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용기 - 실존적 정신분석학자 이승욱의 ‘서툰 삶 직면하기’
이승욱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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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부제 - 실존적 정신분석학자 이승욱의 ‘서툰 삶 직면하기’

  저자 - 이승욱

 

 


  이 리뷰를 쓰기 전에, 이 책의 저자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한번 들어보았다. 그런데 음, 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어서 조금 놀랐다. 책은 조곤조곤 사례를 들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펼치고 있는데, 팟캐스트는 다른 방식이었다. 난 책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의 목적은 첫 장을 펼치자마자 프롤로그에 굵은 글씨로 적혀있다.

 

  ‘적절한 시기의 올바른 포기는 인생을 얼마나 편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락날락했다. 우선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만화 ‘슬램덩크’의 명장면을 패러디한 컷이었고, 적절한 시기란 무엇인지 올바른 포기는 또 뭐란 말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욕망과 집착을 줄이라는 내용일지도 모른다는 상상과 추측까지 해보았다.

 

  이 책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총 네 개의 장에 구체적인 사례를 곁들여 저자의 의견을 펼치고 있다.

 

  1장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여기서는 자신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예를 들면, 왜 남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지, 내가 직면한 문제의 원인은 집착 때문인가 욕망 때문인가, 내가 남에게 인정받을 만한 것은 무엇이 있는지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2장 나는 누구로 사는가?

  이 장에서는 내 존재를 어떻게 누구를 통해 증명할 수 있는지, 무엇을 얻고자 노력하는지 말하고 있다. 자기연민과 자기혐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3장 나는 왜 불안한가?

  사람이 불안한 이유는 남에게 평가받는 것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미지의 것, 예를 들면 죽음 때문에 현재를 불안해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선택이 문제가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을 지기 싫어서 두려워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4장 나는 타인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제목 그대로, 내가 남에게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진정한 나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남에게서 그 빈 공간을 채우거나 자신을 찾기 위해 그렇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가는 대목도 있고 아니다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공감하는 부분이 더 많았다.

 

  결국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건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와 비슷한 문제 같다. 어릴 적에 받은 트라우마 때문에 커서 자식에게 집착하고 왜곡된 상을 주입시킨 부모 때문에 또다시 상처받은 아이가 태어난다.

 

  상처받은 상태로, 그것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속으로 곪고 짓무르면서 고름과 피를 철철 흘리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런 자신이 싫어서 자기 자신을 또 상처주고 경멸하며, 누가 이런 자기 속마음을 알까봐 불안해하는 동시에 누군가 상처를 치료해주길 바란다. 이런 모순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집착을 하거나 강요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여 놓아버리라고 충고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지나친 욕망은 버리라고 말한다.

 

  음, 하지만 요즘같이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남들과 다르면 어쩐지 뒤처지거나 루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놓아버리라는 건 글쎄……. 지나친 욕망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몸부림일 수도 있을 텐데.

 

  게다가 저자는 자신을 인정하기 위한 과정에는 세상에 알리거나 타인의 확인이 필요 없다고 하지만, 인간에게는 사회적 인정을 바라는 욕구가 있다고 배웠다. 그걸 버리라는 건가?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났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는 게 욕망인지 아니면 내 능력 안의 일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담? 그러자면 자기 자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 아닌가?

 

  아, 그렇구나. 이제야 알 거 같다. 소크라테스가 왜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는지, 그가 왜 시공간을 초월해서 추앙을 받는지 알 거 같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라는 요구는, 타인을 평가하는 잣대를 자신에게 적용하니 스스로 보기에도 별 볼 일 없고 사랑할 수 없더라는 자기 고백에 다름 아닙니다. -p.59

 

  타인이 당신과 똑같은 존재이길, 똑같은 감정표현 방식과 관계 방식을 갖기를 기대하지 않길 바랍니다. 만약 당신에게 그걸 요구하는 누군가가 주변에 있다면 그에게 싫다고 정중히 말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에 반응하는 상대방의 감정을 지나치게 개인적으로 받아들여 상처받지 마십시오.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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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거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4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8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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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Mirror Crack'd from Side to Side, 1962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 마플이 나오는 이야기로, 세인트 메리 미드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이 나온 연도는 1962년. 두 차례 세계 대전이 끝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는 시대였다. 그와 동시에 많은 것이 바뀌고 있었다.

