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침묵 열린책들 세계문학 13
베르코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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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Le silence de la mer, 1942

  작가 - 베르코르

 

 

 

 

 

 

  저항 문학이라는 분류가 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의해 침략을 받아 지배를 받을 때, 그런 상황에 반발하여 자유와 해방을 염원하는 내용을 담은 문학 작품들을 말한다. 이 책은, 2차 대전 당시에 독일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프랑스의 작가가 쓴 단편 소설의 모음집이다.

 

  각각의 단편들은 독일의 지배를 받는 것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정책에 순응하는 사람, 처음에는 순응하다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저항하려는 사람, 처음부터 독일의 지배를 반대하던 사람,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사람 그리고 소극적으로 반감을 표시하는 사람까지. 그 짧은 이야기들 속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루고 있었다.

 

  그것을 통해 작가는 2차 대전 때 있었던,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에 대해 다각도로 보여주었다. 분노하는 청년의 입을 통해서는 절망과 혼란 그리고 좌절을 드러냈고, 인쇄공의 행동을 통해서는 사람 사이의 관계와 신념에 대해 보여줬다. 그리고 아직 어린 소년의 시선으로는 그 사건이 가져다준 상실감의 크기를 알려줬다.

 

  특이하게도 작가는 프랑스를 지배한 독일의 무자비함과 잔인함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지 않았다. ‘이 나쁜 독일 XX’같은 표현은 가급적 자제하는 느낌이었다. 그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사람들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배받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은근히 말하고 있었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그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어떻게 권력 앞에서 무너지는지, 믿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고 배신을 하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그는 독일인 전체를 ‘살인마 전쟁광’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 중에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예술을 사랑했지만 전쟁 때문에 좌절하는 평범한 독일 장교도 등장시킨다. 그것을 통해 인간이 끝까지 지켜야할 것은 무엇인지 독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려고 했던 모양이다.

 

  작가를 충격과 절망에 빠트렸던 사건은 바로 1942년 7월에 일어난 프랑스 경찰이 프랑스 국적을 가진 유대인 13000명 이상을 체포 연행한 일이다. 그 중에 4000명은 어린아이들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에 살던 유대인을 축출하는데 앞장선 것이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인들이었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끌려간 유대인 대부분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작가는 큰 충격을 받았나보다. 그 전까지는 다정하게 지내던 이웃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서로를 외면하고 밀고하는 현실에 절망을 느낀 것 같다.

 

  그런 그의 분노와 슬픔은 이야기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어디서는 너무도 무덤덤하게, 또 어떤 부분에서는 극렬한 분노와 상실감을 드러낸다.

 

  『무기력』에서 작가는 극중 인물인 르노의 입을 통해 분노를 드러낸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에 좌절한 나머지, 르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물과도 같은 책과 명화들을 불태운다. 그리고 절규한다. 이것들은 인간의 위선적인 짓거리가 만들어낸 잡동사니에 불과하다고. 다른 사람들 지옥으로 몰아넣고 자기들만 고고하게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베르됭 인쇄소』의 마지막 문단은 너무도 덤덤해서, 마지막 줄을 읽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파아르스는 해방 후 체포되어 사흘 동안 구금되어 있었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보증인을 자처한 덕에 풀려났다. 1943년 말 이후로 그가 몇몇 조직에 막대한 자금을 댔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전기 분해 구리와 관련된 문제라면 뭐든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없이는 곤란할 거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조달청을 쥐락펴락하는 거물이 되어 있었다.’ - p.173

 

  문득 우리의 근현대사가 떠오르면서, 과연 일본에 저항했던 조상들이 바라던 나라가 되었는지 생각하자 그냥 눈물이 났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적혀있었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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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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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犬神家の 一族, 1950

  작가 - 요코미조 세이시

 

 

 

 

  읽으면서 ‘어?’하면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그렇다. ‘혼진 살인사건 本陣殺人事件, 1946’에 들어있던 단편『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와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가문의 유력한 후계자가 부상을 입고 돌아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두들 의심한다는 설정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작가들 중에는 단편으로 썼다가 마음에 드는 것을 장편으로 다시 써 발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도 그런 모양이다. 물론 장편이니까 단편일 때와는 달리 다양한 양념들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대부호 이누가미 가문의 가장인 사헤가 노령으로 사망한다. 은인인 노노미야의 손녀인 다마요가 자신의 손자 셋 중의 한 명과 결혼을 해야만 가문의 재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장이 발표되자 모든 사람들은 경악한다. 게다가 예전에 자신의 딸들의 방해로 떠나갔던 후처의 아들 시즈마를 언급하고, 손자 중의 한 명이 사망했을 경우까지 자세히 적혀있는 유언장은, 그야말로 자기 자식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왜 사헤는 자기 자손들에게 이렇게 가혹한 유언을 남긴 걸까?

