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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 내가 나를 쓴 최초의 철학자 몽테뉴의 12가지 고민들
솔 프램튼 지음, 김유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원제 - When I Am Playing
with My Cat, How Do I Know That She Is Not Playing with Me?
부제 - 내가 나를 쓴 최초의
철학자 몽테뉴의 12가지 고민들
저자 - 솔
프램튼
제목이 무척이나 길어서,
처음에는 어떤 책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에 대한 얘기일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다가 부제를 보고는 ‘헉!’하고 놀랐다.
몽테뉴라니……설마 그 서양 철학가? 혹시라도 막 이해 못할 단어들이 마구 튀어나오는 책이 아닐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웬걸? 너무도 재미있고, 몽테뉴라는 사람이 무척이나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한 아저씨의 일기가 책 속에
펼쳐져 있었다. 다만 그 아저씨가 전직 법관에, 전직 시장에 성을 가진 영주라는 게 많이 다를 뿐이다.
내가 나를 썼다는 부제의 말이
무엇인가 한참 고민했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 대해 처음으로 객관적 또는 주관적으로 기록을 했다는 뜻이리라. 한국어는 참 어렵다. 16세기,
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뀌는 격변기이고 질병과 전쟁으로 요동치는 세상에서 지인과 가족 그리고 주변 상황에 대해 순수하게 자기 자신의
감정을 쓴 글은 몽테뉴가 처음이라는 뜻이라 해석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몽테뉴라는 사람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고, 병이 시달리면서 때로는 나약하고 또 어떨
때는 툴툴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친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섹스에 대해서 읽을 때는 ‘남자란…….’하면서 피식 웃음도 나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온전히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데,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충실하게 일기를 적었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서 책으로까지 내놓았다.
물론 그럴 경우에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빼고, 좋은 쪽으로만 편집을 했을 수도 있다. 나 같으면 그럴 것이다, 아마.
그런데 이 사람, 그렇게 안 한
것 같다. 대놓고 그 당시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기도 하고, 자국은 물론 타국에 대해서도 혹독하게 평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제들까지도 그의 예리한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당시 아무리 가톨릭이 욕을 먹는다고 해도, 여전히 막강 파워를 자랑하는 신부와
사제인데!
이런 행동은 자기 자신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있고, 주관이 뚜렷하며 확실한 소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문득 그는 자존감이 무척이나 높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정, 죽음 , 회의, 동물,
전쟁, 여행, 고통, 섹스, 관계, 취향, 유년 그리고 자아에 이르기까지, 몽테뉴는 솔직하게 느낀 바를 쓴 것 같았다. 거기에 저자의 자세한
설명과 나름대로의 추측이 적절하게 곁들어져 있었다.
그가 마침내 평생을 믿어온
스토아학파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장인 ‘자아’를 읽으면서, 경험과 생각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았다.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다양한 상황을 접하고, 때로는 위기를 맞닥뜨리기도 하고, 깊은 사고를 하고, 그러면서 성장하는 동물이다.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귀한 자식일수록 여행을
시키라하고,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한다는 말이 있나보다. 전에는 그냥 옛날에 살다가 죽은 사람의 글로만 여겼던 몽테뉴의 ‘에세’를 찬찬히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주 오래 전에 온 마음과 몸을 다 바쳐 평생을 치열하게 싸우고 충실히 살다간 한 사람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다.
-인생은 그 자체가 목표이자 목적이다. 죽음은 분명히 끝이지만,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죽음은 마 지막이고 한계이지만,
목적은 아니다, p. 311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즐기는 법을 아는 것, 그것이 절대적으로 완벽하고 실질적으로 신성한 삶의 경지이다. 자기
자신의 용도를 모르기 때문에 다른 환경을 찾아 헤매고, 자신의 내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아 밖에서 떠도는 것이다.
p.322
ps. 문득 몽테뉴는 어떻게
보면 그 시대의 영향력 있는 파워블로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