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해서 비슷한 사람 - 양양 에세이
양양 지음 / 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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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양 양

 

 

 

 


  제목과 이리도 일치하는 책은 오랜만이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 저자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이구나라는 거였다. 하지만 그 외로움과 쓸쓸함을 꽁꽁 끌어안고 불쌍한 척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분출시키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이 저자 같은 경우에는 그 대상이 노래와 글인 것 같다.

 


  저자가 생활하면서 보고 듣고 겪은 것에 대한 짧은 생각이나 감상을 적은 에세이집인데,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마치 가을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다. 그것도 단풍이 울긋불긋 든 화려한 가을이 아니라, 길게 뻗은 가로수길이 전부 다 노란색이나 빨간 색으로 물들었고, 길 위에는 낙엽들이 쌓였거나 바람에 흩날리는 그런 가을이 떠올랐다.

 


  가끔 책을 읽다보면 이런저런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그려질 때가 있다. 어떤 책은 기차 화통을 삶아 드신 분이 큰소리로 떠드는 것처럼 읽힐 때가 있고, 또 어떤 책은 수다스런 아주머니가 마주 앉아서 연신 얘기하는 상상이 들 때도 있다. 또 다른 책은 안경을 낀 차가운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또박또박 정중한 목소리로 말하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간혹 개구쟁이 꼬꼬마가 두서없이 재잘대는 그림이 그려질 때도 있고 말이다.

 


  이 책은 위에서 느껴지는 가을 분위기 때문인지 몰라도, 조용한 공원 벤치에서 누군가 옆에 앉아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큰 소리를 내면 낙엽들이나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물들이 놀랄까봐 가능하면 작은 소리로 말하는 그런 느낌. 불면증에 걸려 밤을 꼬박 새면서 본 바깥의 풍경이라든지, 중국을 여행할 때 37시간동안 기차를 타면서 경험한 일들, 불운의 연속에서 겨우 행복을 잡은 친구 이야기,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 등등이 그런 인상을 더해주었다.

 


  우리 사회는 간혹 혼자 뭘 하는 사람을 불쌍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신이 그런 불쌍한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것을 못견뎌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 그런 이유로 혼자서 뭔가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걸 어색해하고, 카페나 영화관에 혼자 가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 어릴 때는 ‘혼자서도 잘 할 거야!’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성인이 되어서는 그렇게 못하는 걸까?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활동을 혼자 하는 게 그리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저자는 혼자 여행도 하고 카페에도 가서,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자기만의 감정을 느낀다. 마치 물고기가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혼자 있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한다.

 


  어쩌면 책 제목인 ‘쓸쓸해서 비슷한 사람’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니까 말이다.

 

 


  허름한 것이 좋다.

  허름하다는 것은 반짝반짝 새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헌것, 낡은 것, 오래되고 가난한 것은 그 시절에 더 뜨겁고 정답고 치열했을 것이다. (중략)

  겹겹이 쌓인 먼지의 시간만큼 사랑하였을 것이다 -p.37

 

 


  난 허름한 식당은 비위생적이라고 꺼리는데, 저자는 간혹 찾아가기도 한다. 아, 이런 부분이 나와 생각이 다르구나.

 

 


  찾고 찾고 찾고 찾고 찾고 또 찾아보아도 내가 찾는 게 무언지도 모르겠는 밤이 있다.

  그게 인생일 테지.

  그것만은 어찌해도 알겠는 밤에는, 우리, 별이나 보자. -p.195

 

 


  어쩐지 쓸쓸함이 더 느껴지는 이 가을날에 딱 어울리는,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저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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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tholic 2014-11-25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양양님 검색하다가 포스팅 발견했어요.
12월 7일 양양님 단독 콘서트가 있어서 포스팅에
살포시 댓글남겨봅니당
(혹시 광고라고 생각되시면 과감히 삭제해주셔도 되요 ㅜㅜ)
책이랑 같은 이름의 앨범 발매기념 콘서트입니다.
양양님 홈페이지에 공연소식 있어요 ^^
http://www.yangyangstory.com/

바다별 2014-11-27 00:02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감독-김석정

  출연-백서빈, 김승환, 하은설, 김경룡

 

 

 

 

 


  "왜 너는 나를 만나서~"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예전에 아주 인기였던 드라마 주제곡이었다. 점 하나를 찍고 나왔다고 사람을 못 알아보는, 안면실인증(prosopagnosia)에 걸린 사람들이 떼를 지어 나오는 드라마였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저 노래가 떠올랐다. 왜 나는 이 영화를 골랐을까? 왜 너(이 영화)는 내 눈에 띄었을까? 내 아까운 예스 머니……. 하지만 최근 고른 영화들 중에 마음에 드는 건 별로 없었으니까, 그냥 내가 안목이 없다고 보면 될까? 아니면 김밥 한 줄에 라면 하나 먹는 값보다 싼 가격이니, 좋은 경험했다고 할까? 그럼 영화를 보느라 보낸 내 시간은……. 리뷰 쓴다고 다시 보느라 보낸 시간은……. 하아…….