 

  소설은 미스 마플의 입을 통해 그런 변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반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생활주거환경의 개선과 발전 그리고 변화도 좋지만, 예전의 멋스러움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슬픔이 첫 장부터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아무래도 그녀가 한평생 세인트 메리 미드에서만 살아왔기에, 그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이가 나이인 만큼, 곁을 떠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미 머리가 하얀 할머니였는데, 이 책이 나왔을 때는 그로부터 30년이나 지났으니……. 장수하는 집안인가보다. 이번 이야기에는 '목사관 살인사건 The Murder at the Vicarage, 1930'이나 '화요일 클럽의 살인 The Tuesday Club Murders, 1932'에서 등장했던 사람들도 같이 등장하고 있다. 음, 정정한다. 장수하는 마을인가보다.

 

  세인트 메리 미드의 고싱턴 홀을 유명한 여배우 마리나 그레그가 사들인다. 그 곳에서 예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영화화하기로 한 것이다. 그 사건은 나중에 나올 '서재의 시체 The Body in the Library, 1942'이다. 다시 한 번 또 말하지만, 작가의 전집은 역시 시대 순으로 출간해야…….

 

  새 단장한 고싱턴 홀에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여는 도중,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마리나 그레그의 열렬한 팬이었던 베드콕 부인이 음료수를 먹고 죽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 잔이 사실 마리나 그레그의 것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녀에게 온 협박 편지까지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충격에 빠진다. 또한 그녀의 비서와 저택의 집사마저 살해당하는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주치의 헤이독에게서 사건을 수사해서 기력을 되찾으라는 처방전을 받은 미스 마플은 여러 사람의 증언을 바탕으로 사건을 조사한다. 예전에는 사건 현장으로 직접 달려갔지만, 이제는 몸이 아파서 그녀는 대개 집에서 자료를 읽는 것으로 대체한다. 물론 간호사 나이트 양의 눈을 피해 동네를 산책하기는 한다. 아무래도 자신의 눈으로 사건 현장을 보기도 하고, 얘기도 들어야 할 테니까.

 

  미스 마플의 입에서 나온 사건의 진상은 참 마음이 아팠다. 그 사람이 악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자신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사람을 우연히 발견했고,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이 억제할 노력을 해볼 겨를도 없이 움직인 것이다.

 

  게다가 피해자였던 과거의 가해자 역시,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나름 열심히, 성실하고 착하게 살았던 사람이었다. 다만 자기 자신만 보는 좁은 시야덕분에, 자신의 말과 행동이 남에게 어떤 영향과 피해를 주는지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자기 자신에게 최선이면 남에게도 최선일 것이라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한 것이 죽음의 원인이었다.

 

  열심히 성실하게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도, 자기 위주로 모든 것을 생각하면 남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얘기한다.

 

  씁쓸했다. 차라리 나쁜 사람이었으면 기분이 좋았을 텐데, 그게 아니라서 마음 한구석이 안 좋다. 그래도 살인은 살인, 다른 사람들까지 죽인 것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미스 마플, 밴트리 부인, 그리고 크래독 경감을 봐서 좋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를 생각하면 뒷맛이 영…….

 

  예전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그때 마리나 그레그 역할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맡았었는데, 어린 내 눈에 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갓 내려온 천사나 요정의 여왕으로 보였다. 어쩌면 그리도 고왔는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엘리자베스 테일러 짱을 외치며 다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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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김유철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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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김유철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여성을 살해한 후 장기를 훼손하는 끔찍한 사건이다. 희생자의 주변을 탐문하던 중,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를 지목하지만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미 3년 전부터 행방불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연이어 이어진 또 다른 소녀의 살해사건…….

 

  한편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던 민성에게 두 남녀가 다가온다. 그 중 남자는 민성의 작품과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으며, 연쇄살인범을 쫓고 있다는 말을 남긴다. 다른 한 명은 여자로 실종된 여동생을 찾아달라며, 남자가 범인을 쫓는데 도움을 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던 민성이었지만, 그 범인이 자신과 관련이 있었다는 걸 알고 적극 나선다. 사실 그에게는 비밀이 하나있는데, 12년 전의 기억을 잃었다는 점이다.

 

  모든 단서는 12년 전에 있었던 ‘용호농장 화재사건’을 지목하고, 그 뒤에 숨겨져 있던 비밀들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그 농장 관련자들의 가족이 왜 살해당하는지, 민성은 왜 기억을 잃었는지, 연쇄 살인의 지도에서 드러난 TWIN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실종된 소녀는 과연 살아있을 것인지.