 

  의논할 게 있다는 변호사의 부탁을 받고 마을로 온 긴다이치. 하지만 의뢰인은 그를 만나러 왔다가 독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이후 손자들이 하나둘씩 차례로 처참하게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자존심에 치명타를 입은 긴다이치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누가미 일가에 얽힌 비밀과 저주스러운 내력을 파헤치는데…….

 

  아버지가 같은 자매지만 어머니가 다른 사헤의 세 딸은 각각 자신의 아들이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아야한다고 병적일 정도로 집착을 보이며, 광기어린 시선으로 서로를 노려본다. 다른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서로 머리끄덩이를 부여잡고 너 죽고 나 살자고 싸웠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전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예전에 세 자매가 아버지의 후처와 그 어린 아들에게 저지른 만행은 좀 끔찍했다. 재산을 빼앗길까봐 저지른 짓치고는 질이 무척 나빴다. 하지만 아버지인 사헤가 그들의 어머니에게 한 짓을 얘기하는 부분을 읽으면,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랐으니…….'하고 나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역시 가정 교육이 중요한 법이다.

 

  그 덕분에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 역시 인간쓰레기라는 말이 어울리는 행동을 보인다. 그 중에서도 막내 손자 스케모토는 제일 악질이다. 다른 사촌 여동생을 좋아해 임신까지 시켰지만, 재산을 위해 다마요에게 집적댄다. 하지만 다마요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는 그녀를 납치해 강간을 시도한다.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놈이다. 사헤가 젊은 시절에 저질렀던 일을 생각하면, 핏줄이 어딜 가겠냐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가학적이면서 비정상적인 기질로 가득한 세 자매의 돈에 대한 집착, 서로를 향한 질투, 원한과 복수, 강간으로 만들어진 가문의 내력,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에 흘러넘치는 병적인 허무함은 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불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결말을 읽으면서도 '절대로 이들은 행복하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지금이야 범인이 잡혀서 안정되어보이지만, 다음 대에서 또다시 비극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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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너스 - 아웃케이스 없음
드니 빌뇌브 감독, 휴 잭맨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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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Prisoners , 2013

  감독 - 드니 빌뇌브

  출연 - 휴 잭맨, 제이크 질렌할, 바이올라 데이비스, 마리아 벨로

 

 

 

 

 

  비 오는 추수감사절 날, 두 가족이 함께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어른들이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두 집안의 어린 두 딸이 사라진다. 온 동네를 샅샅이 뒤지지만 둘의 행방은 묘연하다. 집 근처에 캠핑카가 있었다는 오빠의 증언으로 경찰이 수색에 나서지만, 차 안에서도 두 소녀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캠핑카를 몰던 청년이 용의자로 조사를 받지만, 그는 지능이 열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아 제대로 된 취조나 대화가 불가능하다. 경찰은 그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수사를 하고, 소녀의 아버지는 그가 범인이 맞는다고 확신을 한다. 그러다 용의자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자, 분노한 소녀의 아버지는 그를 잡아가는데…….

 

  영화는 소녀들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 유력한 용의자가 등장했지만, 그가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다른 증거들과 예상치 못했던 수상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세상에 죄 한 번 안 짓고 사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래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경찰의 수사는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뭔가를 숨기고 있었으니까.

 

  그런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감독은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나약해서 금방 무너지고, 자신에게 닥친 비극을 받아들이지 못해 회피하려고 하고 남에게 그 탓을 돌리기도 하며, 한번 그렇다고 생각하면 다른 쪽으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는 맹목적인…….

 

  그 때문에 이 모든 사건들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닥친 일은 신의 탓이야, 그러니까 난 그 신에게 엿을 줘야겠어. 범인은 이런 심리로 수많은 아이들과 가족에게 절망과 고통을 안겨줬다. 그리고 그것을 나름대로 정당화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 말은 그냥 개소리로만 들렸다. 아, 개야 미안. 정정한다. 미친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범인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악몽 속에서 살아야했다.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단 두 가지였다. 악몽에 몸을 맡기거나 세상과 연을 끊거나. 안타까운 일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는 두 시간 반 동안 많은 사실을 보여주고, 여러 사람을 등장시킨다. 그 때문에 범인을 찾는 과정은 길고 어렵기만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모든 것들이 후반부로 가면서는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진다. 와, 이건 진짜 대본과 연출의 승리였다.

 

  내 조카들이 사라진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상상해봤다. 영화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행동할까? 아니면 경찰만 의지하고 기다릴까? 뭐, 그건 생각해보나마나한 문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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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산보
플로랑 샤부에 지음, 최유정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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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okyo Sanpo

  저자 - 플로랑 샤부에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우연히 일본에서 머무르게 된다. 도쿄에서 보고 겪고 스쳐지나간 것들과 그곳의 사람들에 대해 자기만의 스타일로 그려낸 책이다.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이곳저곳 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을 적고 그리고 있다. 때로는 자전거 주차 위반으로 경고 스티커를 받거나, 경찰의 조사를 받은 것에 대한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모든 페이지가 저자가 그린 그림과 짧은 설명이 한 줄, 한 문장 정도 붙어있어서 금방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헐! 깨알같이 적힌 글들을 꼼꼼하게 보다보니 다른 소설책을 읽는 시간과 비슷했다.