 


  문제 학생들만 모아 교육하는 섬이 있다. 말이 좋아서 교육이지, 선생과 학생들은 서로 으르렁대면서 모욕을 주고, 선생은 자기들의 신분적 지위를 이용해 학생들을 때리고 강압적으로 대한다. 그 와중에 선생들은 교장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하느라 바쁘고,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힘겨루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어느 날, 돼지에게 물린 교장을 시작으로 선생들이 하나둘씩 좀비로 변한다. 선생들의 습격에 학생들은 살아남기 위해 반격을 시도하는데…….

 


  섬은 이 사회의 축소판 같은 곳이었다. 최고 권력자인 교장에게 잘 보이려고, 선생들은 교장 고양이의 장례까지 치러준다. 마치 자기네 조상님이라도 돌아가신 것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많다는 말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그 때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너무 장엄해서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배경이 좋은 학생 앞에서는 빌빌거리고, 그 외의 학생에게는 인신공격은 물론이거니와 폭력을 일삼는 선생들의 모습 역시, 강자 앞에서는 비굴해지고 약자 앞에서는 강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학교 식당에서 돈이 없는 학생들은 채소로만 이루어진 식사를 해야 한다. 학생 식당에서조차 자본의 논리가 좌우하고 있었다.

 


  사회 비판적인 영화라면, 꽤 괜찮은 설정과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섬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풍자적으로 비틀어 보여주는 점에서, 영화의 초반부는 꽤 흥미진진하게 잘 만들어졌다. 돼지에 물린 선생들이 학생을 습격하는 것까지도 그럭저럭 보았다.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멸하는 세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면, 괜찮았다.

 


  하지만 영화는 전반적으로 이상했다. 심령물도 아니고 좀비 영화도 아니고 사회 풍자 영화도 아니고 블랙 코미디 영화도 아니고……. 마치 이것저것 재미있을 것 같은 요소들만 모아놓은 느낌이었다. 문제는 그 설정들의 조화가 하나도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후반부에 갑자기 신파조로 흐르는 분위기는 진짜……. 왜 한국 영화는 막판에 눈물을 자아내거나 큰 감동을 주려고 애쓰는지 모르겠다. 그런 것도 제대로 하면 감동 먹고 눈물을 닦아내겠지만, 이건 뭐 손발이 오글거리다 못해 짜증이 날 정도였다. 이럴 거면 차라리 감동을 주겠다는 생각을 버려! 그건 감동이 아니라 오글거림이고 짜증이야! 감정 과잉이고, 그게 먹힐 것이라 생각한 각본가와 감독 두 사람만의 착각이라고!

 


  "우리 인생을 망쳐버린 것이 바로 너희들 학교야!"

 


  이 대사가 왜 나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저기요,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합시다? 너님들 인생을 망친 것은 너님들 자신이에요. 아니면 너님들이 그렇게 자라도록 방치한 부모님 탓도 있고요. 선생에게 대놓고 가운데 손가락 욕을 날리라고 학교에서 가르쳤나요? 술 마시고 담배 피라고 학교에서 부추겼나요? 아니잖아요? 너님이 좋아서 술 마시고 담배 피고 싸움하고 돌아다녔으면서, 왜 학교 탓을 하나요?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Cranberris'의 노래 'Zombie'는 으아!

 


  왜 부끄러움은 보는 사람의 몫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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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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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 - 전경린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문득 백조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백조에 얽힌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백조가 수면 위에서는 우아한 것 같지만, 실제 물 밑에서는 열심히 발을 놀리고 있다는 비유 말이다.

 

  등장인물들이 다 백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고 여유 있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 속은 누구보다 타들어가고 있었다. 덤덤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 없었다. 많은 고민을 하고, 포기를 하고, 체념을 하고, 결국 덤덤하게 받아들이고서야 입을 떼었던 것이다.

 

  내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하면서 읽어봤다. 그들처럼 행동하고 살아가는 게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자 이 글의 화자인 '손유지'가 비뚤어지지 않고 자란 게 다행이었다. 작은 고모인줄 알고 자란 사람이 알고 보니 생모였고, 같이 살게 된 생모는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한다. 그리고 유부남인 자기 학교 선생님과 생모가 가까운 사이라는 걸 알자, 그녀는 어쩌면 선생님이 자신의 생부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좀 더 커서는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사귀던 남자 부모에게서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헤어져야 했고, 생모는 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일본으로 훌쩍 떠나버린다. 유지는 생모와 살던 마을에 작은 피아노 학원을 차리고 살아간다. 제목인 '해변 빌라'는 그녀가 생모와 살던 집의 이름이다.