 

  소설은 두 팀, 형사와 민성이 각각 사건을 쫓아가는 구성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그들은 초반과 중반에는 접점이 없다. 나름대로 사건을 추적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모든 사건의 시초였던 ‘용호농장’에서 만나게 된다. 그래서 독자는 두 팀이 찾은 단서를 가지고 나름대로 범인에 대해 추측하는 재미를 느낀다. 형사가 어떤 가설을 내놓으면 ‘잘 따라오는군.’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그건 아니지, 이 사람아!’라면서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민성이 가끔 떠올리는 단편적인 기억과 형사가 고아원에서 찾아낸 단서를 조합해서 ‘이건 이럴 거야!’라고 추측해서 맞으면 좋아라하고 틀리면 실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반전이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략 두 팀의 이야기를 연결시키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호농장의 정체와 회장의 최후는 조금 놀라웠다.

 

  소설의 구성은 커다란 베틀로 가로세로 올이 어긋남 없이 촘촘히 짠 옷감을 떠올리기 충분했다. 그런데 막판에 방심해서 마무리를 잘 못한 모양이다. 끝부분에 실이 얼기설기 느슨하게 엮이더니, 급기야 올이 풀려버렸다. 그게 아니라면 중간에 가로나 세로 중의 하나를 몇 번 건너뛰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완성했을 때 중간에 미묘하게 옷감의 줄이 어긋나있는 걸지도, 그 때문에 마지막 부분에 가서 올이 하나 삐져나오거나 밀려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이런, 적고 보니 심각한 스포일러가 돼버렸다. 그래서 '접기'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하지 않는 분들은 패스!


접힌 부분 펼치기 ▼

 

  등장인물 중에서 형사들이 간과한 부분이 있다. 바로 의사인 원의 존재였다. 사실 그들은 원이라는 사람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원은 민성에게 최면을 걸어 기억을 되찾는데 도움을 주는 친구이자 의사이다. 민성은 나중에야 어렴풋이 기억하지만, 그와 어릴 때 용호농장에서 자랐었다. 또한 민성의 기억 속에서는 원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김현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고, 그 형이 보기와 달리 잔혹했으며, 어릴 적에 김현이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모든 범죄행위의 뒤에는 형이 있었다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 그의 정체가 누구일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경찰은 모든 범행을 민성이 저질렀다고 판단했지만, 사실 원이 저질렀을 수도 있다. 


 난 원이 모든 사건의 배후라고 생각한다. 최면을 걸 정도였으니 기억을 조작하는 것이야 간단하리라 생각한다. 무려 12년 동안이나 옆에서 돌봐줬으니 말이다. 그러니 증거를 조작하는 것도 무리가 없었을 것이고 말이다. 


  경찰은 민성이 김현의 쌍둥이 형제일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그의 얼굴이 다르다는 것에도 별로 의심을 하지 않았다. 수술을 받았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지나쳐버린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어딘지 익숙한 얼굴의 의사를 병원에서 만났을 때도, 그냥 익숙하다고만 생각하고 지나쳐버린다. 그런데 혹시 그 의사가 원이었다면? 형사들은 김현을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 예전에 찍은 사진을 통해서만 접했었다. 그 때문에 혹시 원이 김현과 닮았다고 해도 그림이나 사진과 현실의 괴리감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고만 여길 뿐,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수중에 민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형사들이 처음부터 민성을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했다면, 원에 대해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용의자의 주변 인물을 샅샅이 조사하는 것이 수사의 기본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김현에 대해 초점을 맞췄고, 민성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피해자들이 용호농장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제야 그 사건의 생존자인 민성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민성이 나름 조사하던 자료를 보고, 그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후 사건은 급물살을 타고 긴박하게 흘러, 민성이 거의 의식을 잃었기에 형사들은 제대로 된 취조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민성을 김현의 형으로 보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원의 계획이었다면? 


  민성을 범인으로 보기엔 회수가 되지 않은 떡밥이 몇 개 있었고, 원을 범인으로 하기엔 좀 더 힌트를 명확히 줬어야 했다.


 

펼친 부분 접기 ▲


 책에서는 그런 힌트들에 대해 확실히 어떻다고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냥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암시만 여기저기에 던져주었다. 그러니까 떡밥만 잔뜩 흩뿌려놓는 건 작가의 몫이고, 그걸 잘 모아서 거르고 조합하는 건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나만 혼자 이상하게 추리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사건의 범인은 형사들이 찾아낸 그 사람이 맞을 수도 있다. 그냥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몇 가지 문항들을 보면서 나 혼자 저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그래도 그런 부분까지 명쾌하게 밝혀지면 좋은데, 그렇지가 않아서 좀 아쉬웠다. 음, 설마 그냥 작가가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지 말고, 머리를 좀 쓰라는 배려이자 함정일까?