 

  그림은 무척이나 꼼꼼했다. 그래서 가보지 않은 동네지만, 어쩐지 본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였다. 거기에 저자의 경험이 녹아든 한 문장은 읽으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저자의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거리뿐만 아니라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그림이 꽤 많았다. 마치 2층이나 3층에 위치한 커피숍 창가에 앉아서 사람들의 옷이나 행동 등을 지켜보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음, 나도 가끔 그러는데……. 다만 저자와 달리 난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지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눈을 찌푸리는 문장을 하나 발견했다. 길에서 지나간 사람들 그림 옆에 짧은 문장으로 느낌을 적어놓았는데, 너무 과하다 싶은 것이 한 줄 있었다. 한 남자 옆에 '변태'라고 적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사람이 변태인지 그림을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얼굴만 보고 그런 평을 내린 것인지, 아니면 진짜 길에서 변태 짓을 했기 때문인지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그래서 단지 선입견으로 그 사람을 판단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외국에 출판까지 할 정도의 책이라면 그런 부분은 좀 조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모르는 사람이 내 외모를 보고 나 몰래 평가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심지어 외국 사람들까지 볼 수 있는 곳에 내 그림을 올려놓고 '돼지'라고 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비록 진짜 돼지라고 해도 말이다. 그 때문에 그 전까지 상당히 독특하고 개성 있다고 생각했던 저자의 그림과 글이, 그 부분을 보는 순간 무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부분만 빼면, 그림 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 모든 그림은 출판사에서 인터넷 사이트에 제공한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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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Cockneys Vs. Zombies (카크니즈 vs 좀비스) (한글무자막)(Blu-ray) (2012)
Shout Factory Theatr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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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Cockneys vs Zombies , 2012

  감독 - 마티아스 혼

  출연 - 라스무스 하디커, 해리 트레더웨이, 미쉘 라이언, 잭 둘란

 

 

 

 

  재개발로 할아버지가 계시는 양로원이 문을 닫게 되자, 형제는 은행을 털기로 한다. 사촌동생과 친구들을 섭외해 은행으로 쳐들어간 형제. 한편 건설 현장에서 납골당이 발견되어 인부들이 들어갔는데, 그만 좀비들의 습격을 받게 된다. 그 시각, 처음 하는 강도질에 어리바리하게 굴다가 형제와 친구들은 은행 문을 나서자마자 경찰에게 포위당한다. 결국 인질을 두 명 붙잡고 다시 은행 문을 나서는데, 어럽쇼? 그 많던 경찰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길에는 좀비들만 우글거릴 뿐이었다. 그들은 할아버지를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좀비 무리를 뚫고 양로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 양로원에 있던 형제의 할아버지를 비롯한 노인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 오랜만에 웃음이 빵빵 터지는 좀비 영화를 보았다. 그러면서 호러 영화답게 좀비가 인간을 습격하거나 좀비를 죽이는 장면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특히 형제의 사촌 여동생은 그야말로 새로운 여전사의 탄생을 보여주고 있었다. 긴 칼로 좀비의 다리를 썰어버리는 장면이나, 총을 못 쏘는 사촌을 대신해서 좀비의 머리를 날려주는 장면 등은 ‘오!’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왜 이리도 사랑스러우신지! 왕년에 이름 좀 날리셨던 분들 같다. 특히 형제의 할아버지는 예전에 특수 요원으로 활약했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런 공격을 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으음, 나도 지금부터 격투기나 총 쏘는 법을 배워야 할까? 나중에 늙어서 좀비를 만나면…….

 

  영화에서 제일 긴장을 주면서 동시에 웃겼던 장면은 정원에서 낮잠을 자던 할아버지 한 명이 뒤늦게 좀비의 습격을 알아차리고 도망치는 부분이었다. 보조기라고 하나? 지팡이와 비슷하지만 지팡이는 아닌 것을 이용해 나름 서두르면서 도망가는 할아버지와 그 뒤를 어기적거리면서 쫓는 좀비. 이 영화의 좀비가 달리기를 하지 않는 종류라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 이 명장면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속이 터질 정도로 느리지만 어딘지 모르게 속도감마저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과연 누가 경주의 승자가 될 것인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작년에 본 한국 좀비 영화인 ‘좀비 스쿨’과 너무 비교가 되어서, 속상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 이렇게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유쾌하게 만들 수 없는 걸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아무 생각 없이 보기만 하면 되는 건 아니다. 중간 중간 영국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대한 풍자나 일침이 들어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좀비가 나오는 장면들과 어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좀 오글거리는 대사가 나와도 어색하지 않았다. ‘좀비 스쿨’의 ‘이 모든 게 다 학교 탓이야!’라는 마지막 대사는 와 진짜, 해가 바뀌어도 생각만으로 오글거리고 뜬금없고 생뚱맞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 Shaun of the Dead , 2004’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유쾌한 좀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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