 

  이야기는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마을 사람들, 예를 들면 그녀가 생부라고 믿고 있는 생물 교사이자 화가인 '이사경'과 그의 부인인 '백주희', 두 사람의 아들인 '연조', 해변 카페 주인인 '편사장'과 그의 애인 '해영', 유지의 첫사랑인 '오휘', 그리고 작은 고모이자 생모인 '손이린'과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유지의 성격이 참 독특했다. 자신을 낳았지만 돌보지 않은 작은 고모에 대한 미움 내지는 이사경과 고모의 관계에 대한 배신감이나 경멸 같은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 그녀에게 작은 고모는, 생모도 고모도 아닌, 손약사였다. 약사일을 하니까 손약사다. 그녀는 모든 것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애가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건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출생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 후부터, 모든 것에 관심을 끊고 욕심내지 않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것이라고는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생모에게서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컸으니 말이다.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애정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이 지구상에 없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이사경의 부인인 백주희라면,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가 있는 남자의 몸만 잡고 살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게다가 남편의 애인이 낳은 딸인 유지가 자기 집에 매주 와야 하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비록 유지가 남편의 아이는 아니지만, 자기 아들인 연조와 친하게 지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가정보다 일을 택했다. 그녀에게 일은 일종의 도피처였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도도했고 단정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그녀는 유지를 받아들인다. 어쩌면 그녀는 유지 역시 자신과 비슷한 입장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은 역시 이사경이다. 손이린이 그렇게 좋았으면 부인과 이혼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한 손에는 가정을 다른 한 손에는 이린을 잡고 있었다. 이건 뭐 우유부단해서 여러 사람에게 피해주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특히 이린이 떠난 이후, 그가 유지를 자주 만나러 오는 장면에서는 혀를 찼다. 제자였던 유지가 걱정되어 오는 게 아니라, 이린과 닮은 그녀의 모습을 보러 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자책하는 낭만적인 분위기로 포장을 하는 것 같은데, 바람둥이는 바람둥이고 불륜남은 불륜남일 뿐이다. 미화해봤자 그 우유부단함과 비겁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백조처럼 고고하지만, 속으로는 욕망과 질투, 비난, 포기, 체념 등등으로 얼룩진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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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Forgotten , 2012

  감독 - 알렉스 슈미트

  출연 - 미나 탄더, 로라 데 보어, 카타리나 탈바흐, 막스 리멜트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드디어 보게 되었다. 포스터 중앙에 있는 빨간 머리끈 소녀의 눈망울이 어딘지 모르게 슬퍼보여서, 무슨 이유로 어린 소녀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포스터에 적힌 문구들만 잘 봐도 유추가 가능하다. 분명히 빨간 머리끈의 소녀는 뒷모습만 보이는 하얀 옷의 두 소녀와 놀고 싶었다. 하지만 두 소녀는 그녀와 잘 놀아주지 않고, 뭔지 모르지만 나쁜 짓을 해버린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후에, 빨간 머리끈 소녀의 복수가 시작되는 것이라 추측했다.

 

  여름휴가 때 만나서 놀았던 두 친구 한나와 클라리사. 시간이 흘러 의사가 된 한나는 환자로 들어온 클라리사와 만나게 된다. 딸 레아를 데리고 클라리사와 어린 시절 휴가지였던 섬으로 떠난 한나. 어린 시절 섬에서 알게 되었던 마리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한나는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비밀을 생각해내려 애쓴다. 도대체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어린 소녀는 누구인가? 마리아의 원혼일까 아니면 한나의 죄의식이 빚어낸 망상일까?

 

  위에서 한 예상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서 긴장감이 풀어지려는 시간대 즈음에, 이 영화 엄청난 반전을 보여준다. 그리고 설마 이런 식으로 과거의 일이 매듭지어지는 건가하고 아쉬워하는 순간,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지.’라는 듯이 숨겨둔 비밀을 떡하니 들이민다.

 

  복수를 하려면 확실하게 하는 것이 맞다. 이왕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복수를 하겠노라 마음먹었다면, 자신이 당한 고통의 배로 갚아주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안 나오는 눈물을 짜내면서 어설픈 용서와 화해로 대충 얼버무리려면, 애초에 복수를 하지 않는 게 낫다. 예를 들면 영화 ‘소녀괴담’ 같은 거…….