  그런데 이상한 부분! 왜 작가는 1929년을 ‘천구백이십구 년’으로 119를 ‘일일구’라고 썼을까? 대화부분에서 숫자가 나올 때는 일일이 한글로 쓰고, 그냥 서술부분에서는 숫자로 적었다. 사람이 숫자를 읽을 때와 쓸 때가 다르니까, 그걸 표현하기 위해서였을까? 하지만 요즘은 그런 구별을 잘 안하는 편이다. 그런데 왜 작가는 그리했는지, 그것이 알고 싶을 뿐이다.


  별점을 어떻게 줘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구성을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게 잘 짰고, 중간에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약간 호의적으로 주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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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 데드 1 - [초특가판]
샘 레이미 감독, 브루스 켐벨 외 출연 / 기타 (DVD)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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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Evil Dead, 1981

  감독 - 샘 레이미

  출연 - 엘렌 샌드와이스, 브루스 캠벨, 리차드 드매닌코, 벳시 베이커

 

 

 

  작년 여름에 개봉한 리메이크 버전이 다소 아쉬웠기에, 내 기억 속에서 멋지게 남아있는 원작을 보기로 했다. 거의 3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라, 배우들의 화장법이나 머리모양 그리고 옷이 많이 촌스러웠다. 게다가 저예산으로 만들었기에 특수 효과라고 해봤자, 보자마자 티가 팍팍 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리메이크 버전보다 훨씬 더 많이.

 

  다섯 명의 친구들이 산 속에 있는 낡은 집에서 머무르게 된다. 그곳을 둘러보던 중, 지하실에서 이상한 것들을 발견한다. 해골 모형이라든지 기괴한 그림이 그려진 책, 그리고 녹음기. 호기심에 그들은 녹음기를 틀어보는데, 거기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 집의 주인이었던 남자가 녹음한 것으로, 귀신을 되살리는 고대 문명의 주문에 대해 언급한다. 녹음기에서 주문이 흘러나오자마자 한 친구가 꺼버렸지만, 이미 늦었다. 악령들이 되살아나 그들을 노리고 있는데…….

 

  왜 집주인이 주문을 녹음해놨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책에다 적으면 되지 않나? 이번 경우처럼 누군가 실수로라도 녹음기를 재생시키면 어쩌려고……. 설마 자신이 악령이 될 경우를 대비해서 계획적으로 해놓은 걸까? 집에 오는 사람 아무나 테이프를 재생시키면 되살아나려고? 흐음, 그럴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난 역시 똑똑해, 후훗.

 

  그나저나 밤에 이상한 소리가 밖에서 들려온다고, 잘 준비하려다가 혼자 빠져나가는 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 자기 일행이 아닌 낯선 사람이 밖에 있다는 얘긴데 겁도 없이, 그것도 한밤중에 혼자! 그러다가 악령이 조종하는 나뭇가지에게 팔다리를 결박당하는데, 이게 바로 그 말로만 듣던 촉수물인가? 가지들이 팔다리뿐만 아니라 허벅지 안쪽과 가슴을 파고드는데, 따갑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령이 좀 배려심이 많이 부족하다. 가녀린 여자 피부인데, 거친 나뭇가지로……. 좀 이건 아니다 싶다. 하긴 마른 나뭇가지들이라서 끊어내고 도망치긴 했지만, 사람들이 악령을 싫어하는 이유를 또 한 가지 알게 되었다. 하여간 악령도 밝히기는 참.

 

  다섯 친구 중에 주인공만 빼고 다 악령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혼자 남은 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참으로 안쓰럽지……않고 코믹하다. 죽은 척하는 악령 빙의 여자 친구도 어떻게 보면 귀엽고, 지하실에 갇혀 어떻게든 바깥 구경 해보겠다고 목을 길게 빼는 친구도 재미있고.

 

  영화를 보면 바깥에서 누군가 주인공 일행을 엿보는 느낌을 주는 장면들이 있다. 일반적인 다른 화면과 달리 음침하고 연기가 자욱하게 끼어 보이는데, 마치 악령이 그들을 몰래 따라다니고 집안을 훔쳐보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문이 닫히면 뒤로 물러가는 것이 ‘에잉’하고 혀를 차는 것 같기만 하다. 소심하기는. ‘카메라 화면 = 악령의 시선’이라는 조합이 그 당시는 신선했을 것이다.

 

  영화는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피가 철철 흘러넘친다. 하지만 딱 보면 가짜라는 게 티가 난다. 그래서 별로 무섭거나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냥 주인공 혼자 쇼하는 거 같아서 재미나기만 하다.

