인 채로 입을 벌리고 있는 사람의 얼굴 부분이 클로즈 업 되어있다. 얼굴을 덮은 것은 무얼까? 비닐 같다. 누군가 뒤에서 저 사람의 얼굴에 비닐을 덮어씌우고 목을 조이는 걸까? 저러다 숨을 쉬지 못하면 죽을 텐데……. 저 사람은 지금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거나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아, 어쩐지 표지만으로도 사람 마음을 불안하고 두근거리게 만든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책이 든 택배 상자가 오면 어머니는 늘 궁금해 하신다. 당신님도 보실만한 책이 있으면 빌려가곤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이러이러한 책이 왔다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곤 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작년에 ‘눈알 수집가’ 제목만 보시고 기겁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 보여드리면 노인네 서운해 하시기 때문에, 어떤 책이냐는 질문에 조용히 표지를 보여드렸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어머니가 작년에도 비슷한 거 있지 않았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자, ‘그런 책을 쓰는 사람이나 그걸 읽는 너나 참…….’이라며 혀를 차셨다. 아니 왜! 이런 소설이 얼마나 재밌는데!

 

  지난 이야기에서 눈알 수집가의 정체를 알아내고 납치당한 아이들을 구하는데 성공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은 빼앗긴 초르하프. 소설은 범인의 지시대로 자신의 눈을 총으로 쏘는 그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두 달이 지난 후, 지난번에 큰 활약을 했던 알리나는 경찰의 요청으로 여자들을 납치강간하고 눈꺼풀을 도려낸 안과의사 차린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그에게서 또다시 환영을 보며 불안함에 휩싸인다. 그런 그녀를 찾아와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한 여인. 사라진 소녀와 차린은 무슨 관계일까? 초르하프는 과연 아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와, 잔인하다.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내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이번 이야기의 범인인 의사 차린은 진짜 잔인한 놈이었다. 그냥 눈꺼풀만 도려냈다고 했을 때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그 이후 피해자들이 겪는 일을 묘사한 부분을 읽으면서 왜 그녀들이 자살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눈을 깜박이지 않으려고 해봤다. 일분도 참기 힘들었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평생을 그러고 살아야 한다. 범인도 잔인하고, 독자들에게 그걸 깨닫게 한 작가도 잔인했다. 다른 범죄수사물은 그냥 이러저러한 일을 당했다고만 나오는데, 이 작가는 그걸 꼼꼼하게 다 느낄 수 있도록 표현을 해놓았다. 피해자의 고통과 가해자의 심리를 동시에 느껴보라는 배려였을까? 그렇다면 성공했다. 나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잠시 책을 놓게 만들었으니까.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게 만드는 책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아, 진짜 그 사람이 그럴 줄은 몰랐다.

 

  대개 소설들은 사건이 마무리되면 그럭저럭 안정을 되찾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데, 이 책은 그러지 못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한 번 경험한 악의 공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그게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트라우마라는 것이 쉽게 극복될 리 없으니까 말이다.

 

  인생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 아침에 좀 더 잘 것이냐 밥을 먹을 것이냐부터 시작해서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점심 메뉴는 뭐로 할 것인가, 자기 전에 게임을 한 판 할 것인가 말 것인가까지, 눈을 떠서 다시 감을 때까지 매분매초 뭔가 선택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선택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차린이 살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그거였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괜히 휘말리기 싫어서, 자기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싫어서, 불의를 보고도 외면한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모른 체 했기 때문에 일어난 범죄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벌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도 일부로 그랬다고 볼 수가 없는데, 무조건 그런 짓을 해도 괜찮은 걸까? 게다가 여자만 잡아다가 그런 짓을 하는 걸 보니, 그건 핑계 같다. 처음 일을 저질렀을 때는 보고도 못 본 척한 사람들에게 화가 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이후는 그냥 자기보다 약한 여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들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는 것에 맛을 들인 거 같다.

 

  또 이런 의문도 든다. 방관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꼭 옳지 못한 일일까?

 

  남을 도우려다가 도리어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혹 볼 수 있다. 내 조카 같은 경우도 그랬다. 그 녀석이 반에서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왕따 시키고 싸우는 애들에 대해 담임에게 말했더니, 도리어 ‘넌 왜 친구들을 이간질시키고 나쁜 말을 퍼트리니?’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었다. 충격을 받은 녀석은 학교 가기 싫다고 전학시켜달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런 아이에게 그래도 어려운 사람을 돕고 불의를 보면 어른들에게 알리라는 말을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불의를 보면 돕거나 누군가에게 알려서 도움을 줘야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이 세상은 서로 돕고 사랑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맞다. 문제는 이 나라에서는 그게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불의에 맞서면 도리어 피해자가 되는 세상이다. 바른 말을 하면 미움을 받고 어른 말을 들은 아이들만 죽어가는 이 나라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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