 

  하지만 이 영화, 그런 면에서는 어설프지 않게 확실히 되갚아준다. 대단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독하게 복수한다. 그래, 이왕 갚아주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과거에 남에게 상처를 줬던 가해자가 나중에 복수당하는 영화는 꽤 있다. 즉, 과거의 가해자가 현재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 중의 어떤 것은 현재의 피해자 입장에서 진행되어, 결국 주인공인 현재의 피해자가 살아남는 걸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거 진짜 마음에 안든다. 과거의 피해자이자 현재의 가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편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당했던 것도 억울한데, 현재에 복수하는 것도 제대로 못하게 되다니…….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 와중에 괜히 끼어서 목숨을 잃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불쌍했다. 어쩌다가 관련이 되어서……. 끝까지 다 보고 든 생각은 복수를 할 때 하더라도, 소중한 것은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괴물들에게 복수를 하려다가 자기 자신마저 괴물이 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복수라는 건, 상대와 똑같은 존재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남에게 나쁜 짓을 하는 건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니, 그 괴물을 상대하려면……. 어쩐지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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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8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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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Postern of Fate, 1973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이 책은 토미와 터펜스 부부가 노년에 겪은 사건을 그리고 있다. 이 부부도 참, 일생이 기구한 편이다. 나이 먹어 은퇴하고 조용히 시골 마을에서 정원이나 가꾸면서 살려고 했는데, 가보니 구입한 오래된 저택이 옛날 전쟁 때 스파이가 활동하던 집. 전 주인들이 두고 간 물건을 정리하다보니 나오는 것은 암호문. 그것에 의문을 품고 수사를 하려니 시체로 발견되는 정원사.

 


  소설을 읽다보면 부부의 과거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들이 종종 등장한다. 아예 대놓고 두 사람에게 전쟁 때 스파이를 잡았었냐고 묻는 동네사람들도 나오고, 토미가 예전 동료들을 만나서 회상을 하는 장면도 간혹 보인다. 어떤 꼬꼬마들은 스파이를 잡은 사람을 직접 만난다는 벅찬 감동을 느끼면서 소년 탐정단 활동까지 맡아서 할 정도이다.

 


  그리고 이 책을 보고 나서야, 예전에 읽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프랑크푸르트행 승객 Passenger to Frankfurt: An Extravaganza, 1970’에서 빠진 나사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빅 포 The Big Four, 1927 ’까지 이어서 읽으면 나름 완전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빅 포’는 좀 시기적으로 멀리 떨어져서 연결고리가 느슨한 편이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행 승객’과 이 책은 시기적으로도 그리 멀지 않고, 책을 읽다보면 그 사건을 암시하는 대사가 등장한다.

 


  나이가 들어서 이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토미와 터펜스이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서로를 신뢰하고 아끼고 사랑한다. 그와 동시에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피하지 않는다. 비록 돌아가거나 한 발 물러서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얻었지만 회피하지 않았다. 또한 여전히 활기차고 젊은 사람 못지않은 추진력과 결단력, 그리고 번뜩이는 재치를 갖고 있었다. 물론 체력은 예전만 못하지만,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스 마플은 그들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으니까.

 


  악령이 나오는 영화도 그렇지만, 전 세계적인 조직의 음모를 부수는 설정 역시 일망타진되지는 않는 것 같다. 하긴 영국에 있는 조직을 확실히 잡았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서 제대로 하지 못하면 헛수고일 테니까. 그래도 영국은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국내에서는 걸핏하면 잠수함 설계도를 잃어버리고, 수상은 납치당하고, 유력 정치가는 스캔들에 휘말려도, 국외적인 첩보 활동은 무척 뛰어난 편이니까 말이다. 크리스티의 소설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저들도 저렇게 활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모험을 즐기는데, 그들에 비하면 아직 젊은 나는 뭐하는 걸까라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활 방식은 다양하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난 나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모험을 즐기는 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가출을 한다거나 범죄자를 잡는 그런 거창한 것 말고, 약간의 일탈이랄까? 이번 가을에는 뭔가 재미난 걸 해봐야겠다.

 


  드디어 해문 출판사에서 나온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의 마지막 권이다. 매달 네 권씩, 거의 2년 동안 이어진 장기 독서 계획의 끝인 셈이다. 이 자리를 빌려 무슨 날만 되면, 예를 들면 기념일이나 생일이나 어린이 날(...)등에 크리스티 책의 빠진 부분을 채워준 애인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내 독서가 끝이 난 건 아니다. 이제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라든지 엘러리 퀸의 ‘라이츠빌 시리즈’를 시작해야지. 그러고 보니 미쓰다 신조의 소설도 남았고, 테스 게리첸의 ‘리졸리와 아일스 시리즈’도 대기 중이다. 아! 애인님이 사준 셜록 홈즈 시리즈도 있구나! 세상은 넓고, 읽을 책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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