 

  아! 요즘 TV 드라마에서와 전혀 다른 브루스 켐벨의 젊은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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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4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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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Seven Dials Mystery, 1929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크리스티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앞서 ‘침니스의 비밀 The Secret of Chimneys, 1925’에서 배경이 되었던 저택 침니스가 또 다시 등장한다. 그래서 겹치기 출연을 하는 인물도 있다. 예를 들면, 배틀 총경과 외무성 직원인 빌 에버슬레이, 저택의 소유주인 캐터햄 경과 그의 딸인 레이디 아일린이 그렇다. 참고로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아일린 브랜트, 애칭으로는 번들이라 불리는 여인이다.

 

  쿠트 부부는 잠시 빌린 침니스 저택에 젊은이들을 초대한다. 그런데 손님 중에 제리라는 청년이 자다가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특이한 점은 친구들이 매번 늦잠을 자는 그를 놀려주려고 자명종 8개를 갖다 놓았는데, 시체가 발견된 다음에는 7개만 있었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저택으로 돌아온 번들은 설상가상으로 길에서 제리의 친구인 로니가 죽어가는 것을 발견한다. 무슨 이유로 정부에서 일하는 두 명의 젊은 청년이 연달아 죽는 걸까? 번들은 로니가 마지막 남긴 말 ‘세븐 다이얼스’에 얽힌 비밀을 풀기로 결심한다. 무엇보다 자기 집안의 저택에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또’ 생겼기에, 그녀는 더욱 더 열성적으로 나선다.

 

  영국 정부에 비밀리에 숨어들어 적국에 기밀을 빼돌리는 스파이가 누구인지, 세븐 다이얼스라는 조직의 목적은 무엇인지, 번들은 죽은 두 사람의 친구인 지미와 제리의 여동생인 로레인과 함께 적의 본거지로 숨어든다.

 

  지난 이야기에서 받은 번들에 대한 느낌은 머리 좋고 분석력과 관찰력이 뛰어나지만, 약간 나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에서는 거침없는 활동력까지 보여줘서, 처음에는 낯설기까지 했다. 몰래 클럽 비밀 장소에 숨어들어 벽장 속에서 조직의 회의를 엿듣는 모습에서, ‘번들이 이런 성격이었던가? 지난 4년 동안 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라는 의문과 궁금증이 들 정도였다.

 

  배틀 총경은 역시 이번에도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명확한 증거를 찾기 위해 신중하게 행동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 사람 은근히 인맥이 넓다. 게다가 체격 건장하고 무뚝뚝한 표정을 잘 짓는다니, 누구나 척 보면 경찰이나 군인이라고 짐작할 것이다. 포와로나 마스 마플과는 또 다른, 상대를 방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유형이랄까? 다른 두 탐정처럼 말주변이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아직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아! 그렇다. 내가 증인이나 피해자와 관련이 있다면, 그는 믿을만한 사람이다. 반대로 범죄와 관련이 있다면, 그가 지그시 보는 것만으로 겁이 날지도 모르겠다.

 

  이번 이야기에서 제일 재미있던 캐릭터는 아무래도 빌 에버슬레이일 것이다. 지난 ‘침니스의 비밀’에서는 짝사랑하던 버지니아 레블을 앤터니에게 빼앗기는 역할이었는데,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당당하게 번들과 장래를 약속하게 된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때를 놓치면 X된다는 교훈을 얻은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성격이 좀 변했다. 아니, 어쩌면 지난번에 내가 관심을 덜 둬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 남자가 달달하다 못해 느끼한 대사를 반 페이지나 읊을 줄 누가 알았을까?

 

  크리스티의 작품답게 사랑과 음모가 판을 치는 이야기였다. 또한 시대 배경에 걸맞게 볼셰비키라든지 러시아 혁명 등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언제나 얘기하지만 시대 순으로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독일도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때는 러시아의 변화가 더 관심사였나 보다.

 

  유쾌한 첩보물이었다. 사람은 둘씩이나 죽어나가고, 괴한이 몰래 숨어들어와 총도 쏘고, 기절도 하고, 엿듣기도 하고, 격투도 벌이지만, 발랄했다.

 

 

 

  93쪽에 생선과 칩을 먹겠다는 문장이 있는데, 그냥 ‘피시 앤 칩스’라고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외국도 우리의 불고기, 김치를 그냥 불고기, 김치라고 하니까. 이미 고유 명사화된 음식은 그냥 적는 게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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